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4월 11일(화)
누구와: 학회 친구와
마신 양: 소주--> 비싼 술
모자를 쓰고 출근하던 중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아, 이럴 수가. 호빵같은 얼굴을 상상했건만 거울 속의 난 무척이나 갸름해져 있었다. 나와 몸무게 경쟁을 했던 한 미모의 여성은 날보고 ‘배신자’라고 했지만, 이런 종류의 배신이라면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 지난 금요일에는 주위 아주머니들로부터 “피부가 좋아졌다.” “비결이 뭐냐?”는 칭찬을 십여분 가량 들었다.
일요일날, 난 올해 들어서 최고로 멋진 테니스 경기를 펼쳤다. 공은 원하는대로 다 들어갔고, 전성기 때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거의 음속에 가까운 강타를 상대편 코트로 날렸다. 테니스를 친 지 사흘이 자났건만 아직도 난 그때 내가 날린 공들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답은 ‘금주’였다. 지난주 내가 마신 술의 횟수는 단 한번, 주 4-5회가 평소 모습인 걸 감안하면 ‘금주’ 단계라 해도 과장은 아니다. 술을 안마셨기 때문에 난 얼굴이 갸름해졌고 피부도 좋아졌으며 일요일날 테니스도 맨정신으로 임했기에 잘칠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지금껏 몰랐을까 뒤늦게 후회하면서, 오늘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러닝머신 6.5킬로를 뛰었다. 모든 일에는 계기라는 게 있는 법, 난 앞으로 달라질 것이고, 이미 달라지고 있다.
물론 나머지 기간에 술을 입에도 안댄 것은 아니다. 두 번 정도 소주를 마셨지만, 술을 마셨다고 주장할 수 있는 최소 기준인 ‘한병 초과’에 미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소주가 앞에 있으면 참을 수가 없었는데 마음을 달리 먹으니 안마시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늘 저녁 때의 술자리는 내 결심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를 알아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만하다. 남자 넷이 모이는, 술 말고는 낙이 없는 그런 자리에서 난 술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비가 오는 게 변수다.
* 살이 빠졌다고 자랑하고 다니던 차였는데, 오늘 출근길에 한 선생이 날 부른다. 모자 때문에 못알아볼 뻔했다는 얘기를 할 줄 알았지만 그의 말은 의외였다.
“어유, 옆에서 보니까 마선생 배가 아주 많이 나왔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황당해진 난 “선생님이 보신 건 배가 아니구요...”라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다가 자리를 떴다. 얼굴이 먼저 빠지고 배는 맨 나중이라는데, 도대체 배 차례는 언제나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