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너무 많이 읽어 글씨가 되고 싶어 했던 사람


















이 책의 장점은 여러 페미니즘 이론의 정리에 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경우라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듯하고, 나는 <6 :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이 궁금하면서도 어려웠다. 이 책의 278쪽을 보면 이런 서술이 나온다.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많은 논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모든 논쟁이 제1세계에서만 해당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주체의 죽음, 역사의 죽음, 형이상학의 죽음과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자본주의 서구에 사는 여성들에게는 꽤 의미가 있지만 말이다. (278)

 

 


최근에, 애정하는 알라딘 이웃 쟝쟝님과 이런 댓글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여전히 일본에 대한 향수가 지극하고, 3년 이상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평화협정이 아닌 정전 상태의 분단된 조국의 남쪽, 적대적인 대북관을 피력하는 것만으로도 정당의 지지가 확보되는 정치 지형 속에, 북한 무인기가 내려와 정찰 가능한 지역에 살고 있는 나. 아직도 빨갱이라는 말이 가장 혹독한 모욕이 되는 나라에서, 나를 포함한 온 국민의 비정상적 영어 몰입 상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내가 생각한다. 여전히 우리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어쩌면 영영 주체가 될 수 없는 운명의그런 삶이라면. 어차피 주류에 편입될 수 없는 자리에서, 위치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입장이란 무엇인가. 오래 답을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발명된 주체의 죽음이 명약관화하다면, 차라리 주체의 을 입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은가

 



















<7 : 레즈비안 페미니즘과 퀴어이론>를 읽던 중에 에이드리언 리치 관련 글(300)을 읽고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를 펴서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안의 존재>(1980)를 읽고 있다. 내가 산 책에 줄을 그으며 읽을 때, ‘호강하고 산다고 느낀다. 그 순간에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나는 주로 도서관 책을 읽고, 도서관 책으로 읽을 때는 당연히 인덱스를 사용한다. 다 읽고 후에 내용을 간단 정리하고, 종이 인덱스를 떼는 일을 반복한다. 내 책으로 읽을 때, 특히 그 책이 에이드리언 리치의 것일 때 무한 행복을 느낀다. 형광펜을 긋고 예쁜 색감의 인덱스를 붙인다고 해서 그 지식이, 그 앎이, 그 깨달음이, 그 통찰이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환상에 자꾸 빠지게 된다. 이게 내가 누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종류의 사치라는 걸 안다. 에이드리언 리치를 읽는 것. 그의 말에 줄을 치는 것.


 

그래서, 그저께 밤에는 에이드리언 리치의 책을 검색하다가 <문턱 너머 저편>이 절판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 그때 샀어야 했는데. 그때, 미리 사 뒀어야 했어. 절망감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알라딘의 떠오르는 샛별 유수님이 그 책을 검색하다가 품절되어 아쉽다는 포스팅을 올리신 것을 보게 됐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재출간 될 리 없겠지만(없겠죠, 그런 일은 ㅠㅠㅠ) 꼭 다시 출간되기를 바래본다. 급하게 <모성과 모성 경험에 관하여>를 구입했다. 리치의 저서는 아니지만 리치의 이야기니 그걸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1월이 이렇게 간다. 책을 조금밖에 못 읽었고, 일기를 많이 못 썼고, 집에 내내 있었고, 종종 병원에 다녀왔고, 그리고 가끔 심심했다. 1월의 사건은 정희진쌤의 실물을 오래간만에 영접한 일이고, 1월의 책은 <마틴 에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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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교로움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3-02-01 01:29 
    실은 나도 단발머리님과 같은 곳에 밑줄을 그었었다. (왜죠?)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310972 트랙백 걸어둔다.일단 수잔 왓킨스의 이 책은 2001년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어디보자. 97년 imf(신자유주의) / ----- /2019 펜더믹 (나는 메타버스가 담론이 삼켜버린 플랫폼 자본주의의 전면화라고 혼자 생각 한다… 왜냐면 나 이 시기에 플랫폼 없었으면 굶어 죽었음ㅋㅋㅋㅋ 플랫폼의 위력과 무서움을 실
 
 
다락방 2023-01-31 1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국어 선생님은 월급 받으면 차 끌고 서점에 가서 책을 여러권 사는데, 그 때 기분은 정말 너무 좋다고, 모를 거라고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저도 제가 처음으로 제 돈을 주고 책을 사기 시작하면서 그게 너무 좋아서 사고 또 사고 계속 사고.. 그러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가진 내 책에 밑줄을 긋는 것, 사치죠. 사치인줄 알기 때문에 그걸 계속하려고 저는 계속 사는 걸까요? 제가 책을 많이 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든 핑계를 대보고 싶어 단발머리 님의 이 페이퍼에 의지합니다.

이만 총총.

단발머리 2023-01-31 11:34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 진짜 멋지시네요. 저희 학교 선생님들도 책 항상 들고 다니시고 책 이야기 자주 해주셨지만 책 사는 즐거움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는....

저는 지금도 알라딘 상자 열어서 새 책, 아이들 문제집 말고 제 책을 꺼낼때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ㅋㅋㅋㅋㅋㅋㅋ이제 이 책을 어디에 숨기나, 그런 생각을.... 다락방님도 그러시겠지만 저도 저희 집에서 제가 책을 제일 많이 사니까요. 어딘가로 보내야합니다. 책상 위에 너무 쌓여있어서요. 그게 사치라는 걸 아니까, 적어도 제게는 그러니까요. 더 열심히, 꼼꼼히, 자세히 읽는 것이 저의 책무라고 느껴요.
근데 오늘 아침에 아직 한 쪽도 안 읽었음요 ㅠㅠ (먼 산)

미미 2023-01-31 1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이드리언 리치의 책이 절판되었군요!! 역시 사두어야 합니다.ㅠ.ㅠ (저는 해당 책 있는 줄도 몰랐지만)암요!!
출판사 측이 단발머리님의 이 글을 읽고 재출간을 고려하고 서둘러주었음 좋겠네요.

쟝쟝님과 단발머리님이 주고받는 댓글 역시 알라딘에 눌러앉고 싶은 이유입니다~♡

마지막 두 줄 왜이렇게 재미난거죠?ㅋㅋㅋㅋ2월에는 저도 1월보다 더 쓰고 읽고 ...하여튼 잘 살아보고 싶어요.
단발머리님도 파이팅입니다^^*

단발머리 2023-01-31 12:19   좋아요 2 | URL
제가 비교적 최근(제 기억으로는 5-6개월 전인거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에는 판매했던 거 같아요. 도서관에는 있더라구요. 도서관 책으로 읽어야하는데 에이드리언 리치는 소장각 아닙니까. 아쉬운 마음에....

여러분!!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없으신 분들 모두 사세요! 완벽한 책입니다. 꼭이요!! 라고 적어두고요 ㅋㅋㅋㅋㅋㅋㅋ

2월에는 더 많이 읽고 쓰고 이야기 나눠요, 미미님! 미미님은 이미 책 많이 사시는 분이시지만 ㅋㅋㅋ 앞으로도 구매의 기쁨과 영광이 지속되시기를^^

건수하 2023-01-31 1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를 며칠 전 샀어요!

저도 요즘 제 책에 마음대로 줄 그을 때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
읽고도 처분하지 못하는 책이 많아져서 좀 걱정이긴 합니다만 ^^

단발머리 2023-01-31 17:36   좋아요 1 | URL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따봉!!

줄 긋는 기쁨이라는게 있지요. 전 아무래도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안 해서 그런거 같아요. 그 때 못 그은 줄을 요즘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수 2023-01-31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차라리 주체의 ‘옷’을 입지 않는 것에 저도 동의하는데요. 입은 옷들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도 가끔 생각해요. 옷을 벗으려고 공부하다보니 옷을 입었네, 아니네 저야말로 이분법에 갇히는 느낌이라고 할까 ㅎㅎ 적다보니 그 또한 제가 공부해야할 부분이구나 싶네요.
다락방님 댓글에 책 사는 구체적인 장면 그려주신 선생님 좋네요. 그런 모습으로 남은 선생님은 안계시지만 북플에 오는 것도 그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어서겠쥬. 샛별이라고 해주셔서 우왕..망극.. 암튼 멋쩍어서 옆에 애먼 고양이 궁둥이를 긁어요ㅋㅋㅋㅋ우쮸쮸 고맙습니다. 또 얘기해요 단발님!

단발머리 2023-01-31 17:41   좋아요 2 | URL
주체의 죽음. 혹은 이 책에서는 ‘근대성이란 거대 서사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이야기 나오거든요. 아, 이게 우리 삶과는 많이 떨어져 있지. 철학 근처에는 가지 말자, 이런 생각하다가도. 그런 이론적 툴이 제공하는 이해와 깊이가 있을테니 쪼금 궁금해지기도 하구요. 저도 공부하고 싶은게 많아요, 헤헤.

알라딘의 떠오르는 샛별이시니까 형광 불빛 감추지 마시고요 ㅋㅋㅋㅋㅋㅋ 오래오래 반짝반짝 빛나시기를!!

독서괭 2023-01-31 15: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우리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어쩌면 영영 주체가 될 수 없는 운명의… 그런 삶이라면. 어차피 주류에 편입될 수 없는 자리에서, 위치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입장이란 무엇인가. 오래 답을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발명된 주체의 죽음이 명약관화하다면, 차라리 주체의 ‘옷’을 입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은가.˝
아니.. 다 이해는 못하지만 뭐가 이렇게 멋있어요? 단발머리님, 새삼 반합니다(하트뿅).
저 <제2의 성>은 형광펜 그으면서 읽어보려고(교재 빼고는 한번도 안 해 본 일) 알라딘에서 형광펜 딱 구입해놨지요 으흐흐

단발머리 2023-01-31 17:43   좋아요 2 | URL
에구야. 독서괭님의 하트라면........ 제가 집에 있는 모든 종이쇼핑백을 들고 나가서 한아름 담아오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제2의 성> 읽기 시작하신 거 너무 멋지고 근사합니다. 형광펜까지 완벽한 준비네요. 줄줄이 얼마나 좋은 글들이 올라올지 기대만발이구요. 얼른 2월이 되어야합니다!!!

공쟝쟝 2023-01-31 17: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에 공쟝쟝 누구에요? 천잰가 봐요!ㅋㅋㅋㅋㅋ

한번 더 정리하면 주체-타자의 위치는 맥락적이고 문제될 게 없으나, 전통적 서백남의 시선이 개념안에 포함되어있는 *타자화*라는 시선의 문제. (근대) 신이 사라진 자리에 감히 신이 되려고 했던 인간들의 오만함의 문제. 저는 타자화는 신의 시선(어떤 만능감, 신체를 벗어난… 자기가 다 안다는 듯.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대하지 않음..)라고 생각하게 되었고요. (해러웨이 백자평ㅋㅋ 저 여기서 느낀점: 참종교인은 서백남 카테고리에 묶으면 안될 듯)

탈근대는 그런 근대의 문제 설정이 (이분법, 이항대립, 인과론, 기타등등) 찢어지는 자리에서 나와서 그들의 이론을 계속 만드는 과정에 있고(페미,탈식민,해체…) 어느 정도 합의를 봐가는 느낌인데…. 나오는 과정에서 근대(자본주의)의 끝판왕인 신자유주의랑의 어떤 친연성이 생겨버린 것 같고요 이젠 플랫폼을 만나부렀어요ㅋㅋㅋㅋㅋ 삐끗하면 더 요상하게 빠지는 것이 되버릴 수갘ㅋㅋㅋㅋ 그러므로 근대이전/근대/탈근대 적 원리 모두가 계속해서 겹쳐흐르는 게 한국사회인데, 우린 어쩌면 배울 필요 없었던 것들까지 배운 사람들에 배워와서 알려주니 그 지식이 몸에 맞을리가 있었을까…?한글 내 번역이라고 하죠.. 그런 느낌이 들때가 좀 있어요 ㅋㅋㅋ (이건 저의 질문 -외국에서 공부해온 지식인들은 알아도 지식들이 대중에게 가닿는 속도가 너무 늦고.. 이미 대중들은 플랫폼을 살고…)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현실에성 완벽한 주체도 완벽한 타자도 완벽한 근대도 없어요. (신.이데아) 옷을 입고 벗고 할 필요도 없이 *내 몸*을 통해 감각하는 지식과 삶을 잘 받아들이며 만나는 타자들과의 타자화하지 않으려는 고려, 배려 성실한 주고받음 그런 태도만이 이런 시대의 삶의 방식으로 삼아야하는 희진샘이 말씀하신 ‘사는 대로 생각함‘이 아닐까 합니다.

제 언어(이렇게 살아가고 싶다)로 말하면.
지금의 내 삶을 잘 받아들일 것. 나 자신을 모르는 존재로 대할 것.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것. 내 몸이 겪는 감정들에 깊이 머물러 볼 것. 그런 지식들을 내 언어로 번역하기. 내 삶에 등장한 내가 잘 모르는 존재들인 타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그 이야기의 흔적들을 묻히면서 나를 계속 만들어나가기. 서로를 ’성실‘하게 공부하기. 각자들의 고독(비밀? 알 수 없음)을 존중하기.

단발머리 2023-01-31 17:55   좋아요 2 | URL
아 ㅋㅋㅋㅋㅋㅋㅋ 천재 쟝쟝님! 댓글 이렇게 쓰면 대댓글 어찌 달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대이전/근대/탈근대적 원리 모두가 계속해서 겹쳐흐르는 게 한국사회,라는 쟝쟝님 의견이 눈에 딱 꽂힙니다. 조선시대 유교 원리에 근거 며느리가 제사음식 만들어야 하고, 며느리는 핸드폰으로 장보고, 설거지에 지친 몸을 이끌고 친정으로..... 아흐....

완벽한 주체도 완벽한 타자도 완벽한 근대도 없지만, 그렇게 말하는 ‘너‘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물어야할 거 같아요. 서발턴은 말할 수 없고 그래서 스피박은 어려운 말로 서발턴의 언어를 대신해 주고 있다면서요. 그것 역시 언어를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고, 그 언어는 제국주의의 언어인 영어인 것이며.....

내가 만나는 타자들을 타자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근데 그 타자, 내 말 못 알아들음 ㅋㅋㅋㅋㅋ 즉, 알아듣는 사람들은 이미 언어가 있는 사람들이고, 언어 없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래서 스피박이 ‘리터러시‘에 집중하는 거고요.
페미니즘 진짜 필요한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 못하더라.....

공쟝쟝 2023-01-31 18:02   좋아요 2 | URL
네 미디어가 문제예요. 타자의 말에 집중을 할 수 없게 하니까요. 이분법을 더 강화시키는 식으로만 알고리즘이 안내하니까요. …. 하지만 미디어는 우리의 몸과 불화하고 … 특히 여성의 몸과 불화하기가 더 싶죠. 그러다 도저히 못살 갰으면 ㅋㅋ 저처럼 살기위해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과 언어를 누군가들은 찾아 볼테고… 좀 더 쉽고 좋은 글을 쓰면서 잘, 명랑하게 지냅시다.
 























이 파트에서 제일 감동적(?)인 문장. 레싱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명명하는 것조차 꺼렸다.





그러나 레싱은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언제나 회의적이었고,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명명하는 것조차 꺼렸다. 그린에 따르면 레싱이 꺼린 이유는 자신의 많은 에너지를 남로데지아(현재의 짐바브웨)와 영국의 공산주의 운동에 쏟았기 때문이다(그린 28). 레싱은 20대와 30대 내내 공산주의자였고, 1956년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하면서 공산당을 떠났다. 『황금 노트북』의 서문에서 레싱은 자신을 다소 아이러니컬하게 "늙은 빨갱이(Old Red)"라고 소개한다. (136쪽)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는 특별히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연관성을 이론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는 가부장제를 자본주의의 한 증상으로 보았고,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반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가 자본주의보다 먼저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가부장제를 단순히 초역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가부장제의 역사적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특히 경제적 측면을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 P126

이 책(<여성의 의식: 남성의 세계>)의 가장 중요한 강점은 특별히 마르크스적인 의미로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으로 영역으로 위치시킨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독자는 의식화(consciousness-raising) 과정을 따라 ‘개인적인 사유‘로부터 추상적이고 ‘정치적인 사유‘로 움직이며, 궁극적으로는 둘의 구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 P128

여성의 성적 경험은 질 오르가즘이 존재하나 안하나... 등등의 질문들로 축소될 수 없다. 여성의 성적 경험은 사랑과 신뢰 같은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 방식으로 레싱은 바렛처럼 섹슈얼리티를 재생산이나 본질적인 젠더 정체성으로부터 분리시켜 버리고, 섹슈얼리티가 사회적 압박에 어떻게반응하는지 증명한다. 애나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인 엘라(Ella)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는 오르가즘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다. "나 같은 여성에게 중요한 진실은 순결이나 정결이 아니다. 어떤 낡은 언어들 중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나에게 진실은 오르가즘이다"(292). - P145

이런 식으로 레싱은 로보섬과 바렛의 이론에 대해 핵심적 질문을제기한다. 핵심적 질문이란, 자본주의 가부장제 시스템에서 개인의 자율권이 어느 정도인지, 한 시스템이 자체를 유지하고자 할 때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에 대해서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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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굵은 잘생긴 남자가 날 쳐다본다. 영화화된 <마틴 에덴>에서 주인공 마틴 역을 맡았던 루카 마리넬리다. 잘생긴 그 남자를 한 번 더 쳐다보고(쳐다보는 거 무료임), 잭 런던의 자전 소설 <마틴 에덴>을 읽는다

 


















<야성의 부름>의 작가가 잭 런던이었다는데 일단 한 번 놀란다. 나의 유일한 독서클럽, 아이들 여섯 명과 언니 두 명,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아홉이 함께했던 독서 모임이 있었다. 큰아이 유치원 다닐 때 시작해 중학교 때까지 계속했던 모임이다. 정해진 책을 함께 읽기도 하고, 각자 원하는 책을 읽기도 했다. 독서감상문을 발표(?)하기도 하고, 말로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어린이 사자소학>을 함께 읽었고, <The Giver>, 해리포터 1권도 같이 읽었다. 독서 모임 시간에 엄마들이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하는 시간은 없었지만. 없었지만! 우리들은 부지런히 읽는책을 가지고 다녔다. 표지가 잘 보이도록 책상 위에 책을 올려 두었고, 나는 자주 아이들 시간을 침범해 내가 읽고 있는 책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차분하고 얌전한 D양이 항상 내가 가져간 책에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독서력 만랩인 H언니가 들고 다니셔서 표지가 익숙한 책이 바로 <야성의 부름>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이미 10년 전에 알았다는 것이고, 표지가 보여주는 일정 정도의 야성미에 나도 모르게 관심이 갔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책을 빌려서 읽을 정도로 흥미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래서 <마틴 에덴>을 읽으려 작가 조사들어갔을 때 <야성의 부름>을 보고서는 조금 놀랐다. 10년을 앞서가신 언니, 나는 진작에 언니 뒤를 부지런히 따랐어야 했어요.

 


잭 런던의 다른 책 중에는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가 눈길을 끈다. 다정한 친구가 알려줬는데 아직 도전 전이다. <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도 흥미로워 보인다. 1904년 러일전쟁 특파원으로 일본군을 따라 조선을 방문했던 잭 런던이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고 한다. 일본과 중국에 대한 호감과 조선 및 조선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고 하니, 읽을 생각은 없지만. 나 역시 작가에 대한 호감을 반 정도 덜어놓고 읽기를 시작했다. 그랬으나, 그리하였으나.

 


역시 사람은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이 멋진 법이다. 자기 일에 진심인 사람. 자기 일에 최선인 사람. 그리고, 그냥 일을 잘하는 사람. 잭 런던은 조선의 후예인 나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나 역시 그의 호감을 얻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 그는 글을 잘 쓴다. 잘 쓰는 작가다. 독자인 나는 항복. 백기투항하고야 만다.

 


 


<마틴 에덴>의 평가 중 가장 도드라진 부분은 로맨스에 계급의 문제를 연결시켰다는 데 있다, 고들 한다. 맞다. 마틴과 루스의 사랑에는 계급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사랑 지상주의자인 나로서는 사랑과 계급 차이에 따른 고통의 문제에서, 계급보다는 사랑의 문제가 더 무겁지 않은가, 하고 생각해본다.

 


루스에 대한 마틴의 추앙은 신앙과 같다. 그녀는 그가 알고 왔던 모든 여자와 다르다. 그녀는 하얗고, 그녀의 손은 보드랍고, 그녀의 목소리는 아름다우며, 그녀의 피아노 연주는 완벽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 대한 그의 추앙이 계급 너머에 존재하는 사랑이어서 라기보다는, 사랑 그 자체가 가진 속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가 먹는 음식, 주거 공간, 청결 상태, 수입, 그리고 직업적 전망은 모두 그녀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녀가 가진 모든 것들은 그가 가진 것보다 새것이고, 깨끗하고, 튼튼하고, 아름답다. 그는 엉망으로 말하고, 제대로 된 에티켓, 예절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녀 앞에서 그는, 말 그대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건 바로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일어나는 일이지 않은가.

 


이를테면, 루스의 동생 아서가 마틴 계급의 여성,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고 해보자. 그녀는 자기 손으로 일해야 하고, 좀처럼 휴식 시간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그녀에게서는 남자의 다음 행동에 대한 기대, 느긋한 기다림이 사치가 될 것이다. 그녀는 두려움 없이, 망설임 없이 아서를 바로 쳐다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랑에 빠진 아서는 그가 비록 넉넉한 재산을 소유한 상위 계급의 신사라 할지라도 마틴과 같은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는 그녀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되지도 않는 말을 중얼거릴 것이다. 그녀의 일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공장 앞에서 어슬렁거릴 것이고, 집에 돌아가서는 어떻게 해야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붙일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물론 아서의 도전은 마틴의 도전보다 쉬울 것이다. 마틴의 도전은 아서의 도전보다 훨씬 더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졌을 때, 누군가에게 사로잡혔을 때, 그 사람은 연인의 노예가 된다. 거기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고, 그 일이 쉬운 사람도 없다. 다만 마틴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한 가지의 노력이 더 필요했는데, 그건 루스에게 다다르기 위한 사다리였다. 그의 잠과 피와 살과 눈물로 만들어진, 계급 상승을 가능케 할 사다리. 올라가기 위한.

 

 


마틴은 죄를 깨달았다. (47)

 




이 책이 70쪽 정도 남았는데, 나는 이 문장을 이 책의 그 문장으로 꼽고 싶다. 마틴은 죄를 깨달았다. 자신의 죄를 몰랐던 마틴, 자신이 죄인이라는 걸 몰랐던 마틴이 죄를 깨달았다. 그 죄란 무엇일까. 루스 안에서 발견한 불멸의 영혼에 닿고 싶어 하는 열망이 바로 그 죄다. 그녀 안에 깃든 영혼이 불러오는 연민과 상냥함에, 그 순수함에 그는 사로잡혔다. 그녀에게 물을 떠다 주기에도 모자란 인간인 자신이 감히 그녀를 소유할 미래를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 마틴은 죄를 깨달았다.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자신의 열망, 자신의 꿈이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꿈꾸고 있는 자신의 부족함. 그는 희망했고 그리고 동시에 절망했다.

 

 


마틴의 사랑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는 2권에서 살펴보자. 나는 잭 런던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런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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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1-25 12: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마틴에덴 리뷰들은 다 극찬이네요. 그렇게 좋다니. 계급보다 사랑 아닌가. 사랑에 빠졌을 때 연인의 노예가 된다. 라는 말씀이 와닿네요. 제가 읽으면 어떤 감상이 들지 궁금합니다.^^

단발머리 2023-01-25 12:25   좋아요 1 | URL
책이 작고 얇아요. 근데 쑥쑥 못 넘기겠는 거에요 ㅎㅎㅎ 직접 확인해 주세요, 독서괭님!!

바람돌이 2023-01-25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권에서 마틴의 사랑은 정말 너무 절절하게 잘 묘사되어서 사랑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되는지 너무 잘 보여주죠. 그래서 안될거 알면서도 마틴을 막 응원하는.... ^^ 그런데 정말 이 작가가 글을 잘 쓰는게 저는 2권이었어요. 그 사랑이 변화해가는 과정도 어찌나 잘쓰는지 그냥 막 공감이 된다는.....

단발머리 2023-01-25 13:22   좋아요 1 | URL
전 정말 얼마나 마음이 촉촉해지는지요.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사랑하고 싶어요!!! 곧 2권 들어갑니다. 기대만발🤗

다락방 2023-01-25 1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무쪼록 스포 밟지 마시고 즐거운 독서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3-01-25 13:23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러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요약본(?) 살펴보다가 뜨악! 😱

잠자냥 2023-01-25 13:5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단발머리 2023-01-25 14:0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사뿐히 말고 발뒤꿈치를 들고 걸었어야 했어요. 괜찮아요. 전 스포 무풍지대 ㅋㅋㅋㅋㅋㅋㅌ

다락방 2023-01-25 14:22   좋아요 0 | URL
저는 스포 밟고 스포 만으로도 너무 아팠었어요. 흑 ㅠㅠ

아아 2권까지 다 읽고난 뒤에 단발머리 님이 어떤 글을 써주실지 너무나 기다려져요!!

단발머리 2023-01-25 14:54   좋아요 0 | URL
저 이미 방향은 정해놓았어요. ˝사랑을 이기는 자유에의 갈망. 필요한 건 기본소득 뿐˝
어때요? 괜찮나요 ㅎㅎㅎ

책읽는나무 2023-01-2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 권 읽기 시작했어요.
좀 오래됐지만요~
1 권이 좋아서였는지 2 권이 생각보다 책장이 잘 안넘어가네요?
단발님 따라서 2 권 읽고 싶네요.
기다릴게요~^^

근데 작가 찾아보다 10 년 전 그 분이 들고 다녔던 그 책 작가가? 아니 그럼 그 분은 예전부터 그 작가를 알아보고 그 책을?
순간 멍~ 한 그 기분!!!!
그런 기분을 단발님도 곳곳의 흔적에서 남발하고 계셨단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까?ㅋㅋㅋ

단발머리 2023-01-26 13:13   좋아요 1 | URL
저 잠깐 휴지기요. 내일부터 읽으려고요. 오늘은 또 다른 책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제가 살짝 살펴보니 <야성의 부름>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읽으신 분들 많더라구요. 뭐... 이것이 당연한 알라딘 세상입니다 ㅋㅋㅋㅋ 저의 흔적을 알아봐주시는 책나무님 덕분에 기쁩니다.
서울에는 눈이 많이 왔어요. 마음은 행복한데 길이 많이 미끄럽네요.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책나무님!!

비연 2023-01-28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잭 런던은 <강철군화>와 <늑대개>, <야성이 부르는 소리>가 인상적이었는데. <강철군화> 읽고 세미나도 했었던 기억이. 이 책도 봐야겠네요.

단발머리 2023-01-28 21:21   좋아요 1 | URL
우아!!!!!!!!!! 비연님!!!!!!!!!!!
저 맨발로(이 추위에 맨발로) 뛰어나오는 거 보이시나요? 잘 지내고 계신거죠? ㅎㅎ
비연님은 잭 런던 진즉에 읽고 계셨군요. <강철군화> 읽고 하셨다는 그 세미나가, 저는 엄청 궁금하네요!@@
 

















연휴 전날, 큰아이 방을 청소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원래 책장까지 꼼꼼히 닦고 바닥 쓸고 하는 내가 아닌데, 그날은 책장 먼지 닦다가 얇은 책이 다른 책들 사이에 끼어 있는 걸 보게 됐다. 꺼내서 후르룩 넘겨보는데, ! 해러웨이! 도나 해러웨이 아닌가. 해러웨이 책이라면 제가 또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지요, 암요. 원래 이번 설 연휴에는 마틴 에덴 읽으려고 준비해 뒀었는데, 당장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은? 연휴 내내 이 얇은 책( 106) 한 권밖에 못 읽었다.

 



과학기술학 박사인 저자 임소연은 성형수술, 과학과 대중,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 현장연구 방법론 등과 관련해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책에서는 사이보그에 대해 주로 다루는데, 사이보그와 과학기술, 그리고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에 대한 해석과 그 전망을 밝히고 있다. 존재적 형식으로서의 사이보그(독립적인 인공물, 혼종적 주체)와 은유로서의 사이보그(존재적 경계를 넘어서는 관계 맺기에 대한 비유적 표현)를 다룬다.

 


사이보그란 무엇인가? 의 질문은 우리 자신에 대한 것(14)이라고 저자는 쓴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왜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경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가? 인간 정체성의 한계를 끝까지 지켜보려는, ‘영혼 있는기계(데카르트)로서의 인간에 대한 탐구는 인간 고유함에 대한 집착일 수도 있겠다.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처럼 인간을 고도의 기계체로 인정해 버리면 될 텐데 말이다.

 


2세대 사이보그의 탄생은 해러웨이로부터 시작되는데, 해러웨이는 사이보그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사이보그 선언> 1985 <사회주의 논평(Socialist Review)>이라는 학술지에 처음 게재된 것으로, 새로운 페미니스트 정치학에 대한 선언으로 평가받는다.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사이보그의 만남은 이전의 사이보그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완전히 다른 길로 나가게 했다(27).

 


계급의 구조 대신 섹스/젠더의 구조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35)의 경우, 여성을 단일한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고자 했다. (캐서린 맥키넌) 이런 경우, 여성들의 다양한 차이들이 삭제될 수 있기에, 저자 임소연은 이러한 주장이 서구 가부장제만큼이나 권위적이라고 보았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여성들이 자신이 아닌 여성'으로 의식화되는 순간 수많은 차이를 갖고 있는 개별 여성은 거대한 하나의 여성에 가려져서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서구 가부장제가 원하는 것, 즉 남성 욕망의 산물로서의 여성일 때를 제외하고는 여성들이 주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만큼이나 권위적이다. (36)

 


물론 이는 임소연만의 주장은 아니다. <도나 해러웨이>의 저자 조지프 슈나이더도 해러웨이의 주장을 이렇게 해석한다.




 












서구, 특히 미국에서 20세기 후반에 벌어진 '여성 운동과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강력한 목소리를 추구하면서, 일부는 마치 모든 여성에 대해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무언가를 규정하는 하나의 경험이 실제로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여성의 경험'에 의존하는 글을 써왔다. 이러한 입장은 모든 실제 여성이 그들의 섹스/젠더라는 범주만으로 경험과 견해 면에서 함께 묶여 있다고 암시 혹은 주장한다. 해러웨이는 이를 전 세계 여성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삶과 닮은 점이라곤 거의 없는 헤게모니적 실천이라고 불렀다. 그는 "’여성됨’에는 여성을 자연스레 묶는 것이 없다"고 썼다. (<도나 해러웨이>, 119)

 
















정체성의 정치에 갇혀서는 안 된다. ‘여성됨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해러웨이 페미니즘 정치학의 핵심이다. 여러 명의 필자가 함께 쓴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의 해제에서 정희진 선생님이 쓰신 바와 같다. “남성()과 여성()은 규범이지 현실이 아니며, 따라서 실체로서 남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12) 페미니즘 이론에 있어서 이원론과의 경합, 이분법의 거부는 당연한 일이다.

 


 



오디오매거진 팟빵 <정희진의 공부 : 앎의 쾌락과 약간의 통증>의 첫 번째 에피소드 <공부와 독서에는 왕도가 있다 가성비의 방법론>에서, 정희진 선생님은 가성비 높은 공부법을 소개해 주셨다. 책과 싸우면서 읽어라. 책과 갈등하면서 읽어라. 영어로 표현하자면 against. 저자와 대항적 자세를 가지고, 결투하는 마음으로 읽어라.

 















그렇다면 임소연의 <사이보그로 살아가기>를 읽는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가성비 높은 공부를 위해서는 내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성의 변증법>의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문장 “ … (새로운 페미니즘 물결의) 목적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견고한 계급-카스트를 뒤집어엎는 것이다.(31)”를 처음 읽었던 때를, 나는 기억한다. 여성됨의 경험을, 나 자신의 경험 10개와 나 자신의 경험 아닌 것 10개를, 지금 당장 말할 수 있다. <섹스할 권리>에서 아미아 스리니바산이 쓴 그대로다

 















페미니즘은 여성 자신이 성 계급 sex class의 일원임을, 다시 말해혹은섹스라는 것인간 문명세계의 토대가 되는 자연적이고 전()정치적이며 객관적인 물질적 기반을 근거로 했을 때 사회적 지위가 열등한 사람들로 구성된 계급의 일원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섹스할 권리>, 8)

 



이러한 의식, 의식화만이 정치, 사회, 종교의 기본값이 되는 남성 우월과 여성 혐오의 오천 년 가부장제의 본래 모습에 직면할 수 있게 한다. 임신과 출산, 재생산 노동, 돌봄노동, 감정노동, 꾸밈노동을 요구하며, 이를 여성의 본성본질이라 주장하는 그 모든 거짓말의 민낯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생물학적여성의 단일성만을 강조하는 것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여성이 여전히 ‘second sex’로서 억압받는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정체성의 정치만이 강조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실패다. 나는, 내 입장을 정하지 못했고, 그런 채로 겨우 이 책 읽기를 마칠 수 있었다.

 


 

명절 다음날이고 연휴 마지막 날이라서 모두 늦잠 잘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양파를 볶고 고기를 굽고 된장국을 데워주고 나서 세 문단을 썼다. 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주고 전을 데워주고 사과와 배를 깎아주면서 나머지 세 문단을 썼다. 이제 다 썼으니, 잔뜩 쌓인 설거지 하러 간다. 설거지 마치면 휴식 좀 하려니까, 곧 점심시간? 혹 나의 실패는 이런 가사노동 때문 아닌가. 어김없이 찾아오는 끼니의 부담감 때문 아닌가.  

 

 


어제는 행복했는데. 어제는 아빠, 엄마랑 규카츠 맛집에 가고 커피를 마시고. 그만 좀 하라는 애들의 성화 뒤로 사진을 찍었는데. 어제는 좋았는데, 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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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1-24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딱 혼자서 답답해하던 부분들 정리되어있어서 반가운 가운데 어떻게 차곡차곡 쓰신 문단인지 보고 저도 상념에 젖습니다. (갑자기?ㅋㅋ) 다른 분들에 비하면 아니겠지만 명절 부담이 없는 편인 저도 결국 내 정체성에 매몰되는 그런 설이네요ㅋㅋ 명절독 잘 푸시고 또 좋은 글 기다릴게요. (이 글에서만 읽을 책이 얼마야🤣)

단발머리 2023-01-24 13:39   좋아요 1 | URL
연휴에 읽고 또 간단히 메모도 해두었는데 쓰기는 오늘 하다보니 식구들이 북적북적, 각각 따로 식사하고 그러네요. 그래도 이제 저희집 아이들은 다 커서 차려다 드리고 ㅋㅋㅋㅋㅋㅋㅋ 먹여드리지는 않아요. 유수님보다 4분의 1 정도 바쁘다고 할까요.
저도 답을 찾을 때까지, 제 입장을 찾을 때까지는 계속 읽어봐야겠어요. 유수님도 오늘 남은 시간은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바람돌이 2023-01-24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흐진샘이 말한 저 against를 꼭 저자와 다른 생각을 해보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저자의 이 말이 옳은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얘기하지? 나는 이 말에 공감하나?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공부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단발머리님은 누구보다 열심히 제대로 공부하시는 분입니다. 명절 지나고 늘어져 있다가 생각이 확 깨는 글이네요. ^^
저 카페라테와 녹차라떼 맞나요? 저 사진보면서 어제는 좋았는데 하는 기분 확 공감입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3-01-25 14:09   좋아요 1 | URL
누구보다 열심히 제대로 공부하고 싶습니다. 아니에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아니요, 그러고 싶습니다.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저의 솔직한 내면입니다. 소용돌이치는 두 개의 소리 중에 좋은 소리에 귀기울여주셔서 감사해요.
저건 말차라떼입니다. 하나는 두유 베이스, 하나는 우유 베이스에요. 저는 바닐라빈 라떼구요.

다락방 2023-01-24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입장이라는 걸 찾아가는 게 인생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내가 어느 입장인가, 하는 것을 끊임없이 물으며 지속되고 연장되는 것 같아요. 너무 빨리 입장이라는 걸 찾아버리면 오히려 사고가 편협해지지 않을까요? 어느 입장인가 질문하며 살아가는 것이 저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방향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끊임없이 나는 저기보다는 여기인 것 같은데, 라고 스스로 자꾸 제 입장에 대해 물으며 책을 읽고 또 글을 쓰고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도나 해러웨이 라니요. 올해 책 그만 사려고 하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제게 새로운 책에 대한 소식을 알려주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흑흑 ㅠㅠ

그나저나 연휴가 끝나서 제가 지금 심각하게 우울합니다. 저도 어제는 좋았는데요 어제까지는. 아니, 오늘 오후까지도.. ㅠㅠ

단발머리 2023-01-25 16:4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나는 여기인가. 아니 내 자리는 저기 같은데... 저기인가. 아닌가 여기인가, 이러면서 말이죠. 갑자기 아프니까 청춘이다 생각나네요. 흔들리는 갈대처럼 저도 흔들립니다.

도나 해러웨이 저 책은 말이지요. (영업 중) 저 시리즈가 다 좋은거 같애요. 시리즈 이름은 라이브 이론이고요.(영업 완료)

지금은 기분이 어떠신가요? 7시 21분의 아름다운 뷰를 기억하시면서 ㅋㅋㅋㅋㅋㅋㅋ
 





 













지금 156쪽까지 읽었는데, 이만큼 읽은 바로는 이 책은 페미니즘 비평보다는 페미니즘 이론을 정리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듯싶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라면 역시나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를 빼놓을 수 없겠다. 페미니즘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이 책은 내게 정말 중요한 텍스트였는데, 그건 내가 처한 상황과도 관련이 있었다. 대학 교육을 받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된 케이스.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고 다른 사회적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혹은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의 여성. 나의 첫 페미니즘 도서였던 <빨래하는 페미니즘>도 이와 비슷한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 저자 스테퍼니 스탈의 페미니즘 각성을 불러온 책도 바로 그 책 <여성성의 신화>. 혹 이 책의 내용이 너무 오래되었다거나, 우리에겐 이미 다른 어젠다가 훨씬 더 중요하다, 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정희진 선생님의 해제 <베티 프리단, 우리를 출발선에 다시 세우다>를 권하고 싶다.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

 


이 책에서는 프리단의 <두 번째 단계>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는데, <여성성의 신화> 출간 이후, 20년이 지난 상황에서 프리단의 생각이 많이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변절 혹은 변심으로서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 상당하다. 앨리슨 루리의 <테이트 가족의 전쟁>을 읽지 않은 상황에서 루리와 프리단의 생각(구체적으로는 <두 번째 단계>에 나타난 생각)의 비교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여성성의 신화』에 나타나는 계급, 인종 이성애적 편견은 늘 비판의 대상이다. 프리단의 아젠다는 백인 중산층 이성애 여성이 가정에서 벗어나 중산층 백인 이성애 남자의 가치와 생활양식을 따르는 것이다. 프리단은 노동자 계급 흑인 여성의 경험은 교외의 가정주부의 경험과 같지 않고, 집밖에서의 일, 육체 노동이나 비전문직의 일은 남녀 모두에게 착취적이며 육체적으로 고단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또한 프리단은 양쪽 부모가 모두 밖에 나가서 일하면 어린 아이들은 누가 돌보고, 집안일을 누가 할지에 대해서도 모호하다. 또한 동성애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핵가족 이외 생활 양식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성의 신화』 에서 프리단은 페미니즘이 초래하는 최악의 결과는 남성 동성애의 증가라고 지적한다. 마치 남성 동성애는 명백하게 회피해야 할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109)

 



다만, 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풀어 보자면, 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 비판의 상당 부분이 사실이기는 하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여기에 마이크가 100개가 있다. 마이크 100개를 서구 유럽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이 독점하고 있다. 서구 유럽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여성이 앞으로 나서서 그 마이크 중 하나는 내가 갖겠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반응이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비판과 같은 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여성주의 운동사에서 백인 여성들의 선점권 경쟁이 과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백인 남성이 흑인 남성을 억압하듯이, ‘자매애를 부르짖던 백인 여성도 흑인 여성과 유색 인종을 억압했다. 그것 자체는 사실이다. 다만, 마이크가 한 개인데, 잡고 있는 그 마이크를 왜 너만 갖고 있느냐, 왜 너에게 먼저 발언권이 주어지는 거냐, 라고 묻는 건, 좀 안타까운 일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그건 잘못된 일이고, 비판받아야 하는 측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일단 마이크를 가져와야, 가져온 쪽에서 가위바위보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지식이라는 건, 결국 중산층의 것이다.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은 고민할 필요가 없고, 생활에 찌든 사람은 고민할 시간이 없다. 약간의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여분의 시간에 고민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 아닌가. 지식의 발명에 대한 위의 세 문장은 정희진쌤이 강연에서 여러 번 강조하신 말씀이다. 출처를 정확히 책으로 불러오면 좋을 텐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 관계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개인이 사회/이데올로기와 갖는 관계에 있어서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젠더 차이에 대해 규범적인(모순적이지만) 모델에 따르고 있으며, 정치적 행동과 진보와 변화에 대해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의 현재 있는 그대로의 구조를 유지하는데 노력을 투자하고 있으며, 그 구조 밖으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점이 가장 큰 한계다. 그래서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페미니즘 이론이나 정치적 운동에서 가장 인기 있고, 동시에 가장 덜 위협적인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그들의 아젠다를 전략적으로 동등권 법안을 통과하는 캠페인과 같은 특정한 페미니즘 목적을 위해 활용될 수 있다. (116)

 



가장 인기 있고, 동시에 가장 덜 위협적인이 중요 포인트다. 남자와 결혼해 남자와 살고, 아들을 낳아 키우는, 가부장제의 일부인 나 같은 여성에게 먹힐 수 있는페미니즘이다. 기혼 여성들을 포섭할 수 있는, 그들에게 접근 가능한 방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생각을 소유한 여성들이 발견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소수자 운동으로 전락해서는 결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내 말을,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젊은 여성은 듣지 않는다. 듣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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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1-20 13:02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성운동을 소수자운동이라고 하거나, 과격한 분리주의 노선에 대해서 매우 유보적 입장입니다. 다만 2010년대 후반 페미니즘 대중화의 수혜를 제가 입었다고 생각하고요, 여성들의 목소리와 지면이 당분간은 더 많아지는 것이 필요하단 입장예여. 소비자로만이 아니라… (의미있는 소비자여도 좋겠고요) 이미 훌륭한 페미니즘적 이론의 성과들이 잘 논의되면서 분단, 지역주의의 오랜 역사로 이분법에 찌든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담론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예요. 저 역시 먹고사니즘을 겨우 해결한 입장과 위치라는 걸 강연통해 잘 인식했고요, 물론 여성운동의 방향에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더 잘하겠지만…
어제 새벽에 동생들이랑 희진샘 머니볼 매거진 들으면서 시골 내려오는 데, 그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리더십 이야기 하시면서, 누구도 누구를 바꿀 수 없는 거라고. 다만 배려하고 고려 할 수는 있는 거라고. 여전히 특정 성별일방만 배려하고 고려하는 노동이 당연한 것에 대해서는 거대한 물음표가 있지만, 태도로서는 잘 염두해두려고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200원 내고 싶네요 ㅋㅋㅋ

잠자냥 2023-01-20 11:39   좋아요 5 | URL
저기 가서 내 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1-20 11:43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잠자냥바보!!!

단발머리 2023-01-24 12:33   좋아요 4 | URL
쟝쟝님 입장을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여성들의 목소리와 지면이 더 많아질때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위치에 선 여성들이 대표되는 상황이 전 좀 걱정이기는 한데. 이미 그런 상황으로 보이기도 하구요. 그 분들이 제일 똑똑하고 이미 일을 하고 있고... 그런 것이요. 나경원이 어떻게 원내대표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당대 정치 문법의 체화없이는 불가능하겠지요.(물론 요즘은 윤에 찍혀서 무척 힘들어 보이지만...) 오히려 ‘정치하는 엄마들‘ 같은 분들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려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언론은 관심이 없는 것도 같고요.

200원은 제가ㅋㅋㅋㅋㅋㅋㅋ 마음만 받을게요. 적립해 두겠어요.

단발머리 2023-01-20 11:47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은 바보 아니고요. 근자 들어 가장 핫한 투비 작가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흥해라, 잠자냥님!! 꼭꼭 흥해라!!!

공쟝쟝 2023-01-20 11:55   좋아요 3 | URL
저는 페미니즘 공부 통해서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해볼 법한 상상력이상의 상상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긴해요 (이게 재밌어요…) 그건 그거대로 계속해볼 생각입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3-01-20 12:2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의 3장 <마르크스 주의 페미니즘>을 읽고 있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책은 이론을 잘 정리해준다는 장점이 있고, 마르크스 주의 페미니즘 부분은 아주 재미있더라고요. 아직 다 읽진 않았습니다만. 그리고 자유주의 페미니즘 읽다가 마르크스 주의 페미니즘으로 읽기를 넘어온 지금, 제 입장은 확실히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아니라는 거였어요. 저는 그보다는 마르크스 쪽이더라고요, 현재는. 물론 뒷장을 읽으면 또 어떤 식으로 바뀔지 모르겠지만요. 아마도 저는 젊지는 않지만, 단발머리 님이 설득하고자 하는 바로 그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입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자 운동으로 전락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말씀 충분히 이해하고 일리가 있지만, 그러나 ‘인기 있고 덜 위협적인‘ 것으로도 저는 이미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여성들의 현실이 바뀌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거든요. 언론에서는 젠더갈등 심하다고 연일 얘기하지만, 실상 젊은 여성들의 과격한 발언(어떻게 그런 말을 해?)이 없었다면 사실 저는 여전히 김치녀, 된장녀, 맘충을 쓰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현저히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충분히 진보적이지도 못하고 충분히 급진적이지도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깜짝 놀랄만큼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젊은 여성들에 대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기까지 쓰고 나니, 저야말로 단발머리 님의 말을 ‘듣지 않는‘ 바로 그 사람중에 하나인 것 같네요. 하핫;;

이런 제 입장이나 생각과는 별개로 저는 요즘 유연함에 대해 생각했어요. 이건 얼마전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한 지점이기도 한데요, 그러니까 제가 페미니즘을 알면 알수록 분노가 쌓이고 급진적이 되면서 ‘너같은 놈들은 안돼!‘ 라는 마음이 가득했다면, 그래서 손을 놓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시간이 흘렀고 그 뒤로 유연해지기도 해서 제 생각은 더 급진적이 될망정, ‘너라는 개인의 입장에서 네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지‘ 라든가 ‘너는 나랑 생각이 완전히 다르구나‘ 하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좋은 동료, 친구, 연인이 될 수 있다는거죠. 그러니까 뭐랄까, 가슴 속에 꽉 차있던 분노를 제가 스스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달까요? 어떤 말이나 행동 때문에 누군가를 잃었다면, 지금처럼 유연해진 지금 똑같은 말과 행동에 잃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일전에 단발머리 님도 그룹(혹은 단체)에 대한 반발감이 일 때, 그러나 그 그룹에 있던 애정하는 개인을 떠올린다, 그러면 조금 부드러워진다, 는 그 말씀과 맥락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표성을 미워할 수 있지만, 개인으로 놓고 보면 우린 사실 거기서 거기인, 다 부족하고 그러나 또 충분히 애정할만한 지점도 있는, 그런 개인들 이니까요.

잠자냥 2023-01-20 14:15   좋아요 4 | URL
500원 주고 싶다........

단발머리 2023-01-20 14:27   좋아요 4 | URL
여성의 현실을 바꾸는데 있어서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운동 방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성주의 운동 전체를 이끌고 가는 힘이 있죠. 미러링을 비롯한 강하다고 느껴지는 일련의 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다락방님 말씀처럼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적 여성 혐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는 점도 이해하고요.

그리고 유연함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도 동의합니다. 젊은 여성들 내면에 쌓여진 분노가 여성주의 운동의 강한 동력이 되었던 것만큼,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이해하면서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생각하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젊은 여성‘, 제 말을 당최 들으려고 하지 않는 여성은 구체적인 인물입니다. 저랑 같이 살고, 제가 차려준 밥을 먹는 사람이죠. 여성으로서 고단한 삶에 대해 제가 알고 또 이해하지만 저와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할 여성이고, 또 아직은..... 아직은 제 삶/생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여성입니다. 저는 다락방님과 연대할 수 있고, 그 연대의 바탕에 애정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여성과의 연대는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제가 가진 애정과는 상관없이요. 저는 안타까워하거나 아쉬운 마음 없이 이 상황을 이대로 받아들입니다. 제게는 뭐 다른 선택지도 없고요. 그 젊은 여성을 응원하기 때문이죠. 당최 듣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단발머리 2023-01-20 14:26   좋아요 3 | URL
잠자냥님~~ 거기 가셔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케익이 500원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1-20 14:53   좋아요 4 | URL
단발머리 님/ 어휴, 저 왜 단발머리 님 댓글 읽는데 눈물이 나죠? 그 구체적인 젊은 여성을 저는 페이퍼 읽을 때부터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었던 바, 연대는 요원해 보이는 바 받아들이고 응원한다는 단발머리 님의 생각과 마음가짐이 어떤걸지 제가 감히 짐작도 못하겠네요. 이건 아마도 제가 아빠를 이해할 수 없는 것과는 다른 지점일 것 같아서 말이지요. 늙으면서 눈물이 많아져가지고 툭하면 눈물이 나요 ㅠㅠ

잠자냥 님/ 제 계좌로 500원 쏴주십시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1-20 15:10   좋아요 3 | URL
에구..... ㅠㅠㅠ 다락방님.... (토닥토닥)

제가 오전에 이 글 올리는데 한 3-40분을 화면을 열어놓고 계속 망설였어요.

...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젊은 여성은 듣지 않는다. 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

라고 썼어요. 그러면 훨씬 더 명확하고 정확하죠. 그 대상이요. 근데.... 참 그렇더라구요. 제가 밥을 차려주기는 했는데 맛있게는 못해줬구요. 아니, 그래도....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도저히 못 먹을 음식도 저는 막 내놓습니다. 그렇게 못 먹였는데도 아이가 키가 커요. 미스테리죠. 화면을 쳐다보면서 계속 맘에 걸려서.... 마지막 문장을 빼고 바꿨어요. 듣지 않더라, 이렇게요.

큰아이는 저의 분신같이 느껴질 때가 많고요. 한국에서... 사춘기 여자 청소년의 고단한 삶을, 저는 아니까요. 이 아이와 저를 분리하면서 그러면서도 응원하고 연대하는게 제 몫이라고 여겨요. 제 말을 당최 듣지는 않지만요.

다락방님 마음, 제가 잘 접수했어요. 전, 그 마음 알죠. 알아요.....

책읽는나무 2023-01-20 15: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전 페미니즘 책을 읽기 전까지는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인 줄 알았습니다.
헌데 읽다 보니 부류가 다양하게 나뉘는 것에 좀 놀랐었고, 나는 어디에 속할까? 늘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마도 나는 급진적인 페미니즘 쪽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요즘 10~20 대들이 서로 성비가 나뉘어 소통이 되질 않는데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이 많아지니...급진적 페미니즘을 밀고 나가는 게 맞는 것인가? 소통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 나는 급진적은 아닌가 보다! 그런 결론을 내린 적 있었어요^^
근데 이 책을 읽다 보면 페미니즘 이론과 맞물리는 비평들이 마구 섞여 지금 나는 누구인가? 가 되어버렸구요! 베티 프리단의 책을 읽으면 또 한없이 침울해지구요. 그래서 읽기 진도가 잘 나가질 않네요?ㅜㅜ
일단 전 꾸역꾸역 4 장 <정신분석 페미니즘>을 오전에 잠깐 읽었습니다.
2 장 자유주의 페미니즘 부분이 제겐 가장 부담스럽고 어지러운 편이었습니다. 기초가 부족하니 정말 너무 혼란스럽더군요? 공부가 부족한 걸 깨달았구요^^;;;
헌데 단발님의 예시는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지금 현시점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분명 논쟁거리가 되는 계급 문제가 있지만, 그 시점에서는 어쩌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도 생각지 못한, 행하지 못한 것을 앞서 나갔다는 것은 뒤에 따라올 사람에게 길을 터준 것! 길을 터주었기에 의식이 바뀌었고, 의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문제시 된 것을 바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평서의 작가는 비평으로 끝나는 것인지? 개인이 주장으로 강하게 밀고 나가고자 하는 것인지?
간혹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암튼 4 장 중반까지 읽으면서 급히 깨달은 건 아! 더 찾아 읽어야겠구나! 였습니다.
모르는 사람들 이름이 너무 많이 나오네요^^;;;

단발머리 2023-01-21 17:01   좋아요 1 | URL
저는 책나무님의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이 책 읽으면서 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질문 같아요. 정희진쌤(제 독서인생의 영원한 원저자)께서도 그 질문 ‘나의 위치를 묻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구요. 그래야 빨리 배울 수 있고 깊게 배울 수 있다고 하셨어요 ㅎㅎ

저 역시 앞서서 길을 터준 여성들에 대해 고마워하고 또 그 공과에 대해 잘 살펴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이 재산을 ‘소유‘한다는 관념 자체가 없었던 시대도 있었으니까요.
설 하루 전날이네요. 맛난 거 드시고 계시나요? 아니면, 전 준비하시나요? ㅎㅎㅎ

2023-01-20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21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3-01-20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가 뭔가 울컥하는 이 기분은 일종의 동료의식이랄까? ㅎㅎ
지금의 10대와 20대의 생각이 내 생각과 같을 수는 절대 없어요. 심지어 저의 20대는 부모세대를-그 세대의 학력이나 업적이나 뭐 이런거 상관없이 세대 전체를 말이죠 - 철저하게 무시한 세대인걸요. 그런 제가 지금의 어린 여성들이 내 생각과 같기를 기대하는건 전 너무 비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ㅎㅎ
저는 요즘은 이론과 현실은 절대로 같을 수 없고 어차피 현실은 다양한 생각의 세력과 운동이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뻔한 생각을 해요. 급진적인 페미니즘의 자리가 있고 그들은 그들대로 운동을 하며 사회를 바꾸고, 또 그 반면에 자유주의든 체제지향적이라고 욕을 먹든 그래도 필요한 작은 변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 역시 사회를 바꾸어나간다고요. 그 과정에서 내가 옳으니까 너는 죽어야 돼 이것만 아니면 된다는 뭐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단발머리 2023-01-21 17:10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댓글에 제가 형광펜을 쳤습니다.

이론과 현실은 절대로 같을 수 없고 어차피 현실은 다양한 생각의 세력과 운동이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저도 잊지 않고 잘 기억해두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과격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지지합니다. 제가 그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기는 하지만요. 다만 저의 위치가 있으니, 저와 가까이 있는 덜 과격한 사람들을, 더 과격한 사람들의 옆자리로 안내하는데 저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바람돌이님!! 오늘 아침에 서울 영하 8도였는데 제 맘은 영상 3도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