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에어>는 방송국에서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꽤 성공한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드라마를 이끌고 간 소재들이 한번쯤은 매스컴을 통해 접했던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결코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끌었다. 당연히 매스컴에 등장한 이야기들이라는 것이 극단적 소재인만큼 이야기의 구성도 극단적인 예를 잘 활용함으로써 극의 재미를 주었다.
개인적으론 이 드라마가 작가에 대한 꿈과 두려움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고 보여진다. 작가는 시청률이라는 악마와 같은 숫자와 싸워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청률은 좋지 않지만 적극적인 마니아들을 형성하는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것도 있다. 온에어 속에서는 인기와 마니아 사이에서 움직여야 하는 작가들의 두려움과 고충이 곳곳에 배어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드라마의 영향력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본능 중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권력욕이다. 권력욕이란 거창하게 누군가를 지배하는 지위, 계급에 대한 욕망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는 어떤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드라마는 육체적 변화보다도 정신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 정치적 권력적 작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온에어의 마지막회에서 김하늘이 낭송하는 편지는 드라마의 영향력에 대한 상징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실제론 재미있는 드라마로 끝나도 괜찮을 터인데 은연중에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런 욕망을 드러낸다. 때론 거칠게 때론 소리없이. 어떤 부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그다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무감에 휩싸여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작가라는 엄숙한 도덕주의 또는 경건주의가 아직도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에서 드라마의 한계점도 노출된다.
근래에 보았던 드라마 중에는 <고맙습니다>가 어느정도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에이즈와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드라마 이후 에이즈 환자를 위한 또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제도적 변화 등이 뒤따라 왔을까.
온에어 속 편지를 쓴 동생은 과연 평생토록 언니를 바보가 아닌 모습으로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도 그냥 그대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보단 분명 나아졌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아예 반대로 로맨틱 코미디의 유쾌발랄함에 박수를 보낸다. 누군가를 움직여보겠다는 욕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엄숙주의를 벗어난 삶의 가벼움에 대해서 박수를...
어쨋든 사람의 습관과 행동이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드라마는 오히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일 가능성이 크다. 확고부동한 그 무엇을 지탱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을 건드릴 수 있는 세심한 드라마가 그리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 그래서 사랑은 시작될지도 모른다. 온에어가 드라마제작을 씨줄로 사랑을 날줄로 가지고 있던 것도 그 이유때문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어야만 한다는 엄숙함과 경건함을 의무감으로 지니지 않고 자유롭게 권력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거나, 분방하게 권력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즐거움을 주는 고마운 바보상자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