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는 죽음에 관한 책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이 넘쳐났다. 메리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죽었고, 평생의 친구 앤이 죽었다. 진심으로 마음을 주었던 사람 헨리가 죽었고, 그리고 메리가 죽었다. 다 죽었다.
<마리아>는 남편에 의해 정신병자용 수용소에 갇힌 마리아의 삶과 그녀를 돕는 재미마의 인생이야기를 고백의 형태로 들려준다. 당시 유행하던 고딕 소설의 틀을 차용한 것인데, 내용 자체는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우주여행이 가능하고 인공 심장술이 보편화되고 있는 이 21세기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삶과 소설 속 여인들의 삶이 너무나 닮아있어, 읽는 내내 답답했다.
그 사람과 저는 근처 거리로 나가서 구걸했고, 제 몰골이 일 없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몇 푼 끌어내 잠자리를 구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병이 낫고, 누더기를 가장 좋아 보이도록 입는 법을 배운 저는 만나는 짐승 같은 자들의 욕망에 굴복하게 되었고, 더욱 짐승 같은 주인어른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혐오감을 느꼈어요. (179쪽)
재미마의 고백은 가난한 여성이 가난한 남성과는 다르게 경험하는 범죄와 유혹의 현장을 그려내 보인다. 똑같이 철저히 가난한데, 왜 가난한 여성의 고통은 가난한 남성의 고통과 같지 않은가. 왜 여성은 다른 종류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
미치지 않은 마리아가 정신병자용 수용소에 갇힌 이유는 그녀가 소유한 재산을 남편이 원했기 때문이고, 재산을 소유한 그녀가 남편을 떠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좀 진정하더니 주머니에서 신문을 꺼내더니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지만 별수 없이 남편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신문을 낚아채어 보았다. 광고 하나가 곧 눈에 들어왔다. “마리아 베너블즈는 특별한 사유 없이 남편으로부터 달아났음. 그녀를 숨겨주는 사람은 누구든지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임.” (264쪽)
헤어지고 싶은데, 헤어질 수가 없다. 폭군 같은 처사와 외도를 참아왔는데도, 거짓말로 마리아를 속이고 그녀를 노예처럼 다른 남자에게 팔려고 하는 남자인데. 그런 남자와는 헤어져야 하는데. 그는 헤어지자는 말을, 그만 만나자는 말을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왜 사람들은 그녀가 ‘특별한 사유 없이 남편으로부터 달아났다’는 그의 말만 믿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