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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도 아프게 한다. 어차피 나눌 수 없는 고통이다. 지금 나의 이 글도 고통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경우에나 읽힐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해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 대신 이렇게 말한다.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지 마세요.”, “안 아픈 사람을 배려하세요(아픈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안 아픈 사람은 피해 의식에 시달리기 쉽다).”, 주문으로 감사합니다를 반복하세요.”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 89)

 


밤마다 아껴 읽었던 정희진 선생님의 이 책에서, 위 문단을 최고의 문단으로 꼽는다. 선생님의 통찰이 제일 빛나는 부분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혹은 고통을 통해 성숙해진다는 일반적인 통념에 대한 정면 승부이고, 그녀의 글을 읽고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고통이 자기성찰, 반성,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는지를 가늠하는 때는 고통이 끝난 이후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추천하는 엄기호의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읽었다. 목적이 있는, 확실한 목표가 있는 책읽기였다. 최근에, 고통에 대한 호소와 그와 함께 밀려오는 감정 때문에 힘들었다.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 가족과 친구가 쏟아내는 부정적인 감정과 고통의 호소를 받아내는일이 고통스러웠다. 어느 정도 그러한 고통의 말과 소리, 호소를 반사해 버린 나 자신 때문에 또 며칠이 괴로웠다. 왜 더 사랑하지 못할까. 왜 더 받아주지 못할까.

 

몰려드는 후회와 괴로운 심정에 답을 찾고 싶어 책을 읽었다. 나눌 수 있는가. 고통을 나눌 수 있는가. 나눌 수 있다면 나는 내 몫으로 돌아온 고통과 고통의 호소를, 그 소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인가. 나는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인가. 이기적인 사람이다, 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던 바였다. 하지만 괴로웠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좋아하는 친구가 이렇게 힘든데, 그런데도 나는 계속 이기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기적인 나를 새로 발견했고, 그런 내가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굽힐 수도 없었다. 이미 충분히 이기적인 사람임을 인정한 이상, 도로 착해질 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든 사람들이 미웠다. 나를 더 이기적으로 만든 그 사람들이 싫었다.

 

반 정도 읽었을 때, 밤늦게 퇴근하고 돌아와 식탁에 마주 앉은 사람에게 물었다. 나는 답을 찾고 있는데, 이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답이 안 나와. 답이 여기 안 나오네. 그걸 몰랐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 앉은 사람이 말한다. 답이 어디 있어. 원래 책에는 답이 없잖아.  

 



아니었다. 책에는 답이 있었다. 그다음 날, 그다음 페이지를 읽다가 나눌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엄기호의 을 찾았다. 고통을 덜어내는 방법으로 엄기호는 글쓰기와 걷기를 권했다. 그리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한다. 고통을 함께 할수는 없다. 하지만 고통당하는 사람 곁에 있어 줄 수는 있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고통은 동행을 모른다. 동행은 그 곁을 지키는 이의 곁에서 이뤄진다. 그러므로 고통을 겪는 이가 자기 고통의 곁에 서게 될 때 비로소 그 곁에 선 이의 위치는 고통의 곁의 곁이 된다. 이렇게 고통의 곁에서 그 곁의 곁이 되는 것, 그것이 고통의 곁을 지킨 이의 가장 큰 기쁨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고통의 곁에 선 이는 고통을 겪는 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249)

 


인권 활동가도 아니고, 그들을 위해 대단한 희생을 하지도 않은 내가, 고통의 곁에서 그 곁의 곁이 될 수 있을까. 고통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더 오랜 시간 고통의 호소를 들어줄 수 있을까. 더 많이 기다려 줄 수 있을까.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을까. 없는데.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홀로‘ 존재하는 것이 허락된것은 신이나 사물이다. 인간人間은 그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홀로‘라는 단수로 존재할 수 없고 다른 무엇과 함께 그 사이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라는 철학자는 이를 인간 존재의 근원적 성격인 ‘복수성 plurality‘ 이라고 말했다. - P59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성과‘를 내야 한다. 이 성과는 내가 자족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있는 차원의 것이어야 한다.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던져진 사회에는 그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 사회가 만들어놓은 성과에 대한 판별 기준이 있다. 무엇이 인정받을 만한 성과이고 어떤 것은 아무리 해도 인정받을 수 없는 성과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사회마다 이런 성과에 대한 인정 체제가 있으며 우리는 선택권 없이 그 안에 던져진다. - P139

응답을 요구하지도, 응답할 수도 없는 말을 듣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그 말을 듣는 이는 자기에게 하지 않는 말을 그저 듣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고통을 겪는 이는 "너 아니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만, 듣는 이는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그는 아마 똑같은 말을 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 말을 듣고 응답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그 앞에 있으며 무한 반복되는 자기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 P227

홀로 남았을 때 사람은 비로소 ‘남을 넘어선 남‘, 남이 사라지더라도 언제든 자기와 함께하고 있는 남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 ‘남을 넘어선 남‘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로부터 인정받아야 하고, 그에 비추어 자기에 대한 앎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기에 사람은 홀로 있을 때 자기 안의 복수성을 인식하게 되고그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고 이해를 구하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때가 바로 자기가 자기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도 자기를 납득하지 못할 때가 아닌가? 그것은 인간이 바로 ‘자기의 복수성‘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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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6-02 12: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 진짜 단발님 엄청 애정하는 거 아시죠? 애정하는 단발님이 애정하는 이 책 읽어서 너무 좋아요….ㅠㅠㅠㅠ 엄기호 슨생님 글도 진짜 좋죠? (저 지금까지 읽은 한국 사회과학 책들 통틀어 정희진님 다음에 엄기호 선생님 꼽아요.) 희진샘과 다르게 엄슨생님은 조금씩 힌트와 답을 주시는 것도 사실이예요. 이분이 쓰신 책들 저는 거듭 읽었는 데 1위에 ‘공부공부’가 2위에 리셋이 3위에 고통이 있어요!!! 공부공부는 힘내서 꼭 읽어주세요.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함께 걸으면서 꼭 이야기 나눠요. 곁이 되어 좋아요. 고통의 곁의 곁의 곁이 되겠어!!
(공감포인트 발견해서 심각하게 호들갑중인..나..ㅜ)

단발머리 2021-06-02 13:04   좋아요 6 | URL
엄기호 슨생님은 정희진선생님과 친하신 듯 해요. 그런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저는 여러 작가의 글을 모아놓은 책에서 엄기호 슨생님 글은 읽어보았고 단행본으로는 이 책이 처음인데 좋았어요. 필요한 독서였구요. 공부공부도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이 댓글이야말로 고통의 곁의 곁의 곁의 곁이 되는 거네요. 고마워요, 쟝쟝님!!

다락방 2021-06-02 14:16   좋아요 4 | URL
(메모메모) 엄기호 공부공부.. 오케.

공쟝쟝 2021-06-03 14:42   좋아요 0 | URL
정희진님, 엄기호님 두분 친하신거 저도 어디서 읽고 반가웠지 않았겠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친하다니... 나도 껴줘~~~ 이럼시롱~~~
덧붙여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아요) 읽을 당시에는 몰랐는 데, 지금와서 떠올려보니 미셸푸코의 ‘자기배려‘를 텍스트로 차용했었던 것 같아요..(나도 모르는 나의 일관성)라고 적다가 책 뒤졌는데 푸코가 있긴 한데 각주로만 찾았고 본문에서 못찾았고 ㅋㅋ 되려 ‘한나 아렌트‘와 ‘서발턴‘의 스피박이 나와서 기뻐짐.... 여러분 읽자.

얄라알라 2021-06-03 16:55   좋아요 0 | URL
비오던 날이었나? 기억이 조금 가물한데, 멀리 대학로까지 북토크 들으러갔던 날이 생각나네요. 엄기호 선생님 책 읽고, 오호!!! 꼭 뵈어야겠어!! 하며 찾아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티나무 2021-06-02 15: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섬주섬... 집에 있는 책 중에 엄기호 이름 찾으러 갑니다. 있는 거 먼저 읽자! 어딘가 있을 겨...

단발머리 2021-06-03 11:44   좋아요 0 | URL
있을 거라 저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이팅!!!

수이 2021-06-02 18: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엄기호 엄기호 공부공부 엄기호 엄기호 메모메모

단발머리 2021-06-03 11:44   좋아요 0 | URL
이게 세트에요. 엄기호공부메모 공부엄기호메모 메모공부엄기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6-03 12:23   좋아요 0 | URL
공부공부공부 메모메모메모 엄기호엄기호엄기호 단발님 단발님 단발님❤️🧡💛💚💙💜

공쟝쟝 2021-06-03 14:43   좋아요 0 | URL
공부공부 메모메모 엄기호엄기호 단발님단발님 수연님수연님

얄라알라 2021-06-02 19: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직 89쪽까지 가지 못하고, 요새 책 안 읽는 병에 걸렸는지 중간에 쉬고 있는데 89쪽 쯤에 눈 힘주고 읽어야겠네요.
저도 ˝곁의 곁˝을, 엄기호 선생님께서 강조해주신 덕분에 전혀 생각못해본 차원으로 생각이 나가더라고요. 엄기호 선생님 팬덤이 확실하네요^^

단발머리 2021-06-03 11:46   좋아요 1 | URL
책 안 읽는 병의 치료법은 책을 당분간 안 읽으면 다시 읽게 되고 싶어진다고 들었습니다. 89쪽을 포함한 이 챕터 전체가 좋아요.
엄기호 선생님 책이 처음인데 전 좋더라구요. 일단 다음책은 공부공부로 정했구요^^

얄라알라 2021-06-03 16:54   좋아요 0 | URL
어떻게 아셨어요?^^ 저 어제 한국 사회 마약 중독 실태를 다룬 책을 새벽 2시까지 꾸벅 졸며 읽으며 ㅋㅋㅋ책 안 읽는 병은 잠시 지나가는 병이었어요 ㅋ

붕붕툐툐 2021-06-02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의 고민은 더 사랑할 수 있고 더 곁에 있어줄 수 있다는 외침으로 보이는 걸요~ 읽고 고민하시는 것만 봐도 너무 좋은 사람~ 곁에 있어주는 거, 나 자신을 나눠주는게 젤로 중요하고 좋은 거죠?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단발머리 2021-06-03 11:48   좋아요 1 | URL
그것은 아니었지만 ㅠㅠㅠㅠㅠㅠㅠ 툐툐님 제안으로 그렇게 한 번 해볼까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장소와 들어주는 이웃들이 있어 너무 감사해요. 알라딘 최고에요. 저를 좀 더 나눠주는 거는.... 조금만 더 생각해볼께요. 흐미 ㅠㅠㅠ

수이 2021-06-03 12:21   좋아요 2 | URL
저는 안 나눌래요 ㅋㅋㅋㅋㅋㅋㅋ 대신 단발님과 툐툐님이 나누어주시면 이 사랑을 갖고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아자!

붕붕툐툐 2021-06-03 14:16   좋아요 1 | URL
알라딘 최고에 저도 한표!ㅎㅎ
수연님께 마구마구 드림~💕
 


 

















이틀 전부터 고민했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서 실현할 수 있는 경험의 최대치 중 하나인 출산과 섹스 중에, 여성 고유의 고난도 실천을 감행했던 그 날의 메뉴에 대해서 말이다. 나와 함께 그날의 원인을 제공했던 사람은 아침 일찍 출근했고, 나와 같이 고통의 순간을 겪어냈던 사람도 아침 일찍 등교했기에, 그날 집에는 역사적인 순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만 남아 있을 예정이었다. 메뉴에 대해 고민했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고, 일주일 내내 몸이 무거웠던 나는, 잠시 눈만 붙인다는 것이, 잠자는 숲 속의 미녀도 아니면서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어 눈을 떠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온라인 수업에도 엄연히 점심시간이 있는데, 무엇을 사러 나갈 수도, 주문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아침에 끓여 두었던 미역국을 점심으로 하자는 제안에, 역사적인 그 날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으나, 대신 아침에는 제공하지 않았던 장조림을 내어주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역국과 장조림이 그 날의 점심이었다.

 


오후에는 에이드리언 리치의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를 읽었다.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책인데,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다

 

 

가정에 매이지 않는 여성, 이성애적 짝짓기와 출산의 법칙을 거스른 여성은 남성 헤게모니에 커다란 위협을 가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도 이런 여성들은 선교사로, 수녀로, 교사로, 간호사로, 결혼하지 않은 이모나 고모로, 사회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라는 기대를 받았고, 중산층이면 노동력을 팔지 말고 무상으로 제공해야 했으며, 여성의 처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온화하게 말해야 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이들은 아이들에게 매시간 매인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명상하고 관찰하고 글을 쓸 시간이 있었고, 일반적인 여성들의 경험에 관한 강력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샬럿 브론테(첫 임신 중 사망), 마거릿 풀러(주요 업적은 아이를 낳기 전에 이루어졌다), 조지 엘리엇, 에밀리 브론테, 에밀리 디킨슨, 크리스티나 로제티, 버지니아 울프,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아이 없는여성들의 인정받지 못한 연구와 학문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모두 여성으로서 정신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215)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인간이 경험하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특별한 일에 속한다. 아이를 낳는 일은 물론이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지켜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확실해진다. 아주 짧은 시간 벌어지는 일이고, 아주 순식간에 지나치는 일들이다. 하지만, 한 명의 인간을 1인분의 인간으로 키워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고, 아주 여러 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 시간을 견뎌 내야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을 만날 수 있다. 재활용하는 날, 잽싸게 반바지로 갈아입고 종이박스 해체를 위해 커터칼 챙기는 인간으로.

 


나는 아이 셋을 낳아 키운 에이드리언 리치가 아이 없이 또는 아이를 돌보지 않기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던 환경에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여성들에게 당신들은 애를 안 낳아봐서 잘 몰라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박완서 선생님은 자녀가 다섯이었다. 어슐러 르 귄은 셋이었고, 토니 모리슨은 아이 둘의 싱글맘이었다. 에이드리언 리치 역시 고만고만한 아이 셋을 키우며, 아이들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쓰고자 하는혹은 써야만 하는작가의 욕망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드리언 리치는, 싱글로 산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던 시대에 여성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과 개인적 현실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 그들, ‘아이 없는그녀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가졌다.

 

실질적 의미의 결혼 생활을 거부하고 호텔에서 주로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던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성은 종의 먹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인식과 통찰, 그리고 사유는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했을 뿐만 아니라 각성하도록 이끌었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일상의 압박에서 벗어났던 그녀의 공부와 연구와 통찰이2의 성』이라는 열매를 맺었을 때, 도전적인 생각의 확장이 여성들을 얼마나 자유롭게 만들었는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마거릿 애트우드의증언들』 속 세상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여성은 수녀뿐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일상의 부담을 지지 않는 여성만이 공부할 수 있었고, 여성을 성적 존재로만 규정하는 그 세계 안에서 성적 존재가 아닌 개인으로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았던 여성을 존중하면서, 그들의 혜안으로부터 좋은 것을 배워가는 에이드리언 리치에게서 또 배운다. 배울 게 많은, 훌륭한 사람이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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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몬 드 보부아르와 데버라 리비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09-20 09:10 
    <정신적인 영양실조>라는 글의 앞과 뒤를 보충해 다시 썼다. 『살림 비용』을 읽었다. 제발 파리를 버리고 시카고로 와 함께 살자고 앨그렌이 사정했을 때, 보부아르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난 행복과 사랑만을 위해 살 수 없어. 내 글쓰기와 일이 유일하게 의미를 가지는 곳일지도 모를 이 곳에서 계속 글을 쓰고 일을 하는 걸 단념할 순 없어." 글을 쓰면서 행복과 사랑과 가정과 아이도 가질 수 있지는 않았을까? 보부아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2. 강제적 이성애와 정희진 만세!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3-02-01 11:51 
    ‘아이 없는’ 여성의 지적 성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한 에이드리언 리치에 대해서는 이렇게 두 개의 글을 썼다. (내 글에 내 글을 인용할 때 많이 거시기하지만, 앎비앎 친구 쟝쟝님이 괜찮다고 해서 부끄러움을 접어두고 링크를 건다.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2662668,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3944978)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는 에이드리언
 
 
유부만두 2021-06-02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뭔지 알아요. 알아. ㅜ ㅜ

단발머리 2021-06-02 13:05   좋아요 1 | URL
아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ㅠㅠㅠㅠㅠ

공쟝쟝 2021-06-02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엄마, 고생많았어요! 미역국 많이 드셨어야죠! (방금 엄마에 대해 쓰고 빠져나오는 중이라… 왠지 사랑을 담아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다?)
게다가 에이드리언 리치는 용감하기까지 하죠. 세상이 엄마들을 너무 강하게 만들어버린 덕에, 정말 매일 매일 가슴이 웅장해져버리네요. 여자들아, 아 여자들아, ㅠㅠㅠㅠ 아이없는 여성들에게 가졌다는 존경심도 대책없이 찡해져버리고. 그것이 어떤 힌트 같기도 해서 우리들의 관계가 좋고 😊 또 소중하고! 결국은 너무 소중한 우리들 🥰

단발머리 2021-06-02 13:07   좋아요 2 | URL
여성간의 사랑이 왜 불가능해졌는지 부분 읽고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사실 여성들이 훨~~~씬 많았는데, 그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지 못한.... 아, 우리의 암울한 과거여!
우리에게 던져준 힌트 우리 차곡차곡 잘 맞춰가 봅시다! 할 수 있을거야, 우리는!! 할 수 있어!!!!!

바람돌이 2021-06-02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 잔뜩입니다.

단발머리 2021-06-02 13:07   좋아요 1 | URL
공감된다고 해 주셔서 감사해요, 바람돌이님!!

수이 2021-06-02 1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6월이 벌써! 자극 팍팍 주고 공감 팍팍 주는 글입니다. 단발님은 말이죠.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면서 너무 간혹 쓰신다는 게 문제인 겁니다. 팍팍 써주세요. 읽고 자극 팍팍 받을 수 있게. (에이드리언 리치 제가 좋다고 글 썼던 거 같은데 제 페이퍼에서는 글이 잘 안 보이네요 ㅎㅎㅎ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단발머리 2021-06-02 13:09   좋아요 1 | URL
수연님의 팍팍 3개는 잘 수령하였습니다. 보내드린 팍팍 2개들이 3개 세트, 때마다 철마다 잘 사용하시기 바래요.
이 책은 수연님이 소개해 준 책이라, 제가 매우 고맙다고 합니다^^
 





 













<메리>는 죽음에 관한 책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이 넘쳐났다. 메리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죽었고, 평생의 친구 앤이 죽었다. 진심으로 마음을 주었던 사람 헨리가 죽었고, 그리고 메리가 죽었다. 다 죽었다.


 

<마리아>는 남편에 의해 정신병자용 수용소에 갇힌 마리아의 삶과 그녀를 돕는 재미마의 인생이야기를 고백의 형태로 들려준다. 당시 유행하던 고딕 소설의 틀을 차용한 것인데, 내용 자체는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우주여행이 가능하고 인공 심장술이 보편화되고 있는 이 21세기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고통받는 여성들의 삶과 소설 속 여인들의 삶이 너무나 닮아있어, 읽는 내내 답답했다.

 


그 사람과 저는 근처 거리로 나가서 구걸했고, 제 몰골이 일 없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몇 푼 끌어내 잠자리를 구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병이 낫고, 누더기를 가장 좋아 보이도록 입는 법을 배운 저는 만나는 짐승 같은 자들의 욕망에 굴복하게 되었고, 더욱 짐승 같은 주인어른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혐오감을 느꼈어요. (179)

 


재미마의 고백은 가난한 여성이 가난한 남성과는 다르게 경험하는 범죄와 유혹의 현장을 그려내 보인다. 똑같이 철저히 가난한데, 왜 가난한 여성의 고통은 가난한 남성의 고통과 같지 않은가. 왜 여성은 다른 종류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   

 


미치지 않은 마리아가 정신병자용 수용소에 갇힌 이유는 그녀가 소유한 재산을 남편이 원했기 때문이고, 재산을 소유한 그녀가 남편을 떠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좀 진정하더니 주머니에서 신문을 꺼내더니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지만 별수 없이 남편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신문을 낚아채어 보았다. 광고 하나가 곧 눈에 들어왔다. “마리아 베너블즈는 특별한 사유 없이 남편으로부터 달아났음. 그녀를 숨겨주는 사람은 누구든지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임.” (264)

 


헤어지고 싶은데, 헤어질 수가 없다. 폭군 같은 처사와 외도를 참아왔는데도, 거짓말로 마리아를 속이고 그녀를 노예처럼 다른 남자에게 팔려고 하는 남자인데. 그런 남자와는 헤어져야 하는데. 그는 헤어지자는 말을, 그만 만나자는 말을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왜 사람들은 그녀가 특별한 사유 없이 남편으로부터 달아났다는 그의 말만 믿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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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27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틸다 읽는 중인데 이 세 편 중에서 마리아가 제일 좋았어요. 부당함을 알고 고쳐야된다고 말하고 있어서요. 이 책이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면 그건 마리아가 담고 있는 것 같아요. 메리는.. 저한테 너무 답답해요. 병약하고 죽고 병약하고 죽고.. 하아-

단발머리 2021-06-01 21:57   좋아요 0 | URL
병약했던 메리가 죽을 때 저의 슬픔이라는 것은 뭐...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메리가 죽으면서 소설이 끝났죠. 하아~~~

Falstaff 2021-05-27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다른 건 다 모르겠고요, 이 책, 오지게 비싸기로 유명짜한 한국문화사에서 만든 건데, 솔직하게 얘기해주시면 정말 좋겠는데요,
영어를 잘 한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 번역문 수준이 괜찮은가요?
제가 워낙 데서 이 출판사 번역서는 선택을 하지 않아 그렇습니다. 대학원생이 아니고 공부 잘 하는 학부생 시켜서 번역한 거 그냥 책으로 낸 수준이, 이 책은 아닌 모양이지요?
에구... 딸꾹. 취중진담, 나중진땀...이라더니 그 꼴 나지 않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근데, 이거 취중에 자폭 아녀?

단발머리 2021-06-02 11:03   좋아요 0 | URL
일단 오지게 비싸기로 유명한 이 출판사의 이 책을 전 구입하지 않아서요. 도서관에서 사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 번역 수준에 대해서는, 저는 뭐라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이.... 소설의 내용 자체가 평이합니다. 특별한 영어실력을 요구하지 않아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는요. 문제가 있는 부분은 <작품 해설>쪽입니다. 내용이 어려운 게 아니라 앞뒤가 안 맞는ㅠㅠ
자폭은 아니신걸로 생각됩니다^^
 


















신지예를 응원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빈 서판』을 읽겠으니 가지고 오라고 해서 실제로 봤더니, 생각보다 두껍다. 다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목차만 봐야지 하고 펼쳤는데, 18장이 <젠더>. 18장을 펼쳤다.

 

스티븐 핑거 주장의 핵심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남녀는 한 종으로서 함께 진화했고, 최고의 심리 측정 기술에 따르면 일반 지능의 평균도 비슷하지만(601), 분명히 남녀 간에는 차이가 존재하는데, 남자들은 던지기를 잘하고 여자들은 손재주에 뛰어나며, 여자는 인간관계에 더 세심하고, 남자는 불분명한 보상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처럼 각각의 영역에서 남녀 간에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603) 남녀 간의 차이와 그로 인한 구별은 전 지구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성 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남녀 학생 간의 수학 점수 차이가 적게 나타나는 것이나, 여성의 이동이 극도로 제한되는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의 공간 지각 지수가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보다.

 

604쪽과 615쪽에는 상반된 주장이 나온다. 604쪽에는 이미 대학, 전문직, 스포츠에 진출하는 여성의 비율이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압도적인 남성 우위에서 50 50 또는 여성 우위로 바뀌었다고 말하면서도, 615쪽에서는 많은 여성이 계속해서 공부하지 않음으로써 고급 인력이 부족하고 산업적으로 손해를 입고 있으며, 이것이 여성의 잘못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남녀 간의 불균형이 성적 편견의 증거로 사용되는 것(616)을 비판하고, 결과의 불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을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617)고 주장한다.

 


세상에. 622쪽에는 남자는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여자는 정부 기관과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정말 몰라서인가. 여성이 아이들의 일상적인 울음에 더 민감하다는(604) 그와 같은 학자들의 과학을 빙자한 주장과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현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여성의 일로 고정화된 상황 속에서, 일하고 싶은 여성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가. 남성 위주의 기업문화가 지배하는 일반 기업체인가. 아니면 비교적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고 근무 시간 이외의 업무 압박이 적은 정부 기관과 비영리 단체인가. 결국, 스티븐 핑거,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가 말하고 싶은 바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의 가능성이고, 개인의 능력을 도외시하는 이런 환경은 모두에게 비효율적이어서 여성마저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625)인데, 그렇다면 제발, 그 비용을 우리가 지불하게 해 달라.

 


강간에 대한 부분도 너무 뻔하다. 인간은 동물인데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 사이에서도 강간이 성행하며, 남자들은 종종 그들과 섹스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들과 섹스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성은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모든 생명체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도록 지극하고 진지하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은 문명의 발전을 통해 동물적 행동 방식을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지양해왔다. 아무 장소에서나 배설을 하고 육류를 생으로 먹고, 맘에 안 든다고 지나가는 사람을 때리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화를, 인간 문명의 발전을 왜 무시하는가. 다른 부분은 다 사회화되고 문명화되었는데, 어떻게 성적인 욕망만은 원시 상태 그대로인가. 유행하는 셔츠에 로퍼를 신고 손에 아이폰을 들고 있는데, 왜 심성은 원시인과 똑같다고 주장하는가. 왜 원시인 수준으로 떨어지려 하는가. 630쪽부터 643쪽에서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서 함께 읽었던 수잔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 대한 반론이 가열차다. 한 번 읽어봄직하다. 

 

 


20대 남성들의 억울함을 이해한다. 이를테면 2021년 현재, 서울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에서 회장(7080 이전 세대에게는 반장) 선거가 있었는데, 회장과 부회장에 모두 여자아이들이 선출되었다. 16명씩 남녀 동수인 반에서 여자아이들이 대표로 선출되었다는 건, 여자아이들은 전부 여자아이에게 투표했을 가능성이 크고, 남자아이 중 일부 표가 이탈해서 여자아이에게 투표했다는 뜻일 것이다. 남자 아이들이 보기에도 회장과 부회장에는 여자아이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달랐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와 6학년 때 학급 반장이었는데, 사이좋게(?) 반장은 남자아이가, 남녀 부반장은 남녀로 나뉘어 선출되던 때에 흔하지 않은 경우였다. 아니나 다를까, 전교 회장 회의에 참석하러 갔더니 12개 학급 반장 중에 여자가 한 명뿐이라 내가 한다고 하면 투표도 할 것 없이 바로 전교 부회장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전교 부회장이 되었을 때, 학교의 발전과 선생님들의 친목과 아이들의 복지에 우리 엄마가 기여할 만한 돈과 시간이 없었기에, 난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여자 부반장 중 한 명이 전교 부회장이 되었다. 그다음 해에도 그랬다. 12개 학급 중에 여자인데 반장인 사람은 나 하나였다. 아니, 그 해도 그 전해도, 여자이면서 반장인 사람은 학교에서 나 하나였다.

 

누가 내 친구들에게 남자가 반장이어야 한다고 말해줬을까. 누가 반장은 남자가 해야 한다고 말해줬을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입 밖으로 그 말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알았다. 반장은, 그 반을 대표하는 아이는 그 반의 남자아이여야 한다는 걸 말이다. 열둘, 열셋의 아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젠더의 차이가 역할과 능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래 집단 속에서 그 사실을 배웠고 내면화했다. 아이들은 배웠고 그렇게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열두 살에 형성된 가치 판단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개인을 지배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시장 선거가 끝나고 토론회가 있었는데, 젠더 갈등에 대해 토론을 하던 중, 더불어민주당의 여성의원이 여성들에게는 제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장애물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식이 변호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들인 경우에는 자랑스러울 수 있겠지만, 딸이 변호사를 한다거나 정치적 리더가 된다고 할 경우에는 원하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재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이며 최근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그건 가정교육 문제인데 그걸 왜 여기에 가지고 오냐며 말을 자르며 윽박질렀다.

 

나는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않아서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굳이 해보겠다. 아주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자아이들이 교수를 꿈꾸지 않고 교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교사는 교수만큼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의 예는 같은 일이되 사회적으로는 한 단계 아래 직군으로 이해되는 교사를 의미한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는 남자아이가 반장을 해야 한다는 인식과 그 틀을 같이 한다. 공부를 잘하면, 아주 잘하면 S대에 입학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S대에 가면 된다. 입학 여부는 성적으로 결정되고, 그건 남자와 여자에게 차별적인 요소로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학 지도 설문 자료에 재수를 할 수 있다재수는 절대 안 된다항목 중에 남자아이들 대부분은 할 수 있다, 여자아이들 대부분은 할 수 없다에 표시하는 현실 속에서, 사회적 인식이 개인의 역량과 능력, 그리고 미래까지를 한정하고, 그 근거가 성별이라고 할 때, 그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딸들에게는 1년을 더 투자할 만한 여력이 이 세계에는 없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랬다. 환경이 이러해서, 삼수해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 명문대에 입학한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많이 보았다. 대부분 남자아이들이었다. 난 여자인데, 우리집은 안 그랬는데! 라고 말하는 여성이 있다면, 축하한다. 여성인데도, 딸인데도 자원을 아끼지 않고 투자해 주신 부모님께 오래오래 효도하시길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중학교에서는 여자 회장이 여자 부회장과 함께 학급의 중요한 일을 결정한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취업 시장에서 남녀가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는가, 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여자가 모유를 먹일 수 있어서, 여자가 더 양육에 적합하도록 진화했으니까, 여자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서 상대적으로 급여가 적은 직업군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여성의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또한 실질적으로 강요되는 양육과 가사, 각종 돌봄 노동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똑똑하고 야무진 여자아이들이 부모의 현명한(?) 조언에 따라 그러한 직업군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나는 저자들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내 생각과 책의 내용이 맞설 때, 내 의견이 틀린 게 아닐까 묻는 사람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내가 무식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석학 스티븐 핑거의 우리는 동물이다의 주장과 비효율성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라는 협박에는 아, 정말 할 말을 잃게 된다. 스티븐 핑거는 틀렸다. 제발, 역차별의 공포에서 벗어나라. <국민의힘>은 다른 사람을 빨갱이로 부르며 내부의 적을 키우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당대표 후보 중의 한 명이며 여론조사에서 1위인 사람은 2030 남성들에게 너희의 적은 저 이상한 페미들이라고 선동하며, 선동에 대한 정치적 이익을 맘껏 누리고 있다. 스티븐 핑거는 협박하고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는 겁박한다.

 


그래서 신지예를 응원한다. 나는 사실 신지예를 잘 모르고, 여러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혐오의 정치, 분열의 정치를 선동하는, 그래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저 못된 사람과 마주 앉아서, 그 예의 없는 소리침과 윽박지름 속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차분하게 피력한 신지예를 응원한다. 페미니즘적 가치를 실천할 만한 권력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이제부터 신지예를 주목해 보려고 한다. 피해자 코스프레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꾀하는 분열의 정치가 물러서고, 제발 표면적으로라도 남녀평등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위해. 힘내라, 신지예! 잘했다, 신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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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22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핑거 너무 충격입니다. 이 분 <우리본성의 선한천사>그 분 아닌가요?정작 여성학 관련책은 전혀 안읽은 듯한 사고방식이네요. 저 좀전에 졸렸었는데 지금 잠이깼어요.

단발머리 2021-05-22 22:10   좋아요 2 | URL
네, 그 분이죠. 진화심리학이나 인지심릭학, 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 중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기는 해요. 과학, 특히 사회과학에서 관찰자의 관점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는데, 전능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18장만 읽고 페이퍼를 쓴 거라 제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확신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미미 2021-05-22 22:18   좋아요 1 | URL
900쪽의 압박이 좀 있지만 저도 읽어볼래요. 특별히 빨간펜 준비!

단발머리 2021-05-22 22:35   좋아요 2 | URL
전 다 읽으려 했는데 18장 읽다가 급실망해서요. 어떻게 할지 아직 모르겠어요.
미미님 읽으신다니 미미님 리뷰만 읽을까요 어쩔까요~~~

미미 2021-05-22 23:00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이 적절하게 호두까기하듯 까신것 보고 감동받았어요. 계속해주심 너무 고맙고 아니어도 저는 덕분에 자극받음요. 오늘 저도 짧막하게 이준석이 뉴스에서 비슷한 얘길하는거 듣고 뒷골이... 월욜 책 주문때 같이 시키려구요.

단발머리 2021-05-22 22:53   좋아요 3 | URL
제가 뭐 호두까고 그런 부지런한 사람은 아닌데요. 아.... 저기 위의 18장 중 강간에 관련된 부분은 참 어이가 없습니다. 저는 일반 남성들이 이런 글을 읽고(물론 책 읽는 남성이겠네요. 책이 두꺼워요 ㅠㅠ) ‘여성‘들에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펼쳐갈 그 언어의 향연이 두렵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스티븐 핑거잖아요. 그렇다잖아요. 세계적인 석학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가요. 남성의 본성과 욕망을 무한정으로 긍정해주는 이런 언설이 걱정스럽습니다. 남년간에 차이가 없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그것이 시대를 통해 이렇게 남성과 여성 전체에게로 그 역할과 능력이 고착화되는 데는 사회적인 영향이 큰데 말입니다. 휴우~~ 마음 좀 가라앉히고, 전 차분히 미미님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국민의힘 당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게 궁금해요. 저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 제1야당 당대표가 된다면. 헐.

난티나무 2021-05-22 2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진짜.... ㅠㅠ
어쩌면 좋을까요...
단발머리님 말씀 구구절절 옳습니다.

단발머리 2021-05-22 22:33   좋아요 2 | URL
어휴ㅠㅠㅠ 그렇지요 뭐. 유치원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한결같이 여자애들에게 밀리는 대다수 남자 아이들의 심정 이해합니다. 진짜 제가 완전 이해합니다. 하지만 스티븐 핑거가 역차별 이야기하는데 그건 좀 아닌거 같네요 ㅠㅠ

2021-05-22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2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2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2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2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2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3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1-05-31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참, 신지예님 정말 좋죠. 장혜영의원님과 함께 제가 응원하는 여성정치인 😙전 가끔 발언영상 보고 그러다가 막 울어요. 그리구 글 잘 읽었어요!! 그나저나 이준석 때려주고 싶다 ㅋㅋㅋ 얔ㅋㅋ 나와 넌 나랑붙자 ㅋㅋㅋ 감히 지예님과는 끕이 안돼!!

단발머리 2021-06-02 13:11   좋아요 0 | URL
신지예님 좋아요. 맨날 훼손된 벽보로만 얼굴 보다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날 자세히 봤네요.
이준석과 한 판 붙을 사람 제가 계속 찾고 있었어요. 아주 잘됐습니다!! 이준석, 나와!!!!!!!!!!!!!!!!!!!

다락방 2021-06-02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준석 인기가 상당하죠... 사회에서 누가 인기를 끌고 있느냐가 또 그 사회를 말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애초에 당대표로 뽑힐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것 자체가.. 하아.
저는 저 토론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제, 신지예를 잘 알지 못하고 이준석도 잘 모르는 회사동료(여)가 토론을 보면 신지예가 밀리는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도무지 몰 수가 없어요. 보면서 막 제가 제 가슴을 칠 것 같아서요.

저는 신지예랑 매우 많이 어긋나는 시점이나 시선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다른 후보들과 함께 있다면 신지예보다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편이지만, 그러나 신지예가 신지예이기 때문에, 여성이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고, 이 나라에서 정치를 하고자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또 차별당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이준석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을테고요.

아 답답하네요 이런 상황이. 저런 사람이 한 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답답해요 ㅠㅠ

단발머리 2021-06-02 13:15   좋아요 1 | URL
제가 토론을 풀버전으로 본 바로는, 신지예씨가 밀리지는 않았지만 워낙 이준석이가 말을 자르고 소리를 지르고 하다 보니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구요. 이준석도 이 쪽으로 아주 개발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 뭐, 쉬운 상대는 아니죠.

여성 정치인이어서 겪는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신지예씨는 페미니즘을 전면으로 내걸고 있어서 ‘전면적인‘ 거부 반응 뿐 아니라 적극적인 방해 공작도 있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신지예씨 의견 중에 반대하는 것도 많아 사실 이 글을 올릴 때도 좀 고민되고 했습니다. 다만, 다락방님 댓글처럼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그가 감당해야할 차별과 억압이 너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에 글을 올렸어요.
이준석이는.... 아마 당대표가 되지 않을까요.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시간이 흘러가기를,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며 보냈던 수많은 날들이 떠오른다. 

할말이 너무 많아 아무 말도 쓰지 못할 것 같다. 상황과 환경에 확연한 차이가 있음에도 몇몇 장면은 『82년생 김지영』과 겹쳐진다. 

여자의 삶이 똑같이 하나의 모습이라는게 슬프다.  



내가 네 살 때, 스웨터 소매가 팔 위로 말려 올라가지 않게 손으로 소맷자락을 붙들고 코트 입는 법을 가르쳐준 아버지에 대해서는 오직 자상함과 배려의 이미지만 남아 있다. 그의 말이 곧 법인 가장,식구들에게 호통을 치고, 말대꾸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가장, 전쟁 영웅이나 일터의 영웅, 그런 아버지는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내 아버지의 딸이었다. - P26

게다가 어머니는 정리해야 할 영수증, 맞이해야 하는 부인네들, 풀어놓아야 하는 상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장미 나무 밑의 야생초를 뽑고, "이렇게 하면 피부가 좋아진단다"라고 말하면서 5월의 아침 이슬로 내 뺨을 문질러 나를 깨우는 여유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언제 어디서나 독서에 몰입한다. - P33

그 점에서 나는 지역 소식을 알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저녁 식사 후에 신문을 훑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나를 벗어나, 우리를 벗어나, 굳어진 낯선 그 얼굴이, 어머니가 빠져드는 그 침묵이, 꼼짝도 하지 않는 완벽한 부동자세에 빠져 무거워진 그 몸이, 나는 부럽다. 오후마다, 저녁마다, 일요일마다, 어머니는
신문이나 시립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때로는 새로 산 책을 꺼내 든다. 그러면 아버지는 "내가 말하고 있잖아, 그 소설책들 지겹지도 않아!" 하고 고함을 치는데, 어머니는 "이 이야기 다 읽게 좀 내버려둬"라고 대꾸한다. - P33

나는 나의 파렴치한 행동, 예를 들면 좋은 점수를 받으며 느끼는 기쁨,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는 즐거움, 어머니에게서 사탕을 훔치는 즐거움 같은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하지만 내 타고난 장난기, 나의 조심성 부족은 어떻게 해도 숨길수 없다. 공책에 얼룩을 묻혀놓고, 식탁에서 공부했다는 말을 어찌 감히 할 수 있겠는가. 바느질 천에 묻은 얼룩진 손가락 자국들, "청결은 영혼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여러분!" 내 본모습이 드러난다. - P78

이야기 속 여자들은 언제나 속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실패하고, 결국 행복은 와지끈 부서지고 만다. 브리지트는 그 부분에서는 실패했고, 나는 더는 브리지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게다가 완전한 헌신에 대한 그녀의 열광,한 남자를 사랑하면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의 똥도 먹을 수 있다는 그런 열광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P96

아주 어려운 수학에 관해서,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어에 관해서, 예를 들면 루소에 관해서 그들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그들은 지루해한다. 여자아이들의 대수학 문제는 남자아이들의 문제와 견줄 수 없다. 우리 집에서나 학교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격려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으면 그런 성공은 오히려 결점이 되어버린다. - P125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자유롭게 가고, 점심은 먹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 내 방에서 공부하는 그런 자유를 누리는 처녀 시절. 결국 나는 고독을 상실할 것이다. 둘이 사는, 가구가 딸린 조그만 방에서 우리가 쉽게 격리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하루에 두 번 식사하기를 원할 것이다. 온갖 종류의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결국 재미없는 삶. 나는 이런 생각들을 내몬다.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자아를 걱정하고, 근본적으로 버릇없는, 외동딸이 하는 생각, 부끄럽다. - P171

점잖은 사람들은 비웃는다. 결혼의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면 아예 결혼하지 마, 남자도 결혼하면 손해다, 주위를 둘러봐, 최저임금만 받는 사람들, 공부할 기회도 없었던 사람들, 종일 볼트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고, 아니야, 세상의 불행을 모두 다 긁어모아한 여자의 말문을 막아버리기란 너무나 쉬운 일이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내가 입을 다물 수밖에. - P206

시시포스와 그가 끊임없이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바위, 지평선을 등지고 산 위에 우뚝 서 있는 남자는 그럴듯하게라도 보이지만, 부엌에서 1년에 365번 프라이팬에 버터를 던져넣는 여자는, 멋지지도, 부조리하지도 않다. 그냥 여자의 삶이다. 그러면 대체, ‘당신은 체계적이지 않아‘는 무슨 말인가. 체계적, 여성들을 위한 멋진 말, 모든 잡지에는 조언들로 넘쳐난다. 시간을 버세요, 이렇게 저렇게 하세요, 내 시어머니 같다. 만약 내가 여러분이라면 좀 더 빨리하기 위해 이렇게 하겠어요, 하지만 사실 이런 비결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 우울해하지도 않으면서 최단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일을 할 수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 P214

공원에서 우리는 여자들끼리 벤치에 조용히 앉아 있거나, 오후 한창때 오솔길 사이로 한가롭게 산책을 한다. 시간을 죽이며,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리며. 여자들이 내 아이의 나이를 물어보았고, 그들의 아이와 치아, 걸음, 청결 상태를 비교했다. 나중에 아이가 걷게 되고 다른 아이들과 놀게 되었을 때, 우리는 날카롭게 감시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 P218

그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길거리의 사람들을 밀치면서 안시를 돌아다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벤치에 앉아서, 오후가 흘러가기를, 아이가 어서 자라기를, 기다려본 적도 절대 없었다. 그는 일이 끝난 후,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넣고, 조용히 안시를 구경했고, 그에게는 모든 공간이 자유로웠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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