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
제니 매카시 지음, 이수정 옮김 / 알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아이가 아프면 엄마들은 자책을 하게 된다. 일차적으로 잘 돌보지 못한 책임을 실감하며 병의 원인을 알고난 후엔 무엇이든 후회를 하게 되어있다. 아이가 아플 땐 대부분 아이탓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맞벌이 엄마의 경우 아이가 아픈 것은 두 배로 속상하다. 병원을 데리고 갈 시간도 여의치 않고 아픈 아이를 두고 회사를 향하는 발길도 미어지기 마련이니까. 내 아이는 공교롭게도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만 생활하기 시작하자 아토피가 사라지기도 했다. 아이는 지금 열두 살이고 면역체계가 정상아이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모두가 한창 아이의 아토피로 잠 못 이루던 유치원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임신기간 동안 입덧이 심해 매콤한 면류를 거의 매일 입에 달고 살았기에 (인스턴트를 먹은)나 때문에 아이가 아토피 체질이 된 것 같아 너무나 미안했다. 아이 아빠가 폐기능이 안좋을 때 임신한 것이어서 아빠는 아빠대로 아이가 천식 및 아토피 체질이 된 것에 자격지심을 갖고 살았다. 시집에선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의 아토피 치료에 전념하라며 볼 때마다 은근히 스트레스를 주셨고 아이를 봐주시던 친정엄마는 그 말이 듣기 싫어 아이의 식단과 청결에 목숨을 거실 정도였다. 맞벌이를 하다보면 돈을 두 배로 벌 것 같아도 힘들고 귀찮아 대부분 돈으로 해결하려는 심리 때문에 지출하는 항목이 늘어나게 된다. 아이의 아토피 피부염이 절정을 달리고 있을 때가 내가 가장 바쁜 시기였기에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피부에 좋다는 ‘바르는 약’, ‘먹는 약’을 사들였고 한약을 비롯해 외국이나 지방에서 공수되어온 물(탄산수)이나 진흙, 소금, 약초같은 약재도 일단은 집에 들여놓고 보았다. 그야말로 아이는 실험대상이었고 우리는 연구원인 그때 그 시절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의 아토피가 완치되어가는 과정을 몇 년 겪으면서 돌이켜보니 세상에 널린 정보는 수많은 정답들 중 하나일뿐 그것이 꼭 내 아이에게 맞거나 혹은 틀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아토피를 유발한다고 알려진 생선, 고기 및 유제품류의 단백질이 내 아이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토피 체질의 아이들은 열이 많고 비염이나 중이염이 걸릴 확률이 높으며 천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수영장에 다녀오면 꼭 이비인후과 신세를 져야했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날씨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도 많이 좌우된다. 내 아이는 빵에 함유된 버터나 계란, 밀가루음식보다는 탄산음료나 특정한(기름으로 튀긴) 과자에 특히 반응하는 경우였다. 또 치킨이나 튀김, 전에 사용하는 기름의 종류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랐다.(그러니 우리는 그야말로 다양한 기름으로 전을 부쳐 먹어 보았다) 도너츠만해도 D사의 도너츠는 못먹는데 C사의 도넛은 오리지널에 한해 잘 먹고 있다. 새우나 홍합등의 해물류도 요리방법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이 틀렸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 모든 걸 먹여보고 징후를 (여러번)관찰해 보아야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건 또 어떤 날은 그전에 가려움증을 유발하던 음식을 먹고 왔어도 아무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반대로 아무 이상없었던 음식을 먹고도 토하거나 머리가 아프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아이는 (아토피가 심할 땐)스트레스를 받으면 체온이 올라가고 두통을 느끼며 구토를 한 후 마지막으로 코피를 흘린다. 이 일련의 순서는 (내가 직장에 묶여있는 동안)수년간 반복되며 아이를 괴롭혔고 어떤 의사도 시원한 해결책을 마련해주지는 못했다. 결국은 음식보다는 심리적인 부담을 주는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더 악영향을 끼친 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먹고 싶다고 하는 음식은 제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고 몸에 좋다고 해서 억지로 먹이는 방법은 그만두게 되었다.

  피부에 직접 바르는 연고도 그 많고 많던 아토피 치료제를 다 사용해보고 난 후 거의 포기에 이르렀을 때 답을 찾게 되었다. 그동안 탄산수나 온천목욕, 진흙목욕을 비롯해 연수기, 공기청정기등의 기계적 도움은 물론 고가의 이불 및 의류, 세제 및 보습제등 아이를 거쳐가지 않은 시술(?)과 방법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내 화장대에 방치된 ‘달팽이크림’을 보고 아이는 크림의 끈적끈적한 점성이 신기했는지 하루 종일 가지고 놀았다. 나는 어디서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사은품쯤 되었던 것같다) 내가 바르던 화장품도 아니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팔이 접히는 부분에 남아있던 아토피 상처가 말끔히 사라진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달팽이 크림에 함유된 재생성분이 아이의 피부를 회복시킨 것이었다. 아이는 1학년 때까지 여름에도 긴팔을 입지 못했다. 그날 이후 달팽이크림의 효과는 무섭도록 빠르고도 깊숙했다. 며칠 사용해보니 흉터가 남아있던 피부가 아기처럼 깨끗해졌고 흥분한 아이는 같은 반에 아토피친구에게도 소개를 해주고 친구의 효과를 자신의 일처럼 기쁘게 전해주기도 했다. 유명하다던 각종 크림을 얼마나 발라왔는데 거들떠도 보지 않던 달팽이 크림이 한방에 아토피를 해결해주다니! 그 이후 나는 아토피로 걱정하는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달팽이크림’을 말해주었고 효과는 거의 백프로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아토피 환자 부모는 몇이나 될까.(홈쇼핑 광고에서도 아토피에 좋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엄마들이 아토피 치료하려고 달팽이 크림을 사지는 않을테니까) 물론 내 아이에게 발랐던 크림이 모든 아이에게도 똑같이 효과를 보장한다 확신할 순 없지만 나는 수많은 정답들중 그 하나의 우연을 찾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행운이나 우연이 아니고 수백 번,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필연적으로 발견된 효과가 아니었을까. 달팽이 이후 하루종일 어이없고 신기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책은 내 아이보다 몇 백배 더 고통스러운 병, 자폐증을 가진 아이와 부모가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발견해낸 의미있는 효과들을 감동스런 사연으로 전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모르는 것이, 몰랐던 사실이 이렇게도 많았구나 싶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엄마들에 비하면 내 경운 정말 운좋은 케이스였다. 이 책이야말로 그동안 몰랐던 자폐증의 달팽이크림이 아닐까.  

 




 

 

 

 

 

 

 

  


<짐 캐리와 제니 매카시, 그리고 그녀의 아들 에번, 짐 캐리의 딸>

  이 책의 저자는 제니 매카시(Jennifer Ann McCarthy)라는 헐리우드 유명 배우이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이 무척 낯익다. 책에도 등장하지만 ‘마스크’의 짐 캐리와 연인사이로 알려진 공식커플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짐이 자폐증 아들을 둔 제니곁에서 에번을 자신의 소중한 아들로 삼으며 험난한 치료과정에 숭고히 동참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친부도 아닌)한 남자가 자신이 느낀 소중한 사랑을 서술하는 글, 아픔속에서도 행복한 시간들에 대한 감사글은 뭉클할 정도였다. 그런데 얼마 전(2011. 4)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결별사실을 발표했다. 이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역시 에번의 치료과정에서 일어난 힘겨운 고행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제니도 언급했지만 자폐아를 둔 부모들은 이혼율(약 80%)이 높고 따라서 여성이 혼자서 아이를 감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니가 소개한 어떤 여성은 아이가 자폐증에 걸린 후 바로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는 사연도 있었다. 아이가 아팠을 때 엄마의 심정을 똑같이 공감하는 나로선 제니와 짐의 결별이 마음아프게 다가왔다. 그동안 짐이 ‘자폐증 여행의 동반자’로서 꿋꿋이 세상에 맞서온 그녀를 든든히 지원해 왔고 그녀 역시 짐이 없었다면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거라는 마음을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었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같은 여성으로서)또 혼자서 모든 시련을 헤쳐 가야하는 그녀의 앞길에 조용히 박수를 쳐주는 것만으로는 내 안타까움이, 격려가 미치지 못할 듯 느껴진다. 그녀의 아들은 꼭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였다. 세상에 분명히 주어진 역할이 있어 이곳에 왔을텐데 아이는 병치례를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엄마역시 이 책의 제목(원제: 전사엄마들, Mother Warriors)처럼 전사로서의 투쟁을 이제는 고독하게도 수행해야겠구나 싶어 마음이 짠해진다.

  이 책의 내용은 제니의 글로 전하는 자폐증 아이를 둔 부모들의 사연과 제니의 감회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의 아들이 두 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은 후 그 치료과정을 담았다는 베스트셀러『라우더 댄 워즈 LOUDER THAN WORDS』가 자신의 목소리였다면 『Mother Warriors: A Nation of Parents Healing Autism Against All Odds 』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겪은 부모들의 생생한 체험기(모든 역경에 맞서는 자폐증 치료 부모들의 세계)를 엮어내 전작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 역시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2008)로서 이제 그녀는 자폐증에 관한한 어엿한 유명인사가 된 듯하다. 책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오프라 윈프리 쇼’, ‘바바라 월터쇼’, ‘래리킹 쇼’같은 미국내 유명한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예방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과 자신들이 효과를 본 치료법들을 전파해 시종일관 복지부동하고 있는 기존의 학계와 의료계, 제약업계를 향해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화려한 모델에서 헐리우드 코미디 배우로 살다가 이제는 투쟁적 이미지의 자폐증엄마의 아이콘이 되버린 듯하다. 유명인이고 토크쇼에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퍼뜩 얼마 전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의 아들이 자폐증이라는 고백을 한 바 있는 부활의 김태원 리더가 생각났다. 아내와 아이가 캐나다를 거쳐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는 실정이고 한국은 자폐아들을 ‘이상한 아이’로 취급하지만 외국은 ‘특별한 아이’로 배려한다는 그의 기사도 기억이 났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한번이라도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그의 눈물어린 고백이 새삼 실감나게 느껴졌다. 가능만하다면 그에게 이 책을 전달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아이의 자폐증을 고백하는 김태원>

  마침 엊그제 신문에서는 미국 예일대 소아정신과팀이 고양시 초등학생을 조사해보니 40명중 1명꼴로 ‘자폐스펙트럼 장애’(자폐증으로 볼 수 있는 여러 질환을 통칭하는 용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조선일보. 5.10) 우리나라에 매년 신생아가 40만명 이상 태어나고 자폐증세가 만 두 살부터 나타난다고 보았을 때 산술적으로 중학교 이전 자폐아는 전국에 약 11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뜻이었다. 이는 미국의 통계치에 두 배에 달하는 수치였고 알려진 것보다 우리나라도 자폐증 어린이가 많다는 다소 충격적인 결과였다. 또 하나 의미있는 기사는 질병관리본부가 얼마 전 지난 15년간(1995-2010) 어린이와 청소년 아토피가 세배 증가했으며 아토피 어린이는 5명중 한명이라는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2011. 5.3)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아토피와 자폐증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니 한 번도 같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전혀 무관한 주제에 해당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내 아이가 아토피 환자였다는 경험적인 단순한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 중에는 자폐증을 앓기 전에 아토피 피부염을 가진 아이였거나 자폐증을 앓고 난후 아토피가 생겨난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마구 긁어대는 피부병인 아토피와 말을 더듬고 지적장애를 가져오는 자폐증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이 비밀스런 관계를 알게된 것이 아마도 내가 이 책을 통해 깨우친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여지껏 아토피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자폐증도 마찬가지다) 유전과 스트레스를 제외한 환경문제, 색소나 항생제, 농약등의 식품문제가 면역체계에 이상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자폐증이 (선천적)유전병이 아니라 (후천적)자가면역 체계 이상으로 생긴 뇌신경 면역질환으로 주장한다. 나는 그동안 자폐증을 신이 내린 ‘정신질환’이나 간질같은 불치의 ‘뇌질환’쯤으로 생각해왔다. 거의 정신분열의 한 종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심지어는 엄마의 강박적인 성격이나 부모의 애정결핍이 아이의 자폐증을 초래한다는 근거없는 편견을 가진 적도 있었다. 책에서 사연을 말하는 부모들은 한결같이 풍진, MMR, DPT(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을 예방하는 혼합백신), 뇌수막염등의 예방주사를 접종한후 언어 및 지적, 감각장애, 소화장애를 거쳐 자폐증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수은과 같은 독소를 품고 있는 예방백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아기들, 유전적으로 면역이 약한 아기들은 생후 맞게 되는 서른 여섯 번의 무자비한 예방접종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더 창의적인 질병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살면서 누구도 예방백신에 수은이 들어있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저 감기나 몸이 아프면 주사약을 견디기 힘드니까 다른 날을 택하시오, 정도만 상식으로 알고있을 뿐이었다. 이 책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 아이들은 그 치명적인 독소를 견뎌낼만큼 면역력이 우수한 어쩌다가 운좋은 아이들이 틀림없었다. 면역이 약한 운나쁜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맞았을 때 주사에 함유된 중금속과 같은 독소가 뇌에 영향을 주어 자폐증이 생긴다는 제니 매카시의 주장이 정설로 인정된다면 사실상 아토피 어린이들은 거의 자폐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잠재환자에 다름없다고 본다. 물론 제니는 자폐증 자체에만 몰두하였기에 이 결론은 내가 이 책을 통해 내린 새로운 가설이자 개인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실제로 엄마들을 만나보면 요즘은 심하진 않아도 경미한 수준의 아토피 체질인 아이들이 알레르기와 비염같은 연관질환에 대다수 노출되어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엔)어린 시절을 다 보내고도 청소년, 성인이 된 후에도 대상포진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자폐증 진단을 받은 환자도 있다는 사실이다. 즉, 자폐증은 뇌신경학적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이차적 ‘감염원’과 더 다양한 ‘독소’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며 ‘독소’는 예방백신과 살충제, 음식, 방염물질, 그 외 특정한 환경에 노출됨으로써 아이들의 체내에 유입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면역체계 이상으로 발생한다는 아토피와 그 면역이상으로 발생하는 뇌신경질환이 자폐증이라는 것은 마치 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간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책을 덮고 우리네 자폐증관련 기사들을 찾아보았지만 자폐증 치료자에 대한 ‘인증과 통합정보시스템’ 같은 막연한 수준의 대책마련에만 정보가 노출되어 있을 뿐 그 원인과 치료과정 및 효과에 대해선 전무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반드시 습득해야할 꽤 유용한 지식 참고서였던 것이다.

  제니는 면역체계와 자폐증의 상관관계를 다른 부모들의 수기로 신빙성을 확보한 후 우리들에게 자신들이 이렇게 투쟁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사정에 대해서도 피력하고 있었다. 의료계와 제약회사간의 오래된 유착관계, 유전병으로 간주된 자폐증은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 자폐증 치료 후원단체마저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한 부모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선호하는 연구주제만 반복하려한다는 매너리즘에 대해 따끔한 질타를 잊지 않았다. 예방백신에서 독소를 제거하고(그전에 독소를 인정하고) 무조건적인 예방접종의 횟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창했다. 자폐증이 유전병이라는 것은 의사들의 고정관념이며 얼마든지 환경적 요인이 개입될 수 있다는 사실, 천벌과 같은 불치병이 아니라 반드시 고칠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을 더 많은 부모와 의사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다.

  책을 덮고 그녀가 가르쳐준 ‘탄광속의 카나리아’ 한 마리가 유독 잊혀지지 않았다. ‘탄광속의 카나리아’는 자폐증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들었다. 탄광에 가스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가스에 유독 민감한 카나리아를 실험용으로 집어 넣어 보고 카나리아의 생사여부에 따라 탄광작업여부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자폐증에 걸린 아이들은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이 세상에 걸음한 것이라는 그녀의 깨달음이 고개를 숙이게 한다. 아무 죄도 없이 카나리아처럼 지저귀는 아이들의 신음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시점에 우리 어른들은 운좋게 살아남는 카나리아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바로 며칠 전 정체불명의 폐질환(급성 간질성 폐렴)으로 임산부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임산부 뿐만 아니라 영유아 집단에서도 사망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늘은 부랴부랴 전염성은 없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성급한 기사를 확인했다. 최근엔 이렇듯 원인을 알 수 있는 바이러스보다는 절대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대세인 듯하다. 주요 공격대상인 임산부나 영유아, 노약자들은 일반인보다 면역력이 급격히 낮은 대상들인 것도 확실하다. 사람들의 면역은 갈수록 약해지고 신종바이러스는 자꾸 등장하고. 무언가를 사실대로 알지못 할때 전염되는 것은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공포였다. 어쩐지 이 책에 등장하는 ‘전사엄마-아이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한탄하는 대신 벽을 깨부수고 장애물을 넘고 나아가는 엄마’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책에서 제시한 문제는 인류의 면역체계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 즉, 인류가 고안한 시스템과 인류가 창궐한 환경, 인류가 제조한 제품들로부터 역으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아이러니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단지 자폐증 아이를 둔 피끓는 모정을 빌려서라도.  



   

 

 

 

 

 

 
<폐질환 사망자다 더 있다는 SBS 뉴스 보도 (2011.5.12)>

  다시금 인류는 언제 어떻게 생성된 독소에 노출될지 모르는 삶을 바보처럼 아니 똑똑한 사람처럼 철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한 식이요법이나 제독요법의 방법적 문제보다는 일단 자라나서 유포되는 독소자체를 시인하고 그것을 문제시하려는 정직한 태도가 절실할 때이다. 아토피나 자폐증은 문제를 문제시 하지 않은데서 파생된 형벌일 것이다. 그들이 병적으로 연인관계가 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불행히도 우리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우리의 잘못으로 고통받는 세상의 불합리가 주는 교훈은 깨닫지 않아도 될 가르침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에세이로서 차별화되는 점은 특이하게도 번역자의 목소리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전혀 번역된 어색함이나 용어에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고 감정적 호소에는 저자의 목소리가 유독 진하고 강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옮긴이의 글을 보니 번역하신 분도 자폐증 아이가 있어 완전한 공감이 가능했던 것 같다. 원작자와 번역자,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부모님, 그리고 자폐증 아이를 둔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제니가 끈질기게 호소하는 ‘믿음의 힘’을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다. 아니 우리들은 이들이 전하는 ‘믿음의 힘’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이다.  

 

  적어도 어여쁜 카나리아를 탄광속에 보내는 무정한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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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 버트런드 러셀의 실천적 삶, 시대의 기록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박병철 해설 / 비아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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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가단 ?

이 책을 덮고 자꾸 떠나지 않던 생각이 하나 있었다. 새삼스럽게도 ‘나는 평가단이다’, 라는 자각이었다. 의미가 있었다면 이 책은 나로 하여금 ‘평가단’으로서 서평을 작성해야 한다는 책임과 역할을 환기시켜 주었달까. 즉, 나는 이 책을 러셀을 만나보기 위해 집어든 것이 아니라 평가단 임무수행을 위해 펼쳐든 것이었고 그것은 러셀을 만나고 싶었느냐와 그리하여 만났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러셀을 만났는지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의무감 때문에 나는 며칠 이 책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7기와 8기의 소설평가단을 하면서 해당책의 서평에 부정적인 평가를 한 책은 딱 두 권이다. 한 권은 출판사의 마케팅 방향과 책 내용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고 한 권은 홍보와 달리 세간의 화려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단점때문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번 모두 나름의 내 논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평가단으로서 부정적인 평가는 주로 책에 대한 반론으로 귀결된다. 논리의 이면에는 근거나 자료를 제시하여 비록 주관속에서라도 객관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근거나 자료가 없다면 결론을 유추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기라도 해야 한다. 내 맘에 들면 좋은 책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책이라 말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후자를 말할 땐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보다 논리적으로 정리해야 설득력이 생길 터이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 평가라는 오류에 빠질 수 있는, 평가가 함정이 되는 책이었다. 이 책은 평가만 하지 않는다면 글로써 서평이라는 기록을 하지 않는다면 조용히 미소지으며 책꽂이 한 켠에 꽂아 두어도 좋을 책이었다.

나는 ‘평가단’과 일반 ‘서평자’는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지난 두 번의 평가단을 수행하면서 지금에서야 얻은 결론이다. 우선 평가단은 (평가를 하고 싶다는)자발적인 신청에 의해 (평가의 자격을 얻어)선정된 사람들이다. 선정의 기준은 평가단을 선정하는 사람들의 몫이지만 대개 이들은 텍스트의 분석 및 이해력, 문장력이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른바 책좀 읽고 글좀 쓰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 아마도 그렇게 책좀 읽고 글좀 써왔다고 보여지는 사람들이기에 신간의 평가를 맡기는 것일 터이다. 만약 내 생각이 틀린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수행단을 ‘평가단’에서 그냥 ‘서평단’으로 바꾸어 주었으면 좋겠다. ‘서평단’으로 칭해준다면 나는 평가를 하고서도 평가한 것에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와 굳이 평가라는 미션에 예민한 이유는 두말없이 내가 ‘평가단’이기 때문이다. 사실 7기와 8기 때는 평가단이라는 미션보다는 성실한(?) 서평자로서 한 권의 책을 통한 서평 한 편에 완성도를 높이는 쪽으로 글을 써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서평이 작품화(?) 되면서 작위적인 문장이 늘고 책을 말하기 보다는 서평자체, 문장과 논리의 완성에만 치중하게 되었고 과다필력의 부작용으로 ‘평가’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다. 어찌보면 나 자신과 내 글만을 위한 서평여행이었다. 솔직히 글은 얼마든지 써도 정작 평가는 하고 싶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내가 무어라고’ 하는 생각도 있었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그럼 여기서 평가라고 했다고 모두 부정적인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누군가 반론을 한다고 치자. 평가에는 물론 호평도 포함되지만 평가를 하고 그것의 결과를 적을 때는 반드시 호평인지 혹평인지, 아님 모르겠다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평가하고 싶지 않다던지 하는 위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중요한 임무를 방기한 채 한 권의 책을 내 입장에서 다시 적어보려만 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평가를 한다고 자각한 채 평가를 내려본 적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내겐 이 사실이 땅을 칠만큼 중요했다. 러셀이 이 책을 통해 가르쳐 준 것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스스로 밝히는 것이었다. 평가의 오류를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는 이유는 이 책을 말할 때 나는 좋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인데 내가 평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라면 이 책은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만 싶었지 말하거나 그 결과를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읽는 것까지는 긍정할 수 있으나 어떻게 읽었는지 적어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처음으로 깨우쳤다. 이것은 중요하다. 내가 평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면 이 책을 선택하려는 사람에게 이 책의 좋은 점만 말해 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내 맘에 안들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몇가지 이 책의 좋은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 내 서평을 우연히 읽었다면 그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 평가는 누군가의 우연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니까, 까놓고 이야기하면 이 책은 어쩌다가 평가단에게 평가 받아야 할 불운을 안고 가는 경우인 듯하다. 이 책은 스페셜하게도 러셀의 책에서 베스트만 발췌한 명언집이다. 가만보면 콜렉션의 소장 유무는 평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미 확실하고도 훌륭한 평가를 받은 사람에 한해 행해지는 작업이고 콜렉션 자체가 마케팅을 소구하는 작품이니 책의 구성이나 편집이 허술하다고 하는 것은 넌센스일지 모른다. 단지 아쉬운 게 있다면 내가 러셀의 책을 단 한권이라도 독파를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인데 (이렇듯 평가자격이 없는데도 불구)그렇더라도 나는 이 책에 딴지를 걸 수 있는 자격을 이미 얻었다. (조용필 베스트, 조수미 베스트를 받았는데 조용필, 조수미를 모른다고 베스트에 딴지를 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니 나에게 이 책이 안좋았다고 하는 것의 의미는 오로지 평가의무에만 귀속되는 일일뿐이라는 것이 나로서는 영 기분좋지가 않은 책인 것이다. 한마디로 심사위원 자격도 안되면서 (심사위원이니까)점수 매기는 부끄럽고 속터지는 기분이다. 그러므로 이번 책에 대한 서평은 평가를 위한 평가임을 먼저 밝혀둔다.

이 책은 러셀의 책?

먼저, 나는 이 책을 통해 러셀을 만나지는 못했다. 스쳐 지나갔다고 해야 맞을 듯 하다. 가장 큰 원인은 러셀을 알기에 이 책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알았다고 여기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어떤 이는 그런대로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과연 어떤 부분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질문한다면 무어라 답할지 궁금하다. 이 책의 편집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러셀을 더 알고 싶다’ 정도의 대답이 나온다면 다행이지 싶다.

중요한건 <버트런드 러셀의 베스트>가 러셀이 죽고 나서 편집자의 임의에 의해 모아진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베스트를 택하는데 있어 러셀은 검수를 했다. 최종원고를 검토하고 몇주 뒤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니 말이다. 70여 년에 걸쳐 집필한 자신의 책중에(이 책에서 발췌한 책은 40여 권이라지만)특정한 문장을 발췌하여 여섯 개의 하부 주제(정치, 심리, 종교, 교육, 성과 결혼, 윤리)아래 위치시키는 일(의 교정)을 98세에 한 것이다. 이러한 구분과 베스트 선정으로 새로운 책이 탄생하는 것을 그가 원하였는지, 구성과 방향이 그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편집자의 작업에 최종동의를 한 것이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러셀은 더 이상 원고를 수정한 적이 없다. 가수로 치면 칠십 주년 기념 골든 베스트 앨범작업(의 프로듀싱)을 막 마치고 얼마 후 사망한 것과 같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소장가치가 있으며 유작으로서 러셀의 일생과 학자로서의 업적을 정리하는데 의미있는 시간을 제공할 터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책이 의도한 의미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는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그 베스트로 선정된 본문의 무책임함이었다. 손가락으로 일일이 세어보니 한 개의 세부주제 하에 최소 서른 개에서 오십여 개의 발췌문이 나열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마지막 ‘윤리’의 장에는 가장 많은 육십 여개의 문단이 구성되었다. 나는 한 개의 장에서 약 열 번 이상은 독서의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전후 맥락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된 문장이 구성상 서론인지 결론인지, 어떤 주장의 반론인지 동감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략 다섯 줄에서 열줄 정도 되는 한 개의 문단을 뚫어져라 정독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더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이 문단이 노벨상 수상 연설문에 속한 것인지 철학책에 있는 것인지 그게 다였다. (제목옆에 출간연도라도 표기했다면 시대를 가늠해보기라도 했을텐데, 이건 인용문의 기본적 태도가 아니다. 러셀이 평생동안 한말일까? 살면서 한번도 변하지 않은 생각일까? 현역으로 활동한 기간이 길었던 만큼 어느 시기, 어떤 시국에 출간된 책인지 정도는 인지하면서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일 아닐까? 맨 뒷편에 참고문헌처럼 연도를 표시해 준 것은 확인하고 싶으면 앞뒤 넘겨가면서 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 그런데 나중엔 책의 제목도 큰 의미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문체의 톤이 풍자의 뉘앙스를 가진 사설조였기에 러셀이 논리를 주장하는 방식, 결론을 맺는 습관정도에만 익숙해졌을 뿐이다. 선정된 글의 순서에 어떠한 의도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고 특별히 그 부분을 싹뚝 잘라내어 이곳에 같다 붙인 이유도 와닿지 않았고 나중엔 크게 구분된 상위주제가 변별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마지막 장 ‘윤리’에 해당되는 발췌문은 내용상 ‘종교’와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였다.

이것은 완성본 없는 싯구절의 향연이 아니다. 무차별하게 배치되어 있던 이 랜덤의 규칙안에서 나는 꼼짝없이 숨막히는 시간을 보냈다. 전체적으로 사색을 방해하는 구조, 생각의 확산을 저지하는 구성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발췌문의 앞뒤를 장식하던 ‘편집자의 여는 글’과 ‘해설자의 닫는 글’도 내용상 열고 닫는 의미를 느낄 수는 없었다. 하나로 합쳐도 더 깔끔하고 잘 정리되어 보였을 것이다. 아니면 열고 닫는 글을 이 책의 가이드라고 보고 발췌된 문단을 다시 소주제로 나누어 편집자가 중간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일관된 사유를 유도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한편의 시를 조각조각 분해해 해석하며 평을 덧붙이는 방식의 평론도 하나의 대안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다듬은 것처럼 보이도록 앞뒤에 프레임을 배치시켜놓고 완전 발췌문은 산발적인 자유 랜덤플레이로 방치한 것이 아닐지. 비편집자인 출판의 문외한인 나로서도 이 책은 아직 원고단계였다는 생각,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기왕에 러셀이 말하려 했던 모든 것을 친절하게 여섯 개의 주제로 나누었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전달하려 했다면 좀 더 독자를 배려해야 하지 않았을까.(나처럼 러셀의 책을 한권도 제대로 안 읽어본 사람에게도) 아주 최상의 재료들을 일렬로 나열해 놓고 아직 요리를 하지 않은 상태라는 느낌을 받은 건 나만의 결론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끝내 러셀을 만나보지 못하고 볼듯 말듯 잠시 스쳐지나간 쪽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스침의 느낌이 좋지 못했다고 말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이 책은 러셀과 그의 다른 책을 말하지 않고서는 독립적으로 좋은 평가를 하기 힘든 책이다. 아쉽게도 단일본으로서는 책의 의미를 가치있게 백프로 구현하지 못한다는 뜻에 다름아니다. 이번 러셀 베스트가 책으로서 가치에 부합하여야 하는가는 이미 이 책의 원고가 러셀의 본문이기에 중요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러셀은 이미 충분히 가치있는 저자이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러셀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러셀의 책으로서 가치를 전달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러셀을 말하는 방법적인 문제이니 결국 책이 구성되는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러셀을 말하려다 말 못하거나 안하느니 못한 상황이 된 것 같다. 그러니 이 책은 러셀이 집필한 내용만으로 책을 만들었으나 러셀의 책은 아닌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쉽다. 나는 러셀의 모든 작품이 이런 식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책 한 권만을 본다면 러셀의 논리는 심오하다기 보다는 퍽이나 유머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구성하는 발췌문들은 러셀이 말하는 ‘상당히 교육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라 (의도적으로)여성노동자를 포함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만 선정된 듯하다. 나는 원래 어려우라고 하면 누구보다 어렵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지만 진지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당신들을 위해 쉽게 쓰는 것이다, 라는 러셀의 지적우월감은 이글로만 러셀을 만나는 입장에선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기껏 대중적인 글을 발췌하여 대중을 설득하려했던 그의 노력을 알리고자 했건만 정작 대중인 내가 잘난척 하는 태도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같은 사람이 이 책의 주요타겟군이라고 느꼈으니 말이다. 기왕이면 (편집자의 판단에)어렵다고 생각되는 글도 발췌하여 비교해볼 수 있었으면 어떨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문제이니 롤러코스터를 타듯 현격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러셀을 더 존경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교육’을 말하는 러셀은 세익스피어를 조각조각 암기하게 하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그의 이름만 들어도 현학적이고 따분하게 생각하게 되고 결국 학교교육이 세익스피어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한다는 따끔한 질타를 하고 있다. 꼭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러셀의 조각조각을 확인했더니 우리네 지식인과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무지막지한 착각을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같이 단 오분이라도 러셀과 만나서 눈맞춤이라도 하고 싶은, 그리하여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앞으로의 더 깊은 성찰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여간 실망스러운게 아니다. 대체 어느 문장을 보고 러셀의 이전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러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만남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미 러셀을 독파하고 그의 뜻을 충분히 학습한 사람들은 과연 이 책이 필요할까? (필요보다는 기념이 가깝지 않을런지)

그래도 러셀처럼 !

하지만, 이 책이 가진 가치성과 필요성에 대한 치명적인 단점을 제외하면(?) 그 스쳐가는 느낌속에서도 공감과 끄덕임이 없지는 않았다. 가장 공감한 글은 ‘종교’를 말하는 부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을 경우 어떠한 것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러셀은 열다섯 살 이후로 기독교를 믿지 않아왔고 ‘무엇 때문에 기독교를 믿지 않는지를 알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했다. 내 보기에 러셀은 평생을 자신의 이유를 말하는데 소진했다는 생각이다. 기독교를 믿지 않게 된 이유는 곧 종교에 대한 신랄한 반론을 뜻했다. 나 역시 종교는 ‘절대성’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성’의 문제라는 생각을 가진지 오래다. 종교가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선택하면 된다는 주의다. (그러므로 종교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종교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종교가 가진 아이러니다. 종교마저 절대적이지 않으면 그것이 우리 삶에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러셀은 종교의 절대성을 냉철하게 해체시키고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서구세계에서의 교회가 가지는 물리적, 심리적 폭력을 고발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가 개념을 정의한 문장중에 가장 반가웠던 건 ‘신념’을 말할 때였다. 러셀은 ‘신념’은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정의했다. 어느 누구도 증거가 있는 것을 ‘신념’이라고 부르지 않으므로 신념이 해롭다는 것. 너무나 맞는 말이라 흠칫하면서도 짜릿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신의 존재를 입증할 증거가 전혀 없을 때 사람들은 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중거가 없으니 믿게된다는 논리가 신선했고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꿰뚫고 직시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러셀은 종교적 신앙에의 열망을 ‘두려움’이라는 인간본성으로 이해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낙관적인 신념을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두려움에 호소하여 두려움을 인간운용의 방편으로 삼은 종교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러셀은 신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루는 것은 바로 ‘과학적 진실성’이었고 사고의 기초를 관찰과 추론에 두는 습성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가 이성의 힘을 신뢰한 철학자였다는 것은 이 책을 이루는 수많은 발췌문의 반복되는 논리형식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는 있었다. 이성理性은 ‘reason’이다. ‘reason’은 ‘이유’나 ‘근거’를 의미하기도 한다. 러셀은 이성적인 사람이므로 ‘이유와 근거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발췌문은 독특한 주장을 한 후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하고 자신만의 통찰력으로 문제를 매듭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리함에 추가된 것이 있다면 어른된 이성을 꼬집는 아이의 감수성이다.

우리의 도덕 체계는 금기로 가득 차 있다. 가장 존엄한 사항들과 관련해서도 갖가지 금기가 있다. 오늘날 죄악으로 분명히 인정되고 있지만 나는 한 번도 범하지 않은 죄가 있다. 성서에 이르기를 “네 이웃의 소를 탐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웃의 소를 탐낸 적이 없다. 241p

나는 이 문장의 마지막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웃다가 결국은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러셀에 의하면 법률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문장을 보면 꼭 나는 도둑질 하지 않았으니 죄인이 아니라는 사기꾼이 생각난다. 그리고 남의 것을 욕심내어 본 적이 없다는 자신의 철학을 성서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을 들어 재치있게 비유한 그의 감수성이 순진한 남자아이의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유일하게 나를 웃게 한 글이고 그로써 이 책에 가졌던 반감이 누그러지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많은 걸 감안해야 하는 책이다. 가장 아쉬운 건 러셀의 ‘논리적 사유’를 만나는데 이해가 아닌 감상의 차원에 그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르긴 해도) 러셀이 이런 말도 했다는 자료나 증거, 인용의 문장으로서는 충분할 수 있겠다. 이 책을 통해 그나마 전체 내용이 궁금해진건  <버트런드 러셀이 자신의 마음을 말하다. 1960>정도 였다. 발췌문은 에세이와 인문서적이 섞여있었지만 대부분 에세이로 느껴졌던 영향이 컸다. 마지막으로 러셀이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피력하는 글이 아닌, 세상을 향해 떠오르는 생각을 편안하게 읊조린다는 생각이 들었던 글을 옮겨 적어본다. 일백년 가까이 살았던 한 철학자가 노년에 말하는 행복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고요한 울림을 전해준다. 그 치열했던 인생속에서 탄생한 마지막 통찰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었다는 점이 숙연해진다. 어쩐지 ‘나는 이웃의 소를 탐한 적이 없다’는 말과도 통한다고 느껴진다. 나도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있게 이웃의 소를 탐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러셀의 모두를 혹은 일부라도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말한 행복만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가 행복을 말하는 방법, 그리고 행복의 본질 그것이 이 책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결국 그 역시 모두가 행복하고 똑똑하게 살아보자고 그 많던 고민을 해온 것이 아니겠는가.

이따금 나는 환상 속에서 모든 인간이 행복하고 원기왕성하고 똑똑하며 억압하는 자도 억압받는 자도 없는 세상을 본다.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이익이 서로 경쟁하는 개별적 이익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지력과 상상력을 통해 실현가능한 위대한 잠재력을 현실화하기 위해 분투하는 세상. 인류는 한 가족이기에 모두가 행복을 맞거나 모두가 불행을 맞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다수 대중의 고통에 기생해서 소수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 시대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런 시대를 묵묵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웃의 행복을 시샘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버트런드 러셀이 자신의 마음을 말하다. 1960> 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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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5-0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과 평가단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님에게서 처음으로 자각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가 평가단이 되보기는 알라딘에선 두번짼데, 다른데서는 많이 해봤죠.
하면서 느낀 건 확실히 서평에 대해 쓰는 건 좀 족쇄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육감과 호기심에 웬만한 걸 걸러내더라도 실망스러운 책은 있기마련이죠.
아님 적어도 내 취향엔 맞지 않는. 그럴 때도 쓰는 게 젤 난감해요.
속편하게 내돈 내고 내가 사서 보는 게 젤 좋긴한데, 아시겠지만 책값이 장난이 아니잖아요.
그럴 때 평가단은 정말 좋은 빌미가 되기도하죠.

좋은 책인데 내 취향이 아니라면 모를까 이런 책은 좀 문제가 있어 보여요.
그래도 문제가 있는 책은 평가단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얘기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알라딘인데, 좀 성의있게 책을 들이댔으면 좋겠습니다.
미리 읽고 싶은 책 올려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이 이책 원했다고 선정 이유 밝히는 거 좀 거시기해요.
마치 모든 평가단이 원하는 것처럼.
첫 도서 기대치에 못 미쳤는데, 다음 도서는 또 어떨지, 걱정반 기대반입니다.
제발 알라딘이 한사람님 말을 잘 들어줬으면 하는데...에효~

감은빛 2011-05-04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나서 보니, 이 책에 대한 평가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군요.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게 됩니다.
'평가단'이란 역할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네요.

네오 2011-05-04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번의 러셀책이 그렇군요~ 리뷰작성시 참고하겠습니다~

穀雨(곡우) 2011-05-0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시원하게 긁어 주신 글이네요. 누군가의 모음은 때론 명분에 급급하다는 생각이 강해
흐름을 방해하고 얄궂은 공허만 모락모락 자라더군요.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이 반드시 나쁘다는 부정의 시선보다 확실한 독자층을 휘어 잡는
안전판을 거머쥔, 쉽게 갈 길을 골라 잡은 왜곡의 결과가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아쉬워요. 무엇인가를 잔뜩 기대하고 열었건만 텅빈바람만 잔뜩 훅하고 불어
오는 느낌처럼 말이지요..ㅎㅎㅎ
여튼 평소 한사람님의 문체와는 다름음 행간에서 엿보고 갑니다.

cyrus 2011-05-0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에 러셀의 신간인줄 알고 바로 동네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고 있는 중인데,,
저 역시 이 책이 러셀의 글을 발췌한 책이라서 약간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발췌한 내용중에도 참 좋은 글들도
있었지만,, 발췌한 문장으로 인해서 읽는 독자들마다 서로 다른 해석과 공감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기도 했어요, 간혹 어떤 문장은 앞뒤 내용이 없으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었구요,, 역시 텍스트는
전체를 읽어보는 것도 좋은거 같아요. ^^

가연 2011-05-05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책이 십자포화를 맞고 침몰해가는구먼요ㅜㅠ 음... 왠지 출판사에서도 이런 리뷰를 볼 것 같아서.. 다음엔 이 부분을 좀 고쳐주세요, 라고 일부러 페이지까지 콕 집어 언급까지 한 제가 할 말은 아닐 것 같지만 쓰신 분들이 대개 부정적 평들이 많아서 묘한 미소가 자꾸만 입가에 걸리네요. 뭐랄까, 나라도 좋게 써줄걸 하는 죄책감?ㅠㅠㅠ그러나 죄책감은 죄책감이고 확실히 평가단으로서 서평자와는 달라야 한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뭐, 아직 남은 분들이 많으실테니.. 그 분들의 생각이 어떨지도 궁금하네요. 하지만.. 평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언어의 감옥에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권혁태 옮김 / 돌베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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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노예의 초상

지난 며칠간, 어느 재일 지식인이 한 평생 갇혀있던 언어의 ‘감옥’안에서 나는 독서라는 ‘해방’감을 한껏 맛보았다. 누군가의 처절한 감옥이 감옥안을 투시하는 사람에게는 극도의 자유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이 가진 관전효과일까. 나처럼 책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갇히는 사람들에겐 커다란 행운일 것이다. 읽는 내내 내가 감당한 쾌감은 절대 반론할 수 없는 논리의 짜릿함이었고 나는 이처럼 치밀한 논리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눈물날만큼 위대해보였다. 책을 덮고 서서히 차오르던 건 켜켜이 쌓여진 이성으로 허물어지던 감동이었다. 이 정도의 사유가 보장만 된다면 기꺼이 어떠한 감옥에라도 갇히고 싶을 정도였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얼마나 생각했으면, 얼마나 고민했으면 이런 결론이 나올까 싶어 짐짓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내가 끄덕인 건 결론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단계의 완벽함이었다. 매순간 논리의 파편들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구조와 본질을 띤 미세한 칼날의 흔적과 같았다. 이 책은 반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낱낱이 증명하는 무혈투쟁, 비폭력의 사설집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서 난민으로 살아가야 했던 고독한 학자의 평론, 아름다운 저항문학이다.

서경식.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한국에 제일 먼저 소개된『나의 서양미술 순례』(2002, 창비) 였던 듯하다. 서슬퍼런 군사정권하에서 서승, 서준식이라는 두 양심수 형제를 둔 지식인 동생.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건 불행했던 가족사를 지니고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작가 정도로 생각했다. 미술작품으로 이루어진 에세이였고 주로 절망의 기호들을 내면으로 승화하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덮고 나서 제일먼저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다시 찾아보았다. 에필로그에 이런 글이 있다.

“지나간 20년의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다.”

지난 20년은 형들이 체포되어 출옥하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책에는 그의 가족사가 사실위주의 객관적인 신문기사처럼 서술되어 있지만 내 기억으로 형님들의 억울한 투옥과 이어지는 부모님의 사망은 거의 서교수의 사유가 시작되는 뼛속 상처의 시원이었던 것으로 느꼈었다. 알려졌듯이 그의 형님들은 아직 생존해 계시고 평화,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 형제보다 인생을 많이 살진 않았지만 서교수 입장에서 본다면 차라리 가족이 아닌 내가 긴 세월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도 해본다. 이 번 책의 제목엔 ‘감옥’이라는 단어가 그의 인생을 표상하는 듯 세월의 무게가 예사롭지 않았다. 자연 나는 형님들이 실제 머물렀던 서울의 '감옥'도 중첩되어 퍼뜩 (서교수 입장에서)미켈란젤로의 조각상, 노예시리즈를 떠올렸다. 서교수가 <빈사의 노예 L’Esclave Mourant>(1513~15) 같은 작품을 보고 형님들을 연상했다면 나는 같은 이미지에서 서교수의 초상을 발견하게 된다. 돌 안에 갇혀있는 듯이 보이는 죽어가는 노예가 꼭 아직도 식민지에서 해방되지 못한 재일조선인으로 보였달까. 사실 직접적인 이미지는 '죽어간다'보다 '잠들어 있다'에 가깝지만  잠든 채로 그 상황을 유지할수 밖에 없어 어떠한 외부적 조건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게 느껴진다는 점이 노예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노예라 칭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형상이다. 공교롭게도 미켈란젤로는 ‘나의 조각은 돌 속에 이미 들어있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돌로 노예를 조각하는 미켈란젤로는 해방감을 느꼈겠지만 그 해방감으로 탄생한 노예는 어떨까. 노예가 처절하고 고통받을수록 절대 노예를 벗어나지 못할수록 관람자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터이다. 잔인한 현실이다. 돌 속에서조차 돌로서 돌만큼 해방되지 못한 서교수의 상처가 미안하게도 아름다워 보였던건 해방되고자 하는 염원의 에너지 때문이었을까. 돌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그 염원이 지독히도 숭고해 그것은 흡사 영혼의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필사의 몸부림이 자신이 표현하는 가장 매혹적인 자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필, 이 책의 부제는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이다. 꼭 평면적인 초상畵의 영혼이 가두어 두기엔 너무 생생하고 절절하여 스스로 입체적인 인물상으로 주형된 느낌이다. 그러니 사람이 비춰진 초상(肖像)이 아니라 사람을 초월한 초상(超像)이다. 하지만 우린 이미 오래전에 재일조선인이라는 개념을 초상(初喪)치른 것이라면?  아마도 우리가 초상(初喪)을 치루었기에 그의 초상(肖像)은 초상(超像)으로 더욱 완벽해진 것이리라. 우리는 이제라도 그의 초상을 가만히 앉아서 고정된 자세로 관조할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한 바퀴 돌아 구석구석 관찰해야 하지 않을까. 그를 옥죄고 한평생 가두어버린 쇠사슬의 차가움을 온도로 체험하고 그 표면의 단단함을 직접 어루만져 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빈사의 노예 , 1513-15>                                 <반항하는 노예, 1513>


그런데 내게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신분이 생소했다. 아니 서경식 교수와 같은 분을 언급할 때 거의 쓰지 않는 단어에 가까웠다. 어렸을 땐 재일 ‘동포’라는 단어를 자주 접했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재일, 재미 ‘교포’라는 단어에 더 익숙해진 듯하다. 언어라는 게 세월에 따라 시대상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동포’는 70년대에 그리운 식민지 시대 형제 자매를 연상케 하고 ‘교포’는 어쩐지 80년대 이민간 이웃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생각해보았는데 요즘은 방송에서도 ‘교포’라는 민족적 뉘앙스보다는 ‘해외파’라는 선진국 꼬리표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아이돌 그룹이 생기면서 더 심해졌다) 교포 2세니 3세니 하는 세대구분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같은 신분이지만 ‘교포’라고 하면 타국에서 고생하며 자수성가해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같고 ‘해외파’라 부르고 나면 어쩐지 유학이나 오랜 외국생활로 사고가 세련된 이미지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여기에 나이와 세대의 개념이 추가되면 교포는 우리가 자주 듣는 유명연예인과 몰래 결혼한 그 재미, 재일 ‘교포’로서 성공한 사업가나 국제 변호사 정도의 재력가를 연상하게 된다. 즉, ‘교포’는 더 이상 젊은 세대가 아닌 것이다. 정리하면 ‘동포’는 할아버지 세대, ‘교포’는 아버지 세대, 그리고 자식은 ‘해외파’로 이어지는 기분이다. ‘재일조선인’ 이라는 신분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시대와 사회적 변화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좋을 대로 우리 편한 대로 그들을 언어의 감옥에 가두어 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서교수가 고수, 주장하는 재일조선인의 ‘조선’은 지금의 나로선 너무 먼 시대이자 많이도 당황스런 언어이다. 솔직히 일제시대로 돌아간 느낌,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니다. 독일가서 독일인과 대화할 때 굳이 나치시대를 화제로 삼아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대화의 매너가 아니듯 알고는 있지만 부러 꺼내어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서로가 주입할 필요가 없는,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교포한분이 줄곧 ‘조선’의 이야기만 들려주는 기분이랄까. 서교수는 이렇듯 한국땅에 살고 있는 나같은 한국인과 일본땅에 살고 있는 자신같은 한국인과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을 회피하지 말고 신랄하게 바로볼 것을 끈질기에 호소한다. 바로 서교수는 아직 재일조선인 2세로서 자신이 태어난 1951년에 별수 없이 재일조선인이 되어버린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머물러 계신 분이다. 세월은 60년이 흘렀고 식민지라는 치욕과 불행도 추억이나 망각의 선로를 향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시, 착각에 불과했다고 강조한다. 뒤돌아보지 않고 너무 많이 달려왔기에 그와의 거리는 꼭 세월과 비례했지만 재일조선인이라는 섬에 고립된 그는 몇 십년 째 외치고 있었다. 누가 들어주지 않거나 듣고서 고개를 돌렸다 해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그나마 글재라도 있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말하고 써야한다고. 그것이 재일조선인으로서 자신이 해야할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고.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 자신이 걸어온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묵묵히 이행할뿐이라고.


한 점 부끄럼 없는 언어

이 책은 서교수가 일본에서 나고 자라 ‘모어’와 ‘모국어’가 일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당해야 했던 언어로부터의 ‘폭력’과 그로인해 갇혀있던 언어의 ‘감옥’에 대해 제일먼저 말하고 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번역하는 일본의 해석에 숨은 식민주의적 권력관계를 예로 들며 독자로 하여금 민족감정을 자극한다. 윤동주 시인의 저항정신을 높이 사는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실존과 사랑을 주장하며 그들이 교과서에까지 <서시> 전문을 싣는 의도를 알고 있느냐 질문한다. 서시를 번역된 시로 읽으며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자는 것을 재일조선인의 자의식으로 여길만큼 윤동주를 읽었다는 서교수는 최초번역이 훗날 (일본의 입맛에 맞게)다르게 번역된 사실에 고통스러워 했다. 감쪽같이 묻혀지는 진실을 확인한 그에게 시 한구절의 의도된 오역은 식민지 종주국으로서의 계속되는 만행이었다. 그것은 ‘일본어를 모어로 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밖에 없는 재일조선인의 아픔을 상징하는 단서이며 곧 ‘모어의 폭력’이라 말한다. 모어로부터 생기는 의심과 위화감이 곧 감옥인 것이다.

한때 나는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의 식민지였다면 지금처럼 영어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물론, 우리 언어를 고수하려는 불굴의 정신으로 영어가 기대만큼 지배어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내 아버진 중학교시절 배운 일본어 덕에 훗날 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직업에 종사하셨다. 부모님 모두 부산에서 오래 사셨는데 어린 시절엔 일상 대화속에 태반이 일본단어(벤또, 코프, 오까네, 라이방등등)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사용한 단어가 사투리가 아니라 일본어를 남도식으로 발음한 단어였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된 단어도(예를 들면 오봉-쟁반) 있다. 지금도 건축이나 인테리어, 영화나 광고, 출판 편집 현장에는 작업용어로 영어가 변형된 일본단어가 습관처럼 쓰이고 있고 무의식적인 식민지 잔재는 거의 내 세대까지 이어져 온 것 같다. 만약 이 모든 단어들이 오리지날 영어였다면 하는 (비굴한)생각, 나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재일교포보다는 재미교포가 더 부러웠고 (외국어를 습득한 교포로서)일본어에 대한 경쟁력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아왔다. 만약 미국의 식민지가 되어 서교수 가족이 재미조선인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부질없지만 세계어를 모어로 두었기에 모어가 일본어인 아픔에는 미치지 못하지 않았을까. 이런 단순 도식적인 발상에 머물렀던 나는 그가 예로든 세 명의 유대계 지식인의 불행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모어인 독일어로 시를 썼던 파울 첼란 ,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던 장 아메리와 프리모 레비는 모두 언어의 균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궁극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대표적 언어감옥 수감자였다. 모어가 어떤 나라의 언어이건 자신의 모어가 자신들을 지배한 옛 침략자의 언어였고 원래 모어였어야 할 언어를 태어나기 전부터 박탈당했다는 의식은 특히나 글이 자신의 대리인인 작가들에게 뼛속 응어리와도 같은 치명적인 폭력이었다. 모어를 완벽하고도 아름답게 구사할 줄 안다는 재능이 자신에게 형벌이 되는 사람들이다. 서교수는 ‘모어의 권리’가 ‘모국어의 권리’와 양립하는 새로운 다언어, 다문화 공동체와 같은 창의적인 언어개방 형태를 이상적으로 제시했는데 나같이 국어 내셔널리즘(국어사용=국민)에 익숙한 독자에겐 일종의 충격에 가까웠다. 올바른 국어사용을 국민교육의 절대가치 정도로 교육받아온 모국어 경력을 떠올리면 상당히 자유로운 발상이었다. 서교수가 제시하지 않았으면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문제였다, 고 해야 맞다. 서교수에게 자신의 의식을 형성한 일본어가 가장 의식적인 벽이 되었던 지난 세월동안 우리가 한 것은 당신들도 한국인이라면 한국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국민 자격검증 같은 일종의 무언의 폭압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동안 단일 민족, 단일 언어, 같은 이념이라는 국민적 감옥에 오랜 세월 갇혀 있었던 것은 우리가 아닐까.

또 하나 외양적으로 보면 재일조선인은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상황과는 멀리 떨어져있어 우리가 느끼는 안보, 평화의 실질적 부담감에서 자유로와 보인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도 덜할 것 같다. 그런데 재일조선인의 뇌리에 내면화된 분단이란 국토의 분할이라는 형식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파고 들어가 보면 그들의 자기해방에는 반드시 본국의 통일과 민주화라는 과제가 하나의 몸뚱아리처럼 결속되어 있다. 재일조선인은 이미 ‘재일’이라는 외국인 신분과 ‘조선’이라는 전쟁이전 국적이라는 두 가지 불이익을 타고난 존재이다. 서교수의 형님들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 주모자로 몰려 20여년 간 옥살이를 했다. 언뜻보면 서교수 가족이 어쩌다가 특별한 사건에 연루된 예외적 상황으로 보이지만 당시 재일조선인은 옥살이만 하지 않았을 뿐 대부분 일본의 동화압력에 따른 일본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의 군사정권에는 불복종한 이중의 저항자들이었다. 서교수 가족의 불행은 1965년 한일수교 후 한국정부가 재일조선인을 한국 국민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한 후에 일어났다. 서교수는 이때 ‘조선적’과 ‘한국적’중 하나를 택해야 했고 한국을 오가기 위해서는 ‘한국적’을 얻어야 왕래가 가능했다. 한국전쟁 이전에 일본으로 이주한 서교수 가족에게는 북한에 가족을 둔 지인들도 있었고 다행히 북한으로 귀환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당시 ‘조선적’이라 함은 조선의 북 또는 남에 대한 국가적 귀속이 아니라 조선민족 전체에 대한 민족적 귀속을 의미했다. 그런데 1965년 한일조약을 계기로 재일조선인은 강제로 분단을 맞은 것이고 ‘한국적’으로 편입하지 못한 나머지 ‘조선족’은 사실상의 난민으로 방치된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나는 조선의 스트라이커’라고 말했던 정대세 선수의 부모님도 당시 ‘조선족’에서 ‘한국적’으로 바꾼 경우이며 그래서 정대세 선수의 국적은 ‘대한민국’일 수 있었던 것이다. 서교수의 작은 아버지는 (식민지 시대)일본국적 소유자였지만 해방 후 다시 일본으로 역귀환하려 했을 때 입국을 거부당하고 수용소로 이송된 후 한국으로 강제송환 당했다. 연합군은 일본의 공산화를 우려해 조선인의 이동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아버지는 전쟁 후 목숨을 걸고 일본에 밀입국에 오랜 세월 불법체류자인, 무국적자로 살다가 결국 자살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사회에 살면서 실은 조국의 분단상황으로 인한 실질적 피해는 더욱 극명하게 미치는 경우였다. 전쟁과 분리되어 있었던 이들에게 국적 선택은 강요된 억압이자 이차적인 민족 분열이었다. 그러니까 일본사회에선 (귀화하지 않으면)재일한국인이라 멸시 당하고 한국사회로부터는 (국민 자격검증에 의해)무언의 차별을 당하고 (원래 하나의 조선이었던)북한과는 생이별을 하게 된 경우인 것이다. 오늘날 땅따먹기처럼 시행된 한국의 군사분계선이 내게 가지는 의미는 오로지 전쟁발발의 최후 평화선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분단이 가져온 재일사회의 파장은 실은 분단에 놓인 한국사회가 감당하는 표면적 고통보다 더 오래된 암울한 상처였다.

그가 자신들의 환부를 예로 들어 논리를 완성해 나가는 모습은 시종일관 엄숙하고 차분하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로서의 언어경험을 섬세하게 서술해 나가는 어떤 증언의 현장에 동참한 느낌이랄까. 증인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덕택에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지만 증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 단절의 세상에 절망하며 자살을 선택한 프리모 레비의 고통은 어쩐지 서교수가 감당하는 언어 감옥살이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먹먹한 기분이 든다. 강제 수용자 생존자로서 증언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은 증언을 들어주고 증언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일지 모른다는 그의 증언이 뼈아프게 들리는 것은 바로 서교수의 자기 生의 증언이 재일조선인의 지겹고도 진부한 피해의식이라 여길지 모르는 한국청취자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어로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그가, 그것이 모국어를 습득하는 자신의 목표이자 소원이라는 그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이미 한국어로 문학작품을 집필하지 않아도 모국어인 한국어를 모어가 한국어인 우리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지.


감옥에서 탈출한 진실

언어가 ‘의식’의 감옥이었다면 식민지는 ‘신분’의 감옥이었다. 언어의 감옥에서 심리적 분열증이 발생했다면 식민지의 감옥에서는 물리적 희생이 파생된 것이었다. 서교수는 한일간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양국간의 화해도 연출된 폭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화해를 하려면 먼저 가해자와 피해자가 마주보아야 하는데 일본은 ‘이해하지 않으려는’ 다수자를 변호하면서 소수자에게만 ‘이해를 받기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사죄와 보상을 오랜 세월 묵살해온 일본은 늘상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인 책임은 없으므로 자신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다. 침략전쟁이라는 의미를 불문율로 부치고 공동체를 위한 자기희생이라는 자기만족적 미학에 빠져 강렬한 자기애를 실현하고 있는 일본지식인, 리버럴파를 자국의 국가범죄와 공범관계를 맺은 이기적 주체라 비난한다. 논리적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는 답으로 구체적인 답을 회피하고 책임소재 문제에는 불가피했던 당시 정황을 물고 늘어지며 미국과 책임을 나누려는 비겁한 태도를 보이거나 혹은 미국등의 열강에 책임을 지우려는 파렴치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덕지게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측을 오히려 화해를 방해하는 평화반대주의자로 몰아 세운다. 서교수가 보기에 문제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불신에 있다는 박유하의 가짜 화해론이야말로 일본 리버럴파가 대환영하는 화해 컨텐츠라는 것이다. 서교수는 언뜻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일본 학자들의 논리를 샅샅이 해체하고 분석하여 문장단위로 깔끔하게 반박하는 논조를 펼치셨다. 적확한 근거와 심리적 배경, 의미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매 순간 일본의 허점과 정곡을 찔렀다. 서교수의 냉철하고도 예리한 비판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들이고 당장이라도 좇아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그중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던 사유의 결정은 베트남 국민에 대한 죄책감을 말하는 부분이었다. 서교수는 베트남전에 용병으로 참전했던 한국군의 잔인성을 잊지 않았다. 우리에겐 늘 희생의 대명사로 각인된 베트남 파병(한국)군인이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교수는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과 같은 세대로서 자신이 베트남 파병에 어떤 관여도 하지 않았고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한국에 살지도 않았지만 한국적을 가진 재일조선인 2세로서 베트남 국민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을 재차 부연했다. 베트남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생각같은 건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였기에 멍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서교수는 (베트남에 사죄하지 않는) 한국정부가 발행한 여권으로 한국민이 행하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한국적 보유자이므로 죄의 여부와 상관없이 책임은 존재한다는 논리였다. 서교수가 책임을 느끼는 건 아마도 ‘사죄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상처에서 기인한 본연의 자기반성이었을 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후 일본인들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죄는 없지만 일본인으로서 집단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그러한 책임을 한번도 느껴보지도 가져보지도 못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서교수의 통찰은 한국민이 하지도 않는 부분에까지 뻗어 있었다. 어찌보면 ‘사죄하지 않는 심리’가 ‘사죄 안 받아도 상관없는’ 심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결국 우리는 일본 리버럴파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타국에는 우리의 잘못을 사죄하지 않으면서 일본에는 끝까지 사죄를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서교수는 말한다. 일본 리버럴파는 1990년대 이후 이어진 증언의 시대를 묵살하였고 1989년 히로히토 천황의 죽음이후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국가적 사죄와 보상을 통해 한국과 창조적인 관계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매번 유보, 실기하여 사상적으로 퇴폐에 이르렀다고. 일본의 지식인들은 식민지 극복보다는 보다 글로벌한 동아시아의 새로운 체제를 위해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논리로 과거를 봉인한 채 화해만을 기념하려 든다고. 서교수는 이러한 국민주의적 내셔널리즘에 빠진 그들이 국가로부터 은혜를 받아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 정작 국민이나 민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으라고 발언하는 것과 같다며 이 역시 이념주입의 폭력이라 주장한다. 마치 사죄만을 요구하는 상대를 과거에 묶여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옹졸한 국민으로 치부하며 지금부터라도 잘 지내보자 하는 것과 같다고. 그런데 가만 보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나간 일은 전세대의 일이고 우리 세대는 더 중요한 세계화를 향해야 한다는 논리는 일본 리버럴파가 아닌 한국의 보수, 진보 모두에 해당되는 암묵적 합의 아니었을까. 리버럴파에 부합하여 일본에서 열렬히 환영받았다는 박유하는 바로 화해없는 화해극의 시나리오와 주연, 연출까지 맡은 한국의 젊은 세대를 표상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사죄도 없었으니 용서 안해도 된다는 심리는 서로가 편한 구석이 있다. 서교수가 염려한 것은 궁극에 서로 아무일도 없었던 것으로 여기자는 국익우선주의는 아닐까 싶다. 서교수는 ‘역사적인 유래가 저항의 소중한 무기’라고 말한다. 식민지와 세계전쟁이라는 역사가 낳은 재일조선인은 특별히 반항적이라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분단을 극복하는 것 자체가 저항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장에 실린 서교수와의 대담내용은 다소 이상적으로 느껴져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통일이 분단과 식민주의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결론과 통일의 방법, 형태의 시나리오는 어쩌면 남일처럼 생각되는 너무나 먼 비현실의 이상에 가까웠다. 하지만 ‘식민주의와 냉전체제를 거치면서 분단이 양산한 디아스포라’라는 존재들을 모두 다 포함한 온전한 통일이 가능만 하다면 그리고 그 실현주체가 한국민이라고 한다면 분명 인류 역사적인 사건임은 틀림없다. ‘인류역사가 나아가는 과정의 한 단계’로서 다원주의를 채용하여 다중국적, 참정권을 인정하는 나라. 동아시아를 향해 한반도를 개방하는 해방의 통일.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을 집필한 서교수의 입장에서는 가장 완성된 결론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다.

3.11 일본 지진후 나는 과거 역사적 감정보다는 자발적으로 인류애적인 온정을 발휘하는 네티즌과 그에 호들갑을 떨며 기부액수를 이슈화하는 방송 언론이 탐탁치 않았다. 한창 기부가 유행처럼 번져갈 때 행여 (불행에 빠진)일본에 대한 비난을 했다간 몰매라도 맞을 기세였다. 우리가 분명 인류애를 발휘해 일본의 고통을 모른척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발전이었지만 과열된 여론과 인류애 호소에의 무조건식 확산은 또 언제든 반대의 이슈만 있으면 마찬가지의 비난여론으로 뒤집힐 성질의 것이라는 생각이 많아서였다. 연이어 보도된 독도문제만 보아도 여론은 지금의 우호적 현상에 '찬물' 을 끼얹는 분위기라 일관했다. 내 생각에 일본은 원래부터 '찬물'이었다. 문제는 찬물의 온도를 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우리네 변덕 아니었을까. 일본은 한국의 기부라는 뜨거운 주관앞에서도 줄곧 찬물다운 객관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언제나 배울만한(?)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엊그제 기사를 보니 계속되는 여진과 원전사태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본은 벌써 피해지역의 발전계획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이다. 복구, 재생, 부흥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미래발전계획이 당연히 일본 자국의 몫이듯이 독도를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도 자신들의 책임이라 여길 터이다 . 일본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들은 매사에 매순간 상대에게 습관적으로 실례했고 미안하다 노래를 한다. 병적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악으로 여기며 어릴 때부터 피해주지 않는 인간형을 학습하게 된다. 나는 이것이 전국의 나무 잘라 종이 만드는 회사가 자연환경은 보호해야 한다는 광고를 몇 십년 반복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한다. 아시아 지역의 민족에게 그 누구보다도 큰 피해를 준 일본이 일상에서는 절대 피해주지 않는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대략 이해가 가는 생존전략이라는 생각이다. 일본에 가면 매번 뜻밖에도 친절하고 이렇게도 매너좋은 사람들, 우리보다 조용조용하고 길가에는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는 이토록 깨끗한 나라가, 모르는 사람에게도 밥 먹듯이 사과하는 이 나라의 국민이 과연?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지난 시절 일본을 드나들며 나는 (한국사람만 아니라면)배려하는 일본, 깨끗한 일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지진만 아니라면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사는 건 자유고 선택은 개인의 문제이다.  하지만 주거환경으로서 일본을 선택하려 했던 한국인인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과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른다는 것,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무엇을 했으며 그것은 어떤 의미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모르는척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는 모르는 일로 하고 싶기에 자신들의 다음 세대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사실과 다르게 가르쳐 주고 있기까지 하다. 이 책은 그들이 왜 우리를 모른 척 하는지, 왜 모르는 것으로 하고 싶은지, 왜 모르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 소상히 알려준다. 그런 것들이 일본을 택하는데 상관이 없었던(상관하고 싶지 않았던) 내 자신을 가만히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이번 독서로 '논리적 사유'가 얼마나 아름다운 능력인지 알게 되었다. 어떤 주장을 내세우고 그것에 대한 반론에 논리적으로 근거를 제시하고 상대측을 설득하고자 하는 것은 상대와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과 더 치열한 싸움은 아닐까. 상대 논리의 헛점을 공격하고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빈틈없는 자기논리의 정당화, 완성화를 통해 폭력이 아닌 평화를 소원하는 방법이 아닐까. 자기주장을 힘이 아닌 논리로 전파하는 건 꼭 일본이 우리에게 행사한 폭력의 역사에 보란듯이 항거하는 윤리적인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가해자를 최대한 배려하는 일본지식인으로서의 최선일 것이다. 서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거나 간과되어도 평화적인 토론과 설득의 기본정신만은 잃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성찰을 멈추지 않을 듯하다. 시 한줄, 기사 한 단락, 논문 한 구절도 폭력을 용인하지 않은 그의 '이성'과 오독과 반론을 용기있게 제시하는 그의 '감성'이 새삼 뭉클해진다. 한 가지 잊지말고 새겨야 할 것은 그 모든 이성과 감성은 어느 재일조선인의 감옥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고 왔다 갔다 다만 모두이거나 또는 아무도 아닌 경계의 섬에 갇혀있던 시간의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이제 차디찬 쇠사슬의 감옥을 뚫고 출옥한 진실앞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열쇠는 우리 몫이다. 기존의 감옥에 갇힐 것인지 새로운 문을 열고 세상을 볼 것인지 그것은 우리의 선택인 듯하다. 다시금 두 손에 쥔 열쇠가 뜨겁다. 그가 차가운 쇳덩어리만 건네준 것은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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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4-30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쪽으로 옮기고 첫 서평이네요. 만족하시나 봅니다.
저는 이제 겨우 조금 보기 시작했어요.
두권 다 만화책이라 금방 또는 부담없이 읽을 것 같아 여유 부리고 있습니다.
사실 만화책 별로라 마음이 안 가는 것도 쫌 있구요.
한권은 그래도 볼만은 한데, 한권은 어린아이 학습만화 같아서 심드렁합니다.ㅋ
활자도 작고.ㅜ
비 오고, 황사낀 주말이지만 잘 지내시길...!^^

가연 2011-05-0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한권씩은 꼭 별로인 책이 온다니 걱정되는데요ㅠ 앞으로도 그 러셀의 책과 비슷한 책으로 머리를 싸매야 된다는 건가요!! 그나저나 이 '언어의 감옥에서'는 논리가 아름답다, 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에 덕분에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지더군요. 저는 서경식 교수를 한겨레에서 연재하는 칼럼에서 알게되어서..

June* 2011-05-0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 한사람님이 인문을 읽고 서평을 내놓는 심정만큼이나
 한사람님의 서평을 읽고 싶은데 .. . 관심분야도 아니고 어려운 것 투성이라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괴로워요 엉엉.
 
 
만주의 아이들 -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 이야기 문학동네 청소년 8
박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자꾸, 미안한 이야기

  소중한 책을 만났다. 미처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그동안 나만 몰랐던 사실이라는 것이 죄스러워지는 이야기였다. 책을 집어 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심지어 만주의 아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이겠지 싶었다. 나는 이 책을 아이 친구들을 통해 다른 학부모 몇 명에게 전달했다. 마치 혼자 알고 있기에 벅찬 비밀이라도 되는 듯 지인들로부터 독서에 동참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부채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나눈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케 하는 독서였다. 마침 이틀 전 봄비로 집 앞의 벚꽃들이 눈송이 마냥 아스팔트에 소리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꽃이 지는 것이 어쩐지 내 잘못처럼 느껴져 나는 온종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만이 화사한 봄을 만끽하고 더 푸르른 오월을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오월이 되어도 아직 영하의 날씨라는 그곳에, 여전히 내복을 입는다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마음이 영 불편했다. 이제 그들의 아픔을 하나 알게 되었다는 것 말고는 우린 너무 무정한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한국으로 떠나온 조선족 부모를 둔 만주 아이들에 관한 생생한 현장보고서이다. 하지만 현장보고에만 그치지 않고 작가의 감회와 취재 후 심상이 곁들여져 먼 곳에서 날아든 편지의 사연들을 읽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소중한건 아이들이 사는 곳에 작가가 직접 발품을 팔아 방문하여 그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얼굴마주하고 눈 마주쳐가며 (직접)사진도 찍고 좇아가 귀한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온 시간의 기록, 대화의 결과물인 것이다. 르포형식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기자가 아니라)시인인 덕에 이야기는 객관을 너머 고향의 향내나는 서정성을 지녔다. 마치 떠나온 지 오래되는 먼 고향, 그리운 그곳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처럼 들렸달까. 거리상으로도 멀고 중국이 개방되었다고는 하나 작가가 원하는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매번 취재를 허락받기가 쉬운 여정은 아니었을 터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행, 그야말로 사서 하는 몸과 마음의 고생길이었을 것이 훤하다. 우선 그 정성스런 수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데 한 명의 아이로부터 시작된 우연한 만남이 왜 작가에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필사의 취재거리가 되었을까. 같은 민족으로서 아이의 눈에 고인 눈물이 단순히 딱해 보여서는 아닐 것이다. 평소 소외된 약자에게 마음의 시선을 빼앗겨 버린 작가의 품성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그 시선이 우리네 사는 곳이 아닌 저 먼 만주땅을 향하신 것도 낯설게 느껴졌다. 아마도 혼자 진실을 알고 모른 척하기엔 같은 민족된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 여기셨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혼자 세상을 향한 ‘고발’이 아닌 서로 같이 나누는 ‘고민’이길 바라는 취지가 많다고 보고 싶다. 그래서인지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아이들 표정이 담긴 사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가만 보면 색상만 컬러이지 우리의 6,70년대 사진을 보는 느낌이었다. 흡사 북한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있었지만 북한사진에서 감지되는 어떤 경계심의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그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에 대한 호감과 반감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또 우리와 다른 게 있었다면 아이들의 눈빛이었다. 가난하고 낙후된 시설이라고 모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흑백사진이라고 눈빛마저 슬프란 법은 없다. 그런데 아이들은 하나같이 미소짓고 있어도 기운은 없어보였다. 속으론 슬프지만 그래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힘에 부쳤던 것일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작가가 매일 비오는 날만 셔터를 누른 것은 아닐텐데 그곳은 햇빛마저 회색이었고 거리마저 푸르스름해 보였다. 작가는 왜 그곳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아이들의 눈물을 기어이 전하고 싶었을까. 혹시 그 눈물에서 우리가 지난 시절 지니고 있었던 무엇을 보았던 것은 아닐까.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잃어버려 애써 기억해야만 생각나는 더욱 애틋한 그것은 아니었을까.

  책을 덮고 처음으로 그들을 생각해보았다. 내게 있어 만주와 조선족은 그들과의 거리만큼이나 너무 멀었다. 한마디로 세상의 관심 밖의 이야기라고 해야 맞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작년에 故 박완서 작가의 <못가본 길이 아름답다>에 등장하는 연변 아줌마와의 에피소드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박완서 작가는 어느 날 식당에서 실수로 손님과 사장 모두에게 심한 모욕을 당했던 연변 아줌마가 식당 뒤켠에서 (가족으로 생각되는)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오열하는 뒷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지인들과 일본으로 여행을 가서도 연변사람으로 보이는 도우미를 만났는데 그녀는 한국에서 일하는 조선족과는 달리 무척이나 당당하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에 박완서 작가는 우리와 일본 연변 아줌마의 차이가 조선족의 심성, 자질등의 문제가 아닌 사람을 부리는 용인술의 차이라고 지적했다. 똑같이 타국에 와서 고생을 하는 외지인에게 우리쪽은 모멸감을 주었지만 저쪽은 자존심을 지켜주었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결국 노동의 질을 결정한다는 말씀이었다. 그 글을 읽고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던 것이 엊그제만 같다. 나 역시 조선족 근로자들은 중국인과 탈북자와 동일선상에 놓고 은근히 무시한 적은 없었던가. 대개 우리 현장에서 저임금의 노동자로 분류되는 그들에게 우리는 우리에게 하듯 정중히 응대한 적이 있었던가. 나만해도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조선족 아주머니의 음식 서빙에 맞같잖은 시선을 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는 자신하지 못하겠다. 대놓고 무시한 적은 없었지만 아마도 시선만은 일반 직원보다 아래를 향했던 것은 아닐까. 조선족은 한국에 돈벌러 들어와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근로자라는 생각, 그야말로 '싼 인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나는 해 본 적이 없었던 듯 하다.

  그리고 요즘 들어선 조선족 근로자들보다는 한국에 시집온 동남아 여성들의 인권문제가 더 사회적으로 부각되면서 그들은 사회문제에 있어서도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는 추세였다. 그런데 얼마 전 신문에서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신종 ‘다방촌’이 생겼다는 불쾌한 내용의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기사의 내용은 주로 조선족, 탈북녀등으로 구성된 여종업원을 이용하여 변태 영업을 하고 있는 다방들이 그 지역에 주력상권을 형성해 어엿한 하나의 스트리트를 조성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식당에서만 일하는 줄 알았전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더 나은(?) 일자리라도 찾은 것일까, 싶었다. 한국의 남성들이 커피나 차를 마시러 다방에 들른 척 했다가 결국 노래방, 술집, 여관등의 2차로 종업원을 데리고 나가는 방식. 티켓다방과 유사한 멀티형의 접대인데다가 말 잘 듣고 뒤탈 없는 조선족여성인 것이 고객에게 큰 장점인 영업이었다. 그들의 사연중에는 조선족 남편과 결혼해 세 살짜리 딸을 두고 온 조선족 아기 엄마도 있었다. 중국에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 달 30만원이 고작인데 그곳에선 열배인 300만원 이상을 벌고 있어 조선족 여성들에게 인기직종이라는 것. 그때만 해도 나는 순간적으로 이 지역의 주거환경에 대해서만 큰 실망을 하였고 이차적으로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같은 동네 아이가 있는 학부모였다면 나와 같은 순서로 걱정을 하였을 터이다. 종업원이라는 조선족 여성들조차 떠올리지 못했으니 당연히 그들의 자식까지 생각할 수준은 아니었다. 이 책은 바로 그 다방촌의 종업원인 조선족 여성들이 두고 온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그 기사와 이 책이 어딘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조선족 여성들이 그만큼 물불 안가리고 주택가 성매매현장에 까지 진출했다는 것은 이 책속의 아이들 엄마가  무엇에 우선가치를 두고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그 아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엄마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것이었고 그 결과는 모두 돌아오지 않거나 매정하게 돌아서 버린 모정이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모두 시퍼런 멍을 가슴에 새긴 채 어른이 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작가가 물론 잘잘못을 따지자고 그 먼 만주까지 다녀온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자꾸 무심코 스쳐 넘긴 신문기사와 함께 어쩐지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처음에 짠하게만 생각되었던 아이들에게 자꾸 미안해지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작가로부터의 감성에서 시작되어 상투적인 동정심을 넘어 알 수 없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미처, 몰랐던 이야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은 조선족에게만 해당되는 生의 시련은 아닐 것이다. 1992년 한·중 수교로 중국 일대에 ‘코리안 드림’ 열풍이 불면서 중국 조선족 다섯 명 중 한명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우리도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인식하고 ‘아메리칸 드림’에 미래를 걸었던 시기가 있다. 대략 10년 전부터 시작된 조기유학의 열풍으로 ‘기러기 아빠’라는 반강제 결손가정의 형태가 사회이슈로 떠오른 적도 있다. 생계 및 취업형 이민이나 유학등으로 완전가정의 형태가 잠시 유보되는 일은 우리같이 야망과 목표가 뚜렷한 개발도상국형 나라에선 익숙한 모습이다. 그런데 작가가 취재한 그들의 환부는 대략 원인은 비슷했을지 몰라도 그 결과만은 다른 양상이었다. 조선족의 코리안 드림이 초래한 것은 바로 자신들의 아이들을 버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 꿈의 시작이 아이들을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고 더 좋은 학교를 보내겠다는 의지였다는 것. 처음부터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아 보자고 떠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부모와 자식간의 끈끈한 유대를 자랑하는 그들인만큼 이 파장의 상처는 많이도 깊어보였다. 그리고 상처의 한 가운데에 아이들은 대책없이 노출되 있었다.

  그곳의 아이들은 한국으로 나간 엄마가 자신의 아빠와 이혼하고 한국남자와 결혼을 한 엄마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술로 지내는 아빠로부터 잦은 폭력에 노출되는 위험에 놓여 있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양쪽 부모 모두 돌아오지 않자 아이들 양육을 떠맡게 된 조부모가 학교를 등교시키는 풍경은 그래도 다정해보였다. 결국 이모나 고모등의 친척집을 전전긍긍하다가 그들마저 한국으로 가버려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의 학교 기숙사에서 사육과도 같은 소년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에게 불어 닥친 ‘한국바람’은 쓰나미와도 같은 가정의 폐허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너무도 쉽게 버려져 있었다. 같은 부모로서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식구들이랑 함께 살 때 우리 엄마, 무척 단단’ 했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이곳 식당에서 힘겹게 일하는 조선족 여성들이 떠올랐다. 뒤돌아 어깨를 떨며 오열하던 연변족 아주머니의 사연이 생각나 그들이 아이를 저버리고 이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찾겠다고 하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선 가족에게 봉사하며 어른에게 공손했던, 그렇게 단단하기만 했던 엄마가 ‘사상품성이 약한 나라’인 한국바람이 들어 드라마에 나오는 다정하기만 한 한국남자와 살겠다고 자신들을 팽개쳐 버렸으니 ‘한국은 절대 안심할 수 없는 나라’인 것이었다. 아니 미국이나 일본보다 무서운 나라가 한국이었다.

  이 책에는 대화중에 유난히도 ‘사상품성’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만큼 아이와 교사 모두가 사람의 ‘사상품성’을 중요시한다는 의미로 들려 새삼 ‘사상품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표면적으로 중국에선 정치, 사회, 법률, 윤리 과목을 ‘사상품성‘과목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법도 야물지 못하고 사람들도 허세로 가득한 한국이 ’사상품성‘이 약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나는 조선족 사회에서 지향하는 고유의 '가족윤리', '성윤리'가 약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내 생각은 아이들이 자신들과 부모를 말할 때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 따라하기‘ 병에 걸렸다는 자조적인 반성의 대화속에서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한류 드라마, 그곳에서 열광하는 우리의 드라마는 모두가 <대장금>과 같지는 않다. 그들이 드라마를 통해 본 한국은 여성이 보다 자유롭고 남성은 보다 근사하다. 주인공은 대부분 가정을 버리고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난다. 떠나지 않더라도 출생과 가정, 학력, 직업 모두가 내세울게 없었던 한 여인의 앞에 백마탄 왕자, 대재벌의 후계자가 꼭 한번은 나타난다. 신데렐라식의 러브스토리에 뻔한 결말일지라도 중국에 수출된 드라마는 백퍼센트 한국에서 대흥행을 한 작품에 한한다 할 것이다. 즉, 우리가 죽도록 열광했기에 그들에게도 열광적인 시청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들에게 그 결과는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가 이혼율 1위라는 굴욕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무엇을 수출한 것일까.

  묻지마 한국행을 강행한 학부모들, 차후에 아이들을 방치하는 학부모 때문에 졸지에 학업외의 생활까지 지도하게 된 현지 교사들은 말한다. 한국바람 때문에 가정은 파괴되었고 조선어는 쇠락했으며 덕분에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고. 한국에서는 아파트를 사두어야 가격이 오른다는 것을 배웠기에 조선족 사회에선 돈벌어 무조건 아파트부터 사고 본다고. 재물과 성욕에 미쳐 자녀를 등한 시 하는 것은 암보다 무서운 정신병이라고. 교사를 포함해 작가가 만나본 현지 어른들은 한국에 나가있는 어른들에게 대부분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남겨졌거나 돌아온 어른들은 하나같이 ‘한국에서는 온갖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중국으로 돌아오면 다들 주인이 되려하는 우두머리 병’을 고쳐야 한다고 쓴소리를 하셨다. 사실 한국에서는 고시원이나 쪽방, 혹은 식당에서 숙식을 하며 휴일도 없이 장시간 노동환경에 노출된 조선족 여성들, 자신은 안먹고 안입고 돈버는 기계처럼 고향으로 돈을 부치는 여성이 더 많을지 모른다. 한국에 왔다고 모두다 아이들을 버리거나 남자와 바람이 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무어라고 한국병에 물든 조선족 여성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병은 사실 조선족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바이러스 유포자는 우리들 자신이고 치명적인 병균으로 생성, 발전시킨 것도 모두 우리들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유포하고 싶은 것은 조선족 여성의 헛된 욕심과 무모한 이기심이 아니라 그들 아이들의 상처와 미래이다.

  이 책에서 가장 내 마음을 무겁게 하던 친구는 미혜와 정우였다. 아마도 내 아이와 꼭 같은 또래여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곧 아이들의 부모가 나와 같은 세대이고 내 부모가 그들과 동시대를 살아 나왔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그 말은 나와 다르지 않은 피를 가진 동년배 여성이 자기 속으로 낳은 새끼들이 바로 미혜와 정우라는 뜻이기도 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하는 계기가 된 미혜는 글로만 보아도 참 똑똑한 아이였고 사진이 유독 인상깊었던 정우는 그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작가는 3년 전 흑룡강성 해림의 하숙집에 머물면서 만났다는 미혜와 다시 재회를 하게 된다. 10년 만에 아빠를 만나 보았다는 미혜는 여전히 한국과 수교한 학교와 좋은 관계를 맺으며 한국의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만약 미혜가 수교한 학교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였다면 미혜는 딸아이의 귀한 친구가 될 뻔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으나 미혜의 부모님은 여전히 한국에서 돌아오지 않을 성 싶었고 언니도 타지로 떠난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돌봐주던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이모마저 이혼해 그토록 싫다는 하숙집을 알아보던 중이었던 것.  하숙집에 들어가기에 미혜의 나이는 이제 열두살이고 여자아이는 그때부터 생리적 변화가 시작된다. 나는 지금까지의 미혜의 인생도 가여웠지만 앞으로서의 성장이 더 가슴아팠다.

 “아저씨랑 정들었던 아파트 하숙집 아시죠? 그 아주마이가 한국에서 돌아와 함께 있슴다. 이모보다 더 잘해줌다.”

 


 

 

 

 

 

 


 '모든게 얄미웠슴다. 엄마 아빠도 저자신도 눈물도'    '매일매일 보고싶슴다. 그렇지만 굳세게 참을 자신 있슴다'
 


  어른스러워져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미혜가 작가와 통화하며 어른처럼 들려준 목소리였다. 결국 하숙집으로 들어가게 된 미혜는 이제 부모와 같이 살게 되는 희망같은 건 일찌감치 버린 듯 느껴졌다. 예전엔 ‘철이 없었지만’ 이참에 한국에 가면 아빠와 더 마음을 나누겠다는 미혜의 야무진 목소리가 나는 목이 메었다. 아직 어른이 아니어야 할 나이에 어른들로부터 떠밀려져 할 수 없이 어른된 마음을 훈련할 수 밖에 없었던 미혜에게 내가 어른인 것이 많이 부끄러웠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은 미혜의 프로필이 담긴 단정한 사진 한 장이었는데 슬픈 표정속에서도 눈매는 허투르지 않았고 꼭 다문 입술이 꽤 야무져 보였달까.(좌, 미혜) 무슨 책을 펼쳤는지 모르지만  반듯한 자세와 태도가 범생이의 그것과 같아 나쁜 쪽으로 빠질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사진으로만 보면 정우라는 남학생(우, 정우)은 너무 귀여워 한번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한국국적을 가진 조선족 여성이 운영한다는 복합건물 꼭대기 4층에 위치한 희망학원, 아이들 합숙소에서 만난 4학년 정우의 엄마는 장애인이고 아빠는 한국으로 떠났다. 내가 울컥했던 건 아빠가 매일매일 보고 싶지만 2012년까진 굳세게 참을 자신이 있다고 아빠가 그때까지는 돌아온다고 약속했다는 정우의 말이었다. 나는 자꾸 정우의 그 순진한 믿음이 눈치도 없이 서러워 지는 것이었다. 정우는 그 마음 그대로 군기 바짝든 신병처럼 부동자세로 미소를 지으며 작가의 카메라에 담겨졌다. 사연없이 사진만 보면 아이의 부모가 다 부러울 미소였다. 동그란 얼굴, 발그레한 볼과 맑디 맑은 그 눈빛에서 나도 작가가 언급한 아이의 가없는 순수함을 발견하고 말았다. 바로 이런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 때문에 작가는 시련과 아픔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싶었던 것일까. 부모를 그리워 하는 노래를 합창하며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아이들의 눈물을 가슴에 고이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벌써부터 정우의 아버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봐 저 맑은 정우의 눈에서 기이이 눈물이 떨어질까봐 가슴팍이 저려온다. 작가는 이러한 사연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 부모들에게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지만 과연 고단한 노동속에서 우리도 흥미롭지 않아 집어들지 않는 이 책을 자신들 이야기라고 애써 선택할 기회가 주어질까 싶었다. 그렇다고 사연을 접한 우리들이 조선족 여성들을 찾아가 실종 어린이 찾기 식으로 무언가를 실천해야 할 성질의 문제도 아니었다. 결국, 가슴으로 울었던 사연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었고 그것이 머리로 이어져야 하는 문제였다. 하루빨리 연변족 아줌마가 목표한 돈을 모아 가족들과 같이 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는 박완서 작가의 문장이 다시 어른거렸다. 이 글을 쓰는 내 문장에서도 미혜의 부모님과 정우의 아빠가 빨리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아이들의 노래 <아빠 곱니 엄마 곱니>의 한구절처럼 물컹하게 샘솟고 있었다.  


                         엄마야 아빠야 우리 우리 함께 살자   해도 있고 달도 있는 푸른 하늘집처럼


다시, 생각해야 할 이야기

  이 책은 내게 조선족과 아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할 의미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당장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들의 환부를 뒤늦게라도 글과 사진으로나마 확인하여 상처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 다시금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비로소 그들로부터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저만치 앞서 있어 전달하고 가르쳐 드려야 할 것이 한류속에 포장된 화려함과 허세는 아닐 것이다. 돈이면 능사인 세속의 논리는 아닐 것이다. 외려 우리 자신도 한국병으로 잃어버리고 놓쳐버린 가족간의 가치와 그의 바탕이 될 진실한 인간성일 터이다. 우리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우리 자신의 환부를 부러 알려줄 필요는 없었던 것일지 모른다. 이 책에는 조선족 100년의 이민사를 한눈에 꿰고 있는 어느 어르신의 뼈아픈 말씀이 마치 작가의 당부처럼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다. 1920년대부터 1992년 한중수교까지 그 역사속에는 일제침략과 광복, 한국전쟁과 중공군 철수등의 우리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뼈대가 되어 때로는 북한으로 때로는 남한으로 그들을 이동하게 한 것이다. 당장 우리네 일상과 삶에 상관이 없어 보이는 그들이었지만 실은 같은 민족으로서 걸어온 시간과 공간의 좌표가 달랐을 뿐 한국이라는 뿌리에서 시작된 처절한 생존의 시나리오엔 예외가 없었다. 뿌리가 같은 역사로 파생된 오늘과 내일에 똑같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다만 이주하지 않아도 되었던 우리의 경우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 불굴의 끈기로 이제는 꽤 주목받는 어엿한 나라가 된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십년을 돌아 보면 우리는 다른 나라가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하고 다른 나라가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도 해 내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라가 되었다. 작년에 개최된 G-20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역순으로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제 원전기술도 수출하고 남극에 기지는 물론 우주선도 쏘아 올리고 엑스포,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등 국제 스포츠 행사는 빠짐없이 유치한 세계에 몇 안되는 나라에 속한다. 인천국제공항은 매번 종합 서비스가  세계 1위를 달린다하며 초고층 빌딩이나 새로 짓는 다리 역시 규모면에선 언제나 세계적인 나라이다. 하다못해 청춘의 자살율, 이혼율까지 1위인 것을 보면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가 확실히 세계병, 일등병에 걸린 것은 맞다는 생각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아이돌 그룹의 한류가 드라마의 한류를 이어 전세계로 퍼져 나간다는 흥분된 보도는 역시 성과위주, 성적위주의 우리들 스스로를 위한 과대평가는 아니었을까. 숨가쁘게 앞만보고 고고씽한 결과로 많은 부분 짧은 시간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렇게 달려오는 동안 우리는 가난과 인권유린, 소수 및 약자의 목소리를 흘려듣고 놓치고 말았다. 우리는 상대가 져야만 우리가 이기는 게임, 남이 죽어야 내가 사는 경쟁에 익숙해지느라 상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것엔 어색하고 어려웠던 것이다. 모두 물리치고 1등이 되는 환희에 중독되어 2등이나 3등, 혹은 참여의 가치엔 비중을 두지 않게 된 것이다.

  먼 곳의 아이들로부터 내가 너무 거창한 한국의 일등병으로까지 확대하였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제 우리는 좀 솔직해지고 좀 더 아래를 곁을 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양적, 가시적인 성과에만 들떠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들을 아쉬워하지 않는 반 윤리적인 태도를 돌아보아야 할 듯하다. 우리는 실은 쓸데없고 엉뚱한 자랑을 수출하고 전파하고 있었던 것임을 깨우쳐야 할 듯하다. 책 한권 읽었다고 금방 한국병에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인이면서 주제넘게 피상적으로 한국병을 비판하고 반성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 같이 안다는 것, 알고 있다는 것,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언제라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애틋해지는 오늘이다. 그 안다는 것이 곧 ‘한숨을 내쉬고 그 다음에는 말과 눈물이 동시에 터지는 가슴병’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만주의 아이들에게 이 책을 만났다고 건낼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일지 모른다. 자신들은 ‘운복이 없는 세대 같’다는 서늘한 목소리에 아니라 화답하는 마음인지 모른다.

  중국내 소수민족으로서 조선족을 알지 못했다.(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이 얼마나 민족문화에 애착을 가지고 두만강과 압록강의 후예로서 조선의 피를 타고 났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지도 생각치 못했다. 적어도 우린 소수민족으로서의 정체성만큼은 그들의 의식을 존중해야 할 입장이다. 그러므로 우린 그들이 한탕주의와 자본의 논리에만 물들어 한국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에 뒷짐지고 구경하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의 상황과 그쪽의 사정을 잘알고 틈새에서 한몫 챙기려는 브로커들이 원망스럽다. '한국은 경제만 외치느라 상식을 잃어'버렸다는 어느 한국 기업인의 목소리가 유난히도 생생하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부모와 자식중 한쪽을 포기해야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조선족 어르신의 탄식을 못들은 체 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우리는 그들의 불행에 아주 우연한 또는 필연한 씨앗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이라도 그 씨앗에 무심코 물을 주고 어제처럼 햇빛을 비추는 우리의 무책임함에 고개를 숙여야 하지 않을까. 만주의 아이들이 한족의 아이들과 시작부터 경쟁에서 패배감을 느끼고 뒤처지는 것이 우리 아이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일까. 지난해 2010 뱅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우리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선수들을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에 태어난 G(Global)세대라 칭한다고 들었다. 강대국에 대한 열등감과 배타심이 없는 그들을 자신감과 함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대라 띄워놓고 우리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뉴스를 분명히 기억한다. 중국에서도 1980년 이후 태어난 신세대를 ‘바링허우’(80後)라 칭한다고 한다. 개인주의와 소비지향적인 성향의 이들 젊은이들이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각 분야에 대거 포진해 중화(中華)부흥이라는 중국인들의 염원을 실현시켜주길 고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동시대 같은 나라를 살고 있는 코리안 드림 베이비(?), 만주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이 아이들의 불행한 미래가 과연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내일과 아무런 역학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코리안 드림이 허무한 꿈으로만 종결되어 코리안 킬러로 성장하지 말란 법이 있는가. 혹시라도 우리를 원망하고 보복할 것이 두렵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행에 분명 우리가 기여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중국의 한족에 무시당하고 조상의 나라 한국에 상처받으며 성장할 만주의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 나만의 치기, 쓸데없는 관심이 아니었음 좋겠다. 모든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 알고 있음의 눈동자가 서로 우리 얼굴을 비추고 그렇다면 하는 다음의 손가락이 우리 가슴을 향해 있길 간절히 기대한다. '다정도 병인 양' 작가는 아는 것만이 힘이 되는 '병'을 우리와 함께 나누고 싶었을 터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린 오늘의 '병'으로 머리를 맞대어 내일의 치유책을 찾고자 했을 터 이다. 잠시 가슴은 시리고 눈가는 뜨거워졌지만 다시 머리는 서늘해져야 할 순간인 듯하다. 이 책은 바로 진실을 알고 난 후의 우리 심신을 새롭게 돌아보는 특별한 선물일 것이다. 아는 것만이 나머지 힘이 되는 독서의 오래된 교훈일 것이다. 우리 역시,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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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고래논술토론 2011-05-11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것이 힘이 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제발, 제발, 시작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사람 2011-05-11 16:44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덮고난 다음부터는 우리 한류의 수출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특히나 드라마는 같이 열광하고 감동받았으면서도 마약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어요. 그들이 현실과 구분할수 있는 판단력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피해사실을 안 이상 한류에 자랑스러워 해서는 안될것 같아요
책은 아무래도 속도가 느리고 일부에 국한되니, TV 시사프로에서 만주아이들을 조명해주었으면 합니다
 
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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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보았느냐

  생각해보니 내가 기억하는 생강의 맛은 ‘맵다’ 보다 ‘괴롭다’였다. 평소 매운 음식을 즐기는 나였지만 생강이 발산하는 특유의 향은 어쩐지 견디기 힘들었다. 양파보다는 아리고 마늘보다는 시리고 계피보다는 저린 香...꼭 알 수 없는 어떤 생물의 체취를 연상케 했달까. 그러니 생강차는 물론이고 일식을 먹을 때 곁들여 나오는 생강초절임이나 생강 센베이 과자 모두 부러 선택할 음식은 아니었다. 임신하여 한참 입덧으로 고생할 때 생강이 좋다는 말에 억지로 코를 막고 두어 번 생강차를 훌쩍 거려 보았지만 더 역겨워 크게 후회한 적도 있다. 손에 배이게 되는 잔향이 싫어 나는 육류와 생선요리에도 생강만은 양념에 넣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생강이라 해도 김치양념에 스며들어 다른 향이 더 앞서게 되는 음식정도였다. 음식에도 궁합이 있듯 그럭저럭 나와 생강은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일까. 주변에서 양파나 마늘, 계피가 좋다는 사람은 보았어도 생강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나 역시 웰빙음식으로 생강이 몸에 좋다는 정보는 익히 들어왔지만 그렇다고 굳이 생강으로 내 피를 ‘정화’하고 몸의 세포를 ‘살균’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생강>은 참 ‘좋은 소설’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재미나거나 감동적이거나 놀랍다는 느낌에 앞서 맛과는 달리 몸에 좋다는 생강처럼 결국은 좋은 소설이라는 막연한 감별을 내린 것이다. 또 하나 작가도 언급했듯이 생강처럼 ‘달고 쓰고 맵고 아린’ 맛이 우리네 인생의 맛이라고 한다면 나는 생강맛 하나 제대로 모르면서 여지껏 인생을 아는 체 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함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게 <생강>은, 맛은 힘들었지만 몸에는 좋을 것 같은 내가 몰랐던 인생의 맛 하나를 친절히 가르쳐준 소설이라 할까.

  인생의 맛을 하나 안다는 건 어떤 비밀을 알고 만다는 것인데 그 과정은 대개가 즐겁지가 않았던 듯하다. 어렸을 적 커피 자판기에 표시된 블랙커피가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다. 밀크커피와 설탕커피는 알 것 같았는데 블랙커피는 무슨 맛일까. ‘블랙’이라는 단어의 뜻을 몰랐을 땐 모르는 대로 알고 나선 아는 대로 그 맛과 향은 참 근사해보였다. 어느 날 동전 하나를 넣고 친구들과 호기심에 뽑아 마셔본 블랙커피, 도대체 왜 어른들은 이렇게 쓰고 독한 맛의 블랙이라는 커피를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어 나는 자판기가 분명 고장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평생 가도 다시 마시게 될 것 같지 않았던 블랙커피를 이제 하루라도 빼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돌이켜보니 그 후로 블랙커피의 참맛을 알게 되기까지 얼추 이십년이 흘렀지 싶다. 그 음식만이 가진 고유의 맛을 알고 좋아하게 된다는 건 결국 그동안 따끔한 세상의 맛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세상 속엔 세월이 있고 사람이 사건이 있었기에 맛이 더 깊어진 것은 아닐까. 이 소설도 그랬다. 세월은 무심했고 사람은 무정했고 사건은 무모해보였다. 페이지를 아무리 넘겨보아도 아프기 짝이 없어 자꾸 한숨이 비어지는 이야기였다.

  이 소설은 지난 세월, 떠들썩하게 벌어진 사건과 공포로 존재하던 실존인물위에 작가의 촘촘한 허구가 더해진 그야말로 깊고 쓴 맛의 작품이다. 소설에 언급된 ‘턱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1987)은 한창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우리 세대에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가서 절대로 데모를 해서는 안된다는 의식을 심어준 공포의 사건이었다. 박종철 사망후 이어지는 규탄대회에서 연세대 학생 이한열의 죽음은 6월 항쟁을 이끌었고 당시 자고 일어나면 분신하는 대학생이 천지였던 것으로 나는 그 시절을 또렷이 기억한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는 ‘데모는 곧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대학에 입학했고 곧이어 같은 또래인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 학생이 사법경찰 백골단에 맞아 죽는 끔찍한 사건(1991)이 발생했다. 작가와 동시대를 살았던 운나쁜(?) 내게 있어 강경대 학생이 맞아죽은 후 한쪽 눈이 튀어 나온 부패한 얼굴로 강가에 버려진 한 장의 사진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독재의 잔상으로 남았다. 작가가 졸업한 학교는 알다시피 80년대 후반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우리시대 영웅 전대협 의장(임종석)을 배출한 학교였고 우연히도 당시 내 남자친구는 그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우리의 대학시절 절반은 늘 최루탄과 검문을 뚫고서도 (데모 때문에)정차하지 않는 지하철을 통과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작가는 혹시 그때 내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최루탄을 섬유유연제 삼아 그 학교로 향하고 있을 무렵 힘겹게 (고문 규탄의)대자보를 운반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만약 한번이라도 운동권 선배들의 심부름을 한 적이 있다면 그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을 터이다. 아니 운동권 선배들과 일면식이 없다 하더라도 같은 시기에 나처럼 들끓어 올랐던 증오심만은 잊을 수 없을 터이다. 그때 우린 많은 사람들이 미웠고 누구에게라도 복수하고 싶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걸, 아니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니 있다고 해도 (또래 학생이 공권력에 맞아 죽는 학교에서)그것의 실행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웠던가. 우린 그 시절 각자가 마음속에 자신만의 다락방을 만들어 놓고 못다한 편지는 항시 그곳으로 부친 후 학교를 다녔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제와 다락방에서 무엇을 꺼내보고 싶었던 것일까. 이십년이 지난 이 시점에 무엇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일까. 곰팡이 핀 다락방을 화사하게 리모델링하여 오픈된 테라스라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혹시 새삼 들추어 확인해보고 싶었던 다락방 비밀상자는 스스로 떨쳐버리고 싶었던 무엇은 아닐까. 타임캡슐처럼 그때 묻어버린 다락방의 속내를 펼쳐 보이기 위해 자신처럼 하필 다락방에 숨었던 사람을 찾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작가와 주인공과의 공통점은 더욱 분명해 보였다. 세상에 나온 것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심장을 대신한 무엇이었다. 최고의 고문기술자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결국 그와 함께 자신의 다락방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 최고의 소설기술자로 걸음을 내딛게 한 문학의 탈출기, 그것은 다락방이라는 숨겨진 심장을 도망쳐 나온 시간에 대한 고백이었다.

'선'을 넘었느냐

 
이렇듯 소설은 얼핏 보면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르포형의 세태소설 같으나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다락방을 부수어야 드러나는 내면의 성찰로서 그리 단순 명료하지가 않았다. 우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이름을 부여받은 사람은 아버지 ‘안’과 그의 딸 ‘선’, 그리고 아버지의 상관 ‘박’, 선의 친구인 ‘진’, 선의 첫사랑 ‘민’, 그리고 미용실을 하는 어머니 ‘애자’정도이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줄임말로 생각되는 ‘안’은 딸의 이름이 굳이 ‘선’인 이유로 자꾸 그녀와 대비되는 ‘악’으로 읽혀졌다. 이 소설이 딸은 선하고 아버지는 악하다는 흑백의 가치대립을 말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아버지는 악惡의 축에 딸은 선善의 축에 위치하여 끝까지 상대측을 끌어안지 못하고 밀어내는 것으로 보였다. ‘선線’의 ‘안內’이 아닌 바깥으로. 겉으로 보기엔 아버지 ‘안’이 이 나라의 대공, 방첩, 공안업무를 惡마적으로 수행해온 공권력의 일꾼이었다면 딸인 ‘선’은 그 나라의 청년들이 죽어가는 현실앞에서 청년으로서 해야만 하는 善, 무엇보다 가치있고 의미있어 자신들의 심장이 뛰는 일을 하고자 했다. 이 땅의 청년들이 바위같은 惡의 세력과 싸우는 善의 전사들이기에 ‘안’은 그러한 善의 돌멩이에서도 눈물을 흘리게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딸에게는 천장이고 아버지에게는 바닥인 다락방의 기준 ‘선線’을 놓고 보면 서로의 기준점에 따라 자신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인식함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이 위치인식은 자기본위에서 이루어진다. ‘안’과 ‘선’은 동일한 공간을 두고 위치싸움을 벌이는 존재라 할 수 있었는데 딸인 ‘선’은 아버지 보다 먼저 다락방을 사용한 ‘선先’, 사실상의 다락방 前주인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선先’의 가장 내밀한 ‘안’쪽 공간을 차지하자 ‘선先’은 ‘선線’ 밖에서 다락방의 파수꾼이 된다. ‘안’이 ‘선線’을 넘어 ‘선’의 ‘안內’에서 자신만의 ‘안(岸, 언덕)’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線’ 밖에서 ‘선’의 ‘안內’에 위치한 모든 것들을 지켜야 하는 선이의 모습은 지극히 물리적이면서도 깊숙이 심리적이었다. 사실 이 소설은 안이 다락방을 차지하면서부터는 우리에게 주도면밀하게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져준다. 바로 무엇을 기준으로 ‘선’을 긋느냐의 문제와 그 선을 기준으로 ‘안’쪽과 바깥에 무엇을 둘 것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과 악의 표피적 문제에서 선너머 그 안의 가장 어둡고도 내밀한 가치를 두드리고 있다. 작가가 ‘선’이와 ‘안’의 ‘선線’ 모두를 너머 그 ‘안內’쪽에 숨겨진 은밀한 것들을 두드리고 마침내 금가도록 하는 일은 어쩌면 자신의 내면을 허물어 뜨리는 과정은 아니었을까. 조선시대엔 지방의 감옥을 안옥(犴獄)이라 하였다. 아버지 ‘안’에겐 다락방이 은신처이자 자신의 ‘안’(犴,감옥)이었을 터이다. 그리고 선에겐 꼭꼭 숨겨둔 젊은 날 비밀의 은폐처이기도 했다. 그들 부녀가 다락방에 숨기고 묻어둔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오랜 세월 도망치고 숨기다 보니 결국 그것에 갇혀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다락방이라는 감옥을 끝내 뛰쳐 나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안’은 실존이고 ‘선’은 허구였다. 더군다나 과거 실존이 아니라 현존이기까지 했다. ‘안’은 과거완료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므로 ‘선’도 미래완료 이상의 미래진행이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이 관계가 (과거가 아닌) 지금 현실인 세상과 (미래일지 모르는) 비현실인 소설, 드러난 인물과 보이지 않는 작가로 생각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은 딱 내 아버지(공권력)세대였고 ‘선’은 딱 우리(작가) 세대였다. 중도조율의 적절한 배합이었다. 이 실량의 실존과 정량의 허구의 믹스는 탄탄하게도 소설을 더욱 소설답게 그래서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실제 미용실을 했다는 이근안의 부인과 같이 초원 미용실을 운영한 ‘선’의 엄마, 대공경찰의 대부라 알려진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의 줄임말로 보인 ‘박’등은 실존이면서, 진실한 친구로 남지 못한 학교친구 ‘진’과 선의 연인이기 보다는 선한 국민이길 바랐던 ‘민’은 허구로 생각되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중요한 배경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외양상 형식이 되어버린 시점이 더 중요해보였다. 이 작품은 화자인 소설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특이했던 건 바로 아버지 ‘안’과 딸 ‘선’이 교대로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것이었다. 두 개의 시점은 종반부까지 치열하게 서로를 압박했다. ‘안’과 그의 딸 ‘선’의 목소리가 공평하게 교차되며 이어지던 독백의 고백은 시종일관 팽팽했고 막상막하였다. 자로 잰 듯한 아버지와 딸의 교대속에서 작가는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겠다는 듯 양쪽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양방향의 고백에 중립과 객관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의식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달까. 하지만 내겐, 작가가 스스로 규정한 문체의 약속이 이미 작가가 객관적,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증으로 느껴져 더 안타까와 보였다. 내 의심은 결국 마지막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소설의 마지막은 연재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건 신념의 문제였다. 자신을 속일 수 없었던 (속여서는 안되는)소설가는 딱 한번 화자로 기능했다. 마침내 '선線'을 넘은 것이다.

  작가도 언급했듯이 연재당시엔 봄을 맞이하는 ‘선’이 (가위를 잡지 않고) 기지개를 펴는 장면이 소설의 마지막이었지만 출간할 땐 13장이 추가되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12장에서 유일하게 아버지와 딸의 시점이 동시에 등장하며 마치 화해를 한 것처럼 비쳐질 수 있었지만 13장에 깜짝 등장한 ‘선’의 엄마는 역시 ‘안’이 ‘믿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자’, 그가 사랑한 처 ‘애자’로서 ‘안’의 확실한 ‘안內’주인이었다. ‘안’의 ‘안內’에서 그의 믿음을 세상의 ‘선線’ 밖으로 알려준 여자. 그들은 뉘우치지 않았고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뉘우치길 바랐고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이 남았을 뿐. 결말이 수정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매듭지어졌으므로 작가로선 엄청난 반전이고 독자로선 충격이었다. 결국 이 작품은 그래도 우리끼리는 희망을 ‘가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 진정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고' 넘어 가자는 것이었다. 생강을 먹어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맛을 알고 사는 것이 더 의미있듯이. 선 긋는 일보다 선 넘는 일의 의미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듯이. 모두 원고를 탈고한 뒤 일어난 최후 심경변화가 작품의 방향성을 새롭게 결정지었다는 것이 나는 흥미로왔다. 독자인 입장에선 선의 봄이 엄마의 봄보다 더 반가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 왜 작가는 희망이라는 미래를 버리고 인식이라는 오늘을 택한 것일까. 혹시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하게 된 자신을 우리에게 굳이 자수하고 싶었던 것일까. 알려졌듯이 실존인물인 이근안은 현재 수감생활을 마치고 목사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고문기술자가 아닌 애국기술자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은 채 자신의 죄는 시대가 만들었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종교적 삶을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추신과도 같았던 13장이 많이도 슬프고 머리가 쭈뼛할 만큼 화가 났다. 끝까지 소설이지 않은 이 작품이 야속했다. 작가는 그를 소설적으로도 용서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아니 그를 두려워한 자신을 용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생강의 맛을 알게 된 것이었지만.

'안'이 보이느냐

 
작가는 끝내 우리에게 ‘죄’의 범위와 죄를 짓게 하는 죄 아닌 ‘신념’에 대해 물음표를 남겼다.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인 것은 바로 그 물음표가 소설의 결말이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확연한 죄인은 누구인가, 에 답하기 보다 그보다 더 명징한 죄는 무엇인가, 를 생각해보자는 것. 장의사집 둘째 주인, 반달곰이라 불리운 고문기술자 ‘안’에겐 두 명의 아버지가 있었다. 자랑스럽지 않았던 아버지는 전쟁으로 의족을 달고서 참새를 잡아 읍내에 파는 일을 했고 선망하던 아버지는 왜정시대에 앞잡이 노릇을 한 군경출신 조직의 아버지였다. ‘안’이 진짜 아버지를 극복하고 만든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일은 참새가 아니라 빨갱이를 잡아 애국하는 일이었기에 그는 간첩단을 일망타진하는 공을 세워 특진과 훈장으로 대공분야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소설 도입부에 그는 그의 자랑스러운 책상, ‘안案’에서 누구보다도 문학적이었다. ‘빛을 비추어라’, ‘물을 부어라’, ‘망설이지 마라’, ‘소금을 먹여라’ 로 시작되는 시적 명령구를 십분활용 해 독자에게 최면을 걸고 기선제압하기까지 한다. ‘안案’의 시점에서 자주 발휘되던 공권적 운율과 우월적 문체는 마치 극악무도한 고문기술자가 능수능란한 소설기술자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그의 현상수배 사진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주로 남자들을 폭력과 공포로 몰아넣은 그에게도 모성으로의 회귀본능은 남아있어 여성에게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 세상없어도 자신에게만은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던 아내를 비롯해 역 앞에서 좌판을 깔고 엿기름을 팔던 할머니, 붉은 유리집의 거울방에서 자신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쳐준 어린 계집, 월부책 장사시 ‘정의로운 시민상’을 받고 얻은 메달을 다락방 비밀상자에 보관해 놓은 딸 ‘선’은 모두 ‘안’에게 체온같은 ‘안安’ 온한 온기를 베풀어 주던 여인들이었다. 실제로도 도피중이던 이근안에게 박처언의 부인은 평소 이근안이 즐기던 음식을 건네주고 간 적이 있다하며 다락방에 숨어 지내던 이근안에게 하루 두 끼 식사를 올려 준 것은 아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아버지를 버리지 않은 자신의 며느리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죄인도 여성의 품안에선 아이처럼 ‘안安’존하고 싶었던 것이다. 제 아무리 곰같은 덩치를 가진 중년의 사내도 ‘혼자 잘 살아 남으시라’는 조직의 전갈을 듣고는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 하필 (아버지의 상처를 처절하게 확인하면서까지)상부의 목소리를 전한 당사자가 그의 딸이었다는 것은 어쩐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었고 우리가 해야할 말이라는 생각이다. 작가도 나도 여성이다. 여성은 죄인을 비롯한 자신과 이질적인 타자를 남성보다 너그럽게 포용하는 감수성을 타고난 존재이다. 하지만 눈물 흘리는 아버지를 확인한 딸도 그 눈물을 자아낸 작가도 그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스스로 자신들을 구원코자 한 것은 아닐까. 눈물을 후회나 반성으로 보지 않고 지독한 자기애와 미련으로 본 것이다. 곰의 눈물 때문에 그를 못본 척 하는 것도 죄스러운 일인 것이다. 이처럼 지독한 실제를 바탕으로 지켜야 할 허구의 진의를 간곡히 배열하고 끝까지 냉철함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노력은 퍽이나 인상깊었다. 그것은 이 소설이 지향하는 고집스런 나침반과도 같았고 우리는 그 방향을 잊지 말아야 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죄인을 아버지로 둔 딸의 죄는 무엇인가. 아니 딸로 분신한 작가와 우리의 죄는 무엇인가. 많은 부분 작가의 목소리를 숨긴 ‘선’의 목소리는 흡사 조울증을 앓고 있는 청춘으로 보였다. ‘안’이 다락방에 은신하는 10년 11개월 동안 ‘선’은 열아홉에서 서른살이 된다. 돌이켜보면 같은 시기 나 역시 아주 좋거나 끔찍히 싫다 두가지였다. 그녀에게 있어 11년도 짧은 봄과 긴 겨울 두 개의 계절로만 보였다. 나는 이 기간을 작가 천운영이 2000년에 데뷔해서 약 11년 동안 문학의 다락방을 사수한 시간으로 보았다. 처절한 고민은 언제나 극과 극사이에서 생존한다. 이 책에서 아버지의 도피 행각과 딸의 대학 입학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다. 꿈많은 국문과 신입생인 ‘선’이는 과대표 ‘민’에게 첫사랑을 느끼면서 비로소 심장이 뛰고 살이 떨리는 경험을 한다. 여고시절 단짝이었던 ‘진’이와 대학에 가면 심장뛰는 일을 하자고 약속을 한 '선'이었음이다. 하지만 ‘선’은 친구와도 연인과도 비밀을 공유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상처와 짐만 안긴 채 외면당하고 만다. ‘민’은 선이의 얼어붙은 심장을 녹여주고 살아 숨쉬게 만든 아름다운 손을 가졌지만 아버지는 그러한 청년들의 손에 가차없이 송곳을 찌르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죄로부터 기인한 자신의 억울한 벌은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하는 투사심리로 발전하고 아버지의 죄를 벌주기 위해 급기야 가위라는 흉기를 선택한다. 가위는 ‘선’이 학교를 그만두고 볼펜이라는 학업 대신에 집어든 최선의 방어용 무기였다. 똑같은 볼펜이었지만 아버지는 그것으로 딸의 송곳니를 뽑기도 하고 청년의 손톱을 공격하기도 했다. 중요한건 모나미 볼펜의 기능이 아니라 사용자의 목적에 있었음을 알게 된 ‘선’은 똑같은 방법으로 ‘가위’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가위를 아름답게 혹은 잔인하게 사용할 지의 선택은 ‘선’의 몫이었기에. 무엇이든 '선을 그으면 '안'과 밖이 생긴다. 다음에 놓을 것은 '선'그은 자의 특권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가위’를 이미 저지른 (아버지의)죄를 찾아내 조각조각 잘라서 빈 공간에 붙이며 속죄하는 정화기제로 승화시켰다. 이와 상반되게 마침 미용실을 하는 엄마의 특기가 소두마끼(바깥말음) 머리인지라 그녀에게 있어 불고데 기계는 이미 일어난 현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형하는 도구로 이해되었다. 

  ‘선’은 변형이 주특기인 엄마의 초원 미용실에서 ‘풀을 뜯고 물을 마시고 햇살을 즐길’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 수 없었기에 차갑고 시린 가위질로 시간을 버텨낸다. 그녀의 가위는 손님 귀에 상처를 내는 실수를 하거나 신문기사를 오려 아버지의 프로파일을 만들기도 하지만 가위 날개에 손가락을 끼워 넣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의 안식을 얻게 된다. 즉, ‘선線’을 자르지 않고도 ‘안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 하지만 ‘선’은 자신의 수호천사였던 가위로 결국 아버지의 머리칼을 잘라주며 그를 바깥세상으로 인도하는 구원행위를 하게 된다. 추악한 ‘선線’을 잘라 내어야 아름다운 ‘선善’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선’은 아버지의 ‘안(眼, 눈)’을 똑바로 보면서 자기 ‘안內(내면)’의 다락방에 숨겨진 공포를 바로 보게 된 것이다. ‘선’이 비로소 공포를 바로 볼 수 있게 된 시간은 꼭 자신의 청춘의 시간과 일치했다. ‘선’은 말한다. ‘모르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선이 바로 본 아버지는 더 당당히 대답한다. ‘그것들이 악이고 내가 선이’라고. ‘선아, 악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그러므로 ‘선’이 마주한 것은 아버지의 악이 아니라 자신이 선인줄 믿고 있었던 아버지의 착각, 그릇된 아버지의 ‘안(顔, 얼굴)’이었던 것이다. ‘선’은 11년 동안 아버지의 진짜 잘못, 잘못한줄 모르는 그 얼굴(顔)을 보지 못한 것이고 보지 못했으니 잘못을 알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 ‘안’은 딸이 머리를 잘라준 후 거울을 보고 ‘거울 속 저 짐승(안犴, 들개)’은 무엇인지 자신을 쏘아보는 핏발선 저 ‘눈동자(안眼, 눈)’는 누구의 것인지, 저것은 내가 아니라 말하며 절규한다. 아버지는 지난 세월 붉은 유리집, 사방 벽이 거울된 방에서도 계집의 파닥거리는 심장만 느낄 뿐 절대 자신을 비추어 볼 수는 없었다. 두 사람 다 다락방에 숨긴 것이 자기 안에 숨겨진 공포인 것은 같았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달랐던 것이다. ‘선’은 공포에 비추어진 자신을 통해 자신의 몰랐던 죄를 깨우쳤지만 ‘안’은 공포를 느끼는 자신을 부정하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나머지 비교를 당부하는 것으로 보였다.


“너희가 싸우고 있는 것은 너희 속에 숨은 공포가 아니겠느냐”


'무엇'을 보았느냐

 
다락방 바깥에서 선의 거울이 되어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를 가해자로 둔 고문피해자였다. 미용실 건너편 레코드 점 앞에서 ‘선’과 ‘안’을 동시에 응시하던 남자. 그가 인상깊었던 것은 ‘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소설 후반부에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된 이 남자와 ‘선’이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상처를 보듬는 연민의 관계로 그려져 화해와 용서를 암시하는 것일까 싶기도 했다. 절대 그 선을 넘지는 않는 선에서. 하지만 남자와 ‘선’이 선문답식으로 주고받는 대화는 서로에게 아무런 답을 바라지 않는 심정으로 던져지는 아름다운 내면의 고백이었기로 이 소설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마치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곧 새싹이 움트는 기운을 감지라도 하듯 나는 소설속의 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달까. 그도 그럴 것이 ‘선’의 생일은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였고 곡우를 가슴에 간직한 남자에 고개 끄덕이는 나 역시 하필 리뷰를 작성하는 오늘도 곡우이다. 아름다운 우연의 일치이다. ‘선’의 생일날 자리를 비운 ‘안’으로 인해 고문이 중단 된 그날을 기억하는 남자. ‘놈이 보호하고 싶었던 걸 꼭 찾아내 짓밟아 주리라’ 다짐했지만 ‘선’이 태어난 걸 누구보다 고마워 하게 된 남자. 남자가 가장 야속했던 건 자신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너무나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봄비에 젖은 나뭇잎을 얘기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였다고 말한다. 자신과 ‘상관없이 평화롭게 돌아가고 있는 저쪽 세상이 더 무서웠’다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이쪽 세상에선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벗삼아 누군가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거울을 볼 수 있다고. 그런 게 아마도 ‘설탕을 입혀서 달기만 할 거 같은데 먹어보면’ 쓰디 쓴 생강과자와 같은 인생이 아니겠냐고. 그러니까 드디어 이 작품에서 맛으로 등장하던 생강을 말할 차례다. 남자는 ‘선’에게 말한다. 납북 어부 황씨네 할머니가 끓여주신 생강물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선’은 기억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들은 대체로 ‘김치를 먹다가 생강을 씹은 느낌’ 으로 다가왔다고. 아버지도 ‘선’을 기억한다. 팽이과자를 좋아하던 ‘선’의 잠을 깨우기 위해 생강과자를 입에 넣어주면 잠을 깨던 그 순진한 모습을. 그 맛은 분명 ‘한고비 넘기고 다 피운 꽁초를 바닥에 탁 던지면서 숨을 들이마실 때 싸하게 도는 쌉쌀한 맛’의 짜릿한 기분일 거라고. ‘그네에서 떨어졌는데 그네를 밀었던 친구가 먼저 우는 바람에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당황스럽고도 야릇한 맛일 거라고. 분명 같은 생강인데 누구는 달달하게 누구는 씁쓸하게 또 어떨 땐 시원하게 또 뜨겁게 느끼는 것이 우리네 그렇고 그런 인생의 맛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다채로운 생강의 맛을 하나 배웠다고 달라질 것은 무엇인가. 맛을 알고 그것을 아는 것이 더 멋스런 인생을 살아가는데 과연 중요한 것일까.

  내가 ‘선’의 목소리를 작가의 메아리로 인식한 것은 바로 모르는 것도 ‘죄’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였다. 나만 몰랐던 것도 죄가 될 수 있다니 어쩐지 서운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의무’라고 말한 여성 철학자가 있다.(철학이 필요한 시간 中, 강신주, 2011)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 학살에 핵심적으로 관여했던 관료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 1906-1962)은 말했다. 자신은 준법과 근면을 철저하게 실천했던 충직한 관료였으며 조직이 부여한 임무만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아이히만은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일에 책임을 져야할 역사적 전범이었지만 그는 상부의 명령에만 따랐을 뿐이라며 자신의 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1962년 교수형에 처형) 어쩐지 빨갱이 잡는 애국일에 매진하여 한 평생 이 나라의 정의를 실천해왔다는 ‘안’의 주장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안’은 자신이 저지른 유일한 실수라고는 ‘전기충격자국을 미처 지우지 못한’ 작은 허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아이히만에게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저 유명한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의 책임을 부과했다. 자신이 수행할 임무가 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 즉, 자신의 무사유가 인간속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죄를 말한 것이었다. ’안‘은 인간 공포의 속성도 알았고 조직의 논리도 알았고 피해자의 나약함도 알았고 자신이 그들에게서 빼앗은 것이 인간성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한 번도 타자와 세상의 시점에서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사유하고 성찰해보지 않았다. 만의 하나 했다 한다하면 시키는 대로만 했다는 말은 거짓인 것이다.

  아버지의 변호사가 아닌 세상의 검사로서 역할을 다한 ‘선’이 생일을 맞은 날, 그 의미심장한 곡우의 봄날에 아버지는 자발적 검거를 시행한다. ‘안’이 바깥으로 나와야 ‘선’이 고개를 드는 두 사람의 관계. 두 사람은 이제 더 이상 평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불행히도 아버진 잠시 은신의 주소를 변경한 것에 불과했고 이주한 다락방에서도 앞으로 먹고 살 궁리는 다 해놓았다는 믿을만한 소식을 전해왔다. 아버지의 자진신고는 자신으로부터 세상을 바꾸는 시간을 잠시 유보한 행위에 불과했다. 열심히 감옥안에서 세상전도의 전략을 짜기 위한 방편이었고 예상대로 충분한 계획의 시간을 마치고 지금은 (자신의 방식대로)세상을 바꾸는 실천에 여념이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사유아닌 사유, 무사유가 슬퍼지는 오늘이다. 하지만 작가는 오늘이 곡우인 것을 잊지 말자고 조용히 눈짓을 하는 듯하다. 문득, ‘발레 인형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오르골 보석상자’에선 어떤 음악이 나왔을까 궁금해진다. 비록 죄인이 죄도 모르는 딸에게 선사한 것이지만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혹시 봄의 왈츠가 흘러나온 것은 아닐까.그렇다면 ‘선’의 생일날 작가는 다락방에서 다시 탄생한 것은 아닐까.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오늘, 하늘과 땅이 화합하는 곡우의 시간에 작가로서의 마지막 두려움을 떨쳐낸 것이리라. 이렇듯 소중한 오늘에 나 역시 곡우의 바람 한자락을 가슴에 새겨본다. 다시 보니 받아든 책 안표지에 예고도 없이 ‘쌉쌀한 단맛 달달한 쓴맛, 천운영’이라고 적혀있다. 이제야 생각하니 이 맛은 어쩐지 작가라는 직업, 소설이라는 문학과도 닮았다. 인생의 쌉쌀한 모든 기억도 달달한 문장으로 탄생할 수 있고 반대인 달콤함도 이렇듯 씁쓸한 여운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토록 변화무쌍한 인생의 맛이 결국은 깊고도 아린 문학의 멋이 되는 것일 테니까.

  어쩐지 이 소설 여기서부터 빨간 줄로 금을 그어놓고 그 안쪽으로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넘어버린 느낌이다. 그 빨간 ‘선’을 넘어 시커멓던 어둠의 ‘안’을 바라본 오늘을 기억해야겠다. '선線'의 '안內'을 끌어 안는 것이 '선善'은 아니었다. ‘선’과 ‘안’은 모두 우리 자신들의 문제였다. 내가 안쪽에 숨겨둔 근원적인 두려움은 무엇인지, 과연 그 ‘안內’에 나의 ‘선善’은 있는 것인지, 있다면 그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인 것인지. ‘선線’을 넘어 마주한 거울속에 비친 나의 ‘안眼’은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것인지. '선'과 '안'의 함수관계는 늘 긴장되고 팽팽하다. 나 역시 늘 나만의 다락방속에 소설의 소재에 대한 불안, 재능에 대한 불신, 실패에 대한 부담등을 잘 겹쳐 넣고 도전을 유보하는 쪽이었다. 그곳은 나락인 것 같아도 시선만 바꾸면 곧 천국이 되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락방도 최고로 안온한 보금자리가 될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 누군가는 한평 남짓 다락방에서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십년이 넘게 걸리지 않았는가. 이 작품을 덮고 막연하고도 무모한 자신감 하나를 얻어간다. 거부하던 음식에 마침내 고집을 버리고 입을 벌리듯 마음을 열어본다.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내가 느껴온 ‘쌉쌀한 단맛’과 ‘달달한 쓴맛’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그것을 바늘처럼 촘촘히 기록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소설가가 자신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이 소설을 거울삼아 나도 내 도전의 여정길에 저릿한 첫걸음을 떼어 보고 싶어진다. 부디 내가 그어놓은 ‘선’을 넘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나만의 이야기로 펼칠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 느낀 ‘쌉쌀한 단맛’과 ‘달달한 쓴맛’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오늘 알게된 소중한 생강의 맛이야말로 내일 나만의 글맛이 될 것이기에. 그 맛이야말로 나만이 알고 있는 生의 비밀스런 고유한 멋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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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1-04-2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누르고 갔닙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봐도 이 <생강>은 이렇게 길게 쓰지 못할 거 같아요~ 전작보다는 별로였거든요~ 머리의 남는게 없어서요 불행히도요 ㅋ

한사람 2011-04-26 18:19   좋아요 0 | URL

운좋게 전작을 구경할 수 있을거 같아요~
꼭 읽어봐야 겠네요
천운영 소설은 단편들만 읽어봤거든요

이 리뷰 너무 길고 구태의연했죠 ㅋ?

그래도 소설은 꽤 좋았던 거 같은데...

네오 2011-04-26 18:34   좋아요 0 | URL
리뷰요? 언제나 그랬듯이 입을 벌리고 놀라기만 하죠 ㅋㅋ 전혀 구태의연하지 않은데요~ 아 그런데 전혀 제목을 생각없이 보다가 이제야 알았네요~ 뭐죠 해석이 더 좋지 않나요? ㅋㅋ <생강>은 한사람님이 좋다고 말씀하시니 한번 더 읽고 싶어지네요~ 그런데 일본문학이라~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전혀 따라가지 못할 분야는 분명있단 말이죠~ 전 아직도 나루세 소세끼의 미학을 아직도 한국문학사에서 보지를 못했어요~ 과문할지는 몰라도~ 그래서 열심히 책을 읽는거랍니다..발견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요 ㅎㅎ

p.s 제 개인적으로는 어떠한 리뷰의 글보다도 시간이 엄청 걸리는 독서를 요하는 한사람님의 리뷰를 꼼꼼히 읽는거니 댓글 안달았다고 뭐라 그러지 마세요^^ 다 읽고 있으니깐요~

한사람 2011-04-26 18:48   좋아요 0 | URL

저는 나루세 소세끼 책도 읽어보지 않았어요
아니 책을 읽기 시작한건 일년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요즘은 소설보다 인문쪽이 더 재미나요
워낙 아는것도 부족하고 해서 그야말로 발견의 기쁨인거 같아요 ㅋ

제 리뷰를 꼼꼼히 읽어주는 분이 있다는게 오늘따라 울컥하네요..
저는 정말이지 남의 글 잘 안읽게 되던데...
댓글안다는건 제 전문이라 뭐라할 자격이 안되구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