난을 놔두다보면(키우는게 아니고)

역시 애정을 쏟지 않으면 죽게 마련이다.

하지만 몇년째 때가 되면 꽃도 피고 푸릇푸릇함을 잃지 않은 난이 있다

그 난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간혹 몇줄기 잎을 억지로 고사시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병들고 말라 비틀어진 잎이 축 늘어지면

그것을 떼어내버린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듯 새 잎이 나와 생명력을 뽐낸다.

상처는 

억지로 되돌리려 한다고 해서 되돌려지는 것이 아님을... 

그래야 새순은 솟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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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5-23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른 잎이 꼭 저 같아서 좀 아픕니다.
아픈 이파리 아래 새 순이 돋겠지요?

하루살이 2008-05-2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꼭 돋아날 겁니다.
 



 

상처를 받으면 흉터를 남긴다.

가만히 두면 그 상처는 더욱 커져 이내 산산조각난다.

그래서 땜질처방이라도 해야한다. 

금 간 마음에 반창고라도 붙여야 한다.

그게 실컷 우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알코올이 될 수도 있고, 여행이 될 수도 있으며, 깊은 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삭이는 것보다는 낫다.

비록 그 흉터를 가릴 순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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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는 방송국에서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꽤 성공한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드라마를 이끌고 간 소재들이 한번쯤은 매스컴을 통해 접했던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결코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끌었다. 당연히 매스컴에 등장한 이야기들이라는 것이 극단적 소재인만큼 이야기의 구성도 극단적인 예를 잘 활용함으로써 극의 재미를 주었다.

개인적으론 이 드라마가 작가에 대한 꿈과 두려움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고 보여진다. 작가는 시청률이라는 악마와 같은 숫자와 싸워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청률은 좋지 않지만 적극적인 마니아들을 형성하는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것도 있다. 온에어 속에서는 인기와 마니아 사이에서 움직여야 하는 작가들의 두려움과 고충이 곳곳에 배어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드라마의 영향력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본능 중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권력욕이다. 권력욕이란 거창하게 누군가를 지배하는 지위, 계급에 대한 욕망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는 어떤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드라마는 육체적 변화보다도 정신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 정치적 권력적 작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온에어의 마지막회에서 김하늘이 낭송하는 편지는 드라마의 영향력에 대한 상징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실제론 재미있는 드라마로 끝나도 괜찮을 터인데 은연중에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런 욕망을 드러낸다. 때론 거칠게 때론 소리없이. 어떤 부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그다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무감에 휩싸여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작가라는 엄숙한 도덕주의 또는 경건주의가 아직도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에서 드라마의 한계점도 노출된다.

근래에 보았던 드라마 중에는 <고맙습니다>가 어느정도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에이즈와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드라마 이후 에이즈 환자를 위한 또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제도적 변화 등이 뒤따라 왔을까.

온에어 속 편지를 쓴 동생은 과연 평생토록 언니를 바보가 아닌 모습으로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도 그냥 그대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보단 분명 나아졌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아예 반대로 로맨틱 코미디의 유쾌발랄함에 박수를 보낸다. 누군가를 움직여보겠다는 욕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엄숙주의를 벗어난 삶의 가벼움에 대해서 박수를...

어쨋든 사람의 습관과 행동이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드라마는 오히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일 가능성이 크다. 확고부동한 그 무엇을 지탱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을 건드릴 수 있는 세심한 드라마가 그리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 그래서 사랑은 시작될지도 모른다. 온에어가 드라마제작을 씨줄로 사랑을 날줄로 가지고 있던 것도 그 이유때문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어야만 한다는 엄숙함과 경건함을 의무감으로 지니지 않고 자유롭게 권력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거나, 분방하게 권력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즐거움을 주는 고마운 바보상자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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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쇠고기 수입과 맞물려 광우병을 둘러싸고 온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냐에 있을 것이다. 30개월 이상 된 소와 함께 7개 위험부위에 대한 안정성 여부에 따라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안전하다는 쪽도 불안하다는 쪽도 정확한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우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그것이 인간에게 어떻게 전이되어 병을 일으키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잠복기가 워낙 길어 정확한 인과관계 규명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젠 대놓고 정부에서도 먹기 싫으면 안먹으면 된다는 식의 발상까지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건 그렇다치고 아무튼 이런 핵심적 논란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차피 이 논란은 안정성 여부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검역에 대한 믿음으로 해결하면 차선책일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검역에 대해서도 현재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또 드러나게 된다.

아 또 하고싶은 말에서 벗어났다.
광우병의 발병은 동물사료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왜 축산업체는 동물사료를 소에게 먹이기 시작했을까. 값싸게 소를 피둥피둥 살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의 원인은 고기에 대한 엄청난 소비로부터 시작된다. 싼값에 고기를 누구나 접할 수 있게되면서 고기 소비는 급증했다. 이 소비에 맞춘 공급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축사가 들어서 소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 소를 먹이기 위해 나무가 베어지고 곡물을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곡물생산은 고기소비 증가를 따라잡기가 힘들다. 이때 나타난 동물사료는 손쉽게 넘어갈 수 있는 유혹이다. 소를 키우며 오염되는 물과 소 한마리를 키우는데 필요한 곡물과 토지를 위해 베어진 나무로 인한 온난화는 논외로 하자. 
귀족들이나 소수의 부자들만이 누리던 호사스러운 고기라는 음식이 일반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니 그것마저 무시하지는 말자. 하지만 매일 고기를 먹는 습관으로 인해 성인병이 일반화되고 그로 인한 의료비도 엄청나다. (이 보험료만 아낀다 하더라도 농촌을 살릴 수 있는 보조금은 충분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고기이기도 하지만 절제를 하는건 어떨까. 하루에 한번씩 먹었다면 사나흘에 한번씩, 사나흘에 한번씩 먹었다면 일주일에 한번씩, 일주일에 한번씩 먹었다면 한달에 한번씩...
특정한 기념일이나 공휴일등을 고기 먹는 날로 정해 특별한 음식으로 맛보는 것은 어떨까. 고기 소비의 감소가 우리 속에 사료먹는 소들을 방목으로 키울 수 있는 건강한 소로 만들어주진 않을까.

또하나.
일본처럼 1억이 넘는 소를 키우라기 보다는, 또 축산업자들에게 지급되는 일시처방인 보조금보다는 차라리 그 지원과 보조금으로 급식업체들의 원료를 한우로 하는 건 어떨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에 보내지는 음식들에 있어서만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누이좋고 매부좋은 방법은 아닐까. 물론 이건 현재 FTA로 인해 어려운 방법이 되버렸지만 말이다.
소말고도 유기농을 통한 토지의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각 지방자치별로 인근에서 나는 유기농 채소와 소, 돼지 등을 학교나 군부대에서 납품받는다면 일정한 보급으로 인한 안정적 공급으로 농촌도 살고 국민건강도 지켜질 순 없는 것일까.

너무 답답해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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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바로 감자싹입니다.

감자싹은 독이 있어서 요리를 할 때 도려내야 합니다. 그 싹을 가만히 놔 둬보니 이렇게 자라는 군요.

색깔이 강렬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관상용 선인장의 느낌도 줍니다.

버섯도 독이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화려하다고 하죠.

아름다움은 독약과 같은 것일까요.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를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것을 소유하려 하면 역시 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가는건 무엇 때문일까요?

살아가면서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을 알면서도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듯 그것에 집착하는 자신의 모습을 뒤늦게 알아챕니다. 때론 그 치명적 아름다움을 한발짝  뒤로 물러서봤을 때 진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잠깐 발걸음을 멈춘다는 것. 그게 살다보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잠깐 크게 심호흡 한번 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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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4-3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자싹, 이렇게 눈을 대고 보니 아름답군요.
저것도 목숨 있는 것이라서 그럴까요. 독이 있어 그럴까요.

하루살이 2008-05-13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은 치명적이기도 하다?

ㅇㅇ 2014-07-2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자싹은 70도 이상 가열하면 문제가 없고 항암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