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우연의 역사 (최신 완역판) - 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 츠바이크 선집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어떤 순간.

내 바로 눈앞에서 찰나가 슬로우 모션처럼 펼쳐진다. 나의 행동은 그 느려진 시간이 아닌 일상의 시간에 있는 듯한 착각으로 손을 뻗어 보지만, 그 손은 그 발은 그 몸은 멈추어있다. '안돼'의 모든 자음과 모음이 늘어지지만 '돼'의 마지막 모음이 여운을 마칠 때,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또 어떤 순간.

여느 때처럼, 문을 닫고 딸깍 소리가 났다. 부드럽고 불협화음 없이 '딸각'. 그런데 그 문만은 닫히는 순간 들어와 버린 안에서는 영원히 다시 열 수 없는 문이 되었다.


반복되는 순간

2년 전 같은 주제로 이야기했던 그 사람이 같은 미소를 짓고 같은 제스처를 취하며 같은 주기로 몸을 앞뒤 좌우로 흔들며 장소만 바뀌었을 뿐 앞에서 그대로 재현한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반복을 마쳐버렸고, 마지막 재현이라는 것을 안다.


예기치 못한 순간

지난주와 같은 수요일을 만들지 않은 예기치 못한 순간이 왔다. 그것은 그마저도 한 주보다 더 큰 지름을 가진 원의 패턴이 되기는 한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기억하는 순간들은 어떤 것들일까? 우리는 그 기억되는 순간만을 특별히 기억하는 것일까? 그것이 어떤 사고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의 순간이기 때문에? 그것이 윤회하듯 반복하다 이제 종지부를 찍던 순간이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간만을 기억하는 것일까?


우리의 모든 순간은 평등하다. 기억되어질 고른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그것이 어떤 순번이거나 부합되는 조건에 따라 소환될 뿐이지 않을까?


보통은 느긋이 앞서거나 뒤서거니 일어나던 것들이 단 한 순간 안에 응축되는 경우, 이 순간은 모든 것을 규정하고 결정짓는다.

별처럼 빛나는 순간들을 기억해보려 한다. p5


어떤 순간을 회상하는 그 순간은 현재이지만 그 과거에 속하는 것일까? 그 과거가 가미되어 다른 지금과는 다른 변형된 순간일까?

대관절.


구급차가 온몸으로 받은 도로 요철의 덜컹거림이 서스펜션으로 많이 필터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단절된 단차만을 가진 틈으로부터 짧고 강하게 '쿵' 소리와 전달되는 '흔들림'과 그 '흔들림'에 신음하는 이와 그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함을 넘어 그저 손잡고 있는 것을 현재와 아무런 연관 없이 기억해 내는 것은 대관절 무슨, 그리고 어떤 순간인가.


단지, 서사되어졌고, 의도되어서. 선택되어졌고, 또 의도되어서. 선택되어졌고, 하지만 아무런 의도가 없이.

그래서 특별하다고 말한다 해도 정말 그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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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6-24 00:0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다른 번역자분의 책은 읽어봤는데
이 책은 사두기만 했어요^^* 초딩님 🌟 이 5개에 이런 리뷰를 쓰시다니 기대됩니당!ㅋㅋㅋ

scott 2021-06-24 00:15   좋아요 5 | URL
미미님 이책은 완역!입니다
다른 번역자 분은 몇개 챕터가 빠졌습니다.

미미 2021-06-24 00:16   좋아요 5 | URL
어쩐지! 뭔가 허전했어요.오옷😊👍👍

coolcat329 2021-06-24 10:36   좋아요 3 | URL
저는 정상원 이 역자가 참 맘에 들었어요. 이화북스에서 계속 츠바이크 번역되서 나오면 좋겠어요.

미미 2021-06-24 11:02   좋아요 2 | URL
전에 본 책은 역자사진이 보통 작가사진 두는 자리에 있고 번역도 제가볼땐 어색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샀지요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6-24 00:2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초딩님! 정말 등단하시라니까요^^
이 심오하고 철학적인 글은 저같은 사람이 완전히 이해하기 역부족입니다
저 이 책 선물받아 고이 모셔두고 있는데 어서 읽어야겠어요☆☆☆☆☆☆

새파랑 2021-06-24 00: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마치 산문처럼 느껴지네요 ^^

scott 2021-06-24 00: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등단 강력 추천 합니다!!

초란공 2021-06-24 08:2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츠바이크의 매력을 ‘광기와 우연‘으로 시작할까 봅니다!

coolcat329 2021-06-24 10:3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조카나 중딩이상 자식들에게 선물해도 좋을 책입니다.

mini74 2021-06-24 2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응축된 순간 ~~ 뭔가 딱 맞는 표현같아요 구급차 비유도 멋집니다. *^^*

붕붕툐툐 2021-06-25 0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엔 엄청 생활글도 세밀하게 잘 쓰시더니 이런 글도 잘 쓰시고~
초딩님 진짜 내공이 장난 아니십니다!!

얄라알라 2021-06-25 11:49   좋아요 1 | URL
이런 초고수님들 글 읽으러 북플 중독자 자처합니다^^

페크pek0501 2021-06-25 1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은 보관함에 있을 거예요. 꼭 사서 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