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8월 13일(토)
누구와: 미녀 둘과
마신 양: 맥주만 왕창!
내겐 빗이 없다. 빚을 선물받은 기억이 있긴한데 안써서 그런지 다 없어졌다. 무스나 스프레이도 질색을 한다. 머리가 억세고 빨리 자라는데다 손질을 일체 안하니 영 어수선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머리로 이십년 이상을 버티다보니 그게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를 잡아버렸고, 웬만하면 이 머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 결심이 깨졌다. 내 머리를 안타깝게 여기던 여인이 미용사 이름이 내걸린 유명 헤어숍에 날 데려간 것. 머리를 자르러 강남까지 가보긴 난생 처음이었다.
“거기 가면 민이씨한테 어울리게 각을 잡아줄 거예요”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각이 아니라 청둥오리를 잡아준대도 그 미용실에 가는 일은 없었을 거다. 평소처럼 남들의 야유 속에 두달 반을 버티다 스포츠로 깎고, 그리고 또 석달간 기르기를 되풀이하며 살았을거다. 하지만 그녀는 0.1%를 내게 소개해준 고마운 분, 당연히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0.1% 미녀도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거기서 자르면 더 멋있을 거예요”
내가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건 당연한 게 아니겠는가.
유명 헤어숍답게 실내는 쾌적했고, 미용사와 손님들 중엔 미녀가 득실댔다. 그 헤어숍에서 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다. ‘이사’란 직위를 가진 미용사의 손에서 원시림같던 내 머리는 서서히 길들여졌고, 다 자른 지금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는 중이다. 그간 머리에 관심을 안기울인 건 어차피 외모는 글렀으니 막 살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눈 위에 꺼플을 하나 더 만드는 게 얼굴 전체를 달라보이게 하는 것처럼, 무성하기만 한 머리칼도 어떻게 꾸미냐에 따라 천양지차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걸 새삼 느낀다. 문제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 다른 미용사보다 잘 깎는 건 인정하겠지만, 그렇게까지 비싸게 받아야 하는 걸까. 머리값을 계산하는데 손이 다 떨렸다.
“이 스타일을 유지하시려면 3-4주에 한번씩 오셔야 해요”
술값은 그보다 더 쓸지언정, 머리에다 그렇게 투자할 수 있을까? 그건 전적으로 0.1% 미녀에게 달려있을 듯싶다.
(이상이 미용실에서 같이 간 여인의 머리손질-트레이트먼트라고 하던가요-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쓴 일기입니다)
머리에 투자를 하고나니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내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예컨대 어제 만난 미녀1. “머리 잘랐어요”라는 말을 하고 나서야 “잘 자르셨네요”라고 한다. 그나마도 뒤늦게 합류한 미녀2가 하필이면 그날 9시간 동안 비싼 돈을 들여가며 머리를 땋았던 터라 그 다음부터는 온통 그녀의 머리에만 관심을 집중시켰다. 머리에서 밀렸다.
* 매주 테니스를 치는 내 친구, 머리 어떠냐는 내 말에 “머리 잘랐어?”라고 한다. 무정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