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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 페미니즘과 문화전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10월
평점 :
미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의 기행을 1년 이상 보아왔던 상태에서 읽는 『힐러리 클린턴』의 감회가 새롭다. 저자 강준만 교수는 ‘힐러리학’의 핵심을 페미니즘과 문화전쟁으로 보았다. 문화 전쟁의 전선으로 첫째, 진보-보수 갈등의 이념 전선. 둘째, 남녀 차별을 넘어서려는 페미니즘 전선. 셋째, 매우 강한 권력의지 또는 권력욕을 충족시키려는 권력 전선. 넷째, 기득권 체제에 도전한다고 믿음으로써 독선을 정당화하는 소통 전선. 다섯째, 공적 봉사와 자신의 ‘리무진 리더쉽’ 행태 사이에 아무런 갈등이 없다고 믿는 위선 전선을 꼽았다.(20쪽)
대학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남자와 결혼하는 일은 흔치 않다. 게다가 미국 뿐 아니라 이제는 한국에서도 대학 시절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한 남자와 이혼하지 않고 오래 사는 일은 흔치 않다. 힐러리가 그런 경우다. 1969년 3월 31일에서 웰즐리대학 최초의 학생 졸업 연사였던 힐러리는 반전에 대한 열정적인 연설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 예일대학 법대에 입학했을 때 이미 유명인사였던 힐러리는 도서관에서 흘깃흘깃 자신을 쳐다보는 클린턴에게 통성명을 먼저 제안한다. 클린턴과 사랑에 빠진 힐러리는 “내가 만나본 남자들 중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남자였어요.”라고 말했고, 반면 클린턴은 “그녀는 내가 일찍이 남자든 여자든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보지 못했던, 강인하고 침착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고 했다. (55쪽)
늘 권력 지향적이었으며, 대통령을 꿈꾸는 남자와 사귀고 싶어했던 힐러리는 클린턴을 선택한다. 아칸소주 하원 의원 낙선, 아칸소주 법무부 장관 당선, 아칸소 주지사 당선, 주지사 재선 패배, 아칸소 주지사 재도전 성공, 그리고 대선 도전. 클린턴은 대선 출마 발표 연설에서 ‘새로운 형태의 리더쉽’을 약속한다. 그는 아주 태연하게 할인 세일 구호까지 동원해가면서 “하나를 사면 하나는 공짜 Buy One, Get One”라고 했다. 힐러리가 워낙 똑똑하니 자신을 찍으면 대통령 하나를 거저 더 얻는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모두 다 인정하듯 힐러리는 클린턴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다. “나는 그저 내 남자 곁에 서 있는 그런 여자가 아니에요.”라는 그녀의 말 그대로, 백악관 입성 이후 힐러리는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에 머물지 않고 ‘힐러리케어’라 불리는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했다. 힐러리 보좌진의 규모는 30명 정도로 부통령의 보좌진보다 많았고, 백악관의 사무실에 대통령과 부통령의 사진을 나란히 거는 관행도 바뀌어 클린턴과 힐러리의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129쪽) 하지만, ‘트래블게이트’, ‘포스터게이트’, ‘트루퍼게이트’로 인해 지지도가 추락하고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힐러리는 2선으로 물러나 클린턴을 뒤에서만 돕겠다고 선언한다.
1998년 1월 17일,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이 터진다. 주지사 시절부터 끊이지 않았던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은 급속하게 확대되었는데, 우익의 거대한 음모에 언론이 날개를 달아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론들은 별다른 확인 없이 익명의 제보만으로 오보를 일삼고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았다.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업이 되었다. 국가 예산 4,000만 달러를 들여서 만든 스타 보고서는 본문만 5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었으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클린턴의 대배심 증언마저 끝내 방송되었다. 1999년 2월 12일, 미 상원은 클린턴에 대한 탄핵안을 부결했다. 이후 힐러리는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섰다. 민주당 내 경쟁자는 정치 신예 오바마였다.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언론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힐러리 지지를 선언했다.
스타이넘은 “흑인인 오바마를 지지하는 것은 인종 통합이고, 여성인 힐러리를 지지하는 것은 남녀 갈등 조장이라니 말이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녀는 “오바마처럼 지역사회 운동가와 변호사, 주의원 8년에 흑백 혼혈이라는 동일한 조건을 갖춘 정치인이 여성이었다면 대통령 후보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라고 물으며, 미국 정치가 여전히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70쪽)
오바마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던 건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무엇보다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오바마의 ‘뉴스 가치’가 힐러리의 ‘뉴스 가치’를 압도한다고 판단했다.(281쪽) 대통령에 취임한 후 오바마는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기용했다. 취임 이후 오바마의 지지율이 추락했을 때는 미국 국민 3분의 2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클린턴이 나섰다. 클린턴은 오바마의 재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이는 모두 힐러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이라크 전쟁 지지, 퇴임 이후 클린턴 부부의 고액 강연, 힐러리 패밀리의 특권 퍼레이드, 이메일게이트 등으로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트럼프의 비상식적 언행으로 공화당 의원들의 힐러리 지지 선언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의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들이 힐러리의 낙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아는 대로, 힐러리는 48.2%의 득표율로 46.1%의 트럼프를 앞섰으나, 선거인단 수에서 227에 그쳐 304의 선거인단 수를 확보한 트럼프에게 패했다.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가장 높은 곳에 가고자 했던 힐러리는 실패했다.
맺는말 ‘힐러리를 위한 변명’이 이 책의 백미다.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말이다.
“정치적 경주에 임하는 여성 앞에는 온갖 종류의 장애물이 막아선다. 여성이 그 책임을 질 정도로 충분히 강하지 못하든 심술궂은 성격 때문이든 상관없다. 또한 여성이 너무 남성적이거나 남성적이지 못해도 마찬가지다. 외모가 괜찮아도 반대 세력이 생겨나고 못생겨도 마찬가지다. 기혼으로 자녀를 기르는 것도 미혼에 자녀가 없는 것만큼이나 문제가 된다. 정리하자면, 여성에게는 늘 암묵적으로 이중 잣대가 적용된다. 여성 정치인은 남성 정치인보다 순수한 목적을 가졌으며, 동정심이 더 많으며, 개인적인 야망보다 사회적 이슈가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 가정한다. 요컨대, 우리는 여성에게 정치라는 것을 넘어서 달라고 요구한다. (416쪽)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에게도 강요되는 이중구속 double bind의 환경은 대통령을 꿈꾸는 여성에게는 더욱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힐러리는 자신이 겪은 이중구속의 딜레마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성들은 딜레마에 처하곤 한다. 한편으론 똑똑하게 자립해야 한다. 반면, 아무도 언짢게 하지 말고 누구의 발도 밟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안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417쪽)
거짓말쟁이, 자신의 말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개의치 않는 사람, 독선적이고 오만한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매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뚜렷한 이유 없이 싫은, 이유 없이 미운 비호감의 근거를 추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여러 번 언론의 집중 포화 속에서 ‘힐러리 욕하기’, ‘힐러리 죽이기’가 게임의 하나로서 작동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더해 ‘꿈’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야망’을 가진 ‘여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무의식적인 편견 또한 고려해야 한다.
‘여성해방주의’를 주창했다고 하기에는 힐러리의 주장들은 밋밋한 감이 없지 않다. “인간의 권리는 여성의 권리,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라는 주장이 그렇게도 과격한 주장인가. 결혼식 피로연에서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힐러리 로댐으로 남겠다’는 선언으로 클린턴의 어머니를 울렸던 힐러리는 클린턴의 주지사 재선을 앞두고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녀를 둘러싼 현실이 그러했고 그러한 현실이 그녀에게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