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김경욱 지음 / 민음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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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생각보다 별로네요. 작가가 여성이었다면 더 세심할수 있었을까요. 쬐금 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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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원의 붉은 열매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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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을 쓰고 싶어요. 80년대 학번의 아우라가 물씬. 이름도 참 낭만적으로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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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10-0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내용은 모르지만 한사람님이 반할 정도라니 대단한 일이네요 ^^ 왠지 저도 댕기는데요.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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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수를 유혹하다

    <나는 꼼수다>를 듣기 시작한건 트친들이 재밌다고 한 민간정보에 의해서였다. 나는 김어준을 몰랐고 그가 ‘딴지일보’를 운영해왔다는 사실조차 그런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처럼 가정, 학교, 직장 모두 철저한 보수 프레임에서 성장해온 독자로 보자면 그의 이력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할 만큼 흥미로운 경우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보수는 소위말하는 진보, 좌파 성향의 언론매체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심지어는 김어준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보수의 문제는 무언가 새로운 가치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인데 관심이 없으니 모르는 사항이 많아진다. 정치의 경우도 헤드라인 정도만 기억할뿐이지 진위여부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정치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가 생기는데 그 무지가 들통나기 싫어 대체로 나는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중도 합리화하게 된다. 그러곤 어이없게도 무관심하다 말했으니 진짜 무관심하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관심을 가지는 건 무언가 자신답지 않다는 정당방위의 수순을 밟게 된다. 더 웃긴 건 아주 보편적인 사안이 아니면 의견을 말하지 않으며 하더라도 ‘경제는 발전되어야 한다’ 식의 원칙적인 발언만 하게 되므로 자기도 모르게 박근혜같은 아우라를 지니게 되며 점차 제대로 보수적으로 비춰지게 된다. 자발적 보수적 이미지 구축의 악순환. 내 주변의 보수들은 대체로 모르니까 알고 싶지 않으니까 이렇듯 자신의 태도를 누군가에 의해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바꿀 필요가 그다지 없다고 해야 맞지만 그 필요를 인식한다 해도 오랫동안 유지해온 보수 프레임에서 벗어나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논리를 주장할만큼 자기 논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가 맞을 듯하다. 이명박이 사악한 건 얼추 알고들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욕해봤자 나에게 떡 하나 돌아오는 게 없으므로 굳이 남들 다하는 욕에 품위 떨어지게 동참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대개 진보논객들의 정치비평을 연예인 가쉽처럼 우습게 치부하며 그들의 논리를 들었을 때 논리의 전개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 이면의 개인적 열등감이나 자라온 환경, 학력, 재산, 직업등의 외양적인 정보들로 그들을 재단해 불순한 세력의 패키지로 싸잡아 저장한다. 내가 만나온 보수들은 사실 자신들이 보수적이어서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에 귀찮아서 더 이상 알려고도 않는 성향을 지녔다. 이 기준으로 보았을 때 김어준은 그들 사이에서 평가될 언어로 십중 팔구 욕설이 믹스된 세간의 언어일 확률이 높다. 아마 김어준의 논리를 욕하기 보다는(자세히 모르니까 논리로는 깔 수 없지만) 김어준이 말하는 방식, 그가 구사하는 구어적 애티튜드, 욕설의 스탠스, 외모적 예술성(?), 학벌의 비일류성 따위로 획일적 평가를 내릴 것이 분명하다. 늘 주장하는 것이지만 이 책은 바로 별 대안없이 길러진 보수들이 읽어주어야 할 책인데 그 작자들은 이런 책들에 하등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을 거의 신정아 에세이를 집어 드는 수준과 동일시한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김병만의 에세이를 읽겠다 말한다. 그들은 유시민, 강준만, 진중권, 김어준 등의 진보논객의 서적을 인문이나 정치, 사회과학의 범주에 절대 포함하는 일이 없고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의 에세이로 하향조정한다. 내가 읽은 유시민, 강준만, 진중권, 김어준의 글은 정치와 상관없이도 각자 분명한 나름의 논리가 있고 그 논리를 표현하는 개성있는 문체들이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보수는 이들의 논리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를 자존심 상해하므로)이들의 주장을 알 수는 없다. 알 수 없으니 심도높은 비난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에 이들 보수의 눈과 귀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새로운 프레임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김어준이 주장하는 SNS를 통한 메시지 유통구조이다. 보수의 굳건한 프레임에 아래로부터 옆으로 파고들어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폭풍같은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나는 꼼수다’라는 인터넷 라디오방송이다.

    ‘나꼼수’가 괜히 ‘나가수’의 패러디를 한 것이 아니다. ‘나가수(나는 가수다)’에서 가수의 노래를 듣고 하염없이 우는 사람은 대개 보수일 확률이 많다. 노래 한 곡을 들으면서 그땐 아름답고 정의로왔는데 어느덧 나도 이렇게 변해버렸구나 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을 자극한다. 그들은 단지 김건모의 노래를 한 번 더 듣고 감동받기 위해 재도전을 수락한다. 김영희 PD는 ‘나가수’의 정확한 핵심 타겟은 중학생 정도의 아이를 둔 42세 주부였다고 밝힌 바 있다. 90년대 가요가 양적 질적으로 발전한 시기에 오렌지족과 같은 이십대를 보내고 중산층의 부푼 꿈을 지닌 채 결혼하여 33평의 강남아파트를 어느 정도 행복의 결산이라 미루어 짐작한 우리 사회 보통의 보수여성. 이들의 남편은 간혹 민주화 세대인 386 운동권일 확률이 있지만 그들도 이젠 어엿한 기득권 세력이 되어 좌에서 우로 자동 전향한 생활형 보수가 되었다. 좌파였다 성공하는 케이스는 계속하여 험난한 정치계에 입문하는 수밖에 없었고 할 수 없이 일류대, 대기업, 신도시, 스톡옵션, 인센티브의 성공프레임에 자신을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김어준은 ‘나가수’의 핵심 타겟인 42세 주부의 남편 격에 해당하는 연령대로서 그녀들이 보기에 당시 (죄송스럽지만)지방촌놈에 불과한 격이었을 확률이 농후한 인물이다. 소위 말해 오세훈의 강남 아우라와 극적으로 상반되는 위치에 있다. 나는 김어준이 이 나라 42세 보수 성향의 주부들 마음을 논리로 사로잡는다면 승산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감히 승산이 있다는 결론을 나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김어준은 내가 보기에 잘생긴 인물은 아니지만 어때, 씨바 이만하면 잘 생긴 거 아니냐 짓궂게도 물어온다. 니들이 말하는 잘생긴 인물들이 실은 속은 시커먼 족속들인데 나는 이렇게 생긴 대로 살아간다 왜, 내 얼굴은 곧 내 본능이고 나는 내 본능대로 살아가는데 그 본능은 적어도 그들만큼 시커멓지 않거든. 그들은 얼굴과 속이 다르지만 나는 적어도 내 얼굴과 속이 같다는 말이지. 그러니 그들이 이상하게 생긴 거고 내가 잘생긴 것이지.

    ‘나꼼수’의 대박을 예상한 김어준은 이제 연예인 급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상반기가 ‘나가수’의 임재범이라면 하반기는 ‘나꼼수’의 김어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임재범과 김어준의 공통점은 바로 본능에 강력히 호소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이 책의 표지처럼 블루 와이셔츠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다. 소위말해 자신이 정통 화이트 컬러는 아니라는 뜻이며 그래도 노빠인 것은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가 야성미 있어 보이라고 장발과 턱수염을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본능적인 자신의 캐릭터와 일치시키는 외모로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적어도 42세로 대변되는 보수 성향의 신도시 주부인 내가 보기엔 그의 웃음소리와 함께 색다른(?) 남성미를 느끼기에 충분해 보인다. 불행하게도 그녀들은 이삼십 대의 여성들보다 트윗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장애가 아닌 한방의 반전드라마의 요인이 되었다. 내 경우 트윗을 하다가 나꼼수를 알게 되었고 스마트폰으로 이동하면서 방송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아줌마들은 역으로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를 청취하다 카페에 가입하거나 트윗 계정을 만들게 된 것이다. 애청자로서 열렬히 책을 구매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2. 청춘에 호소하다

  
    어제(10.3)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국민 참여 경선 선거인단 투표가 진행되었다. 김어준을 앞세운 ‘나꼼수’팀도 장충체육관에 가겠다고(감시하겠다고 ㅋ) 미리 공지를 하였다. 물론 나는 그 방송을 들을 때 <닥치고, 정치> 사인회를 하겠구나 예상을 했다. 방송에서 어디다 사인해 드려야 할지 준비들 해오시라 너스레를 떨었기 때문이다. 김어준은 어제 자신의 책 마케팅도 하면서 동시에 선거독려운동도 했다. 젊은 층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트위터에 '투표 인증샷'을 올리면 자신의 저서를 주겠다고 선물공세를 한 것이다. 이에 조국 서울대 교수, 공지영 작가도 인증샷을 올리는 시민에게 책과 영화티켓을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고 박원순 후보는 재빨리 공지영 작가의 ‘인증샷 놀이’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10. 3 국민 참여경선은 선거 베테랑인 민주당에서 조직력을 발휘해 오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측 지지자들이 절대적으로 많았던 상황이었고 현장에서는 박원순 측 관계자들의 낙담한 표정이 역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어준과 조국, 공지영이 SNS를 통해 끝까지 젊은 층에 호소하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트윗 소식으로 뒤늦게 투표에 참여하러 나온 젊은 세대들로 지하철역은 혼잡해지기 시작했고 투표장인 장충체육관 주변은 팬 카페와 시민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던 것.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한 박원순이었지만 어제 경선에선 박영선 후보를 얼마나 따라잡느냐가 관건이었고 젊은 층 투표율이 높아져야 박원순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결국 조직력을 앞세운 민주당에 많이 뒤쳐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박원순은 막판까지 박영선을 바짝 추격하며 최종합계에 앞서는 지지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뉴스에서 백날 투표하러 가시라 계몽해도 비오면 투표율이 낮아지고 날씨 좋으면 놀러가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김어준, 조국, 공지영, 김용민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저서가 있으면서 SNS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진보적 인사들이다. 이른바 SNS 계의 야권인사의 연대와 그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나도 궁금하다. 비주류 방송과 온라인커뮤니티, 트위터, 그리고 저서까지 다양하게 언론활동을 하고 있는 김어준이 나는 이명박 못지 않게 치밀하고 꼼꼼하다 생각한다. 김어준은 이제 어두워진 보수 아줌마들의 귀를 뚫고 눈을 띄이게 만든 것은 물론이요 기존 진보인사들과의 연대에서도 젊은 층을 자극할 수 있는 촉매형 SNS 투사로 탄생했다. 그는 이 책이 이명박으로부터의 절망이 우리에게 남긴 희망을 다같이 찾아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하였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순간과는 달리 덮으면서 같이 인간된 어떤 연민을 느꼈는데 그는 라디오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예리하고 심지어는 철학적이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무학(無學)의 통찰이라는 말이 이미 학문을 넘어선 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의 다른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또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이 책에 대한 기대는 그리 높지 못하였다 할 수 있다. 그건 이미 ‘나꼼수’를 통해 BBK사건이나 인천공항 매각건과 같은 이명박 비리에 대해 잘 교육이 되어 있었고 김어준이 구사하는 방식에 열렬한 지지를 한 바 있기 때문에 굳이 책으로까지 반복 학습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택한 이유는 ‘나꼼수’ 이외의 진실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나꼼수’를 좀 더 심화적(?)으로 듣기 위한 개인적 방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책이 예상외로 상당히 설득력 있었다.(완전 지적이야) 책으로만 보았을 때 유시민은 학구적이고 강준만은 사회적이고 진중권은 미학적이라면 김어준은 이 모든 걸 아우른 대국민적 인간성을 강렬하게 지향하고 있다. 한국적 감성을 기반으로한 진보적 이성에 집요하게 호소한다. 하여 이번 리뷰는 책 읽기 전 한사람이 책 덮은 후 한사람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이 책의 인터뷰 방식을 차용하고자 한다. 두 사람의 한사람은 같은 사람이며 편의상 한 1, 한 2로 지칭할 것이다.


3. 정치를 선동하다


-책 읽기 전 한사람(이하 한 1)_  먼저 이 책의 꼼수는 무엇인가. 정말로 조국 때문에 책을 썼다고 보는가.

-책 읽은 후 한사람(이하 한 2)_
글쎄, 일단은 조국바람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하니 이해는 갈만한데 일찍 수그러든 조국을 새삼 지지하려고 쓴 거 같지는 않고 조국의 한계를 통해 그 공감을 얻어낸 후 같은 방식으로 박근혜와 문재인을 꼼꼼하게 비교하려 한 것이 아닐까. 나도 처음엔 이 책의 꼼수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나꼼수’가 현재 아이튠즈 팟캐스트에서 미국 1위를 달리고 있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적 민감시기인데 아무래도 무언가 마음이 급했던 게 있지 않았을까 싶었거든. 내 생각엔 그의 절친 오시장이 무상급식 투표로 시장직 사퇴를 건 직후 책의 출간시기를 좀 앞당긴 것이 아닐까 추정. 왜냐하면 이 책에 실린 녹취록은 6월 2일이 마지막인데 아직 안철수가 등장하기 전이야. (원래는 오세훈과 안철수까지 다루었어야 한다고 본다) ‘나꼼수’에서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기자회견한 그날 밤 바로 박경철이 ‘나꼼수’에 등장한다. 그때 김어준이 왜 우셨냐고 물어보니까 그러더군. 그분의 삶의 궤적이 그 순간 더욱 감동스러워서 울컥했다나.(그때 듣는 나도 좀 뭉클하더라고 살짝 목에 침을 삼키면서 그분은, 이러는데 목이 잠겨있었어) 살아온 인생의 궤적과 사람이 일치하는 분이 안철수이고 나는 그 분의 아우라에 감히 어떤 평가로도 그 흔적에 덧칠하고 싶지 않다고. 그랬더니 자기도(김어준) 여지껏 수많은 정치인을 만나보았는데 안철수 같은 사람이 딱 한사람 더 있고(문재인) 그러므로 이 바닥엔 자신이 아는 두 명의 사람이 삶과 사람이 일치하는 분이라 말했다. 알다시피 이 책의 결론은 문재인으로 상징되는 이명박이 죽었다 깨어나도 좇아갈 수 없는 고품격 정치 인격의 인물이잖아. 문재인을 부각시키려고 이 책을 썼나 싶었지만 그건 드러난 수이고 진정한 꼼수는 박근혜는 죽어도 안되니 야권연대 인물 중에서 제발 제대로 된 인물을 선별해서 택해보자 하는 일차적 동참요구인 것이지. 그때까지 시간을 벌자는 게 아닐까 싶다. 오세훈이 사퇴한 후 서울시장에 혹시라도 민주당 후보나 그럴리야 없겠지만 나경원이 당선되는 꼴은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게지. 그러니까 이 책은 일정보다 빨리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에 나와야 할 운명이 되어버렸고 오세훈과 안철수까지 정리하기엔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라 꼭 끼어들 이유가 명백했던 것이지. 또 자기 이후에도 같이 ‘나꼼수’하는 정봉주 의원이나 김용민 교수가 이차, 삼차적으로 다른 저서 발간계획이 있을 것이고. ‘나꼼수’가 흥행이 될지는 알았겠지만 완전 대박이 나버리니까 책의 완성도보다는 빨리 흥행몰이에 가세해 여론을 다지는 게 중요했던 것이라고 본다. 물론 예판까지 모양새를 갖춘 걸 보면 상당한 인세를 미리 땡겨 써야 할 개인적, 사업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뭐, 돈 때문에 책을 썼겠어. 김어준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에 오백원을 걸고 싶지는 않다) 하하


-한 1_ ‘나꼼수’가 '국내 유일 가카 헌정방송‘을 표방하잖아. 이 책의 컨셉은 무엇인가. 이 책도 가카의 꼼수를 정리하는 수준인가.

-한 2_
‘나꼼수’가 가카의 꼼꼼한 성격을 개그하듯 홍보하는 방송이라면 이 책은 나 김어준은 그런 거 다 안다고 그러니까 이 책 읽는 사람들도 좀 같이 알고나 비웃자는 공개조롱 요구서지. ‘나꼼수’에서 김어준은 사실 정봉주 의원이나 주진우 기자의 디테일에 서론과 결론을 부연하는 역할이야. 둘이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고 누구는 이렇게 말하더라, 나는 그가 한 짓을 보았다, 이런 사실을 조사했다 이런 식으로 증인역할을 하고 김용민 교수가 바리톤으로 정정 혹은 참고발언을 해. 그럼 김어준이 판사식으로 이명박의 정체성을 ‘호연지기’다 ‘밥줄공안’이다 하며 결론짓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전지적 가카 시점으로. 그때 듣는 사람이나 그들이나 순간 가카 찬양의 도가니에 빠져 박수치며 죽는다고 배를 잡고 뒹구는데 유일하게 ‘좆나’, ‘씨바’같은 욕을 추임새로 곁들여 주는 게 김어준이다. 그 연출력은 타고나는 것 플러스 본능적인 직관, 순발력으로서 엄청 꼼꼼한 스킬을 보여준다. 대중의 카타르시스가 분출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다. 이 책에서도 이명박의 꼼수에 개념적, 문학적인 수사를 적극 활용하여 그를 다양한 개념의 인간으로 규정짓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책에선 조롱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래서, 그러니까 그 이후에 어쩔 건대 하는 대안의 지점을 자극한다. 더욱 더 이명박이 우리에게 남긴 바람직한 효과, 공로 이것들을 강조한다. 이명박 때문에 정치에 무관심하던 사람들까지도 정치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고 시대적 결핍에 공감하게 되었고 이명박 때문에 지난 시절 우리가 누리던 것들이 실은 굉장히 어렵게 획득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주장한다. 어떤 진보인사도 하지 못한 일을 충격의 각성으로 한 번에 연대시켰다는 점에서 외려 두고두고 동상세우고 기념주화 만들어 감사할 사람이라는 것. 곧 이명박의 절망이 우리에게 남긴 희망을 찾아보자 선동한다. 여러 정치인이 등장하는데 나는 이 책을 덮고 우리 엄마를 차로 치어 죽게 한 운전수 그놈보다 이명박이 더 절절히 미워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이명박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욕망에 투표했다는 김어준의 분석에 흠칫하곤 얼굴이 달아오르더라. 솔직히 그때 우리 뭣같이 생긴 이명박 좋아서 찍어준 거 아니잖나. 이명박 뽑아주면 집값도 오를 거 같고 버스도 잘 달릴 거 같고 공원에 조각상도 많아 질 것 같고 월급도 오를 것 같고 삼성이 수출도 많이 할 거 같고 뭐 대충 우리 자신에 득 되는 게 많을 것 같아 눈 딱감고(인물 안보고 ㅋ) 찍어 줬던 거 아닌가. 열받네. 그래서 결국 이명박과 이건희만 졸라 영원한 부자 되었지만.


-한 1_ 이건희? 이 책에 이건희도 비난의 대상인가? 이건희라면 삼성을 비난하는 것일텐데 재벌비리 같은 걸 말하는 것인지.

-한 2_
이 책에서 밀도 높게 다루는 것이 ‘BBK 사건’의 본질과 재벌 삼성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먼저 BBK 사건은 ‘나꼼수’에서도 깊게 다룬 주제인데 김어준은 도곡동 땅, 다스, BBK, 옵셔널벤쳐스를 차근히 따라가면서 결국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추정을 단계적으로 마무리 한다. 책에 보면 루트를 상세히 알려주는 전개도도 있음. 아무리 언론에서 떠들어도 뭔 말하는지 몰랐던 독자들도 이 장을 읽고 BBK 사건을 이해 못하는 자들은 없을 것임. 완전 기업형 미니시리즈 시나리오를 완독하는 느낌인데 주인공만 잘생긴 배우로 바꾸면 흥행대박 조짐이 보이는 완벽한 구성이다. 김어준은 불법이 얼마나 성실한지 더 성실하게 꼼꼼히 알려줘. 우리가 모두를 기억할 순 없지만 왜 BBK 관련 기사가 뜨는 날엔 꼭 서태지-이지아, 강호동 세금 탈루 같은 연예인 대형사건이 언론을 장식하잖아. 이 책에 BBK가 어떻게 이지아와 연결되었는지 그리고 이지아의 결혼사실이 어떠한 과정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는지 작가 김어준이 치밀하게 추정소설을 쓴다. 김어준은 BBK를 중점에 놓고 검찰, 국세청, 대형로펌, 재단이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 그 행보를 퍼즐 맞추듯 깔끔히 정리한다. BBK의 본질이 곧 우리 보수우파의 정체를 대변한다고 결론짓는다. 우리가 앞으로 유심히 봐야 할 것들은 말이야. 연예인 대형사건이 터질 때는 더욱 그 밑에 소심하게 아주 흐릿하게 뜬 기사를 유심히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이건희. BBK가 주류 우파의 속성을 대변한다면 삼성은 우리 사회 경제 권력의 속성을 상징한다. 김어준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사건을 시작으로 삼성의 졸렬한 개그수준을 심판한다. 그리고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이른바 서한샘식의 밑줄 좍 식의 강의로 이건희의 이익이 삼성의 이익이고 그것이 곧 가카의 이익이었다는 걸 밝혀준다. 그리고 거기서도 서태지-이지아는 보수우파의 아주 훌륭한 방패박이 되었다는 제보도 해준다. 그녀가 컴백한다는 게 좀 이르다고 누가 그래. 이지아는 결국 홀몸으로 이명박과 이건희를 야들야들 막아준 연예계 희생양이었던데 우리까지 그녀에게 손가락 질 하면 안되지. 그 때문에 애인 정우성도 잃었는데 말야. 아무리 우리가 서태지 왕팬이었고 정우성 신으로 여겼지만 이명박과 이건희가 이지아에 보상해줄 것도 아니므로 우리가 좀 너그러워지자.

    김어준은 이 책에서 삼성의 돈에 포로가 된 우리 공적 시스템을 고발한다. 리움 미술관이 세계 최고급 비자금 관리 창고라 주장한다. 그런데 삼성의 비자금은 삼성을 위해 조달된 것이 아니고 이건희 개인의 용돈이었다 소리친다. 여기서 중요한건 우리가 삼성을 까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이건희가 감옥을 가면 삼성이 망하게 되고 그럼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식의 논리를 제발 극복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건 순전 삼성이 오랜 세월 만들어낸 프로파간다일 뿐이고 권력을 회유하고 대중을 협박하고 언론을 통제해 만든 프레임이라는 시각이다. ‘삼성은 돈의 종교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경제적 메시아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는데 성공한 기업이라는 말씀. 그들의 목적은 이건희가 아니면 사회, 경제가 불안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조성하는 일. 이건희가 망하면 삼성이 쓰러질 것이라는 공식을 정서로 포교하는 일. 김어준 왈. 제발 이건희와 삼성을 분리하자고 외친다. 우리 스스로 이건희 일가와 삼성을 동일시해온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절대로 노예근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네. 잘못의 주체인 이건희를 벌준다고 삼성이 무너지지 않고 이건희가 악인 것이지 삼성이 악의 실체는 아니라고. 그러니까 괜히 삼성 불매운동 할 필요 없다는 거야. 좋은 지적이야. 그리고 김어준은 부연한다. 이건희 치자고 이 책 쓴 건 아니고(그런다고 쳐질 사람은 아니잖아 ㅠ) 그러니까 이미 국가 수준의 권력을 가진 이건희 일가를 상대할 만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이명박은 시정잡배식으로 야합하고 보험들고 나중에 약발 떨어지면 교묘하게 뒤통수치잖아. 그들의 협박과 회유에 분노하고 소리치기 보다는 담담하고 묵묵하게 반대방향으로 그냥 걸어갈 사람. 그게 누구겠냐고.


-한 1_ 문재인을 결론으로 내는 방식이라면 그 사이 많은 정치인들을 다루었을텐데. 의미있는 평가는 없었는지.

-한 2_
글쎄, 나같이 문재인도 몰랐던 사람이 심상정이나 노회찬, 이정희를 알 리가 없지. 김어준은 그들의 언어가 대중에 설득적이지 않은 이유를 논리에의 집착으로 보았다. 나는 진보 정당의 정치인들을 잘 모르지만 김어준이 그들을 평하는 시각이 의미있다고 여겨진 건 그 정치인이 가진 아우라를 인간적으로 분석하고 자기 식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중요한건 대중,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인데 사람의 마음, 마음이라는 자원은 한정적이어서 비슷한 여러 곳에 나누어 줄 수가 없고 또 생각만큼 논리적이지 않다. 그놈이 그놈이라 생각한다는 말은 꼭 나들으라고 하는 말 같더군. 내가 놀랍게 인식한 건 바로 해당 정치인이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모두 김어준식으로 비유, 표현하면서 의미부여하는 건 기본이고 그걸 알게 모르게 이론화한다는 것이지. 이 사람이 가진 건 노무현의 심성이고 저 사람이 가진 것은 박근혜의 아우라다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내가 심상정을 몰라도 심상정으로부터 정치인이 필요한 자질은 하나 기억할 수 있게 하지. 김어준이 진보인사들에게 무슨 종교단체처럼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죄의식 마케팅 하지 말라고 충고한건 아주 짜릿하더라구. 논리적으로 맞는데 논리적으로만 맞아서 웃기대. 논리적으로만 맞으면 맞는 줄 안다고. 감정으로 꼬인 매듭은 진보고 나발이고 절대 논리로 풀리지 않는다고. 눈에 띄던 평가중에 유시민을 말하던 부분도 기억나. 자기가 오래전부터 유시민을 좀 아는데 권력의지가 졸라 없는 사람이래. 유시민은 기꺼이 자기를 정치 도구화할 뿐이지 그럴 사람이 아니란다. 문성근을 아주 여성에 집착하는 정치인으로 표현한 것이 쬐금 걸리긴 해. 그러나 모두 참고할만 한 조언이었음. 문성근이 여자 밝힌다는 말만 충격적으로 보인 내 자신이 유치했지만.


-한 1_ 그럼 사람들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박근혜를 이길 수 있으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이미 사람들의 마음의 반쪽을 얻어버린 박근혜를 왜 그토록 이겨야 한다는 거야.

-한 2_
김어준은 정치인의 자질 중 자신이 속한 상황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여 통시적으로 바라보는 능력, 전지적 작가시점 같은 능력이 중요하다 말한다. 자신이야 말로 균형감각이 탁월한 사람이라고. 하하. 그런데 박근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모르는 아주 특수한 정치인이라 말한다. 박근혜에게 국가는 아버지 유산이며 정치는 효도이자 제사인데 그래서 국가와 국권, 애국, 비장의 아우라는 도통 좇아갈 정치인이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도무지 생활인, 자연인으로서 구체적이고도 인간적인 경험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제대로 통찰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지. 생활인으로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삶의 균형감각이 없는 인물이고 자기 삶에서 사실상 인간이 빠진 채로 공주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에 예의를 갖추며 애정을 쏟는 것이 가능한가.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녀의 행보는 알기 때문이 아닌 알아야 하거나 아는 척 하는 수준의 결단일 확률이 매우 높다. 실체없는 국권, 관념적인 애국, 현실성없는 복지, 원칙적이기만 한 인사, 뭐 이런 정치를 지향하지 않겠는가. 구조와 프레임을 통찰하고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자기경험으로부터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다음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물쭈물하다가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면 그렇게 학을 떼며 이명박을 겪고도 또 박근혜를 찍게 된다. 끔찍하다. 뭐 이런.


-한 1_ 그렇담 김어준의 인기비결은 무엇인가. 그의 인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발견된 것은 무엇인지.

-한 2_ 김어준은 말한다. 구걸하지 않고 쫄지 않고 덕 볼 생각을 말자고. 기득권층을 향한 자세이다. 이미 자신은 기득권이 아니라는 전제를 포함하는데 내가 보았을 때 그도 이제 어엿한 SNS 권력을 얻은 것이 아닐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명박에 대한 증오심과 시대적 결핍, 중산층 추락에 대한 불안감등이 더해져 보수층도 김어준의 목소리와 글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별히 김어준이 잘나서라기 보다는 지금 우리 정치가 민망할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라 김어준의 본능화법이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찬스에 강한 인물이었고 스스로도 말했듯이 이러한 역사적 찬스를 대단히 영리하게 붙잡은 듯하다. 이 책이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가질진 모르겠으나 ‘나꼼수’의 방송과 연대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려 줄 것이라 믿는 바이다. 다행히 이 책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수준이 높고 어느 부분 짠한 감동을 제공하기까지 한다. 김어준은 생활 스트레스의 원인이 정치 때문에 발생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투표를 해야 한다 강조한다. 나는 요즘 보수신문을 욕하기 위해 조선일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관심하다는 것은 결코 쿨해 보이거나 지적으로 보이는 수사가 아님을 인지하자. 무관심은 무지와 동일어이고 무지는 곧 무력이다. 아무런 힘을 창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독고다이로 홀홀단신 무관심해봤자 뻔한 프레임속에서 이자만 충실히 내면서 잘리지 말기를 기원하는 인생밖에 더 되겠는가. 이 책에서 외치는 구호는 정치적으로 일어나서 가능하다 서로 믿어보자는 것이지만 나는 그러한 기운 속에서 외려 내 일상의 용기를 감지한다. 어쩌면 정치란 돈 많고 잘난 사람들이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이 별 볼이 없는 대중이지만 그 하나뿐인 마음을 열어 모두 한 곳으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김어준은 그 얼음같은 마음을 열게 하여 어디쯤인가 분명 뜨겁고 빛나는 그곳을 간절히 응시하도록 모두의 시선을 이동시켰다. 이명박이 질문을 던졌다면 김어준은 그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인물쯤 되겠다.(한동안은 말없음표, 말줄임표만 대안이었지 ㅋ) 관점의 축의 대이동. 분명 작은 일은 아니다. 그가 잘생긴 것에 완전(?) 동의는 못해도 그가 잘한 일이라는 것엔 마음껏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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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10-0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은 학구적이고, 강준만은 사회적이고, 진중권은 미학적이라면 김어준은 대국민적인 대중성을 지향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김어준의 가장 큰 공헌은 진중하고 복잡하게 생각했던 정치를 개콘처럼 재미있고 일상적인 것으로 바꾸었다는 것이죠.

cocon 2011-10-11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가 매력적이시네요^^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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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절망이 우리에게 남긴 희망을 찾는 법. 일어나, 쫄지마 !,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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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9-30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도 사서 오늘 배송왔어요. ㅋㅋ 한사람님과 리뷰 경쟁을 하고 싶지만 전 선물 받은 책이 있어서 그 책들을 먼저 읽을려구요. 근데 김어준이 문재인을 지지하신 다는 사실을 아시다니 한사람님도 '나는 꼼수다' 팬이신가요? ㅋㅋ

비로그인 2011-09-30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엄청 기대하고 있는데.. 흙흙 ㅠㅠ

교고쿠도 2011-10-0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한사람님 ^^
저 신간평가단 10기 문학분야에 뽑혔습니다 ^^그동안에 한사람님과 인문사회분야에서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다는 생각입니다. 이웃등록 해뒀으니 종종 들를께요.

cyrus 2011-10-0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나꼼수 열풍이 대단하더군요. 나꼼수 콘서트도 진행된다던데 1분도 안 되어 표가 매진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저는 한번도 나꼼수를 보지도 못했어요. 어떻게 보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
그리고 10기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하신거 축하드립니다. ^^

cyrus 2011-10-02 21: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상세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부터 나꼼수를 꼭 들어봐야겠어요. ^^
 
문화로 먹고살기 - 경제학자 우석훈의 한국 문화산업 대해부
우석훈 지음, 김태권 그림 / 반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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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태계에서 진화란 무엇인가


   이 책을 주말에 읽었다. 그리곤 우울한 주말을 보냈다. 생각보다 이 책은 문화적이지 않았다. 외려 정치적이기까지 했다. 이 책의 구호는 아마도 ‘토건은 탈문화 탈토건만이 문화’, 정도가 될 것이다. 제목만 보기엔 예능프로들을 보는 중간에 슬슬 넘겨보아도 좋을 것 같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만 떠오르게 하는 진중함이 버티고 있다. (예를 들면 런닝맨에서 뛰어가는 유재석을 죽어라 좇아가며 촬영하는 VJ는 월급이 얼마일까? 뭐 이런) 가볍게 넘기고 말기엔 개운치가 않은 무언가가 있는 셈이다. 이런 류의 책은 혼자만 읽고 방법을 찾는 쪽이라면 큰 도움은 되지 못할 듯하다. 제시된 문제 해결로 궁극엔 정부, 시민차원의 문화정책의 변화를 언급하고 하고 있는데 이는 정작 문화로 먹고 살고자 하는 청춘에 소구한다기 보다는 그러한 문화정책을 시행하는 책임자들이 읽어야 할 내용들에 가깝다.(그렇담 제목은 ‘문화로 먹고 살기’가 아니라 ‘문화로 먹고 살게 해주기’가 맞는 것 아닐까) 문화에 속하는 하위영역별로 제시된 문제점과 해결방안들이 자칫 현재 그 속에서 실상을 겪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보기엔 공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생산 및 기획자가 되고자 하는 준비생들에겐 현재 문화시장이 어떤 상황인지 보다 냉정하게 관찰하는 조감도의 역할로선 의미가 클 듯하다. 어찌 보면 현재 겉보기와는 달이 문화산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가진 꿈이 많을수록 무너질 희망도 많다는 뜻과도 같은데 그래도 꼭 진출해야 겠다면 내가 감당해야 할 미래는 어떤 난관들이 있는지 미리 예견해보고 그것들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겠다는 자세로 전체 문화시장이 더 커지고 더 탄탄해지도록 기여하는 일꾼이 되라는 당부와 같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현재 화제성에 비해 리뷰는 많지 않은 편인데 프레시안에 소개된 혹평만으로 이 책에 대한 평가가 귀결되는 건 성급하다는 생각이다. 부족한 소견이지만 이런 책은 결론에 대한 적절성 여부나 그 논쟁보다는 일단 문제제기에 대한 화제성 창출과 국민적 아젠다 공유가 우선 아닐까. 왜냐하면 문화는 다른 분야와 달리 우리가 늘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대표적인 분야이고(특히 이 책에 소개된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대중들은 더욱더) 실제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상을 잘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 영화, 책, 음악, 스포츠등 우리는 소비자로서 오늘도 문화상품을 뒤적이고 향유하는 직접주체로서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 것이 곧 우리문화의 현상이라 의심없이 믿는 사람들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문화의 수준도 향상되어 어엿한 한류를 수출하는 나라로서 각 분야 공히 고급문화를 생산, 소비하는 듯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유럽문화에 대한 열등감, 미국문화에 대한 패배감, 일본문화에 대한 적대감을 너머서 이젠 우리 한국문화도 세계에 먹히는구나, 하는 우쭐한 기분을 서서히 가지게 된 것이다. 파리에서 소녀시대가 공연을 하고 유럽여성들이 슈퍼주니어의 노래를 한국어로 따라 부르고 울면서 소리 지를때 늘 그렇듯 잘 훈련된 애국심은 가슴 저 밑바닥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것이 우리들 실상인 것이다. 실적위주의 한국식 성장모델 덕에 우리는 해마다 속으론 노벨문학상을 목빠지게 기다리면서 겉으론 그런 상은 중요하지 않다며 서로를 위로한다. 평소에 소설을 읽어온 독자는 아닐지라도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 유럽, 일본에 멀리멀리 수출되어 베스트 셀러를 기록했다는 소식에는 가슴이 홧홧해져오는 독자들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조수미, 정명훈, 장한나와 같은 음악가 몇 명으로 우리도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나라의 국민이라 생각하며 김연아, 박태환 선수같은 도저히 이룰 수 없었을 것 같았던 종목의 금메달 소식에 스포츠 선진국이라는 위치를 스스로들 부여한지 얼마나 되었던가.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로 인해 스케이트장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피겨를 배우는 학생들이 많아지듯 국가적으로 어떤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면 그것이 곧 그 분야의 발전으로 인식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외양적인 모습과는 달리 우리가 어떻게 탈문화적인 국가, 비문화적인 시민이 되어왔는지를 데이터와 통계로 증명하며 앞날을 걱정한다. 전국에 공연장을 많이 지었다고 음반시장이 활성화되었는가, 그래서 음악산업이 발전했는가. 올림픽 메달을 많이 땄다고 국민의 체력이 좋아졌는가. 한류가 한바탕 불고 있다고 가수의 인권이 높아졌는가. 천만 관객의 영화가 생겼다고 스탭의 인건비가 늘었는가. 런닝맨이 중국, 동남아에 큰 인기를 누린다고 구성작가들이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하는 문제들이다. 이 모든 질문의 시작은 문화산업에 진출하여 그것으로 밥벌어 먹고자 하는 청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고 애석하게도 청춘의 꿈만큼이나 그들의 밥벌이는 처참한 현실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외형적으로 나라가 발전해 문화도 덩달아 발전을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실상은 좀 충격적이었다. 예전에 약간의 무리를 해 지금보다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간 사촌언니네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언니는 집만 좋고 밖에 나가면 허허벌판인 이 생활이 과연 내가 원하던 꿈인지 모르겠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거리에 나가면 애매한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이 동네 동사무소에까지 흔하게 된지 오래다. 커피숍, 은행, 마트에서부터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터미널 같은 공공장소는 물론 심지어는 아파트에 서는 일일 장터도 문화를 표방하며 행사를 홍보한다. 우리사회에서 좌파와 우파의 구분없이 그냥 품격을 높이고자 할 때 접두또는 접미사격으로 문화를 따붙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책은 이렇듯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문화가 어떠한 수준에 놓여있는지 냉정하게 점검해보는 평가의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듣고 보는 문화이상은 사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문화이하의 이야기였다. 또 먹고 산다는 건 직업의 문제, 나아가 생계, 생존의 문제이다. 그러니 바꿔 말하면 이 책은 문화가 너무 좋아 그것으로 꿈을 이루고 싶은데 먹고 살지는 못해 많은 청춘이 죽음까지 내몰린 절박한 상황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역으로 문화로 죽고살기가 된 작금의 시대에 문화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단 말인데 저자는 먹고살기가 아닌 죽고살기가 된 문화를 경제적으로 분석해보고 그걸 다시 정치적으로 담론화해보자 제안한다.

   이 책에서 가장 명확하게 담론화된 개념은 ‘문화생태계’이다. 저자는 문화를 생태계의 용어를 빌어 ‘문화생태계’라 규정짓고 건강하고 튼실한 문화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의 토건문화를 청산해야한다고 외친다. 소녀시대가 파리 콘서트를 마치고 귀국할 당시 공항에선 즉각 헤어스타일과 신발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연예인의 공항패션이 화제가 되는 것은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녀들은 한국식으로 말하면 국위선양을 마치고 귀국한 수출역꾼들이 아닌가. 그녀들의 공항패션에서 나는 지난 시절 가발, 신발공장에서 청춘을 바친 여공들의 착취된 노등을 떠올렸다. 내 딴엔 소녀시대가 어린나이에 연습으로 착취를 당하는 연상을 하며 그들의 인권은 국권을 앞설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건 나도 모르게 70년대식 수출중심주의에 길들여진 한국적 사관에 불과했다. 그녀들의 활동을 용역으로보고 수출상품처럼 생각한 것이니 무의식에선 자랑스러움이 먼저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수출중심주의가 곧 국수주의, 국가패권주의와 결합하여 ‘한류우드’같은 토건문화를 반복, 재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자는 문화산업의 확대를 경기장, 공연장, 관광지등의 시설적인 투자로 밀어붙인 정부의 정책때문에 지난 5.6년간 문화산업이 추락했다고 주장한다. 본원상품을 개발할 생각을 않고 파생상품만 파이를 키워 스스로 그 몸피를 감당하지 못하는 꼴이 된 것이다. 저자는 문화산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자들을 생태계의 일원으로 보고 맨 밑바닥에서부터 상호발전적인 진화를 하는 것이 문화계 전체를 발전케 한다고 말한다.


방송은 악마와의 싸움

   책에서 처음 화두를 꺼낸 건 방송분야인데 안그래도 바로 어제 <무한도전>이 방송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며 방통위에서 제재를 가하겠다는 기사를 보았기로 나는 화가 나면서도 순간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무한도전>은 탈계몽, 탈권위를 앞장세워 저렴해 보이는 캐릭터들의 값비싼 도전을 프로그램의 정체성으로 하고 있고 무엇보다 자막의 개념화(?)에 실험적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번 방통위의 제재는 시사하다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이 그동안 자막으로 양산해온 턱주가리아, 장모반데라스, 저쪼아래등의 대표적 문자개념 캐릭터는 품위높으신 교수님들의 소위 있어 보이는 빈번한 영어합성어 사용에 대한 예능대항적 유머라고 보았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본원시장이 디지털화되면서 작품, 결과물, 생산물이라는 뜻의 콘텐츠가 문화상품이라기 보다는 문화생산자들, 예술가를 납품업자처럼, 정부를 용역관리자처럼 보이게 하는 용어라며 콘텐츠를 문화상품과 동일시하는 표현에 불쾌감을 표했는데 나는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대부분 방송, 언론에서 대중에게 주입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좀 유식해보이려고 스스로들 차별성을 위해 그들이 사용한 단어와 더 차별화하기 위해 선택 조합해 탄생한 예능적 문자들-턱주가리아등-은 그들의 품위를 더 높여주면 주었지 적어도 깎아 내리지는 않을 장치인 것이다. 다시 말해 무한도전이 동네 바보형, 하찮은 형, 키작고 소심한 동생, 태생적으로 매력없는 동생, 깐죽거리는 친구를 내세워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이 외려 자신들의 우월성과 구별해주는 효자프로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꾸 자기들의 권위에 반하는 방식이라 규제하는 것 자체가 아직도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옛날 식민지 시대, 군사정권, 독재정권의 잔재인 것이다. 이미 무한도전과 함께 대표적 주말 예능프로인 <1박 2일>이 폐지결정 된 후 새삼 몇 년 동안 정상을 지켜온 예능의 대표 프로를 향해 방송의 품위를 저해한다는 발상은 역으로 그러한 옹졸하고 권위적인 낡은 국수주의적 시각을 재차 확인하는 것 같아 시청자로서 낯 뜨거울 지경이다. 같은 날 방송의 품위를 대놓고 지적한 방송통신 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는 대한가수협회장 태진아 대신 참고인 자격으로 가수 유열이 참석을 했다. 그런데 장관에 님자를 붙이자는 방통위 위원장의 발언에 유열이 박수를 치자 민주당 최종원 의원이 “지금 누가 박수 쳤어? 박수친 사람 누구야?"라고 고함을 치며 즉각 '색출작업'에 나섰고 이에 동조한 몇몇 의원은 '박수친 사람 나오라'는 고성으로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었다. 이 예능프로보다 더 싼티나는 삿대질과 고함소리가 과연 이 나라의 품위있는 분들이 활동하는 국정현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상황도 얼마든지 재미나게 개그소재로 발전시킬 수 있겠지만(주조연이 모두 연예계 인사아닌가) 안그래도 불황인 코미디계에 어느 누가 미쳤다고 이런 식의 정치코미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방송의 경우 특히 ‘권위주의, 상명하복, 전도된 계몽주의로 돌아가려는 이명박 정권은 문법상 버라이어티 쇼’와 맞지 않는다 주장한다. 웃긴 건 이 책에서 알려준 여사님 사업이라는 한식세계화에 걸맞게 무한도전은 뉴욕에 비빔밥을 소개하기도 한 꽤 계몽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조정대회 한다고 백날 뉴스에서 알려줘봤자 미사리에 몇 십만 인파가 몰려드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역으로 무한도전 때문에 조정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는 뉴스가 최전방에 보도되는 것이 우리 실정인 것이다. 죽고 싶다는 노래가사가 청소년 자살을 부른다며 방송금지를 하고 실컷 다보고 즐겨 놓고 뒤늦게 여자 아이돌 가수의 춤이 선정적이다 규제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방송심의 수준인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좋으니 얼씨구나 일본에 앞장서 수출할 땐 언제고) 옛날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안기부 시절에나 왜 사랑이 이루어 질수 없는 것이냐며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이라는 제목이 불순하다 금지하는 줄 알았는데 이건 80년대로 문화가 퇴보하는 현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류바람을 이용해 한국어 가사를 널리 알리자는 것도 한글발전을 위해 힙합용 랩 가사를 심의하자는 것도 모두 국수주의적 시각인 것이다. 잣대만 편할 대로 바꿔가며 본질과 상관없는 비문화적 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 우리 현실이요 수준인 것이다.

   방송이야기로서 기억나는 건 한국인은 데이터 상으로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성별, 연령별, 직업별 차이 없이 일요일에는 꼬박 4시간이나 TV를 시청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해가 가는 건 예능 두어 프로와 드라마 한편만으로도 그 시간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주말에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가며 밥먹을 때도 손님이 왔을 때도 낮잠을 잘 때도 습관적으로 TV를 켜놓고 있기는 하니까. 주 5일제와 인터넷등으로 TV시간이 줄어들지 알았지만 우리의 일상은 매번 여행적이고 매순간 IT적이진 않는 것이다. 주말엔 누구나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예능 프레임에 자의적, 타의적으로 위치해 있는 것이 우리네 평범한 삶이라는 것. 이젠 본방의 구속력이 약해지고 여러 채널로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외려 예전보다 방송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범위와 대상은 더 넓어진 것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비슷한 생활습관으로 인해 내용상 같은 방송의 통제하에 놓여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저자는 이것이 바로 방송을 장악하려는 정권의 욕심을 부른다고 지적한다.

   얼마 전 한예슬 사태를 보면서 회당 출연료를 삼천만이나 받는 그녀가 제작환경의 열악함을 토로하는 모습에 잘했다 큰일했다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모든 건 외주가 늘어나면서 제작비, 광고비 때문에 검증된 스타시스템에 목메는 드라마 현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요즘은 톱스타와 몇몇 스타작가만으로는 흥행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연기력 되는 톱스타가 흥행드라마를 배출할 확률은 더 많긴 하지만 내 생각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드라마가 너무 많다는 느낌이다. 다양성 면에서도 예전의 청소년 드라마나 TV 문학관, 베스트 극장같은 단막극은 사라졌고 미니시리즈식의 각종 판타지에만 획일적 욕망을 드러낸다. 누가 먼저 잘못을 했는지 따지기 전에 주요 타겟군에 위치한 시청자로서 주제넘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미니시리즈는 예전 M본부의 월,화 전략 상품이었다. 그 이유는 주 5일제가 시작되기 전 가장들이 그때 제일 야근이나 회식을 많이 하기 때문이었고 남편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대에 주부들은 드라마로(주로 불륜스러운 내용을 담은) 외로움을 달랬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막장식이 시간대와 요일을 막라하고 배치되어 있지만 그땐 그랬었다는 이야기다. 이 미니시리즈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무자비하게 확장되어 작금의 전성기를 맞이한데는 사실 우리 아버지, 우리 남편들의 공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가끔 ‘모래시계’같이 남편들의 귀가시간을 앞당기는 드라마가 혜성같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내가 아는 어머니, 주부들은 남편과 같이 드라마 보는 것을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가 이토록 경쟁력있는 문화상품이 된 것은 결국 지난시절 불철주야 회사에 매달려온 많은 남성들 때문이었고 덕분에 드라마의 양적, 질적인 발전을 가져온 것이니 한류는 사실상 70,80년대 수출역꾼들이 이루어낸(?) 문화 금자탑이 아닐까. 그러므로 저자가 제시한 지역형 드라마, 청년 드라마가 성장을 하려면 지금처럼 일터위주의 생활방식, 성공 및 성과위주의 출세지향 방식의 삶에선 불가능한 제안이 아닐까 싶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남편 뒷바라지를 죽도록 해야 하는(안하더라도) 주부들 입장에선 더 이상 전원일기식의 농촌드라마나 대가족 정서가 중요하다는 홈드라마, 청소년시절을 떠올리는 학교드라마는 보고 싶지가 않다. 허황된 꿈이지만 육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지라도 재벌 2세와 환상적인 여행을 떠나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 비록 고졸이고 외모도 그렇고 그렇지만 내가 들어간 회사의 사장 아들이 나만 좋다고 좇아 다니는 드라마, 그 남자와 결혼하고자 하는 미모의 고학력 여성을 보기 좋게 물먹이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 오늘 죽더라도 그 직전에 한번은 꼭 세상과 남자, 그리고 나보다 많은 걸 가진 여자들에게 복수를 하고 죽고 싶은 것이다.

   저자는 미국처럼 사회적 지지를 받으면서 파업으로 저작권 개선을 요구하는 작가들을 예로 든다. 드라마 조합이나 보조금, 출연료 상한제같은 대안, 배우 생협같은 조합단체도 어떠냐고 묻는다. 인력 양성, 취업 기회, 생계보장 측면에선 실용적인 대안이다. 그런데 이 시민단체스러운 대안들이 먹혀들 여지는 털끝만도 안 보이는데 어쩌란 말인가. 배우나 가수는 속된말로 폼나보이니까 하는 것 아닌가? 성공확률은 터무니 없이 낮지만 성공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니까 도전하는 것 아닌가. 연기가 좋고 노래가 너무 좋아서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렇게 좋다는 연기와 노래지만 무명일 땐 그 비참함마저 나중에 유명해질 때를 위해 참고 견디는 거 아닌가. 예전에 방송사에서 월급받고 배우들이 연기할 때도 지금처럼 장동건, 김태희가 되기 위해 떼거지로 오디션에 몰려들었을까. 우리나라처럼 한방신화를 기대하는 풍토에선 저자의 제안이 썩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역전 드라마를 드라마 같은 방송환경에 실연하고 그것의 실현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기꺼이 연기와 노래에 도전한다고 믿는다. 오늘날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단순한 연기와 노래에의 재능 및 열정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유명인이 되어 돈도 벌고 사랑도 받는다는 욕망에는 근본적으로 한방에 인생을 뒤집겠다는 성공야망이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다. 연예계는 그래도 학벌과 엘리트 시스템에서 자유롭고 변수가 많이 따르기에.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치열하다. 이긴 사람이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다가지기 때문에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만약 배우나 가수들이 성공하거나 유명해져도 똑같이 돈을 받고 대우도 비슷하다면 굳이 스타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하는 신화는 한류스타 배용준이나 소녀시대의 로망이 절정일때 더 극대화되는 장치이고 그 때문에 재능은 있지만 여타 다른 이유로 밥을 굶게 되는 도전자들이 넘치게 되는 분야가 아닐까. 도전할수록 실패하는 분야, 그곳이 연예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에선 이런 전복적 희망만이 유일한 자산인 지원자들을 잘 걸러내고 그 열정을 다른 곳으로 전도하는 기회도 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연예인이 되겠다고 하는 도전자들은 설사 유명해진 후라도 보통사람보다 몇 배 더 세간의 관심과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당하겠다는 의지가 사실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망보다 앞서야지만 연예생태계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다고 본다. 예전에 처리된 사안이라도 재수없으면 미래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한방에 내리막길을 걸을지 모르는 곳이 그곳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오랜 정상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실제 상처와 비난보다도 그 상처와 비난을 지혜롭게 잘 견디는 의지에 달려있다고 여긴다. 상처에 대한 내성은 절망에의 노출빈도가 아닐까. 어쩌면 삼진아웃을 많이 당한 선수가 홈런을 가장 잘치듯 많이 떨어지고 실패해 본 사람이 결국 최정상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이 책에서 어떠한 암울한 환경을 고발하였다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자, 실패해도 또 멈추지 않는자, 그 사람만이 문화생태계를 진화시킬 주역이 되지 않을까 싶어진다.

   그런 면에서 어제 일어난 예리밴드의 슈스케 탈퇴는 아쉽고 안타깝다. 슈스케의 편집방식이 잔인하고 자극적이라는 건 초등생도 다 아는 사실이다. 슈퍼스타 K는 공중파 오디션 프로들의 도전을 받으면서 자신들이 가진 환경속에서 장점을 찾아 그것을 차별화하기 위해 악마적 편집이라는 무리수 자체를 차별화로 내세운 프로그램이었다. 슈스케는 참가들을 위한 방송도 되지만 무엇보다 그 과정을 즐기는 시청자들의 방송도 되는 것이다. 슈스케측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참가자들은 거두절미하고 이기적인 인물로 편집하는 방향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이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제작진은 서로 이질적인 참가자들간의 화합과 협연 과정을 엿보는 것이고 그런 말도 안되는 장애를 이기고 끝내 양보하고도 성취를 이뤄내는 울랄라 밴드 같은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시적으로 회자되는 세간의 잡소리에 휘둘려 갑자기 자신들의 꿈을 버리고 명예를 찾겠다는 행동은 당황스러웠다. 시청자는 일등이 되면 그 모든 걸 잊는다. 내 생각에 예리밴드의 리더는 지금 당장 헤이즈의 탈락에 가해자가 된 듯한 비난과는 달리 그러한 소신있는 주장, 자기밴드의 색깔을 잃지 않겠다는 고집이야말로 진정한 아티스트의 예술성이라 칭찬받을 기회가 반드시 오리라 생각한다. 자기 목소리, 자기 색깔이 없는 친구는 그냥 모창이나 하고 말 것이지 뭐하러 가수되고 밴드를 해야 할 것인가. 음악하는 사람이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음악에 이기적이지 않는 것이 이상한 태도이고 대중은 자기음악에 이기적인 것을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일인자는 그러한 과정상의 비난과 상처, 그 악마적인 모든 것에 일일이 대응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리밴드의 돌발적 탈퇴로 슈스케의 편집방향에 공개적인 비난이 가해졌고 시청률위주의 방송에 경종을 울리는 효과는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세간의 반짝하는 반응에 너무나 빨리 반응한 것이 아닌지 아쉽다. 물론, 지금같은 유명세만으로도 이미 예리밴드는 얻을 것 이상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새삼 방송의 속성을 이유로 자신들의 명예를 찾겠다한 행보는 어짜피 언더에서 주류로 진출하고자 했던 본인들의 최초 의지를 기만하는 행동은 아니었을지.  

 

 <슈퍼스타 K3 지난 16일 방송분 -예리밴드 리더  한승오와 헤이즈 멤버간 대화 中에서>

 

출판, 영화는 아사(餓死)와의 싸움


   그밖에 저자가 지적하는 출판계는 솔직히 전하려고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는 잘 파악이 안되었다. 안 그래도 프레시안의 서평에는 출판계의 현실과 이상 사이를 ‘곡예하듯 넘나든다’는 평이 있었는데 내가 가장 의아한 건 방송, 영화, 음악, 스포츠처럼 과연 출판계에도 진입하려는 사람이 많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시장대비 실제 진출의지를 가진 사람보다는 잠재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분야가 아닐까 해서다. 또 하나 사회과학 분야의 저자인 우석훈은 지난 십년간 사회과학 분야의 저서가 가장 큰 몰락의 과정을 겪었다며 5000권 정도를 팔면 이른바 ‘고종석급’이고 1만부, 2-3만부가 넘어가면 신의 영역인 ‘장하준급’, ‘박경철 급’이라 언급했다. 내가 이 책을 받았을 때 이 책은 이미 2쇄 본이었다. 그렇담 저자 역시 고종석급 이상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 네임 벨류를 가진 저자가 자신은 상관없는 듯 같은 분야의 저자를 급으로 나누어 언급하는 게 보기 편하진 않았다. 인상깊었던 사실 중 하나는 사회과학 서적은 정치적 입장이 좌파인지, 우파인지 명료하지 않으면 어느 편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인데 굳이 우파는 자존심구겨가며 시장으로 들어와 떠들어댈 이유가 없기 때문에 진보, 좌파를 표방하는 저자의 책들만 나오고 또 관심을 받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굳이 이 (정도의)책이 좌파스럽다 여기지 않은 나로선 과연 이 책이 위치하는 좌표가 어느 지점일까를 억지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우파일 거면 이쪽 분야 책은 안 쓰는 게 좋다는 말로도 들려 역시 기분 좋지는 않았다. 저자의 결론은 금서에 도전하는 정신이 곧 사회과학 서적을 쓰겠다는 의지라 했는데 이 책에 의하면 금서는 우파서적이 되는 것이 아닌가. 데이터를 넘어서는 저자만의 통찰력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나는 진보, 좌파가 대세인 현실에서 우파일수록 사회과학에 도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저자는 ‘책방소년’ 출신으로서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 동네서점이 사라지는 것이 곧 감성적 도시기반 시설이 없어진다는 뜻과도 같다고 아쉬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알라딘이 중고서점을 시내 한복판에 개장한 것은 고무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저자도 출판계와 관련된 핵심인사라 그런지 다른 분야보다 솔직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같은 출판계의 인사들이 볼 때는 위선이라 생각한 부분을 혹평한 것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도 갈팡질팡한 채로 그러니까 우파인지, 좌파인지 명확히 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자신의 전공분야인 책에 대해 말할 땐.

   그런가하면 이 책에서 내가 문화소비자로서 가장 심각하게 위기를 인식하고 공감한 것은 영화부분이었다. 얼마 전 <디워>를 제작한 심형래 감독의 제작사가 부도가 났다는 소식과 겹쳐지면서 스크린 쿼터제 폐지로 인한 우리 영화시장의 몰락이 멕시코나 브라질일만 같지는 않았다. 지난 추석때 지인들은 부담없이 웃고 즐기기 위해 <가문의 영광 4-가문의 수난>같은 코미디 영화를 택하였다 들었다. 누가봐도 작품성으로 보았을 때 턱없이 모자랐지만 그같은 작품성은 다른데서 얼마든지 채울 수 있으므로 굳이 가족끼리 보는 영화에까지 같은 기준을 적용하긴 그랬다는 뜻이다. <괴물>이후 한국영화는 제작측이나 관객측이나 전반적인 슬럼프를 맞았다는 생각이다. 뚜렷한 이유도 모르겠고 사람들은 예전만큼 영화 한편에 큰 기대도 하지 않는다. <친절한 금자씨>처럼 감독, 연출, 결말에 대한 찬반 논쟁도 줄었다. 좋아도 크게 감동하지 않고 나빠도 크게 욕하지 않는 것. 이것도 비슷한 이유일지는 모르겠는데 칸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타고 몇몇 감독이 수상을 한 이후로는 국제적 영화 실적에 정점을 찍었다 생각하는지 더 이상 서로들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대중적 관람욕구가 대형 뮤지컬이나 비싼 콘서트로 옮아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자는 영화를 교육적 대안으로 풀어보자는 의견을 비쳤는데 이 책에서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다. 협업을 바탕으로 한 영화제작과정을 학교교육에 도입하고 예술성, 여가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지금의 인력은 최대로 활용하고 또 미래 인력 생성에도 기여한다는 정책은 가장 현실적으로 보였다. 이는 상업영화말고도 다큐, 애니메이션등의 영상제작의 다양성에도 고무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올 초에 장래가 촉망되는 한 여성 시나리오 작가가 젊은 나이에 굶어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스탭으로 밥벌어 먹고 살기는 거의 불가능한 현실과 작가들의 복지문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비단 영화판의 시나리오 작가뿐만이 아닌 대부분 글로 생계를 유지하는 무명작가들은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을 살고 있을 터이다. 영화판에서는 아예 기나긴 거지같은 조연출 생활을 거치지 않고서는 감독으로서 큰소리 치기 힘든 분위기가 팽배하다. 문학도 굶어 죽기 직전까지 고생하지 않으면 진정한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부를 얻게 되면 창작보다는 명성에 의해 부수적인 수입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수 있다고 여기며 대중은 돈 좀 만진 작가들에겐 더 이상 피같은 작품을 기대하진 않는다. 무명시절, 습작시절, 연습생일 때 죽도록 정말 딱 죽기 직전까지만 피나도록 고생하지 않고서는 아니 이제 더 이상 했다간 죽을 것 같은, 그러한 시간들을 거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도 없고 혹시 성공했다 하더라도 대중은 그런 성공엔 감동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분야는 먹고 살 생각으로 덤벼들면 죽고, 죽고 살, 아니 죽어도 좋을 생각으로 끝까지 버티지 않으면 진짜 살아남기 죽기보다 어려운 곳이라는 결론이다.


음악, 스포츠는 '뽀다구'와의 싸움


   저자는 책은 그래도 밀리언셀러가 나오는데 더 이상 음반을 사지 않는 것이 우리의 기억과 추억의 동반 상실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CD, LP시장을 구매체로 분류하며 MP3를 좇아 달려온 기술의 세월이 앨범을 통한 서사구조를 이해하는 감성을 짓밟았다는 분석이다. 그래도 특이한건 디지털 시대에도 끊임없이 오디오 음향기기 시장만은 죽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한다고 하는데 그 중심에 또 교회라는 핵심시장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의 아이돌 그룹이 전성시대인 것은 어쩌면 한 시장 자체가 죽어가면서 막판 대 바겐세일을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며 ‘음향산업을 배후산업을 포함한 하나의 틀로 이해하지 못한’것이 큰 실수라 결론지었다.


도서관 짓느라 도서구입비가 없고 학교인프라 늘리느라 정작 학생들 급식 보조할 돈이 없고 오디오 콤포넌트 사느라 앨범 살 돈이 없다. 전부 토건시대의 ‘뽀다구‘ 문화의 잔재인 셈이다.       -291p


   음악분야에서도 이와같은 토건문화의 적용은 예외가 없었다. 으리으리한 오페라 하우스를 건축함과 동시에 예산이 없어 국립오페라 단원을 해고하는 아이러니가 곧 우리 문화산업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방송에서 본방 시청률이 본원상품이라면 텍스트에선 단행본이 영화에서는 극장관람객이 음악시장에선 음반이 본원상품이다. 저자는 문화산업에서 본원상품이 활력을 찾지 못하고 후방문화, 파생상품만 득세를 이루는 것은 장기적인 발전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가만보면 저자는 문화를 말하면서 바뀌어진 생활패턴과는 연계분석을 하지 못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저자는 이제라도 중학생 아이들에게 한 달에 두장씩 CD를 사주라고 권유했는데 그게 사준다고 해서 한자리에 앉아 예전 우리처럼 우아하게 음악감상할 여건이 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MP3를 가지고 있는데 빠른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똑같이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스마트폰은 즉시성을 MP3는 보관성의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나가수에서 바비킴이 ‘골목길’이라는 노래로 1등을 했다하자. 1등 발표 십분 후 벅스에선 실시간 1위로 바비킴이 리스트에 등장한다. 아이는 스마트폰에서 벅스 아이디를 통해 골목길을 다시 들어보고 나는 그 원곡인 신촌블루스의 골목길을 들어볼수 있다. 그 밑에는 같이 경연곡으로 등장한 박정운의 ‘오늘같은 밤이면’이나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도 물론 들을 수 있게 같이 떠있다. 그렇게 재감상을 한 후 정작 음원을 내려받는 건 리쌍의 7집 앨범이다. 몇주전 리쌍 7집이 통으로 1위에서 10위를 달린 적이 있는데 굳이 앨범이 아니더라도 완판이 가능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통다운의 이유는 가사의 연계성 때문이다. 더 이상 아이돌 노래의 가사는 아이들조차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우리 때처럼 가사의 서정성에 눈물흘리는 시대가 아니라 지나가는 가사의 구체적, 현실적 한마디에 위로를 받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현실인 것이다. 멜로디에 실은 가사가 아닌 랩에 실린 가사에 서사적 감동을 받는 것은 노래는 아름답다기 보다 지극히 일상이라는 뜻이다.) 즉, 학원가는 무료한 버스안에서 오며가며 듣겠다는 뜻이다. 앨범을 사지 않고서도 음원만으로 통다운을 받게 할 정도의 경쟁력은 그러니까 리쌍 정도의 서사력을 가져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스마트폰은 바로 노래 들으면서 가사를 확인할 수 있어 영어가사의 경우 큰 도움이 된다. 이 모든 게 한 달에 몇 천원이면 가능한데 CD를 구입하여 한자리에 앉아 오디오 기기의 재생을 하라는 건 조금 저자답지 않은 제안이 아닐까. 차라리 학생별 MP3 음원 이용실태를 조사해 바람직한 음원 활용방법, 음원을 이용한 파생상품, 이러한 것들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음악의 본원상품이 앨범이라는 것이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 결론이라고 보며 본원상품의 파급력을 가진 음원시장에 대한 더 깊고 예리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스포츠의 본원상품은 올림픽이나 월드컵같은 국제행사가 아니고 일반인 체육이나 사회인 체육같은 생활체육이라 말한다. 사회치유활동으로서 스포츠가 활성화되는 것, 스포츠 네트워크가 보다 깊숙하고 넓어지는 사회가 선진사회이며 금메달 몇 개, 무슨 국제대회 유치 같은 실적위주의 스포츠 성과는 국민을 위한 체육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실적에 따른 스포츠 연금이 폐지되어야 하며 엘리트 체육식의 행보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선수도, 나라도, 국민도 서로 망하는 구조라 부연한다. 이것도 나는 4년마다 월드컵 특수병에 신음하는 대중의 환타지가 반사적으로 떠올라 저자가 부럽다는 유럽의 어느 변두리 마을 수영장에서 노인들이 자유롭게 수영하는 모습같은 건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으로 스포츠보다는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가 더 득세를 이루는 지금의 판세는 분명 유럽식이 아닌 미국식이 자명한데 누구나 악기하나쯤 연주할 수 있는 나라도 부럽지만 누구나 집근처에서 수영을 취미로 즐기는 노인들의 나라가 우리가 지향하는 스포츠 선진국의 로망이 되길 바래본다.


국민들이 살찌게 하고 다이어트 업체와 제약회사 그리고 영리병원이 돈 버는 미국모델과, 스포츠와 식품으로 국민들이 살찌지 않게 하고 대신 암처럼 많은 비용이 도는 질환에 국가가 거의 완벽하에 지원하는 유럽모델 가운데 어느 쪽이 바람직한가. -358p




문화활동은 자기만족의 문제


   방송, 출판, 영화, 음악, 스포츠를 중심으로한 문화생태계속에서 각각의 본원상품을 추적해보고 지난 십년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으로 전체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어떤 문화정책이 시급한지 저자는 다양한 제안들을 내놓았다. 미처 몰랐던 이면의 진실도 알게 되었고 실현불가능해 보이는 대안,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의견도 있었다. 경제적 시각으로 문화 시장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해당 문화의 성장, 발전, 쇠퇴, 몰락의 추이를 관찰해 볼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책은 통계치를 소개하다보니 숫자의 경제, 규모의 경제를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분명한건 문화에 지출하는 비용이 예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그 욕구만은 더 증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돈을 많이 지불했다고 꼭 문화생활에 만족을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화생활을 여유롭게 하고 있다는 모양새 자체가 삶의 안정감과 보상감을 제공해주는 것이지 방송, 영화, 책, 음악, 스포츠 상품에 내가 감동을 받고 그것을 마음껏 향유한 정도와는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런면에서 저자는 비용대비 만족도 변화도 제시했어야 한다고 본다. 또 사람들이 총지출에서 카메라와 애완동물을 사는 것에 더 많은 지출을 했다는 점도 내 시선을 끈다. 문화에 대한 필요성보다는 같은 시기 디지털 기기의 교체, 신규매체에 대한 지불이 지난 시절 우리를 더 유혹했다는 것 역시 저자가 말하는 뽀다구 문화와 일맥상통한다. 외로움을 달래려 애완동물을 구입했다는 것, 그 동물사진을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2차적인 문화생활보다는 일차적인 개인적 본능이 더 중요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금 심하게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는 상황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새롭고 첨단의 커뮤니케이션 기기들을 구입해 세상과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자신이 더 중요하고 자신의 삶만이 더 각별한 태도로 기계를 이용하고 있으며 그 상실감과 허전함은 정작 사람이 아닌 동물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새삼 이곳 서재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다 이런 책을 읽었다고 떠드는 행위 자체가 내겐 상당히 이차적인 문화 활동을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문화로서 본원적 상품이 책이라면 서재는 명실공히 파생상품이요, 후방문화이다. 책을 읽고 혼자서 가슴에 묻어두거나 혹은 연구나 업무적 방편으로만 책을 넘기는 사람은 절대 그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이 궁금하지가 않다. 책을 읽으면서 서재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TV가 보여주는 것들, 세상이 떠드는 이야기, 그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눈길이 가기 시작했고 포털뉴스나 실시간 검색에 반응을 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트윗에 그럴싸한 문장들을 적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책꽂이에 꽂아만 두는 것과 그것을 읽었다고 굳이 글로 남기는 행위가 다른 것은 후자의 경우 필연적으로 사유 및 사고의 시간을 가져오는데 이 반복적인 행위가 자기도 모르는 통찰력이 되어 문화전반에 대해 서슴없이 떠들게 되는 자신만의 시각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책을 읽고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남기는 사람들의 특성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관해 떠들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책이 유익하지 않았다 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책에 관심있는 분들은 대부분 문화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하에 이 책에 대해 같이 떠들 다른 분들을 만나고 싶다. 글쎄, 나는 문화로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들지는 모르겠으나 문화로 지겹게 수다떠는 건 자신있다. 나같이 문화에 참견하고 싶은 분들의 다르고 새로운 시각을 기다린다. 책을 읽고 또 그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다 반대하다 그렇게 이 생태계를 지속해 나가는 것이 어쩌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의 가장 본원적 소비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나는 될수 있으면 문화로 쓰고 떠들며 살고 싶다. 그것이 먹고 사는 일이면 더 없이 좋겠지만. 죽고 살기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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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9-20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긴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근데 읽다보니 이 책이 안다루는 부분이 없군요. 방송, 영화, 출판, 음악 그리고 스포츠까지..글쎄요. 아마 자세히 다룰려고 하면, 책 한 권 가지고는 절대 모자르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잘 요약정리했을지 궁금하네요. 저는 사실 요즘 오디션 열풍이 썩 반갑지만은 않아요. 금요일 밤이던가요. 방송 3사 및 케이블에서 모두 오디션을 틀어대는데, 이게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하루 왠종일 경쟁하며 살고 있는데, 또 누군가가 경쟁하는 꼴을 봐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아무튼 그와 관련해서 하신 말씀은 공감이 갑니다.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먹히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뭔가 한방을 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겠지요. 단계를 밟는 루트를 결코 뚫기가 쉽지 않으니까. 아니 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여지니까 말이죠.

지금의 영화계도 암울하다기 보다는 그저 사회를 잘 반영한 구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승자독식의 구조이고, 치열한 경쟁이 있고, 그 밑에서 허덕이는 스탭들이 있고, 개봉도 못하고 사라지는 영화들이 수두룩하지요. 물론 뭐 질이 떨어지니까 개봉을 못한다 그러면 할 말이 없겠지만, 그것을 도대체 누가 판단을 하나요. 그렇게 엉망으로 대접하다가, 얘가 좀 한다 싶으면, (자신들이 말하는 소위) 메이저 시장으로 데려가고, 한 편 잘 뽑아먹고, 안된다 싶으면 바로 버리고 그러는 거지요. 그러고는 정부에서는 무슨 컨텐츠 공모 1억원이니 어쩌니 한방주의로 가는거구요. 그 1억을 가져다가 지금 독립영화 재능있는 사람들에 쏟아부으면 훨씬 나을텐데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예전보다 어떤 측면에서는 조금 나아진 게 그모양이라는 게 또 문제가 아닐까요. 독립영화상영관이다 뭐다 많이 생기고 예전보다 여러 경로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루트가 늘어난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만, 아직까지 하는 행태들을 보면, 참 이해가 안되는 것들이 많아요. 글쎄요. 저도 어지간히 MB정부 안좋아하기는 합니다만, 이번 정부의 어떤 문화에 대한 정책들만이 그렇게 문제라고는 얘기를 못 하겠습니다. 잘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많은 문제들이 예전부터 이어져왔던 것들이라는 생각이예요. 그걸 이 정부 탓으로만 돌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석훈 씨가 토건 어쩌구 하는 것은 쌩뚱맞은 느낌이네요. 그걸 꼭 토건이라고 불러야하나? ㅋ)

맥거핀 2011-09-21 16:30   좋아요 0 | URL
우석훈 저자는 뭐 4대강 사업에도 계속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으니, 아마도 MB정부의 토건이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는 모양압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자의 성향도 그렇고, 책의 어떤 내용도 그렇고, 정치적 스탠스가 상당히 담겨 있는 책으로 보입니다(물론 이것은 읽지 않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로지 리뷰만 봤을 때는요). 책 제목만 봐서는 문화산업에 관심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집어들 것으로 생각이 되기도 하는데, 그 사람들이 읽을 때는 조금 쌩뚱맞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합니다.

MB정부가 조금 더 망가뜨린 것은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겠지요. 아마도 이 정부가 문화 쪽에 가지고 있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이야기하자면, 일단 돈 자체를 안쓴다는 점과 문화에 앉혀놓은 사람들이 대부분이 이쪽에 발을 걸치고 있긴 하되, 대부분 상당히 정치적이기만한(그리고 때로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겠지요. 뭐 돈을 아예 안쓴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정부의 문화에서 돈쓰는 방식은 그런 거 같아요. 일단은 내버려 둔 다음에, 자신들의 말대로 하면 치열한 경쟁을 거쳐서 살아남은 자원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 즉 땅은 황폐하게 내버려둔채, 운 좋게 싹이 몇 개 나면은 그 중 튼튼한 놈을 골라서 물을 주겠다는 식(그리고 좀 튼튼해질 거 같아도 싹이 좀 왼쪽으로 큰다 싶으면 밟아버리고..ㅋ). 그런데 일단은 메마른 땅에 날지 안날지 모르지만, 일단 물을 좀 뿌려야 되는 것 아닐까요. 물도 주고 햇빛도 들추고 그래야 뭔가 싹들이 땅을 뚫고 나아갈 희망이라도 가지지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땅이 황폐화된 것도 하루이틀 이야기는 아니다..뭐 그런 이야기지요.

글쎄요. 올려주신 내용만 봐서는 문화로 먹고 살려면 각오 단단히 해야한다. 왠만하면 그런 생각은 안하는 게 좋지 않나 그런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네요.^^;

아이리시스 2011-09-21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보니까 짬뽕 생각나네요! 저는 잘 안 먹지만.. 이 책은 뭐랄까, 저자랑 좀 어울리지 않네요. 소재들은 정말 혹하네요. 한사람님 리뷰로 저는 읽은 것 같아요.^-^

2011-09-21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