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아. 내 생각에,

슬픔을 참는다는 건 말야. 결국 지금보다 더 슬퍼지고 싶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 슬퍼하는 감정을 더 연장하고 싶다는 말. 이 슬픔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말. 그러니까 슬픔을 참는다는 말은 틀린 거야. 참는다는 게 사실은 참지 않겠다는 것이지. 그건 그 슬픔 속에 흠뻑 빠져서 더 분명하고 강하게 슬픔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는 뜻일 테니까.

 

 

잊으려고 노력한다는 말, 것도 틀린 말 아닐까. 더 생각하고 더 그리워하고 싶다는 말을 잊기 위해 애쓴다고 표현할 뿐 실상은 그 전보다 더 많이 떠올리면서 그 사람을 놓지 못하는 것이지. 정말로 사람을 잊고 싶다면 다른 것에 집중을 하면 되는데. 그럼 어느 순간 다른 게 보이게 되고 자연 그 이전의 것은 무어라도 잊을 수 있거든. 그러니까 잊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어진 상태, 내가 잊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흘러가는 시간. 그게 바로 잊는 거야. 잊어 가고 잊혀 지는 거지. 어둠을 벗어나려면 어둠과 싸울 필요 없이 밝은 곳으로 나오면 돼. 절망을 벗어나려면 절망과 마주하지 말고 희망을 붙들기만 하면 돼.

 

 

그러나, 얼마나

어렵고 서러운 일들일까. 한 사람을 놓아버리고 마침내 그 슬픔을 견디고 그 사람을 지우는 일. 내 생각에 말야. 사람의 흔적은 원한다고 해서 지워지진 않는 것 같아. 그냥 간절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새겨지고 마는 것이지. 살다보면 꼭 나만 서러운 계절에 보란 듯이 이별을 할 때가 있잖아. 저마다 자기가 이별한 계절이 제일 슬프다 뒤돌아 울곤 하지. 봄이면 꽃피어 서럽고 여름엔 모두가 초록이니 눈물 나고 가을엔 뒹구는 낙엽 되어 처량하고... 겨울이면 찬바람에 뼛속까지 시릴 테지. 어느 계절인들 헤어지기 좋은 날들이 있을까. 만나기 좋은 날은 있어도, 그래 그런 날은 없는 거야. 사람은 헤어지고 난후 꼭 그날들을 되돌아 보게 되니까... 그리곤 바로 그날이 가장 춥고 외로웠다 기억할 테니까...

 

 

벗아.

가을에,

이 좋은 가을에 당신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헤어졌나.

어떤 사람을 잊는 방법 하나 알려줄까?

 

 

절대로 소설책을 읽지마. 서점에 가지도 마. 혹시 갔더라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시집에 눈길 주지마. 혼자 영화도 보지마. 커피..는 마시되 마실 수 있는 곳에 가지마. 드라마도 보지마. TV를 켜지마. 괜히 머리 스타일 바꾼다고 돈 쓰지마. 놀아줄 친구 들어줄 지인에게 연락도 하지마. 대신, 근사한 트레이닝복을 사는 거야. 아래 위 아베크롬비가 부담되면 짝퉁이라도 좋아. 아직 살을 빼지 않았다고 낙담하진 마. (그러니까 한 사이즈 작게, 알지?) 모자를 눌러쓰고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거야. 비타민 D, 햇빛을 통해 만들어지는 영양소를 듬뿍 공급해야지. 뼈에 바람 들지 않으려면 나가기 전에 비타민이나 칼슘도 꼭 챙겨먹고. 제발 안녕과 이별 노랠랑 듣지도마. 차라리 클래식을 들어라. 가사가 안 들리는 음악 위주로 다운 받아 놓고 걸을 때 반복해서 듣는 거야. 그래 동네 뒷산이 있으면 더욱 좋고 없더라도 동네 한 바퀴 한 시간만 걷자. 혹시나 내가 놓친 사이 문자나 전화라도 왔을까봐 괜히 전화기 들여다 보지마. 다른 사람들 카톡 사진과 메시지 관찰 하지마. 페이스 북 소식 왔다 해도 들어가지마. 그래봤자 모두 나보다 행복해 보일 뿐이야.

 

 

부족해, 부족해. 아침만으론 턱없이 부족하지. 가능하다면 점심에도 저녁에도 하는 거야. 전도연은 아침 먹고 운동, 점심 먹고 운동, 저녁 먹고 운동하고 뻗어서 잔다잖아. 걸으면서 하늘을 봐. 힘들면 땅도 보고, 심심하면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해. 아침밥은 될 수 있으면 많이 먹는 게 좋겠어. 점심은 대충 먹고 저녁은 굶어도 좋아. 배가 고플 것 같으면 잽싸게 잠자리에 드는 거지. 배가 고프면 자연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거든. 내일이 오면 다시... 어제와 같이 반복. 장담하는데 열흘이면 몸에서 청승기운이 빠져나간다. 결국은 상대를 잊기 위한 게 아니고 내 안의 분노, 미련, 아쉬움, 욕심과의 싸움인 거야. 그게 영혼의 노폐물이 아니고 무어겠니. 나를 이길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으니까...

 

 

글쎄.. 그래도 안 되면 다음 방법은 있어. 절을 하는 거야. - 이건 나도 얼마 전에 시작했어 - 나를 괴롭혔던 사람. 내가 미워죽겠는 사람. 내 뜻대로 안 되는 사람. 나를 배신 한 사람, 내가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람. 그들이 은인이로세. 나의 참 모습을 알게 해주어서 얼마나 감사한가 말이야. 사실 우리 그다지 인격이 높은 사람들이 아니잖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들을 향해 절을 하는 거야. 백팔배를 하면서 참회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우리가 잘 아는 고소영을 생각해보자. 그녀도 억울하고 열 받을 땐 절을 했다 잖아. 스트레칭도 되고 마음이 겸손해지지. 어떤 날은... 정말 내 잘못이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고스란히 느껴져서 눈물이 날 때도 있다잖아. 누군가에게 머리 조아리고 엎드려 절한다는 거. 처음엔 그 잊어야 할, 잊고 싶은 한사람만 떠올리며 절을 했는데 점점 내가 잘못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더니 나중엔 아무도 생각 안나고 그냥 이 절을 끝내야 겠다는 생각밖에 안들 게 된다잖아. 그렇게 열흘...한 달...백일을 하자. 장담하는데 다른 사람이 되 있을 거야. 어쩌면 운명도 그렇게 바뀌는 건 아닐까. 슬프게도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다행히도 바꿀 수 있다잖아.

 

 

내가 아는 스님 한 분은 지금부터 절을 하라고 하셔. 자꾸 엎드리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기도 가운데 제일 큰 기도가 절이다. 절을 해보면 밑바닥부터 낱낱이 자기가 지은 허물이 드러나 참회가 안 될 수 없다. 그리고 무릎과 머리와 마음이 땅에 닿으면 무한한 힘과 지혜가 생긴다.

 

108배, 1080배, 3천 배, 만 배 모두 고비가 있다. 스님네 다리라고 쇠다리가 아니다. 나와의 약속이고 부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이겨내는 것이다. 만 배를 해보면 3천배는 그냥 지나가고 7천배쯤에서 죽겠다는 소리가 나온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골인 지점에 와 있다.     - 345p

 

 

 

벗아! 다른 사람. 나 역시 그 이전과는 다른 사람, 그게 그렇게 되고 싶었어. 지금의 나, 현재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겠지.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야. 어느 청춘인들 눈부시고 아름답지 않았던 시절이 있을까. 나는 그저 지금부터, 오늘부터 행복 하고 싶다. 그런데 왜 난 당신들이 생각나는 걸까. 이곳에서의 인연도 내겐 소중한 것이었구나를 새삼 깨우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어. 절대.

 

 

벗아,

마음과 몸이 많이 좋아진 지난주 연휴를 앞두고 책을 하나 샀다. 오랜만에 책을 집어 들었다는 느낌이 들었어. 책의 무게가 새삼 새로웠거든. 요즘 스님 책들이 유행이라서 산건 아니야. 그냥 저자의 일생이 궁금했다고 할까. 서점에서 대충 훑어보니 자서전 느낌이 많이 나서 망설이지 않고 택했어. 집에 돌아와서 다음날 오전까지 놓질 못했어. 아껴가면서 읽는다고 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 혹시 내가 전생에 스님이었을까? - 를 생각해 보았네 - 마치 언젠가 본 적 있는 내 생애를 다시 훑어보는 것처럼 눈물이 났다. 거짓말처럼, 두어 번.

 

 

웃기지? 무엇을 본 것일까... 불필스님은 내 어머님 세대야. 어머니가 자신을 임신했을 때 아버지가 출가하시는 바람에 어린 시절 아버지 얼굴도 제대로 본 적이 없대. 아버지(성철스님)를 끝까지 큰스님으로 부르더라... 내 소견인데 책을 통해 성철스님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건 역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생각되. 불필스님은 다른 스님들 이야기 할 땐 참 다정하다가도 어머니, 아버지 부분만 나오면 짠할 만큼 냉정하더군. 글로만 보면 지독히도 남 이야기를 하는 듯 했어. 모질게 세속과 인연을 끊어야 했던 마음이 글에서도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앞부분 가족사 이야기 할 땐 꼭 故 박완서 작가 생각이 났어.-문체 느낌이 아주 비슷해- 가족의 죽음, 전쟁과 피난을 몸소 겪으신 소회를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는 그 모습이... 말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 모든 것이 다 상대유한으로 되어 있어서 모순에 모순으로서 투쟁의 세계이다. 이 투쟁의 세계에서 일시적으로 행복을 얻었다 해도 곧 끝이 있고 만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이상 일시적인 행복에만 만족할 수 없으니 당장 한 시간 후에 죽더라도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니, 이것이 영원한 행복의 추구라고 볼 수 있다. 영원한 행복을 상대유한의 세계에서는 이룰 수가 없으니 절대무한의 세계를 구상하고 거기 가서 영원한 행복을 받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종교의 근본 뜻이다. - 성철스님 해인사 백일법문 중에서 - 52p

 

 

불필스님은 영원한 대자유인이 되고 싶어 스님이 되기로 했대. 내용은 주로 어떤 수행과정을 거쳐 왔는지에 대한 기록이야. 마치 내가 스님 될 입장이라면 멘토가 전하는 하나의 총체적인 입문 가이드 같기도 하고. 그런데 불필스님은 유난히도 ‘죽을’ 각오로, ‘죽을’ 힘을 다해, ‘목숨’을 걸고서, 같은 말씀을 많이 해. 출가도 수행도 모두 목숨 걸고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말이야. 이거 못하면 나 죽는다, 안되면 끝내 죽고야 말겠다는 심정이 아니면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말야. 살면서 목숨 걸면서 하는 게, 우리 무엇이 있었더라. 공부? 사랑? 출산? 참으로 몇 마디 떠올리지 못하면서 고개를 숙였네. 무엇 하나라도 목숨을 걸었던 적 있었나 싶어서.

 

 

근데 도대체 도인의 경지란 어떤 것일까. 우리 흔히들 도를 깨쳤다고 말하잖아... 자신의 공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는 말씀을 옮겨 볼께.

 

 

공부가 아무리 잘되는 것 같아도 꿈에 되지 않는 공부는 공부라고 말할 수 없다. 꿈에도 공부를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이 된 때 비로소 조금 공부를 하게 되는 때다. 아무리 크게 깨쳐서 법을 다 잘 알아도 잠들어 캄캄하면 죽어 몸을 바꾼 뒤에는 다시 캄캄하여 다 잊어버리고 생사고를 도로 받게 된다. 아무리 잠이 깊이 들어도 밝음과 어둠을 뛰어 벗어난 절대적 광명이 항상 밝아 있는 사람이라야 천 번 만 번 몸을 바꾸어도 영원토록 어두워지지 않고서 생사고를 받지 않고 큰 자유와 활동력이 있는 것이다. 이 절대적 광명은 천만 부처님이 설명할래야 할 수 없으며 가르쳐 줄래야 가르쳐 줄 수 없다. 오직 공부를 해서 실지로 이것을 깨친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참으로 묘하고 깊은 진치(眞致)다. 잠들어도 항상 밝아 있는 절대적 광명을 얻기 전에는 화두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니 그 전에 혹 아는 생각이 나더라도 그것은 바로 안 것이 아니니 그런 생각은 속히 버려야 한다. - 성철스님, 158p

 

 

쉽게 말해서 일상, 몽중, 숙면에도 정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경지라는 거야. 깊게 잠들어 있으면서도 화두를 놓지 않고 있는 상태란 어떤 지경일까. 스님들은 말하지. 모든 꿈은 바로 자신이 잉태해 조작한 것이라고. 잠들어도 밝아 있어야 죽어서도 어둡지 않고 영원토록 자유롭다는 것이지. 자유란 어쩌면 어느 절대적인 한 가지에 대한 절대구속은 아닐까. 다른 세상이 없으니 비로소 자유롭게 느껴지는 게 참 역설이지...

 

 

진주 사범학교를 졸업한 재원이 스무살 출가하여 스님은 이제 일흔 여섯이 되셨어. 불필스님은 하나둘 같이 정진했던 스님들이 입적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마지막을 차분히 준비하시는 듯 했어.


“견성할 때까지 평생 좌복에 앉아 있다 죽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생전의 성철 큰스님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다. 심검당에서 살다 조용히 가고 싶다.  - 불필스님

 

 

불필(不必)이란 무슨 뜻일까. 왜 하필 불필이었을까. 성철스님은 ‘세상에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도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어주셨대. 참... 세상뿐 아니라 불법에서도 버림받은 사람,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영원한 자유를 성취할 수 없다고. 순간 숙연해지는 말씀이었어. 속세의 인연에선 우리 얼마나들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몸부림 치는가 얼마나한 확인을 하려고 애쓰는가 해서 말야.

 

 

벗아,

마음 같아선 내 이 책을 당신에게 당장 보내고 싶은데 이번엔 그러지 않기로 했다. 향기가 너무나 은은해서 조금 더 곁에 두어야 겠어. 당신도 이 향기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 안보이는 곳에서도 서로 향기로 마음 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제 본 보름달은 여전히 밝더구나. 나만 그런 것인가 한가위 보름달은 다른 달보다 더 크고 빛나보여. 아마 더 큰 희망을 품고 바라보아서 그럴거야. 무엇이든 당신의 바램을 응원해. 내가 당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 당신의 꿈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우리 언제라도 반가운 벗이라는 게 감사하다는 것, 이 말하고 싶어서 이리도 서가 길었네. 서운했다면 이 글로 대신할께요, 나의 벗님들.

 

 

 

 

 

 

 

덧)

 

“일체의 불행과 불안도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에만 있을 뿐이다.”  - 성철스님

몰스킨 노트에 슬쩍, 이 구절을 적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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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2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10-03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고즈넉한 가을 달밤이에요.
달도 별도 하늘도
모두 우리들을 따숩게 보듬어 주네요.

2012-10-04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4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8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10-19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해준 얘기와 마음)는 정말로 고마웠어요.
이 책은 언젠가 읽어볼 거예요.
그동안 잘 지내셔야 돼요^^

루쉰P 2012-11-2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 정말 정말 오랜만에 왔어요. 근데도 여전히 변함없이 좋은 글 올리셨네요.~
전 또다시 시작합니다. ㅋ 한사람님도 화이팅!!

보물선 2012-12-3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2012년 말일이네...

잘 지내지??
요즘은 어디에도 통 안보여서 더욱 궁금하기만 했네!
똑같은 하루지만, 그래도 한해가 가고 한해가 오는 걸 마련한 선조들의 지혜에 감사해.

친구하자 그래놓고 그렇게 꼭꼭 숨어있기 없기~
2013년엔 청승의 기운을 다 떨치고, 비상하는 한해가 될 수 있길 바래. 너두, 나두!
 

 

 

#1. 근황

 

 

 

글을 왜 안 올리냐는 질문에 해당하는 안부 인사를 받는다. 근 한 달 이상 아무 책도 안 읽으며 글도 쓰지 않았던 이유를 나 자신도 설명하긴 곤란해 그때마다 그냥요, 서재가 싫어져서요, 좀 노느라구요, 이런 식의 대답을 돌려가며 막았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당분간은 달라지지 않을 듯한 걸 어떻게 하나.

 

매일 서재에 들어와 이웃의 글을 확인하고 새로 나온 책을 검색하고 무슨 새로운 소식이 없나 기웃거리던 일상을 때려 친 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넘었다. 대신 온라인이 아닌 오프의 지인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책을 덮고 사람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시발점이 된 건 아무래도 내 스스로 글에 대한 진정성의 여부에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인 듯. 내가 회의를 느끼니 꼭 나 같은 사람만 보였달까. 사람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를 보면서 통감한지 오래지만 대상이 타인이 될 경우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일치하지 않는 정도가 이해의 범위를 넘어설 때 그리고 그 현장을 똑바로 확인할 때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만큼 나는 내공이 쌓여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더 이상 리뷰를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책과 관련한 어떤 글도 끄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다. 아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았다. 책에 화가 난 것인지 글에 마음이 상한 것인지, 책 읽고 글 쓰는 사람들이 싫어진 것인지 마음은 좀처럼 돌아오질 않았다. 모두 거짓말 쟁이라는 생각과 자기 합리화로 일관하는 위선자, 글이라는 무기로 우아하게 타자를 짓밟는 무서운 사람들, 앞과 뒤, 속과 겉이 다른 서늘한 사람들, 온라인에서 중독과 집착으로 존재감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나 역시 다를 건 하나 없는 비루한 나날들. 이런 시간과 작업들이 더 이상 재미가 없어졌고 따라서 다른 재미난 사람과 그들의 글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건 말건 당신의 글을 쓰세요, 이렇게 충고한다면 할 말은 없다. 모든 건 내 탓이다. 무언가 해온 것도 무언가를 느낀 것도 모두 나이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는 한, 사람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력의 여부는 이성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다분 감성의 결과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이곳에서 글로만 비슷한 생김새, 비슷한 생각, 비슷한 이야기에 공감을 하였다고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판단하는 건 대단한 착각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사람은 그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뿐이지 그 다음 그 사람에 대한 이성적, 합리적인 의견은 좋거나 싫기 때문에 불과한 파생적 나머지, 부연의 사족 일뿐이다. 우리의 이성은 절대 직관을 이기지 못한다.

 

 

#2. 글과 생각 

 

 

 

그나마 이곳을 떠나 최근엔 - 근 보름에 걸쳐 - 거북이 걸음으로 한권의 책을 겨우 읽은 적이 있다. 이곳에서 떠밀리듯 자리를 떠난 이웃분이 글을 계속 써야할지 고민이라는 말에 한번 읽어보라 전해주신 책이다. 제목도 의미심장한 <칼 같은 글쓰기>.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상대에게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그랬다 하여도 상대가 모두 이해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실 어려웠고 보편적이지 않았고 저자의 다른 소설을 하나도 읽어보지 않아 그저 상상만 할 뿐이었다. 나는 어쩌면 나와 비슷한 이유를 찾아보려 했는지 모르겠는데 비슷한 것 같다가도 그 철학적 깊이에 가끔 내 주제를 깨우치곤 했달까... 어떤 일을 왜 하는지 스스로에게 조차 설명, 설득할 수 없다면 타자에게 떠드는 이야긴 모두 그들이 원하고 익숙해 하는 잡담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나의 글쓰기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기억나는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

저는 말이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결국 선택과 행동이라고 봅니다.

 

말하고 싶은 욕구, 글을 적어 알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는 뜻은 무언가에게 화가 나 있다는 말과 같다. 마음을 닫으면 입을 답고 손을 접는다. 그래봤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말하고 싶지 않았고 쓰고 싶지 않았다고 또 떠들게 분명하면서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사람의 한계일까. 마치 화해하고 어차피 또 만나게 될 걸 알면서 싸운 연인에게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은 방황 중, 지금은 고독 중, 지금은 반성 중, 지금은... 이별 중... 다음은 선택과 행동이 차례인 것이다.

 

하지만 뜻 모를 이야기도 도움은 된 것 같아 책을 덮으며 가슴이 넓어진 느낌은 들었다. 그가 왜 하필 이 책을 읽어보라 했는지 이해할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일만 글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책으로 마음을 건넨 그는 정작 이곳을 사랑하고 이곳에 의지했기 때문에 다시는 글로써 돌아 올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옛친구 하나는 자존심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었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건 현재 내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온라인 생활도 십 오년 정도 되었을까. 경험상 글로 받은 상처는 내 생각에 완전 회복은 불가다. 영원한 상흔에 가깝다. 만나서 얼굴보고 욕설을 들은 것보다 오래간다. 마음에 새겨지는 화인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면 아무렇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보면 구경꾼인 사람도 마술을 보고 죽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보고 들은 것, 말하고 뱉은 것은 없었던 일이 되지 못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흘러 다른 좋은 일들이 그의 가슴에 우리들 머리에 채워지길 기원한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은 경제 이야기엔 주저하지 않다가도 정치 쪽으로 가면 선뜻 발언하길 주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말부터 신문엔 안철수의 책 출간소식과 의미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문자가 날아온 날 저녁에 주문을 했더니 - 책을 산 이유는 순전 등떠밀려서... 네가 빨리 읽고 전해달라는 압력에 의해서 - 몇 시간 후 새벽에 배송을 했다는 메일을 받았고 다음날 아침에 책을 받았다. 알라딘에서 주문하고 가장 빨리 받아본 듯하다. 더불어 일개 독자로서 안철수의 책이 어떤 국가적으로 전사적인 프로젝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를 예상하기 보다는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태도와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보았다. 예를 들면 무슨 일을 결정할 때 나름의 원칙이 있다하면 그건 어떤 기준일까 하고. 누군가에게 충고를 할 때 어디서 주워 들은 말이 아닌 자신의 경험에서 체득된 가르침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건 누구도 틀렸다 말할 수 없는 부분인데, 우린 공감하지 못한다 해서 너무 쉽게들 비판하고 사는 건 아닐까... 단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의미 있고, 열정을 지속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가' 의 세 가지만 생각했고 성공가능성은 고려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회사를 그만두려고 할 때 존경하던 한 분이 간단한 문제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회사를 그만두려는 이유가 돈 때문인가, 사람 때문인가, 일 때문인가를 냉정하게 돌아보라고 했다. 이 세 가지는 결국 다른 회사를 선택할 때에도 중요한 문제이며 사람은 월급, 인간관계, 일의 재미중 하나만 만족해도 그런대로 버티며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세 가지는 결국 내가 어떤 사항을 가장 중요시 하는지 역으로 알 수 있게 한다. 대부분 나는 일이 재미없어진 이유가 인간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이만큼 했기 때문에 상대에게 원하는 바가 생겼던 것인지 모른다.

 

'의미 있고, 열정을 지속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가'를 자문해 본다.

 

의미부여는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진부한 답을 떠올린다. 그러나 열정의 지속은 관심과 재미가 없다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열정 없이 잘하길 기대한다는 건 명백한 욕심이다. 원래부터 잘할 수 있었다 해도 언젠가는 못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잘하고는 결과의 우수성이 아니라 시작에의 자신감일 것이다. 시작이 반인데 그 시작의 발걸음이 매번 무겁다면 언젠가는 지치게 된다.

 

여름까지는 좀 더 더워볼 생각이다. 더 놀아볼 생각이다. 더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다. 혹시나 휴가를 앞둔 이 여름,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분이 있다면 그분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분들이 나를 응원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그렇게 생각을 했으면 뭐라도 선택하고,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건 안철수도 김철수도 예외는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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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2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2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07-23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 즐겁게 누리셔요

2012-07-23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