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4월 6일(목)
마신 양: 소주 한병 반
탕수육과 소주를 앞에 둔 저녁 자리.
“어떻게, 성과가 좀 있어요?”
그분이 물었을 때 난 말없이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저... 그, 그게요... 막상 앞에서는 한다고 해놓고 진짜로 하는 사람은 없더라구요.”
팔자에 없는, 잡지 구독을 부탁하는 일을 해온 건 작년 말부터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 애들 잡지를 만드는데, 구독자 확장에 힘써줄 것을 부탁받은 것. 며칠 있다가 잡지 구독 신청서 300부가 배달되어 왔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걸 꺼려 왔고, 아쉬운 소리 하는 걸 그보다 훨씬 더 꺼려 왔던 내가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의사들 쪽은 마선생이 책임지셔야 합니다.”란 말에 ‘네’ 하고 대답하긴 했지만, 속내는 그리 편치 않았다. 영어나 한자면 모를까, 인권과 환경, 반전 등의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전하는 데 좋아할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더구나 의사들이.
개업을 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 친구의 병원에서는 별반 영양가 없는 잡지 몇종류를 구독하고 있었다. ‘이 정도 부탁은 무리한 게 아닐 거야.’라는 내 기대는 첫판부터 무너졌다.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 애들 잡지 하나만 봐주면 안되겠니?”
나와 꽤 친한 그 친구가 대답했다.
“알았어. 봐줄게. 근데 앞으로는 이런 일로 전화하지 마.”
그 말을 듣자마자 난 그에게 전화한 걸 후회했다.
“아냐. 됐어. 사실 꼭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아니구... 안봐줘도 상관없어.”
그가 나쁜 건 아니다. 내가 그런 부탁을 받았어도 난 그 친구와 똑같은 대답을 했을지 모른다. 우리 동기들 사이트에 잡지 구독을 좀 해달라는 글을 남겼지만, 그 글에는 아무런 댓글도 달려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의사들에게 부탁하는 걸 포기해야 했다.
친구 하나가 내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난 그에게 잡지의 취지를 설명했다.
“어, 그거 굉장히 좋은 잡지네? 그런 잡지가 있어?”
그는 신청서 40부를 챙겨갔다.
“우리 누나들 아이가 이 잡지 대상층이야. 누나들한테 동네에서 신청서를 좀 돌려 달라고 할게.”
내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은 몇 명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면서 신청서를 한웅쿰씩 가져가는 걸 보면서 난 희망에 부풀었다. “이거,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네?”
나이가 마흔에 도달했어도 난 아직 순진했나 보다. 그들 중 진짜로 신청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으니까.
목요일의 술자리에는 잡지사 대표도 있었다.
“저도 지금까지 한 열명 정도밖에 신청 못받았어요.”
그렇구나. 출판사 대표가 겨우 열명이라니, 잡지 구독을 받는 일은 이렇듯 어렵구나.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다소 편해졌지만, 내가 앞으로 구독 신청을 잘 받아낼 자신은 여전히 없다. 그냥 차라리, 돈을 좀 아껴서 내 돈으로 다른 사람에게 일년간 구독을 시켜주는 게 어떨런지. 그렇게 해야 내 맘이 편할 것 같으니까. 일년 후, 그 사람이 구독을 연장하느냐 마느냐는 잡지사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