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들 - 한 소설가의 자서전
필립 로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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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들』의 부제는 한 소설가의 자서전이다. 한 소설가는 필립 로스.

 


1.     소설가의 진화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소설가는 자신이 그리려는 세상, 혹은 자신이 그려내고 싶은 세계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데뷔 전에 이미 결정했다고. 그래서 소설을 쓸 때, 자신이 계획한대로 예정한 대로 소설을 써 나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하나 혹은 두 개라고 생각했다. 쓰고 싶은 한 가지에 대한 다양한 변주만이 가능할 뿐이라고 말이다. 필립 로스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필립 로스의 초기작들은 유대인의 삶에 대한 냉철한 고찰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필립 로스가 평생 동안 유대인의 삶또는 유대인으로서의 삶에 그토록 천착하게 된 것은 그의 의도였기 보다는 그의 첫번째 소설에 대한 유대인들의 폭발적인반응 때문이었다.

 

유대인 집단은 한때 나를 껴안아 더할 수 없는 안정감을 주었던 반면 광적인 불안감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쓴 모든 글이 수치스러운 것이고 모든 유대인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잠재성을 지녔다는 말을 들은 마당에 어떻게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광적인 안정감, 광적인 불안감 유대인의 드라마가 그 이중성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에 대해 그날 밤의 사건보다 더 잘 입증해줄 수 있는 것 내 평생 없었다.

내가 예시바에서 그런 경험을 하고도 글감을 찾기 위해 다른 데로 눈을 돌리는 작가라면, 작가가 될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내가 초반부터 유대인들의 성난 저항을 불러일으켜 예시바에서 당한 수모는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었다. 유명 상표를 갖게 되었으니까. (189)

 


2.     소설가의 사랑

 

먼저 필립 로스를 좀 욕하고 그 다음에 수습하는 방향으로 정리해 보겠다. <사실들>이라는 제목에서부터 필립 로스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사건들 혹은 기억들이 아니라, 사실들이다. 그래서 필립 로스가 사랑했던 혹은 그를 사랑했던 여성들의 목소리는 이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필립 로스의 입장에서 쓴 글임은 확실하다.

 

만나는 여자가 임신할 때마다 그렇게 가슴이 쿵당쿵당 걱정스러웠다면 남성 피임 용구를 사용하셨으면 좋았을텐데… <프렌즈> 시즌 8에서는 레이첼이 임신하게 되었을 때, 로스와 조이가 남성 피임 용구의 효능이 97%라는 걸 새롭게(?) 알게 되고 경악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3%의 놀라운 생명력에 대해 모른 척 하자는 뜻이 아니다. 97%의 확실성을 가진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97%는 정말 놀라운 수치다. 확실하고 검증된 남성 피임 용구를 왜 사용하지 않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164독자들이여, 나는 그녀와 결혼했다.”는 『제인 에어』 “독자여, 나는 그와 결혼했다.”의 패러디로 읽힌다. 그녀의 끝없는 요구와 그녀에게 빚진 모든 것들 앞에서 비정해 보이는 것에 겁을 먹었기 때문에, 아이를 지우면 그녀와 결혼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도망가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기 때문에 그는 그녀와 결혼했다. 결국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 놓은 후에야 두 사람은 헤어질 수 있었는데, 그 모든 과정들은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지옥 그 자체다.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산다는 것. 어쩔 수 없이 산다는 것.

 

나는 많은 시간을 들이고 피를 흘린 뒤에야, <포트노이의 불평>을 쓰기 시작한 후에야, 사람을 기절초풍하게 만드는 그녀의 담대함과 관련된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녀는 나의 최악의 적이었으나, 아아, 가장 위대한 창작 선생, 극단적 소설의 미학에 있어서의 탁월한 전문가이기도 했다.

독자들이여, 나는 그녀와 결혼했다. (164)

 


3.     은 쓸 수가 없는데, 책을 아직 끝까지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체 책의 앞부분은 작가 로스가 주커먼에

게 쓸 글이고, 마지막은 작가 주커먼이 로스에게 쓴 글이다. 작가 주커먼은 이 모든 이야기가 그냥 사실은 아니지 않냐고 작가 로스에게 따질 작정으로 보인다.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는데, 50여쪽 남은 책을 마저 읽을 것인지 아니면 이 글을 쓸지 결정해야 했다.

 

아직도 방학. 아롱이가 오늘의 유일하고 제일 중요한 일정인 바둑 학원에 가면 내게는 딱 1시간 30분이 남기 때문이다. 아롱이가 이제 막 바둑학원에 갔다고, 오늘 학교에 가지 않은 1인에게 전하니, “엄마, **이가 없으니까 그렇게 좋아?”라고 묻는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아니긴 한데, 아니긴 하지만, 사실 확신에 찬 대답은 아니었다. 어제의 승자가 잭 리처였다면, 오늘의 승자는 복숭아이기에. 아아, 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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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8-08-24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레논의 어머니가 임신해도 너희들은 결혼할 필요없다는 해안을 제시했으나, 그들도 결혼하여 지옥을 만들었던 일이 문득 생각나네요.

저는 아이가 미술학원에 간사이 혼자 쉴때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8-24 19:32   좋아요 1 | URL
존 레논의 어머니가 그런 말을 했었군요.

무해한모리군님의 아이는 미술학원 잘 다녀왔나요?
잠깐의 휴식은 이렇게 금방 끝나가고, 두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08-2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 숭!! 아!!
🍑🍑🍑🍑🍑🍑🍑🍑🍑🍑 두둥.

단발머리 2018-08-24 19:34   좋아요 0 | URL
복숭아를 고르는데, syo님에게 걱정을 끼쳤던 맛없는 복숭아가 자꾸 떠올랐네요.
다행히 저는 맛난 복숭아를 골랐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stella.K 2018-08-24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심각하게 쓰시다 복숭아로 마무리 지시다니...
이거 원 복숭아 여파가 좀 심각한 것 같군요.

단발머리 2018-08-24 19:36   좋아요 1 | URL
제가 복숭아를 좋아하기는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syo님이 복숭아는 8월 한 철이라고 해서요.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stella.K님도 복숭아 많이 드시길요^^
 
아담, 이브, 뱀 - 기독교 탄생의 비밀
일레인 페이걸스 지음, 류점석.장혜경 옮김 / 아우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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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종교사학자 일레인 페이걸스의아담, 이브, 뱀』 구약성서 창세기 1장에서부터 3장까지 죄의 등장, 타락, 추방 이야기를 기본으로 초기 기독교 사회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특히 책은 예수의 메시지 자체에 대한 연구서라기보다는 메시지가 내포한 실천적 요소, 예수와 그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어떻게 읽었는가에 대한 연구서이다. (41) 



예수의 삶과 메시지를 열거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희생과 변혁, 다가올 시대를 맞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다.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구하는 자에게 주고 자기 것을 가져간 자에게 다시 달라고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 이후, 기독교 운동이 로마제국 내에서 기세를 떨쳐감에 따라 이교도 출신의 개종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은 결혼을 사회・경제적 계약으로, 동성애 관계를 남성위주 교육의 예견된 산물로, 남성이나 여성의 매춘을 일상적이며 합법적인 행위로, 그리고 이혼, 낙태, 피임, 원치 않은 유아 유기를 현실적 방편으로 인정해 왔던 자신들의 문화와 관습에서 벗어나 예수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는 사회 파괴적 행동이었다. 



아내의 간통이 이혼의 정당한 사유라는 주장 또는아내가 남편의 수프를 태웠다 이유만으로도 아내와 이혼할 있다고 믿었던 일부 유대교의 전통에 반해, 예수는 이혼을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주장했다.(48) 유대교 분파들을 파벌로 분열시킨 요소는 이혼의 근거에 대한 의문이지 이혼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이 아니었음에도, 예수는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말함으로써 유대 청중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예수의 추종자들이만일 이러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라며 불평하자, 예수는그래, 결혼하지 않는 낫겠다 말함으로써 추종자들을 더욱더 경악시켰다. 



임박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혁명적 메시지로 인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일상의 평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총체적 사회 변화, 혁명적 운동으로다가올 시대 시작 도래할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대로소유를 팔아 구제하며”, “가족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나”, “순결하고 구별된 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예수의 열정적 제자 바울의 서신에서도 이러한금욕적 대한 독려가 계속된다.   



지배계층을 비롯한 로마인들이 기독교인들을 특별히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한 원인은, 로마인들에게는 통치자에 대한 일상적인 존경 정도로 여겨지는 특정 행위를 기독교인들이 거부했기 때문이다.(82)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일상생활에서 훌륭한 시민으로서 법을 준수했고 내야 모든 세금을 바쳤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은 행정관의 가지 명령만은 극구 거부했는데, 신들이나 황제 수호신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명령이었다. 신들과 황제 수호신에 대한 숭배 거부로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는데, 가난한 사람들, 특히 노인과 버려진 아이 과부들이 기독교인의 자선활동을 환영했으며 기독교 운동에 적극 호응하며 참여했다. 인간 개개인을 계급, 가족, , 교육, 성별, 신분에 의해 서열화하는 사회에서, 기독교가 전파하는 메시지는 통제할 없는 폭발력을 발휘했다. 로마제국 수도에 거주하는 주민의 75% 법률에 따라 인적 자산으로 분류되는 노예들이거나 노예의 자손들이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노예 소유주가 있었고 이들은 이교도 이웃들처럼 생각없이 노예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은 가난한 자들의 움막이나 노예들의 처소를 돌아다니며 도움의 손길과 돈을 나눠주었고, 가난한 사람들, 무지한 사람들, 노예, 여성, 외국인들에게 좋은 소식 복음을 전했다. 이들이 전한 복음이란, 계급과 교육과 성별과 신분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인간은 유일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황제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하나님 앞에서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이었다. (113)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며 어떤 이는 통치하기 위해 다른 이는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당대의 일반적 믿음에 반해자신의 권리인 자유에 입각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겠다 기독교인들의파격적인주장은 그들이 보여준 엄격한 도덕성에 더해 기독교 운동에 적개심을 품고 있던 이교도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125) 



기독교인들은 서기 4세기 동안 그리고 이후에도 최고의 자유란 최고의 절제, 무엇보다도 금욕적인 삶에 의해 가능하다고 믿었다.(157) 기독교인들에게 금욕적인 삶이란, 일상적인 사회와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관계의세계 거부하는 것이었으며 자기 자신의 삶을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로마의 전통적 시각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은세상과 단절한자들, 가족・씨족・민족을 부인한 자들이었고, 자신을바보 선언한 자들이었다. 가장 물의를 일으킨 성행위와 관련된 기독교인들의 엄격한 윤리적 태도였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교도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의 성적 행위공중목욕탕에서 행해지는 스승 혹은 친구와의 동성애적인 행위나 노예나 창녀들을 성적 유희 대상으로 삼는 행위 거부했으며, 동성애・피임・낙태・유아 살해도 금기시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에게 성행위는 임신의 위험을 무릅쓴 부부 사이의 행위로서, 가족생활이라는 사회적・경제적 의무와 관련된 것이었다. 예수와 그의 신봉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그런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한 , 파괴의 길을 걷도록 부추겼다. (162) 



사회적, 정치적 속박에서 벗어날 있는 자유를 원했던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가치를 사회적 공헌에 따라 평가하는 이교도들에 맞서서, 자율적인 선택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수립했다. 이는 서양에서개인의 절대적 가치 발전하게 사상의 씨앗들이었다. 



모든 개인은 하나님이 부여한 내적 가치를 지니며 사회적 공헌과는 상관없이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상은 오늘날 서구의 법률 정치에서 윤리적 근간으로 작동하고 있다. 민주사회라는 서구의 세속적 이념 많은 부분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품었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에서 비롯되었다. (161) 



자유의지, 사악한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사회적・성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전제주의적 정부와 운명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창했던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는 로마 제국의 기독교 공인 이후 변화를 겪게 된다. 4세기말 기독교는 이상 반체제적 소수 종파가 아니었다. 기독교는 황제의 종교였다. 자유롭게 신앙생활에 몰두할 있고 그러한 신앙생활을 공적으로 장려받았던 세상에서, 자유를 추구했던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인간의 속박에 관한 이야기로 바뀌게 된다. 아담의 죄는 인간의 죽음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서 도덕적 자유를 박탈하고 돌이킬 없을 정도로 성적 경험을 타락시켰기에 참다운 정치적 자유를 가질 없게 했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이 정치적으로 유효적절했던 이유는, 그의 원죄설이 많은 동시대인을 설득해 모든 인간에게는 외적 통제(그들의 경우엔 기독교 국가와 제국의 지지를 받는 교회를 의미했다) 필요하다는 관념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26)



저자는 푸코가진리의 정치학이라 이름 붙인 문제를 언급한다. , 우리 각자가 진실이라 믿고 행동의 근거로 삼는 것은 우리가 처한 사회적・정치적・문화적・종교적 상황 또는 철학적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28) 



초기 기독교 발전 과정에서 정통파와 영지주의자들 간의 오랜 논쟁을 정리한 부분은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면 읽어내기 힘들 같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자유의 수호자'에서 '자유를 잃어버린자로 탈바꿈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끝까지 읽었지만, 3분의 1 무게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던 지혜로운 동물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내게 제목을 붙이라 한다면, 부제기독교 탄생의 비밀 참고해초기 기독교사에서 자유의 문제혹은기독교, 자유를 낳다등으로 붙이겠지만, 『아담, 이브, 뱀』이 주는 매력을 잃어버려야 하니, 다시아담, 이브, 뱀』으로 돌아가야겠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첫 번째 추천 도서, 현재 품절 상태여서 소중하게 느껴지는 『아담, 이브, 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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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독서 - 현재진행형, 엄마의 자리를 묻다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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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shin님은 책이 읽었던 육아서 중에 최고라고 하셨는데, 그런 찬사에 동감한다. 사실 엄마의 독서,라는 제목에서는 한국의 흔한 엄마를 상상하게 된다. 독서가 좋대. 독서 하는 애들이 공부도 한대. 그러니까 책을 많이 읽혀야 . 책도 많이 사야 돼고. 그래서 이번에 새로 전집 그거 들여놓았잖아. 아이들을 위해 책을 찾아보고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책을 구입하는 엄마들을 폄하하려는게 아니다. 연령에 적합한 독서지도법이 있고, 여러 읽을만한 좋은 책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권하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엄마 독서 대부분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권하기 위한선별 작업이다. 당연히 필독서 위주일 수밖에 없고, 책을 권하는 기간도 매우 한정적이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학원 숙제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0세부터 10세까지가 책을 제일 많이 읽는 연령대다. 본격적으로 어려운 책들을 읽기 시작하고, 한국말의 유려함을 음미하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책읽기가 가능해지는 연령의 아이들은 모두 문제집과 뜨거운 중이다. 



그래서 이런 방향 목적으로엄마의 독서라는 책을 집은 사람이라면, 그런 엄마라면 적잖이 실망할 밖에 없다. 책은엄마의 독서 대한 책이다. 엄마라고 호명된 사람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읽어나가는 독서 여정에 관한 책이다. 책의 시작점 자체가페미니즘 모먼트이다. 결혼 이후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새로운 신분에 편입된 이후 그녀가 겪었던 불합리한 처우에 대한 억울함이 독서 여정의 강력한 추진력이 되어준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사회 전체가 한통속이 되어 적군으로 변한 듯한 상황에서 나는 자포자기 상태로 나날을 보냈다. 그런 상황은 끝날 없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고, 남편과 나의 차이는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었다. 그는 대리에서 과장으로, 차장으로, 부장으로 승진하고 연봉도 차곡차곡 오르며 가방끈도 길어질 것이나, 나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영영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식탁 밑을 기어 다니며 밥풀을 떼어내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러댈 것이었다. (49)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자는 주저없이외로움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오직 혼자만 있는 같은 느낌, 건너로 화려하고 북적이는 세상이 보이는데 나만 홀로 외딴 섬에 고립돼 끝없이 고행을 반복하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반대였다. 다시 일을 하게 된다 해도,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해도 스스로를전업주부라는 카테고리에 넣고 싶지 않았다. 뻔하고 단순한 것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에 목매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다음주에 만날까?’하고 전화할 친구들이 있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기 어려울 때는우리집에 놀러와~’ 말할 후배가 있었다. 양쪽 부모님들이 가까이 사셨고, 언제든 아이를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학교 모임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다. 가능하면 ‘** 엄마 호출되는 모든 자리를 피했다. ‘** 엄마 빼고서는 나를 설명할 다른 말이 없었는데도, 나를 규정할 다른 단어가 전무한데도, 나는 ‘** 엄마로서의 나를 거부했다.   



엄마들과 많이 어울리지 않았기에 사교육 정보에는 완벽하게 무지했다. 큰아이 4학년때, 임원 아이들 엄마 모임에서 아이의 영어 학원 레벨을 말하며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엄마를 봤다. 아이가 어느 대학에 갔는지를 자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것이 엄마의 성과이기에 자랑해도 된다는 암묵적 동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이기는 하지만, 영어 학원 레벨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티가 났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다음이었다. 다른 엄마들이 다들 감탄하며 엄마를 부러워하는 것이다. ? 그래요? 브릿지야? , 브릿지? 브릿지는 청담어학원 레벨 하나다. 나는 세계와도 친하지 않았다. 소신만으로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교육은 가장 중차대하고 엄중한 투자 대상이다. 남편과 나는 사교육에 관한, 아이들 공부에 대한, 사교육비 지출에 대한 생각이 일치한다. 나는엄마표정보에 일희일비 하지 않을 있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학습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저자는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읽게 , 틀에서 인간의 특성을 보고 근본적으로 사유하게 되면서 한결 자유로워진다. 자잘한 현상 하나하나에 일일이 흔들리지 않는 힘을 얻게 된다.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에서는 양육에서 아이들이 가진 무한한 파워에 의문을 제기하고, ‘민주적인 엄마라는 신화에 도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 순간에도 망설이고 뭉그적거렸던 자신의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됐던 저자는 일관되고 단호한 어조의 엄마가 이랬다저랬다 하는 엄마보다 아이들에게 혼란스러울 것임을 알게 된다. 



나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항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안전과 공동체에 대한 예의. 가지가필수 규칙 주를 이루었다. 범주에 들어가는 문제들에 한해서는 일관되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되, 나머지 문제들에서는 최대한 허용해주자는 것이 내가 정한 방침이었다. (168)  


그에 더하여 숱하게 많은 육아서를 읽어왔던 경험치로 기존의 육아서들의 한계를 발견한다. 나는 지적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책을 통과해가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읽었던 육아서들이 실은 엄마들용으로 마련된자기 계발서였다는 것을. 육아와 가사를 온통 엄마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사회구조를 직시하기보다는 시선을 엄마인 자신에게로 향하게 만드는 자기계발서. 아이의 육신과 정신 모두 너에게 달려 있으니 시종일관 자신을 채찍질하여 어떠한 순간에도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이를 악물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엄마로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자기계발서. (166) 



나도 그런 말을 하던 사람이었다. 나도 생각없이 그렇게 말하던 사람이었다. 육아서, 가끔 읽어줘야 한다고. 아이들 크는 금방이라고. 금방 커서 훌쩍 곁을 떠나갈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예뻐해주고 사랑해 줘야 한다고. 30 가까이 살아왔던 자신을 잊고 자신을 뒤로 하고, 이제 엄마로 살라고. 엄마로서만 살라고 말하는 그런 , 책들.  



현재진행형, 엄마의 자리를 묻는 엄마의 독서. 정아은 작가가 찾은 답이다. 



정말 좋은 엄마가 되려면좋은 엄마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세상에좋은 엄마 없다. 30 동안 엄마가 아닌 상태로 살아오고, 그에 따라 자기 고유의 성향과 습속과 역사가 형성돼 있고, 행복과 성과와 명예를 추구하고 싶은 인간이 자신의 여러 역할 하나로엄마 받아들인 상태가 있을 뿐이다. 엄마가 아이와 맺는 관계는 엄마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일부분이다. 다른 관계보다 가깝고 영향력이 뿐이다. 엄마가 자신을 둘러싼 우주와 연계를 끊어버리고 오직 엄마로만 기능하려고 하면, 아이와 우주의 관계도 끊어진다. … 


그러므로 좋은 엄마가 되려면, 그냥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 내가 좋은 인생을 살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하고, 감정에 충실하고, 다른 이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면 된다. ‘엄마 나의 수많은 정체성 하나일 , 나의 정체성 자체가 되지 않도록 하면 된다. (263) 




아주 시원시원하게 읽히는 책이다. ‘이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기쁨과 슬픔, 외로움과 질투, 행복함을 함께 엮어낸 작가에게 화이팅을 전한다. 



좋은 엄마. 번도 좋은 엄마이길 원한 적이 없었다. 없다는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영양 만점 집밥 대신 오뚜기 컵밥을 줘도 다정한 엄마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만났을 , 우리가 만났을 , 


다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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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8-08-06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뚜기 컵밥은 아니지만 이제 막 버거킹 버거 멕였지만 그래도 저도 다정한 엄마❤️

단발머리 2018-08-06 16:18   좋아요 0 | URL
집에 들어갈 때 버거킹 버거 사 가려고 해요. 오늘 저녁은 콰트로치즈와퍼. 3900원입니다.
야나님은 다정한 엄마 맞구요. 다정한 사람 맞아요.

이제 제 차례예요.
저는 다정한 엄마, 다정한 사람이 될 꺼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8-08-0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불끈!!

단발머리 2018-08-09 08:38   좋아요 0 | URL
남자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힘든 순간이 많아서 욕하는 장면이 간간히 나옵니다. ㅎㅎㅎㅎㅎㅎㅎ
제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조금 있었구요.

위의 제가 인용한 마지막 문단이, 평소의 제 생각과 일치해 전 그 점이 좋았어요.
다락방님표 감상도 기대되네요~~

책읽는나무 2018-08-06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다정한 엄마 되고 시포요!!
허나~~여름에 덥다길래 학원 끊고 집에서 같이 숨을 토해내고 있자니~~폭염속 실내에선 전기세 무서워 에어컨을 켰다,껐다를 반복하면서 결코 다정해질 수가 없네요ㅜㅜ
이건 폭염때문만은 아닐진대~~~???

단발머리님 글을 중간에 읽으면서 문득 얼마전에 읽은 김소영작가의 에세이집에서 읽은 일본 책방답사중 어느 서점에 아동도서코너가 있었는데 그곳 중간 작은 코너에 엄마 자신들을 위한 추천도서가 있었대요.거기엔 주로 페미니즘 책들이 많았답니다.
엄마지만 여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수련?해가는 것이 ‘엄마의 독서‘인셈인거죠.
님의 글에서 많이 겹쳐지면서 읽혔어요^^

그리고.....다정한 엄마!!
이건 제겐 많은 수련이 필요합니다만....저두 하고 싶네요.
여름방학동안만이라도~~~우리 해보아요^^

단발머리 2018-08-09 08:44   좋아요 0 | URL
아, 학원도 끊었다니 아이들과 함께하는 진정한 방학이시군요. ㅠㅠ
책읽는나무님, 아이가 셋인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그냥 마구마구 박수받아야 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에어컨은 켰다, 껐다 하면 전기세가 더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흐흑...

김소영 작가의 책도 좋군요. 저도 제목이 특이하고 좋았어요.
사실 그런 생각도 조금 했거든요. 진심일까.
인기 많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이 아니라, 운영이 걱정되는 작은책방을 낸 일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을까...
진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는 걸 보노라면요.

여름방학에는 특히!!
다정한 엄마가 어렵네요. 그러나, 우리.... 해보아요!!!

라로 2018-08-07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정한 엄마!!! ㅎㅎㅎㅎ (모든 엄마들의 로망일까요?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8-08-09 08:46   좋아요 0 | URL
라로님은 다정한 엄마세요~~~
라로님댁 자녀들이 엄마 생일에 내미는 생일 카드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어요.
진심 부럽사옵니다~~~

저도 엽서세트 사러 갈까봐요. 아이들에게 먼저 엽서를 쓰는 다정한 엄마.... ㅠㅠ
 
힐러리 클린턴 - 페미니즘과 문화전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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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의 기행을 1 이상 보아왔던 상태에서 읽는힐러리 클린턴』 감회가 새롭다. 저자 강준만 교수는힐러리학 핵심을 페미니즘과 문화전쟁으로 보았다. 문화 전쟁의 전선으로 첫째, 진보-보수 갈등의 이념 전선. 둘째, 남녀 차별을 넘어서려는 페미니즘 전선. 셋째, 매우 강한 권력의지 또는 권력욕을 충족시키려는 권력 전선. 넷째, 기득권 체제에 도전한다고 믿음으로써 독선을 정당화하는 소통 전선. 다섯째, 공적 봉사와 자신의리무진 리더쉽행태 사이에 아무런 갈등이 없다고 믿는 위선 전선을 꼽았다.(20) 



대학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남자와 결혼하는 일은 흔치 않다. 게다가 미국 아니라 이제는 한국에서도 대학 시절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한 남자와 이혼하지 않고 오래 사는 일은 흔치 않다. 힐러리가 그런 경우다. 1969 3 31일에서 웰즐리대학 최초의 학생 졸업 연사였던 힐러리는 반전에 대한 열정적인 연설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주요 언론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 예일대학 법대에 입학했을 이미 유명인사였던 힐러리는 도서관에서 흘깃흘깃 자신을 쳐다보는 클린턴에게 통성명을 먼저 제안한다. 클린턴과 사랑에 빠진 힐러리는내가 만나본 남자들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남자였어요.”라고 말했고, 반면 클린턴은그녀는 내가 일찍이 남자든 여자든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보지 못했던, 강인하고 침착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했다. (55)  



권력 지향적이었으며, 대통령을 꿈꾸는 남자와 사귀고 싶어했던 힐러리는 클린턴을 선택한다. 아칸소주 하원 의원 낙선, 아칸소주 법무부 장관 당선, 아칸소 주지사 당선, 주지사 재선 패배, 아칸소 주지사 재도전 성공, 그리고 대선 도전. 클린턴은 대선 출마 발표 연설에서새로운 형태의 리더쉽 약속한다. 그는 아주 태연하게 할인 세일 구호까지 동원해가면서하나를 사면 하나는 공짜 Buy One, Get One”라고 했다. 힐러리가 워낙 똑똑하니 자신을 찍으면 대통령 하나를 거저 얻는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모두 인정하듯 힐러리는 클린턴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다. “나는 그저 남자 곁에 있는 그런 여자가 아니에요.”라는 그녀의 그대로, 백악관 입성 이후 힐러리는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에 머물지 않고힐러리케어 불리는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했다. 힐러리 보좌진의 규모는 30 정도로 부통령의 보좌진보다 많았고, 백악관의 사무실에 대통령과 부통령의 사진을 나란히 거는 관행도 바뀌어 클린턴과 힐러리의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129) 하지만, ‘트래블게이트’, ‘포스터게이트’, ‘트루퍼게이트 인해 지지도가 추락하고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힐러리는 2선으로 물러나 클린턴을 뒤에서만 돕겠다고 선언한다. 



1998 1 17,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이 터진다. 주지사 시절부터 끊이지 않았던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은 급속하게 확대되었는데, 우익의 거대한 음모에 언론이 날개를 달아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론들은 별다른 확인 없이 익명의 제보만으로 오보를 일삼고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았다.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은 자체로 하나의 사업이 되었다. 국가 예산 4,000 달러를 들여서 만든 스타 보고서는 본문만 5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었으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클린턴의 대배심 증언마저 끝내 방송되었다. 1999 2 12, 상원은 클린턴에 대한 탄핵안을 부결했다. 이후 힐러리는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섰다. 민주당 경쟁자는 정치 신예 오바마였다.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언론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힐러리 지지를 선언했다. 



스타이넘은흑인인 오바마를 지지하는 것은 인종 통합이고, 여성인 힐러리를 지지하는 것은 남녀 갈등 조장이라니 말이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녀는오바마처럼 지역사회 운동가와 변호사, 주의원 8년에 흑백 혼혈이라는 동일한 조건을 갖춘 정치인이 여성이었다면 대통령 후보에 오를 있었겠는가라고 물으며, 미국 정치가 여전히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70) 



오바마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있었던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무엇보다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오바마의뉴스 가치 힐러리의뉴스 가치 압도한다고 판단했다.(281) 대통령에 취임한 오바마는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기용했다. 취임 이후 오바마의 지지율이 추락했을 때는 미국 국민 3분의 2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클린턴이 나섰다. 클린턴은 오바마의 재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이는 모두 힐러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이라크 전쟁 지지, 퇴임 이후 클린턴 부부의 고액 강연, 힐러리 패밀리의 특권 퍼레이드, 이메일게이트 등으로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트럼프의 비상식적 언행으로 공화당 의원들의 힐러리 지지 선언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의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들이 힐러리의 낙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아는 대로, 힐러리는 48.2% 득표율로 46.1% 트럼프를 앞섰으나, 선거인단 수에서 227 그쳐 304 선거인단 수를 확보한 트럼프에게 패했다.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가장 높은 곳에 가고자 했던 힐러리는 실패했다. 



맺는말힐러리를 위한 변명 책의 백미다.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말이다. 



정치적 경주에 임하는 여성 앞에는 온갖 종류의 장애물이 막아선다. 여성이 책임을 정도로 충분히 강하지 못하든 심술궂은 성격 때문이든 상관없다. 또한 여성이 너무 남성적이거나 남성적이지 못해도 마찬가지다. 외모가 괜찮아도 반대 세력이 생겨나고 못생겨도 마찬가지다. 기혼으로 자녀를 기르는 것도 미혼에 자녀가 없는 것만큼이나 문제가 된다. 정리하자면, 여성에게는 암묵적으로 이중 잣대가 적용된다. 여성 정치인은 남성 정치인보다 순수한 목적을 가졌으며, 동정심이 많으며, 개인적인 야망보다 사회적 이슈가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 가정한다. 요컨대, 우리는 여성에게 정치라는 것을 넘어서 달라고 요구한다. (416)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에게도 강요되는 이중구속 double bind 환경은 대통령을 꿈꾸는 여성에게는 더욱 강력하게 작용한다. 힐러리는 자신이 겪은 이중구속의 딜레마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성들은 딜레마에 처하곤 한다. 한편으론 똑똑하게 자립해야 한다. 반면, 아무도 언짢게 하지 말고 누구의 발도 밟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417) 



거짓말쟁이, 자신의 말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개의치 않는 사람, 독선적이고 오만한 사람. 그런 사람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매력 역시 무시할 없는 요소다. 뚜렷한 이유 없이 싫은, 이유 없이 미운 비호감의 근거를 추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여러 언론의 집중 포화 속에서힐러리 욕하기’, ‘힐러리 죽이기 게임의 하나로서 작동했음을 부인할 없다. 이에 더해 가진사람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야망 가진여성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무의식적인 편견 또한 고려해야 한다



여성해방주의 주창했다고 하기에는 힐러리의 주장들은 밋밋한 감이 없지 않다. “인간의 권리는 여성의 권리,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라는 주장이 그렇게도 과격한 주장인가. 결혼식 피로연에서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힐러리 로댐으로 남겠다 선언으로 클린턴의 어머니를 울렸던 힐러리는 클린턴의 주지사 재선을 앞두고서는힐러리 클린턴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녀를 둘러싼 현실이 그러했고 그러한 현실이 그녀에게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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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6-23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힐러리에 대해서는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데요. 일단 여자이기 때문에 그의 업적이나 능력이 과소평가 된 것은 맞다고 생각해요. 제가 트럼프가 당선된 다음에 남편에게 흑인은 대통령이 되도 여자는 아직 안되는군 하고 말하긴 했는데요.어느정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 다는 아닌 듯 해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된 거는 미국 선거제도의 문제이기도 했구요. 실제로 힐러리가 더 많은 표를 얻었으니까요. 아들 부시때도 일어났던 일인데 선거인단으로 해서 이긴 주의 숫자를 다 먹는 이상한 방식때문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죠.
저 역시 힐러리를 찍었고, 트럼프랑은 비교도 할수도 없이 나은 사람인건 맞지만 힐러리 좋아서 찍은 건 아니거든요.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탐욕도 많고 인간적으로 끌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에요. 버니 샌더스랑 경선할 때 민주당 지도부? 와 손잡고 상당히 편파적으로 한 것도 그렇구요. 저는 여자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것도 안되지만 마찬가지로 여자이기때문에 우리가 지지해야 한다는 것도 반대에요. 박근혜라는 대표적이 예가 있잖아요 물론 힐러리랑 비교한다는 거 말이 안되지만요. 머리에 떠오른 건 많은데 제 생각이 제대로 표현되었는지는 모르겟네요.

단발머리 2018-06-23 10:22   좋아요 0 | URL
미국 선거제도의 특이성은 미국 대통령 선거 있을 때마다 듣게 되는데 아무튼 참 신기한 것 같아요. 각 주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그런거겠죠?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만 봐도 힐러리가 개인적인 욕심도 많이 부리고 명성을 이용해 축재도 많이 하고 그렇기는 한것 같아요. 이메일 게이트도 단순하게 볼 일은 아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는 힐러리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 가혹한 평가를 받지 않았나 하고 문제제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여자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건 안되지만 여자라서 지지하는 건 아니다, 라고 생각하잖아요. 전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힐러리는, 여자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면에서 불공정한 대우 혹은 평가를 받은건 아닌가 하고 이 책은 묻고 있어요. 이를 테면, 정치의 본질인 갈등 상황에 대처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정치인에게는 ‘후안무치‘라는 정치 근육이 필요한데, 남성 정치인에게 그것은 꼭 필요한 자질인 반면 여성 정치인에게 이것은 치명적 결함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세계적으로 성공한 여성 지도자들의 공통된 특성은 대부분 ‘호전성‘이었다.
이런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 같구요.
저도 제 생각을 제대로 표현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지난 대선에서 진짜 힐러리를 찍으신 분이랑 힐러리 이야기 하니까 완전 좋은대요^^

psyche 2018-06-23 11:46   좋아요 0 | URL
여자라서 불이익을 받은 점이 있다는 거 완전 동감합니다. 하지만 페미니즘 쪽에서는 힐러리가 여자라서 지지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인듯 느꼈어요. 저는 후안무치는 남자에게는 여자에게든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 정치인이 그렇게 했다면 비판했을 여성들이 힐러리를 두둔하는 것 또한 맘에 안들었었거든요.
저는 사실 경선때는 버니 샌더스를 밀었지만 (차에 스티커도 막 붙이고 다니고 그랬었다죠) 경선이 끝난다음에는 힐러리 편이었어요. 내맘에 꼭 드는 건 아니지만 트럼프랑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요.

단발머리 2018-06-23 12:04   좋아요 0 | URL
저도 프시케님 의견에 동감합니다. 정책 자체로 보면 힐러리보다는 샌더스가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세상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여자라서 지지하는 건 안되죠.

그럼에도 저는 힐러리가 퍼스트 레이디, 의료개혁 추진, 상원의원 당선등을 넘어서 미국 주요 정당 민주당의 대권후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한다면 ‘여자라서‘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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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 글자 미니 에세이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각각 사람, 생활, , 일상, 글의 다섯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책에 대한 부분을 먼저 읽는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남자인 알았던 여자 시인 쉼보르스카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다. 지독하게 추운 날씨. 장갑을 시를 쓴다는 폴란드 시인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가끔 달빛이 온기에 겨워 장갑을 벗는다는 폴란드 시인은 쉼보르스카 자신이기도 할테니, 장갑을 끼고 시를 쓰다 달빛에 장갑을 벗는 쉼보르스카를 상상한다. 



『숨그네』 책을 읽으며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다. 몽환적이며 비약적인 문체,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의 조합이 헤르타 뮐러를 통해 가능하다는 말에 금방 솔깃해진다. 롤랑 바르트의애도일기』 그렇다. 어디까지가 문학일까. 어디까지가 사적인 기록일까. 사람들은 유명인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기록을 궁금해한다. 롤랑 바르트는 메모지에 어머니에 대한 단상을 적어가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야기는 고백으로서만 자리할것인가. 이야기는 문학이 것인가. 그의 애도일기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롤랑 바르트의 죽음이 앞당겨짐으로 해서 가공되지 않은 독자들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나도 롤랑 바르트를 읽고 직접 확인하고 싶다. 그의 기록은 고백이 되었을까. 아니면 문학이 되었을까.




책에 대한 글들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집밥이라는 글이었다. 『타임푸어』 문단이 떠오르기도 했다. 



집안의 먼지가 없어지고 냉장고가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냥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자. 케첩으로 만든 스파게티와 좋은 사람들만 있으면 충분하다(<타임푸어>, 454) 




외지에 떨어져 있는 아이들이 돌아오는 주말, 엄마는(저자는) 중복되지 않게 식단을 짠다. 아침엔 초밥, 점심엔 냉면, 저녁엔 피자, 다음날 아침엔 고깃국, 점심은 스파게티, 저녁은 삼겹살. 엄마로서의 임무를 끝내고 뿌듯해하는 찰나, 아들이 속내를 말한다. 집밥이 그리웠는데, 엄마가 차려준 집밥이 아니라 요리였다나. 아들이 바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소박한 밥상이란다. 구수한 된장찌개에 시원한 열무김치, 고등어 토막. (31) 몸에 땀이 범벅이 되고서도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어머니에게서 한참이나 불량 엄마지만, 끼니 걱정하는 마음만은 똑같이 품고 사는 1인으로서 그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한편엄마, 제가 정말 바라는 소박한 밥상이예요라고 말하는 아들이 너무 예쁘다. 예쁘게 말하는 아들은 듬직하게 자란 멋진 청년이 분명하겠지만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의 참맛을 아는 아들은, 예쁘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바라는 이런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도 그런 아닐까 한다. 소박하고 평범한 밥상, 도란도란 마주앉아 오늘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고, 마주 보고 웃고, 그리고 이야기하는. 



김살로메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집밥 같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속이 편안해지는. 든든한 끼가 되고 피와 살이 되는 그런 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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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6-1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은데 아직 받지 못했어요. ㅠㅠ

단발머리 2018-06-16 13:02   좋아요 0 | URL
아하..... 어쩌죠. 미국 알라딘 조금 더 힘내주시기 바랍니다.
라로님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답니다^^

cyrus 2018-06-1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의 재봉틀’이라는 글도 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수필이었어요. 어린 시절 부정적인 추억으로 남은 재봉틀 소리를 긍정적으로 소환하는 작가의 글쓰기가 정말 좋았고 부러웠습니다. ^^

단발머리 2018-06-16 14:30   좋아요 0 | URL
저에게도 읽는 즐거움을 맘껏 느낄 수 있던 좋은 시간이었어요. 새로운 책들도 알게 됐구요.
cyrus님도 저처럼 마음 편안한 시간을 보내셨군요^^

2018-06-16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8-06-1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스러운 책에 사랑스러운 리뷰에요.

단발머리 2018-06-17 19:53   좋아요 1 | URL
사랑스러운 리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ㅎㅎㅎㅎㅎㅎㅎㅎ
사랑스러운 책인거는 확실해요.
책 표지랑 크기랑 디자인이 너무 이뻐서 저는 밖에 나가 읽을 때는 ‘북커버‘에 얌전히 넣어서 이동했습니다.

감사해요, 프레이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