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를 응원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빈 서판』을 읽겠으니 가지고 오라고 해서 실제로 봤더니, 생각보다 두껍다. 다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목차만 봐야지 하고 펼쳤는데, 18장이 <젠더>다. 18장을 펼쳤다.
스티븐 핑거 주장의 핵심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남녀는 한 종으로서 함께 진화했고, 최고의 심리 측정 기술에 따르면 일반 지능의 평균도 비슷하지만(601쪽), 분명히 남녀 간에는 차이가 존재하는데, 남자들은 던지기를 잘하고 여자들은 손재주에 뛰어나며, 여자는 인간관계에 더 세심하고, 남자는 불분명한 보상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처럼 각각의 영역에서 남녀 간에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603쪽) 남녀 간의 차이와 그로 인한 구별은 전 지구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성 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남녀 학생 간의 수학 점수 차이가 적게 나타나는 것이나, 여성의 이동이 극도로 제한되는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의 공간 지각 지수가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보다.
604쪽과 615쪽에는 상반된 주장이 나온다. 604쪽에는 이미 대학, 전문직, 스포츠에 진출하는 여성의 비율이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압도적인 남성 우위에서 50대 50 또는 여성 우위로 바뀌었다고 말하면서도, 615쪽에서는 많은 여성이 계속해서 공부하지 않음으로써 고급 인력이 부족하고 산업적으로 손해를 입고 있으며, 이것이 여성의 잘못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남녀 간의 불균형이 성적 편견의 증거로 사용되는 것(616쪽)을 비판하고, 결과의 불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을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617쪽)고 주장한다.
세상에. 622쪽에는 ‘남자는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여자는 정부 기관과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정말 몰라서인가. 여성이 아이들의 일상적인 울음에 더 민감하다는(604쪽) 그와 같은 학자들의 ‘과학’을 빙자한 주장과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현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여성의 일로 고정화된 상황 속에서, 일하고 싶은 여성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가. 남성 위주의 기업문화가 지배하는 일반 기업체인가. 아니면 비교적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고 근무 시간 이외의 업무 압박이 적은 정부 기관과 비영리 단체인가. 결국, 스티븐 핑거,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가 말하고 싶은 바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의 가능성이고, 개인의 능력을 도외시하는 이런 환경은 모두에게 비효율적이어서 여성마저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625쪽)인데, 그렇다면 제발, 그 비용을 우리가 지불하게 해 달라.
강간에 대한 부분도 너무 뻔하다. 인간은 동물인데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 사이에서도 강간이 성행하며, 남자들은 종종 그들과 섹스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들과 섹스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성은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모든 생명체의 노력은 가히 눈물겹도록 지극하고 진지하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은 문명의 발전을 통해 동물적 행동 방식을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지양해왔다. 아무 장소에서나 배설을 하고 육류를 생으로 먹고, 맘에 안 든다고 지나가는 사람을 때리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화를, 인간 문명의 발전을 왜 무시하는가. 다른 부분은 다 사회화되고 문명화되었는데, 어떻게 성적인 욕망만은 원시 상태 그대로인가. 유행하는 셔츠에 로퍼를 신고 손에 아이폰을 들고 있는데, 왜 심성은 원시인과 똑같다고 주장하는가. 왜 원시인 수준으로 떨어지려 하는가. 630쪽부터 643쪽에서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서 함께 읽었던 수잔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 대한 반론이 가열차다. 한 번 읽어봄직하다.
20대 남성들의 억울함을 이해한다. 이를테면 2021년 현재, 서울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에서 회장(7080 이전 세대에게는 반장) 선거가 있었는데, 회장과 부회장에 모두 여자아이들이 선출되었다. 16명씩 남녀 동수인 반에서 여자아이들이 대표로 선출되었다는 건, 여자아이들은 전부 여자아이에게 투표했을 가능성이 크고, 남자아이 중 일부 표가 이탈해서 여자아이에게 투표했다는 뜻일 것이다. 남자 아이들이 보기에도 회장과 부회장에는 여자아이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달랐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와 6학년 때 학급 반장이었는데, 사이좋게(?) 반장은 남자아이가, 남녀 부반장은 남녀로 나뉘어 선출되던 때에 흔하지 않은 경우였다. 아니나 다를까, 전교 회장 회의에 참석하러 갔더니 12개 학급 반장 중에 여자가 한 명뿐이라 내가 한다고 하면 투표도 할 것 없이 바로 ‘전교 부회장’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전교 부회장이 되었을 때, 학교의 발전과 선생님들의 친목과 아이들의 복지에 우리 엄마가 기여할 만한 돈과 시간이 없었기에, 난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여자 부반장 중 한 명이 전교 부회장이 되었다. 그다음 해에도 그랬다. 12개 학급 중에 여자인데 반장인 사람은 나 하나였다. 아니, 그 해도 그 전해도, 여자이면서 반장인 사람은 학교에서 나 하나였다.
누가 내 친구들에게 남자가 ‘반장’이어야 한다고 말해줬을까. 누가 반장은 남자가 해야 한다고 말해줬을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입 밖으로 그 말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알았다. 반장은, 그 반을 대표하는 아이는 그 반의 ‘남자아이’여야 한다는 걸 말이다. 열둘, 열셋의 아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젠더의 차이가 역할과 능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래 집단 속에서 그 사실을 배웠고 내면화했다. 아이들은 배웠고 그렇게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열두 살에 형성된 가치 판단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개인을 지배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시장 선거가 끝나고 토론회가 있었는데, 젠더 갈등에 대해 토론을 하던 중, 더불어민주당의 여성의원이 여성들에게는 제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장애물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식이 변호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들인 경우에는 자랑스러울 수 있겠지만, 딸이 변호사를 한다거나 정치적 리더가 된다고 할 경우에는 원하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재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이며 최근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그건 가정교육 문제인데 그걸 왜 여기에 가지고 오냐”며 말을 자르며 윽박질렀다.
나는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않아서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굳이 해보겠다. 아주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자아이들이 ‘교수’를 꿈꾸지 않고 ‘교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교사는 교수만큼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의 예는 같은 일이되 사회적으로는 한 단계 아래 직군으로 이해되는 ‘교사’를 의미한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는 남자아이가 반장을 해야 한다는 인식과 그 틀을 같이 한다. 공부를 잘하면, 아주 잘하면 S대에 입학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S대에 가면 된다. 입학 여부는 성적으로 결정되고, 그건 남자와 여자에게 차별적인 요소로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학 지도 설문 자료에 ‘재수를 할 수 있다’와 ‘재수는 절대 안 된다’ 항목 중에 남자아이들 대부분은 ‘할 수 있다’에, 여자아이들 대부분은 ‘할 수 없다’에 표시하는 현실 속에서, 사회적 인식이 개인의 역량과 능력, 그리고 미래까지를 한정하고, 그 근거가 ‘성별’이라고 할 때, 그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딸들에게는 1년을 더 투자할 만한 여력이 이 세계에는 없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랬다. 환경이 이러해서, 삼수해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 명문대에 입학한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많이 보았다. 대부분 남자아이들이었다. 난 여자인데, 우리집은 안 그랬는데! 라고 말하는 여성이 있다면, 축하한다. 여성인데도, 딸인데도 자원을 아끼지 않고 투자해 주신 부모님께 오래오래 효도하시길.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중학교에서는 여자 회장이 여자 부회장과 함께 학급의 중요한 일을 결정한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취업 시장에서 남녀가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는가, 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여자가 모유를 먹일 수 있어서, 여자가 더 양육에 적합하도록 진화했으니까, 여자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서 상대적으로 급여가 적은 직업군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여성의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또한 실질적으로 강요되는 양육과 가사, 각종 돌봄 노동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똑똑하고 야무진 여자아이들이 부모의 현명한(?) 조언에 따라 그러한 직업군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나는 저자들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내 생각과 책의 내용이 맞설 때, 내 의견이 틀린 게 아닐까 묻는 사람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내가 무식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석학 스티븐 핑거의 ‘우리는 동물이다’의 주장과 비효율성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라는 협박에는 아, 정말 할 말을 잃게 된다. 스티븐 핑거는 틀렸다. 제발, 역차별의 공포에서 벗어나라. <국민의힘>은 다른 사람을 빨갱이로 부르며 내부의 적을 키우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당대표 후보 중의 한 명이며 여론조사에서 1위인 사람은 2030 남성들에게 너희의 적은 저 이상한 페미들이라고 선동하며, 선동에 대한 정치적 이익을 맘껏 누리고 있다. 스티븐 핑거는 협박하고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는 겁박한다.
그래서 신지예를 응원한다. 나는 사실 신지예를 잘 모르고, 여러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혐오의 정치, 분열의 정치를 선동하는, 그래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저 못된 사람과 마주 앉아서, 그 예의 없는 소리침과 윽박지름 속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차분하게 피력한 신지예를 응원한다. 페미니즘적 가치를 실천할 만한 ‘권력’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이제부터 신지예를 주목해 보려고 한다. 피해자 코스프레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꾀하는 분열의 정치가 물러서고, 제발 표면적으로라도 남녀평등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위해. 힘내라, 신지예! 잘했다, 신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