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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명의 해답


 

 

   이런 생각을 했다. 연애는 서른이 되면 시들해지고 그러다 마흔이 되면 추억이 곧 사랑일 것이고 어느덧 오십이 되면 연애도 사랑도 추억도 사라져 그리움만 남게 되는 것. 어렸을 때 나는 대충 나이 먹는다는 걸 열정의 소멸로 인식했던 것 같다. 스무 살 땐 도저히 마흔을 상상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나는 마흔을 넘겨버렸고 다시 내 나이 육십을 떠올리기 힘들어 한다. 육십이 되어도 똑같이 그보다 더 늙어진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질까. 생각해보니 나는 얼추 서른 살까지는 연도별로 일어난 일과 내가 겪은 일들을 아주 세세히 기억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 명석한 기억의 두뇌는 결혼과 출산, 육아, 기타 삶의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급격히 퇴락의 길을 따랐고 이제 머리를 한번 감으면 방바닥에 머리가 한 움큼 쥐어지는 딱 그만큼씩 한해마다 세포가 죽어 감을 실감한다. 최근이라고 생각하는 시점은 대개 한 계절 전이고 얼마 전은 일이년, 좀 되었다 싶으면 삼년에서 오년, 손으로 햇수를 따져본다 싶으면 칠팔 년, 옛날이야기라 시작해보면 거뜬히 십년 전... 내가 어렸을 때 TV에서 이산가족 찾기 프로를 보았을 땐 삼십 여년이라는 세월은 너무나 멀고 긴 시간이었는데... 이제 나는 삼십 년 전의 나를 삼년 전의 나보다 더 자세히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올해 느낀 깨달음을 정리하게 되는 건 이 깨달음이 언젠가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내 인생에 대한 해답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알라딘에서 무엇을 이루었을까. 대단한 것을 이루고자 서재를 운영해 오진 않았지만 반복되는 서재활동에서 분명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존재했다. 이러저러한 일들을 떠올리니 결국 잃은 것도 얻은 것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곳이 좋아서 이곳에 일상을 의지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상해 다시는 안 본다 다짐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서재를 기웃거리게 되는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곳의 익명성이 편하고 부담이 없어서였지만 내가 가장 괴로워했던 것 역시 익명의 이중성이었다. 익명이 변주하는 이중주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고 나 역시도 행사의 주체가 되어 본적 있는 이곳의 본성이자 거부할 수 없는 본연이었다. 다른 곳을 활발히 하지 않고 이곳에서 얻은 댓가란 바로 그 익명성을 대처하는 나름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연예인을 예로 들면 우리는 많은 사랑을 주고 대단하다 칭했던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구설수에 휘말릴 경우 여과 없이 솔직한 의견을 실시간으로 비판하는 창구가 마련된 세상에 살고 있다. 앞뒤 따져 보지 않고 전후 상황을 모두 들어보지 않고 드러난 현상과 몇 가지 공개된 사안만으로 호불호를 표명하고 신랄하고 원색적인 비난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떠들 수 있다. 그것을 의식한 누군가는 비난의 대상 편에 서서 유려한 논리를 펴기도 하고 당사자는 그걸 못 견뎌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거나 성급히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외치곤 한다. 마지막에 가서 그들 모두를 다 이해한다는 누군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만 전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고 그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임무가 아니겠느냐 충고하고 그 모든 걸 다 지켜본 또 다른 누군가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조롱하거나 자신을 포함해 모두 다 웃기는 사람들이라며 시대의 우울증과 편집증에 대해 쓸쓸한 냉소를 남긴다. 시간이 지나면 앞서 벌어진 상황은 거짓말처럼 잊혀지고 새로운 상황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똑같은 패턴의 시나리오는 지칠 줄 모르고 반복된다. 어떤 익명은 열렬한 공감을 또 어떤 익명은 마땅한 손가락질을, 또 다른 익명의 친구는 냉소를 그 친구의 모르는 이웃은 연민을...

 

 

 

 

#2. 익명의 대가

 

 

 

   알라딘 서재라고 다를 것이 없었던 지난, 일 년이었다. 이곳은 다른 온라인 서점과 달리 공개게시판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의도와는 다르게 얼마든지 집단축하의 분위기도 마녀사냥의 분위기도 만들 수도 있고 정치 관련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고 특정인에 대한 음해 및 명예훼손도 가능하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글을 쓰진 않았더라도 충분히 이해받기보다는 뜻밖의 오해를 받기가 더 쉬운 경향이 분명히 있다. 익명은...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엊그제 나를 포함한 이곳 여성 알라디너에게 무차별적으로 특정인을 비방하는 댓글이 달린 적이 있었다. 처음엔 황당하고 기가 막혀 그리고 가슴이 떨려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이웃과 교류가 별로 없는 나를 타겟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중에 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똑같은 메시지가 타전 된 것을 보고 그 사람의 계획을 대충 파악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알라딘 서재를 이용하는 분일 것이며 그 특정인으로부터 직접, 간접적으로 어떠한 피해를 받았거나 혹은 목격했거나 그도 아니면 확실한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들었는데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자 댓글의 내용은 또 다른 알라디너와 출판사를 언급하며 자신이 쌩쑈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정중하게 방법이 의도를 넘지 못하고 있음을 답하며 이런 식의 방법은 결국 당신에게만 상처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말로 억울하거나 세상에 알려야 할 일이라 생각되면 합리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따르는 게 어떻겠냐는 어줍 짢은 충고와 함께. 사람들은 사건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이슈 자체에만 관음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므로 당신의 방법은 생각만큼 효과가 없다는 말도 함께... 물론, 내 글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잠시 후 그는 자신의 댓글을 지우고 서재에서도 사라졌다. 그렇게 쉽게 사라지고 말 것을 잠시라도 그런 방식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을까 싶어 나는, 갑자기 그 사라진 익명이 서글펐더랬다. 태연히 지우고 사라지고 나면 당신이 한 일이, 당신이 쓴 글이, 당신을 느껴버린 내 기억이 없어지는 일일까... 그것은 당신에게도 마찬가지 일일 터인데... 아마도 나는 잊어버려도 그래야만 했던 당신은 죽어도 잊지 못할 추한 실수가 될텐데...

 

 

   그랬다. 나는 올 한해 이곳에서, 혹은 알라딘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여러 번 익명의 공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ㅠ) 이번 일처럼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나를 타겟으로 삼은 적은 물론이고 나를 지켜본 누군가가 때가 되면 여러 방법으로 교묘하게 나를 자극했다. 동일인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도무지 모를 것 같기도 하고. 한때는 그 익명을 추적해 모아진 단서들로 대충 내 나름대로 집히는 사람을 분석해보기도 했다. 그들 중에 어떤 익명은 소름끼치게도 나를 알고 내 글을 읽었고 심지어는 나를 대단하다고까지 칭찬한 사람이라는 것도 어슴푸레 알게 된 적도 있었다. 그 아는 익명아닌 익명이 왜 그러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나는 돌아앉아 그 사람이 잘되기를 먼 훗날이라도 나보다 훨씬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각종 리뷰대회에 발길을 끊은 다음부터 나는 익명의 비난에서 자유로와 질 수가...있었다. 그 익명이 이쪽에서 상탄 글을 또 다른 저쪽에 접수하여 뭐라도 어떻게 떡밥을 챙겨먹는다는 식의 또 다른 익명의 빈번한 고자질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었다. 내가 떡밥을 받아먹는 양과 횟수가 줄어들수록 익명의 공격도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다른 것에 마음 둘 일을 자동적으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댓글에 대한 상처들은 쉽게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사실 내 이웃 분들의 서재에 가서도 댓글을 잘 남기지 않는 편인데 변명을 하자면... 가까워 지면 반드시 멀어지기 때문이라...말씀 드리고 싶다. 온라인에서 좋은 글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울컥한 적이 많았다. 그런 글에는 뭐라도 살짝 한줌 남기고 오고 싶었지만 세 개 할 거 하나만 하고 오늘 할 거 내일로 미루는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다. 남겨진 내 댓글을 좇아가며 저장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그것들도 공격으로 치환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떤 분은 온라인에서 소통하지 않고 자기 잘난 맛에 혼자서 우아한 척 글을 올리는 것은 커뮤니티에서 왕따가 되는 길이라고 유머스럽게 충고도 해주셨는데 그래서... 자주 가는 분에게 글도 남기고 하다가 또 여지없이 익명을 불러 들인 꼴이 되길래 그것 마저도 접었다. 소싯적에 토론이나 논쟁으로 상대를 밀어붙이고 승리감에 도취된 적이 왜 없었겠는가. 남을 아프게 하는 말은 부메랑처럼 반드시 내게 돌아온다. 갑자기 발길을 끊은 것처럼 보여서 오해할까봐 뭐라도 글을 남겨드리고 싶었지만... 그것도 내 경우에 절실한 것이지 보는 입장에선 웃길 것 같아 그만두었다. 책을 보내주겠다는 고마운 분들의 성의에도 인사만하고 끝내 허락을 해드리지 못한 적도 있었다. (죄송했다) 모두가... 그러다가 다시 멀어질 것이 두려웠노라 그런 후에 감당해야 할 내 쓸쓸함이 사무치게 싫었노라 고백한다.

 

 

 

#3. 익명으로의 치유

 

 

 

 

   소설집을 공부하다가 바로 어제 천운영의 ‘알리의 줄넘기’라는 단편을 읽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소설을 읽었다는 걸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공교롭게도 각종 포털에선 ‘알리 나영이’가 검색어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영화적인 독서의 순간이 거짓말처럼 빈번한 사람에 속하는데 그래서 아마도 그에 대한 내 상념을 글로 남길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나, 이런 거창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제 보니 알리는 자신이 성폭행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직접 가사를 쓰면서 피해자가 느끼는 진심이 세상에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기자회견을 자청했다고 알려졌다. 기자회견을 보면서 느낀 건 알리가 무엇보다 자신의 신중치 못한 실수로 앞으로 노래를 하지 못하게 될까봐를 극심하게 두려워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알리는 용서도 용서지만 제발 노래를 하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알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댓글들로부터 무엇을 예감한 것일까... 그동안의 숱한 사례들을 보면서 자신이 유일하게 세상에 떠들 수 있는 노래라는 희망이 사라질 순간을 상상하진 않았을까. 노래하지 못하게 되는 공포심은 여자로서 밝히기 수치스러운 사실을 공개해야 하는 결단의 순간을 종용한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유명인이 실수하면 그가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라는 식의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사랑해주고 당신을 응원해 왔는데 이렇게 배신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라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전과 같은 사랑은 추호도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를 서슴치 않고 한다는 것이다. 대중이라는 익명은 무언과 침묵으로 연예인의 유배를 도모하고 그를 기꺼이 은둔이라는 감옥으로 보내 버리는데 익숙하다. 만약 알리가 자신의 성폭행 사실을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자신의 진심을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울면서 말했더라면... 백지영, 오현경, 이승연, 이경실, 이영자, 최진실, 정선희... 9시 뉴스에 등장한 숱한 여자 연예인, 이들이 자신들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명예를 회복 하는 데는 십년이상이 걸리거나 혹은 영원히 기회가 없어진 사실을 알리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안다고 해서 그 사실이 다음 사건에 참고가 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영리한 방송과 그에 타협하는 연예인 다수는 미리부터 자신의 가족사나, 과거 가난했던 시절, 아버지 사업이 망한 이야기,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키워준 할머니, 투병중인 가족, 학창시절의 방황, 연습생시절 굴욕 같은 사연을 내보이며 눈물로 호소한다. 대중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상처를 구경하며 그들의 에피소드와 거래를 하는 것과 같다. 남의 상처를 구경하는 것만큼 내 상처에 위로가 되는 일도 없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알리와 포먼은 여전히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혈전이라기보다는 포먼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알리는 그 멋진 라이트 스트레이트 한방 날리지 못하고 로프에만 기댄 채 몸을 숙이고 있었다. 거대한 체구의 포먼은 해머펀치를 날렸다. 나는 어서 시간이 흘러 알리가 두 팔을 번쩍 들고 알리의 위대한 승리를 세상에 알리기만을 바랐다. 나는 링밖에 서서 끊임없이 알리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알리는 로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알리의 상체가 로프 밖으로 젖혀지며 고개가 꺾였다. 그 순간 알리의 몸을 버티고 있던 로프가 늘어지면서 알리의 몸뚱이를 감기 시작했다. 알리는 사지를 늘어뜨린 채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다. 줄에 둘둘 말린 알리는 꼭 나방고치 같았다. 나는 링 밖에 서서 계속해서 알리의 이름을 불렀다. 어서 일어나. 알리, 어서 나비처럼 춤을 춰야지, 알리

 

 

-90p, <알리의 줄넘기> 中에서 / 『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다시 소설 이야기를 해야겠다. 천운영의 소설 <알리의 줄넘기>의 주인공 이름은, 김알리이다. (가수 알리의 아버지가 무엇을 하셨는지는 알수 없으나 무하마드 알리를 떠올리고 예명을 알리라 한것이라 들었다) 혼혈인 아버지가 평생 권투선수의 스파링 파트너였기에 아이가 태어나면 알리라 이름짓기를 원했다. 혼혈 아버지에게서 다시 혼혈로 태어난 알리는 또래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받으며 치매 할머니와 살면서 희망을 잃지 않는 열세 살 소녀이다. 사라진 아버지가 ‘유머 있는 알리가 될 순 없어도 슬퍼하는 알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씀 하셨기에 슬퍼하는 것을 패배로 알고 살아가는 기특한 친구이다. 그러니 알리가 연습하는 줄넘기는 세상이라는 링 안에서 인생이라는 싸움을 준비하는 자기만의 시간인 것이다. 누구나 타고난 콤플렉스와 살면서 자라나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평생을 투자한다. 나는 알리를 알기 전에도 알리 노래를 잘 알지 못했고 그녀에게 특별한 호감을 느낌 대중이 아니기 때문에 새삼 이번 사건으로 그녀를 위로하며 응원 한다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알리를 통해 알리의 모습에서 알리로 반응하는 익명의 본성을 엿보았다 말하고 싶다. 그 익명이 당신이고 나였다고 그래서 우리를 보았다고 자백하고 싶다. 소설에서 알리는 혼자서만 연습해온 아버지와 달리 줄넘기를 같이 할 누군가를 찾아서 줄넘기를 사러가는 것으로 마지막을 인사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철저히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독단적인 과정이지만 글을 올리고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같이 진심을 나누는 것은 혼자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서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그 어떠한 기가 막힌 일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알리를 보면서 조그만 실수나 배려치 못한 행동, 또는 전혀 다르게 해석된 글 등으로 이곳 서재에서도 얼마든지 알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굳이 이곳이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익명의 부메랑은 내가 무심코 날렸던 만큼 나에게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 익명이 나쁘다 비난하는 것도 사실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른 일은 아니라는 생각... 그 속에 속한 적 있었던 나 역시 크게 다를 것 없는 대중이었고 다른 이의 익명에 불과했다는 자각.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보수신문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생각모자란 네티즌의 악행을 비난하고 무언가를 가르치려 든다. 내 생각에 익명을 치유하는 방법은 역시 같은 위치의 익명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 내가 모르는 익명의 손길로 내가 위로를 받았던 것을 떠올리며 상처받는 누군가에게 말없는 위로의 익명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결국은 익명이었던 나를 치유하고 나아가 내게 위로받은 익명을 치유하는 길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글쎄, 나는 당신과 나의 이 질기고도 서러운 모두의 익명을 견디는 것이 서재를 아프지 않게, 그리고 조금은 편하고 어떨땐 유쾌하게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알리가 하는 줄넘기를 내 나름의 글쓰기로 슬쩍 바꿔버리고 싶다. 참 추운 날이다. 나를 아는 익명의 이웃 누군가가 동네에서 혼자 줄넘기 하는 광경을 혹시 보시거든 내가 넘고 있는 줄넘기에 더블 더치할 누군가의 우리를 기다려 보고 있는 중이라 받아들이시라. 이 추운 날 거기 혼자서 뭐하는 짓이야 하지 않고 그렇게 뛰면 뭐가 좋으냐 따져 묻지 않고 나도 같이 뛰어 보니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지더라는 그래서 말없이 눈으로 만으로도 웃어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믿어주시라. 내게 그런 익명의 이웃은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는데, 오늘은 그분들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드리고 싶다고 고백한다. 부족하지만, 그것이 올 일 년 이곳에서 깨달은 마음이라고 살짜기 속삭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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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12-17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도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하소서..

한사람 2011-12-18 09:13   좋아요 0 | URL

하하, 된장님도 맘편한 일요일 되세요^^
같이 줄넘기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ㅋㅋ

stella.K 2011-12-18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생각에 동감은 해요.
저도 이상하게 예전에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 멀어지더라구요.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봤더니, 결국 한계더라구요.
서로가 글로 통하는 사이니 그 사람이 어떤 패턴으로 글을 쓰고, 말하고, 사고하는지
어느 만큼은 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조금씩 댓글을 안 달기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봤자 이전의 사람들처럼 될테니 관심이 없는 거죠.
그래서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하는 사람과 교류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도 넓은 의미에서 순환이라고 보는 게 마음 편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어렸을 때 사귄 친구도 나이 먹어서까지 친구로 남는 경우 별로 없잖아요.
나만 그런가?ㅋ
익명을 견디시겠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저는 만나고 있는 동안은 뜨겁게 만나자는 쪽이예요.
그러다 안 만나게 되더라도 아쉬움은 갖지 않으려구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언제까지 한사람님과 대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날이 오게되더라도 섭섭해 마시길.
댓글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우.ㅋ

한사람 2011-12-19 08:57   좋아요 0 | URL

저는 어느 정도 친해지는데 까지는 문제가 없는데..언제나 그 다음이 어려운 것 같아요 ㅠ
이걸 예로 들어서 될지 모르겠는데요.. 오프라인에서도 동네 이웃과 친해지는 과정이 여기서도
반복되는 걸 느낄때가 많아요. 예를 들면 같은 관심사로 시작된 친분이 점점 서로의 일상으로 파고 들어오다가 사소한 오해로(아무래도 가까우면 모두 이해보다는 뜻밖의 오해도 발생 ㅋ)맘이 상하게 되는 것. 그런데 오프는 얼굴보며 풀릴 기회가 있는 반면 온라인은 그냥 그 기회를 서로 방치하고 미루고 그러다가..
멀어지는 것...

말로 빚어지는 상처보다 글로 유발되는 상처가 더 깊고 오래가더라는 것..

저는 이것이 여러번 되다 보니 좋은 마음 생기는 이웃분들에겐 더 다가가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되더군요 ㅠ
넓은 의미에서 인간관계의 순환이라는 말씀 참 고맙고 와닿네요.
댓글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하하
찔립니다 ㅋㅋㅋ


비로그인 2011-12-19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느낀 것은 요, 한사람님. 그 사람도 상처 받은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처받고 여기와서 하소연 한거겠죠? 그게 2년전의 일이라더군요. 상처가 깊었겠죠. 그러니 이제와서 그러는거 아니겠어요? 혹시 우리가 같은 사람의 케이스를 말한다면 말이죠. 남한테 상처를 주는 일을 한사람은 어쨌든 벌을 받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익명이라 서로 편하게 만나서 쿨하게 헤어지는 경우가 허다해서요. 그런것에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그것을 시크하게 대처하지 못한. 그러니 어느 한쪽만 머라 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그냥..생각입니다.

한사람 2011-12-19 09:02   좋아요 0 | URL

예..저도 첫날에는 화가 많이 났었는데..곰곰 생각해보고 이틀째부터는 넋두리, 하소연같은 느낌도 많이 들더군요. 없는 일을 시간 낭비하며 지어내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해야 할 사연은 있었겠지...싶었어요.
상처라는게 받을땐 같은 방식이더라도 나중에 자기 속을 거쳐 표출되는 방식은 여러가지니까요.
비슷한 예가 될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악성 댓글로 남을 비난하는 쪽도 아마 세상으로부터 어떠한 상처를 받아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요.

파랑새님이 오늘은 어부..신거여요? ㅋㅋ

2011-12-19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0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12-19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킹피셔가 새이름입니다. ^^

한사람 2011-12-20 08:52   좋아요 0 | URL

예, 킹피셔를 찾아봤네요 ㅋㅋ

비로그인 2011-12-2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왜 이렇게 좋을까요? 처음 서재 브리핑에 이 글이 올라왔을 때, 너무 길어서 넘어갔는데(죄송 ㅎㅎ) 지금 천천히 읽으려니 마음에 팍 다가오네요. 그리고 저의 서재 활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사실 저는 익명성이나 알라딘 서재 활동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거든요. 아직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진중하게 생각하시는 한사람님을 보니 저도 새로운 결심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내년에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한사람님 :)

한사람 2011-12-20 14:22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저 여기 있어요~
어떤 책을 읽고 있었는데..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날이었어요. 글을 잘쓰고 어떻고를 떠나 그냥 좋은 글이라는 말씀이 어떤 건지 알아요. 그런 마음이 수다쟁이님에게도 조금은 통한 것 같아 졸다가 다시 번쩍 뜨이네요 ㅋㅋ

진중한 생각...히히..언제나 생각이 지나쳐서 탈이죠^^
알라딘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해요... 고마워요~

아이리시스 2011-12-24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놀러와요, 한사람님. 제 서재에ㅋㅋㅋㅋㅋ
아, 저는 정말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 사람인가 봐요.orz
 

 

 

 

 

 

#1. 나, 울지 않아요.

 

 

 

   "제가, 요리를 좀 하거든요.."

   3년 전 초여름 어느 주말, 친척언니 집에 초대를 받았다. 나이는 오십이 조금 넘었으니 큰 언니벌에 해당하고 엄마와 같은 수영장에 다니셨고 수영이 끝나면 같은 사우나에서 한사코 싫다하는 엄마의 등을 밀어주었단다. 엄마는 나를 늦게 낳으시는 바람에 외가의 조카들을 많이 키우셨는데 그러니까 이 언니는 엄마의 외조카의 부인으로서 나에게는 외삼촌의 셋째 아들의 부인, 즉 내 외사촌 오빠의 아내, 새언니에 해당되는 다시 말해 그다지 가까운 친척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오빠와 함께 여의도에서 고깃집을 오래 운영해 왔다.

   “아가씨,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이 우리 언니라 생각하며 살았거든요. 우리 언니는 형부가 일찍 가셨는데요... 형부가
   시고 얼마 있다가 급성 백혈병으로 한 달 만에 갔어요... 그 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서,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어
   요. 언니 가고 10년이 흘렀는데요... 정말로 하루하루를 이를 악물고 살았어요... 언니 몫까지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는데 저도 이거
   밖에는 안 되었어요.”

    울어야 할 사람은 나였는데 새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서론도 없이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셨다. 

   “누구에게 이야기 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한들 나만큼도 아니고, 이사람에게 이야기 하면 저 사람이 걸리고 저 사람에게 말하자니
   이 사람에게 미안하고 결국은 나만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 거구나... 그렇더라구요.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누구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억울해서 미칠 것 같을 때, 잠도 안 오고 밥도 먹을 수 없고 이 순간 내가 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겪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 때, 세상은 결국 더 많이 가진 자의 것이구나 싶을 때, 저는요 계속해서 내 이름 석 자만 소리
   내어 불렀어요.”

   그날은 엄마의 사십구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우는 것도 어지간히 지쳤을 법 한데 나는 언니의 입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라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 계셔 보세요.”

   언니는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었고 음식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나를 위해 갖가지 찬을 마련해 상을 차려 주셨지만 나는 목이 메어 음식을 많이 먹지 못했다. 효자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더니 지나간 청승은 잘도 짝이 맞아 때마침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바깥 풍경은 꼭 엄마를 잃은 나를 알아봐주는 것만 같아 서럽기까지 했다. 나는 ‘아가씨 전복죽 해드릴께요, 드시고 가세요’ 하는 손을 뿌리치며 ‘이제 가봐야죠, 쉬셔야죠’ 하며 나오려는데 아직 멀었다는 언니는 자꾸 ‘잠깐만요, 잠깐만요’하며 한 시간을 넘게 음식을 싸주셨다.

    “이건 그대로 이렇게 섞어서 밥에 넣으면 되요. 흑미랑 검은콩이랑, 제가 다 다듬어  놓은 밤이랑, 그리고 이건 말린 표고버섯, 이
   건 제가 만든 딸기잼, 이건 잠 안 올 때 한잔 씩 드시라고 복분자술.. 그리고 이건 우거지랑 다시마, 멸치가루를 섞어 놓은 건데 한
   개 씩 냉동시킨 거니까 그냥 물에 끓이면 되요.. 이건 고모님이 우리 손주는 냉동 곶감 좋아한다 하셔서 제가 진공포장 해놓았어
   요..그리고 이건 갓김치, 이건 며칠 전 담아놓은 열무김치여요...”
   “잠시만요, 아가씨, 이건 우리 친정아버님이 그린 그림인데..이것도 가져가세요..장미그림 인데... 아가씨와 잘 어울려요.. 담 주에
   도 꼭 오세요... 이제, 울지 마요..아가씨.."

   두 손 가득 그림과 음식을 싸가지고 가면서 얼마나 울었던가.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내게 차려준 진수성찬과도 같은 밥상이 선해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선물로 기억된다. 실감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날 엄마가 해주신 음식 말고도 맛있는 반찬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들을 내가 맛나게 먹고서 한참이나 배가 불렀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있다.

 

 

#2. 우리, 밥 같이 먹어요.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 보면 주인공인 윤과 명서, 미루 세 사람이 윤의 옥탑방에 모여 아욱국과 깻잎김치를 서로의 밥에 얹어주며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윤은 처음으로 그 밥상머리에서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자신의 상처를 담담하게 알리고 미루는 그 말을 듣고 깻잎을 떼어 밥숟가락에 얹어준다. 깻잎은 바로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면서 고향과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할 때 떠올리게 되는 음식이라 고백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엄마가 없는 빈자리에서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반찬을 권하며 엄마의 죽음을 말하는 윤의 어깨를 말없이 안아주고 싶었고 엄마만큼은 아니겠지만 향이 진한 깻잎을 담아 그녀에게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런 마음이 생기자 바로 책을 덮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바보같이 나 역시 딱 한번만 어머니가 해주시는 찌개와 깻잎, 나물들을 먹어 볼 수 있다면...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딸아이가 할머니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이마트 주차장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이제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대성통곡을 한 날, 그때도 나는 아이를 달래느라 아이의 현실적인 절망에 아이만큼 공감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신경숙의 소설을 읽고는 엄마가 간절히 그리워서가 아니라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을 못 먹게 된 것이 그렇게 절망스럽고 억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그리운 심정을 뼛속깊이 알고 있기에 그들이 같이 둘러 앉아 밥을 먹을때 마치 내가 밥상을 받은 것처럼 또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신경숙은 누군가에게 손수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차리고 소중히 대접하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치유의 행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녀가 차려 놓은 각종 소설속의 밥상에 매번 울고 또 항상 위로를 받는 것 같다.

 

 

 

#3. 당신, 손을 잡아요.

 

 

 

 

   이 책 <모르는 여인들>을 덮고 나니 삼년 전 내게 밥상을 차려준 새언니와 작년에 나를 울린 윤과 미루, 그리고 살면서 나와 같이 식사를 한 모든 사람들이 벅차게 다가온다. 이 마음이 약간 뻐근하기까지 한 이유는 내가 좀 신경숙의 작품으로부터 청승을 그만 떨어야지, 하는 쓸데없는 다짐 같은 게 있어서 였나 싶다. 더 이상 애도하거나 위로받고 싶지 않은 독자로서의 이상한 자존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누구보다 우리들의 서럽고 누추한 마음 깊은 한 구석을 훤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논리로 이해하고 옳다고 동의하고 속상하다 슬퍼했다손 치더라도 어딘가 남아있는 불신과 서운함, 쓸쓸함, 먹먹함, 이런 감정의 찌꺼기들이 모여진 분해되지 않는 쓰레기 창고 같은 마음 그곳을 정확하게 두드리기 때문은 아닐까.

 

 

 

7편이 모두 나의 맨발이고 나의 맨손, 나의 맨몸을 향하는 듯하다. 그 벌거벗은 내 초라한 몸뚱아리에 무언가 엄마의 손길 같은 삶의 보자기 하나를 덧씌워주는 듯하다. 신경숙의 소설은 우리들 각자가 드러내고 싶지 않는 서러운 누추함을 지나치지 않고 따스한 체온으로 감싸주는 고마운 담요와도 같다. 거리의 노숙자는 신문지 한 장으로도 겨울밤을 견딜 수 있다고 하는데 마음이 춥고 가슴이 시려워 도저히 내일이라는 아침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 기꺼이 내 살 같은 온기를 선사한다. 달리 거창하게 빗댈 것 없이 소설의 힘이고 신경숙의 힘인 것 같다. 하필 한 해를 정리하고 모두가 따스한 온기로 서로가 살아온 한 해를 격려해야 할 이때 분노와 상처로 눈물 흘리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부디 권한다. 살면서 먹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는 순간들이 누구에게도 닥쳐온다. 그렇게 야속하게 눈 내리는 길바닥에 스스로 버림을 당하는 날이 내게만 오지 말란 법은 없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지금 이 찬 겨울 어디에서, 왜, 얼마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반드시 손을 내밀어 줄 것이다. 소설을 믿고 그녀를 믿고 우리의 연결을 믿기 때문에. 나 또한 그 내민 손을 잡아 보았기에, 감히 전해드린다. 당신도 곧 따스해 질 것이라고. 얼굴도 이름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모르는 당신이지만 나처럼 다시 웃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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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1-12-14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종교는 믿지 않으나 크리스트교에서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 사람이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시련만 준다, 라는 말을 한다고 들었었습니다. 저야 가치판단을 하기가 힘들지만,(종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터라)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그토록 한 사람에게 가혹하다면 가혹하게 보일 것만 같은 시련을 안겨주는 이유는 주위 사람들과의 따뜻한 식사 한 끼들을 모두 포함시켜서 그런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이 페이퍼를 보면서 해봅니다.

오랜만입니다ㅎ 겨울이 깊어가는데 말이지요.. 요즘은 거의 알라딘을 (밀려든 숙제 하듯이ㅜㅜ) 리뷰쓸때나 들어오니깐... 아, 물론 신간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좀 힘이 빠진 건 사실이네요, 풋.

한사람 2011-12-15 09:15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어요, 가연님^^

공지영의 소설에 보면 왜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만 그러한 모진 시련이 닥치는지 하는 질문에
작가 스스로가 착한 사람들만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써있더군요..

개인의 운명과 그 운명의 다양함에 대해 진지한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소설이라면,
신경숙의 소설은 늘 훼손된 운명이지만 그것도 운명이라 생각하는 시간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힘이 빠진건, 제 나름대로 생각해보아도 되겠죠?? ㅋㅋ


mira 2011-12-15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빠담빠담" 드라마에서 정우성이 간암에 걸려서 한대사중 " 왜나야 왜나냐구" 에서 옆에서 김범이 " 왜 형이면 안돼 , 그럼 평생 매맞고 산 엄마였으면 좋겠어 아님 이혼하고 힘들어 하면서 죄수를 위해 봉사하는 교도관, 아님 나였으면 돼냐고 " 라는 대사가 있었요. 모든 일에서 우리는 항상 왜냐고? 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나쁜든, 착하든이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일중에 하나인데 말이죠 저또한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에게 시런이 닥치면 왜냐고 물을것 같아요.
엄마의 음식,손길, 마음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느끼면서 신경숙님의 소설속에서 나오는 운명들이 서럽고 힘들지만 그래도 자꾸 읽게 되는것은 우리의 운명또한 그런 이야기들과 멀지 않음에 그분의 글로 위안을 받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잘읽고 갑니다.

한사람 2011-12-15 15:46   좋아요 0 | URL

예..저도 지난주에 빠담빠담을 보긴 했는데..
오며가며 보아서 아직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내 주변에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일들이 자연스럽게 현실로 여겨지고 반대로
늘 변함없던 현실이 자꾸 낯설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데
그러고 보면 아무일 없이 평생 평범하게 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특별케이스나
기적같은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경숙의 소설은 어디서 무엇하는지는 모르지만
세상엔 나보다 잘난 사람들만 있다고 여기는 분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 정리 할 수 있다



   지난주에 큰 맘을 먹고 서재를 정리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눈앞에 쌓여있는 책과 뒤에 옆에 꽂혀진 책과 바로 읽어야 할 책, 가끔 들추어 보아야 할 책, 지금 읽고 있는 책, 그리고 오늘 도착한 책까지... 그때그때 마음속에서만 희미하게 분류된 책들을 다시 내가 정해놓은 위치에 잘 정리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책이 많아지면 자연 그 책에 대한 처분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그만 어느 순간 큰 맘을 먹어야 하는 방대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는 읽어야지 했다가 그만 다음 책에 밀려 기회를 놓친 책들을 발견하고 그 책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다는 것에 놀람을 너머 어떤 죄책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신간에 눈이 멀어 자꾸 책을 사들이는 것이 결코 질적인 독서를 향하는 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지만 바로 한 달 전의 신간도 미처 다 덮지 못하고 또 다른 책을 기웃거리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분간 신간구입을 지양하고 눈앞에 쌓여진 책들만 읽어도 되겠다, 아니 이 책을 들추어는 보고서 다른 책에 눈을 돌리자, 그런 마음을 먹기가 무섭게 오늘 또 다른 신간이 도착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책을 읽으려면 책을 사지 말아야 한다는 역설을 오늘도 깨닫는 중이다.

   책을 읽었다고 모두 리뷰를 쓰는 것은 아닌데 어쩌다가 좋았으면서도 리뷰를 쓰지 못한 책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나는 앞으로 점점 더 작위적인, 의무적인 리뷰를 남기지 않을 작정이기에 올해 내 리뷰결심에서 이탈된 책들은 어쩐지 인연의 아쉬움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리뷰를 작성해야 독서에 방점을 찍는 것은 아니지만 내 나름의 형평성에서 그렇지 못한 책들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뷰를 남기지 못한다는 것이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보았지만 그 이유도 여러 가지인 것 같아 오늘은 그 책들을 위한 변명을 정리하려 한다. 그렇게 책은 읽었다는 생색을 내고 또 책 읽었다는 말을 다 하지 못한 미안함과 퉁치고자 한다. 내 마음속의 서재엔 분명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다양한 이유로 쓰지 못한 책’이라는 칸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변명의 책꽂이라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2. 쓸 수 없었다


1.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최일남 / 문학의 문학)


...너무 오래 끌었다

이 책의 리뷰를 쓰지 못한 이유는 너무 오랫동안 붙잡았기 때문이다. 최일남 작가는 내 아버님 세대이시며 일제시대의 한국문학을 증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학원로이시다. 구사하는 글투자체가 요즘 작가들의 그것과 많이 달라 분명 찾아보면 한글인데 뜻을 알듯 말듯 한 단어가 부지기수였다. 나는 이 책의 두어 꼭지를 남겨두고 지난 몇 개월간 늘 간이 책꽂이에 꽂아 두었었는데 얼마 전 일독을 마쳤다. 그러면서 나는 완독하지 않았으면서 마음으로 이 책을 다 읽은 척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2. 방황의 기술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생각보다 어려웠다


툴툴거리며 황급히 40자 평으로 마무리한 책. 뭐니 뭐니 해도 생각보다 어려웠기 때문이다. 커피한잔을 마시며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딴에는 우아하게 고독을 즐기며 방황이라는 사치를 누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처음 생각보다 어려우면 최초 선택을 향해 괜한 짜증이 밀려온다. 아마 이 책이 리뷰에 의무가 있는 책이었다면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책이 확실한데 나는 그냥 무수한 밑줄로만 이 책을 덮어 버렸다. 방황하는데 도움은 되지 못하지만 방황의 의미를 정리 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던가. 방황을 마치고 싶다면 썩 적절할 책이라 주장하고 싶다. 



3. 아이콘 (진중권 / 씨네21)

...기대가 너무 컸다

너무 큰 기대를 했기 때문에 그냥 비판하는 페이퍼로 대신했다. 내가 무슨 파워 블로거처럼 책의 판매상황에 영향력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런데 책의 출간초기 시점에 이런 비판용 페이퍼를 날리는 것은 초기 흥미유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는 것은 실감한다. 진중권 고정 독자들은 상관없겠지만 적어도 정보가 없었던 두 세 명은 이 책에 혹시 했다가 마음을 접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리뷰를 써볼까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마음이 좀처럼 생기질 않았다. 혼자서 괜히 무언가 빚졌다는 느낌 때문인지 다시 좋은 말로 책을 포장할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고 부담으로 시작하는 글이 어떻게 끝이 날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리뷰까지 이어지는 것도 인연이 닿아야 가능한 것 같다.  



4.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박진.김남혁.장성규 / 자음과모음)

...끼어들 수가 없었다

띄엄띄엄 내가 읽고 싶은 부분을 먼저 골라서 읽다가 나중에 순서를 잃어버렸다. 이 책을 덮으면서 다시 한번 책은 목차대로 읽어야지 읽고 싶은 마음의 순서대로 넘겨서는 안 되겠구나는 생각을 했다. 여느 평론집보다 쉽고 젊은 평론가들이라 생각들이 진보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평론모음은 도대체 내가 덧붙일 말이 없더라는 것이다. 이런 류의 책을 한 번도 의무적으로 써본 적이 없는데 리뷰를 작성하기 곤란한 책 중에 당당히 추가하고 싶은 분야로 평론집을 들 수 있겠다. 그들이 대화 나누는 소재들 중 내가 읽은 책 정도가 끼어들 수 있는 여지인데 그냥 내가 이해하는 수준의 바닥만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5. 내 정원의 붉은 열매 (권여선 / 문학동네) 


...혼자 간직하고 싶었다

권여선이라는 작가에게 많은 감동을 받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내가 느낀 것이 많을수록 리뷰를 잘 쓰지 않는 성향이 있다. 나는 내가 느끼지 않은 책, 내 결론이 없는 책은 리뷰를 쓰고 싶지도 않고 또 쓸 수도 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너무 느낀(?) 책은 그걸 도저히 말로 할 수 없을 때도 있더라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 혼자 느끼고 세상에 떠들고 싶지 않다가 정확하다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리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꼭 그 책이 감동적이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여간, 이 소설집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고백, 한다. 



6. 2011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박형서, 편혜영 외 / 작가)
 

...에너지가 딸렸다

이 책 역시 내가 관심 있는 작가의 소설을 먼저 읽어보다가 그만 초심을 놓쳐버린 책이다. 제일먼저 편혜영의 <서쪽으로 4센티미터>를 읽고는 섣부르게 이 책을 다 읽었다는 판단을 해버린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이 소설집은 현직 작가들이 선정하기 때문에 여느 문학상 수상집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어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소설을 엿보고 싶을 때 적절하다는 생각. 그래서 어떤 소설은 이게 뭐야, 이렇게 욕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보통 단편 모음인 소설집의 리뷰가 장편소설보다 에너지가 많이 투사되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정리하기가 꽤 난해한 소설집이었다.

 

7. 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 (박찬일 외 엮음, 박진호 사진 / 문학동네)  


...고백하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은 옛날 춘천을 기억하고 싶을 때 한 장 한 장 들추어 보려고 샀다가 리뷰를 쓰면 괜히 내 가슴만 더 아플 것 같아 그만 둔 책이다. 어떤 책의 리뷰를 쓰게 될 때 (책과 관련하여)필히 말할 수밖에 없는 사연들이 떠오르기 마련이고 또 그 사연을 말하지 않는다면 리뷰가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 막연히 예상하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의 리뷰를 쓴다하면 나는 필히 내가 체험한 춘천의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아, 나는 리뷰를 포기했다. 대신, 소설에 한풀이 하듯 그 사연을 잘 포장해 사기를 쳤다. 아직도 나는 어디서 춘천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이 책을 넘겨보며 사진 몇 장에 혼자 청승을 떨 때가 있다.


8.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최성일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능력이 되지 않았다
 
이런 책의 리뷰를 쓸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임엔 틀림없다. 언젠가 그 방대함에 대한 존경만으로 페이퍼를 작성하고 한 달 동안 보기 좋게 거실에 비치했다가 그 막중한 무게감 때문에 자연스레 이 책이 서재로 밀려났다는 걸 얼마 전에 깨달았다. 가끔 인문학 리뷰를 쓸때 故최성일 작가가 정리해준 사상가들에 대한 견해를 컨닝하듯 먼저 읽어보고 생각을 정리한 적이 많았다. 혹시 있을까 해서 뒤져보면 역시 있었다는 점에서 얼마나 반갑고 위로가 되었는지. 리뷰어들에겐 하나의 사전 같은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소장의 목적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리뷰를 쓰지 못할 듯하다. 그래서 나는 평생 그에게 미안할 듯 하다.   

  

9. 중용, 인간의 맛 ( 도올 김용옥 / 통나무)

...겁을 먹었다 

나꼼수에 출연한 도올 선생의 항변에 설득당해 그만 덥썩 주문해 놓고선 근 한 달간을 잡고 있었다. 처음부터 리뷰를 써야겠다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은근한 깨우침은 여느 리뷰를 써놓은 인문학 책 보다 훨씬 컸다고 기억한다. 그때 가장 좋았던(?) 건 고어의 해설틈바구니 속에서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지랄한다', '환장한다' 같은 선생의 육두문자였다. 아무리 잊어보려 하여도 각장의 끄트머리엔 늘 귀결되던 한사람이 생각나 때마침 완공되던 4대강 사업은 더욱 이 책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유도했다고 본다. 하필 이 책을 덮었을 때 선생이 비판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사상에 대해 보수신문에서 인문학 강좌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플라톤은 이것과 저것의 '중간 상태'란 말을 쓴 적이 없고 '알맞은 정도'란 표현을 썼을 뿐이라며 그렇다면 '適度'(적도)란 말이 가장 적당하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나는 심적으로 거의 공황상태나 다름없었는데 이 책은 그러한 극단을 물리치는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3. 믿을 수 있다 


12월달은 읽으려 했다가 잊어먹거나 미루다가 놓친 책들을 집중적으로 재고처리 해야 할 듯하다. 물리학 전공한 지인이 <신의 궤도>를 읽고는 아는 사람만 이해하도록 썼더군, 하며 재미나다고 자랑을 했는데 나는 최근 <신의 궤도>를 읽다가 포기했다. 서사는 흥미로왔지만 과학의 틀은 할수 없이 나를 옥죄는 감옥이었다. 그런 식으로 포기한 책에 윤성희의 <구경꾼들>도 있다. 나도 어지간히 만연체의 문장을 사용하는 편인데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이 나에겐 사고의 확장이 아닌 어떤 환란으로 다가왔다. <신의 궤도>, <구경꾼들> 모두 그 책을 읽지도 않고서 미리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 말에 책임을 지려고 펼쳤다가 과감히 덮었다. 이 책을 다 읽지 않아 놓고는 나는 어쩌면 읽은 척을 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는 그들을 해독하지 못했노라 기록한다.

   대신, 올 초 받은 천운영의 소설집 두 권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단편들이 소설을 공부하기 좋다는 누군가의 말대로 나는 지금 소설을 공부중이다. 소설을 쓰려면 소설 읽는 것을 멈추어야 하는데 나는 아직 자신이 없다. 이 놈의 자신은 언제쯤 자신다와 질까. 자신이 있다는 말은 자기를 믿는 마음인데 나는 나를 믿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의심한다. 의심없이 그것은 나를 믿게하는 방법일 것이라 믿어본다. 그런 것을 대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말하는데, 나는 나를 믿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만 그러하다. 믿을수 있어야 한다에서 믿을수 있다로 이동하기 까지 몇년이 걸릴지... 그래도 그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끊임없이 집어들고 그러다가 포기하고 어쩌다가 운좋으면 느낌까지 정리하고. 다른 수를 좀 알아보고 싶은 12월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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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12-0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 없음은 그냥 그대로 두시고, 글은 계속 쓰세요.
그러다 보면 내가 글을 썼다는 사실이 자신없음을 좀먹어 버릴 때가 올겁니다.ㅋ
저 배명훈의 소설은 확실히 그럴 것 같아 사 볼 생각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요즘 젊은 작가들 포기했습니다.
따라갈 수도 없거니와
그들은 왠지 소통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들 같아서 말입니다.
이것도 편견이라면 편견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요즘 젊은 작가들 소설 읽기가 겁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저에겐 옛날 작가나 고전이 더 빛나보이는가 봅니다.ㅋ

한사람 2011-12-06 11:52   좋아요 0 | URL

흑..제 맘을 잘 아시는군요 ㅠ
자신없으면 그냥 그대로 두라는 말씀에 가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신의 궤도>는 나중에 흥미가 다시 생길때를 기약했고,,
못읽었다고 자책하지 않으려구요.

쓰던 글이 있었는데..그냥 시작할까봐요.

고맙습니다^^ 늘~

맥거핀 2011-12-0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결산의 계절 12월이군요. (저도 한사람님 따라서 쓰고 싶었으나 못쓴 영화리뷰 결산이나 해볼까요;;) 개인적으로 위에 얘기하신 '작가'에서 나오는 저 시리즈를 좋아해요. 소설편도 그렇고, 영화도 나오는 걸로 아는데, 그것도 좋아하구요. 말씀하신대로 다른 수상작 시리즈들과는 다르게 나름의 똘끼(?)도 좀 있는 것 같고...아무튼 '쓸 수 없었다'는 사실은 하나인데, 이유는 제각각이군요.^^

한사람 2011-12-06 21:24   좋아요 0 | URL

예, 그렇게 따로 모아서 누락(?)된 것들을 정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지네요 ㅋㅋ
뒤늦게 한권 추가하기까지 했습니다..

언급하신 작가에서 나오는 책중에 영화시리즈 본 기억이 납니다.
전문가들끼리 선정하는 작품들이라 문제작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걸 똘끼라고 하는 군요 ㅋ)

저도 이상하게 그런 책이 끌리더라구요, 하하

아이리시스 2011-12-0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똘끼,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는 소설비평인가요? 소설읽는 이유인가요? 요즘은 이런 책들에 끌려요. <신의 궤도>의 무엇이 아는 사람만 이해하도록! 인지 궁금해요. 과학?! 으흐흥. 과학. 그래도 전 반 정도 모르는 것들이 든 책은 오히려 지식의 갈구가 작동해서 더 좋더라고요. 내가 아는 뻔한 것만 이야기하는 인문서적이나 매번 같은 주제에 대해 말하는, 이를테면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귀결시키는, 문학보다도요. 다 못 본 책만 있어서 저야말로 불끈!

한사람 2011-12-07 08:39   좋아요 0 | URL

히히, 평론가들의 대담을 모은 책이어요. 같은 책인데도 평가는 상반되는 경우도 많고
각자 논리도 지극히 개인적일때도 있고 공감히 많이 가는 책이었는데..다 덮고 할말은 없더라는 것 ㅋ
어제도 소설에 관한 책을 하나 주문했는데 저 역시 소설이 아니라 소설을 말하는 책들이 더 눈에 가요
<신의 궤도>가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는 식으로 약간 불친절한 구석은 있어요.
이야기 자체는 지극히 소설적인데 배경이 거슬려요(신선해야 하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거부하나봐요 ㅠ)
<내 정원의 붉은 열매>와 <중용, 인간의 맛>은 적극 추천입니다^^


가연 2011-12-14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ㅎㅎ 쓸 수 없었다, 파트의 이유들이 너무 와닿네요. 특히나 너무 오래 끌었다.... 너무 오래 끌면 안되는 것 같아요. 책갈피처럼 끼워둔 생각은 그 페이지와 함께 이윽고 영영 빛이 바래버리더군요. 어떨 때는 거기에 끼워두었다는 것마저 잊어버리게 되니. 혼자 간직하고 싶은 것도 있구ㅋㅋ

한사람 2011-12-15 09:23   좋아요 0 | URL

하하, 또 오래 끄는 책이 몇권 더 있어요..
잡고 있는 시간이 길면 확실히 리뷰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요.
또 좋다고 생각되는 책은 리뷰를 잘써야지 하는 생각때문에 더 못쓰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구요.
마치 리뷰 남기는 책이 더 감명적으로 보여도 속으론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네요^^

 

   

 

#1. 공연이 끝났어요


   
 


‘일일연재는 무대공연과도 비슷한 점이 있어요. 개인으로서 자신을 조종해야 하는 점.’

 
   


   은희경 작가가 메모에 끄적인 말씀이어요. 작가도 아닌 주제에, 오늘 이 말씀 무릎을 탁탁 치면서 고개 끄덕였어요. 물론, 아무도 관람하지 않는 것 같은 서글픈 마음은 많았지만 그래도 약속한 날까지 공연을 멈출 수는 없었어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모 되었어요. 이 엉터리 잡문(이제 하루키 때문에 잡문이라는 표현도 못하겠잖아요 ㅠ)을 누군가 읽었다면 반드시 유치하며 모자르다, 아직 한참은 멀었구나, 혹은 그래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지... 생각했을 테죠. 이해, 이해, 백퍼센트 이해하고도 남아요. 어떤 구절, 구구절절, 저조차 그렇게 읽었으니까요, 하하. 어쩌겠어요. 아직은 이것 밖에 안되는 걸요 ㅠ. ... 변명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것으로 제 한계를 똑바로 마주하고 싶었어요, 뭐 이런 자기위로를 하고 싶어지네요.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 단어와 문장의 배열은 그냥 제 수준대로 부끄럼을 무릅쓰고 집어 넣었어요. 어느 아침 갑자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이 시집 저 시집을 들추어 보다가 여기서 근사하고 멋진 단어 하나를 가져온들 내 수준은 달라지지 않아, 이렇게 눈물을 머금고 그냥 달렸어요. 

  

#2.  약속을 지켰어요.

 

   이제는 다 지나간, 애써 기억하려 해도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 열심히 사랑했을 때의 감정을 떠올려 보기 위해 20대 때 들었던 음악을 매일 밤 한 시간씩 들으면서 잠들었어요. 어느 가을날 비가 왔을 때 울면서 걸었던 순간을 다시 회상해보려 무릎 나온 츄리닝을 입고 그대로 산책을 하고 돌아왔어요. 어느 추위가 시작된 날엔 아침에 글을 올린 후 뻗어서 하루 종일 잠들었던 적도 있어요. 잠들면 그 다음 이야기가 꿈으로라도 등장할 줄 알았는데 시간만 흘러가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었죠. 아...그때의 암담함이란 ㅠ. 가장 예쁘고 가장 건강했던 날들이 기억나지 않아 구석에 처박혀 있던 앨범을 들추어 보기도 했어요. 어떤 사진은 내가 보아도 정말 이런 모습, 이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나 싶어 사진속의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 적도 있었죠. 그렇게 거북이 같이 매일매일 이야기를 지었고 오늘 거짓말처럼 끝이 났어요.

   원래는 50회로 마무리 하려 했는데 2회가 늘었어요. 웃겼어요. 이런 것도 작가를 따라하다니 ㅋ. 그래서 지난 주말에도 맘 편히 쉴 수가 없었어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줄거리도 구성도 결말도 아니었고, 제 시간에 쉬지 않고 올리는 일이었어요. 아무도 시간을 정해주지 않았고 누구 하나 안 올린다 뭐라 할 사람 없었지만 그냥 그 약속만은 지켜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젠 좀 내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되었어요. 아무리 허접한 내용이지만...아무리 틀렸다고 하지만 끝낸다는 어려움을, 그 막중한 결단과 인내심을 견디어 낸 것이니까요. 

 

#3. 보고 싶어요


   저는 제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소리 없이 끝까지 읽어주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은 알아요. 제게 일일이 말해주지 않아도 신기하게 온 몸으로 느껴요. 그분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었건 응원하고 있었건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었건 모두다, 제게 많은 힘이 된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동안 다른 곳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 독서도 절제하고 다른 글도 쓰지 않았어요. 늘 그렇듯 내가 책을 집어 들지 않아도 책들은 쉬지 않고 나타났다가 또 사라지더군요. 연말엔 쌓아 두었던 소설들을 굶주린 거지처럼 마구마구 흡수해 버릴 듯 하네요. 실은 결말을 마치고 나자마자 <리투아니아 여인>을 들었는데 벌써 삼분의 일이나 읽어버렸어요. 저는 확실히 이문열, 김훈 같은 남성적이고 확고한 문체에 강렬하게 반응 하나봐요. 연재 소설에서도 최대한 여성적 향기를 배제하려 노력했는데 내용상 여성적 시점과 여성적 체험이 많아 뜻대로 관철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점심을 먹고 인사는 해야겠다 싶어 이렇게 조그만 인사를 올립니다. 한참이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책이 너무 그리웠어요. 물론 책에 대한 수다를 떨수 있었던 많지 않은 제 이웃님들도. 보고싶어요^^





 

 

 

 

 

 

덧붙임) 이 책을 다 읽으면 ..어쩌면 이 책 리뷰를 쓰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언젠가 다시 리뷰를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돌아오면 그때 쓰면 된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현재로선 반쯤 돌아왔어요. 하하 뭐 이런 걸 다 알려주냐구요?? 다시는 리뷰 안쓸 것 처럼 비장했던 적이, 아마도 있었던 것 같아서 찔려서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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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11-28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했습니다.
전 매번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곤 하는데,
이런 연재물은 아무래도 자신과의 싸움이 관건인 것 같습니다.
엉터리건 아니건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마쳤다는 게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한사람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리투아니아 여인은 저도 읽고 싶어요.
정말 요즘 꽤 오랫동안 멀리했던 이문열의 문장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언젠가 읽게 되겠지요.
기운 좀 차리면 마실은 다니실건가요?ㅋㅋ
다음 번엔 더 좋은 작품 쓰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추스리시고 돌아오시길...^^

한사람 2011-11-29 09: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지난 여름에 스텔라님 100일 프로젝트 할때,
어떤 날은 글이 정말 쓰기 싫다고..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쓴다고
하셨죠. 비슷한 심정이었어요. 어짜피 나 혼자 아무에게 안 알리고 도닦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공개된 곳에 글을 올리는 것은 나를 시험한다는 생각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올렸으니까..올리기 시작했고 내일도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요, 하하

<리투아니아 여인>은 생각외로 재미나네요.
이문열 특유의 사색의 분위기보단 이야기 중심이라 술술 넘어가요^^
마실이야 뭐~ 몇몇 정해진(?) 곳만 가는거 아시잖아요 ㅋ

아이리시스 2011-11-28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고마웠어요.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요.
이문열 다 읽고 얼른 돌아오세요^^

한사람 2011-11-29 09:18   좋아요 0 | URL

하하, 그렇게 되나요.
수준이야 어떻든...써지더군요 ㅋ

이문열을 이렇게 빨리 읽어도 되나 싶어 속도 조절중입니다 ㅋ

2011-11-28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9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도둑 2011-11-2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행이에요...반쯤 돌아오셨다니,,,
비장함이 느껴집니다...연재를 이렇게 할 수 있는 저력도 그렇거니와
자신과의 약속도 지켜내는 독기! ㅋㅋ 그 독기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죠.
저도 그 독기를 배우고 싶어요, 저는 마냥 물러터져서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거든요..ㅡㅜ
농담아닙니다..
언능 리뷰 올려주세요,

한사람 2011-11-29 09:26   좋아요 0 | URL

꽃도둑님^^
잊지 않고 있습니다. 리뷰 기다리신다고 ㅠ

다른 건 많이 물러터진 편인데
시간 약속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지키려고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순전 엄마 탓이라고 봅니다.
울 엄니 별명은 칸트였고 굉장히 정확하고, 규칙적인 분이었거든요
시간에 임박해서 제출하고 약속장소에 늦게 가고..이런 걸 아주 죄악시(?) 합니다, 하하
(사람들이 알면 피곤해하죠 ㅋㅋ)

생각같아선 죽는 날도 미리 예약해 놓고 싶은 사람입니다, 하하하

마녀고양이 2011-11-28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드디어 끝내셨구나, 대단하시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을 머라고 달기가 그래서, 그냥 보기만 했습니다.
(제가 원래 한국여류작가 소설을 거의 안 읽습니다... 이해해주세요. ^^)

여하간........... 축하드립니다, 목표한 바를 끝내셨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몇발 건너뛰신게 아닐까 부러워집니다.

한사람 2011-11-29 09:32   좋아요 0 | URL

아니어요..대단은요 ㅠ
창작 블로그라는 연재방법과 시스템을 활용해서라도 어떻게든 글을 써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 마음 먹기까지가 쉽지 않아서 그렇죠,,

글의 질과 수준이야 뭐..멋도 모르고 덤빈 딱 그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걸 지나야 또 다음을 도전할수 있으니..만족합니다.

여류작가라면,,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이런 분들 말씀 하시는걸까요??
예..저도 썩 좋아하는 문체는 아니지만, 한 시절 많은 영향을 주었던 분들이죠..

고맙구요, 그리고...또 고마워요^^

잉크냄새 2011-11-29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댓글을 달지는 못했지만 시간날때마다 읽던 글이 연재가 끝났군요.

축하드리고 또 좋은 글로 만나길 바랍니다.

한사람 2011-11-29 10:0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 !
시간날때 읽었던 모든 글들이 많이 부끄럽습니다.

더 좋은 글로 다시 뵙기를 저도 바랍니다^^

cyrus 2011-11-29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록 연재하신 글들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시지 않고 목표대로 묵묵히 글을 쓰셔서 수고하셨습니다. ^^

한사람 2011-11-30 08:47   좋아요 0 | URL

히히, 저도 다 읽어보지 못했는 걸요^^
고마워요~

2011-11-29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30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활동마감] 9기 신간평가단 마지막 도서를 발송했습니다.

 


1. 신간평가단 활동 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인지자본주의, 조정환>

모두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장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 때 생각도 나고 리포트 내는 심정으로 리뷰를 작성했다. 처음엔 이렇게 어려운 책을 추천한 평가단 분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책 덮고 나니 많은 도움이 되었다. 평가단이 아니었으면 이 책을 만날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읽었다고 리뷰까지 쓰지도 못했을 터이다. 불운이 행운으로 바뀐 우연적 필연이었다.


 
<강남좌파, 강준만>

평가단 책으로 리뷰쓴 것 중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고 내용상 비판을 많이 했던 것 같아 미안한 책 중 하나이다. 강남과 좌파에 대해 논리를 연결해보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시의 적절한 경험이었다. 이 책을 집어든 사람들 중에 적어도 강남좌파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듯 하다.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 이택광>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에 약간의 실망은 있었지만 나는 이 책을 시작으로 <문화로 먹고살기>, <아이콘>, <닥치고 정치>, <직설>같은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식의 비평집을 시작으로 사회 및 문화, 정치 비평 서적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할까. 한수 배운 게 있다면 동전 뒤집기와 뫼비우스 띠처럼 생각하기가 될 것 같다.





2.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 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기억에 남는 책과 좋은 책의 경계가 참 애매하다. 좋았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책도 있었기 때문에. 이 항목 때문에 위의 기억에 남는 책은 (크게 좋지는 않은 채로)기억에만 남는 책이 되어 버린 듯하다. 이건 기억에 남는 작품과 좋은 작가를 분류해 질문하는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식의 분류로 인해 ‘좋은’의 사회적 해석이 마치 작품성이나 수준이 높은 책을 뜻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본 듯하다. 김어준 식으로 답하면 이 질문은 후진 질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질문을 위한 질문, 어떤 통계적 평가를 위한 질문. 그러나 나는 질문을 하는 위치가 아닌 답을 하는 입장이므로 좋다는 기준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는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일단 좋았는데 그 직관을 논리로 정리하는 심정이다. 그래서 사실 이 작업이 썩 마음 편하지만은 않았다.


   ‘좋은’ 책의 기준을 크게 도움의 정도와 재미의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 그러면서도 얼마나 흥미로왔는가. 확실히 인문서적은 몰랐던 것들을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천천히 알아가는 재미는 쏠쏠한 듯 하다.

 

1. 사르트르와 까뮈 '우정과 투쟁 - 로널드 애런슨

두 사람의 우정과 투쟁을 지켜보는 시간이 흥미진진했다.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많이도 유익했다. 아주 오랜만에 <이방인>을 다시 찾아 읽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뒤에 실린 사르트르의 칼같은 해설도 나는 참 아프게 느껴졌다. 아직도 뇌리에 각인된 두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다.


2. 언어의 감옥에서 - 서경식

어느 재일 지식인의 논리가 아름답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논리의 아름다움이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리뷰쓸 때 살짝 설레기 까지 했고 다 쓰고 나서 무언가 내 논리의 틀을 깨부순 느낌도 들었다.



3. 아렌트 읽기 -  엘리자베스 영-브루엘


말로만 듣던 아렌트에 대해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요약해서 공부한 느낌이 들었다. 아렌트의 제자인 저자는 이 책이 단순한 평전이 아닌 독창적인 문학의 수준으로 느껴질 정도로 의미있는 사유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다른 아렌트 서적을 선물받기도 했다.


4.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유시민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말빨뿐 아니라 글빨도 수준급이었다. 학문적으로 의미있는 서적이었다. 국가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답하는 글이 아니고 스스로 배워왔고 알아왔던 국가를 유시민식으로 정리했다는 의미가 호감으로 다가왔다.


5. 직설 - 한홍구, 서해성


MB정권이 저지른 만행을 집약해서 정리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것들과 투쟁하며 내일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았다는 확인도 하게 되었다. 또 서해성이라는 구라문학의 선두주자도 알게 되어 그의 뼛속 구라로 두어번 감동 먹었다는 기억도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덧붙임 ) 

3.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 맘 대로 나쁜 책


<불안의 시대, 기디언 래치먼>


제목의 아우라에 제대로 낚인 책이다. 미국의 흑심과 서구의 시각을 정리한 책이라는 의미성만 빼면 불쾌하기까지 한 책. 나는 이 책을 추천한 과오로 인해 다음부턴 될 수 있으면 서점가서 책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버트런드 러셀>


저자의 콜렉션이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책이다. 편집의 악덕만 발현한 책. 러셀 모르는 독자가 보기엔 러셀의 수준을 하향조정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본다. 이 책을 계기로 모음집의 유혹에서 좀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까. 
 




   그동안 평가단을 하면서 힘들었다고 느낀 건 거의 약으로 돌아오는 결과를 얻었다. 인문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사실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콕 집어서 맘에 드는 한사람의 글만 읽는 습관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ㅋ) 이걸 그다지 고쳐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그렇다면 이번 평가단 할 때도 부디 내 맘에 드는 분이(?) 나타나주길 기대하는 쪽으로 물타기를 하게 된다. 나도 이웃 분들의 리뷰를 애써 찾아 읽어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남의 글을 진심으로 꼼꼼히 읽어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수고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길고도 지루한 내 리뷰를 읽어주신 모든 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어려운 책의 리뷰를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작성하는 건 어려운 말로 빈칸을 채우기 보다 사실 어렵다. 엊그제인가 강심장에서 조혜련이 뜻밖에도 <의식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나름대로 느낀 것을 강의하는 장면을 보았다. 인문 MD왈, 그 프로 덕에 책 주문이 늘었다고 하더라. (나도 평가단 책으로 추천은 했는데 다른 분들이 관심이 없는 통에 선택될 확률은 없다 ㅠ) 조혜련은 그 책을 가지고 쉽고 재미나게 사람이 더 행복해지는 법을 강의했는데 정말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수준이었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한비야와의 개인적 만남과 책과의 연계성, 개인적인 의견까지 아주 좋았다.)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내 리뷰를 읽어 본 사람은 그 책을 읽어본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거나 혹은 내 리뷰를 읽었기에 더 그 책이 궁금해지는 효과를 얻었으면 한다. ‘좋은 서평이 좋은 책을 살린다’는 말이 꼭 안 좋은 책도 좋게 말하라는 뜻은 아닐 게다. 나는 아직 좋은 리뷰는 어떤 리뷰인지 잘 모르겠는데 분명한 건 그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을 진심을 다해 적는 것이 역시 진심을 전달하기 쉽다는 쪽에 고개를 끄덕인다. 한가지 아쉬운 건 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많은 추천을 받아보았지만 쌩쓰투는 거의 평가단 책이 아닌 책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평가이니 객관성 면에서 그다지 호응도가 높은 건 아닌 듯하다. 더욱더 평가단 책은 리뷰로만 이해하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리뷰를 대충쓰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많이 읽고 또 책 읽었다는 글을 많이 쓸수록 책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책에 대해 또 맘껏 떠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참 행복하다. 9기 활동은 그렇게 많은 행복을 주며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허망하게 사라진 것만은 아니라는 뜻으로 이 페이퍼를 남겨본다. 
 

   

 

  정직한 인문정신이 건네는 불편한 목소리를 견디어 낼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에 직면할수 있고, 나아가 소망스러운 삶에 대한 꿈도 키울수 있다.

-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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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0-20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서점에서 아리따운 아가씨가 카운터에서 '의식 혁명' 있냐고 물어봤어요. 직원이 '의식 혁명'을 보여주면서 "이 책인데 이건 다른 분이 주문해놓으신 거라서 손님께 드릴 수는 없어요." 그랬더니 그 아리따운 분이 "아 그래요? 그럼 지금 주문 하면 언제 와요?" 하더라구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이번에는 잘생긴 총각이 와서는 "주문한 책 왔다고 해서 왔는데요." 하니까 직원이 '의식 혁명'을 꺼내서 주는 거예요. 여기서 또 이렇게 보게 되니 '우연이 세 번, 필연이다' 생각하면서 담아갑니다. 『언어의 감옥에서』는 제목 때문에 제꼈던 책인데('감옥'이란 말이 너무 두려워요.) '논리의 아름다움이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는 걸 느꼈다'는 말에 솔깃해서 같이 담아갑니다.

아이리시스 2011-10-20 14:37   좋아요 0 | URL
그래서 아리따운 아가씨하고 잘생긴 총각하고 뭐 없대요? 포핀스님. 히히히히히히. 그런데 서점에 왜 책이 주문해야 오는 거예요? 딱딱 제때 안 갖다놓고,,

한사람 2011-10-20 16:46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런 날이 있죠. 그런 책도 있구요.
저는 읽어볼까 하는 책이 주로 그렇던데 ㅋ
<언어의 감옥에서>는 세심한 논리전개가 압권인데 저는 평가단 책으로 맨처음 그 책을 읽었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고 공감도 많이하고 그랬어요.
감옥의 의미를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구요.

어제 하루만 <의식혁명>이 <닥치고 정치>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고 하던데
조혜련효과가 크긴 컸나봐요^^

고마워요, 메리포핀스님!

아이리시스 2011-10-2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지자본주의, 게다가 저렇게 두꺼웠어요?ㅜㅜ 대여수준이네요. 집에 있으면 질식할 것 같아요, 푸하하. <의식혁명>은 제목도 고루한데 내용도 고루할라나 했는데 행복이라니, 조혜련이라니, 저도 아리따운 아가씨가 되어 '의식 혁명' 있냐고 물어봐야겠어요!

한사람 2011-10-20 16:49   좋아요 0 | URL

그렇죠..확실히 두껍죠? 저 책 받았을때 암담하던 심정이...벌써 옛날이 되었어요
<의식혁명>의 소개를 보니 사람의 의식수준을 점수화한 게 흥미롭던데
한비야님이 500이고 우리의 목표가 350이고
보통 사람은 200이라는데 웃기면서도 솔깃해요.
그 책도 책이지만 조혜련을 다시 봤습니다 ~

가연 2011-10-24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지막 사진이 찡하네요ㅎ 저도 이 페이퍼를 보고 저거 따라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였었지만 의욕부족으로...ㅠㅠㅠ 내 맘대로 나쁜 책은 저랑 똑같네요. 주로 한사람님의 리뷰를 스마트폰으로 보는데 집중이 더 잘되고 좋더군요ㅎㅎㅎ 10기에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ㅎㅎㅎ

한사람 2011-10-25 08:45   좋아요 0 | URL

서재 책꽂이 한칸에 모아놓았죠. 소설은 가져가는 지인들이 있었는데
인문은 싫어하시더라구요, 하하

리뷰 스마트 폰으로 보시는데 감동했어요
긴 리뷰는 힘들던데요 ㅠ
집중은 잘 되지만 더 길어 보이잖아요 ~

여튼, 가연님이 10기도 하신다고 해서 마치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또
만나는 기분이 들었어요.

보물선 2011-11-1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한나 아렌트가 같이 있네~
완전 폼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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