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하루키가 좋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하루키의 작품보다 하루키식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하루키의 라이프 스타일을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 작품 인물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매력적인 주인공은 독자를 소설 가운데로 어렵지 않게 이끌어 간다. 나는 하루키 사람들을 좋아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기는 하다. 



초상화 전문 화가이며 친구 아버지 집에 머물게 신비에 쌓인 이웃 멘시키씨의 부탁으로 그의 딸로 예상되는 여고생 마리에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마리에는 엄마 없이 고모 손에 자란 부잣집 딸이다. 문화센터 미술선생님이자 이웃집 아저씨의 초상화 모델이 되기 위해 자리에 앉았는데, 마리에는 모델과 화가로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의가슴 대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마리에에게 가슴은 생명만큼 중요하다. 죽는다고 생각하더라도 제일 중요한 이야기가가슴이야기고, 이데아의 현신인 기사단장이 그녀와 헤어지며 마지막으로 하는 말도제군의 가슴은 머지않아 커질 거라네 말이다. 마리에 마음 가장 고민이가슴 관한 것임을 기사단장이 꿰뚫어 보았다는 뜻이다. 가슴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럴 수도 있겠다. 가슴은 중요하다. 가슴은 중요하지. 하지만, 가슴만 중요한가. 눈도 중요하고, 코도 중요하다. 입술도 중요하고, 이런 세상에! 피부도 중요하다. 귀모양도 중요하고, 머리결도, 헤어스타일도 중요하다. 라인도 중요하고, 쇄골뼈도 중요하고, 손도 중요하고, 허리도 중요하고, 다리도 중요하고, 엉덩이도 중요하다. 목소리, 보이지 않지만 느낌을 100% 살려주는 목소리도 중요하다. 사람이 앞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사람이 여자라고 생각해보자. 어떻게 사람에게, 여자에게 가슴만 중요한가. 머리, 어깨, 무릎, 무릎 . 모두 중요하다. 마리에가 자신의 정체성의 축을 육체에서 찾으려고 하는 청소년기라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그렇다. 그녀에게는 이렇게 한결 같이 가슴만 중요한가. 부분이 마음에 든다. 처음 만나 초상화 작업을 하는 자리의 문화센터 선생님이며 이웃집 아저씨에게, 자기 가슴이 너무 작지 않냐고 물어보는 여자애가 실제로 있는지 모르겠다. 소설 속에서는 모든 것이 그럴 듯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슴문제에 대해서라면 마리에는 너무 멍청해 보인다. 억지스럽다. 



이제부터는 좋은 얘기. 



실종된 마리에를 찾기 위해 기사단장의 명령대로 기사단장을 죽이고, 속에서 얼굴을 내민 얼굴 붙들어 지하세계로 내려간다. 어둠을 헤치고, 강을 건너 길을 걷는다. 숲을 지나 광장으로 나와서는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좁아진 동굴 끝에서 흙바닥으로 떨어지는데, 떨어져서 살펴보니 곳은 사당 뒤의 구덩이 속이다. 멘시키씨의 도움으로 구출되고, 기사단장의 약속대로 마리에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사실, 그녀는 나흘간 멘시키집 지하 2 입주 도우미방에 셀프 감금되어 있었다.  


동굴 속의 어둠이나 , , 이런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의미가 무엇인지 굳이 찾지 않아도 환상 여행을 재미있게 즐길 있다.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지 않아서, 어떤 식으로든 그를 평가할 필요도 의무도 느끼지 않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강력하게 예견되었던 하루키의 수상이 불발되고, 그와 비교적 가깝다고 알려진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 소식을 들으면서, 소설 말이 떠올랐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없었다. 멘시키가 나의 어떤 부분을 부러워하는지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가졌고,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대체 저의 어디가 부러우신가요?” 내가 물었다. 

당신은 아마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않으시겠죠?” 멘시키가 말했다. 

잠깐 뜸을 들이며 생각해본 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누구를 부러워해본 적은 없는 같아요.” 

제가 하려는 말도 그런 겁니다.” (92) 



부러우면 지는 거고, 부럽지 않다면 그걸로 됐다. 지금껏 누구를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을, 나는 부러워한다. 나는 여러 , 아주 여러 ,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을 부러워했기에. 재능을, 끈기를 그리고 젊음을.  



누구를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이고, 아래처럼 말하는 사람은 멘시키지만, 나는 사람이 사람으로 모아진다고 느낀다. 



멘시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게는 생각할 일이 많습니다. 읽어야 책과, 들어야 음악이 있어요. 많은 데이터를 모아 분류하고, 해석하고, 머리를 쓰는 것이 일상적인 습관입니다. 운동도 하고, 기분전환 삼아 피아노 연습도 합니다. 물론 집안일도 해야죠. 따분할 틈이 없습니다. (156)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고, 생각하고,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고, 운동을 하고. 기분전환 삼아 피아노 연습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이런 삶은 근사하다. 크게 자랑할 일도 아니고,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들도 아니다. 준비해야 것도 없고, 훈련이나 연습도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삶이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삶일 수도 있다. 



따분할 틈이 없는 . 그런 삶은 누구를 부러워하지 않기에 누릴 있는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피아노 연습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저번주부터 이어지는 셀프 독려 메시지 혹은 계시일지도.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0-30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30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10-3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만난 아저씨에게 가슴 얘기를 하는 여고생...의 이야기를 아저씨...가 썼군요. 저는 하루키 너무 좋아하고, 그의 책을 빠짐없이 다 읽으려고 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여고생 가슴..얘기 듣고 넘나 충격....하루키여....

저도 조만간 읽어볼게요. 책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 읽기만 하면 되는데..요즘 저의 독서 속도가 영.. ㅠㅠ

단발머리 2017-10-30 15:3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처음 만난 아저씨는 아니구요. ㅎㅎㅎㅎ
동네 문화센터 미술 선생님인데, 초상화를 그리는 첫 자리에서요. (다시 읽어보니 제가 좀 애매하게 썼군요. )
대충 스케치하고 그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든요.
화가도 모델에 대해 좀 알아야 그림 그리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이 여고생이 대뜸...
저, 가슴 작은 편이죠. ㅠㅠ
뭐니.... ㅠㅠㅠ
그 다음 페이지에는 더합니다. 직접 확인하시는게 우리 아침 건강에 좋을 듯요.

요즘에 <제2의 성> 읽으시느라 바쁘신 거 아니예요?
얼른 진도 뺴야하는데 저도 요즘 속도가 메롱이예요. ㅎㅎㅎ
 






















신디사이저를 샀을 나는 지금보다 젊었다. 신디사이저만 있으면 밤낮으로 연습에 열중할 거라 자신을 설득했는데, 남편에게도 그렇게 말했던 것인지 어떤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문제는 엄청난 가격이었는데, 마침, 정말 때마침, 맞춰서 공돈이 생겼다. 신발장 , 버리기 직전 남편 워커에서 아이들 돌반지가 무더기로 나왔다. 때는 금값이 지금과 달라, 얇은 돈봉투보다 돌반지가 훨씬 흔했는데, 허술하게 묶은 비닐백 안에는 금반지와 금팔찌와 금목걸이가 들어 있었고, 남편과 나는 그것을 팔아얘들아, 엄마가 미안.  



그렇게 신디사이저가 집에 왔건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보다 신디사이저를 애용해주지 못했다. 운반용 하드 커버를 벗기고, 전원을 연결하고, 페달을 꼽고, 헤드폰을 쓰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겨울에 이사하면서 이젠 정말 사랑해주겠다, 다짐으로 과감히 운반용 커버를 벗기고 거실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건만, 먼지 쌓이는 눈에 보여 오히려 미안할 뿐이었다. 



하여, 본격적인 연습 전에 예쁘게 단장을 주고자 아른님에게 특별 제작 주문한 신디사이저 커버가 드디어 어젯밤에 도착했다. 대충 덮어놓은 빨간 수건이 부끄러워 잠시 아이 방으로 피신했던 신디사이저는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환상의 연주를 선보일 것인가. 










내 신디는 일반적인 직육면체 모양이 아니고, 앞쪽과 뒤쪽의 높이가 달라 아른님이 만드시는데 애를 쓰신 듯 하여 죄송하면서도 감사하다. 귀퉁이, 귀퉁이마다 야무지게 잘 맞는다. 책의 바탕이 되는 깜찍한 땡땡이는 푹신한 방석이고, 바닥의 스트라이프는 다용도 키친크로스, 책과 엽서도 너무 마음에 든다. 



어젯밤,부터 묻고 싶은 말입니다.

마녀의 다스,라면 책을 읽어보면 테죠. 

그래서 다스는 누구겁니까? 


댓글(39)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7-10-26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터졌어요.

단발머리 2017-10-26 08:53   좋아요 0 | URL
괜찮았어요?
난 아까부터 syo님 방에 있었는데.... 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17-10-26 08:54   좋아요 0 | URL
뭐 볼게 있다고 거기 들어가 계세요. 훠이, 얼른 나오세요ㅎㅎㅎㅎ

단발머리 2017-10-26 08:55   좋아요 1 | URL
볼 거 아주 많아요~~~~
지금 syo님 글 읽느라 바쁘니까 다음에 통화해요.
이만 끊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7-10-26 09:03   좋아요 0 | URL
어머. 이 분들 사이 좋은 것좀 봐! 저는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알콩달콩 도란도란 한 걸 보면 참 좋고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고 본문과 상관없는 댓글 ㅋㅋㅋ)

게다가 마침 제가 여기에 오기전 쇼님 집에 먼저 들렀더랬지요. 둘이서만 맛있는 것 드시지 마시고 저도 불러줘요!

syo 2017-10-26 09:06   좋아요 0 | URL
와 아침부터 놀자판이야 신난다~^-^

단발머리 2017-10-26 09:07   좋아요 0 | URL
아차차!! 다락방님 댓글을 읽고 보니 손님이 오셨는데, 음료수도 한 잔 내놓지 않았네요.

syo님~~
음료수 뭐 드실 거예요?
우유, 옥수수수염차, 보리차, 결명자차 있어요. (나 너무 올드하나요 ㅠㅠ)

다락방님~~ 그런 염려랑은 붙들어 매시고요.
제가 syo님을 알라딘 인기서재 <미녀의 다락방>에서 만났다는 것만 알려드릴께요^^

syo 2017-10-26 09:12   좋아요 0 | URL
제로콜라 없어요?? (시무룩) 그럼 그냥 우유 마실래요...

단발머리 2017-10-26 09:18   좋아요 0 | URL
저희집은 피자랑 치킨 시킬 때 오는 콜라하고만 인사를 해서요.
따로 구매는 잘 안 하는데...
일단 syo님 취향은 접수했어요.

우유는 파스퇴르 저온 살균이예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10-26 09:45   좋아요 0 | URL
저는 보리차로 할래요. 우유는 제가 잘 못마셔요. 그런데 저를 위해서 그러니까... 와인...도 좀 한 쪽에 쟁여두시면...안될까요? (글썽)

단발머리 2017-10-26 09:47   좋아요 0 | URL
와인!!!!!

있어요, 있어요, 있어요~~~!!!
저 쪽 베란다에 잘 누워 있어요.
걔네들 제가 다 깨울께요. 얘들아, 일어나! 언니 오셨다!!

syo님 미안해요. ㅠ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예요.
나도 이제 막 생각난 거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10-26 09:51   좋아요 0 | URL
아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인 있다고 하시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님 사랑해요 ♡

단발머리 2017-10-26 10:00   좋아요 0 | URL
나두요!! 다락방님 알러뷰~~~

syo 2017-10-26 10:07   좋아요 0 | URL
저는 이쯤에서 두 분의 뜨거운 사랑을 응원하며 한발 물러나겠습니다. 제로콜라도 없고.....

그럼 이만. ㅎ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17-10-2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에도 신디가 하나 있습니다. 꼬맹이가 뚱땅거리고 있답니다 :> 커버는 정말 이뿌네요. 탐.난.다.

단발머리 2017-10-26 09:19   좋아요 0 | URL
실제로 보면 정말 너무너무너무 예뻐요.
어제밤부터 막 만지고..... ㅎㅎㅎㅎㅎ 그렇습니다.
아른님이 누빔으로 해주셔서 약간 도통하고요. 눈이 부셔서 저쪽 방에는 가지 못하고 있어요.

꼬맹이는 무슨 곡을 뚱땅거리나요? 우리 꼬맹이도 뚱땅거렸으면....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clavis 2017-10-26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신디도 부끄러워하고 있는데..걔도 높이 다른데..커버는 넘나 이쁘고..맹 활약을 기대하옵나이다♥♥♥

단발머리 2017-10-26 09:40   좋아요 1 | URL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제 신디에게....
제가 그렇게 꼭 전하겠습니다. ^^

clavis 2017-10-2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디야 사랑해♥

단발머리 2017-10-26 09:45   좋아요 1 | URL
저희 집 신디가 이 댓글을 엄청 좋아합니다.^^

clavis 2017-10-2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호오포노포노..책에서..정말 한번 해봤는데 악기 연주해야할 큰 자리에서 하도 잦은 실수로 스스로에게 상처받고 있을때 고육지책으로 악기를 매만지며 ㄲ ㅑ사랑한다고 말해줬어요 그리고 잘 부탁한다고..아 눙물나..그러구선 정말 괜찮았어요♥♥

단발머리 2017-10-26 09:49   좋아요 1 | URL
아.... 그래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피아노 칠 때, 사람 어루만지듯이 한다 하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그래도 피아노는 많이 사랑해 줬는데, 이 신디는 둘쨰라 그런지 애정표현을 많이 못 했네요.
미안하다, 신디야....

clavis 2017-10-2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운동선수들도 자면서 공 껴안고 잔다기에ㅠ

단발머리 2017-10-26 09:50   좋아요 1 | URL
아른님 덕분에 완전 미모 폭발해서 이정도면 정말 껴안고 잘 정도입니다.
사랑해, 신디야~~~

clavis 2017-10-26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신디도..갈 곳 없이 계단 여풀떼기에 비스듬히 세워져있는 네 신세란ㅠ용서해줘

단발머리 2017-10-26 09:54   좋아요 1 | URL
오늘부터가 중요합니다.
먼저 좀 닦아주시고, 사랑해 주세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2017-10-26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lavis 2017-10-2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도 먼지 뒤집어쓰고 앉아있는 cd플레이어 친구 머리 쓰다듬어줬는데..헉 단발머리님 지금 하고있던게 영상통화 였나요?이만 끊어요~휘릭

단발머리 2017-10-26 09:5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7-10-26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정말 또한번 다시한번 결심해봅니다 오늘은 네게 다가갈거야 열심히 연습해요 우리!!

단발머리 2017-10-26 09:59   좋아요 2 | URL
저도 오늘 꼭 쇼팽 연습하고.... 그리고 내일 또 연습하고...
나는 언제쯤 자랑할 수 있을까요. ㅠㅠ

clavis 2017-10-26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읽고있는 라틴어 수업에서..나는 나 자신에게,그리고 무엇에게 최우등이래요 나 자신의 천사가 되어주라고..이미 이토록 아름다운 프렌치 앤티크를 가지고계신 단발머리님♥나 자신을 위한 연습과 연주를 하자고 오늘 저에게도 말해줘봅니당 화이띵♡♡♡

단발머리 2017-10-26 18:47   좋아요 2 | URL
저는 아름다운 프렌치 엔티크를 가지고 있지만 오늘도 연습을 못 했답니다. ㅠㅠ
내일은 꼭 연습하겠다! 다짐해 봅니다.
나 자신의 천사가 될꼐요.
천사야~~ 내일은 꼭 연습하자꾸나^^

psyche 2017-10-26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쩐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디지털 피아노랑 신디를 한번 닦아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마구 드네요.
그리고 저의 집에는 보리차와 메밀차뿐 아니라 와인도 있구요. 콜라도 레귤러와 다이어트로 모두 구비되어있습니다. 맥주도 물론 있구요.ㅎㅎ 아 우유는 없군요.

단발머리 2017-10-26 18:49   좋아요 1 | URL
네, 오늘은 신디 사랑이 주제였습니다.^^

보리차와 메밀차, 와인에 콜라도 두 종류나~~~~ 맥주까지!! @@
이제 비행기표만 있으면 되겠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프레이야 2017-10-26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휴 저 여자의 등짝이 아주 확 와닿네요.ㅎㅎ
상큼발랄 단발머리님 가을날 잘 보내고 계시죠?
다락방님도 보이고 남의 방에서 두루 인사 드립니다.^^

단발머리 2017-10-26 18:51   좋아요 2 | URL
네, 아주 과감한 의상인데, 내용도 그러하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상큼발랄 단발머리는 가을을 잘 보내고 있어요. ㅎㅎㅎㅎㅎㅎㅎ
우아하고 아름다운 프레이야님은 어떠세요~~
차가운 바람이 불던 겨울의 어느 날 프레이야님 뵈었는데, 벌써 그 계절이 돌아오네요~~ ^^

clavis 2017-10-30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ㄲ ㅑ하♥저는 다이어트와 찬가지로 그날도 그담날도 어제도 연습을 못...ㄲ ㅑ

단발머리 2017-10-30 09:22   좋아요 2 | URL
저두요저두요.
그래서 오늘 또 피아노 연습 독려 페이퍼를 썼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루에 몇 분 이렇게 하니까 잘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저 이렇게 할려구요. 화목금 20분씩^^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코라는 조지아의 랜들 농장에서 태어났다. 엄마 메이블은 혹은 열살 즈음의 코라를 남겨두고 혼자 농장을 탈출했다. 메이블은 탈출에 성공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코라는 무자비한 남자들로부터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밭을 지키고, 쫓겨갔던 호브에서의 삶도 그럭저럭 이어갔지만,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혀온 앤서니의 처벌이 있던 저녁, 시저에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둘의 계획을 눈치챈 친구 러비가 그들과 함께 출발하지만, 러비는 노예사냥꾼에게 붙잡히고, 코라는 달리고 달려 농장을 벗어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농장에서 벗어난다. 땅속 지하철 Underground Railroad. 차장과 역장들. 그들은 비밀스럽게 노예들을 북으로 실어 나른다. 코라와 시저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도착하고, 이름으로 불리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아침에는 일터로 나가고, 밤에는 숙소로 돌아오는 평범한 일상. 토요일에는 잔디밭에서 친목 파티가 열린다. 코라는 새로 파란 드레스를 입고 시저를 만나러 간다. 사람은 기차를 보낸다. 다음 기차, 아니면 다음 기차를 타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쫓는 무시무시한 노예사냥꾼이 들이닥치고, 코라는 뛴다. 다시 기차역으로 뛰어간다. 이제는 시저도 없이 혼자다. 코라는 갇혀 지내다 붙잡히고, 구출되고 잠깐 쉼을 누리다가 다시 도망간다. 


코라가 랜들 농장에서 코널리에게 살갗이 벗져지도록 매맞을 , 허접한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입고 박물관에서 마네킹 흉내를 , 세상 모든 검은 피부의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 다락방에 숨죽여 웅크리고 있을 , 발목과 손목에 족쇄가 채워져 마차 뒤편에서 잠들 , 그녀의 고통은 너무나 가까워 나는 자꾸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고통이 너무 가까웠다. 두렵고 슬펐다. 인간은 얼마만큼 잔인해질 있는가, 쓸데 없는 질문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돌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잔디밭에 차려진 식탁에 앉아 앨리스가 끓인 거북 수프와 양고기를 맛있게 먹었고, 요리사가 번도 받아본 없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앤서니는 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채찍질을 당했고, 그들은 천천히 먹었다. 신문기자는 음식을 먹으면서 종이 위에 뭔가를 휘갈겨 썼다. 디저트가 나오고 흥이 오른 손님들이 모기에 뜯기지 않으려고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앤서니의 처벌은 계속되었다. (59) 



탈출하다 붙잡힌 노예를 고문하는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채찍질 당하는 노예를 바라보며 천천히 먹는 사람들. 광경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쓰는 사람들.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노예를 보며 럼주를 홀짝이는 사람들. 흑인들의 무력감과 공포, 좌절과 슬픔은 윗집 사람의 쿵쿵거리는 발걸음처럼 무척이나 가까웠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가. 다른 이의 공포와 고통에 완벽하게 무지한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인가. 인간이 아니기에 고통을 느낄 없다고 믿기 때문인가. 


이들만큼 나를 놀라게 사람이 바로 코라다. 농장에서 나고 자라, 채찍질과 목화솜 따기, 배고픔과 모욕만을 경험하며 자랐던 코라는 어쩜 이렇게 행동할 있나. 어쩌면 이렇게 용감할 있나. 



코라는 남자들이 나무에 매달려 독수리와 까마귀 밥이 되는 것을 보았다. 여자들은 아홉 가닥 채찍에 살이 벌어져 뼈가 드러나도록 맞았다. 사람과 죽은 사람의 몸이 장작더미 위에서 타들어갔다. 도망가지 못하게 발이 잘렸고, 도둑질을 하지 못하게 손이 잘렸다. …… 그날 어떤 감정이 코라의 가슴을 다시 채웠다. 느낌이 코라를 휘어잡았고, 안의 노예가 인간의 발목을 붙잡기 전에 그녀는 방패처럼 소년의 위로 엎드렸다. (45)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지만 그들의 용기에 움츠려드는 나를 본다. 코라는 어떻게 체스터 위로 엎드릴 있었을까. 마틴과 에설은 어떻게 목숨을 걸고 코라를 도와줄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들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을까. 코라와 코라의 자유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희생했던 것일까. 



자유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었다. 숲을 가까이서 보면 나무들로 빽빽하지만 바깥에서, 초원에서 보면 진짜 윤곽을 있는 것과 같았다. 자유가 된다는 것은 사슬과는 혹은 얼마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대농장에서, 그녀는 자유롭진 않았지만 안에서 바람을 쐬고 여름 별을 바라보며 제한 없이 움직였다. 작음 안의 곳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주인에게서 자유롭지만 일어설 수도 없는 작은 토끼장 속을 살글살금 돌아다녔다. (204) 



아이를 빼앗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지 못하게 하고, 사람으로서 살지 못하게 하고, 괴롭히고, 조정하고, 매질하고, 그리고 하얀색 셔츠에 와인 방울 때문에 사람을 채로 화형 시키고. 그렇게 있게 하는 힘은 의외로 간단하다. , 바로 돈이다. 



노예 장부의 목록이 두툼해졌다. 처음에 이름들은 아프리카 해안에서 수십만의 적하 목록으로 수집되었다. 인간 화물. 죽은 이들의 이름은 사람의 이름만큼 중요했다. 질병과 자살로그리고 회계 용도로 여타 작은 사고라고 분류된 이유들로상실된 분량을 고용주들에게 입증해 보여야만 했다. 경매장 연단에서 그들은 경매에서 구입된 영혼들의 수를 기록했고, 대농장에서 감독관들은 일꾼들의 이름을 빽빽한 필기체로 일일이 기록해 두었다. 이름 하나하나가 자산, 쉬는 , 살점으로 만들어진 이윤이었다. (242) 



마지막 장면. 코라는 목에 말편자 낙인이 찍힌 사람의 마차를 타고 다른 여정에 접어든다. 그녀가 성공하기를, 자유를 향한 여행 끝에서,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녀를 도왔던 수많은 손길들이 바랬던 바로 그것일 테니. 


책을 집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하나 집을 . 분명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면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질 테니.” 오프라의 말이 맞다. 나는 벌써 명에게 책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리고는 다섯 명에게 책에 대해 말할것이다. 다섯이다.





훔친 땅에서 일하는 훔친 몸들. 그것은 피로 가는 보일러, 멈추지 않는 엔진이었다. 스티븐스가 설명한 수술로 백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미래를 훔치기 시작했다고 코라는 생각했다. 당신의 배를 갈라서 피를 뚝뚝 흘리는 미래를 들어내는 것. 누군가의 아기를 뺏어 간다는 건 바로 그런 것 – 미래를 훔쳐 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 땅에 있는 동안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괴롭히고, 훗날 그들의 후손이 더 나은 삶을 살리라는 희망마저 앗아 가버리는 것이었다. (136쪽)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7-10-23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 읽고 있는데 말입니다 ^^

단발머리 2017-10-23 13:42   좋아요 0 | URL
hnine님의 코라는 쉬고 있는 중이었으면 좋겠어요.
행복한 순간들이 너무 짧아서 가슴조이며 읽었네요.
저의 코라는 마차에서 빵을 먹고 있어요. 코라,라고 제 이름을 말하면서요.^^

psyche 2017-10-2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빌려놓고 아직 손도 못대고 있네요. 이 책. 읽을까 말까 하고 있었는데 단발머리님 리뷰보니 꼭 읽어야 할 듯!

단발머리 2017-10-23 14:34   좋아요 0 | URL
좋은 시간이 되실거예요.
다른 책들이 우르르 밀려났어요~~~~~~
최강자로 등극했습니다.^^

syo 2017-10-2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장이 너무 좋았어요. 생각도 못했던 문장들이 막막 튀어나옴......

단발머리 2017-10-23 14: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문장이 좋죠.
사실 많은 들었던 내용일 수도 있는데, 전혀 다르게 읽히고 전혀 다르게 느껴지더라구요.
‘리얼리즘과 픽션의 천재적 융합‘이라는 말... 맞는 것 같아요. ㅎㅎㅎㅎ

레삭매냐 2017-10-23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폴 비티의 <배반>을 읽고 있는데,
아무래도 콜슨 화이트헤드의 전통 서사와
폴 비티의 정신 없는 비급정신의 차이는
엄청나네요.

모두 인종차별에 대한 글이면서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놀랍네요.

단발머리 2017-10-24 10:37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저는 폴 비티의 <배반>을 찾아 읽어야겠어요.
막 책소개 읽고 왔는데, 너무 흥미롭네요.

전.... 흑인들이 이 텍스트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게 조금 궁금해요.
오바마도 그렇고 오프라도 그렇구요.
할머니의 이야기, 곧 나의 이야기인데....

 
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내 아이가 그랬던 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내 잘못이 아니에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으며 수도 없이 이 말을 떠올렸다. 나는 그녀의 외침에 심정적으로 동의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녀의 말이 변명으로 들릴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고개가 끄덕여진다. 죽음은 상실이다. 아이의 죽음은 가장 큰 상실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들였던 모든 노력과 사랑은 수포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제 끝이다. 아이가 죽었으므로.

 

자식이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귀한지를 말하기에 난 너무 무심한 사람이기에 부끄럽기는 하지만. 첫 아이를 낳은 다음날 아침, 오똑한 콧날과 티없이 투명한 양 볼. 그림처럼 예쁘게 잠든 아이를 보고, 나는 평생 이 아이를 사랑하기로 맹세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좋아져 연애하고,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을 대할 때와는 다른 감정이 뱃속, 저 깊은 곳으로부터 새록새록 솟아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게 또 자식이다. 내 속으로 낳았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는게 자식이다. 내 의도와 다르게 생각하고, 내 계획과 다르게 커가는게 자식이다.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도, 가고 싶었던 대학도, 동경했던 직장도 포기할 수 있고, 어느 순간 자연스레 포기하는게 일생살이지만, 자식을, 어떻게 자식을 포기할 수 있는가.

 

가장 큰 기쁨과 가장 무거운 실망을 안겨주는 존재.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존재가 자식이다. 그럼에도 자식은 ‘내’가 아니다. 내가 낳았고, 내가 키웠지만, 사랑하고 아끼며 보살폈지만, 자식이 곧 ‘나’는 아니다. 나는 그녀의 외침을 이해한다. 난 아이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어요.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여기까지 『콜럼바인』 읽기 전 마음 준비.


 

『콜럼바인』의 저자 데이브 컬런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받는 저널리스트다. 2만 5천쪽이 넘는 자료, 9년간의 조사 및 집필을 통해 1999년 4월 20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한 다면적 조사 보고서로서 이 책을 출간했다.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는 비극의 날 1년 반 전부터 살상극을 준비했다. 1년 전쯤에 4월 학생식당으로 시간과 장소를 잠정 합의했으며, 학생들이 제일 많이 이동하는 시간인 11시 16분에서 18분 사이에 폭탄이 터지도록 계획했다. 실제로 그 날에는 계획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두 사람은 11시 14분 직후에야 식당에 들어가 폭탄이 든 불룩한 더플백을 두고 나왔지만,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계획이 실패했음을 파악한 에릭은 당황한 딜런의 차로 이동해, 두 사람은 같이 서쪽 출구로 이어지는 외부계단으로 올라갔다.  11시 19분, 캠퍼스에서 가장 높은 장소에 도착한 두 사람은 더플백을 열고 산탄총을 꺼내 안전장치를 풀고 장전했다. 총을 쏘기 시작한 건 에릭이 거의 확실하다. (86쪽) 12시 8분, 공격 개시 49분만에 두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사 1명을 포함해 사망자가 13명, 부상자가 24명의 참극이었다.

 

비극이 발생했을 때, 언론은 냉정하게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인자들을 ‘이들’이라고 지칭하며, 이들에게 공동의 목표와 목적이 있을 거라 가정했다. 언론은 트렌치코트 마피아 출신의 부적응자 고스족 두 명이 오랫동안 반목해온 운동선수를 공격한 사건으로 이 비극을 설명했다.(252쪽) 무차별적 공격이 사건의 본질이었지만, 이 사실은 금세 잊혀지고 ‘트렌치코트 마피아’만 남았다. 문제는 반복이었다. 콜럼바인 학생들은 목격자와 앵커들이 텔레비전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알았으며’, 비슷한 보도를 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를 사실로 확인했다. 살인자들을 알지도 못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떠돌았다. 하위문화 고스족에 대해서는 가장 악랄한 비난이 쏟아졌다. 검은색 코트를 입는다는 것을 제외하고 에릭, 딜런과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고스족에게 말이다. (267쪽)

 

저자가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신뢰했던 사람은 콜럼바인 비극의 현장에 있었던 학생의 아버지이자 FBI 베테랑 요원이며, 임상심리학자, 테러리즘 전문가인 퓨질리어인 듯 하다. (125쪽) 퓨질리어는 에릭과 딜런이 찍어두었던 필름, 에릭의 일지, 웹사이트를 세심히 살펴보면서 비극의 진짜 원인을 추적하고자 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에릭은 상황에 맞게 거짓말을 하고, 거짓이 탄로났을 때 부모를 안심시키고, 적정하게 비밀을 털어놓아 교화 프로그램 담당자의 신뢰를 얻을 만큼 매우 교묘했다. 퓨질리어는 에릭이 자신의 우월함을 입증하고, 살인 행위를 즐기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라 추측하며, 에릭이 사이코패스로 변해가는 과정 중에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사고 현장에서) 딜런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반면 에릭은 계단 위에서 총을 쏘고 깔깔 웃고 파이프 폭탄을 던지며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91쪽) 

 

 

에릭의 아버지 웨인 해리스 소령은 집에서 엄격했다. 잘못에 대해 신속하고 가혹하게 처벌하는 한편, 바깥에서 가해지는 위협에는 군인 특유의 방식으로 대항했다. 어린 시절의 에릭은 건강하고 말쑥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1997년 2월, 에릭의 친구 브룩스는 둘 사이의 다툼 이후에, 에릭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모에게 말했다. 그들은 경찰을 불렀다. 브룩스의 엄마 주디는 에릭을 완연한 범죄자로 보았다. 에릭의 아버지에게 이에 대해 수차례 이야기했고, 경찰을 계속 불렀다. 하지만, 웨인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주디의 행동을 ‘과잉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애들이라면 누구든 가끔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족 내에 묻어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웨인은 브룩스가 공공연히 에릭을 헐뜯고 있다고 생각했고, 에릭을 한참 동안 유심히 관찰한 웨인은 결국 아들의 말을 믿기로 했다(278쪽).

 

브룩스의 부모가 경찰에 알려준 에릭의 웹사이트에는 폭탄을 만들겠다는 글이 존재했고, 실제로 에릭의 집 근처에서 설명과 일치하는 폭탄이 발견되었음에도 에릭의 집에 대한 수색영장은 발급되지 않았다. 보안관서, 지방검찰청, 형사재판소의 윗선들은 에릭에 관해 각 기관이 내린 조처를 서로 알지 못했다.(372쪽) 사건 발생 이후, 제퍼슨 카운티는 13개월 전에 총격자들의 친구 브룩스의 부모가 에릭의 살인 협박을 이유로 두 아이에 대한 민원을 접수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97년부터 공적인 파일이 있었다는 소식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지휘관들을 향한 여론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서, 당국은 브룩스의 부모들이 조사관과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딱 잡아뗐다. 그들은 신청서의 존재를 숨겼고, 수년 동안 자신들이 알고 있던 내용도 거짓말했다. (283쪽)

 

시를 좋아했던 클레볼드 부부는 딜런 토머스와 로드 바이런의 이름을 따서 두 사내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집은 늘 규칙적이고 지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딜런은 영재 지원 프로그램에도 등록할 만큼 총명했다. 지적 능력은 뛰어났지만 수줍음을 많이 탔고, 며칠 혹은 몇 달을 얌전히 있다가 노여움이 끓어 오르면 사소한 장난에 폭발하고는 했다. (217쪽) 사랑은 딜런의 일지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였다.(315쪽) 딜런은 사랑받고 싶어했고, 열렬히 짝사랑하는 여학생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녀에게 말 한 마디 건네지 못 했다. 딜런의 기분은 시시각각 변했고 한순간 희망을 품었다가 금세 숙명론으로 돌아섰다.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가 금세 자기혐오로 사그라졌다. “안으로 향하는 분노가 바로 우울입니다.” 퓨질리어는 지적한다. 딜런은 최소 2년 동안 자살을 열망했다.(296쪽)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다.

 

 

 


『맥베스』 『리어왕』 『테스』를 읽고 니체와 홉스는 달달 외울 정도로 읽었던(442쪽) 에릭에게서 윤리적 혼란이나 정신병의 징후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에릭은 자신의 우월함에 대한 확신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쓸모 없는 존재로 인식했으며 이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상상했고, 그것을 좋아했다. 비극의 날이 다가오자 에릭과 딜런은 자주 카메라 앞에 섰다. 저주와 분노를 쏟아 붓는 그들의 언행은 청중을 위한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연기였다. 대중에게, 경찰에게, 또 서로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기. 특히 그냥 보기에는 딜런이 주동자 같지만, 실제 책임자는 에릭이었다. 에릭은 계속에서 딜런의 분노를 부추겼고, 딜런은 에릭이 원하는 만큼 연기하기 위해 자신의 분노를 쏟아냈다. (548쪽)

 

에릭과 딜런은 그렇게 서로를 도와 비극의 문을 열어 젖혔고, 설치한 폭탄이 터지지 않았던 것부터 경찰과의 마지막 대치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그들의 예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그리고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총을 들었고, 살인하고, 자살했다. 서로를 도왔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에 털어놓는 자백이다. 총격자의 81퍼센트가 자신의 의도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 절반 이상의 총격자들이 적어도 두 명 이상에게 말했다. 대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설렁설렁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눈여겨봐야 한다. (538쪽)

 

딜런은 이제 여기저기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파이프폭탄을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NBK가 초읽기에 들어가자 이런 현상은 더욱 잦아졌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총에 대해 알았다. 파이프 폭탄을 아는 사람도 많았다. 에릭과 딜런은 갈수록 대담하게 사람들에게 무기를 시험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550쪽)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가 다시 생각나는 대목이다. 에릭 곁에 딜런이 없었다면 콜럼바인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에릭이 아니었다면 딜런은 살인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 에릭은 살인하기 위해 학교에 갔고, 딜런은 자살하기 위해 학교에 갔다. 에릭이 완연한 사이코패스의 사고와 행동을 나타내고 있음을 그와 관련되었던 학교 상담사, 교화 프로그램 담당자, 지역 경찰관들이 알았더라면, 서로의 정보를 제대로 공유했더라면 에릭이 품고 있었던 위험한 계획들은 제지당하고, 폭탄과 총기는 압수당했을 것이다. 딜런이 오랫동안 강력한 자살 충동에 시달려 왔음을 가족들이 일찍 발견했더라면 그는 적절한 치료와 처치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모두 다 예방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예상 가능한 모든 변수를 차단한다 하더라도 비극과 사건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 행동의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사건은 범죄 구성 요건들이 각자 자기의 몫을 다했다. 에릭은 학교의 교화 프로그램을 조기 이수할 정도로 상담사를 완벽하게 속였고, 딜런은 사고 발생 일주일 전에도 부모와 함께 자신이 다니게 될 대학교를 방문했다. 미성년자였지만 친구를 통해 총기를 구매할 수 있었고, 폭탄 재료를 구입해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로 파이프 폭탄을 만들 수 있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공공연한 분노와 대량 학살에 대한 의지를 홈페이지에 자세히 서술했음에도 그들을 막지 못 했다.

 

다만, 비극이 우리 앞에 이렇게 모습을 드러낼 때, 그것은 거대하고 위압적인 모습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실수’라고 부를 만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게 두렵다. 에릭의 아버지 웨인이 에릭의 폭력적인 행동 때문에 브룩스의 부모와 갈등 상태에 있었을 때, 아들의 말을 믿어 주기로 결정했다는 지점이 특히 그렇다. 웨인은 아들의 행동을 흔한 고등학교 남자애의 방황 정도로만 생각했다. 당연하다. 에릭은 사이코패스로서 자신보다 강력한 존재인 아버지 앞에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행동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약속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을 속이기 쉽지만, 부모는 더 속이기 쉽다. 속이는 자식, 속이려는 자식에게 부모는 완전히 속아버렸고,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자식을 적확하게 알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1997년 8월 7일        “나는 증오한다”라는 폭언이 수록된 에릭의 웹사이트가 경찰에 신고됨.
1998년 3월 18일       딜런이 브룩스 브라운에게 에릭이 죽이겠다는 위협을 했다고 경고.
1998년 4월 8일        에릭이 교화 프로그램 등록.
1998년 11월 13일      에릭이 나치에 관한 리포트 제출.
1999년 2월 7일        딜런이 “부잣집 애들”을 살해하는 내용의 소설 제출.
1999년 4월 17일       학교 댄스파티.
1999년 4월 20일      대학살.




<20일 덴버 캐피톨 건물 앞에서 컬럼바인 고교 총격사건 10주년을 기념하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컬럼바인 고교 재학생들과 희생자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희생자 13명을 상징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있다. 

[LA 중앙일보, 2009/04/21]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정한 친구이며 굳건한 동지인 다락방님은 필립 로스 『휴먼 스테인』 리뷰에서 린디 웨스트의 말을 인용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페미니즘은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아가는 기나긴 과정에 불과하다고 있다.’ 동의한다. 천천히 깨닫는 과정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고 좋아하는 작가와 이별하는 시간은 슬프고도 아쉽다. 


<남자들은 자꾸 내게 『롤리타』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레베카 솔닛은 소설을 읽으며 감정이입하게 되었을 , 독자는 소설 인물과 동일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독자가 스스로를 길가메시와 동일시하거나 심지어 엘리자베스 베넷과 동일시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독자가 스스로를, 롤리타에게 동일시할 일어난다.(246) 저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여자로부터 빼앗은 작품으로서, 독자가 남자의 이야기만을 듣게 된다는 관점에서 『롤리타』에 대해 언급했는데, 남자들은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겠다고 나타나서는, “당신이 완전 잘못 이해하고 있다”, “ 책은 사실 알레고리다”, “당신은 예술의 기본적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그녀를 비난한다. (252)



사진, 에세이, 소설, 그밖의 것들은 우리 삶을 바꿀 있다. 그것들은 위험하다. 예술은 세상을 만든다. 나는 한권의 책이 인생의 목표를 정해줬다거나 삶을 구해줬다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안다. 내게는 그렇게 삶을 구해준 한권의 책이랄 만한 없지만, 그것은 그저 수백 혹은 수천권의 책들이 나를 구해주었기 때문이다. (249) 



나를 구해준 수백권(수천권은 아닌 같다) 중에 여자가 읽지 말아야 책이 다수 포진해 있음을 확인한 글은 <여자가 읽지 말아야 80>이다.

 


작가 에밀리 굴드Emily Gould 벨로, 필립 로스, 업다이크, 노먼 메일러는 “20세기 중반 여성혐오자들이라고 명명했는데, 『에스콰이어』 목록에 올랐고 목록에도 오를 남자 작가를 지칭하기에 알맞고 편리한 별명이 아닐 없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독서 금지 영역에 포함된다. ... 노먼 메일러와 윌리엄 버로스는 독서 금시 목록에서 상위에 오를 것이다. 아내를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지 않은 작가들 중에서도 읽을 작가는 너무 많으니까 ...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모비 딕』마저도 여자가 명도 나오는 책은 모든 인간에 대한 책이라고 일컬어지는데 비해 여자가 부각된 책은 여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일컬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목록(『에스콰이어』 추천남자가 읽어야 최고의 80’) 좇는 독자는 제임스 M. 케인과 필립 로스에게서 여자를 배울 텐데, 그들은 여자를 배우고 싶을 찾아가야 전문가라고는 절대로 말할 없는 남자들이다.(234-6)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필립 로스의 이름이 번이나 언급됐다. 『유령 퇴장』을 읽을 어떠했나. 나는 누구에게 감정 이입했나. 나는 누구였나. 내가 동일시했던 사람은 누구였나. 



나는 만찬회 같은 데도 참석하지 않고 영화 구경도 가지 않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 휴대전화나 VCR DVD플레이어나 컴퓨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계속 타자기의 시대를 살고 있고, 월드와이드웹이 뭔지도 모른다. 선거 같은 것도 더는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대개 밤늦게까지 글을 쓰며 보낸다. 독서도 하는데, 주로 학생 처음 접했던 책들을 읽는다. ...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주일 내내 글을 쓴다. 외에는 침묵한다. (15)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스스로를 네이션 주커먼에게 감정이입했고, 소설 속의 주커먼이라고 말할 , 그를 자신으로 여겼다. 나는 주커먼을 사랑한다. 그를 동경하는 나는,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주커먼이었고 주커먼이어야 했으므로. 나는 주커먼이 되기를 원했으니까. 



레베카가 말한다. 



나는 점에서만은 진지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물건처럼 이용되고 버려지거나, 쓰레기처럼 그려지거나, 침묵하거나, 아예 나오거나, 무가치하게 그려지는 책을 많이 읽으면, 경험은 분명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은 세상을 만드니까. 예술은 중요하니까. 예술은 우리를 만드니까. 혹은 망가뜨리니까. (255) 



이별을 준비하는 작가가 있기는 하다. 『남한산성』을 사랑하지만 다시는 『칼의 노래』를 읽고 싶지 않았던 나를, 나의 감각을, 느낌을 이젠 조금 믿어보려고 한다.   


아직 필립 로스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미워한다는 자각할 때의 슬픔은, 아직 필립 로스는 아니라고 말하는 나의 몫이다. 머리에 삶의 목적이 오로지 섹스인 인간, 섹스에만 특화된 존재로 그려진 종이, 바로 나와 같음을, 나와 같았음을 기억할 때의 절망 또한 나만의 것이다.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다시 필립 로스를 읽어야 할까. 『유령 퇴장』을, 『휴먼 스테인』을, 『울분』을,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포트노이의 불평』을, 『미국의 목가』를, 『굿바이, 콜럼버스』를, 『전락』을, 『네메시스』를, 『죽어가는 짐승』을, 사랑하고 동경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바로 보기 위해서, 직시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까. 아니면 흐린 기억 속에 그를 묻어, 조금이라도 그를 소유해야 할까.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09-25 14: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휴먼 스테인 읽으면서 얼마나 슬펐던지요. 글을 너무 잘썼는데, 그 잘 쓴 글로 페미니스트를 까는 거예요. 너무 잘써서 설득력이 있는거죠. 그 책으로 여자를 배우면, 페미니스트는 극도의 신경질적인, 젊고 예쁜 여자를 질투하며 자기 모순에 빠지는, 그런 존재인 거예요. 너무 슬펐어요. 그런데 이미 다른 사람은 필립 로스를 읽지 말아야 할 작가에 포함시켰었군요.

단발머리님, 그 감을 저도 믿으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제가 사람들이 다 좋다는 칼의 노래를 읽고, 정체를 뭔지 모르겠는 불편함에 시달리며, ‘김훈을 읽지 않아도 되겠다‘고 했을 때, 남들이 다 좋다 그래도 좋지 않았을 때, 그때 저에게 있었던 감을 저는 이제는 믿어야 하는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감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지금 분노의 포도가 슬퍼요. 여기에 대해 글을 적고 싶지만, 제가 오늘 일이 많아요. 흙.

제가 사랑하는 것들이 저를 미워하는 걸 깨달으며 슬퍼요. 페미니스트를 잘못 이해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중에 이미 아주 많이 글을 잘 쓰며 유명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슬퍼요. 그래서 스티븐 킹이 더 좋아요, 단발머리님. 스티븐 킹이 세상에 얼마나 강간범이 많은지, 피해자에게 사람들이 얼마나 죄를 뒤집어 씌우는지를 말해줘서 너무 소중해요. 흙흙.

단발머리 2017-09-25 11:47   좋아요 3 | URL
그러게요.
전, 휴먼 스테인을 읽을 때, 흑/백의 구도에 아주 집중하고 있어서, 솔직히 말씀하신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사실... 지금도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기도 하구요. 아마 작품을 읽는 그 순간은, 저는 스스로를 흑인임을 속이고 싶어하는 백인.
그것도 백인 남자로 설정했을 가능성이 크고요. ㅠㅠ

필립 로스는, 자기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의 인상을 작품에 옮겨 놓았을 테고 그 글은 너무 근사해서... 그래서 설득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겠죠. 그래, 페미니스트는 이래. 아... 슬프네요.

제게 아주 오랫동안 불편했던 작가가 김훈이거든요. 전, 말을 못 하겠더라구요.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고.
일면 저도 그 비장한 문장을, 문체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니까요.
최근에 문학계에서도 김훈의 시선에 대해 평론가가 비판하는 글을 썼다고도 하던데.
아무튼 이제 한 발짝 나아가야 할 시점이기는 해요.

우리의 슬픔이 이제 막 시작이라는 사실에 또 슬퍼지네요.
더욱 슬픈건 다락방님이 좋다고 하신, 스티븐 킹이 전 너무 무서워서... 그게 또 슬퍼요.
스티븐 킹을 읽지 않고 스티븐 킹을 좋아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요.
우린 오늘 슬프네요. 흙흙ㅠㅠ

munsun09 2017-09-25 12:09   좋아요 1 | URL
김훈 작가에 대한 두분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해요. 그 불편함이 싫어서 어느순간부터 읽지 않고 있어요. 필립 로스 작품 읽은지 좀 되는데 그런 의미가 숨어 있었는지 오늘 알았네요.
독서에 있어서도 자기 나름의 고집이 어느정도 필요한 거 같아요. 많고 많은 책 중에 나에게 땅기는 거 읽는 다,가 제 독서론! 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쭉 밀어 붙이고 있어요. 주저리주저리^^

단발머리 2017-09-26 09:37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좀 더 믿어야해요. 저는 번역서를 읽다 어려우면 이해못하는 스스로를 탓하지 번역이 이상하다,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이제는 우리 나름의 생각, 판단, 고집도 그것대로 인정하고 비판적 독서의 새 장을 열어야겠어요.
(저... 너무 비장해요?!! ㅋㅋㅋ)
아무튼 굿모닝이예요~~
다락방님, munsun09님^^

AgalmA 2017-09-26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들레르도 여성혐오 대단했다고 하죠ㅎ; 유명한 작가 상당수가 혐의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죠. 그러면서 여성에게 매혹도 되니 미치겠지ㅎㅎ
남성이라는 상징적 본성이 아니라 각자가 그 시대를 살면서 가지게 된 젠더 인식이 반영된 거라 봐야 할 텐데 그 상태에서 작품을 쓰니 벗어나기 쉽지 않죠. 끊임없는 문단 내 성폭력도 그런 우월주의가 깔려 있어서이기도 하고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보란 말은 일종의 면죄부가 되기 쉽죠. 인식이 반영되지 않는 글, 작품이란 게 가능합니까. 입력된 정보로 움직이는 컴도 그건 불가능하던 걸요ㅎ 데이터축적으로 온갖 차별과 비하 발언을 하던 뉴스가 나오기도 했잖아요ㅎㅎ;
존 쿳시 <포> 읽었을 때 남성작가가 여성을 이렇게 깊게 이해할 수도 있구나 놀란 적 있습니다. 존 쿳시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대개 그랬어요. 환경적으로 많이 겪고 보다 보니 쿳시는 온갖 차별에 대한 반감을 작품에도 늘 드러내죠. 노벨상 받을 만 하다는. <포>는 꼭 읽어 보시길^^

단발머리 2017-09-27 10:53   좋아요 0 | URL
여성을 혐오하거나 지나치게 숭상하는 건 하나의 뿌리라는 생각이 요즘에 많이 들어요.
너무 좋으니까 너무 싫은 것 아닌가. ㅎㅎㅎㅎㅎ

존 쿳시의 작품은 <포> 밖에 안 읽어봤는데, 오래전에 읽었을 때는 큰 감동을 못 느꼈어요.
Agalm님이 노벨상 받을만하다 하시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AgalmA 2017-09-27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르니에가 흑인 노예 프라이데이를 더 부각시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를 썼듯이 <포>도 남성 로빈슨이 아니라 여성 주인공을 부각했다는 게 첫번째로 중요했고요. 서술의 방식도 남성적 서사 방식-뚜렷한 줄기가 아니라 여성적- 호소, 내밀함을 잘 살려 냈다는 점입니다. 남성적-여성적 발화방식을 가르는 것도 차별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으니 감정의 섬세함을 더 다루려 했다 정도로 하죠^^

단발머리 2017-09-29 08:44   좋아요 0 | URL
아니.... 우리 선생님은 왜 Agalma님처럼 야무지고 정확한 설명을 해주지 않으셨단 말입니까.
Agalma님은 페이퍼도 페이퍼지만, 댓글마저도 독서를 부르네요.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오늘 아침에 읽은 책에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글이 있더라구요.
감정의 섬세함, 여성적-호소, 내밀함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기도 하구요.
오늘 아침에는 바람이 쌀쌀하네요~~~ 이제 정말 가을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