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여성들 -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젠더, 노동, 섹슈얼리티 연세근대한국학총서 109
배상미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흥미롭게 읽었다. 매우 잘 읽힌다. 박사 논문은 안 읽고, 책으로 펴낸 것만 읽어서, 박사 논문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일단 저자에게 묻고 싶은 것


1. 방법론적 고민.
소설 연구자가 아니라, 소설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문학 연구자로서, 이 연구의 방법론적 고민이 궁금했다. 이 연구의 궁극적 목적은 "근대 초기, 특히 식민지시기에 여성들의 노동과 여성 노동자라는 존재가 당대 사회에서 인식되었던 방식을 포괄적으로 살피"(217)는 것이다. 그랬을 때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다양한 영역에서 노동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에"(217) 선택된 매체이다.


여기서 소설은 담론의 한 종류로 취급된다. 소설이라는 미디어 자체의 특수성은 별로 조명되지 않는다. 소설을 담론의 한 종류로 취급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담론의 한 종류라고 해도, 소설이라는 매체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여성들의 노동과 여성 노동자라는 존재가 당대 사회에서 인식되었던 방식'을 살핀다는 것이 주목적이라면, 그 중 '프롤레타리아 소설'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적 논의가 필요하다. 기타 매체의 담론들 (가까이는 시, 희곡과 같은 문학 장르들, 영화, 신문 기사, 재판기록물, 회고록 등등)이 아니라 '소설'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논의할 때, 소설을 분석하는 방법론도 섬세해질 수 있다.


또는 소설을 매개로 당대 '현실'의 재현을 살피는 것인가, 아니면 소설이라는 담론의 한 형태를 통해 당대 사회 여성들의 노동과 여성 노동자가 어떻게 담론화되었는지를 논의하는 것인가. (담론/현실이라는 이분법을 다시 사유하자는 것이 아니라, '담론화'라는 기제, 매체의 특수성을 사유해야 한다는 것)



2. 구체적 분석 방법론

두 번째도 방법론의 문제인데, 앞의 방법론이 연구 목적과 매체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는 방법론이라면, 두 번째로는 소설 텍스트, 또는 소설이라는 담론을 어떻게 분석하겠다는 방법론에 대해서 궁금하다. 매번 분석이 스토리 속 여성 인물들에 집중하면서 이들을 분류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분류 자체가 방법론일 수 있다. 그러나 읽어나가다 보면, 저자는 무언가를 더 분석하고 논의하고 의미화하고자 하는 지점들이 보이는데, 이 부분에 대한 방법론적 고민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마지막에 김남천의 "맥"에서 무경을 분석하면서, "무경의 생활은 어느새 동양론 이후에 올 새로운 사상을 추동하는 힘을 내포한 것이 된다. 지금까지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고 대상화되고 주변화되었던 여성 서비스직 노동자의 생활이 근대의 끝에서 근대도 반근대도 아닌 새로운 사상을 낳을 가능성으로서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212)라는 주장이 나온다.


여기서 "무경의 사상은 지금까지 존재하던 사상들과는 완전히 다른 출발점을 가정한다"(212)라고 했는데, 그 출발점은, "여성 서비스업 노동자의 생활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는다"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존재하던 사상들과는 완전히 다른 출발점을 가정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이것이 '완전히 다른 출발점'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생활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은 사상이 없다는 말은 아니겠고, "여성 서비스업 노동자의 생활"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 새롭다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 전혀 논의가 생략되어 있어서 아쉬웠다. 이 부분에서 방법론적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소설이라는 담론을 여성 노동의 영역(공장, 사적영역, 서비스업)에 따라 분류하는 것을 넘어서, 이의 사상적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물론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대결하고, 마르크스 페미니즘을 경유하는 일이 필요하다. 서론에서 이것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었는데, 이게 본론 중에 구체적 분석 중 일부분에서는 소략해진다. 대표적으로 앞서 말한 무경의 사상을 분석할 때, 이를 더 밀고 나갔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 공장, 사적 영역, 서비스업이라는 분류 속 나타난 여성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더 의미부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대공장 (남성 노동자) 중심주의를 타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해도, 현재 공장, 사적 영역, 서비스업이라는 분류를 한 이상, 그것이 더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선명하게 의미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설적인 명의, 삼국지에서 관운장을 수술한 화타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환자가 아프기도 전에, 병을 예감하고 치료하고, 둘째는 아주 미미하게 아플 때 병을 치료한다. 김승섭 선생님의 이 책을 읽으며, 화타의 첫째 형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기존의 우리가 '명의'라고 알려진 사람들은 화타와 같은 의사이다. 큰 병이 났을 때 그 병을 최신 기술로 치료하는 의사. 물론 이 또한 정말 감사한 분들이다. 그런데 김승섭 선생님은 화타의 첫째 형과 같은 의사이다. 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아서, 이에 대해서 고민하는 '역학'을 전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낮은 곳의 약한 자들의 '아픔'의 사회적 원인을 고찰한다. 이로 인해, 세월호 유가족, 트렌스젠더, 범죄자 등의 '아픔'이 조명되고, 이 아픔의 사회적 원인을 고발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를 통해, 사람들이 아프기 전에 그 병을 고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김승섭 선생님은 화타의 첫째 형과 같은 의사가 되고자 한다.




우리는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늘, '술담배 줄이고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푹 쉬라'고 말하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든 그러고 싶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기에 견디고 견디다가 탈이 나서 의사를 찾게 된다. 김승섭 선생님의 책은 이 부분에서 시작한다. 왜 우리는 술담배를 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고, 쉴 수 없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무엇이 문제일까? 실제로 사회적 관계도가 높을수록 면역력이 높다는 연구도 있고, 공동체가 굳건할수록 심장병도 덜 걸린다는 연구도 소개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국종 같은 의사도 필요하다. 그러나 김승섭 같은 의사도 정말로 필요하다. 아니, 이국종 센터장도 결국에는 사회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추울 때 추운 곳에서,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위험한 환경에 일하는 사람들이 외상센터의 주환자이고,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사회의 품격을 결정한다고. 한국이 선진국인가 아닌가는 단지 GNP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었는가, 얼마나 행복하게 자기의 꿈을 각자가 실현하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떠한 뒷받침을 하고 있는가. 이 책은 그러한 '공동체'에 관해서 묻고, 공동체가 겪은 '아픔'이 하나의 길이 되기 위해서는 이 아픔을 사회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게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 모든 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월에는 책을 19권 읽었다. 이제 점점 윤아가 긴 책을 읽어서 윤아와 함께 읽은 책 권수는 꽤 줄었다. 윤아가 집에 오는 저녁 5시 이후에는 공부를 거의 안 하고, 그냥 잡히는 책을 읽고 있다. 어짜피 공부 안되는데, 책이나 읽자라는;;;;

1월 읽은 책 중 추천도서


1. 이현혜, "좋아서 껴안았는데, 왜?", 천개의 바람, 2015.
기존 아동 성폭력 교육이 '안돼요'라고 소리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 책은 (잠재) 가해자에 대한 교육을 중시한다. 이 그림책은 한 여자아이를 좋아해서 껴안은 한 남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 그대로 "좋아서 껴안았는데" 뭐가 잘못이냐는 것에 대해서, 모든 것에는 '경계'가 있고 그 경계를 침입하는 것은 상대가 용인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상대가 '무반응'이라고 해서 그것이 허락으로 승인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유치원~초2 정도 수준. 물론 이것도 모르는 50대 아재들도 수두룩하다만...)


2. 밴스, "힐빌리의 노래", 흐름출판, 2017.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면, 미국은 '멀고도 가까운 나라'이다. 지리상으로 멀지만, 정치, 문화, 경제 상으로 미국은 한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나라. 혹자는 '천조국'이라 칭송하기도 하지만, 미국은 자본주의의 민낯을 역력하게 보여주는 나라이다. 계급, 인종의 불평등. 총기, 마약 등의 범죄...
하버드 대학 교수인 퍼트남의 "우리 아이들"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요즘' 미국의 아이들이 교육 기회에서 멀어지고 있는지를 통계와 인터뷰를 통해 조명했다면, 이 책은 자서전적 성장담을 토대로 미국 내에서의 지역, 계급불평등을 생생하게 고백하고 있다. 늘상 바뀌는 아버지, 마약중독자인 어머니 아래에서 미국 빈곤층 백인 (힐빌리/레드넥)의 삶이 어떠한지, 왜 이들은 이렇게도 몰락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지를 폭로하고 있다. 자서전적 수필이고, 저자는 그러한 배경 속에서도 해병대 복무 후 오하이오 주립대를 조기우등졸업하고 예일 로스쿨을 나온, '개천에서 용난' 사례이기 때문 정부 정책보다는 개인과 집단의 문화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3. 김성은, "도대체 뭐라고 말하지 우리말의 숫자와 시간", 한솔수북, 2013. (초1~3 수준)
섯달, 동짓달 등 음력에서 기원한 달. 예순 아흔 등 복잡한 나이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외국인들을 위해서도 유용할 책.






4. 요시타케 신스케, "이게 정말 나일까?", 주니어김영사, 2015.
(초1~3 수준)
아이들을 위한 철학동화. 어려운 개념이 없어도 아이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주인공은 숙제나 어려운 일 등을 대신해줄 로보트를 구입한다. 로보트는 주인공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며 질문을 시작한다. 주인공은 어떤 사람인가? 이에 대해 대답하면서 주인공은 '자아'라는 것 자체가 다면적이고 가변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 전혀 어려운 말들을 안 쓰면서 질문을 던지게끔 구성되어 있다.


5.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 창비, 2016.
아픈 존재들. 죽어가는 존재로서의 사람. 또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존재로서의 사람.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 오래된 친구들과 옛날 이야기를 하다보면, 조금씩 어긋나는 기억들과 내가 몰랐던 사건의 다른 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의 나는 특정 측면에 머물러 있었다면, 언제나 사건은 그 이상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 과거의 일들이 더 풍성하게 다가오는 것은 때로는 무척 서글프다. 




6. 톰 니콜스, "전문가와 강적들", 오르마, 2017.
현대 민주주의의 반지성주의, 전문가 혐오증에 대한 명쾌한 해설. 결국 대중이 전문가를 감시하는 한편 전문가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 민주주의/공화정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도 하게 해준다. 간접 민주주의는 아포리아를 지닌다. 자신을 대신해서 정치를 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만을 지니고, 이 선출직 공무원들은 '전문가'에게 조언을 받아 국정을 운영한다. 그런데 이 전문가들을 대중들이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면? '대중지성'은 언제만 발휘될 수 있는 것인가?



7. 리베카 솔닛,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창비, 2017.
록산 게이의 책도 그렇고, 리베카 솔닛의 책도 어렵지 않고, 페미니즘 책을 한 두권만 읽었어도 모두 친숙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친숙한' 가부장제적 폭력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리베카 솔닛은 '멘스플레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으로, 명명되지 못했던 현상을 집어내는 능력이 있다. 이 책에서도 여러가지 개념들을 만들어내며, 가부장제 사회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대학교 새내기들에게 추천할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유 -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둘
아이유 (IU) 노래 / 카카오 M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유, 가을아침을 들었다. 여혐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인데, 매우 흥미로운 가사다.

 

이병우 작사. 아이유 노래. (원곡 양희은)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눈 비비며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니

삼삼오오 아이들은 재잘대며 학교 가고

산책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가 하나 가득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 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와

구수하게 밥 뜸드는 냄새가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응석만 부렸던 내겐

 

파란 하늘 바라보며 커다란 숨을 쉬니

드높은 하늘처럼 내 마음 편해지네

텅 빈 하늘 언제 왔나 고추잠자리 하나가

잠 덜 깬 듯 엉성히 돌기만 비잉비잉

 

토닥토닥 빨래하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동기동기 기타 치는 그 아들의 한가함이

심심하면 쳐대는 괘종시계 종소리와

시끄러운 조카들의 울음소리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응석만 부렸던 내겐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뜬구름 쫓았던 내겐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아이유/양희은이 불렀기 때문에 화자가 여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가사 자체는 이병우의 작사이고 그의 자서전적 기록이라고 하는 것과, 이 가사의 내용 자체가 '어머니''아들'의 대립을 바탕으로 구성되고 있기 때문에 화자가 남성-아들로 볼 수 있다. 이것을 외부에서 '여성-가수'가 부르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거리가 도입된다. 이는 추후에 논의하기로 하고, 일단 남성(아들)화자를 중심으로 이 가사의 의미에 대해서 논의해보기로 한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지만, 여기서는 어머니의 분주한 가사노동과 아버지/아들의 한가로움이 이항대립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나마 아버지는 산책을 갔다가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라도 떠오지만, 아들의 게으름한가함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토닥토닥 빨래하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대비되고 있다. 이렇게 가사노동하는 어머니와 뒤늦게 일어나서 냉수 찾고 기타 치는 아들은, 이런 가을 아침이 커다란 기쁨이고 커다란 행복이라고 노래한다.


이 때문에 이 가사가 불편하고,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며, 한가하게 놀고 있는 아들/아버지와 열심히 가사노동하는 어머니를 당연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해명되지 않는 것은 그렇다면, 이러한 가을아침커다란 기쁨/행복이라고 말하는 아들이 계속 반복하고 있는 응석만 부렸던 내겐”/“뜬구름 쫓았던 내겐이라는 한정어가 왜 계속 붙어있는가이다. 한가한 아들과 분주한 어머니를 대비하며, 이러한 가을아침이 응석만 부렸고, 뜬구름 쫓았던 내게는 커다란 기쁨이고 행복이라는 것은, 이와 대비되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응석과 뜬구름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물론 이 가사가 내내 강조하고 있듯이 아들과 이항대립적으로 놓여있는 어머니의 분주한 가사노동이다. , “가을 아침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가 아닌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라고 하여 내겐을 강조하고, 또 다시 응석만 부렸던 내겐”, “뜬구름 쫓았던 내겐이라고 한정하여, 그렇게 응석을 부리고 뜬구름 쫓았던 가 아닌 어머니의 가사노동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를 여성 가수가 부름으로써 다시 이 가사에 거리가 생긴다. 게으르게 늦잠자고 일어나서 한가하게 기타치는 아들에 대해서 양희은(91년 발표 당시 40)이라는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거나, 아이유(2017년 발표 현재 25)라는 누이가 노래를 부름으로써 이 아들의 행동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가 더 확보된다.


가을 아침은 양가적이다. 햇살 가득 눈부시지만, 냉기는 서늘하다. 이 둘의 통합으로서 가을 아침이 존재하듯, 한가한 아들과 분주한 어머니, 그리고 내겐가을아침이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하면서 응석뜬구름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화자에게 서늘한 냉기는 물리적인 온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When Breath Becomes Air (Audio CD, Unabridged)
Paul Kalanithi / Random House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Paul Kalanithi, "When Breath Becomes Air", Random House, 2016.

 

 

 

곧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쓴 글을 읽을 때는 경건한 마음이 든다. 죽음 앞에 선 단독자가 쓰는 글이 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어떠한 진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 또한 마주해야 할 죽음을 앞서 경험하고 진지하게 고찰한 선배의 글을 후배는 경건하게 읽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36살의 신경외과 레진던트 3년차이자 뇌과학자로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스탠포드에서 교수자리도 바로 눈앞에 놓여있었다. 수술실에서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는 폐암 4기를 진단 받게 된다. 그 이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삶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영문학 석사이자 뇌신경외과 의사로서 술회하며 책을 쓴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문학을 탐닉했다. 영문학, 러시아문학, 독문학 등등. 소설, 시를 가리지 않고, 문학이야말로 인간을, 세계를 이해하게 하고, 삶에 의미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그러나 동시에 생물학과 뇌에 대한 관심도 가지고 있었다. 영문학 석사까지 끝낸 후, 그는 의학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여전히 문학이 삶을 이해하게 한다고 믿었지만, 그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뇌 또한 분석하고 싶어 했다. 그는 뇌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뇌수술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뇌수술 후유증으로 숫자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환자,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된 환자 등등을 만나면서, 삶에 의미는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글을 읽으면서, 내내 저자의 삶과 문학과 뇌에 대한 통찰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특히 이 글의 후기를 읽으면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후기는 저자가 죽고 나서 저자의 아내에 의해서 쓰였다. 저자가 말기암을 진단받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저자가 마침내 뇌에 종양이 전이되었다는 말을 듣고, 괴로워했다는 말을 담담히 적는 아내의 글에서 눈물이 많이 났다. 저자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가 의사로서 담당했던 뇌수술, 뇌종양이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환자로 경험하게 되다니... 그리고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저자의 본문은, 아직 저자가 자신의 뇌에 종양이 전이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저자의 아내를 통해서만 저자가 어떻게 느꼈을 지를 간접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욱 슬펐다. 또 저자는 결코 읽지 못했을, 사후 저자의 책과 아내의 에필로그라는 점도...

 

 

 

 

결국 마지막에 저자는 더 이상 치료를 거부하고 몰핀을 맞으며 영원한 잠에 든다. 책에서 일관되게 그가 고민했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는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무엇이 의미있는 삶인가"에 대해서 스스로의 삶/죽음으로 대답한 셈이다.

 

 

 

 

저자의 아내도 술회했지만, 책의 본문만 읽어서도 저자가 따뜻함, 사려 깊음, 풍부한 인문학적 통찰, 날카로운 과학적 지식과 노련한 의학기술을 지닌 정말 '좋은'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슬프다. 그래도 이 책을 남겼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문학, 뇌수술, 뇌과학, 암투병기에 관심 있는 이들은 필히 읽어야 될 수필이다. 따뜻한 문학도이면서 동시에 노려한 뇌의학자, 과학자이며 동시에 말기 암환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슬프지만 또 따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