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을 가다 -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
장 지글러 지음, 모명숙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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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을 가다는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시작점은 불평등이다. 장 지글러가 인용한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4, 루소가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 응모한 논문이다. 주제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였다. 루소는 근본 오류, 즉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낸 행위는 사적 소유의 도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55)

 

한 뙈기의 땅에 울타리를 두른 후 이건 내 것이라고 말할 대책을 생각해내고, 그 말을 믿을 만큼 충분히 순진한 사람들을 발견한 첫 번째 사람이야말로 부르주아 사회를 세운 진짜 창시자다. .... ‘이 사기꾼들의 말을 듣지 않도록 조심해라. 결실이 모두에게 돌아가고 땅이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는다면 그대들은 절망적이다.” (56)

 

지금이 바로 그 절망의 시대이다. 이러한 절망은 사적 소유의 도입 때문에 생겨났다. 끝이 없는 인간의 욕망은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게 했고, 이것을 제도적으로 완성시켰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게 되었고, 적게 가진 사람들은 그것마저도 빼앗겨 버렸다. 계층간의 간극은 더 벌어졌고, 최상류층은 불평등 자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라 종용하고 있으며, 열심히 일해도 그 대가를 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불행을 자신의 탓이라 믿게 되었다.

장 지글러는 오늘날 인간들 간의 불평등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우리 행성에서 같은 인간을 잡아먹는 잔인한 경제 질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60) 이것은 개인 간의 불평등이기도 하지만, 국가 간의 불평등, 대륙 간의 불평등이기도 하다. 그의 주장은 여러 통계자료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이를 테면 세계 인구 중 16퍼센트가 지구의 자산 84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거나, 2007, 2008년 금융시장 붕괴로 전 세계 굶주리는 사람들의 수가 6,900만 명 더 많아졌으나, 그럼에도 갑부들의 재산은 금융 위기 이전보다 1.5배나 많아졌다는 것 등이다.

 

세계 식량 농업기구(FAO)세계 식량 불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1인당 하루 2,200킬로칼로리를 보급할 경우, 현재 생산력 수준만으로도 대략 120억 명을 부양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이 순간에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굶주림의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다.(65) 수백만 명이 굶주림 속에 죽어가는 현재의 상황은 식량 생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식량에 대한 접근성과 관련이 있다.

소비에트 제국의 종말로 양극으로 나뉘어 대립하던 구도가 사라지고 이로써 서양의 정치 및 금융 권력 지배계급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1989년 세계은행 부총재이자 수석 경제연구원인 존 윌리엄슨은 워싱턴 컨센서스(중남미 개발도상국에 대한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발전 모델)를 공식화했다. 그 기본 원칙은 국가적인 것은 물론이고 다른 것들도 가능한 한 빨리 모든 규제 기관들을 철폐하고 가능한 광범위하게(상품, 자본, 서비스 등을 위한) 시장의 자유화를 달성하며, 마지막으로 국적 없는 글로벌 거버넌스, 즉 외부의 규제 없이 완전히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단일한 세계시장을 목표로 한다.(95)

 

부자들의 수입에 대한 조세 부담의 감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세제 혜택 폐지, 금융시장 제한 철회, 외국 투자의 안정 보장, 국가 소유 또는 학교, 병원, 운수기업, 수도 및 전력 공급 등과 같은 준국영 법인소유의 민영화, 규제 완화, 사유재산 보호 강화, 관세 인하, 국가 재정적자 최소화등의 조치를 통해 국적 없는 글로벌 거버넌스가 단일한 세계 시장을 마음대로 운영토록 하는 것이 이들 세계 거대 자본의 목표이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대가를 얻지 못하고 노동의 현장에서 소외된다.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인간을 상품사회에 기능하는 것으로 축소함으로써, 인간을 노동의 산물에서 소외시킨다. 일에서는 보람을 찾을 수 없고, 미래를 꿈꾸기에는 월급이 너무 적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의 근본적인 이유가 사회 구조의 불합리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견디어낸다.

부의 추적에는 객관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스미스와 리카도의 이론은 틀렸다.

 

돈이 돈을 생산한다. 돈은 권력과 지배의 수단이다. 또한 지배하고 싶은 욕망은 근절할 수 없고, 그 욕망에는 객관적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102)

 

평생, 혹은 자신의 자식 평생 동안 쓰고도 남을 돈을 축적해놓고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돈이 돈을 생산하고, 권력과 지배의 수단으로 기능할 때, 사람들은 계속해서 돈을 추구한다. 그 욕망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이제 공산주의적대안은 사라졌다.(153) 세계화된 금융자본과 극단적이고 비판적으로 단절할 길을 모색하는 일은 우리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은 그 누구의 일도 아니다.

장 지글러가 비판하는 또 한 가지는 국가 권력에 대한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국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하고, 국가가 권력자들의 무기가 되었던 역사적 과정과 사실에 대해 서술한다. 관료들이 권력에 기생하여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를 추적하고,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국가이성의 사악함을 고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개입을 통해 학교, 대학, 문화시설, 병원, 사회안전망, 노동재판소, 피고용자와 연금 생활자와 실업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하고 효과적인 기관들이 존재하며, 최소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공정함이 보증되어 왔는데, 이 마지막 보루가 점차 무너지고 있다는 것 또한 지적한다.(193)

 

세계화된 금융자본의 권력 신장, ‘소수 국가의 신자유주의 도그마, 세계의 민영화, 이 모든 것은 점차 국가들의 규제력을 약화시킨다. 확장된 금융자본의 힘은 의회와 정부를 짓밟는다. 그것은 대부분의 선거와 거의 모든 국민투표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것은 공공기관의 규제 능력을 해친다. 그리고 법을 질식시킨다. (193)

 

장 지글러는 함께 살고자 하는 바람’, 국민 구성원 다수가 공유하는 역사에 대한 공동의 비전과 영토 및 언어를 통해 새롭게 탄생된 국민들이 이러한 위협에 맞설 수 있다고 말한다. 문명을 위협하는 인종주의를 배격하고, 실패한 탈식민지 원민족들의 비극을 치유하며, 자본주의 이전의 전통사회가 지닌 역동적인 힘을 복구함으로써, 현재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프리카 전통적인 종족들의) 역사는 오직 다음과 같은 물음처럼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들만 다룬다. 인간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구에서 인간의 과제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죽는가, 그리고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신과 관계를 만들어내길 바랄 수 있는가? 아프리카의 구전 전통은 물화되지 않은 구체적인 자기해석의 체계다. 이 체계를 통해 사회는 자기 자신을 설명한다.(323)

 

더하여, 눈에 띄지 않는 밤의 인류애가 전 세계 남녀 수천 명을 집결시킴으로써, 역사의 최종적 목표, 즉 연대적인 사회의 건설, 인간의 인간화, 인간의 무한한 창조적 힘, 행복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사회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민사회가 성공할 수 있을까. 그 길에 도달할 수 있을까.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세계화된 금융자본의 전 세계적인 독재와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까.

장 지글러는 이러한 운동의 중심점이 도덕적 명령과 격분, 세상의 혼돈에 대한 분노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남쪽과 북쪽에서, 동쪽과 서쪽에서 바람이 일고,

민중의 희망이 저항전선들에 의해 공고해질 때.(356)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은 열두 시간이고, 그다음엔 낮이 온다.

낮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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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02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 대선 기간이 다가오는 시점부터 불평등, 빈부격차 문제가 다시 화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문제가 단순히 좌파들이 고민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단발머리 2016-11-03 14:27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불평등을 조장하고 고착화시키는 제도에 대한 논의가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날은 오랜만에 신입사원이 들어온 날이었는데, 남자 신입이었다.

누나들 따라나선 남동생마냥 여직원들 뒤를 졸졸 따라오는 남자 신입 사원과 함께 우르르 들어간 곳은 왕돈까스집이었다. 거의 대부분 왕돈까스를 주문했고 대형 TV에 눈을 돌렸는데....

 

국회의장석에는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국회의장이 보였고, 야당은 국회의장을 보디가드마냥 보호하고, 여당 의원들은 몸을 날려 단상 위로 오르려고 하다가 하나둘 끌려나가고 있었다. 국회의장의 짧은 말 한 마디.

"대통령 노무현 탄핵 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신발이 날아가고 서류뭉치가 날아갔다. 

똑같은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는데도, 큰 글씨로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 저.... 저..."

말을 못하고 그냥 "어... 저... 저..."하는 내가 이상했던지, 맞은편에 앉은 신입 사원은 "식사하세요. 근데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네, 아니... 괜찮아요. 근데.... 어.... 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말이 안 나왔다. 저런 일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고,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는걸 믿을 수가 없었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긴 자로 줄을 맞춘 듯 나란히 앉아, "탄핵 무효", "국회 퇴장" 팻말을 흔들고, 그렇게 기다렸던 대통령이 탄핵 무효 판결을 받아 국민 곁으로 돌아왔음에도, '탄핵'이라는 단어가 주었던 그 느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아직도 탄핵이라는 단어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탄핵보다는 하야를 권한다.

 

"대한민국 국민인 게 부끄럽다" 국민들 분노와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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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전 받은 '44개 연설문' ... 극비 '드레스덴'까지  

 

국민을 위한 마지막 국정 수행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그것만이,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증오에 마지않는 국기문란을 중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탄핵보다는 하야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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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10-2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탄핵이란 단어조차 쓰기 아까운 사람입니다
하야가 맞습니다!!

단발머리 2016-10-26 23:53   좋아요 0 | URL
탄핵안 올리고 국회 안에서 싸우고 밀고 당기는 과정을 한 번 더 본다는 생각만으로도 암담해집니다. 하야가 맞죠. 연설문 고쳐준대로 그대로 읽었다면 국정을 전부 의논하고 지시받은 것 아닙니까.. 민간인한테... 허허...

코발트그린 2016-10-26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담하고 부끄럽고 ... 말을 잇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단발머리 2016-10-26 23:56   좋아요 1 | URL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일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 부끄럽죠. 박근혜한테 한 표 주신 분들이 더 부끄러울지, 그래도 혹시나 기대했던 국민들이 더 부끄러울지.. 부끄러울 뿐입니다...

시이소오 2016-10-2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나라가 무당의 한 마디에 놀아나다니.
박근혜는 참 시대를 잘 만난 거 같아요.
조선시대였다면 온 백성이 궁궐로 쳐들어가 능지처참을 했을 터인데.....

단발머리 2016-10-27 08:59   좋아요 0 | URL
어제밤에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박근혜는 아직도 자기 잘못을 모르고 있지 않을까.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어 죄송하다고 했는데, 심지어 내가 직접 죄송하다고 했는데,
뭐가 문제야? 뭐가 문제라는 거야?
그렇게 생각할 듯 싶어요. 총체적 난국이죠. ㅠㅠ

잠자냥 2016-10-2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는 정치대로, 문학판은 문학판대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런 나라에 태어난 게 죄가 많아서 그런 것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네요...

단발머리 2016-10-27 16:25   좋아요 0 | URL
네... 그러게 말이예요.
이 나라에 태어난게 죄라기 보다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그 사람이라는 게....
박근혜 찍으려했던 그 한 명을 설득하지 못했던 게 죄라면 죄인것 같아요. ㅠㅠ

Conan 2016-10-27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거 맞는것 같구요~ 한겨레신문에는 우병우, 안종범 이런 사람들이 모인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자기들도 지금은 안그만 두는걸로 했다는것 같습니다. 사태파악을 못하는것 같아요ㅠㅠ

단발머리 2016-10-27 16:2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대통령이 어려운 때에 그만두면 안 된다고... 참, 어이가 없어서....
국회의원 자리 다 내놓고, 새누리당 다 갈아엎고, 청와대 참모, 장관 다 교체해도 대통령 자리 하나 지키기 어려울텐데.... 사태파악을 끝까지 못하면 어쩌죠. ㅠㅠ

비공개 2016-10-27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누구 말대로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에서 계속 대통령이니 비서관이니 하는 걸 계속 해먹는다는 건 정말 말이 안되죠.. ㅠㅠ
아 무슨 드라마보는 것도 아니고 정말이지 열받는 일이예요.
그분한테 투표하신 분들이 제발 반성하고 각성했으면!!

단발머리 2016-10-27 21:39   좋아요 0 | URL
문제는 계속 해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죠.
드라마보다 재미있고 드라마보다 열 받죠~~
그 사람에게 투표하신 분들 알라딘에는 많지 않을듯 하지만, 만약 그런 분들 있다면 반성해야지요~~
하아... 참....이게 파도 파도 끝이 없네요 ㅠㅠ

테레사 2016-10-28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박근혜가 판단력과 지적 능력이 안된다는 걸 다 알고 있으면서,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옹립하고, 대통령으로 앉힌 것들도 함께 퇴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몰랐다는 건, 거짓말이죠. 전 이 정권의 모든 정책책임지위에 있는 것들은 지금 당장 업무 중지시키고 한꺼번에 동반 사퇴시키는 게 맞다고 봅니다...분이 안풀리네요...

단발머리 2016-10-29 15: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말 몰랐다면 직무유기고 알면서 그랬다면 정말 나쁜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 한꺼번에 동반사퇴해도 이 분노와 실망이 금방 가라앉을까 싶기도 해요. 정두언 의원이 그랬다죠. 실상을 알게 되면 박근혜 좋아하는 사람들 며칠 밥도 못 먹을거다..
2부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요즘입니다. 워낙 상상을 뛰어넘는 집단이다 보니.. ㅠㅠ

꿈꾸는섬 2016-11-0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퍼공감요!

단발머리 2016-11-02 12:16   좋아요 0 | URL
이 후에도 뉴스들이 모두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어 매일 매일이 특종이네요. 재밌지 않은 요즘입니다 ㅠㅠ
 
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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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정한 치유

내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일상에서 자각할 수 있고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심리적인 힘이 있는 사람, 그것이 타고난 치유자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공부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지식은 교과서에 적혀 있는 지식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일 거예요. (77)

밥상이나 뜨개질처럼 우리 일상 속 도구들에 숨어 있는 치유적 요소를 더 효율적으로 극대화시키는 것, 그것이 상처 입은 사람에게 가장 깊고 빠르게 스미는 치유제인 것 같아요. 현장에서 뼈저리게 느낀 사실입니다. (94)

    

 

2. 건강한 갈등

건강한 갈등과 모순을 견뎌야 오래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지금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나 하나만 돌볼 수 있겠어, 지금 내 삶은 좀 희생해야지그러면 길게 가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개인적인 욕구와 욕망을 완전히 탈색하고 살 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까요. ... 내가 조금 더 오래 버티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끊임없이 나를 챙기면서 나름 이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자기보호를 합니다. 이웃의 이명수 대표와 저는 부부로서 둘의 개인적인 시간을 언제든지 놓치지 않아요. (103)

 

 

3. 노란 리본

세월호 희생학생의 오빠가 죽을 만큼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이 아이가 전철을 타고 가던 중에 가방에 세월호 리본을 단 학생을 봤대요. 그런데 그 순간 세상이 다 잊은 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대요. 그 때부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 노란 리본은 그런 상징물입니다. 꼭 달아주세요.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치유자가 돼요. (116)

     

사람은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고, 모든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 사람의 마음속에는 서로 모순된 여러 감정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치유란 그 사람이 지닌 온전함을 자극하는 것임을, 전문가가 아니라 내가 나의 일상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심리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개별적 존재로서 한 사람의 삶과 사회적인 연대를 하는 공익적 삶 사이의 갈등을 건강하게 풀어가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노란 리본 달기를 계속해야겠다, 다짐했다.

서울대 백선하 같은 의사가 있는가 하면, 한국에는 이런 의사도 있다. 선생님,을 붙이기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아니 자랑스러운 의사 선생님이 있다. 정혜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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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0-1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 납니다. 단발머리님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16-10-18 10:36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알고 있는 것에 넘어서서 말씀을 실천해야하지요.
항상 부끄러운 1인입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2016-10-18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8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6-10-23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란 리본을 실천하는
단발머리님 멋집니다.
이책 읽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단발머리 2016-10-26 21:28   좋아요 2 | URL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도 노란 리본을 실천하는 1인이 되겠습니다.
북프리쿠키님도 함께 해요~~~~~~ ^^
 
짝짓기 -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2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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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명, 40억년의 비밀. EBS 다큐프라임 시리즈 두 번째 책.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짝짓기.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신비하고 경이로운 남과 여에 관한 이야기를, 종의 보존 즉, 생존을 위한 진화의 코드로 설명한다. <들어가며>에서부터 감동적이다.

 

짝짓기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같은 종의 수컷과 경쟁한다. 암컷은 더 나은 수컷을 선택하기 위해 같은 종의 암컷과 경쟁한다. 암컷은 수컷을 선택하고 수컷은 암컷을 선택한다.

짝짓기는 애정이다.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유전자를 서로 교환하기 위해 시작된 짝짓기지만 많은 동물에서 짝짓기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거의 평생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늑대의 경우도, 난교를 즐기는 보노보의 경우도, 페로몬으로 서로를 유혹하는 곤충의 경우도 짝짓기는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한다. (<들어가며>, 5)

 

성은 왜 생기게 된 것일까. 수컷은 왜 선택받으려 하고, 암컷은 왜 선택받으려 할까. 성은 나름의 역할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걸까. 짝짓기가 먼저일까, 아니면 애정이 먼저일까. 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성이란 무엇인가. 성은 감수분열meiosis이며 동시에 유전자 재조합genome recombination이다. 성은 한 개체가 다른 개체와 유전자를, 또한 DNA를 섞는 것이다. 두 개체의 유전자를 섞기 위해서 일단 내 것을 포기해야 한다. ... 세포 분열하면서 염색체도 정확히 반을 나눈다. 이제 나는 반쪽의 내가 된다. 그리고 다른 반쪽을 기다린다. 그 반쪽이 다가온다. 두 반쪽은 기꺼이 하나의 세포가 된다. 두 핵이 모여 하나의 핵이 된다.... 이제 반쪽의 나와 반쪽의 타인이 만나 나도 아니고 타인도 아닌, 내가 아닌 것도 아니고, 타인이 아닌 것도 아닌 새로운 타인 내가 된다. (8)

 

이 책에 의하면, 성의 애초 목적은 번식도, 유전적 다양성도, 쾌락도 아니다. 진화의 다른 결과물처럼 성도 그 목적이 없다. 진화의 과정 속에 성이 생겨났고, 그것이 좋은 돌연변이의 전파와 유전적 다양성을 가져오고, 나쁜 돌연변이 제거에 효과적이었으며, 면역체계를 유지, 보수 및 최신화에도 유리했기에 성을 가진 생물들이 살아남아 현재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진화에는 목적이 없고, 성도 마찬가지다,라고 이 책은 말한다.

생물을 암수로 나눌 때의 구분법은 생식세포의 크기다. 염색체의 절반만을 넣어둔 아주 작은 크기의 생식세포(정자)를 만드는 쪽은 수컷이고, 유전자의 절반과 함께 수정된 후 하나의 개체로 발생할 때 필요한 영양분과 세포기관 등을 갖춘 큰 크기의 생식세포(난자)를 만드는 쪽이 암컷이다.(53) 짝짓기를 하고 이를 통해 후손을 남기는 긴 타협의 시간 동안, 왜 정자는 작은 크기의 운동성을 갖춘 형태로 발전했는지, 왜 암컷은 난자를 많이 만들기보다는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진 소수를 만드는 쪽으로 진화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한 교미를 빼곤 신체에서 가장 쓸모없는 기관인 페니스가 각 동물별로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왜 교미 중에 오르가즘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짝짓기를 하는 동안 둘은 무방비 상태가 되고 외부 천적의 위협에 완벽하게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왜 오르가즘이라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 도달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63쪽이다.

크기가 클 뿐만 아니라 영양분과 세포기관을 갖춘 난자를 만들어내는 암컷은 임신과 출산 후에는 새끼를 도맡아 키우는 경우가 수컷보다는 훨씬 더 많다.(65) 암컷으로서는 임신 자체가 위험한 모험일 수밖에 없다. 임신기간 뿐만 아니라, 출산 후 새끼가 일정한 크기로 자랄 때까지 자신과 새끼의 생존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암컷이 수컷을 선택할 때 신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암컷은 자손에게 강건한 신체를 물려줄 좋은 유전자를 가진 수컷을 선택한다. 이것에는 예외가 없다. 어떠한 동물의 암컷도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좋은 유전자를 가진 수컷이다.(66)

수컷은 수컷 나름대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마귀 수컷은 교미 도중 암컷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나비는 정자가 들어있는 주머니인 정포를 암컷에게 바쳐 암컷이 수정하고 알을 만드는데 충분한 영양분을 제공한다. 여치 역시 사정 때마다 암컷에게 정포를 제공하면서 암컷이 다른 수컷에게 가지 못하도록 한다. 제일 흥미로운 곤충은 유럽풍선파리Hilara maura인데, 이들은 암컷에게 짝짓기를 하러 갈 때 작은 곤충을 잡아서 가지고 간다. 곤충 선물을 암컷 앞에 흔들며 춤을 추며 구애한다. 암컷이 허락하면 수컷은 암컷이 그 선물을 먹어치우는 동안 짝짓기를 하는데, 어떤 녀석들은 교미를 더 오래하기 위해 선물을 포장하기도 한다고 하니, 수컷들의 치열한 투쟁이 눈물겹기도 하다.

 

 

 

하지만, 이 친절한 EBS Media 기획팀(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다르게 말한다.

여기까지 읽으며 수컷으로 살기 참 팍팍하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다. 사실은 그래도 암컷이 더 힘들다. 수컷이 주는 먹이 혹은 영양분이라고 해봤자 암컷이 알을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와 시간에 비하면 어림없다. 하루 종일 살림하고 애보고 녹초가 된 아내에게 집에 와서 설거지 한 번 정도하고 유세떠는 식인 것이다. (71)

<짝짓기가 뭐라고>라는 챕터에서는 목숨을 내놓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산란 후 삶을 마치는 암컷 수컷 연어의 삶과 정자기계처럼 단 한 번 결혼비행을 통해 여왕벌과의 교미를 마치자마자 폭발해버리는 수벌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고, 인간 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서도 나타나는 영아살해와 낙태의 예를 볼 수 있다. <성적 강압, 강간>에 대한 꼭지에서는 성적 강압이 지배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여러 동물들의 실례가 소개되는데, 지구 내 최상의 문명을 이룩했다고 자신하는 우리 인간 사회와 너무나 많이 닮아있어 놀라울 뿐이다.

 

곤충 중에서 대표적인 강간범으로는 밑들이벌레가 있다고 한다. 영어로는 scorpionfly라고 하는데 전갈의 독침과 비슷하게 생긴 수컷의 생식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곤충들은 짝짓기를 위해 암컷에게 선물로 먹이를 가져다주는데, 먹이를 구하지 못하면 그냥 암컷을 포박해버리고 강제로 교미를 한다. 암컷 역시 이런 수컷의 정자가 난자에 닿지 못하도록 조처를 취하도록 진화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파렴치한 수컷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그 답이 또한 의외다. 애초에 강간범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암컷들이 파렴치한 수컷의 정자를 수정시키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러한 수컷들의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지지 않으니 사라져야 할 것 같은데 현재도 건재하다. 즉 이것은 애초에 강간범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란 걸 말해준다. 선물로 줄 먹이가 있으면 먹이를 주고 교미를 하지만 선물로 줄 먹이가 없을 때 암컷이 나타나면 불문곡직하고 강간을 해버리는 것이다. 대부분 실패로 끝나지만 열에 하나 성공한다면 수컷 입장에서는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112)

  

  

육상에 사는 포유류 중 하나인 (      )의 예도 있다.

(      )의 경우 난교형 무리인데 최상위 수컷alpha male이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 물론 아래 서열의 수컷과 암컷 모두가 최상위 수컷의 폭력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암컷에겐 대단히 불행하게도 다른 서열이 낮은 수컷들도 암컷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때 수컷들의 폭력은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하지 못하게 예방하는 의미를 가진다. 무리 밖의 다른 수컷과 교미를 하면 맞는다는 의미. 또한 자신이 교미를 요구할 때 교미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118)

차분히 읽어보면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유인원들 중 하나인 고릴라, 침팬지 혹은 오랑우탄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겠으나(정답은 침팬지), 큰 주위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괄호 안에 인간을 넣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도 하다. 영장류 강간에 대한 설명도 그렇다. 자꾸, 만물의 영장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종이 생각난다.

영장류의 강간에서 보자면 오히려 번식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영장류의 수컷에 의한 강간과 성적 강제, 강압은 명백한 목표가 있다. 그것은 무리 내에서 사회적 지위 문제와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다. 돌고래나 침팬지 등에서 나타나는 성적 강제 혹은 강간은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이루어지는 교미의 수단, 혹은 번식의 수단이라기보다는 무리 내의 서열을 확고히 하고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 것이다. ... 인간의 예를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그 개인적 동기는 번식과는 무관하며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나 박탈감 혹은 가학적 쾌락 등으로 변이되었다. 그리고 그 행위 또한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된 과정이다. (120-121)

가족 형태에 대한 탐구 역시 흥미롭다. 포유류의 경우 90% 이상이 일부다처제이고, 대규모 떼를 형성하는 물고기들이 다부다처형이다. 포유류의 경우 다부다처형은 흔히 난교형이라고도 하는데, 사자, 침팬지, 보노보의 경우다. 동물의 세계에서 일처다부는 흔하지는 않은데, 일처다부형의 특징은 육아를 수컷이 도맡아 한다는 것이다. 신세계 원숭이의 일종인 타마린 속에 속하는 원숭이들이 그렇다. 일부일처제는 포유류에서는 드물고 오히려 새들의 경우를 살펴봐야 한다. 새들의 경우 전체의 90%가 일부일처제를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알에서 깨어난 후 돌봐야 하는 시간 동안만이다. 표지의 주인공 황제펭귄이 대표적인 예다. 남극의 긴 겨울 동안 이들은 짝을 지어 알을 낳고 부화시키고 키운다. 새끼가 독립하면 이들의 부부관계는 끝이다. 막내 아이의 대학 입학 때까지만 이혼을 유예한다는 근자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유전자 차원에서 그리고 진화론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은 침팬지와 보노보인데, 이들과는 구별되는 인간 성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숨어서 섹스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암컷의 배란기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는 일정한 시기가 되면 여자가 폐경을 한다는 점이다.(220) 이 책에서는 인간 여성에게 발정기 신호가 없어진 것은 상호 신뢰와 정서적 혹은 감정적 교류의 강화 때문이라고 본다. 발정기 신호가 없어짐으로 해서 수컷은 암컷을 감시하기 힘들어졌다. 흔히 구석기 시대라고 하는 시대에, 주변에 다른 남자들도 있는 상황에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며, 더구나 내 여자의 발정기가 언제인지도 모를 상황에서, 인간 남자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수컷은 육아와 먹이 구하기를 암컷과 함께 함으로써 암컷이 자식을 기르는 과정에 커다란 도움이 되고 이를 통해 다른 수컷과의 교미에 대한 필요성을 감소시키려 했다.(225) 현재에 그 해결책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선택 그 자체로 보아서는 잘한 선택이다. 훌륭한 선택이다.

이 책은 너무 재미있다. 서로의 유전자를 섞고 그를 통해 촉발되는 변이, 수컷의 눈물겨운 노력, 암컷의 숭고한 희생, 여자친구를 위한 곤충의 곤충선물, 거침없는 물고기의 체외수정,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도마뱀의 처녀생식, 육체파 고릴라의 성적 억압, 시도 때도 없이 성을 탐닉하는 보노보, 그리고 자기는 안 그런 척 옷을 입는 인간의 성에 대한 가감 없는 관찰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얼마나 큭큭댔던지, 간만에 정숙하게 숙제를 하고 있는 아들을 의도치 않게 방해하고 말았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웃기냐며 책을 빼앗아간 아들이 펼친 페이지에는 개구리의 짝짓기 사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생명, 40억년의 비밀,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부담 없이 읽으시라 권하고 싶지만, 오늘날 이 시대, 이 사회에서 수컷의 위상에 대해 불만이 있는 분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내가 큭큭대며 웃었던 여러 대목에서, 불끈 화가 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수컷의 생산력이 가족 전체의 부양이라는 책무를 감당하기 힘들었을 옛날에 암컷을 마냥 가두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고, 무리 내에 살면서 다른 이들과의 교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수컷과 암컷이 같이 자식을 기르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으리라. 이것을 모르는 수컷, 남성이 아직도 있기는 하지만.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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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에서 정의한 바, 성이란 감수분열이며 동시에 유전자 재조합이다. 세포 분열을 하면서 염색체를 반으로 나누고 다른 반쪽을 만나 두 개의 핵이 하나로 합쳐진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새로운 타인의 탄생이다.

기회비용의 상실, 암수가 만나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 유성생식 자체의 복잡하고 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 등을 고려할 때, 유성생식은 무성생식에 비해 불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적 다양성, 해로운 돌연변이 제거, 유용한 돌연변이의 보존, DNA와 면역체계의 유지, 보수에 유리했기에 성은 생물이 만든 최고의 시스템으로 여겨지며 현재까지 많은 생물에서 애용되고 있다.(23)

하지만, 성 혹은 짝짓기를 향한 도정은 얼마나 험난한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노력은 얼마나 눈물겨운가.

수꽃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꽃가루를 만들어 암꽃으로 향한다. 곤충을 꽃가루받이로 사용하고, 새와 동물을 씨앗의 운반자로 사용한다. 바다 속에서 알 껍질은 더 단단해지고 튼튼해졌으며, 포유동물에게서는 자궁이 생겼다. 암컷의 발정기가 딱 3시간인 아이다호얼룩다람쥐는 짝짓기 이후에 암컷의 질 입구에 젤라틴 성분의 분비물을 뿌려 야생의 정조대를 채우고, 알텔로푸스 속의 개구리들은 6개월 동안이나 교미 자세를 풀지 않고 수컷이 암컷의 등에 붙어 산다. 수사슴들은 서로 뿔을 부딪혀 싸우고, 바다코끼리 수컷들은 몸을 부딪히고 이빨을 들이댄다. 공작은 화려한 꼬리를 뽐내고, 종달새는 영롱한 목소리로 암컷을 유혹한다. 나비는 날개를 뽐내고, 반딧불이는 밤하늘을 환하게 수놓고, 귀뚜라미와 매미는 소리로 생태계를 채운다.(88)

연어는 알을 낳은 후에 암컷, 수컷 모두 죽는다. 새로운 수사자가 무리의 주인이 되었을 때, 암사자는 새끼가 살해당하는 것을 보아야 하고, 그 후에는 발정기가 되어 새로운 주인과 교미한다. 다시 새끼를 낳고 돌보고 키운다. 인간은 포유류 중 거의 유일하게 혼자 출산할 수 없으며, 출산 시 생명이 위험한 거의 유일한 종이다. 인간은 태어난 후 몇 시간만에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초원의 초식동물들과는 달리, 주위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생존할 수 없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 혹은 16, 혹은 3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생물은 왜 짝짓기를 하는 것일까. 왜 인간은 짝짓기를 하는 것일까. 후손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아니 후손을 남기기 위한 생각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짝짓기를 하려고 할까. 왜 사랑하려고 할까. 사랑받으려고 할까.

 

우리가 인간이 짝짓기 혹은 번식에서 나타내는 여러 특징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모든 진화론적 특징이 우리의 문명과는 큰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몇백만 년을 이어온,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하빌리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지는 몇백만 년의 문명 이전의 시기에 나타난 변화의 결과라는 것이다.(216)

 

진화의 전제나 그 과정 및 설명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화론적 관점에서 예상하는 지구의 나이와 인류 발전의 시간과 그 전개과정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하지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동물적관점에서의 인간의 ’, ‘느낌혹은 직관에 대해 생각할 때, 설명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첫 눈에 반한다는 상황에 대해 생각할 때, 인간의 동물성에 긍정하는 편이다.

필립 로스는 죽어가는 짐승에서 말한다.

 

 

꼭 필요한 매혹은 섹스뿐이야. 섹스를 제하고도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까? 섹스라는 용건이 없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용건 없이 누구에게 그렇게 매혹될까? 불가능하지. (28)

 

 

 

 

 

인간 삶에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인간을 사로잡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의 하나가 섹스라는 점에 동의한다. 한 사람을 만나고, 그에게 반한다. 내가 첫 눈에 반한 사람. 내가 사랑하게 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키가 똑같고, 목소리가 비슷하고, 설사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도, 그 사람은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다. 이전에 이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고, 앞으로도 이 우주 안에, 이 지구 안에 출현하지 않을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바로 그 사람이다.

그렇다면, .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 왜 그 사람만 되는가. 나는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 나는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

김훈의 말을 빌린다.

  

  

만유의 혼음으로 세계와 들러붙으려는 욕망이, 어떻게 인간이라는 종과 속 안으로 수렴되어 마침내 보편적인 여자, 그리고 더욱 마침내, 살아 있는 한 구체적인 여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리되어오는 것인지에 관하여 나는 아직도 잘 말할 수가 없다. (풍경과 상처중에서)

 

 

 

 

 

말할 수 없는 비밀.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나는 꼭 그 사람이어야 한다. 그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나는 그 사람인데, 나한테는 그 사람뿐인데, 그 사람에게... 나는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단 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고 할 때, 그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할까. 그가 잘못 본 거라고, 찾지 못한 거라고 말해야할까. 아니면, 그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해야할까. 눈을 뜨고 나를 제대로 보라고 해야 할까. 그를 사랑한 내 눈을 원망해야 할까. 그를 미워해야 할까. 나를 저주해야 할까.

 

짝짓기를 읽고 나서,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짝짓기에 대해 읽고 나서,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대만, 이라고 썼던, 그렇게 믿었던, 그 사람을 생각한다.

생각해본다.

 

 

천년 같은 긴 기다림도 그댈 보는게 좋아

하루 한달을 그렇게 일년을

오지 않을 그댈 알면서 또 하염없이 뒤척이며

기다리다 기다리다 잠들죠

 

그댈 위해 아끼고 싶어 누구도 줄 수 없죠

나는 그대만 그대가 아니면

혼자인게 더 편한 나라 또 어제처럼 이 곳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나예요

기다리고 기다리는 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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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0-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로스 할부지 말씀이 핵심을 찌르네요.

단발머리 2016-10-15 17:17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그 분은 항상 핵심을 콕콕 찌르시지요.
아~~~ 언제나 콕콕!!

2016-10-1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EBS다큐에서 겨우살이가 씨앗을 퍼뜨리고 발아하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단발머리 2016-10-15 17:24   좋아요 0 | URL
네, 이 시리즈도 EBS 다큐로 제작된 것 같더라구요.
저는 보는 것보다 읽는 걸 더 좋아라 하지만, 이 시리즈랑 <경계> 시리즈는 찾아서 보고 싶기도 해요.
저희 집에서도 아주 작은 봉숭화 씨앗이 자라나 작은 잎사귀를 자랑하더라구요.
아롱이 과학 숙제인데, 온 가족이 아침마다 허걱!! 하고 놀라곤 했습니다.^^

솔불곰 2016-10-15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짓기는 참 아름다운 행위인거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