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부터 고민했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서 실현할 수 있는 경험의 최대치 중 하나인 출산과 섹스 중에, 여성 고유의 고난도 실천을 감행했던 그 날의 메뉴에 대해서 말이다. 나와 함께 그날의 원인을 제공했던 사람은 아침 일찍 출근했고, 나와 같이 고통의 순간을 겪어냈던 사람도 아침 일찍 등교했기에, 그날 집에는 역사적인 순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만 남아 있을 예정이었다. 메뉴에 대해 고민했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고, 일주일 내내 몸이 무거웠던 나는, 잠시 눈만 붙인다는 것이, 잠자는 숲 속의 미녀도 아니면서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어 눈을 떠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온라인 수업에도 엄연히 점심시간이 있는데, 무엇을 사러 나갈 수도, 주문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아침에 끓여 두었던 미역국을 점심으로 하자는 제안에, 역사적인 그 날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으나, 대신 아침에는 제공하지 않았던 장조림을 내어주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역국과 장조림이 그 날의 점심이었다.
오후에는 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를 읽었다.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책인데,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다.
가정에 매이지 않는 여성, 이성애적 짝짓기와 출산의 법칙을 거스른 여성은 남성 헤게모니에 커다란 위협을 가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도 이런 여성들은 선교사로, 수녀로, 교사로, 간호사로, 결혼하지 않은 이모나 고모로, 사회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라는 기대를 받았고, 중산층이면 노동력을 팔지 말고 무상으로 제공해야 했으며, 여성의 처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온화하게 말해야 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이들은 아이들에게 매시간 매인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명상하고 관찰하고 글을 쓸 시간이 있었고, 일반적인 여성들의 경험에 관한 강력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샬럿 브론테(첫 임신 중 사망), 마거릿 풀러(주요 업적은 아이를 낳기 전에 이루어졌다), 조지 엘리엇, 에밀리 브론테, 에밀리 디킨슨, 크리스티나 로제티, 버지니아 울프,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아이 없는’ 여성들의 인정받지 못한 연구와 학문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모두 여성으로서 정신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215쪽)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인간이 경험하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특별한 일에 속한다. 아이를 낳는 일은 물론이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지켜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확실해진다. 아주 짧은 시간 벌어지는 일이고, 아주 순식간에 지나치는 일들이다. 하지만, 한 명의 인간을 1인분의 인간으로 키워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고, 아주 여러 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 시간을 견뎌 내야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을 만날 수 있다. 재활용하는 날, 잽싸게 반바지로 갈아입고 종이박스 해체를 위해 커터칼 챙기는 인간으로.
나는 아이 셋을 낳아 키운 에이드리언 리치가 아이 없이 또는 아이를 돌보지 않기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던 환경에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여성들에게 ‘당신들은 애를 안 낳아봐서 잘 몰라’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박완서 선생님은 자녀가 다섯이었다. 어슐러 르 귄은 셋이었고, 토니 모리슨은 아이 둘의 싱글맘이었다. 에이드리언 리치 역시 고만고만한 아이 셋을 키우며, 아이들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쓰고자 하는’ 혹은 ‘써야만 하는’ 작가의 욕망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드리언 리치는, 싱글로 산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던 시대에 여성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과 개인적 현실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 그들, ‘아이 없는’ 그녀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가졌다.
실질적 의미의 결혼 생활을 거부하고 호텔에서 주로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던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성은 종의 먹이’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인식과 통찰, 그리고 사유는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했을 뿐만 아니라 각성하도록 이끌었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일상의 압박에서 벗어났던 그녀의 공부와 연구와 통찰이 『제2의 성』이라는 열매를 맺었을 때, 도전적인 생각의 확장이 여성들을 얼마나 자유롭게 만들었는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 속 세상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여성은 ‘수녀’ 뿐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일상의 부담을 지지 않는 여성만이 공부할 수 있었고, 여성을 성적 존재로만 규정하는 그 세계 안에서 성적 존재가 아닌 개인으로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았던 여성을 존중하면서, 그들의 혜안으로부터 좋은 것을 배워가는 에이드리언 리치에게서 또 배운다. 배울 게 많은, 훌륭한 사람이다. 에이드리언 리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