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했듯이, 마녀 고발의 핵심에는 소유되고, 상속되고, 분쟁의 대상이 되는 토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용자원이 점점 축소되고 그로 인해 성별 위계가 심화되면서, 이는 가장 취약한 계층, 특히 ‘비생산적이고 가족과 지역사회에 쓸모없는 존재‘로 간주되는 나이 든 여성을 제거하라는 선동으로 이어집니다. - P10

첫째는 마녀사냥과 당대의 토지 인클로저 및 토지 사유화의 관계이다. 둘째 나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 역능에 대한 국가 통제가 확대되는 것을 통해 여성 신체의 인클로저가 심화된 것과 마녀사냥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논한다. - P16

소위 마녀라고 하는 다수의 여성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거나 ‘구빈세‘에 의지해 살아가는 빈민이었다는 것은 전혀놀랍지 않다. 이 ‘구빈세‘를 잉글랜드에 도입된 최초의 복지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에게 씌워진 죄명을 보면 관습권은 물론이고 땅에 대한 권리도 빼앗긴 농민이었음이 명백하다. 이런 사람들이 이웃이 가진 것에 대해 억울해하고 분노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시작은 동물이었다. 아마도 이웃의 가축이 공유지 [공통장]였던 땅에서 풀을 뜯고 있었을 것이다. - P46

6. * 페데리치에 따르면 "16세기와 17세기의 재판에서 새롭게 등장한 마녀와 악마의 관계는 마녀사냥의 성정치를 폭로한다."(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276쪽). 악마와 마녀의 협약에 대해서는 캘리번과 마녀 253쪽, 악마 형상이 마녀사냥을 통한 남성지상주의 확립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캘리번과 마녀 276쪽 이하를 참조하라. 2016년의 한 강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성이 악마에게 돈이 없다고 가난하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악마가 나타나는 전형적 방식입니다. 그러면 악마는 나의 노예가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계약이 이뤄집니다. - P47

악마가 돈을 좀 주고 그 대가로 여성의 몸에 노예라는 표시를 새깁니다...… 제가 언제나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악마와 마녀의 관계가 오늘날의 결혼관계의 고전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Silvia Federici:#MeToo and the New Forms of Capital Accumulation", (The New Centre for Research & Practice) - P47

‘마녀‘는 ‘평판이 안 좋은 여성, ‘음탕‘하고, ‘난잡한 젊은 시절을 보낸 여자였다. 많은 마녀가 혼외자를 두고 있었고, 마녀의 행실은 법률, 교회의 설교, 가족의 재편성 등을 통해서 당대 유럽의 여성 대중에게 부과되고 있었던 여성성 모델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때로 마녀는 여러 주술을 행하는 민간 치유자였고 마을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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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8-04 19: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기있는 마녀🖤 이 책에서 말해주는 가십 어원도 얘기 흥미롭더라고요 ㅎㅎ

단발머리 2023-08-04 19:18   좋아요 3 | URL
유수님~~ 진작에 다 읽으신건 아니죠? ㅋㅋㅋㅋ 저 이제 막 시작했는데 책이 작아서 그런지 쭉쭉 넘어가네요.
다음 글에서 우리 또 만나요!!

유수 2023-08-04 19:30   좋아요 3 | URL
페데리치 두꺼워서 손 못 대다가 신간 나왔을 때 얇길래 덥석 읽었어요ㅎㅎ 단발님의 다음글 고대합니다

단발머리 2023-08-04 19:44   좋아요 3 | URL
저는 페데리치 <혁명의 영점>도 좋아해요. 좀 충격적이지만... 그게 사실이구요 ㅠㅠㅠ (갑자기 슬퍼짐)
다음글 기대해 주신다니 다음글은 유수님 헌정으로다가.... 야무지게 한 번 써볼게요. 근데 너무 더워라.... (에어컨 켜요!!!)

유수 2023-08-04 19:46   좋아요 3 | URL
아 그렇게 되면..제가 다음 글만 고대한 건 아닌지라…(단발마녀님을 향한 욕심..)

단발머리 2023-08-04 20:42   좋아요 2 | URL
그럼 말이죠 ㅋㅋㅋㅋㅋ 그 다음 글도 유수님 헌정글로다가 ㅋㅋㅋㅋㅋㅋ
그 욕심 완전 응원합니다!! 뽜야!! 🔥🔥🔥
 
재수사 1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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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기억이 맞았다. 제일 먼저 읽은 장강명 책은 <한국이 싫어서>.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때, 혹은 그 단어가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이긴 한데 다들 이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걸 딱 밖으로 표현하기는 거시기(?)하다고 느낄 때, 장강명은 적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한국을 싫어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이 싫어서>.

 


그다음 책은 <5년 만의 신혼여행>. 이 책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편안하고 재밌고 술술 읽혔다. 이후에장강명이라는 작가를 찾아보면서 그의 특별한 이력에 더욱 감탄하게 되었고(기자 생활 중에 공모하여 쟁쟁한 문학상을 연거푸 수상/아내와의 에피소드), 주경야독의 꿈을 이룬 그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표백>을 읽은 후에 나의 안목에 대해 더 과한 칭찬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적어도 그의 이름을 보고 책을 사도 후회할 일은 없겠다 생각하게 됐다. <댓글부대>는 앞부분만 읽었고(쏴리), <당선, 계급, 합격>의 문제의식에 크게 공감했고, 이런 인식이 사회적으로도 널리 공유되었으면 했는데 생각보다 책이 큰 호응을 받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리고는 이렇게 세 권 <책 한번 써봅시다>, <, 이게 뭐라고>,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모두 에세이구나) 읽었다. 책과 관련된 책들이고 작가의 삶에 관한 책이라 재미도 있고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기는 한데, 돈이 최고의 가치인 현대 사회에서소설가라는 이름의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팍팍한지가 느껴져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장강명 정도의 작가도 이러할진대, 이제 막 1-2개의 히트작(?)을 낸 신인 작가나 작가 지망생, 시인들은 어떻게 생활을 꾸려갈까. 한국 출판계의 고질적 문제들을 작가 몇 사람이나 소수 독자의 힘으로 바꿔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1) 책을 구입하고 2) 도서관에 책을 신청하고 3) 서평을 쓰고 4) 독서 모임 하기,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다. 1, 2번 완료하고, 3번 진행 중이며 4번은... 저랑 장강명 뽀개기 하실 분? 제가 친구 따라 푸코 읽기 해야 해서 많이 바쁘기는 한데, 장강명이랑 도선생엮어 읽기로 진행하신다면 참가 용의 있습니다. 연락주세요, 010-1234-5678. 

 

 


소재의 특별함으로 승부하는 소설이 있을 테고, 독창적인 구조의 변화를 시도하는 소설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소설은 이야기의 힘, 그 자체로 밀고 가는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야기란, 우리가 열광하는 이야기란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그리스 비극으로부터 반복되어 온 것으로서. 그래서 새로 쓸 수 있는 건 문장뿐이라고 김연수가 말했었고. 결국 이 세상에 완벽하게 독창적이고 새로운 소설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구조에 변화를 주고 익숙한 이야기를 어떻게, 어떤 문장으로 풀어가느냐가 중요할 테고, 주인공이 갖는 매력, 사건들 사이의 연결성, 개연성 혹은 핍진성 등이 중요하겠지만, 내 소설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작가의이름인 것이며. 그래서 오늘은 장강명.

 

 


소설은 22년 전 미제 살인 사건을 맡게 된 강력계 형사인 연지혜가 피해자의 독서 모임 회원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사건 당시 밝혀지지 않았던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 챕터를 번갈아 가며 범인의 독백이 이어지는데, <죄와 벌>의 로쟈와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지하인, 그리고 <악령>의 주인공 스타브로긴이 범인을 지배하는 세 개의 인격으로 독백을 이어간다. 죄책감이 아니라 이 나라의 형사사법 시스템과 싸우고 있다는 고백에서부터 시작해 선과 악, 죄와 벌 특별히 인간의 고통에 대한 범인의 사유는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주를 이룬다.

 


사랑하는 이를 병이나 천재지변으로 떠나 보내는 것과 살인사건으로 잃는 것은 모두 같은 손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느끼는 정의감은 매우 부조리해서, 그 죽음의 배후에 다른 인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반응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하지만 내가 처벌된다고 해서 그들의 손실이 보상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분노가 가시지도 않을 거다. 그렇다면 나를 벌 주기보다 그들이 관점을 달리하는 게 더 생산적인 일 아니겠느냐고 지하인은 궤변을 펼친다. (44)

 


범인은 계속해서 자신의 살인을 변명하고 자신의 범죄가 지탄받지 말아야 할 이유를 나열하고, 다른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와 자신의 범죄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묻는다. 범인의 이야기는 너무나 진지하고 치열해서, 1권을 30쪽 정도 읽고 바로 2권과 장강명의 신간 SF소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을 주문했다. 나는 장강명을 읽는다.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 각자도생이 당연한 시대에 신과 인생의 의미, 행복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죽음과 자살, 영원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떠한가. 환경운동과 채식주의는 또 어떤가.

 


모든 것이 허용될 때, 그래서 어떤 것에도 의미가 깃들 수 없고 진리라는 것이 성립할 수가 없을 때, 우리는 자살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카뮈는 반항하라고 한다. 끝내 의미를 발견할 수 없겠지만 의미를 구할 수 없다는 현실 그 자체에 우리가 시시포스처럼 끊임없이 반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9)

 


그렇다면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귀여운 북극곰들을 살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종이컵이 아니라 해외여행을 막아야 한다. 관광 목적의 출국은 5년에 1회 정도로 제한해야 한다. 유명 해외 관광지의 사진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람들을 비난해야 한다. 그러나 탄소 줄이기 캠페인은 종이컵 쪽에 더 초점을 맞춘다. 해외여행보다는 종이컵이 종교적 금지 대상에 좀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종이컵 쪽이 보다 일상적이고, 현시적(顯示的)이며, 고통스럽다(보통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그리 자주 가지 않으며,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 상태는 티가 나지 않지만 텀블러는 눈에 잘 띈다). (206)

 


채식주의도 비슷하다. 육식이라는 유혹을 참는 일은 일상적이고, 현시적이며, 고통스럽다. 그리고 자주 논리적 모순에 부딪힌다. 동물 복지를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고양이를 키워도 될까? 고양이는 동물성 단백질을 먹어야 하고, 고양이 사료는 닭이나 연어로 만든다. (206) 

 

 


계몽주의, 인권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유발 하라리도 <사피엔스>에서 민주주의의 개념과 더불어 인권개념에 대해 길게 설명했는데,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발명되고 정교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논의와도 비슷하게 읽혔다. 그리고 물론 죽음과 의미에 대한 부분도.

 


프란츠 카프카는 친구이자 비평가였던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원고를 전부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브로트가 그 유언을 지켰다면, 카프카의 삶은 의미가 없어지는 걸까? 카프카가 의미 있는 삶을 살았는지 여부는 그가 무엇을 남겼느냐에 달린 문제인가?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결국엔 다 잊히지 않나? 그 말은 우리 대부분은 무의미한 존재라는 뜻일까? (233)

 


233쪽의 위의 챕터를 읽으면서는 당연히 오르한 파묵이 생각났다. 그의 책 <소설과 소설가>라고 기억하는데,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고 대충 이런 의미였다. ‘내 책은 100년 뒤에도 읽힐까? 200년 뒤에도 읽힐까? 내 책이 200년 뒤에도 읽힌다는 게 내게 의미가 있을까? 200년 뒤라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텐데, 그 책이 읽힌다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와 상관이 있을까?’ 대답은 기억나지 않고 그의 질문만 기억에 남는 건, 그 역시 대답하지 않고 묻기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운명이고, 태양은 곧(아마도 50억 년) 수명을 다하고, 지구는 없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혹은 그럴 것이기에 결국. 우리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나. 우리의 삶과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나. 답 없는 물음은 계속된다. 이건 나만의 오래된숙제로 남겨두기로 한다.

 

 

 


최근에 장강명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고 페이퍼를 썼더랬다. <노르웨이의 숲>을 쓰고 난 이후에 하루키가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나 역시 이 소설을 읽으며 여러 번, ‘~~장강명!’을 소리 내어 외치기도 했으니. 소설가 장강명은 <재수사> 이전의 장강명 <재수사> 이후의 장강명으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뒤쪽 책날개에는 이런 짧은 글이 있다.

 

 


작품이 곧 자기소개가 되는 것.

무슨무슨 소설을 쓴 사람으로 소개되는 것.

거기서 더 나아가면 작가와 작품이 동의어가 되는 것.

 

피와 살이 있는 인간 장강명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

 



앞으로도 장강명은 계속해서 쓸 테고 다루는 소설의 영역을 확장해 가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아름다운 문장의 주인이 되겠지만, 나는 이 책 <재수사>에서 장강명은 자신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 책을 쓰는 일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작가와 작품이 동의어가 되는 세계로 입장한 장강명에게, 기립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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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9 2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이 인간.. 단발님의 애정을 듬뿍 받는 인간..... 기립박수까지!! 😤

단발머리 2023-07-30 07:53   좋아요 0 | URL
장강명을 한두권 읽어보실 것을.... 살포시 추천합니다. 물론이죠, 장강명 말고도 우리는 읽을 작품이 많고요.
장강명도 읽어도 괜찮다고 ㅋㅋㅋㅋㅋ 말하고 싶어요. 이 작품 <재수사>는 특히 제 스타일이고요.
오늘도 덥대요. 은오님 어디 시원한대로 피신하세요, 어여~~~~

책읽는나무 2023-07-29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장강명이 부럽다.
ㄴ자의 케찹 속에도 장강명 글자가 보이는 것 같아요.
<재수사> 아직 안 읽어봤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군요.^^
장강명 뽀개기 하고 싶어도 전 단발 님의 지성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포기할랍니다.
푸코 뽀개기를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감히...ㅋㅋㅋ

단발머리 2023-07-30 07:58   좋아요 1 | URL
장강명을 부러워하지는 마소서 ㅋㅋㅋㅋㅋ 왜냐하면 장강명은 이 글을 안 읽을 것이며 ㅋㅋㅋㅋㅋ

사실 위 페이퍼에 제가 안 썼는데요. 제가 2권의 30퍼센트 정도 읽고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된 거에요. 식구들한테 아! 범인 알게 됐어, 근데 벌써 범인이 나왔네! 그랬거든요. 다 읽어보니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닌 것입니다.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의 추리력 어쩌란 말입니까ㅋㅋㅋㅋㅋㅋ
푸코 쪼개기는 맡으신 분이 계셔서 괜찮아요. 물론 따라가기 헉헉대지만요.
오늘도 많이 덥다고 합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셔요, 책나무님!!

독서괭 2023-08-02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장강명 한권도 안 읽었고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요, 단발님의 글 읽으니 읽어봐야겠다 싶네요. 오호. 인용문들도 다 흥미로워요. 단발님의 오래된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실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단발머리 2023-08-04 19:20   좋아요 1 | URL
장강명의 한 권이 제게는 <악령>이었거든요. 이 책 읽고 <재수사(2권)>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소심하게 ㅋㅋ 장강명을 추천해 봅니다. 오래된 숙제는 간간히 리포트 올리겠습니다. 계속 쭈욱~~~~~~~ 지켜봐주세요!!
 




















밤낮이 바뀐 어린이가 있었다. 식구들 없는 아침과 오후에 내쳐자다가 하나둘 식구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먹고 운동하고 영어책을 펼쳤다 닫았다가 도스토예프스키를 펼쳤다 닫았다가. 식구들이 잠든 깊은 밤에는 같이 잠자려 했지만 살포시 잠이 들려는 그 시간. 바로 그 시간에 매미가 울어재낀다는 주장이었다. 잠을 잘 수가 없어, 매미가… 매미가… 처음엔 비몽사몽이어서 5시를 추측했는데 그 다음날에는 시간을 확인했고. 그랬다 5시였다. 그 다음날은 5시 10분. 일출시간이 5시 20분 정도일테니 그 즈음 움직이는 거였다. 매미가 맴맴. 그냥 맴맴 아니고 매애~~~~~~~~~~~~~~~~~~~~맴!!!



에어컨 송풍까지 마치고 오프모드에서 얼른 자야 하느니, 경쟁적으로 잠에 빠지려는 엄마 아빠 사이에 밤낮 바뀐 어린이. 종알종알 이야기 나누다가, 근데 이건 무슨 소리야? 개골개골 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구리가, 개구리들이 노래를… 노래를 한다. 아… 이거 개구리에요? 개구리가 어딨어요? 어디에 이렇게 많아? 우리집은 아파트 숲 중앙에 놀이터가 있고 그 주위를 제법 키 크고 비싼 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 작은 연못에… 개골개골 개구리… 아침에는 매미, 밤에는 개구리. 야, 쟤네 진짜 열심이다. 하면서 바로 시작되는 신간 공격.



엄마가 그거 읽잖아, <암컷들>. (사실 꼼꼼히 훑어보고 자세히는 안 읽었음) 거기서 얘들이 그렇게 열심히 살더라. 그래, 그렇다니까. 블랙 위도우 말고 암튼 무슨 위도우 거미던가. 수컷이 암컷 만나러 갈때 선물 들고 감. 선물 냠냠 드시고 계실 때 교미할라고. 아, 진짜 뭘까. 생명을 거는 그 무엇은. 수컷만 그런 건 아니고 인간의 도덕률을 동물들에게 투사해서 그렇지. 와, 암컷들도 장난 아니야. 진짜 열심이야, 열심.




와아, 왜 그럴까.


날도 더운데.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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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7-28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이 덥다고 하면 제가 또 한 번 댓글 좀 달아줘야....

그러니까요. 더우면 모든 게 귀찮던데 말입니다.
인간은 먹을 것을 재배하고 저장하는 능력을 익혔기에, 이 생산성이 높은 시기 쉴 수도 있고 다른 걸 할 수도 있는데...

매미야. 개구리들아. 생식이 다가 아니야. 한 번 뿐인 인생, 여름을 즐겨!
(사실, 하우스라는 게 있어 얘들아)

단발머리 2023-07-28 14:0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그렇습니다. 매미와 개구리, 암컷들에 대해 쓰면서 저는 이 페이퍼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죠. 그러나 바로 “날도 더운데…”에서 ㅋㅋㅋ저는 저도 모르게 수하님을 호출하고 말았습니다. 더위에 온 몸으로 맞서 싸우며 애쓰는 우리 매미와 개구리들에게 응원(?)을 전합니다.

얘들아… 사랑이 다가 아니야. 한 번 뿐인 인생, 이 여름을 즐기렴!! 😆

건수하 2023-07-28 15:12   좋아요 1 | URL
네 어쩐지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ㅋㅋ

단발머리 2023-07-28 17:23   좋아요 1 | URL
그냥 넘어가시면 제가 얼마나 섭섭하게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날도 더운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7-29 23:43   좋아요 1 | URL
이 사람들이 날도 더운데....ㅜㅜ
더 더운 얘기 그만!!!!!!

근데 저도 이 책 빌려왔는데 읽다 보면 더 더워진다는 건가?ㅋㅋ
 

















1일 1페이퍼의 푸른 꿈은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내내 며칠을 놀다가 오늘은 효도일정 소화해야해서 병원행.


먹고 살고 지지고 볶고의 인간사를 통칭해 살림이라 했을 때 살림에 젬병인 내게 가장 힘든 종목은 설거지 아니고 청소 아니고 요리 아니고 정리정돈. 그야말로 난장판인 집 어디에도 카메라를 들이밀 수 없어 다시 김치냉장고 위.








물건을 별로 좋아라 하지 않지만 마음은 구체적 형상과 질료의 모습인 물체로 전해지는가. 나는 물건을 보며 물건에 담겨진 다정하고 섬세하며 명랑한 마음을 생각하고… (장바구니 벽에 붙이는 마음. 나는 짱구를 좋아한다)




오늘, 다시 읽어야지, 살아야지,하는 나답지 않은 결심을 하는 지금. 모닝커피 생각나는데 대기해야 해서 마냥 기다리는, 어느 병원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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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7 09: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교보 독서대는 갖고 있으면서도 볼때마다 아름답네요. 저도 짱구 좋아해요 ㅋㅋㅋ 가끔 심심할때 찾아봅니다. 커서 보니까 짱구는 말썽은 부려도 귀엽고 착한듯. 이따 모닝커피 꼭 드세요!! 😍

은오 2023-07-27 09:34   좋아요 2 | URL
엥근데 저번에 커피마시면 속쓰리다하셨던거같은데 식사하셨나요?! 식사하시고 드세요 단발님 위장 소중해.....(빈속에 커피들이부으면서 이소리 하고있음 전괜찮습니다)

단발머리 2023-07-27 09:48   좋아요 3 | URL
은오님 다정한 사람…. 잠자냥님께 락방님께 책나무님께 다 쓰고도 다정함이 남았다 ㅋㅋㅋㅋ 안 그래도 뛰쳐나오느라 밥을 못 먹었 (엄마한테는 비밀 ㅋㅋㅋㅋ) 그러나 커피는 마실 것입니다. 할리스 커피 만나기 힘들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다려라 할리스 ㅋㅋㅋ사람 겁나 많아요. 아프지마요, 우리🥹🥹🥹

은오 2023-07-27 09:54   좋아요 2 | URL
제가 지쳐 쓰러져도 단발님 몫의 다정함은 남겨둘 것입니다 ㅋㅋㅋㅋ 할리스는 바닐라딜라이트가 맛있다는 사실을 전해드리며 ㅋㅋㅋ 😘

단발머리 2023-07-27 11:12   좋아요 1 | URL
지치지말고 쓰러지지 마요~ 바닐라딜라이트 흡입했으요 ㅋㅋㅋㅋ 딜라이트하닼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7-27 1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도 참 글도 단정하게 쓰시지만 사진도 단정하게 찍으시네요. 사진에서도 그 사람 성격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 글러먹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병원행이라니, 지치지 않게 잘 챙겨드시고 다니세요. 특히나 부모님 모시고 다녀오는 병원은 또 얼마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됩니까. 힘냅시다. 힘내세요. 어머님과 맛있는 것도 꼭 드세요!!

단발머리 2023-07-27 17:34   좋아요 0 | URL
지치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지치고 엄마랑 싸움 ㅋㅋㅋㅋ 짜증나서 바로 집에 가려했는데 락방님 댓글 보고 나서… 밥 먹고 가려고요. 에휴…

잠자냥 2023-07-31 10:38   좋아요 1 | URL
글러먹은 다락방! 네덜란드 킹 사이즈 침대는 어떤가요?!

다락방 2023-08-01 11:13   좋아요 2 | URL
혼자 자기에 아주 편안합니다!! 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23-07-28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닛 불리1803 눈에 들어옵니다 ㅋㅋ 저도 정리정돈이 제일 어려워요 ㅎㅎㅎ 먼지 청소는 자신 있는데 말입니다. 음… 요리도 어려워요. 제가 만든 요리는 아무도 안 먹어요….

병원은 기다리는 게 일인 것 같아요. 얼른 다 좋아지시길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3-07-28 18:33   좋아요 2 | URL
아닛 불리1803 알아봐주시는 안목에 기립박수 칩니다 ㅋㅋㅋㅋㅋㅋ 저는 정리정돈이 제일 어렵구요. 먼지청소도 어렵구요, 요리도 어렵 ㅋㅋㅋㅋㅋㅋ 다행스럽게도 저희집 식구들은 제가 만든 요리를 먹습니다. 물론입니다, 저는 안 먹어요 ㅋㅋㅋㅋㅋ

병원은 정기적으로 가시는 거라서요 ㅋㅋㅋㅋ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꼬마요정 2023-07-28 23:33   좋아요 2 | URL
부럽습니다... 제가 만든 건 저만 먹어요... 다들 간이 안 됐다고 싫어해요 ㅋㅋㅋ 예전에 남편이 아플 때 제가 죽을 끓여줬는데 한 술 뜨더니 벌떡 일어나서 본죽 사러가더라구요 ㅋㅋㅋㅋㅋ 아픈데...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7-29 20:5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마요정님 저 엄청 웃었어요. 저는 요리 다 못하지만 죽 중에 잣죽은 좀 잘하는 편입니다. 잣죽은 간을 하지 않습니다. 요리책에는 하라고 하는데 저는 하지 않지요. 맹숭맹숭 니맛도 내맛도 아닌 건강맛 ㅋㅋㅋㅋㅋㅋ
남편분, 벌떡 일어나셔서 죽 사러 가셨으면 많이 아프지 않은 것으로 해요, 우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7-28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리정돈 어렵지요... 전 김치냉장고 위도... (하아) 책 읽기는 조금 할 수 있는데 말이죠.

엄마랑은 오래 있다보면 별거 아닌 걸로도 싸우게 되는 거 같아요. 너무 가까워서 그런가봐요... ㅠㅠ
오늘은 더 덥다니 시원한 곳에서 편히 지내시는 하루 되시길!

단발머리 2023-07-28 18:37   좋아요 1 | URL
정리정돈이 제일 어려운데 알고 보면 물건을 좀 줄여야하는게 아닌가 싶기는 해요. 물건이 너무 많습니다 ㅠㅠㅠ

만나면 반가운데 조금 있다 보면 금방(?)ㅋㅋㅋㅋㅋ 금방 싸우게 되지요. 하아....
오늘은 시원한 곳에 종일 틀어박혀 있다가 이제 막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수하님도 시원한 하루 되셨기를 바랍니다!!

건수하 2023-07-28 20:40   좋아요 1 | URL
맞아요…. 특히 책이 많습니다 ^^;; 이제 여성주의 책 덮어놓고 사는 걸 그만해야겠어요..

단발머리 2023-08-04 19:21   좋아요 1 | URL
여성주의 책은 덮어놓고 사셔야 합니다. 오늘의 잔소리였습니다^^

하나의책장 2023-07-31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인데도 매일같이 치울 게 많아요.
아마 맥시멀리스트라 어쩔 수 없나봐요ㅠㅠ;

밥 먹을 때 짱구 볼 정도로 짱구 너무 좋아해요ㅎㅎ
짱구 접이식 에코백이라니 ♥.♥

단발머리 2023-08-04 19:23   좋아요 0 | URL
정리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을 제가 엄청 존경합니다. 정리...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요? 저의 답은 오로지 ‘버리는 것‘ 뿐이고요. 정확히는 사지 않는 것인데, 아.... 뭐가 집에 이렇게 많은지 ㅠㅠㅠ

짱구 접이식 에코백..... K문고에 가시면 여러 버전의 짱구가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8-07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이제 읽어 보네요. 덥고 지쳐 북플 띄엄띄엄 하다 보니 놓치는 글들이 많네요^^ 실은 이 책을 살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요. 그럼 땡투를 누구에게 눌러야 하나? 친하신 분들이 눈에 띄어 나름 고민을 하다 에잇....단발 님께 누르고 갑니다. 글을 읽다 안 누를 수가 없어서...^^ 어머님과 싸우지 마세요. 전 어머님과 따님이 투닥 싸우는 모습도 부럽습니다만^^;;; 지금은 단발 님이 컨디션이 안 좋아 분투 중이실 것 같아 땡투라도!!!^^

정리정돈은 어케 하는 걸까요?
전 단발 님 정돈된 사진을 보면서 살림 고수(정리정돈)이실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저와 똑같은 맘인가? 싶네요.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다??!!!!ㅋㅋㅋ
그래도 이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건 멋진 일입니다. 간만에 할리스 바닐라 딜라이트 커피 마시고 싶군요.
컨디션 빨리 회복하시길^^

단발머리 2023-08-10 20:20   좋아요 1 | URL
땡투 저한테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티끌 모아 제가 태산을 이루어 보겠습니다.
엄마와 투닥이는 모습도 부럽다고 하시는 마음을.... 제가 만분의 일이라도 알 거 같아요. 짜증날 때 책나무님 마음을 기억할게요.

정리정돈은 ..... 정리와 정돈이겠죠. 일단은 물건을 안 사야할텐데.... 그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제가 보기엔 수납이든 뭐든 다 필요없고 물건이 적어야.... 우리는 책이 많으니까 (책 공동체 ㅋㅋㅋㅋㅋㅋ) 다른 물건을 더 줄여야할 거 같아요. 전 살림도 별로 없는데 (시무룩)

컨디션은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댓글이 늦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성 억압의 핵심은 자녀 출산과 자녀 양육의 역할이다. (109)



이렇게 쓰기 미안한데 차를 가지고 출근한다. 가까운 거리이기는 한데, 아니, 가까운 거리여서 버스를 타러 나가는 시간이 전체 이동 시간의 60퍼센트를 차지하기에, 버스에서 내려서 걷는 길이 언덕이라서, 하지만 이 모든 변명은 적당한 이유가 되지 않기에. 지구에게 죄송하게도 차를 가지고 출근한다.  


차 안. , 아래 그리고 내가 서 있는 도로가 만나는 교차로 앞이다. 최근에 이런 신호등 공사가 한참 유행이었는데, 초록 불이 켜지면서 차량 전체가 멈추고 보행자는 자기가 서 있는 도로의 맞은 편뿐 아니라, 그 맞은편의 맞은편으로도 한 번에 건널 수 있도록 하는 신호 체계다. 지금 찾아보니동시 보행신호라고 한다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했고 이제 좌회전 신호 한 번만 받으면 도착이다. 아직 3분이 남았고, 마음은 여유롭다. 나는 정면을 보다가 왼쪽을 본다. 중년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여성도 아이도 민소매 옷을 입고 있다. 하얀 바탕에 연한 하늘색 무늬 옷을 한 벌로 입었다. 누구에게인지 모르지만 맞은편을 바라 보던 중년 여성이 손을 흔든다. 꽂꽂이 안겨 있는 모양새가 9-10개월이 됨직한 아이는 아직 손을 흔들지 않고 있다.


신호등 맞은편에는 조금 전에 뒷모습만 보았던 여성이 서 있다. 하얀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일자 슬랙스를 입었다. 갈색의 긴 웨이브 머리카락이 거의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길다. 예쁘다. 내가 원하는 그러나 추구할 수 없는 멋진 출근룩이다. 신호가 바뀐다. 초록 불 보행 신호에 인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죄다 횡단보도에 발을 내딛는다. 바쁜 발걸음. 젊은 여성이 횡단보도에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뛰어가서는.


중년 여성이 안고 있는 아이에게 뽀뽀를 한다. 쪽쪽 쪽쪽! 네 번. 네 번의 뽀뽀를 하고 그 여성은 자신이 서 있던 자리의 맞은편의 맞은편으로 뛰어간다. 동시 보행신호는 보통 보행신호보다 신호 대기 시간이 길다. 이제서야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20, 19, 18, 17...  세 걸음 정도 걸어가던 젊은 여성이 뒤를 돌아본다. 부지런히 오른쪽 왼쪽으로 손을 흔든 후, 다시 앞을 보고 뛰어간다. 내 차 앞에는 중년 여성과 아이가 있다. 아이는 꽂꽂하게 안겨 사라져 가는 엄마를 바라본다. 언어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면 사람의 감정을 제일 정확하게 보여주는 건 얼굴일 것이다. 눈 혹은 표정일 테지. 나는 외할머니에게 안겨 있는 (그 중년 여성은 젊은 여성의 엄마일 것이다. 시어머니에게 아이 맡기고 출근하면서 시어머니에게 인사하지 않는 며느리는 없을 것이므로.) 그 아이의 뒷모습에서 그 아이의 마음을 읽었다. 완벽하게, 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냥.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봐 주시다가 친정 근처로 이사 오면서 엄마가 아이를 봐주셨다.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길 때는 밤마다 데려와야 했는데, 엄마는당연히밤에도 아이를 데리고 있겠다고 하셔서 퇴근 후에 친정에 들러 엄마 밥을 먹고 아이랑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침에는 아이가 보고 싶어서 출근하는 길에 친정에 들렀다. 마을버스 정류장을 하나 지나쳐 와야 해서 바쁜 아침 시간이 더욱 빠듯했는데, 그래도 거의 아침마다 친정을 경유해 출근을 했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1층에 내려와 계시면 아이를 한 번 안아 보고 사진을 한 장 찍고는 바로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고는 했다. 나는 내 뒷모습을 못 보니까 내 뒷모습이 어떠했을지 모르고(그리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앞만 보고 뛰어갔을 테니 엄마와 내 아이의 뒷모습이 어떠했을지 모른다


나는 아이의 주 양육자가 꼭 엄마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가 나쁜 양육자가 될 확률만큼이나 아빠나 할머니도 좋은 양육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그 아이의 뒷모습에서 느꼈던 건 엄마가 없어서 외로운 마음이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등을 보이며 떠나가는 걸 지켜보는 마음이랄까. 내게 아이의 등은 그렇게 보였다.   



모성에 대한 강요는 차고 넘친다.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며 내게는 댓글을 달아주시지  않는 정희진쌤은모성은 어머니와 자녀와의 관계가 아니라, 여성과 자녀의 아빠와의 관계가 핵심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온 나라가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채 엄마와 아빠에게버림받은아이 문제로 떠들썩하다. 엄마에 대한 악마화가 도를 넘었다. 열 달 동안 함께 했던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마음과 상황과 여건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성만을 문제 삼을 뿐이다. 모성에 대한 과도한 기대. 숭배와 혐오

















어머니 은 일정 부분 인간의 삶을 포기하게 하고 또 포기하는 것을기쁨으로 여기라고 강요한다.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의 외침, 항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더 풍성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머니로서의 경험 역시 소중하다, 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오 천년 여성 혐오의 근본 뿌리 중 하나인 여성에 대한 성역할 강요임을 안다. 그러니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머니라 불리는 나는, 나의 어머니 을 거부해야만 하고. 나의 생각이 캐서린 비처가 쓴 <가정경제에 대한 논문 A Treatiseon Domestic Economy(1841)>의 가정 페미니즘(domestic feminism;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나쁜 일자리로 내몰리는 여성들을 보호해야 하며 가정 내에서 여성의 고유한 역할인 육아와 가사에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어떻게 다른지를 증명해야 하는 것 역시 나의, 혹은 나만의 일일 것이다(<젠더와 역사의 정치>, 45).

 


인지부조화에 빠지지 않으려면, 인간은 과거를 긍정해야 한다. 아름다웠노라고, 행복했노라고 말해야 한다. 이름을 갖지 못한 채, 사회와 가정에서보이지 않는존재로서 존재했던전업주부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지금 내게 묻는다면. 그때처럼 일 vs 육아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또 다른 길워킹맘의 길을 선택하고 싶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4개월 정도 해보니, 아이들이 다 크고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요즘에도 매일 녹다운 되는 나를 데리고 살다 보니 그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면. 나는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가 아니라, 인생에서 단 한 번 주어지는 그 짧고 소중한 순간을 누리고 싶다. 나도 그 순간을 함께 살고 싶다. 그 이유를 나는 아이들에게서 찾았다. 그런 아이들이라면, 그것이 생존을 위한 진화적 속임수라 할지라도 그렇게 귀여운 아이들이라면. 그 귀여운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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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7-15 1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엉엉엉 ㅜㅜㅜㅜㅜㅜ

2023-07-15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수하 2023-07-15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이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생각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러면 된 거 아니겠어요.. ❤️

단발머리 2023-07-15 15:53   좋아요 1 | URL
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다행이라고 해주셔서 감사해요!

미미 2023-07-15 13: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도 어김없이 버려지는 아이들의 ‘아빠‘는 지워지고 있죠...어린이집 아이들을 학대하는 선생들을 비난하는 것으론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인에 눈 감는 지금의 상황이 안타까워요.

단발머리 2023-07-15 15:54   좋아요 3 | URL
그런 상황의 원인을 찾는 일이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너무 빤히 보이는 일들인데... 그걸 밝힐 수가 없으니 눈을 감는것 같아요. 그래서 안타깝고요.

독서괭 2023-07-15 14: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뭐라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짠하네요…
단발님, 그 시절, 참 고생 많으셨어요. 토닥토닥

단발머리 2023-07-15 15:55   좋아요 2 | URL
저희 아이들이 다 자라서... 이제 제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자다 깨서 엄마를 찾는 아가들의 엄마들에게 독서괭님의 토닥토닥 나눠드리고 싶네요.
독서괭님도 수고 많으십니다, 토닥토닥!

수이 2023-07-15 14: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럿 울리는 글이네. 멋지다, 아름다운 내 사람, 다시 느낌

단발머리 2023-07-15 15:55   좋아요 2 | URL
수이님만 울리고 싶어요.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수이님만 울기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3-07-16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16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07-16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간들!!
그리고 지금이기도 할 시간들.
이 땅 위의 워킹맘들에게 박수 보내고프네요.

아이와 아침마다 헤어지기 싫어 전업주부를 선택했던 전...
지금 아이들의 행태를 살펴 보면서 그 시간이 다시 돌아온다면 전...전업주부를 다시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을 평소 아주 많이 하면서 전업주부 생활을 해왔네요. 무슨 뜻인지는 다른 전업주부이신 분들께 들어보신다면 아시게 될껍니다.ㅋㅋㅋ

암튼 고생 많으셨어요.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환경에 고생 많으십니다.
파이팅 하시길~^^

단발머리 2023-07-24 08:40   좋아요 1 | URL
워킹맘들의 고단함을 10분의 1 정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전업맘들의 외로움도 보이구요. 혼자 일한다는 것, 어른 없이 혼자 아이를, 아이들을 돌보는 갑갑함을 저는 조금은 아는 사람이니까요. 역시 사람에게는 사회가 필요하구나. 일이 필요하다는 건, 그 일을 함께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책나무님 글, 댓글 읽을 때마다 너무 힘이 납니다. 우리 알라딘 공식 에너자이저로 임명합니다. 단발머리가요!!!

다락방 2023-07-23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저 카불 신부 땡투했어요. 아 나는 왜이럴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7-23 11:02   좋아요 1 | URL
그 반항, 응원합니다 ㅋㅋ

잠자냥 2023-07-23 12:47   좋아요 1 | URL
그럴 줄 알았지

다락방 2023-07-23 13:07   좋아요 1 | URL
🙄🙄🙄🙄🙄

icaru 2023-07-29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직장인이시군요!! 건투를~~~!!
저 정말 오랜만에 알라딘서재에 들어와서 야곰야곰 읽을거리들이 많아 신나하고 있습니당^^
하나하나 지금부터 고고~~~

단발머리 2023-07-29 20:44   좋아요 0 | URL
저 겨우 4개월 일하고 완전 녹다운 ㅋㅋㅋㅋㅋㅋ 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냅니다.
너무 오랜만에 오셨어요!!!!!!!!!! 저 여기에 잘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icaru님 자주 좀 오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