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어두운 화면에 우울한 캐릭터들. 왠지 모르게 자꾸만 땅 밑으로 꺼져가는듯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 이 영화를 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한 것도 그때문이었다. 그러나 포스터로 보여진 영화의 한 장면은 전혀 그답지 않게 밝았다. 그래서... 선택.

허풍쟁이 아버지. 아들은 아버지의 숱한 꿈에 대한 이야기를 지겨워한다. 환상 속에 살지 말고 제발 현실을 그리고 진실을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얼마남지 않은 시간, 아들은 아버지의 이야기와 진실 사이를 오가며 그의 인생을 재구성한다. 세일즈맨으로서 세상을 돌아다닌 아버지. 그 아버지가 만났던 사람들과 마을은 환상처럼 들린다. 아들은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거짓으로만 알았던 그의 행적이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그저 아이가 태어났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 돌아다녔다.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와 같은 무미건조한 사실의 나열보다는, 강가에서 큰 고기를 낚다가 놓쳤을 때 태어난 아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빠져나와 병원 바닥을 미끄러져 가면서 태어난 사건, 죽은 후 큰 물고기로 다시 돌아갔다 라는 전설과 환상이 사실의 자리를 대신했을 때 삶은 더욱 윤택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아버지가 겪었던 모험 중 인상에 남았던 부분들을 이야기해보면 이렇다.

18세때 마을의 영웅이었던 아버지는 과감히 마을을 떠난다. 거인은 거인이 숨쉴 수 있는 넓은 곳에서 뛰어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유령이 나타난다는 숲을 지나다 마주친 평화로운 마을. 아무런 갈등도 없고 온화한 날씨 속에서 근심걱정없이 사는 곳. 사람들은 아버지를 대환영한다. 그리고 꼬마 아이는 그가 떠나지 못하도록 신발을 훔쳐서 나무 위에 내던진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오래 머물지 못한다. 안락함보다는 맨발의 모헙을 택한다. 자신의 꿈을 쫓아서. 신발이 없다고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맨발로 마을을 떠난다. 신발이 없다는 것은 그저 허울좋은 핑계일 뿐인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시시때때로 신발을 잃어버렸다고 칭얼댄다. 난 신발을 잃어버려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고)

마을을 떠난 그가 서커스 구경을 하다 마주친 아가씨. 그는 사랑에 빠진다. 한눈에 빠져버린 사랑. 그는 그녀와 결혼할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노예 계약을 맺는다. 서커스단의 잡일을 보는 대신 한달에 한번씩 그녀에 대한 정보를 한가지씩 얻는다는 것. 몇달이 지나가는 동안 그가 얻게된 정보는 대학에 다닌다, 황수선화를 좋아한다 등등. 언뜻 보기엔 그야말로 별 쓸데없는 정보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시시콜콜한 정보를 하나씩 얻을 때마다 행복해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마주쳤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정보들이 힘을 얻는다. 그녀의 집 앞을 온통 황수선화로 가득 채워버린 열정. 사랑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그를 보면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무모함과 그 무모함에 대한 동경을 배우게 된다.

삶은 사랑만으로도 충만해지며 꿈만으로도 즐거워진다는 사실. 팀 버튼은 할리우드의 악동이 아니었다. 아니면 악동이 어느새 커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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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첫 장면 카오스 이론에 대한 자막이 떠오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영화가 무게를 잡기 위해서 괜한 짓거리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카오스 이론에 대해서는 '쥬라기 공원'에서도 나온다. 손바닥에 컵 속의 물을 뿌리면서.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간이 뜻한대로 공룡이 동물원 속에서 단순히 구경거리로만 있지않은 이유임을 설명한다. 또 하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라는 영화에서도 초반부 카오스 이론에 대한 말없는 설명이 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우연히 떨어뜨린 깡통인지 무엇인지가 연쇄작용을 일으켜 전혀 예상치 못한 거대한 사고를 일으킨다.  

이 영화에선?

과거의 한 장면을 바꾸면 그것이 현실을 뒤바뀌어 놓는다. 누군가의 희생을 막기 위해 또다시 과거로 과거로 돌아가지만 운명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그래서 결국 어떡할까?

그런데 이 영화의 소재가 어떤 영화와 너무 닮아있지 않은가?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가지고서 과거로 여행을 다니고, 과거에서 우연한 사건이 미래를 바꾸고. 바로 '빽 투더 퓨처'와 너무 닮아 있다. 이 영화는 나비효과와는 달리 스릴러적 요소는 없고 오히려 코믹적 요소와 멜로적인 맛이 가미되어 있다. 그리고 이 소재에는 바로 이런 경쾌함이 어울린다. 그리고 오히려 이 영화에서 소개하는 하나만의 세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뒤틀려진 과거와 맞물려진 현실의 세계가 각각 존재함으로써 세상은 하나가 아니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흥미진진하다. 아니면 차라리 '터미네이터'처럼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운명을 개척해버리는건 어떨까? 다시는 돌아갈 필요가 업게 말이다.

나비효과라는 제목이 가져다 주는 혼돈에 대한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자리엔 어정쩡하게 서 있는 운명의 그림지만이 남아 있다.

더 이상 운명을 바꾸려 하지 마라

와 닿지가 않는다. 잃어버린 과거는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고, 그 과거는 일기장을 읽으면서 찾아지고, 그리고 그 잃어버렸던 과거의 사건들이 바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것은 오히려 치명적인 사건을 망각하고 그것이 무의식속에 잠재해있다 어느 순간 느닷없이 현실에 들어와 뒤죽박죽되어지는 이야기들보다 재미없다. 과거로 한번 만 더 돌아가면 정말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만큼 딱 절묘한 순간에 다행히도 감독은 돌아가기를 멈췄다. 이것만은 칭찬해 줘야 할 대목일까?

액션도 스릴러도 멜로도 드라마도 모두 한발씩 걸쳐 있어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내지 못해버린 영화. 카오스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은 충족되지 못하고 빈곤한 상상력만 가득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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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에 내 삶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나요? 30대인 저로서는 대충 머릿속에 한 화면이 떠오릅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고, 그 앞에 아이(들)가 엎드려 있겠지요. 아마 애완견 한마리도 뛰어다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 꿈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의 모습은 따로 있죠. ㅡ아, 그런데 이건 정말 밝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끔은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한테 속엣말을 쏟아부을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에겐 비밀로 하고싶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터 놓을 수 있는 것들. 영화 속에선 택시기사와 승객 사이에 이런 모습이 비칩니다. 택시기사인 맥스(제이미 폭스)는 택시몰기가 힘들어지면 몰디브라는 섬의 사진을 쳐다보며 하루에도 몇번씩 휴가를 갑니다. 그는 이런 자신의 감추어진 모습을 처음 보는 여자 검사에게 털어놓죠. 그리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임시직이며, 자신은 언젠가 리무진 렌탈업을 하겠다는 꿈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빈센트(톰 크루즈)에겐 자신의 꿈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죠. 똑같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도 왜 다를까요? 맥스가 잠시 망설이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 이야기가 샜습니다. 아무튼 여러분도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꿈의 실현이 아니라 정직하게 10년 후의 삶을 그려보면 대충 잡혀오는 윤곽이 있을겁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도 알게되죠. 그래서 사람들은 복권과 같은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현실과 달라질게 하나도 없는 삶. 아무리 발버둥치고 열심히 살아봤자 제자리 걸음일게 뻔한 인생. 누구 하나 죽는다고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청부업자 빈센트의 말이 그냥 흘려듣기에는 가슴이 너무 아려옵니다. 죽일 대상이 누구인지 왜 죽여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서 죄책감 하나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그의 모습은 정말 차갑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허무한듯 보이는 빈센트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요?

우연히 만난 청부업자로 인해 10분 앞도 헤아리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맥스는 그저 빈센트에게 끌려만 다닙니다. '너에겐 결정권이 없어' 실은 맥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무엇인가를 결정할때 순전히 우리의 의지만으로 결정한 적이 있었던가요? 이런 결정이라는 상황은 영화 속에서 계속 뛰쳐 나옵니다. 대로쪽으로 가야할지 지하철로 가야할지, 위층으로 가야할지 내려가야 할지, 문에서 내려야 할지, 남아야 할지, 맞서야 할지 도망가야 할지...... 맥스는 계속해서 선택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는 순간순간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주죠. 하지만 그렇게 끌려가던 맥스가 일대 반전을 갖고 옵니다. 빈센트의 말대로만 운전하던 택시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버립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가속페달. 순간 빈센트는 당황합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면서 오직 자신의 뜻대로만 살던 그에겐 충격이었을 겝니다. 자신의 계획과 어긋나버린 순간, 통제의 끈을 놓치는 순간 그가 두려워한 것은 무엇일까요?

  LA 지하철 안에서 사람이 죽어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는 빈센트의 말은 도시의 삶을 대변해줍니다. 마이클 만 감독이 보여주는 화려한 대도시 밤거리는 그 화려한 불빛만큼이나 외로움으로 가득합니다. 분명 빈센트는 살인 청부업자이고 영화는 권선징악마냥 그 끝을 맺지만 엔딩 자막이 오르고 나서도 음악에 취해 앉아 있었던 것은 극장 옆에 앉아 있던 사람 또한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임을 자각하는 외로움 때문이었을까요? 영화 속에서 맥스는 계속해서 빈센트의 말을 인용하며 변해갑니다. 세상의 주변에서 머뭇거리던 그가 세상을 향해 걸어갑니다. 부딪혀 봅니다. 허무적인 빈센트가 오히려 맥스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10년 앞의 삶을 알아버린 남자가 10분 앞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당신은 어땠을 것 같습니까?

'상황에 맞춰 순리대로 가야죠' 정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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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유영철에 대한 경악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가운데 미국의 연쇄살인범에 대한 영화를 봤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이러니컬하다. 죄의식조차 가지지 않고 자신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냥 생명을 앗아간 유영철과 몬스터에 나타나는 미국 최초 여성 연쇄살인범 린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만든다. 과연 둘다 사회가 키워낸 몬스터인지, 아니면 애시당초 타고날 때부터 그런 소양을 지니고 있었던 것인지, 몬스터라면 둘 다 똑같은 색깔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수 없었다.

사회가 이런 몬스터를 키워냈는냐의 여부는 그야말로 정답이 없을듯 싶다.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왜 유독 그들만 그러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이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 즉 타고날때부터 그들은 몬스터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그런 처지가 아니라 좀더 부유하거나 또는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랐다거나 하는 등 다른 환경속에서 자랐더라도 그랬을 것이냐는 질문에 또한 답하지 못한다면 분명 사회가 키워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유영철과 린의 다른 점은 그것이 사회가 키워냈는지 여부보다는 우리가 그들의 결말에 대해 동정을 할 수 있는냐는 것에 있다 하겠다. 즉 사회가 키워냈기에 그들은 희생자일 뿐이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처지에 동정할 수 있기에 그들이 몬스터가 된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어질 수 있을 가능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린은 13살(14살인지도 모르겠다) 때부터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팔기 시작한다. 그 나이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꼭 그것밖에 없었냐는 질문을 던져서는 안된다. 몸을 판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는 나이일뿐더러 그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만큼 절박한 처지를 우리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감히 변명하고 싶다. 아무튼 문제는 이게 아니다. 이런 사실로 인해 그녀가 받는 무지막지한 테러에 있다. 학교 친구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결국 신데렐라를 꿈꾸던 그녀는 항상 창녀로서만으로 존재하게 된다. 즉 한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가 되고ㅡ 물론 이것 또한 그리 큰 문제가 안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ㅡ 그것은 그녀의 인생에 영원한 굴레가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니다, 자신이 아니라 사회가 가지고 있는 차별의 경계선을 각자 지니고 있어 타인에게 그 잣대를 그어대곤 한다. 그리고 그것의 벽은 너무나도 두껍고 높아 하나의 개인이 그것을 깨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그 차별의 벽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를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그 벽에 갇혀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벽 속의 사람들을 멸시하고 억압할 뿐이다. 린은 바로 그 희생자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처음으로 이해해주고 사랑해준 동성의 셀비를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방아쇠를 당길때마다 항상 정당했던 것은 아니다. 오직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멸시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에게 눈물을 머금고 쏜 적도 있다. '제발 쏘지마' 하는 간절한 나의 바람을 무너뜨리고... 그만큼 난 그녀가 좀더 자유롭길 바랬었는데. 벽을 향해 총질을 해대도 정신만은 자유롭기를.

재판장에서 그녀는 외친다. 자신의 정당성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모습이 몬스터로 비치는 것은 오직 사회라는 거울이 일그러져 있기 때문임을. 우리는 언제쯤 몬스터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굴곡된 거울을 깨뜨리고서 말이다. 린은 결국 사형을 언도받고 몇년후 집행된다. 린에게 애도를 표한다.  미국이라는 사회보다 더한 몬스터를 키우는 한국이라는 사회속에 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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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9-11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1000

제가 들어 옴으로 인해서 이렇게 됐군요. 선물 없어요? 흐흐. 농담. 잘 보고 가요.^^

 


하루살이 2004-09-13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1000번째 손님으로 입장하신것 축하드립니다??? 실은 제가 축하받을 일인가요? 암튼 고맙습니다. 한 사흘 집을 비운 사이 즐거운 일이 생겼군요. 숫자에 연연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숫자가 주는 어떤 힘 앞에 무력한 저를 바라보게 됩니다. 음음. 지붕 고친것 축하드리구요, 계속해서 관심 부탁드립니다^^
 

방학기의 만화를 봤을땐 최배달의 무예에 감탄하고 그 인생역정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 과정에서 배우는 무술에 대한 이야기는 그대로 인생에 대한 교훈으로도 이어진다. 이것이 영화로 표현되어 졌을때 과연 최배달은 어떤 인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그것도 양동근이라는 배우를 통해서라면...

최배달은 분명 <네 멋대로 해라>의 복수가 아니다. 양동근의 복수라는 캐릭터는 너무나 강렬해서 그의 연기 곳곳에 어느 순간 묻어나온다. 이것이 꼭 해가 될 수 없는 것이 자신이 맡은 인물들에겐 어느 정도 이런 경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배달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최배달이 복수의 이미지를 조금 갖고 있어도 오히려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분명 액션영화임ㅡ이것은 나 개인의 생각 또는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ㅡ을 생각해보면 도대체 영화의 본분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액션영화가 꼭 영화 대부분의 시간을 액션으로 채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액션 영화의 백미는 분명 액션에 있다. 그리고 모든 영화의 요소들과 내러티브들이 이 백미를 위해 집중되어져야 한다. 하지만 <바람의 파이터>는 액션을 위한 드라마가 되기 보다는 드라마와 액션이 따로 논다. 초반 드라마 후반 액션, 그런데 이런 구분이 오히려 이 영화가 액션 영화였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드라마라는 것이 그의 인생역정을 제대로 소화해내지도 못할 뿐더러 멜로적 요소를 들여와 순수한 사랑얘기마저 해대려고 하니 힘을 잃고 만다. 거기에다 액션이라는 것도 그 숨의 길이가 너무 짧아 극도의 긴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아마도 최배달의 극진 가라테라는 무술의 특성상 한번의 손짓과 발짓으로 끝나버리는 경향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그가 도장깨뜨리기를 시도해가는 과정마저도 이런 급박한 호흡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이루어지려다 도중에 끝나버리는 것같은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반면 정태우의 어색한 경상도 사투리의 인물이 주는 극 전개상의 긴장 완화는 분명 웃음을 전달해주지만 영화 전개상 긴장의 강도가 강럴하지 못한 관계로 그의 웃음도 빛을 잃게 된다. 액션이 보다 강렬했다면, 그리고 그 거친 호흡이 강약을 조절해 끊임없이 이어졌다면 그의 눈물도 웃음도 보다 가슴깊이 다가왔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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