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놀아본 언니에게
아직도, 글로만 보면 내가 중년의 남성인줄로 아는 분들이 꽤 있다. 서재 타이틀이 일단 책방 아저씨이고 댓글도 최대한 점잖게 대응하고 리뷰에서도 제대로 정색을 하고 문체도 보수적이고... 암튼 내가 봐도 종합적 분위기는 무겁고 심각한 쪽이니까. 그런데 나는 얼굴보고 마주하면 이 분위기를 확 깨는 반전의 성향인지라 사실 일상과 글과는 영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상에서의 지인이 온라인상의 나를 확인하는 것도 싫고(재수 없어 할 것이므로) 온라인에서 아는 사람을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도(실망할 것이므로) 불편하다. 특히나 온라인에서 글로만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근엄하게 앉아 책만 보고 도 닦듯이 글만 쓰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글의 내용도 기쁘고 밝은 이야기 보다는 주로 슬픔과 상처, 고독과 절망이 주를 이루므로 그만한 사연을 가지고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은 채(?) 꿋꿋이 살아가는 줄 아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누구라도 온라인에서 알게 되어 실제로 만나게 되는 기회가 생기면 대부분 거절, 사양, 핑계, 포기로 일관한다. 여기서의 한사람과 눈앞에 있는 나를 일치시키기 힘들어 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나도 편한 일이 아니다. 온라인과 일상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몇 안 되는데 이들도 원래부터 알았던 한쪽의 나머지 반쪽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나는 나를 먼저 알게 된 그 한쪽대로 나를 대하는 상대를 배반하기 싫어 최대한 나머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보고 싶어 하는 대로 보여 준다. 왜 이렇게 이중적인 생활태도를 취하게 되었는지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대학교 들어가고 나서부터 서서히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새삼 당시를 되돌아보게 된다.
사실 나는 좀 놀아본 언니(?)에 속한다. 우리 나이에 왕년에 한번쯤 놀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지만 나는 대학생이 되어 이년 정도는 신나게 돈을 쓰며 놀았고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엔 돈이 없어 방황하면서 놀았다. 죽도록 일도 했지만 궁금한 일은 대부분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돌아다니면서 후회 없이 놀았던 것 같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이 영화는 바로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놀았던 그 한 시절에 같이 놀았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이다. 엄정화가 (연대 사회체육학과) 91 학번 쯤으로, 황정민은 (고대 법학과) 71년생으로 나오므로 추정컨대 그들은 내가 뻔질나게 놀러 다닌 곳에 분명 함께 다녀간 적이 있을 것이다. 엄정화의 별명은 ‘신촌 마돈나’이고 대사 중에는 ‘독수리 다방’도 스쳐 지나가고 국회의원 사모님은 그녀더러 그 유명한 ‘X세대’가 아니냐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엄정화가 나이트에서 무대 춤을 선보일 때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은 런던 보이스(London Boys)의 할렘 디자이어(harlem desire, 1987)이고 이 노래는 두 사람이 학교 앞에서 최루탄을 맞고 도망칠 때도 계속 멈추지 않는다. 꼭 써니에서 7공주가 피카디리극장인가 데모현장에서 전투경찰을 사이에 두고 불량서클과 육탄전을 벌일 때 흘러나오던 조이(Joy)의 터치 바이 터치(touch by touch)때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
91학번 엄정화는 신촌가는 버스에서 마이마이를 듣고 있구나.
가죽팔찌, 찡팔찌, 야광팔찌... 특히 야광시계는 인정. 손목이 들어갈만한 왕귀걸이도 인정.
그때 베네통 가디건과 아디다스 테니스 팔목보호대가 엄청 유행이었지, 하하하.
사실 훗날 그 음악들이 이렇게 데모배경음악으로 훌륭하게 편집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아니면 우리 같이 나아가리라 그런 노래만 듣고 우린, 눈물만 삼키지 않았던가.
그러나, (영화속)엄정화가 나이트에서 날릴 때 한창 유행하던 음악은 할렘 디자이어는 아니었다. 런던보이스는 내 고딩 시절이었고, 내가 이틀에 세 번꼴로 나이트를 다닐 때 (89년에서 92년 사이)허구한 날 흘러나오던 음악은 바비 브라운(Bobby Brown)과 폴라 압둘(Paula Abdul)이 대세였다. 당시 Don’t Be Cruel과 Straight up은 강남역 월드 팝에서 분위기가 달아 오르기 전 시작을 알리던 오프닝 뮤직으로 많이 쓰였다. 우리는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만나 다섯시 반부터 나이트를 입장하곤 했다. 그때 압구정동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커피 한잔이 오륙천원 할 때인데 (나이트)기본이 만 오천원 이었다. 목화예식장 옆 ‘유니콘’이 거의 망해 갈 무렵 ‘월드 팝’은 당시 좀 노는 8학군 출신 대학생들의 거의 유일한 쉼터(?) 였었다. 싼 맛에 가끔 이대앞 ‘애프터’에서 과모임을 가지기도 했는데 물이 안 좋고 후져서 곧 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남역에서 역삼동 쪽으로 좀 내려오면 뉴월드라고 어중간 한 호텔 지하에 ‘당꼬’라는 나이트도 있었다. 거기 농구선수와 탤런트들이 왕왕 다녀가곤 했는데 이승철과 강문영, 허재도 본 기억이 있다. 반갑게도 엄정화는 정확하게 당시 유행하던 춤 두어 개를 추기도 했다. (그 부분에서 나는 딸아이에게 저거저거 그때 유행하던 춤이야, 이렇게 말하고 말았고 아이는 엄마 너무 크게 말한 거 알아? 흑, 이렇게 답했다...)아쉬웠던 건 중간에 브루스 타임이나 나이트 문 닫을 타임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인데 리얼리티는 살았겠지만 너무 진부해서 누락되었나 싶다. 언제 브루스를 신청 할 것인가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레오나드 코헨의 I'm your Man이나 끝나기가 아쉬워 여러 번 틀어대던 쿠와타 밴드의 Just man in love정도가 흘렀다면 그야 말로 시대의 완벽한 고증이자 깨알 같은 디테일 이었을 텐데 말이다.
#2. 지나온 언니에게
아무튼 이 영화는 우리가 예상한 내용을 예상한 바대로, 가장 잘 어울리는 두 배우가 예상한 만큼 열연했다. 엄정화는 자기 옷을 입은 듯 배역과 동일인물 같았고 황정민은 소탈하고 진솔한 남편이었다. 사람들이 훌쩍 거리는 부분은 의외로 엄정화 씬이 아니고 황정민 씬이었는데 역시 연기파 배우답게 두어 번 찐한 감동을 선사하는 한방이 있었다. 시나리오 상으로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의 인물들이라 예외적인 인물이 없긴 하지만 그 전형성을 다행히 배우의 연기력과 유머, 감동으로 잘 메운 듯하다. 꿈은 이루어지고 사랑은 계속된다. 고로, 행복은 약속된다.
한 가지 나만 그런 것인지 황정민을 보면서 생각나는 한사람이 있었는데... 투박한 부산 사투리와 돈 안 되는 인권 변호사...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소탈한 모습... 그리고 마지막 아내의 꿈도 자신의 꿈 이상으로 소중하게 인식하며 사람들에게 심경을 설파하는 장면들이 꼭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고 외쳤던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그가 계란세례를 받을 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아내를 말할 때 정말로 울컥울컥 했다고 고백한다.
말은 안되지만 나는 이 장면 울컥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80년대 후반 올림픽과 성장을 같이한 X세대가 한 분 단에 두 명 간다는 대학에 들어간 90년대 초반, 오렌지족과 같은 야타 시절을 불같이 보낸 나 같은 아줌마들을 위한 드림 환타지 영화였다. 날카로운 비평과 분석 등은 영화전문가에게 맡긴다. 아줌마는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 내가 버린 남자, 혹은 어이없이 내가 놓친 기회, 더불어 내가 잊었던 꿈들을 다시 한번 상기하기에 참 고마운 작품이다.
우리가 지금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다시 46kg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거짓말처럼 마흔 넘어 슈퍼스타 K에 도전해 인상 깊은 도전을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기억나는 출연자 쯤으로 생방송에 한번 초대된다면 대박 행운 정도가 될 것이다. 내 남편은 절대로 시장 후보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며 갑자기 집값이 떨어지거나 반대로 주식이 대박 나거나 방학이 지났다고 아이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내일이면 일 년에 두 번이라는 명절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 것인지 후라이팬 앞에서 하루 종일 기름 냄새를 맡아야 할 것이다. 식구들을 챙기고 며느리 역할을 다하기 위해 많은 꼴을 눈감고 안 듣고 그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고마운 오늘이 아닌가. 분명한 건 그래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가 아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여기까지 왔구나로 느껴지는 오늘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것인가. 나는 기억한다. 그때 강남역 거리마다 불법테이프를 팔고 있던 리어카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신승훈이었고 김현식이었고 김민우였고 이범학이었고 심신과 강수지였다. 우린 저마다 상대의 미소 속에 비친 내 사랑이 내 곁에서 오직 하나뿐이길 원했고 이별 아닌 이별을 했기에 흩어진 나날들을 보냈다. 돌아보니, 1991년도는 참 좋았다. 그때 아무리 아팠어도 분명 다가올 미래를 누구보다 기다렸고 사랑을 약속했다. 그 설레이던 시간은 당신과 나 사이에서 영원한 이야기로 남았다. 글쎄, 나는 그 시절을 다녀온 당신과 이렇게 추억을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참 기쁘다. 나이 먹는 다는 건 추억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 둘 누군가와 추억을 나눌 꺼리가 더 많아진다는 소식만 같다. 1991년도를 생생히 기억하는 당신, 한번쯤 놀아본 당신에게 이 영화를 건네 드린다. 그렇게 오늘도 해피 설날, 메리 행복, 댄싱퀸을 꿈꾸자고 말해 드리고 싶다.
비록 1991년도의 꿈은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때 우리가 꾸었던 꿈은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