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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을 가다 -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
장 지글러 지음, 모명숙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평점 :
『인간의 길을 가다』는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시작점은 불평등이다. 장 지글러가 인용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1754년, 루소가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 응모한 논문이다. 주제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였다. 루소는 근본 오류, 즉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낸 행위는 사적 소유의 도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55쪽)
“한 뙈기의 땅에 울타리를 두른 후 이건 내 것이라고 말할 대책을 생각해내고, 그 말을 믿을 만큼 충분히 순진한 사람들을 발견한 첫 번째 사람이야말로 부르주아 사회를 세운 진짜 창시자다. .... ‘이 사기꾼들의 말을 듣지 않도록 조심해라. 결실이 모두에게 돌아가고 땅이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는다면 그대들은 절망적이다.” (56쪽)
지금이 바로 그 절망의 시대이다. 이러한 절망은 사적 소유의 도입 때문에 생겨났다. 끝이 없는 인간의 욕망은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게 했고, 이것을 제도적으로 완성시켰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게 되었고, 적게 가진 사람들은 그것마저도 빼앗겨 버렸다. 계층간의 간극은 더 벌어졌고, 최상류층은 불평등 자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라 종용하고 있으며, 열심히 일해도 그 대가를 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불행을 자신의 탓이라 믿게 되었다.
장 지글러는 오늘날 인간들 간의 불평등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우리 행성에서 같은 인간을 잡아먹는 잔인한 경제 질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60쪽) 이것은 개인 간의 불평등이기도 하지만, 국가 간의 불평등, 대륙 간의 불평등이기도 하다. 그의 주장은 여러 통계자료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이를 테면 세계 인구 중 16퍼센트가 지구의 자산 84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거나, 2007, 2008년 금융시장 붕괴로 전 세계 굶주리는 사람들의 수가 6,900만 명 더 많아졌으나, 그럼에도 갑부들의 재산은 금융 위기 이전보다 1.5배나 많아졌다는 것 등이다.
세계 식량 농업기구(FAO)의 「세계 식량 불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1인당 하루 2,200킬로칼로리를 보급할 경우, 현재 생산력 수준만으로도 대략 120억 명을 부양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이 순간에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굶주림의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다.(65쪽) 수백만 명이 굶주림 속에 죽어가는 현재의 상황은 식량 생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식량에 대한 접근성과 관련이 있다.
소비에트 제국의 종말로 양극으로 나뉘어 대립하던 구도가 사라지고 이로써 서양의 정치 및 금융 권력 지배계급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바야흐로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1989년 세계은행 부총재이자 수석 경제연구원인 존 윌리엄슨은 워싱턴 컨센서스(중남미 개발도상국에 대한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발전 모델)를 공식화했다. 그 기본 원칙은 국가적인 것은 물론이고 다른 것들도 가능한 한 빨리 모든 규제 기관들을 철폐하고 가능한 광범위하게(상품, 자본, 서비스 등을 위한) 시장의 자유화를 달성하며, 마지막으로 국적 없는 글로벌 거버넌스, 즉 외부의 규제 없이 완전히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단일한 세계시장을 목표로 한다.(95쪽)
부자들의 수입에 대한 조세 부담의 감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세제 혜택 폐지, 금융시장 제한 철회, 외국 투자의 안정 보장, 국가 소유 또는 학교, 병원, 운수기업, 수도 및 전력 공급 등과 같은 준국영 법인소유의 민영화, 규제 완화, 사유재산 보호 강화, 관세 인하, 국가 재정적자 최소화등의 조치를 통해 국적 없는 글로벌 거버넌스가 단일한 세계 시장을 마음대로 운영토록 하는 것이 이들 세계 거대 자본의 목표이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대가를 얻지 못하고 노동의 현장에서 소외된다.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인간을 상품사회에 기능하는 것으로 축소함으로써, 인간을 노동의 산물에서 소외시킨다. 일에서는 보람을 찾을 수 없고, 미래를 꿈꾸기에는 월급이 너무 적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의 근본적인 이유가 ‘사회 구조의 불합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견디어낸다.
부의 추적에는 객관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스미스와 리카도의 이론은 틀렸다.
돈이 돈을 생산한다. 돈은 권력과 지배의 수단이다. 또한 지배하고 싶은 욕망은 근절할 수 없고, 그 욕망에는 객관적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102쪽)
평생, 혹은 자신의 자식 평생 동안 쓰고도 남을 돈을 축적해놓고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돈이 돈을 생산하고, 권력과 지배의 수단으로 기능할 때, 사람들은 계속해서 돈을 추구한다. 그 욕망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이제 ‘공산주의적’ 대안은 사라졌다.(153쪽) 세계화된 금융자본과 극단적이고 비판적으로 단절할 길을 모색하는 일은 우리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은 그 누구의 일도 아니다.
장 지글러가 비판하는 또 한 가지는 국가 권력에 대한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국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하고, 국가가 권력자들의 무기가 되었던 역사적 과정과 사실에 대해 서술한다. 관료들이 권력에 기생하여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를 추적하고,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국가이성의 사악함을 고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개입을 통해 학교, 대학, 문화시설, 병원, 사회안전망, 노동재판소, 피고용자와 연금 생활자와 실업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하고 효과적인 기관들이 존재하며, 최소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공정함이 보증되어 왔는데, 이 마지막 보루가 점차 무너지고 있다는 것 또한 지적한다.(193쪽)
세계화된 금융자본의 권력 신장, ‘소수 국가’의 신자유주의 도그마, 세계의 민영화, 이 모든 것은 점차 국가들의 규제력을 약화시킨다. 확장된 금융자본의 힘은 의회와 정부를 짓밟는다. 그것은 대부분의 선거와 거의 모든 국민투표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것은 공공기관의 규제 능력을 해친다. 그리고 법을 질식시킨다. (193쪽)
장 지글러는 ‘함께 살고자 하는 바람’, 국민 구성원 다수가 공유하는 역사에 대한 공동의 비전과 영토 및 언어를 통해 새롭게 탄생된 ‘국민’들이 이러한 위협에 맞설 수 있다고 말한다. 문명을 위협하는 인종주의를 배격하고, 실패한 탈식민지 원민족들의 비극을 치유하며, 자본주의 이전의 전통사회가 지닌 역동적인 힘을 복구함으로써, 현재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프리카 전통적인 종족들의) 역사는 오직 다음과 같은 물음처럼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들만 다룬다. 인간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구에서 인간의 과제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죽는가, 그리고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신과 관계를 만들어내길 바랄 수 있는가? 아프리카의 구전 전통은 물화되지 않은 구체적인 자기해석의 체계다. 이 체계를 통해 사회는 자기 자신을 설명한다.(323쪽)
더하여, 눈에 띄지 않는 밤의 인류애가 전 세계 남녀 수천 명을 집결시킴으로써, 역사의 최종적 목표, 즉 연대적인 사회의 건설, 인간의 인간화, 인간의 무한한 창조적 힘, 행복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사회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민사회가 성공할 수 있을까. 그 길에 도달할 수 있을까.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세계화된 금융자본의 전 세계적인 독재와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까.
장 지글러는 이러한 운동의 중심점이 도덕적 명령과 격분, 세상의 혼돈에 대한 분노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남쪽과 북쪽에서, 동쪽과 서쪽에서 바람이 일고,
민중의 희망이 저항전선들에 의해 공고해질 때.(356쪽)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은 열두 시간이고, 그다음엔 낮이 온다.
낮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