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에서 정의한 바, 성이란 감수분열이며 동시에 유전자 재조합이다. 세포 분열을 하면서 염색체를 반으로 나누고 다른 반쪽을 만나 두 개의 핵이 하나로 합쳐진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새로운 타인의 탄생이다.
기회비용의 상실, 암수가 만나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 유성생식 자체의 복잡하고 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 등을 고려할 때, 유성생식은 무성생식에 비해 불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적 다양성, 해로운 돌연변이 제거, 유용한 돌연변이의 보존, DNA와 면역체계의 유지, 보수에 유리했기에 성은 생물이 만든 최고의 시스템으로 여겨지며 현재까지 많은 생물에서 애용되고 있다.(23쪽)
하지만, 성 혹은 짝짓기를 향한 도정은 얼마나 험난한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노력은 얼마나 눈물겨운가.
수꽃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꽃가루를 만들어 암꽃으로 향한다. 곤충을 꽃가루받이로 사용하고, 새와 동물을 씨앗의 운반자로 사용한다. 바다 속에서 알 껍질은 더 단단해지고 튼튼해졌으며, 포유동물에게서는 자궁이 생겼다. 암컷의 발정기가 딱 3시간인 아이다호얼룩다람쥐는 짝짓기 이후에 암컷의 질 입구에 젤라틴 성분의 분비물을 뿌려 야생의 정조대를 채우고, 알텔로푸스 속의 개구리들은 6개월 동안이나 교미 자세를 풀지 않고 수컷이 암컷의 등에 붙어 산다. 수사슴들은 서로 뿔을 부딪혀 싸우고, 바다코끼리 수컷들은 몸을 부딪히고 이빨을 들이댄다. 공작은 화려한 꼬리를 뽐내고, 종달새는 영롱한 목소리로 암컷을 유혹한다. 나비는 날개를 뽐내고, 반딧불이는 밤하늘을 환하게 수놓고, 귀뚜라미와 매미는 소리로 생태계를 채운다.(88쪽)
연어는 알을 낳은 후에 암컷, 수컷 모두 죽는다. 새로운 수사자가 무리의 주인이 되었을 때, 암사자는 새끼가 살해당하는 것을 보아야 하고, 그 후에는 발정기가 되어 새로운 주인과 교미한다. 다시 새끼를 낳고 돌보고 키운다. 인간은 포유류 중 거의 유일하게 혼자 출산할 수 없으며, 출산 시 생명이 위험한 거의 유일한 종이다. 인간은 태어난 후 몇 시간만에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초원의 초식동물들과는 달리, 주위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생존할 수 없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 혹은 16년, 혹은 3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생물은 왜 짝짓기를 하는 것일까. 왜 인간은 짝짓기를 하는 것일까. 후손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아니 후손을 남기기 위한 생각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짝짓기를 하려고 할까. 왜 사랑하려고 할까. 사랑받으려고 할까.
우리가 인간이 짝짓기 혹은 번식에서 나타내는 여러 특징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모든 진화론적 특징이 우리의 문명과는 큰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몇백만 년을 이어온,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하빌리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로 이어지는 몇백만 년의 문명 이전의 시기에 나타난 변화의 결과라는 것이다.(216쪽)
진화의 전제나 그 과정 및 설명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화론적 관점에서 예상하는 지구의 나이와 인류 발전의 시간과 그 전개과정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하지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동물적’ 관점에서의 인간의 ‘촉’, ‘느낌’ 혹은 ‘직관’에 대해 생각할 때, 설명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첫 눈에 반한다‘는 상황에 대해 생각할 때, 인간의 ’동물성‘에 긍정하는 편이다.
필립 로스는 『죽어가는 짐승』에서 말한다.
꼭 필요한 매혹은 섹스뿐이야. 섹스를 제하고도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까? 섹스라는 용건이 없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용건 없이 누구에게 그렇게 매혹될까? 불가능하지. (28쪽)
인간 삶에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인간을 사로잡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의 하나가 섹스라는 점에 동의한다. 한 사람을 만나고, 그에게 반한다. 내가 첫 눈에 반한 사람. 내가 사랑하게 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키가 똑같고, 목소리가 비슷하고, 설사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도, 그 사람은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다. 이전에 이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고, 앞으로도 이 우주 안에, 이 지구 안에 출현하지 않을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바로 그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 왜 그 사람만 되는가. 나는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 나는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
김훈의 말을 빌린다.
만유의 혼음으로 세계와 들러붙으려는 욕망이, 어떻게 인간이라는 종과 속 안으로 수렴되어 마침내 보편적인 여자, 그리고 더욱 마침내, 살아 있는 한 구체적인 여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리되어오는 것인지에 관하여 나는 아직도 잘 말할 수가 없다. (『풍경과 상처』 중에서)
말할 수 없는 비밀.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나는 꼭 그 사람이어야 한다. 그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나는 그 사람인데, 나한테는 그 사람뿐인데, 그 사람에게... 나는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단 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고 할 때, 그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할까. 그가 잘못 본 거라고, 찾지 못한 거라고 말해야할까. 아니면, 그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해야할까. 눈을 뜨고 나를 제대로 보라고 해야 할까. 그를 사랑한 내 눈을 원망해야 할까. 그를 미워해야 할까. 나를 저주해야 할까.
『짝짓기』를 읽고 나서,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짝짓기에 대해 읽고 나서,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대만, 이라고 썼던, 그렇게 믿었던, 그 사람을 생각한다.
생각해본다.
천년 같은 긴 기다림도 그댈 보는게 좋아
하루 한달을 그렇게 일년을
오지 않을 그댈 알면서 또 하염없이 뒤척이며
기다리다 기다리다 잠들죠
그댈 위해 아끼고 싶어 누구도 줄 수 없죠
나는 그대만 그대가 아니면
혼자인게 더 편한 나라 또 어제처럼 이 곳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나예요
기다리고 기다리는 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