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뭐해?
역시 답이 없네... 왜 가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카페에서 아침부터 혼자 중요한 일 있다는 듯이 커피 한잔 시켜놓고 앉아 있고 싶을 때 있잖아. 그러니까, 귀에는 이어폰을 낀 채로 옷은 막 운동 끝나고 들어 온 느낌으로 모자도 쓰고 선글라스는 물론이요 나름 메이커 운동화도 신고 말야.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하늘이 진짜 파래서 산책하다가 그러고 말았어. 막상 그러고 앉아 있으니 뭐 생각한 만큼 별다르진 않더라. 이 시간에 한가하게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그런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더라구.
사실은 24시간 오픈하는 카페에 사람들이 노트북 가져와서 숙제나 자기 할 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나도 슬쩍 답사 나왔어. 요즘 그 핑계로 여기저기 카페만 기웃거렸지. 은근 카페에서 정해진 시간에 와서 소설 쓰는 작가들이 많다고 하더라. 은희경은 새로 소설 쓸 때면 꼭 집 떠나 새로운 공간을 찾는대. 새 노트도 사고 손톱도 깎는다지. 어떤 작가는 꼭 아침에 운동을 하고 와서 글을 쓴대. 근데 나는 왜 집을 나가면 그대로 어디로 떠나고만 싶지 글 쓸 생각은 나지 않을까... 하하. 운동하고 나면 배만 고프고 말이지.
보고싶다. 언니야. 언니도 이 좋은 가을 하늘을 보고는 있는 걸까. 나 오늘부터 다시 글을 시작하기로 결정했어. 다시 이 마음이 생길지 나도 궁금했는데, - 사실 그래주길 간절히 바랬지만 말이야 - 세상에 언제 그런 맘이 들었는 줄 알아? 아까 카페에서 심심해서 직원에게 볼펜을 빌렸지 뭐야. 가방을 뒤지는데 하필 은희경 노트가 나오는거야. (사은품으로 받은 그들 노트 채우려면 대체 얼마나 걸릴까) 어쩌다 무심코 펼쳤는데 그만 옛날 일을 보게 될 때 있잖아. 거기 끙끙대는 내가 귀엽게도 앉아 있는 거야. 그런데 빌린 볼펜이 생각외로 너무 잘 써지는 가운데 다시는 돌려주기 싫은거야. 마치 돌려주지 않으면 그대로 뭐라도 마구 쓸 수 있을 것 같은 이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 웃기지? 그때 깨달았어. 바로 지금 이순간이구나. 지금부터 글을 쓰고 책을 들치면 되겠구나. 그 지금을 기다렸고 그 지금이 다시 올 줄은 알았지만 그게 언제인지 많이도 두려웠거든. 아니 그립고 아련했거든.
새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에 꼭 하는 일이 두가지 있어요. 집 떠나 새로운 공간을 찾는 일과 손톱깎기. 익숙한 공간에서는 뻔한 생각 밖에 안 떠올라서 떠나는 거구요. 그리고 손톱이 길면 갑갑해서 자판을 치지 못하거든요.
덧)
근데 어쩌지. 난 반대로 손톱이 없으면 자판을 칠 때 너무 투박하게 느껴져서 싫던데. 손톱을 바짝 깎아 버리면 마치 쌩얼이 된 것처럼 부끄럽단 말이지. 볼펜 돌릴 때도 손톱이 있어야 감각이 예민하고 분명해지거든. 역시 작가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야. - 작가 손톱이 좀 아트 적이면 안되나 - 그나저나 오늘 저녁 반찬은 뭐할거야? 난 집에 오면서 닭한마리 사 왔네. 오랜만에 닭볶음탕이나 해 먹으려구. 가을 하늘 본 김에 소주나 한잔 해야지. 글은 언제 쓸거냐구? 하하, 다이어트와 글의 법칙은 변함없이 매 한가지. 언제나 내일부터. 그럼 오늘은 이만. 소주 생각나면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