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익명의 해답
이런 생각을 했다. 연애는 서른이 되면 시들해지고 그러다 마흔이 되면 추억이 곧 사랑일 것이고 어느덧 오십이 되면 연애도 사랑도 추억도 사라져 그리움만 남게 되는 것. 어렸을 때 나는 대충 나이 먹는다는 걸 열정의 소멸로 인식했던 것 같다. 스무 살 땐 도저히 마흔을 상상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나는 마흔을 넘겨버렸고 다시 내 나이 육십을 떠올리기 힘들어 한다. 육십이 되어도 똑같이 그보다 더 늙어진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질까. 생각해보니 나는 얼추 서른 살까지는 연도별로 일어난 일과 내가 겪은 일들을 아주 세세히 기억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 명석한 기억의 두뇌는 결혼과 출산, 육아, 기타 삶의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급격히 퇴락의 길을 따랐고 이제 머리를 한번 감으면 방바닥에 머리가 한 움큼 쥐어지는 딱 그만큼씩 한해마다 세포가 죽어 감을 실감한다. 최근이라고 생각하는 시점은 대개 한 계절 전이고 얼마 전은 일이년, 좀 되었다 싶으면 삼년에서 오년, 손으로 햇수를 따져본다 싶으면 칠팔 년, 옛날이야기라 시작해보면 거뜬히 십년 전... 내가 어렸을 때 TV에서 이산가족 찾기 프로를 보았을 땐 삼십 여년이라는 세월은 너무나 멀고 긴 시간이었는데... 이제 나는 삼십 년 전의 나를 삼년 전의 나보다 더 자세히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올해 느낀 깨달음을 정리하게 되는 건 이 깨달음이 언젠가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내 인생에 대한 해답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알라딘에서 무엇을 이루었을까. 대단한 것을 이루고자 서재를 운영해 오진 않았지만 반복되는 서재활동에서 분명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존재했다. 이러저러한 일들을 떠올리니 결국 잃은 것도 얻은 것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곳이 좋아서 이곳에 일상을 의지하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상해 다시는 안 본다 다짐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서재를 기웃거리게 되는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곳의 익명성이 편하고 부담이 없어서였지만 내가 가장 괴로워했던 것 역시 익명의 이중성이었다. 익명이 변주하는 이중주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고 나 역시도 행사의 주체가 되어 본적 있는 이곳의 본성이자 거부할 수 없는 본연이었다. 다른 곳을 활발히 하지 않고 이곳에서 얻은 댓가란 바로 그 익명성을 대처하는 나름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연예인을 예로 들면 우리는 많은 사랑을 주고 대단하다 칭했던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구설수에 휘말릴 경우 여과 없이 솔직한 의견을 실시간으로 비판하는 창구가 마련된 세상에 살고 있다. 앞뒤 따져 보지 않고 전후 상황을 모두 들어보지 않고 드러난 현상과 몇 가지 공개된 사안만으로 호불호를 표명하고 신랄하고 원색적인 비난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떠들 수 있다. 그것을 의식한 누군가는 비난의 대상 편에 서서 유려한 논리를 펴기도 하고 당사자는 그걸 못 견뎌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거나 성급히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외치곤 한다. 마지막에 가서 그들 모두를 다 이해한다는 누군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만 전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고 그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임무가 아니겠느냐 충고하고 그 모든 걸 다 지켜본 또 다른 누군가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조롱하거나 자신을 포함해 모두 다 웃기는 사람들이라며 시대의 우울증과 편집증에 대해 쓸쓸한 냉소를 남긴다. 시간이 지나면 앞서 벌어진 상황은 거짓말처럼 잊혀지고 새로운 상황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똑같은 패턴의 시나리오는 지칠 줄 모르고 반복된다. 어떤 익명은 열렬한 공감을 또 어떤 익명은 마땅한 손가락질을, 또 다른 익명의 친구는 냉소를 그 친구의 모르는 이웃은 연민을...
#2. 익명의 대가
알라딘 서재라고 다를 것이 없었던 지난, 일 년이었다. 이곳은 다른 온라인 서점과 달리 공개게시판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의도와는 다르게 얼마든지 집단축하의 분위기도 마녀사냥의 분위기도 만들 수도 있고 정치 관련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고 특정인에 대한 음해 및 명예훼손도 가능하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글을 쓰진 않았더라도 충분히 이해받기보다는 뜻밖의 오해를 받기가 더 쉬운 경향이 분명히 있다. 익명은...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엊그제 나를 포함한 이곳 여성 알라디너에게 무차별적으로 특정인을 비방하는 댓글이 달린 적이 있었다. 처음엔 황당하고 기가 막혀 그리고 가슴이 떨려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이웃과 교류가 별로 없는 나를 타겟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중에 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똑같은 메시지가 타전 된 것을 보고 그 사람의 계획을 대충 파악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알라딘 서재를 이용하는 분일 것이며 그 특정인으로부터 직접, 간접적으로 어떠한 피해를 받았거나 혹은 목격했거나 그도 아니면 확실한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들었는데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자 댓글의 내용은 또 다른 알라디너와 출판사를 언급하며 자신이 쌩쑈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정중하게 방법이 의도를 넘지 못하고 있음을 답하며 이런 식의 방법은 결국 당신에게만 상처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말로 억울하거나 세상에 알려야 할 일이라 생각되면 합리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따르는 게 어떻겠냐는 어줍 짢은 충고와 함께. 사람들은 사건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이슈 자체에만 관음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므로 당신의 방법은 생각만큼 효과가 없다는 말도 함께... 물론, 내 글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잠시 후 그는 자신의 댓글을 지우고 서재에서도 사라졌다. 그렇게 쉽게 사라지고 말 것을 잠시라도 그런 방식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을까 싶어 나는, 갑자기 그 사라진 익명이 서글펐더랬다. 태연히 지우고 사라지고 나면 당신이 한 일이, 당신이 쓴 글이, 당신을 느껴버린 내 기억이 없어지는 일일까... 그것은 당신에게도 마찬가지 일일 터인데... 아마도 나는 잊어버려도 그래야만 했던 당신은 죽어도 잊지 못할 추한 실수가 될텐데...
그랬다. 나는 올 한해 이곳에서, 혹은 알라딘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여러 번 익명의 공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ㅠ) 이번 일처럼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나를 타겟으로 삼은 적은 물론이고 나를 지켜본 누군가가 때가 되면 여러 방법으로 교묘하게 나를 자극했다. 동일인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도무지 모를 것 같기도 하고. 한때는 그 익명을 추적해 모아진 단서들로 대충 내 나름대로 집히는 사람을 분석해보기도 했다. 그들 중에 어떤 익명은 소름끼치게도 나를 알고 내 글을 읽었고 심지어는 나를 대단하다고까지 칭찬한 사람이라는 것도 어슴푸레 알게 된 적도 있었다. 그 아는 익명아닌 익명이 왜 그러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나는 돌아앉아 그 사람이 잘되기를 먼 훗날이라도 나보다 훨씬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각종 리뷰대회에 발길을 끊은 다음부터 나는 익명의 비난에서 자유로와 질 수가...있었다. 그 익명이 이쪽에서 상탄 글을 또 다른 저쪽에 접수하여 뭐라도 어떻게 떡밥을 챙겨먹는다는 식의 또 다른 익명의 빈번한 고자질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었다. 내가 떡밥을 받아먹는 양과 횟수가 줄어들수록 익명의 공격도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다른 것에 마음 둘 일을 자동적으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댓글에 대한 상처들은 쉽게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사실 내 이웃 분들의 서재에 가서도 댓글을 잘 남기지 않는 편인데 변명을 하자면... 가까워 지면 반드시 멀어지기 때문이라...말씀 드리고 싶다. 온라인에서 좋은 글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울컥한 적이 많았다. 그런 글에는 뭐라도 살짝 한줌 남기고 오고 싶었지만 세 개 할 거 하나만 하고 오늘 할 거 내일로 미루는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다. 남겨진 내 댓글을 좇아가며 저장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그것들도 공격으로 치환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떤 분은 온라인에서 소통하지 않고 자기 잘난 맛에 혼자서 우아한 척 글을 올리는 것은 커뮤니티에서 왕따가 되는 길이라고 유머스럽게 충고도 해주셨는데 그래서... 자주 가는 분에게 글도 남기고 하다가 또 여지없이 익명을 불러 들인 꼴이 되길래 그것 마저도 접었다. 소싯적에 토론이나 논쟁으로 상대를 밀어붙이고 승리감에 도취된 적이 왜 없었겠는가. 남을 아프게 하는 말은 부메랑처럼 반드시 내게 돌아온다. 갑자기 발길을 끊은 것처럼 보여서 오해할까봐 뭐라도 글을 남겨드리고 싶었지만... 그것도 내 경우에 절실한 것이지 보는 입장에선 웃길 것 같아 그만두었다. 책을 보내주겠다는 고마운 분들의 성의에도 인사만하고 끝내 허락을 해드리지 못한 적도 있었다. (죄송했다) 모두가... 그러다가 다시 멀어질 것이 두려웠노라 그런 후에 감당해야 할 내 쓸쓸함이 사무치게 싫었노라 고백한다.
#3. 익명으로의 치유
소설집을 공부하다가 바로 어제 천운영의 ‘알리의 줄넘기’라는 단편을 읽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소설을 읽었다는 걸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공교롭게도 각종 포털에선 ‘알리 나영이’가 검색어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영화적인 독서의 순간이 거짓말처럼 빈번한 사람에 속하는데 그래서 아마도 그에 대한 내 상념을 글로 남길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나, 이런 거창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제 보니 알리는 자신이 성폭행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직접 가사를 쓰면서 피해자가 느끼는 진심이 세상에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기자회견을 자청했다고 알려졌다. 기자회견을 보면서 느낀 건 알리가 무엇보다 자신의 신중치 못한 실수로 앞으로 노래를 하지 못하게 될까봐를 극심하게 두려워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알리는 용서도 용서지만 제발 노래를 하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알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댓글들로부터 무엇을 예감한 것일까... 그동안의 숱한 사례들을 보면서 자신이 유일하게 세상에 떠들 수 있는 노래라는 희망이 사라질 순간을 상상하진 않았을까. 노래하지 못하게 되는 공포심은 여자로서 밝히기 수치스러운 사실을 공개해야 하는 결단의 순간을 종용한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유명인이 실수하면 그가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라는 식의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사랑해주고 당신을 응원해 왔는데 이렇게 배신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라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전과 같은 사랑은 추호도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를 서슴치 않고 한다는 것이다. 대중이라는 익명은 무언과 침묵으로 연예인의 유배를 도모하고 그를 기꺼이 은둔이라는 감옥으로 보내 버리는데 익숙하다. 만약 알리가 자신의 성폭행 사실을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자신의 진심을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울면서 말했더라면... 백지영, 오현경, 이승연, 이경실, 이영자, 최진실, 정선희... 9시 뉴스에 등장한 숱한 여자 연예인, 이들이 자신들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명예를 회복 하는 데는 십년이상이 걸리거나 혹은 영원히 기회가 없어진 사실을 알리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안다고 해서 그 사실이 다음 사건에 참고가 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영리한 방송과 그에 타협하는 연예인 다수는 미리부터 자신의 가족사나, 과거 가난했던 시절, 아버지 사업이 망한 이야기,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키워준 할머니, 투병중인 가족, 학창시절의 방황, 연습생시절 굴욕 같은 사연을 내보이며 눈물로 호소한다. 대중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상처를 구경하며 그들의 에피소드와 거래를 하는 것과 같다. 남의 상처를 구경하는 것만큼 내 상처에 위로가 되는 일도 없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알리와 포먼은 여전히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혈전이라기보다는 포먼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알리는 그 멋진 라이트 스트레이트 한방 날리지 못하고 로프에만 기댄 채 몸을 숙이고 있었다. 거대한 체구의 포먼은 해머펀치를 날렸다. 나는 어서 시간이 흘러 알리가 두 팔을 번쩍 들고 알리의 위대한 승리를 세상에 알리기만을 바랐다. 나는 링밖에 서서 끊임없이 알리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알리는 로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알리의 상체가 로프 밖으로 젖혀지며 고개가 꺾였다. 그 순간 알리의 몸을 버티고 있던 로프가 늘어지면서 알리의 몸뚱이를 감기 시작했다. 알리는 사지를 늘어뜨린 채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다. 줄에 둘둘 말린 알리는 꼭 나방고치 같았다. 나는 링 밖에 서서 계속해서 알리의 이름을 불렀다. 어서 일어나. 알리, 어서 나비처럼 춤을 춰야지, 알리
-90p, <알리의 줄넘기> 中에서 / 『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다시 소설 이야기를 해야겠다. 천운영의 소설 <알리의 줄넘기>의 주인공 이름은, 김알리이다. (가수 알리의 아버지가 무엇을 하셨는지는 알수 없으나 무하마드 알리를 떠올리고 예명을 알리라 한것이라 들었다) 혼혈인 아버지가 평생 권투선수의 스파링 파트너였기에 아이가 태어나면 알리라 이름짓기를 원했다. 혼혈 아버지에게서 다시 혼혈로 태어난 알리는 또래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받으며 치매 할머니와 살면서 희망을 잃지 않는 열세 살 소녀이다. 사라진 아버지가 ‘유머 있는 알리가 될 순 없어도 슬퍼하는 알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씀 하셨기에 슬퍼하는 것을 패배로 알고 살아가는 기특한 친구이다. 그러니 알리가 연습하는 줄넘기는 세상이라는 링 안에서 인생이라는 싸움을 준비하는 자기만의 시간인 것이다. 누구나 타고난 콤플렉스와 살면서 자라나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평생을 투자한다. 나는 알리를 알기 전에도 알리 노래를 잘 알지 못했고 그녀에게 특별한 호감을 느낌 대중이 아니기 때문에 새삼 이번 사건으로 그녀를 위로하며 응원 한다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알리를 통해 알리의 모습에서 알리로 반응하는 익명의 본성을 엿보았다 말하고 싶다. 그 익명이 당신이고 나였다고 그래서 우리를 보았다고 자백하고 싶다. 소설에서 알리는 혼자서만 연습해온 아버지와 달리 줄넘기를 같이 할 누군가를 찾아서 줄넘기를 사러가는 것으로 마지막을 인사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철저히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독단적인 과정이지만 글을 올리고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같이 진심을 나누는 것은 혼자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서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그 어떠한 기가 막힌 일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알리를 보면서 조그만 실수나 배려치 못한 행동, 또는 전혀 다르게 해석된 글 등으로 이곳 서재에서도 얼마든지 알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굳이 이곳이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익명의 부메랑은 내가 무심코 날렸던 만큼 나에게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 익명이 나쁘다 비난하는 것도 사실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른 일은 아니라는 생각... 그 속에 속한 적 있었던 나 역시 크게 다를 것 없는 대중이었고 다른 이의 익명에 불과했다는 자각.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보수신문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생각모자란 네티즌의 악행을 비난하고 무언가를 가르치려 든다. 내 생각에 익명을 치유하는 방법은 역시 같은 위치의 익명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 내가 모르는 익명의 손길로 내가 위로를 받았던 것을 떠올리며 상처받는 누군가에게 말없는 위로의 익명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결국은 익명이었던 나를 치유하고 나아가 내게 위로받은 익명을 치유하는 길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글쎄, 나는 당신과 나의 이 질기고도 서러운 모두의 익명을 견디는 것이 서재를 아프지 않게, 그리고 조금은 편하고 어떨땐 유쾌하게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알리가 하는 줄넘기를 내 나름의 글쓰기로 슬쩍 바꿔버리고 싶다. 참 추운 날이다. 나를 아는 익명의 이웃 누군가가 동네에서 혼자 줄넘기 하는 광경을 혹시 보시거든 내가 넘고 있는 줄넘기에 더블 더치할 누군가의 우리를 기다려 보고 있는 중이라 받아들이시라. 이 추운 날 거기 혼자서 뭐하는 짓이야 하지 않고 그렇게 뛰면 뭐가 좋으냐 따져 묻지 않고 나도 같이 뛰어 보니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지더라는 그래서 말없이 눈으로 만으로도 웃어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믿어주시라. 내게 그런 익명의 이웃은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는데, 오늘은 그분들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드리고 싶다고 고백한다. 부족하지만, 그것이 올 일 년 이곳에서 깨달은 마음이라고 살짜기 속삭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