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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위로
앤터니 스토 지음, 이순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0월
평점 :
깊은 위로를 받았다. 많다고 하지 않고 깊다고 하는 이유는 이 책이 아주 은밀한 속살 너머 저 깊고 깊은 그곳에 숨겨둔, 내 오래된 두려움에 가닿았기 때문이다. 책을 잡은 지는 꽤 되었는데 이제야 리뷰를 쓰는 이유도 그 깊은 여운을 조금 더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은 덮고 나자마자 글을 쓰면 내 속에 들어왔다가 시원하게 통과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통과한 후 책꽂이에 꽂혀지면 나는 뒤돌아 후련한 마음이 든다. 다음 적어도 마음에 새겨진 무늬정도는 기록을 한 사람이 되어 그 책에 대해 아는 척을 하고 싶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 책은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이 책은 기대만큼은 아닙니다. 이 책은 의외로 유익하네요. 이 책은 명불허전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지 않고 나 혼자 비밀을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이십 년 전에 출간된 이 고전 한 권이 무슨 큰 비밀이라고 나는 내 속내를 감추고픈 속속내와 마주한다. 아무래도 나는 고독이 꽤 좋았던 사람인 모양이다. 이 책은 은둔과 고독을 자처한 나를 위해 나타난 구원자처럼 기품 있고 당당하다. 그런데 다른 구원자처럼 자신의 손을 잡으라 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도 좋은 것이라 말했다. 다르게 살라고 충고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이 늦게 본 자식에다가 그 시절 흔치 않은 외동이였다. 친구들은 혼자서 방을 쓰는 것을 굉장히 부러워했고 학교 다닐 땐 우리 집에(정확히는 내 방에) 머물다 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살면서 많이 받아본 질문 중에 혼자여서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이 꽤 많았던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외로운 것이 무어냐고 자주 되받아 물었다. 정확하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고 형제가 없었던 나로선 혼자 있는 것의 장단점을 비교해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혼자여서 심심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육아의 고단함이 아니고 도무지 혼자인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혼자서 영화도 잘 보고 밥도 잘 먹고 여행도 잘 간다. 아파트 뒷산에 우두커니 앉았다가 돌아오는 벤치도 있다. 뒷산-도서관-벤치와 영화관-서점-카페는 아이 데리고 마트가는 만큼이나 빈번한 코스이다. 살면서 외로움이라는 건 이런 것이구나를 뼈저리게 느낀 적은 딱 한번, 엄마의 장례식 날이었다. 아버지 돌아 가신 후 엄마마저 떠나는 날은 그동안 혼자 누리고 받았던 모든 사랑만큼이나 무지막지한 슬픔도 온전한 내 몫이었다. 나는 아마 죽는 날까지 그때 느꼈던 외로움을 떠들다가 갈지도 모른다.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그 정도의 외로움을 느끼는 날은 내가 죽는 날 정도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마치 인생외로움의 필수 코스를 그런대로 이수한 사람처럼 마음이 편하고 혼자할 수 없는 숙제를 마친 사람처럼 그 어떤 외로움에도 두려움이 없다. 물론 ‘혼자서도 잘해요’가 꼭 고독을 즐기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혼자인 시간을 무척 사랑하는 부류의 사람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니 어찌 ‘혼자 있는 능력’ 을 말하는 이 책이 눈물겹지 않겠는가.
‘혼자 있는 능력’ 이란 사무치게 외로와 죽겠는데 이 악물고 고독을 잘 견디는 능력이 아니다. 혼자 있는 동안 각자의 뇌에서 최고의 잠재력이 발휘되는 기특한 순간의 능력이다. 즉, 혼자 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진행되는 정서변화가 어떤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혼자 있는 건 능력이 된다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예를 들어 고독이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발전시켜 창작활동에 기여한다면 그때의 고독은 능력이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작가, 음악가, 철학자의 삶을 예로 들고 정신분석 및 통계자료를 통해 창조과정, 개인화 과정이 고독 속에서 더 잘 내면화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극단적인 예로 칸트와 비트겐슈타인, 뉴턴 같은 천재는 가정을 이루지 않았고 가까운 인간관계도 만들지 않았고 금욕적인 생활에 몰두했다. 이들은 모두 철저하게 일과 연구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았지만 그들의 인생이 꼭 불행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타인과의 친밀한 애착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의 삶이 꼭 불완전하거나 열등한 것은 아닌 것이다.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인간관계에서 찾을 것인가 내면화된 고독 속에서 찾을 것인가는 개인의 성향과 선택일 뿐 어느 한쪽이 정답이거나 다른 쪽이 비정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었다.
우리 모두는 예술가가 아니기 때문에 저들의 고독와 우리의 고독은 질적으로 다르다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 역시 행복을 가르치는 많은 서적과 사회학 통계치로부터 대부분 노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라는 충고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내가 아는 행복론에서 건강한 노년은 적어도 고립된 삶이 아니라 이웃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정원을 가꾸는 인자한 모습이다.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것은 사회성이 떨어지는 인물로서 조직에선 거의 치명적인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저자는 한마디로 인간관계의 완성도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리라고 말한다. 혹시나 인간관계가 소원해졌다고 필요이상으로 불행해하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꼭 친하지 않고 형식적, 피상적인 관계도 일상에선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 이 나이 되도록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하나 없는지 왜 회사에선 터놓고 고민을 이야기 할 동료가 없으며 왜 그 흔한 학교 선배하나 남지 않았는지 자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시간에 현실세계라는 외부 대신 상상이라는 내면세계를 잊지 말고 그 속에서 불운에 맞설 수 있는 내적 능력을 기르라고. 고독은 현실로부터 외면당한 절망의 공간이 아닌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라고.
그러니까 이 책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고독과 창의성을 연계시킨 지점이다. 창의성이라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우울증에 취약하다는 결과와 만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우울증과 어린 시절과의 상관관계를 밝힌 것이다. 부모의 상실, 결핍 등으로 어린 시절 혼자 있었던 아이들이 상상하기를 즐기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싹트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성장한 사람 중 다수는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껴 고립된 시간에 놓이게 된다. 유전, 환경적 우울적인 기질은 강박증이나 신경쇠약, 분열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발전될 수 있다. 그러나 정신병적 요소는 다시 자극제가 되어 내면 깊은 곳을 탐험하고 갈등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상실과 고독은 창작의 가장 확실한 배경이 되고 다시 창의력을 가진 사람은 상실을 치유하며 고독을 내면화하는데 성공한다. 고독한 사람은 상상하고 상상하는 사람은 창조하고 창조된 세계는 자신은 물론 친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위로를 선사한다. 이른바 고독의 선순환 과정에 대한 치밀한 보고서인 것이다.
저자는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하면서도 친밀한 관계 맺기를 두려워했던 카프카의 삶에서 글쓰기를 언급했다. 분열적인 카프카를 치명적인 고독과 창의성을, 창의적 재능과 우울증의 본보기로 제시했다. 카프카는 누군가 곁에 있으면 자신의 나약한 정신구조가 무너질까봐 -글을 못 쓰게 될까봐 -연인을 거부하고 두려워했다. 카프카에겐 가장 필요한 사람이 가장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카프카를 보면서 간혹 가족이 없어야 글을 쓰는 사람과 가족이 있어도 글을 쓰는 사람과의 차이를 생각해보았다.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도 정도가 있듯이 예술가도 고독에의 완성도에 집착하는 정도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절대 고독에서만이 절대 작품이 탄생한다고 믿는 예술가는 아마도 더 간절히 사랑을 원하고 그래서 혹 자신의 재능이 그 사랑으로부터 파괴(패배)당할까봐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친밀한 관계는 자기 창조의 동력을 앗아간다는 것을 천재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쩌면 오랜 고독과 그 속에서의 집중이 내면의 재능을 이끌어 낸다면 그것은 인간관계가 해야 할 역할을 대신하려는 개인의 보상기제일수도 있겠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보다는 내면의 관심사에 더 몰두하게 된다는데-이는 죽음이 가까워지므로 이별을 준비하는 자연스러운 자세가 아닐지-우리는 나이들어 이웃과 교류하나 없는 어르신들을 고집불통의 노인네라 속으로 흉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면 정서적으로 성숙한 것이고 혼자 고독하게 지내면 병적인 것이라 구분해 오진 않았을까. 하지만 이 책이 그렇다고 창조적 삶을 위해 고독하게 살라는 뜻은 절대 아니라 부연하고 싶다. 어쩌다 보니 찾아온 고독을 지속적으로 즐기는 방법을 말하는 것도 아니라 말하고 싶다. 누구든 지금 고독하다면 고독을 깊숙이 내면화하고 그것에서 생성된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투사할 가능성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가능성이 글이 되었건 음악이 되었건 자기 고독을 치유하는지도 모르고 상상력은 고독을 입체화해 줄 것을 믿어 보라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새로운 통찰을 얻는 순간, 다시 말해 새로운 발견을 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혼자 있는 순간 이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라 해도 대개는 그렇다. - p20
우리는 베토벤이나 칸트는 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고독하다. 가끔은 고독하고 어쩌다 고독하고 불현듯 고독하고 그리고 자주, 쓰리게 고독하다. 상대가 나와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독하고 알아도 어쩔 수 없어서 고독하고 어떻게 해준다 해도 고독하다. 아마 죽는 순간 가장 절정의 고독이 완성되겠지만 어차피 고독으로 완결될 거 기왕이면 긍정의 고독, 생산의 고독이 더 그립고 절실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외롭지 않았던 것이 아니고 그 외로움을 비교적 잘 내면화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외로우면 지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고독이야말로 고독을 이기는 가장 분명한 방법이었다. 나는 이제 어느 비오는 밤 당신이 고독해보여도 혹은 당신이 그 빗소리에 고독하다 외친다 해도 당신을 가엾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고독은 슬픔이나 절망이 아니다. 고독은 고독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할 수 없는 희망이요 기쁨이다. 당신의 고독을 늘 질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고독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제대로 고독할줄 아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나도 몰랐던 내가 맞는다고 하는데 슬며시 미소 짓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디 당신의 고독위에 나와 같은 반가운 미소가 사뿐히 내려앉기를. 우리는 고독한 이 밤이 가장 좋은 사람들이니까...
덧붙임)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짧은 리뷰도 처음이고
줄이는 것도 힘들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