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어난 게 범죄 / Born a crime

 

이번이 두 번째다. 노아 트레버를 좋아한다. 저자의 경험 자체가 특별하다 보니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 노아 트레버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세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이 발견될 경우 조사 끝에 온 가족이 범법자가 될 소지가 다분했기에 다정한 가족은 항상 불안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혼혈 가족의 모습이다.

 


노아의 어머니는 친척 아주머니 집에서 부모로부터 버려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닭 한 마리로 열 네명이 나눠 먹어야 했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릴 때는 돼지의 먹이를, 개의 먹이를 훔쳐 먹었다. 그랬는데도, 그랬음에도. 그녀에게는 영어가 있었다.

 


There she had a white pastor who taught her English. She didn’t have food or shoes or even a pair of underwear, but she had English. She could read and write. (65)

 


그녀에게 영어는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도구이자 계급 상승을 위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영어는 더 나은 삶으로 가는 사다리가 되어 주었으되,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금빛 사다리가 되어 주었다. 다민족, 다언어 사회에서 지배자의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동시에 그것이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언어, 그 영어라는 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어가 가지는 위상은 어마어마하고, 영어에 쏟아붓는 에너지, , 시간, 열정, 관심은 가히 전 국가적이라 할 만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영어는 먼나라 이웃나라 딴 나라에 속해 있다. 무엇을 위해서 혹은 무엇 때문인지는 더 이상 묻지 말자. 더 이상 물을 힘도 없으니, 그냥 이 문장을 기억하기로 하자.

She didn’t have food or shoes or even a pair of underwear, but she had English.




 













2. 오만과 편견 / Pride and prejudice

 


중간중간 재미있는 대목만 읽었던 걸 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걸로 이번이 세 번째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읽을 때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이 제일 큰 관심사였다면, 두 번째 읽을 때는 다아시의 이모 캐서린 부인과 엘리자베스의 한판 대결이 아주 볼만했다. 이번에는 콜린 씨다. 베넷 가문의 넷째 딸 리디아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위컴과 함께 야반도주하고, 리디아가 상속받을 재산이 형편없기에 위컴에게 버림받고 불명예만 뒤집어쓴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될까, 온 가족이 염려하고 있던 찰나. 베넷 가문의 친척이며, 법적으로는 베넷 가문의 상속자인 콜린 씨가 베넷 씨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친애하는 베넷 씨, 저희 콜린스 부부는 베넷 씨 이하 모든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베넷 씨가 지금 빠져 계신 절망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할 것으로 믿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고 해도 절망의 원인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베넷 씨와 베넷 부인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말씀드리자면, 저로서는 따님이 본디 악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가급적 마음을 달래시고 못난 자식일랑 영원히 마음에서 내치시어 자기가 저지른 가증스러운 죄악의 열매를 스스로 거두게 하십시오. (389)  

 


소설 속에서는 콜린 씨를 거구로 그리지만 느낌으로는 영화 속 자그마한 콜린의 모습이 그의 말과 행동에 훨씬 잘 어울린다.



 


편지에서는 자신을 한껏 낮춘 듯하지만 구절구절 그의 허영과 위선, 그리고 오만함이 묻어난다. 무식함과 재채기, 그리고 사랑을 인생 사 감추기 어려운 3종 세트라 하지만, 원래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생각이라는 건 감출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듯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거나, 칭찬하는 척하면서 은근 디스하는 말들은, 말하는 이의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투명하게 비춰준다.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 싶지만, 결국은 마음이다. 마음은 잘 감춰지지 않는다. 심보를 바르게 하자.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3.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선생님의 책을 처음 읽었던 9년 전에도, 2021년의 지금도 선생님의 문체는 통통 튀고 발랄하다. ‘다이어트에도 영성이 필요하다?!’는 글에서 만난 문단이다.

 


동양의학의 양생술은 단연 최강급이다. 양생은 정, , 신의 순환이 핵심인데, 그러기 위해선 덜 먹고 잘 자야 한다. 특히 술과 고기, 기름진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양생술의 대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수양이나 양생을 한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다이어트다. 특히 중요한 건 저녁에 소식하는 것이다. (89)  

 


인생의 의미, 공부의 즐거움, 고전이라는 바다, 함께 공부하는 벗에 대한 찬사를 넘어 이제 의역학과의 접합이 시작된다. , , 더 많이, 가 아니라, 일상의 리듬을 바꾸고 내용과 태도를 바꾸고 감각과 활동, 그리고 관계의 변화를 이루어가는 수행으로서의 다이어트를 추천한다. 소비와 유흥이 아닌 저녁이라. 그것이 진정한 휴식으로 가는 길이란 말이냐. 푸라닭 블랙알리오와의 정면승부는 영원히 미뤄져야 한단 말이냐.

 
















4. 통증 연대기

 


성별, 인종, 계층은 통증 치료에 영향을 미친다. 카 박사의 환자 중상당수는 박사 말고는 진통제를 처방해줄 의사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실제로도 그랬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당수가 소수 민족, 여성, 기초생활 수급자, 산재연금 수급자, 정신질환자, 약물 남용 경험이 있는 환자다. (197)

 


환자가 통증을 호소할 때 성별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는 주장은 종종 제기된 바 있다. 남성이 통증을 호소하면 마약성 진통제, 수술, 완벽한 검사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크지만, 여성이 통증을 호소하면 우울증과 불안을 치료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같은 증상을 호소하고 같은 진단 결과가 나온 환자에 대해 여성은 항우울제를 처방 받을 확률이 남성보다 82퍼센트 높았으며 항불안제를 처방받을 확률은 37퍼센트 높았다.) 여성은 통증 치료를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거니와, 적극적일 경우 히스테리로 치부되기 쉽다. (198)

 


성별, 인종, 계층에 따라 다른 통증 치료법이 적용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임에도 충격적이다. 흑인이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가난하기 때문에 통증의 치료에 쓰일 진통제조차 제대로 처방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통증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개인은 알아차리기 어렵다. 내가 만난 의사가 어떠한가에 따라 통증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질 수도, 영원히 함께할 수도 있다. 성별, 인종, 계급의 편견 속에 통증은, 여전히 그만 아는 그 무엇이 되어 그를 구속한다. 통증에서의 해방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현재시간 오후 11 29. 이 날이 다 가기 전에 조금 더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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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6-19 23: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영어 나와서 놀랬어요ㅋㅋㅋㅋㅋ아우..평생 공부중ㅋㅋ질병연구도 주로 성인남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서 여성들의 경우 오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구요. 원서좀 손닿는 곳에 꺼내놔야겠어요!🤨

단발머리 2021-06-20 12:22   좋아요 3 | URL
전 의사 대다수가 남자라서 그런거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일 극단적인 경우로는…. 산부인과에서 만나는 남자 의사와 여자 의사의 경우가 있겠지요.
제 원서들은 주로 김치냉장고 위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6-20 0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만과 편견 번역본도 읽지 않은 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반성은 조금만 하고 가을쯤 도전해볼까요. 단발님이 추천해주신 책은 모조리 다 읽고 싶거든요!!

단발머리 2021-06-20 12:24   좋아요 3 | URL
오만과 편견 안 읽은 축복을 맘껏 누리시고요 ㅎㅎㅎ 저 바빠요. 어제 수연님이 말씀하신 책과 책들 빌리러 도서관 가야하거든요.

레삭매냐 2021-06-20 08: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트레버 노아의 책 <태어난 게 범죄>
의 영어 제목이 <Born a Crime>라니
너무 멋지네요. 제목 한 번 잘 뽑았다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다가
못 다 읽고 반납했네요. 재밌었는데...

다시 빌려서 마저 읽어야겠습니다.

그렇지요, 영어가 재산이지요.

단발머리 2021-06-20 12:27   좋아요 4 | URL
제목 진짜 잘 뽑았죠? 보통 이런 에세이가 작가의 매력에 업혀가기 마련이지만 이 책의 작가는 워낙 이력 자체가 특별하니까요. 저는 아주 잼나게 읽었어요.
영어가 재산이지요, 흑. 부자가 되고 싶어요ㅠㅠㅠ

그렇게혜윰 2021-06-20 08: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미숙 작가에게 통통튄다는 말이 딱이네요!

단발머리 2021-06-20 12:28   좋아요 2 | URL
통통 & 발랄 & 유쾌가 고미숙 선생님 3종 세트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

han22598 2021-06-20 12: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성들의 고통은 정신적인 이유로 많이 취급했다는 여러가지 근거들중의 하나인 히스테리 (hysteria) 라는 진단자체도 과거에 있었던 걸루 기억해요. 히스테리는 자궁적출술을 한 여성들에게 극단적으로 보이는 증상이라는 식으로 결부 시켰던 과거와 근래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을 지칭한 사회적 거부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기도 한 것 같아요. ㅠㅠ

단발머리 2021-06-20 17:0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저도 히스테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읽은 것 같아요.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적 압박에 대해서는 못 본체 하고 그 모든 원인을 자궁 때문이라고 돌리는 과학 아닌 과학이 횡횡하던 시대가 있었죠. 인용한 글에서도 여성의 고통에 대한 진단 중 항우울제 비중이 높다는게, 그런 믿음이 현재까지 이어진 거라 생각되요. 휴우 ㅠㅠㅠ 갈 길이 멉니다.

다락방 2021-06-21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 여러번 읽은 책이 별로 없거든요. 물론 있기는 하지만요. 근데 단발머리님이 오만과 편견 세 번 읽으셨고 읽을 때마다 다른걸 발견하셨다니까 아, 나도 다시 읽어볼까 싶어져요. 사실 제 경우에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여러번 읽었고 읽을 때마다 다른 구절에서 좋아서 자지러지지만 말입니다. 크-

어떤 책이든 여러번 읽는 책이 있다는 건 좋은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그건 분명 삶의 작은 기쁨일 거예요.
훗.

단발머리 2021-06-26 10:57   좋아요 0 | URL
저는 여러 번 읽는 책을 여러 권 가진 사람이야말로 진짜 행복한 사람 아닌가 싶어요. 아직도 읽어야할 책,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지만 자꾸 손이 가는 책이 있기는 해요. 오만과 편견도 제게 그런 책 중의 하나구요^^ 다락방님에게는 새벽 세시와 바람이 부나요,가 있다면 제게는 오만과 편견 그리고… (하나 더 장만해야겠어요^^)

책 읽는 기쁨이야말로 삶의 알짜배기 기쁨이지요!!!
 




 


























나의 의문과 웃음이 고미숙 선생님에게 닿아 있어서 기쁘다. 고미숙 선생님의 책은 이렇게 네 권을 읽었고 이 책이 다섯 번째다. 많이 읽지 않았는데도 굳이 밝혀 두는 건, 이 정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와 수준이었음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선생님의 연암 박지원 하트뿅뿅 사랑에 감복해 열하일기 3종 세트를 도전해 보았으나 실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쓰기 책이지만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서는존재이고, ‘사이의 존재이다(27). 인간은 생각을 생각하는 존재이고(31), 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달리는 힘을 멈출 수 있는 존재이다. 앎은 세계를 향해 무한히 뻗어 나가는 것이며, 또한 내부를 향해 깊이 침잠하는 것이기에,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다름 아닌 무지다(40). 생명을 보존하려면 자연의 이치와 천성을 알아야 하며, 그 속도와 리듬에 대한 앎이 바로 생명의 원동력이다.


 

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해야 할 실천은 간단하다. “간절히 궁금해하는 것” (운성스님, 명상-유튜브) 무엇에 대해? 세계의 근원에 대해서, 존재의 심연에 대해서. 어떻게? “마음을 텅 비운 채, 우주적 가능성으로!” 모든 배움의 기초가 질문인 것도 그 때문이다. (41)

 


궁금해할 것이 두 가지다. 세계의 근원과 존재의 심연. 내가 궁금한 두 가지와 맞닿아있다. 빅뱅과 인간의 의식.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려 애썼지만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시간의 개념을 제시한 카를로 로벨리는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에서 이렇게 말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그저 과학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과학을 통해 발전된 세계관이 분명하고 정확한 의미에서는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여러 해석을 가질 수 있으며, 각각의 해석들 역시 어느 정도까지만 진실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81)  

 


인류는 우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어디까지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이 거짓일 수 있다는 정도다.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만 해석이 가능하다. 미시적 차원의 세계에서는 불연속성이 발견되고, 모든 움직임에 우연한 요소인 본질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결국 어떤 입자의 움직임은 입자의 존재에 대한 확률의 변화가 된다. 그리고 그 입자가 어느 방향으로, 왜 움직이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현재의 우리는 알 수 없다.

 


빅뱅이 일어난 이후의 세계에 대해, 우주에 대해, 지구에 대해 과학자들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빅뱅 이전에는, 빅뱅 이전에는 어떠했는가.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무한에 가까운 고밀도에, 크기도 없는 순수한 에너지로 시작했다는 데 동의한다. ‘특이점이라 부르는 이 상황에서는 물리학 법칙들이 무너진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과학자들도 대폭발이 일어나던 그 첫 순간, 즉 처음 10초 동안 일어난 일을 해석하지 못한다(10초는 1초의 100만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분의 1초다.) (『신의 언어』, 71)

 


인간은 육체 속에 산다. 진화론에서는 진화의 과정에 영혼이 출현한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 어느 곳에서도 마음이 발견되지 않았듯, 영혼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 영혼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에게 영혼은 없는 걸까. 인간, 알고리즘으로서의 유기체인 인간은 그렇게 살고 그렇게 분해되어 없어지는 걸까. 내 몸을 이뤘던 원자는 영원히 존재할 테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우주에 다시 없는 독특한 결합으로서의 , 나의 죽음 이후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까. 의미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면, 무사히 벗어난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기독교적 세계관, 내세관 속에서 자랐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고,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고, 그리고 구원과 파멸이 있다고 배웠다. 그렇게 믿는다. 다른 답을 찾는 이유는 내가 가진 해답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다. 다른 해답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이전 세계에서는 내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중요했다. 유전과 환경 중, 유전의 대부분과 환경의 상당 부분이 부모에 기인했다.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존재인 부모가 계급을 결정했고 삶을 결정했고 인생을 결정했다. 우리는 아무도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는데, 부모 때문에 삶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았다.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영상으로 보는 건 괴롭고 힘든 일이다. 지금도 계속되는 비극이 언제쯤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뉴욕의 사망자 집단 매장과 인도의 갠지스강 시신 유기 등은 이 세계의 종말 같은 모습이다. 이제는 어느 나라에 사는지가 중요해진 걸까. 어제도, 오늘도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죽는다. 전염병, , 성인병, 각종 질병으로 죽는다. 사건, 사고 때문에 죽는다. 노화로 인해 죽는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부자들만 불멸을 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죽음은 쉽지 않다. 죽음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의 미래다. 부자들만 불멸에 가까운 제2의 삶을 살아갈 만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 뿐이다.

 

 


어제는 도서관에 갔다. 희망 도서로 신청한 책을 가져가라 하기에 받으러 갔는데, 멀리 이 책의 표지가 보인다. 나도 모르게, , 그거 제 책 아닌데요, 라고 말할 뻔했다. 오른쪽 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왼쪽, 내가 신청한 책이 맞았다.

 
















나는 잘 웃는 사람이고 쉽게 웃는 사람이다. 요 며칠 웃을 일이 없었는데, 책을 살짝 넘겨보다가 마스크 너머로 푸핫!’ 하고 소리 내 웃어버렸다. 뒹굴기와 달리기. 이 책의 부제는 <생물과 인간, 40억 년의 딥 히스토리>로서 인간 행동의 진화 과정을 추적하되, 그 연구의 시작이 단세포 미생물, 박테리아의 조상들이다. 많은 박테리아는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고 매일 살아남기 위해 임의적인 움직임을 지속한다고 한다. 유익한 물질을 만났을 때는 달리기 운동을 통해 가까이 간다. 해로운 물질을 만났을 때는 뒹굴기 운동을 통해 도망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박테리아가, 생존을 위해, 오직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뒹굴기 운동과 달리기 운동을 한다는 건데, 사진을 보는 순간 너무 웃겼다. 뒹굴기와 달리기라니. 하하하. 뒹굴기와 달리기라니. 유익한 사람에게는 달려가고 해로운 사람에게서는 도망쳐라. 뒹굴어서 도망쳐라. 도서관 2층 계단 앞에 서서 한 번 더 웃었다.





 




뒹굴기와 달리기를 너머, 유성 생식과 우리의 친구 척추동물을 지나, 행동적 유연성의 진화와 수다 떨기의 힘, 뇌에서의 고차 인식과 기억 그리고 마음과 감정에 대해 읽어보겠다. 그 어디에서도 영혼을 찾을 수 없다 해도 괜찮다. 내게는 뒹굴기와 달리기가 있으니. 뒹굴기와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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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6-15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미숙샘 좋아요! 전 열하일기 읽고 너무 좋아서 열하일기 완역본을 읽었어요~ 그 부분에선 저의 은인이세요~ 이 책도 흥미 돋네요~ 뒹굴기와 구르기. 넘나 귀여운 것!ㅎㅎㄹㅎㅎ

단발머리 2021-06-16 10:04   좋아요 3 | URL
고미숙 팬미팅 가는 건가요? ㅋㅋㅋㅋㅋ 열하일기 완역본 읽으셨다니 너무 멋지세요! 오래오래 뿜뿜하셔도 될듯 합니다^^

2021-06-16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16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1-06-16 0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보니 박테리아도 나름 귀엽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1-06-16 10:27   좋아요 3 | URL
네네~ 뒹굴기랑 달리기 넘 귀엽지요. 뒹굴고 달리고 달리고 뒹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6-2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명과 분노 저 책장에 이미 꽂아둔 책이에요. 안그래도 ‘저건 언제 읽지?‘ 했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까 곧 만나야겠구나 싶어요. 물론, 단발님이 이 책을 읽으신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서 제가 똭- 마주친 건 어떤 뜻이 있는건 아닐까..

하늘의 뜻...

단발머리 2021-06-26 10:52   좋아요 0 | URL
완전 하늘의 뜻이지요 ㅎㅎ 저 그제 도서관에서 <운명과 분노> 봤거든요. 또 잠시, 다락방님 생각😘

Conan 2021-06-2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미숙 선생은 저도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열하일기, 임꺽정, 호모쿵푸스를 읽었고 동의보감이랑 몇권 사놓은 책은 아직 못읽고 있습니다. 책이 하나같이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단발머리 2021-07-01 20:46   좋아요 1 | URL
네, 고미숙 선생님의 책은 대부분 재미있지요. 전 열하일기를 읽는게 목표입니다. 열하일기는 좀 어렵더라구요^^
 


 

확진자가 한 명이 나와 해당 학년 학생 전체와 교직원들은 집 근처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고 큰애가 급히 검사를 받고 온 게 지난 주 토요일이었다. 참 놀라운 것이 전체 학생과 전 교직원 검사 결과가 음성이었다. 축복받은 학교임이 틀림없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3일간 원격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월요일 아침, 노트북을 열고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선사하는 선생님의 강쥬 짤. 강아지라고 부르기에는 좀 큰, 개라고 부를 만한 커다란 개가 실수로 온라인 수업에 들어온 게 아니라, 선생님 무릎에 턱 하니 앉아서는 처음부터 수업을 함께한다. 낙엽이 굴러가도 까르르 웃어대는 꿈 많은 아이들은 화면을 캡처하고 개의 이름을 부르고 수업에는 아랑곳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캡처된 화면 속 편안한 복장의 선생님은, 온라인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소중한 막내를 자랑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계신 듯, 이효리도 아니시면서 이효리 눈웃음을 선사하신다. 예상치 못한 일들 때문에 짜증이 나기는 해도, 그 와중에도 웃을 일이 있고 그래서 웃게 된다.

 


이알리미(학교 통신문 전용 앱)를 확인하고는 아무 생각 없이 내 이름으로 신청했는데 알고 보니 아롱이 이름으로 신청했어야 하는 거였다. 아롱이 나이 모르는 엄마. 친구들은 모두 제로페이를 자기 핸드폰에 넣어서 학교 앞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서 먹는데 자기만 엄마가 받았다고 한참을 투덜거리길래, 나이 모르는 엄마니까 바로 미안하다고 했다. 오늘은 간만에 같이 나와서 제로페이 써보자 하고 CU문을 열고 들어갔다. 뉴스에서는 삼각김밥과 초코우유, 딸기우유 안 된다고 한참을 뭐라뭐라 하던데, 실제로 가보니 내가 좋아하는 거는 거의 살 수 있었다. 아롱이는 훈제 유부초밥이랑 제육 볶음밥을 고르고 나는 샌드위치와 비요뜨를 골랐다. 계산할 때 보니 과일 꾸러미를 주문할 수도 있어서 수박, 방울토마토, 메론, 참외 등을 꾸러미로 구매할 수 있고, 구매하면 바로 집으로 배송해 준다고 한다. ‘그 돈 어차피 다 네 돈이야하겠지만, 원래 내 돈이었어도 내 핸드폰에 안 들어오면 내 맘대로 못 쓴다. 내 핸드폰에 들어온 돈이라서, 오늘은 점심 안 차리고 편의점 점심으로 한 끼 먹을 수 있으니, 나는 또 감사하다.


 

엄마, 시어머니, 아빠 순으로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치셨다. 맘이 한결 가벼워졌다. 엄마가 외출하신다고 할 때, 길게 잔소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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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6-05 14: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중고등학생은 저런 꾸러미라도 받고 격주로 학교에도 가지만 대학생들은 그야말로 집콕입니다^^
집에서 강의듣고 끊임없이 과제하고ㅠㅠ
등록금은 고스란히 다 내고요**
하루 세 끼를 집에서^^
우리집도 요즘 저 비요뜨에 꽂혔어요
저는 비요뜨 초코링 좋아해요^^
학생들이 빨리 백신을 맞으면 좋겠어요^^

단발머리 2021-06-05 14:52   좋아요 6 | URL
네.... 맞아요. 코로나 시대에 모든 1학년들이 제일 피해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올해까지 이어지니....
어떤 대학생은 아예 학교를 안 가더라구요. 일주일에 한 번 가기도 하고요. 사실 공부는 혼자서도 할수 있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 때 친구들 만나서 놀고 그런것도 필요한데....특히 하루 세끼 집에서 먹는다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ㅠㅠㅠ
코로나 때 받는 피해에 대해서 어떻게든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텐데... 소상공인들에게도 학부모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있었으면 해요. 나라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일단 상황이 그랬으니까요.
학생들 얼른 백신 맞는것도 완전 찬성입니다!!!

그레이스 2021-06-05 16:58   좋아요 2 | URL
막내 수업중에 옆에가서 뭐 물어보다가(평소에도 화면을 끄고 듣고 있어서) 교수님이 저희 딸 이름을 부르더니 ‘옆에 누가 있나?‘ 그러시더니 강의 내내 질문하시는거예요 ㅠ
교수님 죄송합니다 할걸 그랬나 싶었어요 ㅎㅎ
미안하기도 하고...ㅋㅋ
평소에 넘 편하게 강의 듣길래 ...
암튼 강의 내내 미안해 죽을뻔.

단발머리 2021-06-05 17:14   좋아요 2 | URL
어머나~~~ 질문은 좀 그런대요? 모르는 거 물어보시면 어쩌나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코로나 경험이네요. 저는 아롱이 방문 열고 들어갔는데 조회시간이어서 마침 담임 선생님이 아롱이를 부르고 계셨거든요.(선생님이 이름 부를 때는 화면 켜고 얼굴 보여드려야 합니다), 어? 뒤에 누구 계시니? 하는 거예요. 전 빛의 속도로 엎드리고 말았답니다. 마치 선생님이 잘못 보신 것처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 2021-06-05 16: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모두 음성이라니 아유 다행입니다!! 온라인 수업 강아지 무릎에 놓고 수업하시다니 일타쌍피 일거양득 일석이조네용ㅋㅋ(고스톱 못치는 1인;)

단발머리 2021-06-05 14:42   좋아요 5 | URL
다행이지요. 한시름 크게 덜기는 했는데 산 너머 산이네요.
그 개가 말이지요. 아주 크고 하양고 이쁜데(종을 모르는 1인) 인형같아요. 그냥 사진으로 봐서는 인형같은데 막 움직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그랬습니다!

mini74 2021-06-05 16: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잠시나마 행복해서 다행이에요. 우리 아인 올해 신입생인데 여전히 고등학생같다고 ㅠㅠ 수업 수업 시험. 동아리도 못 하고 여행도 축제도 ㅎㅎ 술 먹는 고딩이 어디있냐고 한소리 해줬습니다 ㅎㅎ 저희 어머니는 2차까지 완료. 월요일부터 경로당 출근가능이라 행복하시답니다 ㅎㅎ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그 강아지 한 번 보고싶네요. 크고 희다니 스피치 같기도 하고

단발머리 2021-06-05 17:2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작년 신입생 올해 신입생. 작년 1학년, 올해 1학년들 정말 안 됐어요. 근처 대학생들은 시험도 집에서 온라인으로 본다고 하더라구요. 내내 공부했으니까 잠깐 재미나게 놀아줘야 하는데 집에만 갇혀 있으니 참말로 안타깝습니다.
어머님 월요일부터 경로당 출근 축하드려요. 2차까지 완료하면 참 자유의 시간 오겠군요.
미니님도 여유롭고 즐거운 주말되시길요. 선생님이 너무 환하게 웃고 계시고 강아지도 나름의 초상권이 있을 것 같아 사진을 못 올립니다. 희고 크고 예쁘고 (순해보이는) 강아지입니다 ㅎㅎㅎ

유부만두 2021-06-05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바우처로 도시락을 사서 복학생을 줍니다;;;

과일꾸러미는 비싼편이라서 좀 후회했고요.

단발머리 2021-06-06 13:03   좋아요 1 | URL
전 오늘 점심도.... 얼른 편의점 다녀오라 했어요. 기간 있어서 얼른 써야하니까요^^
과일꾸러미는 좀 비싼 거 같아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1-06-08 07:03   좋아요 0 | URL
전 이제 삼천원 남았습니다.

수이 2021-06-05 1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우처로 비요뜨, 자몽주스, 설탕 안 들어간 두유, 흰우유, 샌드위치 막 사온 아줌마 여기 손 🤚 이렇게 고통스럽고 저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에도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일상에 깊은 감사 🙏🏻

단발머리 2021-06-06 13:05   좋아요 1 | URL
비요뜨 다 먹어서 사오라고 했어요. 오늘은 비요뜨랑 샌드위치랑 우유도 사려고요. 어제랑 비슷하군요 ㅎㅎㅎ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일상, 감사합니다!!
 



 















이런 내가 나도 싫다. 그런데 사실 이런 내가 나인 걸 어쩌나.

 

정희진 선생님의 추천 도서 중에서 세 번째 도전하는 책이다. 『세상과 나 사이』는 읽다가 멈춘 상태이고,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읽고 연이어 읽는 고통 시리즈다. 머리말 <은유와 과학>을 읽고 맨 앞으로 갔다. 작가 소개를 찾기 위해서다. 도서관 책 같은 경우, 책이 하드커버일 때는 겉표지의 작가 소개를 오려서 책 맨 앞쪽에 붙여 놓는데, 이 책은 십 년 전에 출간된 책이라 그런지 작가 소개가 안 보인다. 맨 뒤로 간다.

 


지은이_멜러니 선스트럼(Melanie Thernstrom)

 

1964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 영문학과를 최우수 우등생으로 졸업했으며….

 


이런 내가 나도 싫다. 그런데 사실 이런 내가 나인 걸 어떡하면 좋겠나. 내가 좋아하는 세 개의 단어가 나란히 있다. 하버드/영문학과/최우수. 하나만 줘도 좋을 것을. 세 개가 한꺼번에 나란히. 하버드/영문학과/최우수.

 

읽다가 도중에 작가 소개를 읽은 건, 『통증 연대기』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놀라운 흡입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통증 일기.

 


하지만 무엇에 대한 처벌이지? 나는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하지만 통증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커트를 원했더니 통증이 찾아왔고 커트와 잤더니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두 현상은 서로 얽혀 뇌의 신비한 가소성을 통해 신경 연결을 만들기 시작했다. 섹스는 통증과 뒤섞였다. 커트의 손은 내 몸에 사랑처럼 돌이킬 수 없는 자국을 남기고 낙인을 찍고 상처를 입혔다. (38)

 

 

이 책이 품절 상태인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다시 검색해본다. 10년 전 책이니 중고를 찾을 수만 있어도 운이 좋다고 생각해야 할까. 얼마 전에 구입한 중고 책 『맬컴 X vs. 마틴 루터 킹』은 상태가 최상이었지만, 책 전체가 누런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어서 맘이 좀 그랬다. ‘최상상태의 책이 4권이나 있군. , 새 책을 사고 싶다. 이 책은 왜 10년 전에 나왔단 말인가.

 


알라딘 리뷰를 찾아보니 2014년에 작성된 비연님 리뷰가 보인다. 진작에 읽으셨군. 그리운 비연님. 이제는 안 오시나. 이 책은 어마어마하게 재미있는 책이라고 왜 안 가르쳐 주셨는지, 그거 좀 꼭 물어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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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6-04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한동안 ‘하버드 법대 나왔어‘ 라는 말을 하고 싶었었는데, 로망이었는데, 하버드 영문과 최우수.. 대박이네요. 그건그렇고, 최상 네 권이라고요? 한 권은 그러면 제가... 휘리릭 =3=3=3=3=3


저도 최상이라서 샀는데 받아보고 이게 뭐야 한 적이 몇 번 있긴 했어요. (시무룩)

다락방 2021-06-04 11:14   좋아요 0 | URL
판매자 중고만 있네요 ㅠㅠ
아이참 이를 어쩐담 ㅠㅠ

단발머리 2021-06-04 11:14   좋아요 0 | URL
잠깐만요.... 잠깐만요.... 잠깐만요!! 가지마요!!!

단발머리 2021-06-04 11:15   좋아요 0 | URL
아.... 얼마전에 제가 산 책도 판매자 중고였어요. 최상이라 비쌌지만 배송비도 냈답니다 (시무룩)

다락방 2021-06-04 11:19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에 받았는데 엉망인게 판매자 중고여서.. 저는 판매자한테 사기가 싫거든요. 저는 비록 판매자 등록 되어있지만.. ㅠㅠ

단발머리 2021-06-04 11:26   좋아요 0 | URL
사실 저번에 산 책은 판매자에게 구매한 건데 책 상태는 좋았어요. 하지만, 이 세월감이라는 거를 무시할 수 없더라구요.
저는 중고책을 많이 사보지 않아서. 가끔 엉망인게 있나 보군요 ㅠㅠㅠ

수이 2021-06-04 12:04   좋아요 0 | URL
벌써 샀어요?!

단발머리 2021-06-04 12:05   좋아요 0 | URL
전 아직이요…. 읽고 있는데 사고 싶어요. 이건 또 뭐람 ( “)

잠자냥 2021-06-0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버드 국문학과 나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_-; 뭔가 비루한데.

단발머리 2021-06-04 11:17   좋아요 1 | URL
오늘 귀한 분 제 방에 오셨네요. 전혀 비루하지 않습네다!!!!!

수이 2021-06-04 12:0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루한데 올해 최고의 댓글감인!!!

바람돌이 2021-06-04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원하는 중고책은 항상 판매자 중고만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가끔 이용하는데요. 저는 운이 좋았는지 진짜 최상, 새것같은 책이 오더라구요. 거기다 다들 개인소장가들일텐데 포장을 어찌나 잘 해서 보내주시는지, 알라딘 판매자들은 진짜 좋은 분들이 많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어요. ^^ 물론 세월감은 그건 진짜 어쩔 수 없으니 그 부분은 살짝 재끼고요.

단발머리 2021-06-04 12:09   좋아요 0 | URL
좋은 분들 많네요~~~ 그런 판매자분에게 이 책을 사야겠군요. 지금 제 앞의 책도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거든요. 아… 저는 진짜 새책을 사고 싶은데… 흐미 ㅠㅠㅠ

수이 2021-06-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매욕을 내리누르고 도서관에 있는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야 할 책 왜 이리 많아요;;;; 알라딘을 끊어야 해 알라딘을 ㅠㅠ

단발머리 2021-06-04 12:08   좋아요 3 | URL
알라딘 금단현상이라고 혹 들어보셨나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목이 타고 약간의 어지움증 동반하고요. 개인차 있지만 열나는 분도 있고 전반적으로는 무기력증, 몸살 기운이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시면 코로나 백신 접종 후의 증상들과 비슷하다고 하겠네요.
알라딘이 이렇게나 강력하답니다. 끊으시다니요! 불가능한 줄로 아뢰오!!!

수이 2021-06-04 12:1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북플앱을 없애야겠어요 아예!!! 그런데 하루 지나고 다시 시무룩해하며 또 북플 어플을 깔겠지요;;;;; 그냥 냅둬야지;;;;;

단발머리 2021-06-04 12:14   좋아요 0 | URL
그런 경우 일단 북플 앱을 삭제하시고 그 다음날 바로 다시 까시면 되겠습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7~18세기 유럽에서 평등주의가 대두되면서 남성들은 당황스러운 딜레마를 마주하게 되었다. 새로운 원칙은 모든 인간(남자와 여자 모두)이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뜻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여자가 하급의 역할을 수행하던 기존의 사회질서를 위협했다. 평등이 사회의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무엇보다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은 여성들이 더 이상 남성에게 복종하지 않으리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17)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것.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가 다르다고,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남녀 간의 차이를 강조하고 부각시키려는 이 모든 노력은 남녀 간에는 유의미한정도의 차이가 존재하고, 고로 남녀가 다르고, 따라서 역할이 다르고, 각자의 뇌와 신체와 역할에 맡는 일을 할 때 제일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타고난 본성, 명확한 차이. 남자의 자리, 여자의 자리. 그에 따른 남자의 역할, 여자의 역할.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실험 결과를 조작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결과만을 부각시키는 과학자들이 존재했고, 현재도 존재한다. 남녀간의 차이를 강조하는 이런 사람들이 과학 특별히 진화심리학, 인지심리학의 주류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처럼 주장하는 사람은 아마도 과학계에서 극소수일 것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주류 과학자들이 자신의 판단을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하는 데 있다. 인간은 사회적 구성물이다. 생각이 나만의 생각은 아니고, 내 것이라 여겼던 많은 것들 또한 밖에서 주어진 경우가 많다. 우리 중 누구도 완벽하게 중립적일 수 없으며, 과학적 도구와 방법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에 대해 판단하는 인간이 중립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나 역시 젠더와 성에 대해 진화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방식들 가운데 특정 부분을 선택적으로 보고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들처럼 내 동기도 이념적이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내가 객관적인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축으로 하는 성 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만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마리루티, 35)

 


마리 루티가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부 과학자들은 실험 결과 중 일부만을 강조하고, 이는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가 다르다는 통념을 뒷받침할 뿐이고, 이전 사회에서 본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었던 남녀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판단이 이제는 과학의 이름으로 더 많은 권위와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김대식 카이스트대 교수는 성장 배경이 흥미롭고 다루는 주제도 관심이 있는 분야라 강의 몇 개를 찾아 들었다. 사진은 방송 화면을 캡처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뇌과학에 대해 1도 모르는 내가 한마디 하자면, 남자들이 비교적 남자의 표정은 그런대로 읽어내고, 여자의 표정은 잘 파악하지 못하는 데 반해, 여자들이 남자와 여자의 표정을 모두 잘 읽어내는 것은, 여자들의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여자들이 가정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사회에서 남자의 권력 하에서 남자의 기분을 파악하는 것이 그녀들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표정을 살펴야만 그에 맞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공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공감 능력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 있고, 무심한 여성이 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남성이 있고, 무심한 남성이 있다. 남성을 집단으로 보지 않고 개인으로 관찰했을 때, 이 결과가 여성 개인의 결과와 유의미한정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뇌 과학자, 전문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 버리는 평범한 우리들은, 쉬운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그래, 남자랑 여자는 달라. 남자들은 감정에 무심하지. 여자들이 공감을 잘해. 다시 말하지만, 공감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공감했던 것이다.

 













사이보그 선언문(A Cyborg Manifesto)’으로 근대 철학에 인식론적 전환을 가져온 영장류 생물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1970년대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동물 행동을 기술하는 과학자의 언어는 객관적이지 않다는 주장으로 당시 학계에서 추방되었다. 자연과학의 언어는 그 사회의 정치, 사회문화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중립적인 학문은 없다는 주장이 생물학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해러웨이는 세계적인 석학이지만, 자연과학자들의 중립적 보편적 주체라는 자기 환상은 여전하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 123

 


흑인은 인간과 동물의 중간 형태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이 아니었다. 흑인이 백인과 다르다는 과학적주장 이면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크게 다르지 않다. 평균적 차이는 작고, 성별 간 겹치는 부분은 상당히 크다. 철수와 내가, 영희랑 나보다 더 비슷하고 더 가까울 수 있다. , 철수는 아니구나. 철수하고는 좀 많이 먼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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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6-03 21:0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 시작하셨군요! 저도 오늘 시작할까 고민하다 일단 내일로 미뤘어요.
단발머리님은 책만 읽으시는 게 아니라 두루두루 매체를 접하시는 것 같아요. 이런 방송은 또 어떻게 알고 보셨어요. 단발머리님이 지적인 사람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네요. 멋져..

마리 루티의 말 정말 진심이 꽉 눌려담겨 있지 않나요? 니네 하고 싶은 말 해, 그런데 그걸 과학이라고 하지마!!
비슷한 걸로는 니네 하고 싶은 말 해, 그런데 그게 객관적이라거나 논리적이라고 하지마, 가 있겠습니다.

단발머리 2021-06-03 21:10   좋아요 5 | URL
이 책은 이전의 그 어떤 여성주의 책보다 잘 읽힙니다. ㅎㅎㅎㅎㅎ 쥐 실험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요. 마음 편히 읽고 있어요. 저는 여러 매체를 두루두루 접하는 사람이 아니라, 유튜브 알고리즘에 너무 쉽게 순응하는 사람으로서 ㅠㅠㅠ 김대식 교수는 관점도 특이하고 교수답지 않게 시원하게 이야기하는 거 좋은데, 이 강연은 별로였어요.

니네 하고 싶은 말 해. 그런데 그걸 과학이라고 하지마!! 를 아주 상당히 오랜시간 외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매품도 물론이구요.

미미 2021-06-03 22: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머리님 너무 멋진 글입니다. 읽으면서 놀라서 저도 다른 책과 접목해볼까 하여 두 권 꺼냈는데 뭐가 될지 안될진 모르겠지만 여튼 흉내는 내보도록 애써볼래욤. 멋짐 뚝뚝! (벌써 자신없어 길어지는 중ㅋㅋ)

단발머리 2021-06-04 11:11   좋아요 1 | URL
아이고 부끄럽네요. 멋진 글이라 해주셔서 감사해요. 미미님은 이미 멋짐이 뚝뚝 떨어지다 못해 주르르 흘러내리는 글을 쓰고 계시니 걱정할 필요가 1도 없겠습니다. 미미님의 다른 책 소개도 기다릴께요!! 멋짐팍팍!!!

독서괭 2021-06-03 22:2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공감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공감했던 것이다-!!
저도, 저런 말로 공감능력 떨어지는 남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너무 싫습니다. 아이 키울 때도, 남자애니까 원래 그렇지, 할 게 아니라 공감능력 부족해보이면 더 키워주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단발머리 2021-06-04 11:13   좋아요 2 | URL
독서괭님 말씀에 100퍼센트 동의합니다. 저도 아주 오래오래오래오랫동안 그 말을 믿었더랬죠. 공감, 감정, 돌봄의 책무를 여성에게만 맡겨두었을 때 남성들은 또 얼마나 자유로운가요. 같이 자유로워집시다. 같이 행복하고 같이 이야기 들어주고요. 같이 일하고 같이 놀고요.

han22598 2021-06-05 1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감능력의 차이는 성별이 차이가 아니라, 성별에 따라 다르게 주어진 환경이 다를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 사실..개인간의 다름이나, 집단(성별)간의 다름이냐를 따지긴 한데, 사실 개인마다, 집단마다 차이점이 있을 수 있고 그 자체가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적어도 (쥐실험이든 인간실험이든 통계학적으로..)는 두가지의 다름 중에 다름의 크기가 다른 것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이런 근거들이 사람들의 판단이나 사고의 기준이 되기도 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 만약 공감능력의 차이가 개인의 차이가 아니라, 성별의 차이라 단정 지어버리면 남자들의 공감능력부족은 성별의 특성이라고 판단되어지고, 그 이상을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공감능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덜하는 머 그런거요.. 그리고 뇌과학의 음모도 집어볼 필요도 있고요 ㅋㅋㅋ 너무 나갔나봐요. 사실 도움이 되지 않을 이야기를 죽 늘어놓은 것 같은데, 남녀간의 차이는 고정된 선입견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서..주절주절 해보았어요 ㅎㅎ

단발머리 2021-06-07 13:04   좋아요 1 | URL
저 왜 이렇게 길게 썼을까요? 한님의 첫번째 문장으로 딱!! 쓰면 될 것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대를 보고 쉽게 판단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별, 지역, 학력, 외모, 인종, 이런 부분으로 빨리 판단해야 그 사람에 대한 내 태도를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책을 읽다가 보게 되는 여러 실험이 사실 다른 요인이 얼마나 잘 제어되는지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잖아요. 어머! 그랬대!! 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이 책은 ‘성별‘에 대한 실험과 그 실험 결과가 이용되는 여러 면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도움되는 이야기가 가득한 댓글이었습니다!! 남녀간의 차이는 고정된 선입견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han22598 2021-06-08 09:28   좋아요 0 | URL
오홋! 단발머리님 말씀 들어보니, 이 책 사야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