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4월 21일(금)
마신 양: 소주 한병 조금 초과?
내가 요즘 술을 안 마실 수 있는 비결은 기준치 이하의 양만 마시는 거다. 술을 마신 것과 안마신 것의 구분이 작년도의 ‘소주 한병 이상’에서 ‘소주 한병 초과’로 바뀐 게 효과를 보고 있는 것. 작년에는 소주 한병을 마시고 나면 ‘어차피 한번 카운트되는데 왕창 마셔보자’는 분위기가 되는 반면, 올해는 한병을 마셔도 “지금까진 술이 아니니 그만 마시자.”는 마음이 되버린다. 그래서 난 술자리만 갈 뿐 술은 아슬아슬하게 안마시고 있는데, 지난주에 딱 한번 마신 게 내가 존경하는 분을 모신 자리였다.
원래 술자리에 잘 안나타나는 분이라 만나게 될 걸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최근 신문사를 그만둔 전직 기자분 덕분에 직접 대면할 기회가 만들어졌다. 나도 이제 많이 컸는지라 내가 특정인의 팬 입장에서 술을 마시는 건 요즘으로선 드문 일인데^^, 그분이랑 있으니까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어려운 말로 하면 비현실감이라고 할 그런 감정, 새벽 두시가 넘어 집에 돌아온 뒤에도 난 가슴이 벅차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내겐 여러 분의 스승이 있었다. 날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강준만을 비롯해 책을 통해 만났던 여러 명의 지식인들이 다 내 스승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준만의 책에 대해 예전만큼의 설렘을 느끼지 못하듯, 오랫동안 알면서도 계속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지만, 하나둘 씩 발견되는 단점들이 그를 냉정히 바라보게 만든 까닭이다. 그래도 가끔은 오래도록 알아도 계속 존경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이 있는데, 엊그제 만난 분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늘 치열한 글을 쓰시는 정희진님, 만나 뵐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팬이란 존재는 만나자고 귀찮게 하기보다는 조용히 책을 사드리고, 주위 사람에게 시끄럽게 권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믿기에 선생님을 볼 기회는 엊그제 한번으로 족할 것 같습니다. 아 참, 다음 달에 저희 학생들 강의 때 와주시기로 하셨죠? 선생님을 모실 차는 깨끗이 닦아 놓겠습니다.^^ 그날 뵐게요. 강의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그 강의를 들을 테지만, 우리 학생들이 마구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