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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평점 :
다정한 친구이며 굳건한 동지인 다락방님은 필립 로스 『휴먼 스테인』 리뷰에서 린디 웨스트의 말을 인용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페미니즘은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아가는 기나긴 과정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동의한다. 천천히 깨닫는 과정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고 좋아하는 작가와 이별하는 시간은 슬프고도 아쉽다.
<남자들은 자꾸 내게 『롤리타』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레베카 솔닛은 소설을 읽으며 감정이입하게 되었을 때, 독자는 소설 속 인물과 동일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독자가 스스로를 길가메시와 동일시하거나 심지어 엘리자베스 베넷과 동일시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독자가 스스로를, 롤리타에게 동일시할 때 일어난다.(246쪽) 저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여자로부터 빼앗은 작품으로서, 독자가 남자의 이야기만을 듣게 된다는 관점에서 『롤리타』에 대해 언급했는데, 남자들은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겠다고 나타나서는, “당신이 완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 책은 사실 알레고리다”, “당신은 예술의 기본적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그녀를 비난한다. (252쪽)
사진, 에세이, 소설, 그밖의 것들은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 그것들은 위험하다. 예술은 세상을 만든다. 나는 한권의 책이 인생의 목표를 정해줬다거나 삶을 구해줬다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안다. 내게는 그렇게 삶을 구해준 한권의 책이랄 만한 게 없지만, 그것은 그저 수백 혹은 수천권의 책들이 나를 구해주었기 때문이다. (249쪽)
나를 구해준 수백권(수천권은 아닌 것 같다)의 책 중에 여자가 읽지 말아야 할 책이 다수 포진해 있음을 확인한 글은 <여자가 읽지 말아야 할 책 80권>이다.
몇 년 전 작가 에밀리 굴드Emily Gould는 솔 벨로, 필립 로스, 존 업다이크, 노먼 메일러는 “20세기 중반 여성혐오자들”이라고 명명했는데, 『에스콰이어』 목록에 올랐고 내 목록에도 오를 네 남자 작가를 지칭하기에 딱 알맞고 편리한 별명이 아닐 수 없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내 독서 금지 영역에 포함된다. ... 노먼 메일러와 윌리엄 버로스는 내 독서 금시 목록에서 상위에 오를 것이다. 아내를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지 않은 작가들 중에서도 읽을 작가는 너무 많으니까 ...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모비 딕』마저도 여자가 한 명도 안 나오는 책은 모든 인간에 대한 책이라고 일컬어지는데 비해 여자가 부각된 책은 여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일컬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저 목록(『에스콰이어』 추천 ‘남자가 읽어야 할 최고의 책 80권’)을 좇는 독자는 제임스 M. 케인과 필립 로스에게서 여자를 배울 텐데, 그들은 여자를 배우고 싶을 때 찾아가야 할 전문가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남자들이다.(234-6쪽)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필립 로스의 이름이 두 번이나 언급됐다. 『유령 퇴장』을 읽을 때 어떠했나. 나는 누구에게 감정 이입했나. 나는 누구였나. 내가 동일시했던 그 사람은 누구였나.
나는 만찬회 같은 데도 참석하지 않고 영화 구경도 가지 않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 휴대전화나 VCR나 DVD플레이어나 컴퓨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계속 타자기의 시대를 살고 있고, 월드와이드웹이 뭔지도 모른다. 선거 같은 것도 더는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대개 밤늦게까지 글을 쓰며 보낸다. 독서도 하는데, 주로 학생 때 처음 접했던 책들을 읽는다. ...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주일 내내 글을 쓴다. 그 외에는 침묵한다. (15쪽)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스스로를 네이션 주커먼에게 감정이입했고, 소설 속의 주커먼이 ‘나’라고 말할 때, 그를 나 자신으로 여겼다. 나는 주커먼을 사랑한다. 그를 동경하는 나는,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주커먼이었고 주커먼이어야 했으므로. 나는 주커먼이 되기를 원했으니까.
레베카가 말한다.
나는 이 점에서만은 진지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물건처럼 이용되고 버려지거나, 쓰레기처럼 그려지거나, 침묵하거나, 아예 안 나오거나, 무가치하게 그려지는 책을 많이 읽으면, 그 경험은 분명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은 세상을 만드니까. 예술은 중요하니까. 예술은 우리를 만드니까. 혹은 망가뜨리니까. (255쪽)
이별을 준비하는 작가가 몇 명 있기는 하다. 『남한산성』을 사랑하지만 다시는 『칼의 노래』를 읽고 싶지 않았던 나를, 나의 감각을, 내 느낌을 이젠 조금 더 믿어보려고 한다.
아직 필립 로스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미워한다는 걸 자각할 때의 슬픔은, 아직 필립 로스는 아니라고 말하는 나의 몫이다. 텅 빈 머리에 삶의 목적이 오로지 섹스인 인간, 섹스에만 특화된 존재로 그려진 그 종이, 바로 나와 같음을, 나와 같았음을 기억할 때의 절망 또한 나만의 것이다.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다시 필립 로스를 읽어야 할까. 『유령 퇴장』을, 『휴먼 스테인』을, 『울분』을,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포트노이의 불평』을, 『미국의 목가』를, 『굿바이, 콜럼버스』를, 『전락』을, 『네메시스』를, 『죽어가는 짐승』을, 사랑하고 동경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바로 보기 위해서, 직시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까. 아니면 흐린 기억 속에 그를 묻어, 조금이라도 더 그를 소유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