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본 거 리뷰도 못쓰고, 책도 못읽고 있는 3월, 술은 그래도 꼬박꼬박 먹지만 술일기가 밀려버렸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한꺼번에 쓴다.
1) 27번째: 3월 2일(목)
모 신문에 칼럼을 썼다. 댓글도 별로 안달리는 사이트에 분노한 댓글이 열 개가 넘을 정도로 끔찍한 글이었다. 그 신문의 성격에 맞추어 두 번째 칼럼을 썼다. 댓글은 다행히 세 개밖에 없었고, 그 세 개는 한 사람이 쓴 거였다. “이게 글이냐?”는 게 댓글의 취지. 난 그분께 “언제 한번 만나서 글쓰기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고, 그는 진짜로 연락을 했다. 나보다 한 살이 많은 그는 S대 철학과를 나와 지금은 놀고 있으며, 앞으로는 정치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서 난 그가 심각한 과대망상에 빠져 있음을 알았다.
“박근혜랑 결혼할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다” “내가 정치판에 나서지 않으면 이 나라가 위험한 지경”
나중에 보니까 그는 모든 칼럼에 비판적인 댓글을 썼으며, 정희진님의 글에 “아직 사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식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만 만나는 게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이었지만, 그의 제의를 뿌리치기에는 내가 너무 심약했다. 그래서 가진 두 번째 술자리, 그가 하는 모든 말-광주시장에 출마하겠다는 말부터 시작해서-을 한쪽 귀로 흘려들으며 술자리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내게 놀라운 제안을 한다.
“나 정치할 건데 정치자금 좀 대시오.”
거절했다. 그랬더니 “내일 문익환 목사 추모제가 전남 강진에서 있다. 차비가 없어서 그러니 차비 좀 주라.”
3만원을 건내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너랑 다신 안본다.”
세상을 살다보면 별의별 이상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나처럼 일부러, 노력을 기울여가며 이상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을 바보라고 한다. 난 바보다.
2) 28번째: 3월 3일(금)
내가 자랑하는 미녀 친구 둘과 술을 마셨다. 함께 있으면 즐거운 좋은 친구들, 그들이 결혼을 하더라도 나랑 쭉 놀아 줬으면 하고 바라는 건 내 욕심이겠지? 다 좋은데 주량이 너무 센 게 단점, 그날 역시 맥주에 소주, 다시 소주로 이어지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뎌야 했다.
3) 31번째: 3월 12일(일)
학생 하나가 만나잔다. 꼭 같이 술을 마시고 싶다고. 그 주에 나에게 가능한 날은 일요일뿐이었다. 학생들이 술마시자고 하는 걸 좋아하지만, 일요일날 쉬지도 못하고 천안에 내려가야 하는 게-그 학생은 천안서 자취를 한다-약간은 귀찮았다. 하지만 그 귀찮음은 충분히 보상받았다. 학생은 삼겹살집에 자리를 잡자마자 내가 쓴 책을 모조리 늘어놓고 싸인을 요구했다. 내가 버린 자식 취급을 하는 첫 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고 할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단 한명이라도 유쾌함을 줄 수만 있다면 그 책은 충분히 존재 이유가 있지 않는가. 초창기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그전보다는 덜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화사한 봄 옷을 입은 탓에 달달 떨어야 했던 그날, 나와 그는 삼겹살에 소주, 이어서 곧바로 감자탕에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난, 근처 여관서 잤다.
4) 32번째: 3월 13일(월)-이건 쓴 거 같은데...
난 갑자기, 어려운 말로 즉흥적으로 술을 마시는 법이 드물다. 자랑은 아니지만 대략 2주 정도의 술 스케줄이 빼곡하게 휴대폰에 입력되어 있다.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일주에 하루쯤은 쉬어야 하는 법, 그래서 내 스케줄 달력은 매주 하루씩이 비어 있다. 3월 13일 월요일이 바로 그런 날 중 하나, 집으로 가는 전철 안인데 한 미녀분한테 전화가 왔다.
“우리 언제 만나요?”
이날저날을 가지고 협상을 하다가 “오늘은 어때요?”란 질문을 던졌고, 미녀는 흔쾌히 동의했다. 황소곱창에 소주, 가장 환상적인 조합이 아닌가.
5) 36번째: 3월 20일(월)
이날 역시 쉬는 날이어서 밤 10시가 못되어 집에 들어왔다. 글이나 흐드러지게 쓰자고 컴 앞에 앉아 있는데, 12시 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술 한잔 안할래?”
내가 좋은 술친구로 각광받는 것은 가정이 없으니 아무 때나 불려나갈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소주에 소주를 마시고 또 소주를 마시다 보니 어느덧 새벽 4시, 다음날 쏟아지는 잠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6) 37번째: 3월 21일(화)
외국잡지에 논문을 투고하는 데 도움을 준 분들(남자 둘)에게 감자탕을 대접했다. 충무로에 의외로 맛집이 많다는 걸 깨달은 날이었는데, 감자탕이 맛있는 것까진 좋았지만 3인분을 먹고 나서 뼈 2인분을 추가로 시킨 게 나빴다. 배가 터질 듯한 상황에서 볶음밥까지 먹은 건 그렇다 치자. 그들과 헤어져 영화 동아리 모임에 가서는 왜 또 그리 많이 먹었을까? 고기를 보면 환장하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면 난 평생 지금의 배와 더불어 여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7) 38번째: 3월 22일(수)
딴지일보의 스타인 미녀기자 둘과 장충동에서 족발을 먹었다. 장충동이 족발의 명소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분명 맛의 차이는 있는데, 테이블 다리에 테니스 공을 끼워둔 게 특징적인 ‘평남 족발’이 그 중 가장 맛있다. 그 족발을 먹으면서 나이가 마흔이 될 때까지 족발을 멀리한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는. 한가지 특기할 사항은 전날의 과식으로 인해 몸 상태가 상당히 안좋았다는 것. 술을 마시기 한시간 전까지도 속이 울렁거리고 헛구역질이 나서 할수없이 약국에 가야 했다. 그 약국서 지어준 소화제는 무척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여, 약을 먹고 난 뒤 십분이 지나자 난 평소와 다름없는 속도로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소화제를 먹고 술을 마시는 투혼을 보인 날.
8) 39번째: 3월 23일(목)
원주로 출장을 갔다가 천안으로 돌아와 마음맞는 친구와 술을 마셨다. 각자 소주를 한병 반씩 먹어 얼큰하게 취했을 때, 개를 기르는 그 친구가 난데없이 개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갑자기 벤지 생각이 나서 울어 버렸다.
9) 40번째: 3월 24일(금)
알라딘의 두 미녀를 만난 날. 8시 쯤 황소곱창에 갔더니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도저히 갈 엄두가 안난다. 마치 콘서트장에 입장하려는 열성 팬들처럼 사람들은 곱창집 안과 밖, 그리고 옆 건물에 들어가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황소곱창 맛의 70% 정도를 보장하는 짝퉁 황소곱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람이 없어 좋았고, 그래서인지 종업원들도 친절하게 대해 줬다. 곱창 5인분과 양짓머리, 그리고 볶음밥을 먹고 난 뒤 서강대 앞에 있는 연탄삼겹살집에 갔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 바로 이건데, 어떻게 곱창을 먹고난 뒤 삼겹살집에 갈 수 있느냐는 것. 물론 2차 장소를 제안한 사람은 나지만, 다른 모임 같으면 “너 돼지냐?”고 핀잔을 받을 제안이 그 모임에서는 “좋아요!”란 대답을 이끌어 내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는가. 그날 역시 술을 코가 비뚤어지게 먹었다.
결론:
일요일인 3월 19일부터 24일 금요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렸다. 토요일 약속이 뒤로 미뤄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건강이 최고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런 무식한 음주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케쥴을 봤더니, 이번주에도 오늘만 빼고 토요일까지 술약속이 다 잡혀 있다. 게다가 3월 30일과 31일, 4월 1일은 주량이 아주 센 분들을 만난다. 오늘 하루 주어진 휴식을 잘 이용해서 몸을 만들자. 여러분, 오늘 저한테 술 마시자고 전화하지 마세요! 오늘 마시면 저 쓰러질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