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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부  

 

나는, 잘 있어요.
당신도 잘 있나요?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날이 있죠.
울었지만 웃고 있다 말하게 되는 날이 있죠.

고맙고도 그리워요.
이 모든 가을에 울고 있을 당신들이.

인연은 행운이 아니라 생각하고
인간은 불운의 존재라 생각해요.

나는 행운도 불운도 바라지 않지만
인간이기에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인연에 손 내밀지 않던 내게 마음을 열어준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도 가을이 많아 아팠던가요.
그래서 누군가의 가을을 기꺼이 안아줄 수 있었나요. 
 

 

 #2. 지나간 시간  

 

 <그해 가을>에 이성복 시인은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라 말했던가요. 오랜만에 시집을 빌렸어요.   

 왜 하필 이 시집이었냐 하면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덕분이었죠. 이 책의 리뷰를 근사하게 써 볼 생각이었거든요. 하지만 이제 리뷰는 쓸 자신이 없어요. 바보같지만 써지지가 않을 듯해요. 대신에 책을 정말 열심히 읽었답니다, 하하. 강신주 교수는 첫장부터 이성복 시인을 소개하고 있는데 저는 그만 이 시집에 빠져버렸어요. 그중에 저를 가장 울게 하던 시를 적어봅니다.  

 


< 이제는 다만 때 아닌, 때 늦은 사랑에 관하여 > 

이제는 송곳보다 송곳에 찔린 허벅지에 대하여 
말라붙은 눈꺼풀과 문드러진 입술에 대하여 
정든 유곽의 맑은 아침과 식은 아랫목에 대하여 
이제는, 정든 유곽에서 빠져 나올수 없는 한 발자국을
위하여 질퍽이는 눈길과 하품하는 굴뚝과 구정물에 흐르는
종소리를 위하여 더럽혀진 처녀들과 비명에 간 사내들의
썩어가는 팔과 꾸들꾸들한 눈동자를 위하여 이제는
누이들과 처제들의 꿈꾸는, 물 같은 목소리에 취하여
버려진 조개 껍질의 보라색 무늬와 길바닥에 쓰러진
까치의 암록색 꼬리에 취하여 노래하리라 정든 유곽
어느 잔칫집 어느 상갓집에도 찾아다니며 피어나고
떨어지는 것들의 낮은 신음 소리에 맞추어 녹은 것
구부러진 것 얼어 붙은 것 갈라터진 것 나가 떨어진 것들
옆에서 한 번, 한 번만 보고 싶음과 만지고 싶음과 살 부
비고 싶음에
관하여 한 번, 한 번만 부여안고 휘이 돌고 싶음에 관하여
이제는 다만 때 아닌, 때 늦은 사랑에 관하여 

(112p 책의 본문과 똑같이 옮겼어요. 아직도 띄어쓰기를 이해 못하겠어요.)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에는 문정희 시인도 소개되어요.  고백을 하자면  80년대 사춘기를 보낸 제가 기억하는 시인은 서정윤과 도종환이 마지막이래요.  어쩌다보니 여간해선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일절 읽지 않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런 제가 유일하게 가슴에 품은 시집이 문정희 시인의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이다>입니다. 일년에 시집 한 권 안사는 주제에 시인을 존경한다 말한다면 염치 없음을 아는 제가 촌스럽게 들쳐보는 유일한 시집이지요.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으면 이상하게도 잘 못 외우는 시지만 그래도 입에서 맴도는 문정희 시인의 시가 생각나요.  


< 목숨의 노래 >  

너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

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엄마의 젖가슴같은 시이죠. 매년 습관처럼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려 할때 꼭 이 시집을 만지작 거립니다.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에서 한용운의 시와 함께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 소개됩니다. 미루어 두었던 <사랑의 단상>을 다 읽고는 뒤늦게 베르테르의 자살에 깊은 애도를 했습니다. 많이도 사랑하고 싶었던 것인지 저는 그만 제가 아는 사랑을 떠들고 싶어 소설을 써야겠다 아주 무책임한 결심을 다하게 되었어요. 정말 좋더군요. 어줍짢은 제 언어로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예, 저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어요. 내가 아프듯 그도 아플 것이라는. 내가 사랑이었다면 그도 사랑이었을 것이라는. 그래서 우리는 아무 말할 수 없다는.

   

 

#3. 가을을 닦다

 

저는 요즘 도올 서생의 <중용 인간의 맛>을 읽고 있어요. 아주 아껴가면서 페이지를 넘겼는데 얼마남지 않았어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아주 교양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하하. 도닦는 기분도 들고요. 해설이 아주 재미나고 쉬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이쪽과 저쪽의 중간이 중용인지 알았던 제 무지가 참으로 부끄러웠답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밑줄긋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생각같아선 두어줄 옮겨 놓고 싶지만, 그것도 저어하게 되네요. 저자의 주장과 논리가 좋다고 그것에 감동받았다고 하는 것이 제게는 어떤 트라우마가 될 듯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요. 시간이 지나야 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
쓸쓸하고 가끔은 서럽지만 

아직은 괜찮습니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인 걸요. 

이번 겨울엔 첫눈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첫사랑이 그리울 것 같아서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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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1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게 물들었네요. 잘 지내시죠?
안부를 듣고서 안부를 묻는, 아이러니한 상황 :)

한사람 2011-11-12 08:44   좋아요 0 | URL

예, 단풍이 질 때 까지만요^^
수다쟁이님도 좋은 가을,기쁜 주말 이여~

아이리시스 2011-11-12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을 사지 않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읽어낼 자신이 없어서이고 내면적으로는 시집은 시가 어려운 줄 모를 때 막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읽히면 그건 시가 아닐 것 같거든요. 저한테는 그게 벽이고 그 벽은 한때 글을 쓰고 싶던 사람으로서 허물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요. 좋으면 더 좋아하는 티를 못 내겠는 그런 마음. 언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없어요. [사랑의 단상]을 읽을 때 베르테르보다 사랑보다 먼저 느껴진 건 그거였어요, 한사람님.

예, 저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어요.

이미 다 알고 계실테니까요.^^

한사람 2011-11-12 08:47   좋아요 0 | URL

일년에 두어권 시집을 읽는 것 같구요.
그러다 우연히 가슴을 때리는 시를 만나는 것 같아요.
그럴때 무심했던 마음이 부끄럽지요.

<사랑의 단상>은 짜릿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다 느낄지라도 그런 글은 본적이 없었어요 ㅋ

아무 말 할수 없다는 말이라도 들어서 좋은걸요^^

이진 2011-11-12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정희 시인의 시, 너무 좋습니다.. 원래 시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 감성적인 알라디너분들 덕분에 시에대해 관심이 팍팍 생기는것 같은걸요? [이제는-]이라는 시는...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되는군요. 해설집이 따로 없나요 ㅎㅎ

한사람 2011-11-12 08:50   좋아요 0 | URL

하하, 저도 다는 이해 못했어요.
다만 볼드로 눌러쓴 부분은 무슨말인지 어떤 기분인지 알것 같아서요 ㅠ
강신주 교수가 '정든 유곽'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시네요. 시집 뒷부분에도 해설이 있구요..

한 편의 시와 거기에 사용된 단어들은 시인의 삶을 알지 못하고선
이해는 불가능하다고 봐요. 그래서 전 늘 오독하는 독자랍니다^^

2011-11-12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2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3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3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1-11-1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하게 쓸 예정이었던 리뷰... 아쉽네요ㅠ 저는 요즘 잘 못지내고 있지만.. ㅎㅎ 저는 이번 겨울이 왠지 옆구리가 시릴 것 같아서 싫구먼요, 풋

한사람 2011-11-13 20:59   좋아요 0 | URL

어떤 일을 중단하게 되었을때 그 일에 쏟아지던 에너지는 반드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봐요 ㅋ
이제 숙제같았던 리뷰쓰기(?)에서 벗어나 다른 글을 쓸수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려구요

내일부터 추워질거라네요. 월요일부터 추워지는거 정말 싫습니다.
마음을 먹어야 하는 아침이 싫어요 ㅋ

2011-11-17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7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형.

내일이면 이십년이네요.
세월의 힘은 이런 걸까요.
언제나 숫자를 말하고 나면 갑자기,
웃으면서 눈물이 나죠.
그제서야 시간의 단위를 통과해 무언가 쌓아왔음을, 아니
무언갈 버려왔음을 깨닫는 순간이니까요.

 

기억나나요.
1991년 7월 19일.

휴가를 먼저 다녀오는 편이 좋겠다고 한건 형이었어요.
형이 내 사수였으니 쫄병도 휴가를 보내라 한 것도 형이였죠.
그때 나는 남아서 형의 자릴 지키려했습니다.
형이 쓴 육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형이 앉던 자리에 엉덩이를 겹쳐가며
형의 의자에 내 등을 슬며시 기대고 싶었었죠. 

나는 형이 쉬러간다는 면도날을 그 시간으로 막아보려 했습니다.
그게,

옳은 것이잖아요?

우린 옳지 않았었고 그래서
연대할 수 있었어요.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어린 나도
그쯤은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어요.

내가 몰랐던 건
살면서 그런 기억은 그 사람의 일생을 평생 못 견디게 하는 시간이거나
혹은
그걸 견디게 하거나 둘 중의 하나만 해당된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몰랐다는 거여요.

인생이, 그렇잖아요?
못 견딘다 죽겠다 하면서 실은 그 때문에 산다는거.

그때 나는,
형이 사는 동안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어요
아마도 형은,
그 믿음 때문에 나를 떠날 수, 아니
떠나지 않고도 헤어질 수, 아니
헤어지지도 않고도 안 만날 수, 아니
안 만나고도 잊지 않을 수...
어쩌면 이렇게 같이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니 우린,
지난 이십 년간 한 번도 헤어진 적은 없는거지요.
그렇게 믿고들 사는 것이죠.
그래서 연락도,
만남도 필요없는 것이죠.

그러나 가끔은 나도
형이 한 남자의 육체로서,
회색빛 감성의 실체로서
오늘을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여름이고 휴가가 시작되는 오늘 같은 날. 
 

그때 우리가 2호선 무슨 역에서 헤어졌었나요.
다음 내리실 역이 오른쪽이었나요, 왼쪽이었나요.
 


아,

우린 아무 역에서도 못내리고 
그래서 아무 역에서나 내릴려고 했던가요.

너한테 오늘이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런 말을
혹시 그날이 너에게 상처가 되었니? 그런 질문을 내게 한 것은 기억하지 말아요.
그 순간 이후의 형과의 모든 일들이 내 상처가 되란 법은 없잖아요, 안그래요?

그래서 난,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말아요 이런말을 하지 않아요.
그건 이를테면 상대가 이미 상처받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확인사살과 마찬가지니까요.

만약 내가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휴가를 떠나지 않았다면 훗.
그런 유치한 가정법을 이십 년동안 해왔다 말하진 않을께요. 나도,
콧대는 좀 높았잖아요?

아니죠. 나도
모질고 독한 여자가 될 수 있었는데 형은.
아닙니다. 이건 아니에요. 이런 식은 아무런 소용이 없죠. 그렇죠?

그러니 우리 사는 동안은 절대로
만나지 말아요. 누가 알아요?
간절히 원하면,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늘 그래왔듯이 반대로 이루어질지요.

그때라면 이렇게 말하겠죠.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아니 우린 꼭 이렇게 되었어야 할 사람이었다.


누가? 
 

 

형이 그래줘요.
그땐 그렇게 말해줘요.
그런 말은,
내 몫이 아니야.
내 몫은 처음부터 기다리는 것이었고
그러다 돌아서는 것이었어. 

우린 옳지 않았으니까.


, 형이
늘 떠나고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가만히 있는 나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우린 올해도 휴가는 없는 것이죠.

그렇지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오늘을 나 말고 떠올려줄 단 한사람.
그게 형이라는 걸
그걸 알고 있어서 나는 오늘도 내일을 견딜 수 있다는거 

알리고 싶었어요

다행이죠.


그렇죠?






이십년후 여름,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사랑한 형에게
내가 가장 아름다웠을 때를 기억하는 형에게

형을 가장 오래 기억할 한사람이.






아침에 삼십대 후반의 미혼여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그들 중 반은 1인 가정으로 남게 되며, 그렇게 혼자 살다가 죽을 확률이 많다는 결론이었어요. 뭐, 인생의 목표가 결혼이 아니라고 하면서 마치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서 자식을 낳는 것이 여성의 표준행복이다 말하는 것 같아 화가 나더라구요. 결혼해봤죠. (다른 것도 해봤지만 ㅋ) 아이도 낳아봤구요.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보았으면서 결혼하지 말고 애 낳지 말고 능력있으면 혼자 편하게 살아라, 이렇게 떠들어도 봤죠. 그게 실은 능력이 없어서 능력이 안될 것 같아서, 계속 능력을 알아 줄 것 같지는 않아서 결혼한 거 맞거든요.

남은 생(?)을 누구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해봤어요(?)

은희경 작가는 소설쓰기 전에 꼭 손톱을 깍는다고 해요. 손톱이 길면 자판을 잘 못친다구요. 습관 하나 같다는 게 이렇게 반가울수가 있나요? (실은 습작강의 노트 준다고 해서, 적립금 3천원이라고 해서 예판구매했지만 ㅋ)  책이 달려오는게 꼭 그걸 쓴 작가라도 달려오는 것 마냥 설레잖아요

 

이거이거 예판중독 아닐까요??
암튼, 저는 이 책이 달려온다는 문자를 손꼽아 기다려요.

이번주 일욜은 이 책으로 생각좀 할겁니다.
다른 생각을 할까봐 마음을 붙들기 위해서랍니다.  

(아 오늘이 월욜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미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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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7-18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어도 목요일 날 오지 않을까요?
전 와도 당장은 못 읽을 것 같기도 해요.
결혼은 남들이 다 할 때 못하고, 안해서 비슷한 말들을 하게되는 것 같아요.
꼭 남들할 때 따라서 할 필요는 없는데,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사람과 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결혼하기에 늦은 나이는 결코 없는 거죠.
아, 혼자 살다가 죽은 거 정말 끔찍할 것 같아요.
누구라도 옆에 있어야지.ㅜ

한사람 2011-07-19 08:48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았는데,
사람들은 남들 할때 무얼 해놓고, 남들처럼, 남들과 같이 비슷하게 살았기 때문에
남들도 싫어하고 그런 자신도 싫어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남들처럼 살아온 인생은 특색없고
내세울게 없는 것 같지만
바로 그런 사람들이 가장 남들이야기를 많이 하고
남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결혼이나 육아, 아이들 교육은 나 혼자 하는게 아니다 보니
바로 그런 남들의 영향에 가장 치명적인 지배력을 갖게 한 것이구요.
그런데 여성들이 육아에 많은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니
인구가 줄어드는 이 시점에 보수언론은 여성들이 결혼해야 한다며 종용하는 것이죠
권력은 남성의 기득권에 맞춰져있으니까요

흐름은 대충,
일본에 독거노인 증가 - 고독사 증가 - 한국도 고독사 증가 - 출산율 감소 -
여성의 결혼기피 - 골드미스가 평생미스된다 - 혼자죽기 싫으면 결혼권장-

이런식인 것이죠 ~

니들이 애를 낳아야 인구가 느는데 늙어서 혼자 죽기 싫으면 지금 결혼하시오,
이런 결론이라는 말이죠.

대부분의 직장맘들이 아이가 초등생이 되면 포기 하고 마는데
그걸 두눈 뜨고 확인한 동생들이 미쳤다고 결혼을 하겠냐구요 ~

이 나라는 여성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다 잘되는 길이라는 정서를 아직 못버린 나랍니다
(아침부터 흥분 ^^)

stella.K 2011-07-19 10:2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군요.
아침부터 흥분하지 말아요.
뭐 그 말도 일리는 있네요.
하지만 사회적인 측면을 떠나서
난 본능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 언젠가 한번쯤 해 보고 싶고,
아이도 낳아봤으면 어땠을까 이제와 하게 되는데
그걸 못해봤다는 게 아쉽기도 하거든요.
지난 거 후회하고 아쉬워 해봤자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겠죠.
독신 좋다 이거죠. 만족하고 행복할 수만 있다면.
죽을 때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꼭 독신이 고독하고 불행하다. 이것도 편견 아니겠습니까?^^

2011-07-19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9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5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5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바보같이.


비가 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울한 핑계를 완벽하게 댈 수 있으니까.

지난 주말 이 년 만에 귀국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고 전화너머 잡음도 꽤 들려왔다. 이년 전, 떠나기 전에 꼭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우리는 여의치 않았고 그냥 서로 약속만 덩그러니 버리고 말았다. 만나지 못했어도 그때 헤어지기 직전의 그리움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영영 못 볼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자주 만나온 것도 아닌데 그땐 그 헤어짐이 많이도 안타까왔다. 아마도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우린 그때 어떻게 되어있지 하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슬픔이었던 것일까.

나는 지난 이 년 동안 모든 게 좋지 않았고 그 친구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그 이년 동안 나는 그 전에 내가 쌓아 놓은 것들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그 친구는 같은 기간에 나와 반대인 것 같았다. 그건 그냥 아주 오래된 친구끼리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는 서로간의 기대치, 그것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별 볼일 없어졌으므로 괜한 자격지심인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전화를 걸겠다는 친구의 목소리를 정말 다시 듣게 될까봐 나는 두려웠다.

혹시나 비가 그치면 그 친구가 내게 연락을 할지도 몰라 나는 쇼핑을 했다.

여름 샌들을 사고 원피스를 사고 목걸이를 샀다. 친구가 근처로 온다하면 나는 늘 그렇게 입고 다녔던 것처럼 새로 산 옷을 입고 나갈 것이고 친구는 아마 여전하구나, 이렇게 웃어줄지도 모르니까. 그러면서 제발 전화를 하지 말기를, 아니 한번은 전화해주기를, 번갈아가며 선택했다. 바보같이. 트윗에선 모르는 한분이 이런 내 심정을 위로해주었고 나는 특별히 고맙다 답하지 않았다.



#2.  부질없이

오늘같이 감정을 많이 소모한 날엔 내 자신을 미워한다. 이곳이 좋아지려 하는 것에 대체 무엇이 좋은 건지,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거울아, 거울아. 너는 무엇이 좋아. 여기가 왜 좋아. 부질없이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운 걸까.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는 것이 고마운 것일까.

누군가 내 글에 답을 해주는 것이 기쁜 것일까.

남들이 메기는 나의 가치는 그 사람들의 가치인 것이지 내 자신의 가치가 아니라는 좀 진부하면서도 논리에 안맞아 보이는 메일을 한통 받았고 이곳에서 판매하는 티셔츠를 사려고 했으나 자세히 보니 사서 입을 것 같지는 않길래 마음을 접은 내 자신에게 한껏 욕을 해주었다. 자신을 자학하면서 그것으로 윤리성을 회복하려는 위선에 총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모두 비 때문이라고, 비가 많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슬픔이 아니라 우기면서 나는 아직 남은 저녁을 계획한다.



#3. 진부하게

답이 좀 뻔 하다 생각되는 에세이집을 붙들고 이런 위로야 말로 늘 가던 떡볶이집처럼 정겨운 것이다 생각했다. 새로운 위로란 무엇인가. 누구든 뻔한 그 대답을 듣고 싶어 위로를 바라는 것 아닌가. 속담처럼 격언처럼 나는 진부한 위로를 기다리고 그것을 사랑한다. 세상의 모든 일상은 진부했고 거의 모든 사람 또한 그 일상을 못 넘었다. 간혹 넘은 사람도 진부함을 지나왔다. 
 


꿈도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을 품고, 생각하면 즐거워야 한다. -15p

결국은 그 어떤 것에 시간을 얼마나 바치느냐에 달려 있고,
시간을 바치는 그 시간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다. -17p


나는 주도면밀한 잔머리를 잡아 낼 수 있다. 상투적인 위선을 재빨리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누구보다 내가 그렇게 해보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 세계에서 어울려 살아가려면 적당한 잔머리와 위선은 어쩌면 훌륭한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그럭저럭 유지되는 게 아닐까 싶다. 옛날에 나 좋다고 나 알고 싶다고 러브콜 보내던 처자가 예전에 내가 했던 잔머리와 위선을 똑같이 복제하여 사랑을 받으려 한다. 아니 사랑받았다. 좋을 것이다. 나는 그것의 끄트머리도 대충 짐작이 가는데, 그래서 아팠고 슬펐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4. 정면에서

나가수의 약발이 떨어질지 알았고 1박 2일과의 정면도전에서 패배할 줄 알았다. 잔머리였다. 정면승부는 잔머리의 승부와는 달라야 한다. 나 역시 잔머리의 승부는 하고 싶지 않다. 좀 알아준다고 조금 알려졌다고 누군가 관심을 가져줬다고 순간의 성취에 들뜨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누군가 어떤 이유로든 나를 공격하거나 돌려서 비난하거나 외면한다고 하더라도 상처 받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든 안쓰든 나는 위선자다. 나는 그걸 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위선자다.

그러나 글을 씀으로써 그 위선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떤 글도 쓰지 않을 것이다.

-고종석 일일 연재, <해피패밀리> 6회 中  http://cafe.naver.com/mhdn/27657 

 
   


오늘 아침 나를 울린 문장. 그러나 나는,

어짜피 위선자인거 크게 되는 위선자로 살고 싶다.
위선도 커지고 커지면 예술이 되는 거 아닐까. 창조의 환희로 거듭나는 거 아닐까.  

그리고, 

다시


당신도 오웰처럼 주제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제나 메시지가 처음부터 명확하게 포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주제나 메시지는 작품을 본격적으로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며, 작품에 대한 고민을 거듭할수록 더욱 명확해진다. 주제는 구조의 결함을 발견하고 고칠 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독자를 감동시키는 원동력 또한 주제에서 나온다. 비록 많은 단어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주제가 반복되어 점점 쌓여나갈 때 생기는 효과는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288p


 

 

 

글 안 쓰는 위선자보다 글 쓰는 위선자로 살 것이다.
그래야 내 위선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실하게, 진부하지 않게, 진지하게, 진심으로, 잔머리 쓰지 않고.  

나만을 위해.

 

이제 좀 친구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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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3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7-12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죠, 위선이라 하시든 아니든 간에 저는 한사람님의 페이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인데요.
아마...... 중간에 인용하신 데미안의 문구처럼 '제 자신 안에도 비슷한 것이 들어앉아' 있어서
같이 괴로와하고 있나 봅니다. 개인 심리학에서 아들러가 인간의 삶의 목표는 '우월의 추구'라고 하더군요.
목표를 삼고 노력하고 발전하는 것도, 모두 열등 의식 때문이라고.

어쩌면 말이죠, 위선이라고 괴로와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순수성에 대한 강박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모두 비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려볼까요...

한사람 2011-07-13 08:28   좋아요 0 | URL

그래요..?
생각의 가공을 거치지 않아서 그럴까요? ㅋ
사실 이런 글들을 이곳에 써오진 않았어요
(이곳은 오로지 리뷰만 올렸었죠 ㅋ)

'우월의 추구'는 몹시 공감가는 개념이네요
그 바탕이 열등이라는 것도요

사람이 글보다 더 예쁜 경우는 없다고 하더라구요
사람이 글만 못하다는 말이죠
대개 글 잘쓰는 사람을 직접 겪어보면 그의 글만 못하다고 하네요
글과 사람이 똑같기가 참 힘들죠

그말이 참 슬프면서 나라고 별 수 없지, 싶어서 쓴 글입니다^^
(헉, 스스로 글좀 쓴다는 이야기?? ㅍ.ㅍ)

달사르 2011-07-1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 소설의 주인공이 저런 생각을 한다는건 고종석도 저런 생각을 한다는 의미인데..그럼에도 고종석은 글을 쓰는구나..저런 고민 속에서도 글을 쓰는구나..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한사람님도, 고종석도, 모두 글을 쓰는 위선자라도 하고픈건.. 그만큼 글이 좋고,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생각해요.

한사람 2011-07-16 00:31   좋아요 0 | URL

전 제가 위선자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ㅠ.ㅠ
그래서 남의 위선을 귀신같이 포착해요
내가 가진거니까..

특히..
저 사람은 내게 호감가졌던 게 아니고..
나를 진심으로 대했던 게 아니라는 느낌은 거의 백프로여요 ㅠ.ㅠ
 

 

#1. 셀렙과 표준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더욱 유명해진 김난도 교수는 소비자학과 교수이다. 현재 주요 일간지에 트렌드 노트라는 타이틀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08/2011070800979.html


그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1’에도 언급된 바 있지만 유명인, 연예인을 뜻하는 셀렙(celebrity의 준말)은 단순한 추종에서 지나 어엿한 우리 욕망의 아바타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로 발생한 경제효과가 곧 우리사회의 소비자 트렌드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현빈 운동화, 고소영 백, 지드래곤 귀걸이, 김연아 망토등 그들이 착용하고 노출된 상품은 그대로 완판되거나 세간에 회자가 되곤한다. 셀렙이 소비행위의 표준이 된 시대인 것이다.

최고인 그들이 선택하는 제품은 최고일 것이라는 믿음이 먼저이고 그렇다면 나도 그것으로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고의 이미지는 얻을 수 있겠다가 그 다음이다. 광고주는 이 트렌드를 제일 빨리 파악했기 때문에 미니시리즈엔 PPL광고가 필연적으로 따라 붙는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앞서 ‘이 드라마는 PPL광고를 포함하고 있다’는 자막을 확인했다손 치더라도 한번쯤은 주인공이 마신 음료수를 충동구매할 확률이 많아진다.

<트렌드 코리아 2011>의 'Tell me, celeb' 편에서는 셀렙을 닮고 싶어하며 셀렙을 따라하는 트렌드를 말한다. 그들의 결정이 내가하는 의사결정의 시간과 노력을 줄여줄 것이라는 믿음은 그들처럼 최고로 보이고 싶은 욕망을 의미한다.

패션에만  해당될까 싶었는데 그 분야도 다양해졌다. 현빈이 잠시 들고 있던 소설, 현빈 서재에 꽂혀 있던 시집들은 그대로 셀렙의 최신트렌드가 되면서 출판사들을 잠시나마 기쁘게 한 적도 있다.  현빈이 진짜 그 책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비슷한 예로 유명작가가 어떤 책을 추천하는 경우보다 마케팅 파워는 막강했음이다. 운동화야 신으면 그만이지만 이 참에 나는 그 책들을 산 시청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 <천재토끼 차상문>은 재미가 있으셨는지.


#2.  파워북로거도 셀렙일까


유명연예인만큼은 아니지만 얼마전 네이*의 파워 블로거의 거대 수수료가 논란이 되면서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파워 블로거들을 향한 비난과 질타, 대안마련이 이슈가 된 적도 있다. 이 불똥이 서평을 쓰는 파워 북로거에게 까지 튀어 오늘 아침 내가 아는 블로거의 닉네임 두어 개를 신문에서 확인하게 되었다. 성석제 작가는 젊은 작가상 심사를 맡으며 ‘누가 누구를 누구 마음대로 젊고 늙은 작가로 규정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젊음의 기준을 생산의 힘으로 본다면 수긍할 만하다’고 한 바 있는데 누가 누구를 누구 마음대로 파워 북로거라 규정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파워의 기준을 수익의 힘으로 본다면 절대 수긍하기 힘들다가 내가 빗대고 싶은 말이다.

일간지의 한 논설위원은 말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10/2011071001260.html

   
 

작년 12월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은 '물만두'라는 필명을 가진 서평(書評) 전문 블로거의 부음을 전했다. 2000년 3월부터 인터넷에 쓰기 시작한 리뷰가 무려 1838편. 그의 전공은 추리물·SF 같은 장르소설이었다. 이 분야 마니아 중에 '물만두'의 리뷰를 한 번쯤 읽지 않은 독자는 없다고 할 정도다. 그는 리뷰를 하고는 별 표로 점수를 매겼다. '물만두'가 별 다섯을 주면 출판사는 마치 큰 훈장을 받은 듯 신문의 책 광고에서도 이 사실을 빼놓지 않고 자랑했다.

 
   


논설위원은 처음에 알라딘의 물만두 님을 언급하며 파워블로거의 영향력을 비유하는 내용으로 글을 시작한다.


   
  한 출판사는 얼마 전 중국계 미국 소설가 이윤 리의 장편소설 두 편을 동시에 출간했다. 하나는 이미 나왔다가 절판된 구작(舊作)을 새로 찍은 것이고 하나는 신작을 번역해 낸 것이었다. 처음엔 신작 쪽이 훨씬 많이 팔리더니 언제부턴가 구작이 더 팔리기 시작했다. 출판사 관계자들은 어리둥절했다. 나중에야 젊은이들한테 인기있는 여성 소설가가 트위터에서 구작에 대해 "너무 감동적이어서 밤을 새워 읽었다"고 썼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 역시 이외수 작가가 강력추천한다는 말씀 하나만 믿고 생판 모르는 작가의 책을 주문한 적이 있다. 내가 팔로잉 하는 작가가 추천한다고 하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읽어볼 마음을 가지게 되는게 책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일 것이다. 그러니 나 역시도 책에 한한한 셀렙을 그 표준으로 삼고 있는 경우이다.


   
  온라인 공간에 쓴 서평을 통해 출판시장의 독자들을 몰고 다니는 필자를 '파워 북로거'라고 한다. 북(책)과 블로거 합성어다. '폭주 기관차' '파란 여우' 같은 필명으로 50~60명의 고수가 활동하고 있다. 소장 학자나 대학원생, 문인에서 평범한 회사원, 자영업자, 약사, 통역사에 이르기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웃긴 건 인터넷 신문에는 ‘폭주기관차’인데 종이신문에는 ‘바람구두’로 바뀌어 있다. 간밤에 무슨 이유로 닉이 바뀌었는가. 혹 해당 논설위원도 닉네임의 노출로 인한 영향력을 미리 확보한 것은 아닌가. 한눈에 거슬리는 문구는 독자들을 '몰고 다니는'식의 표현인데 누가 누구를 어디로 몰고 간다는 것인지.


   
  '로자'라는 유명 북로거는 인문학 분야가 주전공이다. 그의 서평 블로그에는 하루 1000여명이 방문한다. (그가 쓴 리뷰는 당연히 해당분야 책 판매 부수에 무시못할 영향을 준다) 다음의 북카페 '비평 고원'처럼 인터넷 서평꾼들이 커뮤니티를 이뤄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 카페는 개설 11년 만에 회원수 1만2183명이 됐다. (이 카페는 개설 이후 11년 동안 40여만명의 방문객을 맞았다) 출판사 입장에서 볼 때 파워 북로거들의 초기 평가와 입소문은 자기들이 낸 책이 베스트셀러로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가 될 수 있다.  
   


괄호 안에 쓴 내용은 오늘 아침 추가된 글이다. 마지막 문장은 삭제되면서 ‘무시못할 영향’으로 대체되었다. 로쟈님의 서재는 나도 자주 가는 편인데 이 글이 그의 영향력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비유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왜일까.


   
  한 출판 잡지가 파워 북로거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출판사에서 대가성 서평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12명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대가를 받고 원하는 대로 서평을 썼다"는 응답자도 4명 있었다. 인터넷 북로거들의 서평이 영향력을 갖는 것은 그들이 이해(利害) 관계를 떠나 객관적인 리뷰를 한다고 독자들이 믿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깨지면 출판시장의 장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걸 출판사들은 알아야 한다. 파워 북로거들도 자기 명예와 자존심을 위해 유혹을 거절해야 한다.  
   


로쟈님에 덧붙여 결정적으로 거슬리는 건 이 짧은 논평의 결론이다. 같이 실린 그림에서도 상징되듯이 뒷돈 챙기면서 아이패드로 추천을 작성하는 북로거의 뒷모습이 결론인 것이다. ‘파워 북로거들도 자기 명예와 자존심을 위해 유혹을 거절해야 한다.’는 충고의 말씀도 맞는 말이긴 하나 썩 기분좋은 뉘앙스는 아니다. 이 글을 접한 일반 독자분들은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순수성 하나만 믿고 그 사람의 추천을 신뢰해왔는데 일개 서평자들도 (수수료 챙겨온 파워블로거처럼)‘출판사의 대가성 청탁’의 상업적 영역에 위치해 있음을 사실상의 결론으로 단정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3. 파워북로거의 파워는 무엇을 의미하나


당신은 서평자인가? 독자인가?

1. 독자라면 평소 서평을 훑어보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책을 주문한 적이 있는가?

2. 서평자라면 혹 출판사의 부탁을 통해 적정한 대가를 받고 서평을 작성한 적이 있는가?

3. 내 추천이나 리뷰를 읽고 책을 구매한 사람이 'thanks to'하여 적립금을 받아 본적이 있는가?


서평자와 독자 모두에 해당하는 내 경우 1번은 예스. 2번은 노. 3번은 예스

나는 파워북로거는 아니지만(물론 내 기준에서) 출판사로부터 서평을 부탁드린다는 명목으로 받은 책은 딱 두권이다. 내가 유명하거나 구매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연히 내 (자사 책의)서평을 읽은 편집자분이 예고도 없이 책을 보내왔거나 출간된 신간이 있는데 감사의 뜻으로 보낸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분들은 나의 서평을 담보로 책을 보냈다기 보다는 사실 감사의 성격이 더 많았고 나는 서평을 의무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행히 보내주신 책들이 모두 퀄리티가 있는 작품들이었고 서평을 쓸 때도 그들의 청탁(?) 때문에 안좋은 점을 말 안하거나 좋은 점을 부풀리거나 할 성격의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만약 좋은 말하기가 민망한 작품이었다면? 기껏 책 한권 받으면서 내 양심을 팔아야 하나를 생각하기 전에 나는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아보려고 마음을 가라 앉혔을 듯하다. 그리곤 덜커덕 받아버린 내 책 욕심에 후회를 하고 말았을 것이다.

작년에 타 온라인 서점의 파워블로거 한분이 나에게 신간으로 출간예정인 ** 출판사의 책에 대한 서평 의뢰를 당신도 받았냐고 물어왔다. 나는 파워블로거도 아니었고 그런 관행이 있는지도 몰랐다. (파워블로거들끼린 자신이 출판사로와 해당서점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느냐의 여부도 자존심에 관련된 사안이더라) 그 블로거는 자신은 그 책이 별로 호감이 가지 않지만 그쪽 온라인 서점의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있으니 온라인 서점에서 추천한 블로거로서 거절하기 난감하다는 말을 했다. 출판사는 일단 노출수가 많고 서평을 많이 작성하는 파워블로거에게 가제본인 상태의 책을 보내고 그들로부터 초기 화제성을 유발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물론 가제본이지만 나중에 출간되면 정식 책을 보내준다고 하며 서평을 쓸 사람을 신청받는 경우는 꼭 파워블로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의적으로 신청한 것이니 문제가 될건 없다.

문제는 한 번의 노출로 판매에 영향을 미칠 만한 급의 블로거를 콕콕 찍어서 그들을 리스트업한 후 그들에게 책을 안기는 출판사가 아닐까. 서평자 입장에선 책 준다는데 까짓 서평이야 쓰면되지 식의 단순한 생각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 이렇게 해서 누이 좋고 매부좋은 식으로 서평을 써드리고 우연히도 그 서평을 읽은 독자들이 그것을 백프로 믿고 그 책을 구매한 후 그 블로거에게 적립금을 안겨 드렸다고 치자. 그런데 노출되는 빈도수가 많다보니 적립금의 금액이 가랑비에 옷젖듯 쏠쏠찮다고 치자. 우린 누가 누구를 무슨 명목으로 비난할 수 있는 것일까.

서평을 오래 써온 분들은 느끼는 것이겠지만 의무적인 서평과 자발적인 서평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어떻든 서평쓴다는 수고는 책받은 자로서 감내해야 할 시간임은 틀림없다. 서평자로 활동한 적 있는 조지 오웰은 본질적으로 모든 서평은 사기이며 서평자는 한 편의 (직업적으로)서평을 쓸 때마타 한 파인트의 양심을 하수구로 흘려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한 바 있다.

 

 

 

 

 

 

 

 

지난 달에 내가 쓴 리뷰중에 추천을 무려 오십 개나 받은 글이 있다. 글이 훌륭해서라기 보다는 그 책의 리뷰를 처음 썼기 때문에 알라딘과 출판사에서 내 글을 노출시킨 덕일 것이다. 그 결과 내 리뷰를 읽고 책을 구입한 사람은 열 명이 넘은 것 같다. 한 권에 60원씩 떨어지는(저급하구나) 셈이니 나는 600원의 이득을 본 셈이다. 그 책 말고도 지난 달에 이것 저것 내게 적립금이 십원, 백원씩 쌓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옆 동네는 3프로이므로 책 한권에 몇 백원이더라) 놀라웠던건 별 유명하지도 않은 시집과 내가 아직 읽지도 않은 책인데 누군가는 그 추천을 통해 책을 샀다는 사실이었다. 큰 돈은 아니지만 나는 이 적립금의 무게가 커질수록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파워북로거의 명예와 자존심을 마지막 결론으로 내린 저런 글을 볼 땐 더욱 그렇다. 누구도 강요한 적 없고 누구도 책임지라한 적 없지만 일개 동네 서평자인 내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매일 아침 자기선언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어쩜 나는 이렇게 글을 써대면서 속물이 되지 말자, 젠 체 하지 말자, 과장하지 말자, 솔직하게 쓰자, 그런 말들을 몸과 마음에 열심히 타이핑 해본다.



이건 아니다. 아니올씨다, 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아는 파워북로거님들은
적립금이나 떡밥으로 받은 돈 역시
다시 책사는데 활용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인생 구력때문에
오늘 아침은 이 그림이 나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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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1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월요일이네요.
이 글 잼났어요. 저는 알라딘 서재 처음하면서 참 신기했거든요. 이제 겨우 1년 반밖에 안 되었구요.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된거죠,
서평단도 있고, 출판사에서 선물로 책도 받기도 하고, 읽지않은 책 추천 페이퍼도 있다는 것을. ^^
이후 저도 읽지 않은 책을 페이퍼에 올린 적이 있어요, 이래도 되나 하면서.
그리고 나중에 몽땅 읽은 후, 이 책 형편없네 하고 팔아버린 적도.

저는 서평이든 리뷰든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서평단은 엄두도 못 내죠.
저처럼 말이죠, 글이나 인문 등등과 관계없이 IT와 20년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참 신기한 세계예요, 여기는~
(그리고 가끔 환상이 깨지는 세계이기도 해요... 아하하)

한사람 2011-07-11 12:26   좋아요 0 | URL

IT업계 20년이라니 놀라워요~
남겨주신 글들은 서정적, 낭만적이었다고 생각했거든요 ㅋ

저는 책을 그리 빨리 속독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은 있어도 일정상 서평신청을 하지 못하는 쪽에 속해요~
어쩌다가 정말 읽고 싶은 책만 하는 편이구요
추천페이퍼도 제가 작성하면서 ..책도 안들쳐보고 읽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이래도 되는건가(물론, 평가단 책을 선정하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싶은 생각을 아주 최근에야 하게되었어요..
뭘 알고나 추천을 한다는 건지, 그래서 전공자나 로쟈님 같이 알려진 분의 추천에 도움을 받는 편인데
점점 추천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어요


글샘 2011-07-11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해서 책을 얼마나 사 볼는지요. ㅎㅎ
물론 제 블로그에서도 몇 분은 제가 올리는 족족 사들이다가 파산하신다고 엄살피우던 분들도 계셨지만...
돈받고 서평쓰는 걸 조지 오웰이 쓰레기 시궁창이라고 한 건,
어디까지나 신문사 같은데 주례사 비평을 기고할 때 이야기구요.
인터넷 블로그처럼 자율적으로 써나갈 땐, 이야기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느낌표>같은 프로는 획일성의 비판도 받지만, 암튼 그런 책이라도 읽게 만들잖아요.
물론, 돈받고 서평쓸 정도로 수준높은 서평가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떻게든 책을 사보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무슨 수라도 쓰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한사람 2011-07-11 12: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 무척 반가워요^^

제가 저 기사에 언짢았던건 그래도 '백' 안사고 '책'사는 쪽의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그래도 다른게 아니고 책을 추천하는 집단에 속한다는 스스로의 탈속물적(?)인식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글 같아서 발끈했던거 같아요 ㅋ

그래도 여기 알라딘은 이런 이야기와 생각을 나눌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기쁘네요~

그렇게해서라도 책을 좀 많이 보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백사드는 풍토보다는 낫다는데 동의합니다^^

반딧불이 2011-07-11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부분 공감이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책을 꼼꼼이 읽고 공들여 쓴 리뷰에 대해서는 늘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중의 하나에요. 그런데 늘 읽지 않고 쓰는 리뷰, 낚을 목적으로 쓰는 글이 너무 많고 문제도 항상 이런데서 생기는군요. 이런 기사 때문에 정작 제대로된 글을 쓰시는 분들이 상처받거나 동급으로 쓸려가는것 같아 안타깝네요.

한사람 2011-07-11 13: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딧불이님.
보면 늘 소수의 윤리가 다수를 먹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부정적인 건 더 영향력이 크고 또 빠르니까요
이렇게 생각있는 블로거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힘이 실리는 듯한 느낌이어요^^
고맙습니다~

마늘빵 2011-07-1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깨끄미 사건과 북로거를 연결지으면서 글 하나를 썼었는데, 조선일보가 언급한 저 출판잡지를 직접 보고 후속 글을 쓰려던 참에 이 글을 보네요. 해당 잡지와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대가'의 영역, 맥락을 어떻게 잡느냐가 궁금한데, 만약 서평단에 속해 책을 받는 것조차도 대가로 본다면 이건 아니다 싶고. 대가청 청탁 운운하면서 서평단에 속해 책 받고 글 쓰는 사람들까지도 매도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해당 잡지를 열어봐야겠어요.

한사람 2011-07-11 13:5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아프락사스님!
저도 그때 올려주신 글 읽고 슬며시 누르고 왔어요 ㅋ
그 파워블로거가 제 이웃인 파워블로거와도 아는 분이고
그쪽 계통에선 정말 유명하신 분이더군요~
그 파워블로거 때문에 며칠 맘고생이 심한 것 같았어요
(많이 알려진 블로거에게 기업에서 먼저 연락해서 이벤트 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한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 잡지가 궁금한데
아프락사스님께서 이렇게 글까지 남겨주셔서
두눈에 힘이 불끈 들어가네요^^
진상을(?) 조사하셔서 또 날카롭고 유익한 말씀 기다리겠습니다^^

stella.K 2011-07-11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드문 경우긴 하지만, 작년에 출판사에서 책 보내 줄 테니 읽어보고 서평 쓰겠냐고 청탁 받아 본적은 있어요.
그렇게 무조건 안기는 건 아니고, 의사를 물어보죠.
하나는 좋다고 했고, 한 출판사는 거절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어서.
좋다고 했던 건, 책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출판사가 평판이 좋아 받아들인 거지만,
역시나 책은 실망을 해서 서평을 그다지 좋게 써 주지는 못했어요.
나 하나 혹평 썼다고 해서 그 책이 망하는 건 아닐테니 전 그냥 솔직히 써요.
물론 마음은 편치 않죠.
제가 얼마 전에도 김애란 소설을 혹평했지만,
이만한 글에 좋은 평을 내리면 작가들이 글을 게으르게 쓸 것 같아서 말이죠.
작품의 하양평준화. 그럼 정말 그 한 줄에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작가들이 너무 불쌍하잖아요.ㅠㅠ
하여간 돈이라는 게 그래요. 쩝.
그래도 아시겠지만, 떡밥이라봤자 얼마나 되겠습니까?
공들여 써봤자 받는 건 얼마 안되고, 그래도 출판사가 이윤을 챙기는 건 그의 몇배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책값만 생각하지, 쓰는 공력, 읽는 공력, 시간등은 계산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 같아요.
때로 그게 책값을 훨씬 상회할 수도 있거든요.
물론 서평 하나 쓰는 데 거의 한나절을 써도 아깝지 않은 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전 아무책이나 서평 써 주겠다고 하지 않아요.
사실 제가 더 기분 나쁜 건 알라딘 한 달에 한번씩 주는 이달의 당선작이 더 기분 나빠요.
그놈의 알사탕은 받아도 기분 나쁘고, 못 받을 땐 더 기분 나쁜 거 있죠?
언제나 그렇지만, 상업주의와 관련된 모든 건 처음엔 단데 나중엔 쓴 것 같아요.

한사람 2011-07-11 14:0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아니다 싶은 책은 정말 서평쓰기가 곤란해요
작년에 서평단 할때 무작위로 선정된 소설중에 그런 책들이 몇개 있었어요 ㅠ.ㅠ

저는 감동적이었다고 뻥치는 분들도 웃기지만
사실 뚜렷한 논리를 대지 않은채 그냥 자기 맘에 안드니까 혹평하는 분들에 반발심이 생겨 그 책을 읽어보고 그 정도는 아니라는 평을 쓴적도 있었네요 ㅋ(한가했다는 ㅋㅋ)

그리고 떡밥 말씀하셨지만 서평써서 떼돈벌었다는 사람은 못봤습니다.
당선축하금이나 적립금, 혹은 상금들도 알고보면 (파워북로거의 경우)
시간과 노력의 산물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걸로 이득챙기면 얼마나 챙기겠어요..
다시 책을 사거나 언젠가 책 사려고 모아들 두시지 않나요?

이달의 당선작은 운좋게도 잘 선정되는 덕에 (받아먹는 입장에서)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것도 받자마자 책값으로 다 나가게 되던걸요.
결국 그 적립금으로 책 사서 또 서평쓰고 또 적립금타서 책사고~ 하는 것의
반복이더라구요..


pjy 2011-07-11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 눈은 다 비슷한가봐요, 첨에는 카더라통신에 현혹되더라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다 보면 다들 어느정도 판단을 내리게 되는거 같아요~
작정하고 남다른 파워?를 목적있게 행동 하시는 분들은 일반 사람들의 생각보단 꽤 많은 돈을 챙기신다고 듣긴 들었는데....결국은 곪았던 상황이 터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일을 시작되어도 진행과정상 오해의 소지가 생기고 일이 꼬이고 이상한 결과가 나오는데..첨부터 수상한 의도로 시작한다면 결과가 아무래도 아주 좋을수는 없겠죠~뭐, 티가 나게 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객관적 판단이 어려워서 저 혼자 느낌이지만 친하게 생각하면 쫌 많이 용서해주고, 안 친하게 생각되면 덜 용서하고 이래요-_-;

한사람 2011-07-11 18:13   좋아요 0 | URL

주변에 파워블로거들을 보면 처음엔 의도없이 순수함을 가지고 작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차츰 변화하는 것 같아요~
누가 어떤 식으로 이익을 보았다는 소식을 들었거나
우연한 기회에 돈이되는 방법을 알았다거나 ㅋ

제 경험상(?) 심사위원이나 독자 혹은 지인이라도
서평으로 쓴 글의 진위여부, 감동여부는 절대 구분, 확인할수 없다고 봐요
글은 그만큼 진심없이도 재주만으로 감정을 창조할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심을 다해 거짓말치면 속는 수밖에요 ㅠ.ㅠ
물론 어느정도 의심이 되는 글들, 노골적인 홍보, 틀에박힌 칭찬들을 눈치챌수 있다고 해도
작정하고 속이면 속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언제나 저를 슬프게 하죠..

cyrus 2011-07-1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씁쓸하네요. 파워블로거 사태가 책블로거들에게도 문제의 여파로 다가오게 되다니
정작 책과 글쓰기가 좋아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들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게 되네요.
제가 블로그를 하게 된 것은 책 읽고 글 쓰게 좋아서 한 것도 있지만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을 사기 위해서 적립금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예전에 리뷰대회에도 관심을 가졌고 지금도 그래요. ^^;;
간혹 순수한 의도로 한 블로그 운영이 적립금 때문에 변화될까봐 스스로도 자중하고 있으면서도
불안하기도 해요.

그래서 글 한 번 쓰는데 나름 정성들여 쓰려고 하는 편이에요.
비록 얼마 안 된 적립금이지만 정성들여 쓴 글을 통해서 땡스투받게 되면 뿌듯하거든요. ^^


한사람 2011-07-11 2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사고 싶고 보고 싶은 책은 많고
욕심대로 다 샀다간 거덜나기 십상이죠
시루스님은 도서관도 부지런히 다니시는 학생이지만
저는 사고 싶은 책은 꼭 사고야 마는 편이라 ㅋ
적립금이 사라져갈땐 마음 한켠이 영 허전해 지죠 ㅋㅋ

하지만 대충쓰고 떡밥을 받았다는 소리는 듣기 싫으니
스스로도 정성을 다하게 되는게 아마 시루스님 같은 서평자들일거여요
저 글을 쓰면서 저만 깨끗한 척 한거 같아
부끄러운데 어떤 분은 아예 떡밥이 걸려있지 않으면 리뷰를 올리지 않는다고 한 분도 있어요
바꿔 말하면 뭐라도 주는 곳에만 리뷰를 게시하는 것이죠
(웃긴건 떡밥이 안걸리면 바로 자삭 들어가죠^^)
어찌보면 계산적인 것 같아도
뭐라 할수 없는 개인적인 부분이죠~
자기글 자기가 지키겠다는데 관리의 영역까지 윤리의 잣대를 들이댈수는 없어보여요
다만 대놓고 속물적인 태도가 거슬리지만

까놓고 얘기해서 여지껏 나는 적립금 같은 건 한푼도 바라지 않고
서평을 써왔노라 말할 사람 누구일까요
문제는 바라는 욕심이 아니고 바라기 전에 진실한 자세로 글을 써야하는
스스로의 자기검열 같은데요..



가연 2011-07-1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추천을 누를 수 밖에 없는 글이네요ㅎㅎ 다른 부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가장 마지막 문단 완전 공감됩니다, 파워북로거가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한사람 2011-07-17 15:14   좋아요 0 | URL

예, 파워의 기준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자학적 글의 저자는 그 자학으로서 자신을 미화한다.
자기혐오를 제 윤리성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 고종석 일일연재, <해피패밀리> 제 2회 中에서

http://cafe.naver.com/mhdn/27456

 
   


솔직히 말하면 저 위의 문장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들은 어줍짢은 시인들이라 생각한다. 그 다음은 소설가, 다음은 평론가, 다음은 출판 관계자...

즉, 가장 순수해야할 성정 순으로 저 법칙은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글을 잘쓰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만약 내가 글을 잘쓰는 사람의 범위안에 속한다면 나 역시 열외일순 없을 것이다. 글은 오로지 글로써만 신뢰하고 글로써만 감동받는다. 글을 그것을 작성한 사람의 삶이나 인격, 혹은 지식과 동일시 하지 않는다.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을 이차 가공한 것이지 절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 글은 글쓰는 사람이 글쓰는 순간에 자신을 정화한 것이지 그 이전과 이후의 자신을 바꾼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정화가 아니라 반성, 감동, 공감, 분노, 환희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는 감동스런 글, 교양있는 글을 쓴 사람은 어쩐지 인격의 수준도 높고 감수성도 예민할 것이라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글이 곧 사람이라는 오래된 관습적 편견에 의해 글을 그 사람의 됨됨이로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꼭 착하라는 법이 없으므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꼭 인간성 좋으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교회는 다분히 행동적이고 글은 사고적이다. 사고는 행동에 우선한다. 깊은 사유를 풀어놓고 그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글은 그 사람의 사고과정이므로 곧 훌륭한 인격을 수행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까지 생각했으니 분명 어느 정도 괜찮은 사람일 것이라는 무언의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사회의 상식이나, 뻔한 윤리, 표어같은 도덕성 쯤이야 기본이겠지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공동의 고민이나 善, 혹은 인권문제까지도 정의의 편에 설것 같고 자신 및 타자를 평가하는 잣대 역시 엄격하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또 대부분은 글 잘쓰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할 터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럴려고 노력하고 그런 줄 믿고 싶은 것이지, 글은 여전히 위선과 폭력을 은폐하는 가장 손쉬운 도구이자 시스템, 소프트, 혹은 이 모든 걸 포함한 사회 및 개인의 재능에 불과한 것이다.

글 너머 그 사람의 실상은 글 안의 허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여지껏 살면서 글좀 써보려고 애써온 슬픈, 내 결론이다.

외려 글을 쓸수록, 글을 잘 쓰게 될수록 순수성과 독창성은 반비례해 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난 여전히,

글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 그 글을 쓴 사람도 아름다울 것이라 믿는 내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은 고집이 있다. 미련이라고 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내가 꼭 그렇게 되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생각까지 한다.

적어도 아름답고 고통스런 글을 쏟아내는 그 순간에 그 사람이 누구보다 진실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 후에 설령 그가 다시 위선으로 자신을 기만했다고 해도 다시 글을 쓰며 그렇게 살지 않으려 했다고 믿고 싶다. 책좀 읽고 글 좀 쓰다보면 위선보단 진선을 향하는 순간이 많아지리라 믿고 싶다. 평일 내내 다른 사람을 욕하고 거짓을 일삼아도 주일에 기도하며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를 존중한다. 그 사람은 주일마저 마찬가지 인 사람보다는 아름다울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왜 책을 읽고 책이 좋다고 떠들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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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7-0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제일 먼저 생각난 문장이 있어요, "순간을 믿어요~!"


한사람 2011-07-06 12:2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굿바이님도 오늘은 맑은 하루 되시길요^^

2011-07-06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6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7-0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맞아요.
글은 참 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면 쓸수록 날카로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하죠.
이 날카로움으로 누군가를 찌를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요.
하지만 칼은 그 자체보다 가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것처럼
글도 글 자체보다 쓰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리라고 봐요.
물론 글 잘 쓰는 사람이 다 고매한 인격을 가진 건 아니겠지만,
엊그제 읽었던 글에, 목사는 위선적으로라도 선해야 한다고 했던가 그러더군요.
그렇게 되다보면 정말 선해진다고.
글도 그런 것 같아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위선적으로라도 잘 쓰다 보면
언젠간 좋은 인격을 갖게 되겠지요.
문제는 제가 그 글을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남의 서재에 들어와 댓글을 지나칠만큼 길게 쓴다는 것이고.ㅠ

한사람 2011-07-06 12: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걸요 ㅋ
길게 뿐인가요, 주렁주렁 참견에 부연에 .. 떠들어 대는 걸요

고종석 작가의 연재소설을 읽다보니
(그분 참, 찔리는 문장을 많이 풀어 놓으셔서 ㅋ)
글과 책, 그리고 작가...그리고...나..
그리고 이곳..
이렇게 생각이 연쇄적으로 이동하더라구요..

혹시나 나는 글로써 남의 눈물을 쏙 뺀적이 없을까..

그런 자책도 들구요..

달사르 2011-07-06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어느 작가분이 저에게, 너는 왜 글을 쓰니? 라고 물어봤어요. 물론, 일기같은 글이었지만!
그래서 "제가 마음수양하려구요. 글을 쓰다보면, 내 속의 마음을 들여다볼수 있거든요." 하고 대답했는데요.
한사람님 표현처럼 글 쓸 때는 마음이 많이 정화되는 듯해요. 그리고 실지 현실과 차이나는 지점도 발견하구요. 순결하다거나, 노력한다거나, 멋있다거나..하는 등의 글 속의 나 자신과 현실의 나 자신이 다르다는 걸 어느 순간에 자각하고나면 무~~척 부끄러워지더라구요. 그러면서, 아..내가 글 속에서 나를 속이기도 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더랬어요. 그렇게 계속 일기든 뭐든 글을 써나가면 나도 몰랐던 스스로에 대한 속임도 발견하게 되고, 또 아주 조금이나마 좋은 쪽으로 변화가 있겠지, 하는 기대가 생기더라구요. 글을 쓰면서 드러운 내 성격을 조금이나마 고치고 싶다, 뭐 이런 거도 있구요. 헤

고종석 일일연재, 보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한사람님의 포스팅 보는 것도 좋은데요? ^^

한사람 2011-07-06 16:20   좋아요 0 | URL

저는 울면서 쓴 글은 울지 않을 때 보면
아주 가관이라는 생각을 해요 ㅋㅋ
나를 할수 있는 만큼 자학해놓고 스스로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며
연민에 빠지는 작태를 미칠만큼 경멸해요..

그래서 저런 문장은 꼭 저 들으라 하는 말만 같아서
이런 포스팅은, 실은 제 스스로에게 부치는 편지 같은 글인게죠..

cyrus 2011-07-0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블로그에 글을 남기면서 글 속 내용에 담겨진 감정과 실제 감정이 정반대라는 것을 느꼈던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 앞에서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도 독서모임을 하면서 알게 되었구요,,
그렇다보니 글 한 번 쓰면 길게 써지게되구요,, 가끔씩 그 부분에 대해서 저 스스로 아쉬울 때가 많아요.

한사람 2011-07-07 11:02   좋아요 0 | URL

저도 독서모임을 나가볼까 생각하는데..
말로 전하는 것과 글로 적는 것은 그 본질이 차원적으로 다른 결과를 낳는 다는 생각이어요
저 역시 제대로 설명을 다 못한다는 느낌때문에 서평이 길어지는 쪽이라 시루스님 말 통감합니다^^

또 말이나 글이 원래 생각과 다르게 나가는 경우도 많구요.
특히 글은 그 다음을 엮어야 하니까 원래 생각이 많이 가공되어 나타나게 되죠..

서평은 완전 사기가 아닐까, 어떨땐 그런 생각도 해요 ㅋ

마녀고양이 2011-07-0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공감되는 페이퍼입니다.
글을 쓴다는 자체가, 자신을 가장하고 방어하게 되더라구요.
제 자신이 되고 싶은 측면, 보여주고픈 모습, 그리고 뒤늦은 후회일 경우도 많구요.

알라딘 서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때부터 글자라는걸 끄적거리게 되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실수하고 배우고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활자화도 중독인듯해요, 빠져나오기 힘들걸 보니 말이죠.
(사실 글쓰기가 좋은지 아니면 친한 알라디너의 호응이 좋은지 구분하라면, 음......... 자신이 없네요, ㅎㅎ)

한사람 2011-07-07 11: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글로써 자기논리를 만들다보면
그것이 자신을 변호하게 되고 자연스레 타자에게 상처 혹은 공격이 되는 글이 되게 마련이죠..
원래 그러한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글을 쓰다보면 그런 자신을 알아달라는 식의 내용이 되버리잖아요..참..

저는 알라딘 서재에 맘을 붙였더니
글쓰는 일이 좀 활력적이 된거 같아요
예전엔 독백이었는데 이제는 대화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것에 중독될까봐 겁이 나네요

달사르 2011-07-07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 오늘 저기 링크를 따라가서 고종석님 글을 읽어봤네요. 음..글을 무척 정돈된 스타일로 쓰시는 분이신거 같앴어요. 한사람님 덕분에 연재소설 하나 읽겠어요. ^^

한사람 2011-07-08 00:36   좋아요 0 | URL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자신의 사유를 풀어 놓는 스타일이라..
이야기 보단 사고하는 재미가 있는거 같아요 ㅋ
오늘까지 읽어보았는데..언제까지 갈지 몰라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