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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왜


   최근 한 달 동안 이곳에 글을 올리면서 나는 왜 알라딘 서재를 운영하나, 이런 생각을 여러번 했습니다. 나는 왜 리뷰를 이곳에 올리고 안 쓰던 페이퍼도 작성하고 다소 화제가 된 페이퍼에 덧글도 남기는가. 저는 리뷰를 올리는 곳이 한군데 더 있긴 하지만 그곳은 거의 DB 저장 창고로서 활용하고 있거든요. 비슷한 온라인 서점인 예스, 인터파크, 교보, 리브로등의 아이디가 있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안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질문은 나는 왜 온라인 서점들중 (서재로서)특히 알라딘만 이용하나, 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까요.

1. 알라딘이 가장 진보적(?)이어서
2. 알라디너의 생각이 가장 나와 비슷해서
3. 알라딘이 가장 떡밥을 많이 주니까
4. 알라딘에서 가장 나를 알아봐(?)주니까
5. 알라딘이 가장 이웃이 많으니까(나를 이웃으로 해주는 분들이 많으니까)
6. 알라디너의 수준(?)이 가장 높아서  
7. 알라딘이 그나마 속물들이 덜해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는데 답이 한가지인 것 같지는 않고 또 한 번에 이루어진 일같지도 않고 천천히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저는 다른 서점보다는 알라딘쪽으로 사후(?) 결정을 한 것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무에게도 그러한 내재적인 변화를 말한 적도 없고 특별히 그 전과 비교해 글쓰기에 노력을 기울인 건 아니었는데 한군데로 서재를 통합하다보니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더군요. 글을 쓰고 올리고 하는 일들이 내면적이고 일방적인 일에서 개방, 소통, 외재적인 방향성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내 글을 읽는 불특정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게 된 것이죠. 남들을 의식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궁극에는 내가 아닌 나를 지켜보는 남들을 위한 글이 될 확률이 많기 때문에 글쓰는 입장에선 마냥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원래 의도하고자 했던 글을 쓰지 못하게 될 배경이 되지요. 이웃이 많아지고 소통이 많아져서 알려진 블로거들이 결국 그를 견디지 못해 서재를 폐쇄한다거나 최초의도와는 다르게 상처를 받거나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인연을 발견하게 되거나 출판사의 눈에 띄어 책 한권이라도 받게 되는 행운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현상이 일어나면 절대 그 일이 일어나기 전과는 똑같을 수가 없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여지껏 온라인 세상을 살면서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또 의미없는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거나 개인 홈피, 블로그등의 자기방을 폐쇄하게된 이력들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요.

   그러다가 생활은 습관을 이기지 못해 금방 트위터, 페이스북, 카페등을 기웃거리고 수많은 블로그들중 내게 맞다고 생각되는 내가 피해를 덜보고 그나마 우아하게(?) 내 생각을 그런대로 적어볼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또 둥지를 틀게 됩니다. 제 경우도 이곳 알라딘이 여차여차해서 현재까지 남게된 별채같은 곳이 되었네요. 스스로 알라딘 서재를 운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 지난 6월달인데 원래 연애도 3,4개월까지가 가장 열정적이고 성과(?)가 많듯이 저는 최근 삼개월을 참 재미나게 보낸것 같습니다. 이곳, 알라딘에서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다른 이웃 분들의 글을 읽어보고 이곳 알라딘의 정체성도 눈치채게 되었는데 최근 삼개월간 급격하게 제가 모르고 있던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요. 엊그제 신문에서 구글은 사람마다 다른 검색결과를 보여준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제가 사용하는 컴퓨터가 고급인지 싸구려인지 정치뉴스를 보는지 경제 뉴스를 보는지 아니면 어떤 연예인을 주로 검색하는지 모든 것을 기록해놓았다가 저한테 맞는 검색결과를 보여준다구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02/2011090202428.html)

   그러니까 평소 책관련 정보를 검색해온 A주부와 아이 학원광고를 클릭해왔던 B주부가 동시에 ‘영어’라는 검색을 했을 경우 그 결과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제 경우 평소 보수적인 뉴스를 많이 보았는데 이제 생각이 바뀌어서 진보적인 글을 보고 싶다고 ‘곽노현’을 검색했다고 치면 구글은 보수적인 시각에서 진보를 비판한 기사를 맨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저는 다시 진보적이기 힘든 사고를 할 확률이 많아지는 것이구요. 결정적으로 검색엔진은 자신들이 재단한 고객에게 고객 입맛에 맛는 검색결과만을 보여주므로 고객은 세상의 여론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늘 오판에서 자유롭지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내가 찾는 소식은 내게 필요한 소식이 아니라 내가 보아왔고, 계속해서 보고 싶은 소식인 것입니다.



#2.  나는 어떻게


   그런데 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독자는 아니지만 이것이 비단 검색엔진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바로, 여기 알라딘도 고객을 자기들 판단대로 재단, 구분하여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목적에 맞게)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이죠. (물론 이는 어느 인터넷 업체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알라딘은 눈에 띄는 특정 성향이 있다는 것이죠) 저는 옆동네 블로그를 접으면서 몇 개월간 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한 일이 없습니다. 물론 블로거 활동으로 보이는 트래픽도 전무했겠지요. 그와 동시에 그 서점에서 제게 보내던 소식도 뚝 끊겼습니다. 반대로 제가 알라딘에서 서재활동을 하기 시작하자 서서히 메일이 증가하고 각종 소소한 이벤트에서 시작해 예판소식, 음반소식, 서재뉴스등등의 메일이 급증했습니다. 마치 제가 구입하려고 했던 책을 미리 알고나 있었던 것처럼 시시각각 정보를 전달해주던 민첩함이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문득, 어제 마녀고양이님이 제기하신 서재뉴스레터 건을 보면서

   우리는 관리당하고 있었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꽤 진지하게 내가 알라딘 서재를 운영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쪼개어서 해보았어요. 평소대로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1. 알라딘 서재를 ‘운영’한다는 의미

   여러 블로그 중에서 책과 관련된, 글과 관련된 나를 말하고 나를 정리하고 그럼으로써 나를 돌아보는 곳. 이런 내 생각과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알라딘 서재를 운영한다는 건 현재 제 자신을 운영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수 있겠네요. 현재 제 생활의 중심은 여전히 책이고 글이고, 하니까요.

2. 알라딘 서재에서 ‘메인’에 게재된다는 의미

   현재 알라딘 서재의 메인 리스트(HOT)에 노출되는 글은 15개입니다. '알라디너의 선택'은 여섯개(스마트폰으로는 다섯개 ㅋ). 재미난건 메인 리스트와 '알라디너의 선택'이 꼭 동일하지는(동시적이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아 ~ 이것이 운영측의 꼼수(?) 라고 판단됩니다만 ㅋ. 페이퍼와 리뷰의 비율은 약 5:1인 듯해요. 이중에서 신간이 30%, 구간이 10%, 그리고 책과 상관이 없는 정치적인 정보에 관한 글이 꼭 두어 개 노출됩니다.(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사안과 관련해) 그 외 개인일상에 관련된 글, 알라딘의 운영에 관한 글, 시사적이진 않지만 꾸준히 철학, 교육, 문학과 관련된 성찰적인 페이퍼도 포함됩니다. 같은 화면에 NEW로 노출되는 글도 거의 HOT에 노출되는 글을 작성하신 알라디너의 비율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저는 예전에 제가 알라딘 서재를 리뷰창고로 활용할땐 이 서재화면도 보지 않았습니다. 지나쳤다고 해야 맞을 듯하네요. 즉,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제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알라딘 서재의 메인화면에 리스트로 노출된 글들은 곧 알라딘의 독특한 헤게모니를 만들어가는 일종의 헤드라인이라는 생각이어요. 물론 이를 만들어가는 것은 알라디너가 아니고 알라딘이겠죠. 알라딘이 선택한 글은 알라디너의 선택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메인 중앙의 ‘알라디너의 선택’과 같은 메뉴와 연결지으면서 일반 고객들에겐 알라디너들이 요즘은 이런 책들을 많이 읽구나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죠. 헤게모니의 주체가 알라디너로 생각할수 있는 의도적 마케팅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왜 추천도 받지 않고 진보성향의 글도 아니고 개인일상을 말한 것도 아닌 제 글이 메인 리스트에 선택되고 ‘알라디너의 선택’에 노출이 되는 걸까, 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히려 제 개인적으로 보자면 혼자서 글쓰고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던 지난 시절에 쓴 글들이 문학적으로는 더 의미있었다고 보는데 말이죠. 저는 자연스레 제가 쓴 글들중에 메인에 노출되는 글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불어 그렇게 메인에 자주 노출되는 분들의 공통점도 눈치채게 됩니다. 더 자세히 말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 같아 저어하게 되지만 말을 꺼내었으니 간단한 결론만 짓겠습니다.

   바로, 관리되었고 그 검증, 관리된 대상으로서 알라딘의 정책과 서재운영 방향성에 부합한 알라디너로서 리스트에 올라간 것. 그러니까 저도 그 리스트에 업된 운좋은(?) 알라디너가 된 것이겠죠. 이 사실이 서재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자극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내 글의 영향력을 인지한 채로 글을 쓰게 되므로 책임감도 있고 또 혼자만 보고 말 글 보다는 더 성의를 발휘할 수도 있고 아무래도 고민을 많이 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어제 마녀고양이님처럼 화제가 많이 되었다고 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지는 메일에도 리스트업되어 역으로 원치 않은 덧글을 받거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노출이 많이 되는 것이 꼭 득이 된다고만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재뉴스레터를 알라디너 모두에게 보내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알라딘 서재 메인에 노출된건 알라디너 모두가 보아도 좋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운영측의 해석이라면 논리상으로 많은 것에 동의한 알라디너가 불리해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추천받고 칭찬받을때는 좋았다가 반대 의견으로 비난받는 건 싫다는 뜻과도 다르지 않으니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알라딘 서재를 폐쇄할 생각이 없고 계속 이곳에서 책 좋아하는 이웃들과 소통하고 싶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최소한의 방어책을 스스로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운영측도 피해가 가지 않는 방안을 마련해 주어야겟지만요. 글 올릴 때 서재뉴스 레터에는 등록되길 원하지 않음이란 체크란 하나만 만들어주어도 되지 않나요? 마지막에 나의 서재 & 즐겨찾는 서재에만 노출되기 란이 있듯이요.)


3. 알라딘 서재에서 ‘추천’을 받는다는 의미

   몰랐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추천의 의미가 다른 곳에서의 추천과 의미가 다르다는 걸요. 제가 보았을 때 알라딘은 이웃이 많다고 추천을 품앗이 하듯 해주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저만해도 작년에 이웃도 변변찮을 때 어떤 리뷰에 추천이 몇 십개가 되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땐 다른 서점에 더 많은 글을 올릴 때였는데 그쪽의 추천은 이곳의 삼분의 일도 되지 않더라구요. 의아했죠) 

   알라딘에서의 추천은 곧 알라딘 서재의 방향성과 상관이 있다고 봅니다.

   이 글을 추천한다는 것은 꼭 당신이 글 잘 썼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 의견에 동감한다는 동의표시의 효과라는 것입니다. 추천이 많으면 그 의견에 같은 의견이라는 ‘동감’이라는 표시. 이건 공감하고는 약간 다른데, 그 글에 '공감'할 경우는 내 마음을 움직인 글이고, 그 글에 '동감'이라는 건 내 이성에 소구한 글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어떤 분이 알라딘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결론적으로는 공정하지 않다라는 글을 올렸는데 그 글에 추천을 해주신 거라면 알라딘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는 뜻이라는 것이죠.

   곧 추천은 리뷰와 페이퍼의 내용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당신 글에 감동했다는 ‘공감’도 되고 당신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도 되고 이 글을 다른 사람도 읽었으면 좋겠다는 진정한 ‘추천’의 의미도 되지만 알라딘에서의 추천은 다른 곳에 비해 ‘동의’라는 의사표현일 경우가 많다는 것. 추천이라는 기표가 동의라는 기의를 가진다는 것은 여론형성에 있어 중요한 잣대입니다. 저는 그래서 알라딘이 치밀하고 정치적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리뷰보다는 페이퍼가 추천이 많고 또 대회나 이벤트에 접수한 글이나 접수했던 글보다는 그와 상관없이 쓴 리뷰가 추천이 많은 것도 한가지 특징입니다. 또하나 책에 관해 신랄한 비판을 많이 할 경우 추천이 높아지는 것도 하나의 현상이죠 ㅋ

4. 알라딘 서재에서 ‘평가단’의 의미

   제가 평가단을 세 번째 하고 있어서 감히 타 서점과 비교해보자면 이곳에서 평가단 활동을 하는 것은 어떤 표본의 역할을 하게 되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평가단 분들이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만 소설과 에세이, 인문분야 평가단분들은 소위 글빨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어떻게 아냐구요? 척하면 알죠 ㅋ)  또 다른 서점에서도 파워블로거이거나 한 두개 이상 본인의 리뷰를 올리는 곳이 더 있는 경우도 있구요. 즉 이곳에서 책을 받아 리뷰를 올리고 그것을 다른 곳에도 올릴 경우의 영향력을 말씀 드리는 겁니다.

   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곳 평가단 활동으로 읽고 쓴 리뷰로 다른 서점에서도 떡밥을 받게 될 경우입니다. 언젠가 중복게재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고 페이퍼를 작성해볼까 싶었는데 혹시나 의도치 않게 상처를 받는 분들이 생길까봐 두어번 마음을 접은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평가단 책으로 쓴 리뷰를 타 서점에 올려서 포인트, 적립금을 챙긴 적이 두어번 있거든요.)

   암튼 알라딘에서의 평가단은 해볼만 하다, 가 지금까지 경험자로서의 제 의견입니다. 현재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하고 많이 추천된 책들중에서 한달에 두권을 받아 보게 되는 시스템인데 아무래도 추천하는데 신중을 기하게 되고 추천하면서 여러책들을 살펴보게 되므로 시야가 넓어진다는 생각입니다.

5. 알라딘 서재에서 나를 ‘즐겨찾는 서재’로 등록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의미

   글쎄, 저는 사실 저를 즐겨찾는 분들 중에 약 15% 정도만이 자신을 노출시킨 분들이라 어떤 분이 제 이웃인지는 모릅니다. 처음엔 제가 흔적을 남길 수 없고 또 이웃분이 오신 것을 제가 알 수 없으니 서로 편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방문에 자유로울 수 있으므로) 점점 이웃이 늘어감에 따라 이 생각이 바뀌어지더군요. 방문흔적은 없더라도 그냥 제 이웃 분들이 누구신지는 알 수 있었다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이는 사실 방문대상보다는 방문자를 배려하는 시스템인데 이웃이 추가될 때 자동으로 누가 추가했는지 알게 되는 시스템일 때(옆동네) 그냥 마음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더라구요. 그런데 만약 내가 이웃을 추가한다는 사실이 자동으로 공개되는 쪽이라면 굳이 또 이웃을 추가안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ㅋ 하지만 이웃추가하는 것이 뭔 자존심 상하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ㅋ

   그리고,

   나를 즐겨찾는 분이 많아지는 것과 쌩쓰투 적립금이 쌓이는 것이 비례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게 숫자의 법칙이기도 한데 자주 쓰고 많이 쓰면 많이 노출되고 그러다보면 이웃이 늘고 결국 그 정보 때문에 책을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암튼 저에게 (공개안하신)이웃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의미는 이래저래 저를 지켜보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썩 마음이 편치를 않네요 ㅠ 좋은 쪽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의 충고가 필요합니다.



#3. 나도 이렇게


이 책은 제가 지난 주말에 확인한 책인데 원제는 <생각 조종자들>이 아니라 ‘필터 버블’이더군요. 알라딘과 함께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게했어요.

인터넷 업체들이 무섭도록 정보를 필터링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인터넷 거인들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적 취향, 관심사, 취미, 성격 등에 관한 개인정보를 필사적으로 추적하고 분석하여 개인의 흥미를 끌만한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현상.


필터 버블의 세상에서 우리는 친근한 정보와 듣기 좋은 뉴스만을 편식한다. 문제는 이 필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기준으로 우리를 분석하는지 그 기준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제공되는 정보를 믿을 수 없다. 혹 광고주나 특정한 정치세력이 필터버블에 개입할 경우 우리의 생각과 의견이 그들의 입맛대로 조종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그렇다면 제3자에 의해 내 생각이 조종되는 필터 버블의 세상에서 온전히 내 생각을 지켜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구체적으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먼저 새로운 방향으로 관심사를 넓히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인터넷을 사용하며 규칙적으로 쿠키를 삭제하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더 나은 방법은 필터가 어떻게 작동하고 개인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사이트를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필터링의 기준이 모호하지만 트위터는 간단하고 명확한 편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필터 버블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는 일이다.



   관리당하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검색을 하고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기가 원하고 보고싶은 내용만 매일 확인하고 사는 것이지 않나요. 끔찍합니다. 그렇다면 알라딘은 현재 이렇게 부지런히 필터링 한 정보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요. 당연히 책파는 것에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을테죠. 그런데 만약, 책 파는 것 외에 다른 곳이 있다면? 예를들어 정보를 제휴하거나 거래(?) 할 수 있다면?

   글쎄 뭐좀 진보, 좌파적인 알라딘이 좌회전 깜박이 켜고 우회전 하지는 않기를 바래어 봅니다만. 생각을 정리해보았는데 당분간은 알라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생활을 지속할 것 같다는 예감입니다. 연애의 최초단계인 3개월이 지나면 이제 슬슬 목적성, 효율성, 유용성을 따지게 되죠. 그러다가 그 기간이 지나면 습관에 지배당하고 그마저도 지나면 반드시 권태가 찾아옵니다.  

   아직은 연애를 즐기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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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개되는 글에 대해서.
    from 마지막 키스 2011-09-06 14:35 
    안녕하세요, 한사람님.이 긴 글을 읽기 위해 저는 출력을 했습니다. 하하. 어떤 말씀을 하실지 궁금해서요. 예전에도 파워블로거나 그 외의 다른 사안들에 대한 글들을 적어주셨을때도 꼬박 꼬박 읽었었거든요. 아마 댓글을 남기는 건 처음이지 싶습니다. 그런데요 한사람님.일단 알라디너의 선택은요, 한사람님이 적어주신(혹은 생각하신)것처럼 '알라딘의 정책과 서재운영 방향성에 부합한 알라디너'로서 메인에 노출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글을 적든지 신간 서적(이게 3개
 
 
라주미힌 2011-09-06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시스템의 알고리즘이 정확하다고 보진 않는데요. 페이퍼나 리뷰가 알고리즘에 의해 노출되게끔 하는 요소들이 어떤 성격의 것들인가 살펴보면, 친근하고 익숙한 것들이 대세다 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것들이 너무 식상하면 튀거나 파격적인 것이 더 좋아보일 때도 있구요. 어딜가나 다 그런거 같은데용. 관리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익명의 숲에서 나오질 않는 것이구요. 연관지어서 생각해보면 정보 검색에 있어 가장 재미있는 것은 포털사이트 옆구리에 달려있는 실시간 검색어라고 생각합니다.
들여다 볼수록 대중의 속살은 훤히 드러나는 구조.. ㅎㅎ
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ㅎ 대략 5년 이전의 알라딘이 훨씬 재미있었는데.. 좀 일찍 오시지. ^^;
알라디너의 선택에 떠있길레 들어와봤습니다...

한사람 2011-09-06 15: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라주미힌님.
다른 것보다도 '대략 5년 이전의 알라딘이 훨씬 재미있었는데.. 좀 일찍 오시지'하는 말씀이 눈에 번쩍 띄이네요 ㅋㅋ
저는 그때 이러한 서재가 있는지도 몰랐을 때이네요

실시간 검색어도 사람들이 검색을 많이 하니까 순위가 올라가는 것인지
검색어로 뜨니까 검색을 많이 하게되는 것인지..헤깔립니다.
제 주변사람들은 검색어가 대부분 조작이 아닐까..생각하던데
대부분의 사실 플러스 몇개의 거짓 혹은 과장이 포함되어 진실로 포장되는 일이 많아서 그런가봐요

덧글 감사합니다~

하이드 2011-09-0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적으로 공감합니다만,

'메인 리스트와 '알라디너의 선택'이 꼭 동일하지는(동시적이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아 ~ 이것이 운영측의 꼼수(?) 라고 판단됩니다만 ㅋ. 페이퍼와 리뷰의 비율은 약 5:1인 듯해요. 이중에서 신간이 30%, 구간이 10%, 그리고 책과 상관이 없는 정치적인 정보에 관한 글이 꼭 두어 개 노출됩니다...' 라는 부분이요.

저는 이렇게 사실관계 흐트리며 욕하는 것이( 꼼수.라는게 좋은 뜻은 아니지요?) 좀 갑갑합니다.
잘 쓰신 글에 잘 모르는 사람이 함께 욕할테니깐요.

메인은 추천 다섯개 이상, 알라디너의 선택은 신간 두 달인가 한 달이내의 책이 페이퍼에 포함된 경우, 뉴는 추천이나 댓글이 한 개 이상 (비밀 댓글, 본인 댓글 제외) 인 경우에 뜹니다.

잘못된 전제로 '알라딘에 관리 당하고, 검증당한다'는 결론까지 가신걸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한사람 2011-09-06 15:5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하이드님^^
꼼수라는 말이 좀 경박하죠..ㅠ
(하지만 좋은 뜻이 아니라고 모두 욕한다는 건 아니구요)

음..어쩌다 보니 다락방님 글 보다 하이드님 글에 먼저 답글을 남기게 되는데요~
'알라디너의 선택'으로 노출되는 글에 대해서 말씀하신 추천과 댓글에 대한 원칙이 있다는 걸
들은 적 있어요. 저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구요. 아마 대부분 그 원칙에 준해서 선택된 글들이 노출된다고
저도 생각한답니다.

제가 언급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원칙과 상관없이 노출되는 글들도 있더라는 것이죠.
제가 일일이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제 경우 추천과 댓글에 상관없이 화재의 글에 노출되거나
쓴지 얼마안되서 바로 알라디너의 선택에 게시되는 걸 몇번 겪었거든요.
(그래서 황급히 돌아와 수정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화재의 서재글'에 노출이 된 다음 추천이 폭증했다고 보구요.

예전에 신간평가단 책이 홈피 메인에 뜰때 가장 최근에 작성한 리뷰가 맨 상단에 노출되는 걸 본적이 있어요. 리뷰를 다 읽어보고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최신 데이터가 가장 위에 노출되는 시스템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지금은 추천수로 바뀌어서 평가단 리뷰중에 추천이 가장 많은 글이 맨 상단에 가는 것으로 되었어요.

이처럼 '화재의 서재글'도 동일한 시스템에 의해 많이 추천받고 많은 댓글을 받은 글이 시간순에 의해 노출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저도 했습니다. 남들의 글이 올라갈땐요.
그런데 제가 그 속에 포함될때 저는 당황했어요. 물론 화재의 글에 올라가기 싫으면 이웃들만 보는 글에 선택을 하면 된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것도 제가 궁금해했을때 한참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이웃분들이 누구신지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내 이웃들만 읽어주세요, 하는 것이 좀 웃기더라구요. 꼭 그분들에게 보내는 글 같기도 하고.

암튼, 제 생각엔 화재의 서재글은 (한번 리스트업되면)계속 노출되는 분들 위주로 리스트업된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동일한 원칙하에서 최종 선택을 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 것이죠.
그리고 그 방향성을 감지하게 된 것이구요.
이건 제가 집중적으로 지난 삼개월만 보고느낀 것이니까 아무래도 더 활동을 많이 하신 다락방님이나
하이드님의 의견이 맞다고는 생각합니다 ㅋ

그런데 저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그걸 확대해석해서 알라딘에 관리, 검증당한다고 결론내고 싶어서 이 글을 쓴 것은 아니구요..
음..또 함께 알라딘의 꼼수나 이런 것들을 욕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정확히는 지금까지의 제 생각은 이런데 하이드님이나 다락방님같은 다른 의견을 알고 싶어서도 있었던 거 같네요. 제가 너무 정치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아마도 제가 정치적인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그런 생각도 하게 되네요.

암튼, 염려의 덧글 저로선 감사합니다~

하이드 2011-09-06 16:14   좋아요 0 | URL
알라디너들이 대체로 알라딘에 대한 기대치가 높습니다. ^^ 저는 뭐랄까,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저만큼 높은 사람도 없을테고. 시스템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시스템의 에러가 아닌 이상, 시스템이 맞을꺼에요. 굳이 제가 서재활동을 오래 해서가 아니라, 제가 좀 집요하게 서재활동을 했거든요. 알라딘측에 에러고 뭐고 지적질 도사랍니다. 그러니, 제가 한사람님 경우를 찬찬히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시스템에 따라 자동으로 (그리고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건 알라디너들이구요)되는게 맞을 꺼에요.

정치적인 인간이라 상황을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그럴 수도 있군요. 저는 어떤 인간인걸까 문득 궁금하네요. 대..대답하지 마세요. 그냥 모를래요 -_-;

oren 2011-09-0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보고, 기록하고, 구축한 모든 것들은 모든 지식의 틀이 뒤틀리는 것처럼 왜곡되곤 한다. 첫째는 우리 시대와 종족의 집단적 압력과 시대적 흐름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들 각자가 가진 개별적 성향 때문이다."
- 존 스타인벡 & 에드워드 리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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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지배당한다'는 생각]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한사람 님의 글을 읽으니 문득 몇 년 전에 읽었던《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발견했던 '생각'에 관한 흥미로운 대목이 떠올라 그 부분부터 먼저 인용해 봤습니다만, 사실 '상업적 목적'을 가진 웹사이트들이 '그들'의 본연의 목적에 맞게 밤낮없이 애쓰는 일이 어디에까지 미칠지는 '노력은 항상 필요성에 비례한다'는 일반적 원칙에 비춰봐서도 쉽게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인 것 같습니다(특히 대표적 SNS인 facebook의 교묘한 진화를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만 그런 문제들을 얼마만큼 가감해서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는 이용자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겠지요.

그리고 알라딘에서 '알라딘 서재 사용기'에 관한 글을 가끔씩 접할 때면 누구라도 '잠시나마'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는데, 제가 알라딘을 이용하면서 그동안 느꼈던 점들 가운데 (제게 흥미로운) 몇 가지에 대해서만 '국한'해서 말씀드려 보자면 ① (알라딘 서재 사용자의 경우) 다른 블로그에 비해 유달리 여성분들이 많다는 점(과거에 비해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② 다양한 분야들 가운데 특히 국내정치 분야(그것도 특히 '이념적 계급적 갈등'과 연관된 문제)에 대한 글들이 갈수록 비중이 더해 간다는 점 ③ 그 반대급부로 역사, 과학, 경제, 문화/예술, 기타(취미,오락,여행,스포츠 등) 분야에 대한 비중이 갈수록 낮아져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나는 점 등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론가 한 쪽으로 자꾸만 치우쳐 가는 경향에 대해서는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고 또 한편으로는 제 스스로 경계하고 싶은 일종의 강박관념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알라딘을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기도 합니다. 알라딘이 갈수록 '여성 편향적'이 되거나 '이념 편향적'이 될 경우(혹은 그런 경향을 더욱 부추기는 방향으로 '의지'가 작용할 경우) 혹시나 그게 익숙하게 보아 왔던 '자멸하는 경향'을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최근에 특히 알라딘으로부터 너무 많은 분량의 이메일이 쏟아져 들어오는 현상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어려운 입장에 처한 사람이 보내는 다급한 신호가 '가끔씩' 연상되기도 하거든요.

어쨌든 한사람님께서 알라딘 서재 이용을 '연애'에 비유해서 아직은 즐기고 싶은 단계로 표현해 주셨는데, 저는 알라딘과는 '한 번도 제대로 즐겨본 적'도 없는데도 어느덧 권태기를 한참이나 더 지나서 '무덤덤한' 단계까지 온 것도 같습니다. '연애'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눈이 멀었다'는 표현이나 '콩깍지가 씌었다'는 표현만큼 '연애의 특징'을 드러내는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눈이 먼'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들은 색맹, 얼굴맹, 입체맹, 심리맹 등등 꽤나 많은 것 같고 이들의 공통분모는 남들은 쉽게 분간하는 대상조차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른다'는 것이겠지요.

알라딘에서든 어디서든 '생각'이 '생각'을 호출할 수도 있다는 걸 이미 삼백여 년 전에 어느 프랑스의 철학자가 깨달은 데 비하면, 우리가 '시대와 종족의 집단적 압력'으로부터 나의 '생각'을 온전하게 지켜내는 일도 쉬운 일만은 아닐 것 같군요.

* * *

진동하는 현

삼백여 년 전에 프랑스의 철학자 디드로는 인간의 감각 소질을 '진동하는 민감한 현'에 비유했다. 그리고 진동하는 현은 다른 현을 진동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도 두 번째 생각을 호출할 수 있으며, 둘이 모여 세 번째 생각을 불러내고, 이 셋이 네 번째를 다시 끌어내는 등 계속 이어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생각의 범위나 수에는 어떤 제한도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의 악기는 놀라운 도약을 가능하게 하며, 불려나온 하나의 생각은 때때로 불가해한 간격으로 '배음'을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생각의 탄생』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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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토대

나는 저울대에 매달려 자신의 무게를 달면서 균형을 잡다가 나를 가장 강하게 그리고 가장 정당하게 끌어당기는 것에게 인력에 의해 끌려가고 싶다. 저울대에 매달려 몸무게가 적게 나가려고 발버둥치고 싶지 않다. 어떤 사정을 지레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사정만을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 그 위에서는 그 어떤 권력도 나를 막을 수 없는 길을 가고 싶다. 단단한 토대를 쌓기도 전에 아치를 세우는 따위의 짓은 나에게는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한다. 살얼음판에서 벌이는 아이들 장난은 그만두도록 하자. 어느 곳이든지 단단한 밑바닥은 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中에서

한사람 2011-09-07 01:43   좋아요 0 | URL

<생각의 탄생>은 저도 읽었는데..업무에 방법적으로 활용하느라 그런 부분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네요 ㅋ

① 다른 블로그에 비해 유달리 여성분들이 많다는 점-저는 이것이 다른 서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여성회원분들이 남성 회원분들보다 덧글로 교류를 많이 하고 친분관계를 맺고 그것을 지속시키고 오프라인까지 영역이 넓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만해도 글로써 남성이시면 덧글 남기기가 쉽지가 않더라구요. 제 경우도 글로만 보았을때 남자이냐는 말을 많이 듣는편인데 다른 개인 블로그도 아니고 책과 관련된 곳은 더욱 남성, 여성의 사용성향이 달라서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② 다양한 분야들 가운데 특히 국내정치 분야(그것도 특히 '이념적 계급적 갈등'과 연관된 문제)에 대한 글들이 갈수록 비중이 더해 간다는 점과 ③ 그 반대급부로 역사, 과학, 경제, 문화/예술, 기타(취미,오락,여행,스포츠 등) 분야에 대한 비중이 갈수록 낮아져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나는 점 - 저는 이것이 실제로 사용자들이 정치관련글을 많이 올리고 문화글을 적게 올려서 그런 것인지 노출과 화제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치관련 글이 화제가 많이 되니까 이곳에 (다른 곳보다)자연스레 정치관련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것이라고 보왔거든요. 그러다보니 제 경우도 페이퍼 쓸때 어제, 오늘 있었던 일중 투표나 대가성, 후보에 관한 개인적 소견이 삽입될때가 많더군요. 이념편항적인 곳이 되어간다는 우려는 그것이 알라딘의 색깔이라 생각했는데(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글을 올리는 분들도 있을 테구요) 그 정체성이 어떤 안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지는 문학과 연관지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지적해주신 말씀이 타분야의 글들, 사고, 의견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건 알라딘 측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해요. 확실히 옆동네 서점은 블로그에 문화, 여행, 영화나 예술분야의 글들을 많이 노출시키고 그것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느낌은 받았기에.

그리고..연애는 돌아보면 일상에서 느끼는 약간의 설레임이었던거 같아요. 제가 아직은 기간상으로 무감할 시기는 아닌 것 같아 될 수 있으면 좋게 생각하려고 하는 마음을 비유한 것이고요. 저는 사실 무덤덤한 상태로 가는 것이 두렵긴 합니다. 아미 이곳이 권태기를 넘어 무감해진다면 저는 다른 곳에서 다른 걸 찾고 있지 않을가 싶어서요 ㅋ

마지막에 언급해주신 진동하는 현, 단단한 토대를 읽으니 나의 생각을 어떠한 지배없이 온전히 지켜나가는 것, 삶의 압박없이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생각을 보존시키는 것에 대해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온라인에서의 교류라는 것도 실은 더 넓어지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원하는 사람과의 원하는 내용만 좇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온라인에서 매번 당황하고 소심해지는 것은 제가 쓴 글이 제 의도와는 다르게 어떤 영향을 줄때여요. 무슨 제안서쓰듯 매번 이 글의 목적을 표시할수도 없고 한다해도 큰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대부분 민감하다 판단되는 내용이 그러한 결과를 도출하는데 민감하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있던 부분이었다는 뜻도 되죠. 많은 사람이 생각했다는 건 다른 많은 의견이 생길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의견이 다르면 온라인은 단절이 된다는 것이죠.

회사생활 할때 저는 한번 걸끄러워진 상사, 직원들과는 다시 일로서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여직원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오늘 대판 싸우더라도 내일 다시 직장에서 아무일없었다는 듯 수직관계를 잘 유지하고 일은 일로써 처리하는 남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성향과 의견이 다르다는 문제를 가지고 안고 가기 보다는 단절쪽을 지향하는 것이 여성이라는 것. 여성이 인간관계에서 더 포용을 잘 하고 공감을 잘하는 능력이 분명 있지만 이것은 타자의 아픔에 대해서 그런 것인지 자신이 상처받을땐 여전히 그러한 자신을 공감해줄 다른 무엇을 찾는 것이 가장 큰 한계라고 봅니다.(저도 그 영역에 속해 있구요 ㅋ)

암튼, oren님의 덧글은 제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드립니다^^




마녀고양이 2011-09-06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께서 방명록에 올려주신 글을 읽고 신경이 쓰여서 댓글을 답니다.
일단, 저는 알라딘 회사 측에서 동의없이 메일을 보내는 문제에 대해서 수긍할 수 없을 뿐더러, 이즈음에서 항의를 하고 정책에 대한 보완을 하지 않으면 더욱 조심성없이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딘은 기업이므로 한명의 개인이 링크를 거는 것과는 또다른 문제라 보는 것이 제 시각입니다.

하지만 하이드님과 다락방님께서는 '공개'된 글이니 어떤 식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개되더라도 그것은 글쓴이의 책임으로 감수해야 하고, 그것을 감수할 수 없다면 '비공개'로 하는게 맞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추천수가 많은 것으로 보아 많은 분들이 공감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의견이 일부분 일리는 있으나 수긍하기는 어렵고, 앞으로도 뉴스레터 공개와 같은 것을 감수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모든 글을 '비공개'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누구의 탓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문제해결 방식이 다른 것 뿐이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한사람님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염려 감사드리며,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한사람 2011-09-07 01:53   좋아요 0 | URL

예, 모두 이해합니다.

저는 마녀고양이님 말씀도 하이드님, 다락방님 의견도 모두 공감합니다.
다만, 제가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좋았겠다..는 후회는 합니다 ㅠ

온라인에선 의도를 갖지 않은 결과까지 받아들일 자세가 필수항목이구나 뼈저리게 느낍니다.
마음이라는게 이성과 달라서 다시 움직이는데 계기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 마녀고양이님 방에 포스트가 없어져서 많이 놀랐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큰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그런 적 있었고
또 그러다가 다시 문 연 적도 있었고.

마녀고양이님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그저 찬바람이 불면 마음이 더 시린 것이 아니라
머리가 더 개운해져 예전에 정 나누었던 분들이 다시 그리워지길,
예전에 써대었던 글들을 다시 올리고 싶어지길,
개인적 욕심에 기대어 바래봅니다.

다행히 곧 추석이고 주부들은 몸과 마음이 바쁜터라 더 잘되었다고 봅니다

마녀고양이님, 기다릴께요^^

카스피 2011-09-07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한사람 2011-09-07 22:53   좋아요 0 | URL

예, 카스피님
반갑고 감사해요^^
 
<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마지막이다. 9기 인문평가단으로서 추천 페이퍼를 쓰는 것이.

   지금까지 열 권의 인문서를 받아서 9권을 읽고 글을 썼다. 이번 달 도서인 <사르트르와 까뮈>를 읽기 전에 예전에 뒤적이다 만 까뮈의 <이방인>을 넘기고 있다. 한 달에 두 권 씩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소설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렸던 듯하다. 덕분에 소설이 시들해지긴 했지만 적지 않은 것들을 얻었다. 관심도서 분야의 폭이 나도 모르게 넓어졌다는 것. 소설 때보다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의 소통의 기회도 비례했다는 것. 그리고 맘에 안들거나 내 수준보다 어려웠던 책들도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되더라는 것.(소설은 맘에 안들면 나중에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음 ㅋ) 그런데 벌써 반년의 시간이 지났다니 새삼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건 지나간다는 것이구나 싶다.

   아직 날씨상으론 늦여름이지만 가을은 워낙 짧으니 10월에 리뷰를 마무리 할 때 즘이면 분명 겨울이 다가오네, 연말을 준비하자 하면서 계절을 앞서가고 있을 터이다. 이번엔 가을에 읽기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책을 골랐다. 가을을 기다리는 심정이 꼭 책을 기다리는 마음이 될 듯하다. 이번엔 양질의 인문서적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다섯권에 들지 않는 책들 중에서도 마음가는 책이 많았다. (내가 택하지 않은 책들도 다른 분들이 많이 추천해주시면 좋겠다) 

   9월 말이면 그래도 찬바람은 불어 오겠지. 추석이 지나고 나면 남은 몇 개월은 이전 몇 개월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보름달에 소원을 빌었기 때문일까?  점점 소원스러운 소원도 생각해 내기가 쉽지가 않다. 까짓거 어짜피 이루어 지지 않을거 소원이라도 크게 잡을 수 있을텐데...이제 나는 지극히도 현실적인 중년이 되어간다.



1. 뇌를 훔친 소설가 ( 석영중, 예담 ).........................................인문학>교양인문학


이 책을 서점에서 슬몃 구경하고 일찌감치 찜을 해두었다. 인간의 뇌에서 벌어지는 신경과학의 메커니즘이 문학작품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뇌를 훔친 소설가로는 도스토예프스키, 푸슈킨, 톨스토이, 프루스트, 괴테, 체호프등이 등장한다. 저자는 흉내, 몰입, 기억과 망각, 변화라는 소주제를 가지고 소설 속의 캐릭터를 진단한다.

예를 들어, 푸슈킨의 작품 속 여주인공 타티야나는 감정이입에 관여하는 ‘거울뉴런’의 작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며(1부 ‘흉내’) 닥터 지바고는 자신의 온 삶을 통틀어 ‘시 쓰기’에 몰입한 인물로 분석한다(2부 ‘몰입’). 극도의 몰입 상태에서 도파민이 주는 행복감을 강조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은 감각과 회상의 연결고리를 푸는 실마리가 된다.(3부 ‘기억과 망각’) 4부 ‘변화’에서는 신경가소성을 평생학습으로 몸소 보여준 톨스토이와 고골의 삶을 들여다보고, 체호프가 진부한 삶에 대해 얼마나 역설적으로 비판했는지 보여준다.

지금 내가 <문학과 철학의 향연>(양윤덕, 문학과 지성사)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이 책에선 문학을 읽는 방법으로서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는데 시도한 작품(포의 <도난당한 편지>, 카프카의 <법 앞에서>, 플라톤의 <향연> 등)과 철학자가(라캉, 데리다, 하이데거, 푸코) 워낙 만만치 않은 탓이다. 문학작품에 시도된 철학적 사유는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품과 철학자를 알고 있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작품과 철학자를 몰라도 잘 알려주는 책이 더러 있긴 한데 이 책은 <문학과 철학의 향연>보다는 눈높이가 편안해 보였다. 또 서구 고전문학과 현대 최첨단 과학이 만나는 지점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문학탐구와 인간탐구를 동시에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문학과 과학의 소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 충분해 보인다.



2. 번역의 미로 (김욱동, 글 항아리) ..............................................인문학 > 언어학


가끔 번역된 인문서적, 소설을 읽을 때 해석이 안되더라도 원문을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색한 문장은 둘째치고서라도 문장 자체가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될 때, 그러나 비슷한 패턴의 번역이 반복될 때 책 내용과는 별도로 독서를 이어가기 정말 힘이 든다. 작년에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를 읽을 땐 내가 독어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번역문으로도 충분히 문학적이었지만 원문으로 읽는다면 더 완벽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한국소설을 읽을 때면 이 책을 번역하게 되면 과연 의도가 제대로 전달될까 하는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영미, 유럽권의 문학에서 벗어난 우리 문학의 한계는 바로 번역을 거쳐야 한다는 장애물때문은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번역의 철학적, 기술적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의 특수성을 체계적으로 사유해 이론화하였다고 하니 의미있는 토픽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가운데 “Why I Write?”라는 유명한 글이 있다. 그런데 한국 번역가들은 이 글을 번역하면서 하나같이 “왜 나는 쓰는가?”로 번역했다. 그러나 영어 동사 ‘write’는 목적어를 생략하고 자동사로 ‘(책 ·시·기사를) 쓰다, 집필하다, 저술하다’의 뜻으로 자주 사용한다. 그러니 한국어 동사 ‘쓰다’는 반드시 목적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다’ ‘책을 쓰다’ ‘기사를 쓰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웰의 그 에세이도 그냥 “나는 왜 쓰는가?”가 아닌 목적어를 넣어 “나는 왜 글을 쓰는가?”로 번역해야 한다.


 “나는 왜 쓰는가?”의 경우는 "글을"의 목적어를 빼는 것이 더 공감가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원제목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제목으로 둔갑한 소설, 원제는 부제로 밀려나고 우리네 트렌드에 맞추어 타이틀을 변형하는 행위들을 인문서에서 확인할 때도 있다. 번역하면서 책의 방향성을 바꾸어 버리는 권력행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적어도 그러한 사태에 대한 이유있는 변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3. 직설 - 한국 사회의 위선을 향해 씹고, 뱉고, 쏘다!
   (고경태, 서해성, 한홍구 / 한겨례출판)....................... 사회과학>한국사회비평/칼럼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 진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냐, 이명박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에 대해 터놓고 말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의도란다. 목차를 보니 약 마흔 명의 유명인사들이 그 목록이다. 故 리영희, 백기완, 고은 선생을 비롯해 박지원, 정동영, 강기갑, 문재인, 김두관등의 정치인, 유홍준, 김제동, 김영희, 안철수, 류승완등 각계 분야의 전문가들로 풍성하다. 얼마나 직설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려운데는 긁어주지 않을까 싶다.


김영희: 지난해 책임 PD로 있으면서 후배들 연출하는 걸 본 게 오히려 굉장한 도움이 됐어요. 그들의 생각과 트렌드가 읽히는 거예요. 한마디로 TV는 진짜 올드 매체가 됐어요. 젊은 사람들은 TV 안 보고 다른 데로 떠났어요. 스태프들에게 “'나가수'의 타깃은 마흔두 살 아줌마”라고 공언했어요. 그냥 ‘사십대 아줌마’면 임팩트가 없어요. ‘마흔두 살 아줌마’라고 정하면 ‘그들이 뭘 하지?’ 생각하게 돼요. 1980~1990년대 문화에 향수를 가진 사람, 지금 애들이 중학생 정도 되는 부모, 하고 여러 의미를 발견하게 되죠.
서해성: 오늘날 대중은 텔레비전을 어떻게 소비하는 것 같나요?
김영희: 가치 없는 것으로.(웃음)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재미라도 있어야 보죠. 그런 걸 주지 않으면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없어요. 이번에는 ‘노래를 통한 감동’을 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했는데 그게 생각대로 된 거예요. 기분 좋더라고요.
서해성: 여느 쇼에 가도 노래 잘하는 가수를 한 무대에서 만나기는 힘들죠. '나가수'는 보여주는 가수가 아니라 부르는 가수들 중 진짜 꾼들이 모인 거고. 그런 점에서 퀄리티로 승부를 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향도 그렇고.
김영희: 가수들 섭외할 때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가수에 맞춰 음향감독만 다섯을 붙여줬어요. 음향에 쓴 돈만 보통 음악 프로의 다섯 배라는 거죠. 출연진들은 다른 음악 프로에 다 나가본 사람들인데, 한결같이 정말 고맙다고 하고 무대를 내려갔죠.        - p90~91


나가수의 타깃은 마흔 두 살 아줌마라는 김영희 PD의 발언이 눈에 띄어 이 책을 훑어 보고 싶다. 원래 이런 인터뷰 모음집은 각개별로 읽으면 재미난데 다 모아놓고 덮으면 남는 게 별로 없는 경우가 있다. 책 넘길 땐 좋으나 다 덮고 나면, 그래서 할 말은 별로 없다, 인 경우가 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하게 되더라도 또 좋은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저들이 ‘한국 사회의 위선과 부당함을 향해’ 얼마나한 ‘직설을 쏘’아 대었는지는 부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오늘날 지식인층에서 누가 누구를 향해 위선적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문제는 정도인데 만약 직설이 아니라면 한마디 붙여주기 더없이 좋을 것 아닌가.



4. 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꾸리에) .............................................................사회과학>교육비평


이 책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는 이계삼 선생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와 교육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곽노현 교육감을 보면서 그가 정치는 하되 교육자는 아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육은 도덕이 아니지만 교육자는 도덕적이어야 한다. 교육은 어떤 하찮은 나라에서도 미래를 출산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자는 일반사람보다 더 냉혹한 도덕적 수위가 요구된다. 출판사의 소개를 보니 이 책이 시적이며 문학적 울림이 깊다고 한다. 다가오는 계절, 영혼의 아름다움위에 세워진 인문학적 깊이를 통해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다음의 문장을 보시라. 이분은 시인을 하시는게 더 낫지 않았을지.


“우리는 한때 저 강물이었고, 강변을 스치는 바람이었고, 꼬리 치는 한 마리 어린 송사리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때의 우리들 몸이었던 강이 사라져가고 있다. …… 축구장 대여섯 개는 됨직한 말쑥한 호수. 바람이 부니 연둣빛의 물결이 일렁인다. 물풀 하나 없고 송사리, 소금쟁이, 벌레 한 마리 없는, 생명이 완벽히 사라진 곳. 물이 가두어져 일렁이면 그것으로 충만한가? 그 속에 아무것도 살지 않는데도? …… 공허하다. 헛것을 보는 듯 허망하다. 이 헛것의 물길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자전거를 탈 것이다. 헛것의 물길 위로 요트가 지나다닐 것이고, 유람선이 다닐 것이고, 좀 이어 화물선도 다닐 것이다. 실버타운이 들어서서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이 헛것의 일렁임을 바라보며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볼 것이다. 헛것이다. 헛것으로 구축된 헛것들의 파노라마이다. 오직 헛것의 풍경을 위해, 지금 온 지축을 울리며, 강바닥을 탕탕 때리며 뒤집어엎고 파헤치는 이 참혹한 파괴와 죽음의 드라마가 이어지고 있다.”





5. 방황의 기술 - 불확실한 삶이 두려운 이들을 위한 철학 연습
   (레베카 라인하르트, 웅진 지식하우스) .....................................인문학 > 교양철학


인문 에세이, 교양 인문학, 치유철학의 장르에 속한다는 이 책은 ‘철학 상담(Philosophical Counseling)’소를 운영한다는 레베카 라인하르트의 저작이다. 삶의 치유와 철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저자는 이미 <마음이 아픈데 왜 철학자를 만날까>(예문, 2011)를 통해 국내 독자와 교류를 한 바 있다. 철학이 상담이 될 수 있는 장르일까?


철학 상담은 심리치료가 아니다. 이는 창조적인 형태의 자기성찰이자 상호적이고 협력적인 교류이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치료사와는 달리, 철학 상담가는 스스로를 아헨바흐가 말하는 “보편적 교양인(General Dilettant)”이라고 생각한다. 철학 상담가는 규정적인 이론을 제쳐두고 되도록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상담 의뢰인(Client)을 대한다. 또한 상담 의뢰인의 애로 사항이나 문제를 신속히 제거되어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만 간주하지 않는다. 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특수한 문제들은 그 사람만의 유일성과 특수성을 탐색하는 데 항상 도움이 된다.

-<마음이 아픈데 왜 철학자를 만날까>


심리치료건 철학상담이건 독서하는 입장에선 마음을 다스리는 기술을 배운다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강신주 교수는 방황이 자발적 여행이며 방황을 잘 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기술이라 말하는데 결국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 부정이 아닌 긍정의 효과로 인식되는 개념들을 알려줄 것 같다. 이 책이 다가오는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릴거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인문 MD의 소개 http://blog.aladin.co.kr/bookeditor/5027357)



요즘 선거철이 다가옴에 따라 정치인의 서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당분간 반짝 인기를 누릴 조짐이 보인다. 나는 인문쪽 평가단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설에 마음이 쓰인다.
상반기는 정유정, 하반기는 김애란이라고 하는데 더이상 대박형 소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아니 독자들이 소설을 집어들지 않고 있다. 올해 한국 소설은 최인호 작가외엔 이렇다할 베스트셀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선거기획용 정치서적들이 소설과 인문서에 적잖이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걱정이다.(근데 내가 왜 걱정을 하는거지? 아무래도 출판계 트친이 많아서 인듯 ㅠ) 

가을엔 더 성찰하고 그러기 위해 더 많이 방황할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세상을 더 많이 알 것 같아도 그 속에서 더 많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계절이여, 방황하라.
가을이여, 발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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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9-03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잘 지내시죠 ^^ 방황의 시간을 벗어나 모처럼 이렇게 놀러왔습니다. 여전히 좋은 글들을 빽빽하게 쓰고 계시네요. 휴, 신간도서단으로 활동하시는 것은 여러모로 힘드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차곡차곡 읽고 계시니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가 않아요.
제가 이 리뷰를 보면서 아차 싶었던 것이 한달에 한 번 큰 맘 먹고 책을 사거든요. 근데 맨 처음에 장바구니에 '뇌를 훔친 소설가'를 넣는데 주문 오류가 있아 취소하고 다시 시켰는데 거기서 이 책이 빠진거 있죠. ^^;;
괴롭네요. ㅋㅋ
대박형 소설은 저도 기다려 지네요. 암튼 자주 와서 리뷰 좀 꼼꼼히 볼께요. ^^

한사람 2011-09-03 01:45   좋아요 0 | URL

어머, 루쉰님! 문닫고 자러 가려하다가 다시 왔어요 ㅋ
이제 좀 적응하려는데 벌써 끝나려고 하네요..사는게 다 그렇죠
'뇌를 훔친 소설가'가 목차도 괜찮고 내용도 아주 어렵진 않더라구요
저도 서점에서 확인하고 사올까 하다가 날짜가 8월달이라 혹시 선정될지 몰라서 ㅋ
꾹 참고 왔어요 ㅋㅋ

제 리뷰가 좀 길고 지루한 편인데 말씀만으로도 고마워요~

주말에도 편안한 맘으로 가을맞이 하시기 바래요^^

가연 2011-09-03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마지막인가요? 전 이 다음이 마지막인줄 알았는데ㅋ 첫번째 책은 저도 눈여겨보았던 책이지요.. 그런데 다른 추천할 책들이 너무 많아서ㅎㅎ

한사람 2011-09-04 00:10   좋아요 0 | URL

이번에 읽고 싶은 책이 많았죠..?
저는 다른분들이 좋은 책을 알아서 택해주실 거 같아 마음을 비웠습니다.
어떤 책이 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꼭 반년이 걸렸네요 ㅋ


stella.K 2011-09-03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 평가단 못해 먹겠다고 툴툴거렸는데
벌써 마지막 추천 페이퍼를 쓰게 됐어요.
근데 생각해 보면 예술분야의 책이 어렵기도 하고,
나 역시 따라 가기도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인문분야가 예술 보다 낫지 싶어요.
이것도 남의 떡이 큰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전 다음 기에도 신간 평가단이 된다면 에세이 분야가
좋을 것 같아요. 전에도 말했지만, 나이가 드니 에세이가 좋아지고,
읽는데 부담도 없고.
나이들수록 어려운 것에 도전해야하는데...
글구 아직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앞으로 조금은 바빠질 것도 같아요. 제 페이스를 유지하려면
이제 책에 대한 욕심도 좀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추천한 책 다 마음에 드는군요.^^

한사람 2011-09-04 00:13   좋아요 0 | URL

예술분야가 아무래도 전문성이 더 깊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인문쪽은 아주 어려울 때도 있고 또 생각보다 쉬울 때도 있고 편차가 크더군요

나이드니 에세이 좋아진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위로나 치유의 에너지가 필요한가봐요 ㅠ

책에 대한 욕심 내려놓겠다는 생각은 저도 하고 있었는데
서재활동을 하다보면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책은 현재 나의 중심이다, 가 맞는거 같아요
내가 책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ㅋㅋ

cyrus 2011-09-03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이번 페이퍼가 마지막이군요. 마지막인만큼 한사람님이 원하신 책이 선정되면 좋겠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단 한권도 제가 원했던 책이 선정되지 않더군요 ^^;;
개인적으로 석영중 교수의 책이 끌립니다.

한사람 2011-09-04 00:19   좋아요 0 | URL

그래요?
시루스님의 안목이 평균수준보다 더 높았던게 아닐까요?
사실 제가 추천하는 책들은 일단 비싸거나 어렵다는 책은 제외합니다.
정치관련 서적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 평가단하면서 싫은 책들 꽤 읽었어요 ㅋ
철학은 너무 기본이 안되있어서 관심은 많이 가지만 저 자체가 책의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워서
다른 분들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저도 석영중 교수의 책이 되면 좋겠어요. 뭐 안되도 구입은 할거 같습니다만 ㅋ

cyrus 2011-09-06 00:20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저는 수준이 부족한 편이라 제가 독서하는데 편한 취향과 관심 있는
취미의 책을 고르는 편이에요. 물론 단편적으로나마 책소개 페이퍼를 작성하다보니
속은 수준이 높은 책인데도 쉽다고 착각할 때가 많아요 ^^;;

한사람 2011-09-06 09:43   좋아요 0 | URL

맞아요..수준은 높은데 쉽다고 착각할때..
그 반대도 있구요

안 읽어본 책의 수준을 가늠할수 있다는 자체가 전문가의 수준인듯해요
글구 ~
시루스님 수준 높아요 ㅋㅋ

비의딸 2011-09-05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계삼 선생님의 책, 응원합니다.

한사람 2011-09-05 21:41   좋아요 0 | URL

예,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
 

 


#1. 이해하는 계절


   환절(換節)의 계절입니다. 계절이 바뀐다는 것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적이 있었어요. 돌아보면 그땐 내가 봄이었고 내가 여름이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내가 꽃보다 화려하고 내가 태양보다 뜨거운데 계절이 나보다 중요했을까요. 꽃이 떨어지는 게 슬플 리가 없는 시간이었죠. 그런 게 청춘인거 같아요.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다음 계절에 또 주인공이 될 줄로 믿고 있던 시간들. 계절을 의심하거나 계절에 배신당하지 않는 계절과 거리두기.

   여름이 길었습니다. 조금 지루하고 그래서 지쳤던 거 같아요. 초조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러다보니 의식적으로 어느 여름보다 생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아, 이 사람은 이러니까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 저 사람은 저럴 수 밖에 없었을 거야. 글은 말이 아니고 생각의 전부도 아니고 사람의 본질도 아니야. 글도 여러 생각들 중에 선택한 하나의 감정이지. 선택하지 않은 다른 느낌마저 판단할 수는 없는 거야. 나만해도 쓰고 싶은 글에만 노력을 기울이지. 글은 나라는 사람 전체에서 거의 모두를 빼버리고 난 나머지일거야.

   예전엔 어떤 사람의 행동을 이해는 하지만 내심 기분은 나빴던 적이 많았어요. 이해는 머리로 하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이해라는 건 상대에 대한 사랑과 관심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슴이 먼저이어야 이해도 완성되는 것이라구요. 사랑이 누구에게나 그 앞에 ‘죽도록’이라는 수식이 포함된 개념이라면 이해도 그 앞에 ‘가슴깊이’라는 조건이 전제된 것이다, 그런 생각. 이해는 했는데 기분은 나쁜 것은 아마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나 자신은 그 정도는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은 어이없게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한없이 너그러운 존재니까요.

   그런데 웃긴 건 이러한 ‘이해보편주의’가 다시 세밀한 감성을 방해한다는 것이죠. 모두 이해하는 건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것. 모든 걸, 모든 사람을 이해해버리고 나면 마음은 편하지만 더 이상 치열할 건 없습니다. 다시 처음처럼 거리를 두게 되요. 그건 그만큼 이해하는 게 힘들었기 때문인데 또 다시 이해하라고 할까봐. 내가 노력해야 이해하는 일이 벌어질까봐. 물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용서나 관용하는 태도가 습관이 될 수는 있어요. 내가 손해 좀 본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파여진 곳에 나도 모르는 것이 쌓여있더라구요.

   저는 이런 이해위주의 일상이 한번씩 브레이크가 걸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환절기, 지금의 계절이 떠나가고 다음의 계절이 다가올 때 잠시 두려운 진동을 느낍니다. 빛과 바람, 온도와 습도가 몸에 신호를 주나봐요. 가을이 되면 갑자기 빛줄기의 무게가 더해집니다. 빛의 색깔도 깊어져요. 무거워진 태양빛이 강물에 떨어질때 비로소 유속의 흐름이 느껴져요. 물이 흘러가는 게 그만 눈에 포착되는 겁니다. 제 눈이 갑자기 셔터스피드가 느려진 것도 아니고 조리개가 커진 것도 아닌데 피사체의 흐름이 초단위로 감지되곤 합니다. 흘러가고 있었구나 ! ... 그때 저는 비로소 여름이 갔다는 걸 깨달아요. 제가 시인이었다면 그 순간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을 거라는 확신을 합니다. 

 

#2. 방황하는 계절


   그리곤 잠시, 아주 짧지만 방황을 합니다. 이런 일이 있었지. 여름의 세상은 이러했어. 사람들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가끔 생각해요. 계간지를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상하죠.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없다고 하면서 시사주간지를 집어 들고 문학을 잘 모른다 하면서 계간지를 구독해요. 생각해봐요. 몸이 허약하고 운동을 잘 못하는 친구들이 태권도를 배워서 다시 건강하고 근사해지는 것처럼 사람들은 모르니까, 더 알고 싶으니까 정치도 문학도 기웃거리는 게 아닐까. 무관심하다는 표현도 사실은 무척이나 관심있는 대답이죠. 이건 관심이 없다는 뜻의 무관심과는 전혀 반대의 무심한듯한 관심인듯해요. 알려고 한다고 해서 내가 많이 아는 건 아니라는 뜻의 무관심, 그러니까 이정도면 관심있는 거라 할 수 없다는 (겸손하고 예의바른)무관심인 것 같아요.



창비 계간지를 이년째 구독하고 있는데 지난 일년은 그냥 제목만 확인하고 거의 책꽂이에 꽂아 두었어요. 구독도 자의적인 건 아니었고 어찌 알았는지 전화가 와서 하게 되었어요.(창비 홈페이지 회원이었다나) 여기서 제가 거절을 하지 않고 수락을 했다는 것이 바로 의미있는 선택이었다고 봐요. 매 계절마다 문학잡지를 받아보는 것에 동의하고 대가로 돈을 지불했다는 것. 그리고 일년이 지나 (연장 권유에) 다시 안볼 생각도 볼 생각도 없던 차에 무심한듯 수락을 또 했다는 것.

그리곤 처음으로 페이지를 꼼꼼히 넘겨보았습니다. 재미있더라구요. 이번 가을 호 특집이 바로 ‘이명박 이후’를 내다보며 였거든요.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어요.

총체적 완력이 이명박 정부보다 훨씬 약할 수밖에 없는 진보정부가 가져야 할 무기와 자세가 무엇인지는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대관소찰(大觀小察)’에서 나오는 심모원려(深謨源廬)의 지혜와 끈기, 그리고 깨어있는 시민과 행동하는 양심의 견고한 연대일 것이다. 이 중심에는 국가경영을 오랫동안 준비해온 잘 조직된 정치집단과 지식인 집단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을 갖추지 않은 집권경쟁은 정치적 도살장에 들어가기 위한 싸움에 불과할 것이다. ...(중략) 그런 점에서 2012년 경쟁에 뛰어들 사람들은 욕망과 포부이 전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할수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배를 만들기 전에 거칠고 광대한 바다를 먼저보면, 어떤 배를 만들고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야권연대 혹은 정치연합의 문제는 이 중차대한 민족사적 과제와 자신의 왜소한 힘을 인식할 때, 한마디로 백낙청의 말처럼 “원을 크게 세우면” 상당부분 부풀리게 되어있다. 2012년 대회전에서 성패의 관건은 시대와 국민을 아는 대관소찰, 자신을 아는 자아성찰(自我省察)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는 지공무사(至公無私) 분열과 유아독존을 뛰어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에 달려있다.

- 2013년 체제는 새로운 코리아 만들기, 김대호 / -115p

‘배를 만들기 전에 거칠고 광대한 바다를 먼저보자’는 결론은 내가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인식하자는 위치감각에 대한 질문이겠죠. 저는 ‘대관소찰’이라는 어려운 말이 맘에 들어요. 바로 계절이 바뀌고 내가 지금 얼마나 와 있는 건지 내가 위치한 지점은 전체 바다에서 어디쯤일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어디에 써먹어도 좋은 사자성어 아닐까요?



그런데 정말 어떤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지금 왜 이 책을 읽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숙제 비슷하게 읽어야 할 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책을 집어 들때 왜 하필 이 책을 놓지 못하지, 그런 생각이 갑자기 말이죠.  

창비 계간지를 덮고서 우연히 알게 된 <기획회의>라는 출판 전문지입니다. 출판계 트친(아주 친한 건 아니구요. 그냥 답글 하는 사이 ㅋ)이 출판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아주 좋은 내용 많다고 해서 기웃거려봤는데 의외로 그쪽에선 품절사태로 잘 구할 수 없는 잡지이더군요. 이번 302호 특집이 ‘우리시대 어록‘ 입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도 보니 트친계의 종교스타 조정민 목사와 혜민 스님, 高 율리안나 수녀님이 소개되었더라구요. 140자 안에서 위로와 깨달음을 주는 분들이라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01/2011090102745.html)

<기획회의>에서 특집으로 다룬 내용은 SNS시대의 촌철살인마들- 안철수, 김진숙, 박경철, 김여진, 이외수, 공병호, 김태원, 김애란, 김제동- 입니다. 이들의 어록을 분석하고 특징을 통해 역으로 우리가 얻어온 것들을 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제가 출판인은 아니지만 독자로서도 재미난 기획이었습니다. 트윗을 하다보면 누구나 진보, 좌파가 되지요. 트윗에선 진보성향의 논객들이 이성, 감성, 교감, 공감의 주도권을 잡고 있으니까요. 저 역시 저들 중 두사람을 팔로잉 하고 있는데 이외수 작가님은 꼭 어디서 월급받는(?) 사람마냥 평범한 일상과 아무것도 못된 사람들을 위로하는 힘이 있어요.


진보 개혁논객들은 발이 척척맞는 축구를 한다. 조국 교수가 중원의 사령관 지네딘 지단처럼 이슈를 조율하면 진중권 교수는 웨인 루니처럼 매섭게 몰아붙인다. 박경철과 선대인이 경제논리를 바탕으로 탄탄한 수비를 해주면 혜성처럼 나타난 김여진이 메시처럼 매서운 단독 드리블로 몰고 간다.     -20p


   이들 중에서 특이했던건 트윗상이 아니라 소설에서도 어록을 남긴 작가가 되었다는 김애란에 대한 시각이었어요. 어록시대를 맞아 그녀의 소설 속 문장들이 어록에 익숙한 독자들의 기호와 맞아 떨어졌다는 평가였습니다. 유명인사들의 어록이 방송이나 트위터 상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김애란의 어록은 허구인 소설 속 상황에서 탄생하였다는 것이죠. 김애란의 소설 속 유머와 희망이 아날로그적인 문장을 타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뻗어나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미안해하지마.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야.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뻐” 같은 메인 카피형의 문장이나 “엄마, 나는 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같은 반전형 문장이 트위터에 가져오기 참 적절하다는 것이죠. 이건 소설의 서사와 작품성과는 별개의 문제인데 140자의 형식과 그 형식안에서의 감동의 습관이 김애란의 소설을 베스트셀러하는데 일조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분석이라 신선했고 출판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라 일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곧 추석이 다가옵니다. 추석은 친척의 계절이요, 자존심의 명절입니다.

   제 기억으로 추석은 설날에 만났을 때와는 달리 그 사이 무엇이 달라졌나, 얼마나 발전했나를 가족적으로 점검해 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건 시기적으로도 한 해의 하반기를 향하고 있고 취직의 계절이 지나고 여름 휴가, 보너스를 챙긴 뒤라 아무래도 서로의 실적들을 의식하게 되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며느리들끼리 음식 준비하고 차롓상 차릴 때 주로 나누는 대화를 보면 누가 잘되었고 누구는 망했고 그런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니까요. 이번 추석엔 ‘이명박 이후’와 ‘이시대의 어록’에 대해 떠들어 보면 어떨까요. 남자들이 결론없이 정치이야기를 할 것이 뻔하고 여자들은 집값과 물가이야기 할 게 뻔한 이번 추석에 지적인 며느리가 되어 보는 것도 쏘쿨한 계획일 듯해요.  

   뭐 대놓고 갑자기 고사성어를 들이대면 웃기니까 ...예를 들면, 올밴처럼요. 엊그제 무릎팍 도사에서 올밴이 유홍준 교수에게 지식을 교정해주는 큰 일(?)이 있었잖아요? ‘G2’가 아니고 ‘G20’ 이며 ‘실험실’이 아니라 ‘표본실’이라고 한건 웃기면서도 짜릿했어요. 우리가 그 많고 많던 중간, 학기말, 모의고사에서 얼마나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답안지에 써대었습니까. 이번엔 전부치면서 김애란의 소설에 대해 말해봅시다. 저도 트위터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 같은 엄마들이 트윗에서 이 나라, 이 사회를 위해 떠드는 건 잘 보지 못했어요. 죄다 아프니까 청춘인 분들, 아니면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한 아저씨 들이던걸요. 드라마 이야기, 김선아 부러운 이야기가 나와도 슬쩍 한예슬 사태를 견주며 여배우의 고달픔을 위로합시다. 나가수 이야기가 나오면 그게 실은 마흔두살 아줌마를 타겟으로 했다는 김영희 PD가 대단하지 않냐고 한마디 던집시다. 취직은 했냐, 시집은 안가냐, 전세는 구했냐 개념없는 질문을 던지지 말고 반대로 그런 질문을 듣고는 마음 상해 삐딱한 포커 페이스 짓지 말고 보다 사회통찰적인 시누이, 사회위로적인 며느리, 공감능력적인 딸자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ㅋ.

   물론, 저는 추석에 조용히 환절의 계절을 감당해야 할 듯 합니다. 여행은 시월로 미루었고 산소는 여행후로 넘겼어요. 기꺼이 환절의 고통, 그 우울을 기다립니다. 저는 리뷰는 남성적으로 페이퍼는 여성적으로 써볼까 싶습니다. 결론은 이중적이라는 말씀이네요 ㅠ. 볼트가 이번엔 서두르지 말고 잘 뛰어서 멋진 경기를 펼치기 바랍니다. 또 주말인가요... 더위가 참 끈질기네요. 그 고집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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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9-0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저에게 특별한 날이었어요. 개강하는 날이라서 일찍 마친 덕분에 무릎팍 도사를 볼 수 있었어요. ^^;;
원래대로 수업을 한다면 무릎팍 도사가 방영되는 첫 부분을 볼 수가 없거든요/ 제가 학교에서 집으로
도착하는 시간이 거의 11시 20분인데다가 씻고 하는데 20분 정도 감안한다면 황금어장을 라디오 스타를
먼저 보는 꼴이 된답니다. ㅎㅎ 그리고 어제 대구는 낮 최고 기온이 35도래요.. 어제 오전부터 예선 경기를
치뤘던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


한사람 2011-09-03 00:12   좋아요 0 | URL

요즘은 예전 11시 5분에 시작했던 예능프로가 드라마 늘리기 편성으로 완전 끝나면 1시가 다 되어야 하더군요
저는 피곤해서 중간에 끄고 자는 경우가 많아요(확실이 나이 드니까 초저녁 잠이 많아져서요 ㅋㅋ)

개강이라...참 아득한 단어네요
내일은 드디어 볼트가 200m 경기를 하네요. 결승전을 보면 대부분 마지막 1m앞에서 역전을 하더라구요
끝까지 이 악물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숙연한 밤이네요^^
 

 


   8월의 마지막 주말은 혼자 감당하기에 참 버라이어티한 시간이었다. 수도권의 시민들은 보통 추석 전주 보다는 전전주를 벌초기간으로 떼어둔다. 그런데 올해는 추석이 빠른 편이라 공교롭게도 방학 말미와 겹치는 지난주엔 모든 것이 예민하고 피곤할 시점이었다. 달력은 좀처럼 여름을 차분히 정리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마음은 바쁘고 몸은 아직 여름인데 시간은 벌써 하반기를 향해 속절없이 휙휙 떨어지고 있다. 시기적으로 분명 한숨 돌려야 할 시점인데 날씨마저 삼십도를 웃돌며 계절의 감각조차 무디게 만들었다. 독서 역시 한권의 책을 진득이 잡고 있기가 어려워 나는 이 책 저 책 방황을 했다.  어떻게 가을을.... 맞이하나.

   그 사이, 책 사이로 불쑥 불쑥 남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이 모두 남자였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신선했다.



#1. 다시보는 남자, 개리


   지난주 대세로 진입한 인물은 바로 리쌍의 개리이다. 개리는 우리가 즐겨보는 '런닝맨'에서 송지효와 함께 가장 이득을 본 예능의 수혜자로 생각된다. 우리 가족은 작년 런닝맨 1회부터 거의 본방으로 개리를 지켜봐 왔다고 할 수 있다. 출발할 땐 꽃미남 송중기나 광바타 이광수보다 존재감이 덜했고 게임 적응력도 눈에 띄진 않았다. 예능에선 캐릭터가 중요한데 유재석은 무도에서 길을 가이드하듯 개리도 평온개리라 부르며 그의 (음흉한?)침착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특별한 개인기도 웃기지 않고 또 런닝맨이 그다지 좋은 시청률도 아니었고, 프로에서 핵심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개리가 그의 이십년 친구 길의 말처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시기는 가끔 '놀러와'에 땜빵용, 게스트 덤으로 나오기 시작 할 무렵-길보다 더 웃긴 개리를 보고서-부터 였던것 같다. 내 생각에 개리가 길보다 예능대세의 가능성이 많다는 걸 최초로 확인한 사람은 유재석이지 싶다. 개리는 힙합이라는 전위성뒤에 숨겨진 (이미지로서)시골청년의 순수함, 아웃사이더로서의 겸손함, 실패나 좌절과 상관없이 묵묵히 나가는 성실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 순발력이 느리고 태생적으로 웃기지 못하는 길과 눈치가 빠르고 겉멋에 들리지 않는 개리를 각자 자기 프로그램에 최적화하여 활용하는 유재석이 새삼 놀랍긴하다.

   암튼 길과 개리는 특유의 뚝심과 성실함으로 이번 7집의 대박 신화를 새로 썼다. 나는 아이가 사춘기가 가까워 오면서 (그동안 멀리했던)가요를 많이 듣게 된다. 아이가 음원을 내려 받는 벅스는 내가 결제를 하기 때문에 ㅋ. 벅스는 MBC의 음원사업 앞잡이다. 나가수가 방송된 직후 현재 장혜진의 ‘가질 수 없는 너’는 1위를 달리고 있다.(나가수 끝나기 십분전에 음원이 공개된다는 문자가 온다) 지난 주말부터 며칠동안 리쌍 새 앨범은 한 곡이 아니라 십 여곡이 전 차트를 석권하며 아이돌과 나가수를 기분좋게 따돌렸다. 보통 아이돌 가수가 컴백하고 음원을 공개하면 만 하루는 호기심에 1위를 달리곤 하지만 며칠 연속 1위에서 10위까지 한 가수의 노래가 차트를 올킬하는 경우는 없었다. 사람들이 통으로 리쌍 노래를 전곡 다운 받았다는 뜻이렸다. 리쌍 노래에서 개리는 아주 솔직한 남자의 목소리로 현실적인 넋두리를 하곤 한다. 길은 반복되는 가사에 힘을 싣고 백지영, 하림등이 곡의 성격에 따라 피처링을 하는 형국이다. 피처링 인맥은 기획사의 전략이자 가수의 인지도와 상관성을 가진다. 가수에게 예능은 새로운 인맥의 형성 및 확대, 강화 수단이다. 글쎄. (극단적인 비유지만)나는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유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재석과 친해서 잘 안된 가수들은 없어 보이기 때문에. 무도 서해안 가요제의 음원이 나가수를 누르고 몇주간 상위권을 차지한 것도 같은 이치다. 공교롭게도 무도에 출연한 10cm 의 노래도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리쌍도 그랬는데 웃긴 건 그들(?)이 언제부터 10cm와 리쌍 노래를 유심히 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번에 여성부에서 죽고 싶다는 가사의 노래가 방송부적격하다는 판정을 내렸을 때 길이 한 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원래 옛날부터 10년 동안 그런 노래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특별히 이번이 더 비극적인 노래는 아니고 세상의 판정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도에서 조정대회 프로젝트 막바지에 조정대회 주제곡을 만들어 두어번 방송에 내보낸 노래 역시 며칠 일위를 달리곤 했다. 연이어 발표한 데프콘의 노래 역시 상위권을 장식했다. 리쌍, 10cm, 데프콘 모두 주류음악을 하는 가수들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남자이고 그다지 미남의 영역에 속하지는 않는다 할 수 있다. 1박 2일이 주로 여자가수(나비, 제이세라, 지아등의)나 발라드 가수의 신곡을 배경음악으로 까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인 행보이다. 사실 유재석도 행위가 찌질이 개그맨으로 시작해서 그렇지 그의 집안은 (내가 청소년 시절부터) 이미 강남의 압구정 아파트였고 본인도 노래에 썼듯이 한때 압구정 날라리로서 쫌 놀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이 무명(이라기 보다는 비인기)개그맨으로서 오랜 세월 고생한 세월 때문인지 실력은 있는데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길을 가는) 연예인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동료가 망친 개그라도 잽싸게 주워서 살려내고 결과적으로 그 팀은 웃긴 팀을 만드는 리더로서 도가 튼 유재석은 이제 아무리 재미없는 멤버가 들어온다고 해도 큰 걱정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세간에 유행하는 음악의 흐름을 보면서 또 하나 느낀 건 MBC의 음원사업 전략이다. SBS의 스포츠와 KBS의 드라마에 밀리는 분위기였던 M본부가 사활을 걸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번 추석엔 트로트 가수로 90년대 음악과 힙합음악, 무도 가요제 음악에 이어 트로트 장르까지 부지런히 음원을 섭렵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건 지난 시절 강변가요제, MBC 대학 가요제를 통해 실력있는 가수를 배출해내고 십대 가수 가요제를 통해 굳히기에 들어간 방송사의 정통적 노하우와 그를 배경으로 한 시장 통찰력에서 비롯된 듯하다. 이수만도 이문세도 M사 (MC)출신이고 양현석은 M사를 통해 데뷔했다. 그런 면에서 MBC가 가요프로그램인 쇼, 음악중심에서 유일하게 순위발표를 안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본다. (사실 이것도 맨 마지막 엔딩곡이 일위에 해당하는 곡이라는걸 서로들 알고 있지만) 이건 가요발전을 위해 나가수 같은 프로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은 정식 앨범을 내고 있는 가수들의 음악을 줄줄이 죽이는 결과를 내고 있는 이치와 같고 문화적으로(?) 강남좌파스런 MBC의 꼼수에 해당된다. 요즘 강준만의 <강남좌파>를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MBC가 딱 그 짝이다. 나는 강남우파인 오세훈이 사라져서 강남좌파가 갑자기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는데 웬걸, 곽노현이 선의로 베풀었다는 이천도 아닌 이억을 보고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암튼, 오늘자 조선일보에 (월요일이고 볼튼과 곽노현이 사고를 친 아침에도) 같은 크기의 정면사진이 떡하니 기사화 된 것은 의미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2. 낯설고 새로운 남자, 윤민수

   어제 나가수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순위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 뭐 그렇게 큰 건 아니지만 이제 슬슬 나가수의 순위 매기기가 공정도 비공정도 아닌 그냥 일종의 전략인가 싶어진다. 이건 운영측이 어떤 꼼수를 부렸다는 뜻이 아니라 현장에서 청중평가단으로 선택된 분들이 시의 적절하게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일곱명 중에 세명을 찍으라는 투표방식에 그 세명 중 누가 일등이고 이등이고 삼등인지는 표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선택되지 않은 나머지 네명 중에 누가 사등이하 인지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이건 정말로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하는 단 한명을 뽑으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윤민수는 그 세명에 끼워줄(?) 만한 감동에 가장 (교집합으로서)근접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시 말해 그가 일곱명 중에 꼭 이등할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선택하는 세 명 중에는 어쩐지 넣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는, (합쳐보았더니)이등인 가수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 명' 과 ‘이 번’이 늘 동일하게 적용되는 변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1차 경연에선 '세명'이 2차 경연에선 '이번'이 중요하다. 어짜피 평가단은 전주에 누가 일등을 했고 누가 꼴찌를 했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투표를 임하게 된다. 즉 내가 하는 투표가 이번 한번만의 효력을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는 과정상의 행위인 것이다. 내가 하는 투표 이전에 누가 일등을 했고 누가 꼴찌를 했는지는 (노래실력, 무대감동과는 별개로)중요변수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집에서 편집된 영상으로 TV를 구경하는 시청자와 현장에서 용지를 받아들고 잠시라도 고민을 하는 행위자와의 판단차이를 낳는다. 어제 우리끼리 일등은 김조한이었고 꼴등은 자우림이었다. 인순이는 모르겠고(?) 윤민수는 모아니면 도라는 누구의 말마따나 잘하면 상위권, 아니면 잊혀질 노래였다. 음원으로만 들어봐도 음정 몇 군데는 불안정하고 호흡이 불안했다. 이건 장혜진도 마찬가지였는데 가장 덜 불안하고 완벽해보였던 인순이는 누가 봐도 일등이었지만 어쩐지 초대가수라는 생각이 든 건 왜 였을까.(열외의 느낌으로 일단 제쳐두고 ㅋ) 하지만 윤민수는 인순이와 김조한을 제치고 2등을 했다. 글쎄, 난 새로움과 낯설음 그 속에 엿보이는 가능성에 대한 반응이라 생각한다. 장혜진은 여지껏 실력에 비해 유난히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 어젠 제일 자기스럽게 노래를 불렀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었다고 본다. 그동안의 긴장을 이기고 드디어 자신감있게 불렀다는 것이 관객들은 듣기도 좋았지만 보기도 좋았다는 뜻 아닐까.

   암튼, 윤민수를 보면서 철저하게 이기적인 대중들의 본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대중은 잔인하다. 기존의 자신을 넘지 못하는 가수나 똑같은 방식을 고집하는 가수, 유난히 긴장을 하는 가수, 자기 감정을 우선시 하여 울컥하는 가수보다는 조금 부족해도 새로운 감동, 낯설은 신선함에 우선 반응하는 족속들인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것이 공정한 것이라 여기는 부류일지 모른다.



#3. 먹고사는 남자, 우석훈


어제 '여인의 향기'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김선아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 보이는 태도가 가슴을 짓누른다. 그런데 나는 김선아의 연기에서 시한부 인생의 노처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여배우로서 처절한 먹고사니즘을 엿본다. 한예슬 사태 이후라 거의 생방송 수준으로 제작된다는 이번 미니시리즈에서 한예슬과 똑같이 광고찍고 촬영장에 나타난 김선아의 피로도를 고스란히 감지한다. 누군 뭐 할 말 없어서 가만있는지 아느냐 하는 눈물로 보이는 것이다. 가끔, 회를 거듭할수록 드라마 대본 자체에 몰입한다기 보다는 자신의 처지나 자기 연민에 정말로 한껏 도취된 실제 상황 같은 걸 느낀다. 뭔가, 정말로 억울하고 서글픈 일이 있는 사람처럼. 덕분에 상대역에 동화되어 강지욱이라는 본부장(이동욱)도 조금씩 연기는 진일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곽노현을 보면서 그 밤 모처럼 다리를 뻗고 잘 다른 한명의 정치인이 떠올랐는데 그 연상을 보기 좋게 잠재우는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백미터 결승에서 실격을 당한 볼트였다. 그가 떠난 자리에 그의 연습파트너였던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인생은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얼마나 자신을 죽일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부정출발이 한번이면 바로 실격을 당하는 규칙이 너무 엄중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기회는 두 번이 아니고 한번 뿐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는 인생도 다시 출발할 수는 없다는 교훈을 준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여기까지 달려온 내 인생이 아니라고 해서 다시 처음으로 갈수 없다는 슬픔. 지금 까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여기서부터라도 그걸 잊고 계속 달릴수 밖에 없다는 냉혹함. 그러면서 벌초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 공장이 폭발해 죽어간 사람들은 자연스레 묻혀지고 다시 월요일이 되어 사람들은 복잡다난한 심경으로 일자리를 향한다. 이것이 인생인 것이다. 

    인문 MD가 이 책을 소개할때 제일먼저 이택광의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를 떠올렸다. 읽으면서 솔직히 문화비평의 수준에 대해 조금 실망은 했다. 문화비평이 정치의 이면인 것은 이해하나 문화비평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치라는 것이 수가 읽히면 이미 정치의 실효성을 잃는 것이 아닐까. 좀 더 눈높이가 낮아 보이면서 실용적인 컨텐츠로 이해되는 이 책에 마음이 간다. 타겟도 분명하고 목적도 명쾌해 보이는 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책의 목차에 보니 ‘누구나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는 나라’라는 소제목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노회찬의 첼로 연주 장면을 연상시킨다. 내 생각에 이런 타이틀이 정치적이라는 느낌이다. 이 책은 정치다, 라고 말하는 이택광보다 이 책은 경제다, 말하는 우석훈이 한수 위가 아닐까 싶다만. 먹고 사는 방법에 관해서라면.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는 심정으로 주말을 잘 정리하고 싶었다. 8월달엔 내가 아는 '사실'이나 내가 들은 '선의'에 대한 상식이 뒤통수를 얻어 맞은 시간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부패하게 만드는 건지 부패가 자리를 만들어 내는 건지 자리와 부패가 불가분의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만이 분명해 보였다. 나같은 사람은 누가 선의로 책을 공짜로 선물한 것도 빚으로 여겨지는데 오늘은 정말 상투적이고 진부한 부패로 떨떠름한 월요일이다. 이런 날은 개리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기 마련인데 리쌍의 노래로 걸그룹의 섹시함을 잠시 잊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잘난척 하는 이미지가 싫었는데 군대간다하니 김희철이 보고 싶다. ㅠ  이런게 대중의 뒤통수구나.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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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8-29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우림이 의외로 난조를 보여 안타까워요. YB 보다 못했나?
YB만큼 오래 갈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가단 탈락이 가장 유력하지 않나 싶어요.
그에 반해 장혜진이 길게 오래 간다 싶구요.
이 여잔 가장 빨리 탈락할 줄 알았는데. 무엇보나 그녀의 흐느끼는 창법이 저의 신경을 오히려 긁고 있어
보고 있는 게 껄끄럽더군요. 윤민수도 죄짜는 게 싫구.
그래도 어젠 대체로 다들 자기 스탈에 맞는 곡들을 부른 것 같아 좋은 무대였단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인순이가 가장 보기 좋았는데 3등이라닛!

여인의 향기가 그렇게 좋나요?
한예슬은 확실히 밉상입디다.
얼굴 예쁜 게 하나도 소용이 없어요.
그럼 연예질을 말던가.왠 추탠지.>.<

한사람 2011-08-29 22:52   좋아요 0 | URL

저도 자우림을 기대했었는데 매번 같은 방식인 것, 그리고 자문위원단 지적처럼
관객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노래를 즐기는 것, 관객에게 애원(?)하지 않는 성향이 외려
평가단의 마음을 얻기가 어려워 보여요.

누구나 속으론 일등을 하고 싶어하는데 그걸 위해 너무 오버해도 역효과지만
적당히 자신을 파괴하면서 관객에 오버스러움, 강한 열망을 설득 피력해야 결과가 좋은 것 같습니다.

<여인의 향기>는 극본이나 연출, 음악등은 시크릿 가든에 비해 훨 떨어지는데
순전 김선아 매력으로 버텨가는 드라마여요 ㅋ 근데 중반이후 상투적인 설정에도 서서히 몰입하게 하는
로맨스에 힘이 실려가고 있어요. 제목이 김선아가 죽기전에 탱고를 근사하게 출 것으로 예상되고
이제 죽을 날이 가까와 오기 때문에 어떻게든 결말과 대치하는 순간이 오게되니까요..

대부분의 톱스타 여배우들이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에도 불구하고
몇개월 기꺼이 몸던지는 이유는 성공했을 경우 챙기는 이득이 많기 때문이겠죠.
그런면에서 시청률이 저조하던 스파이 명월에 바짝 봉사할 마음이 생길리 없지 않았을까요?

stella.K 2011-08-30 13:45   좋아요 0 | URL
그래도 드라마의 인기도에 연연하지 않고
유종의 미를 보여주면 긴 안목에선 자기에게 득이 됐으면 됐지
실은 안 될텐데 말이죠.
어떻게 배우가 계속 히트치는 드라마에만 나오겠어요?
직업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의심이 가요.쩝
 



#1. 엄마라는 철학


   꼭 일주일 남았다. 그럭저럭 8월도 여름도 방학도.

   아이가 방학이면 엄마는 대개 휴업인데 이번엔 그런대로 여유로왔달까. 실제로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모든 면에서 나는 좀 여유를 부렸다. 무엇이 변한 걸까.

   작년 여름을 생각하면 여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기계적인 글쓰기에 매달렸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무식하게 읽고 내 식대로 쓰고 또 그 사이 벌어지는 틈이 싫어 책을 집어 들고. 그야말로 뒤돌아보지 않고 공장처럼 찍어 냈다. 물론, 그런 과정들이 내게 가져다 준 것은 분명 있긴 했다. 정말로 책이 소중해졌고 글쓰기가 사랑스러워졌으니까. 누군가와 연애에 빠지면 딱 일 년 간이 가장 열정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일 년은 리뷰와 연애기간이었나 보다. 상처도 많았고 기쁨도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확실히 새로운 전환기로서 스스로 변화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자각을 한다. 좌충우돌. 시행착오. 이합집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무슨 책읽기, 어떤 글쓰기가 나를 지탱해줄 것인지, 어떻게 나아가야 지금보다 더 나은 나 자신을 만들 것인지 그것은 올 여름 최대 화두였다. 그 뜨거운 여름이 지금 떠나려 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그냥 편하게 책 읽고 맘 가는대로 글을 쓸 수가 없다. 처음부터 취미로 독서하고 남들과 교류하기 위해 글을 써온 것은 아니므로 지금의 내 상태에 불만은 없다. 나는 지금 시점에 적절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내게 지난 여름은 어떤 의미였는가, 나는 여름에 무엇을 보았는가, 내가 본 것들은 나의 가을과 어떤 상관을 가질 것인가. 나로선 그냥 넘어가기 힘든 정리의 시점인 것이다. 내가 지금 독신이었다면 이러한 시기에 필경 여행이라도 떠났을지 모른다. 그럴싸하게 부모님의 고향같은 곳에 머물며 무언가 결심을 하고 돌아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삶은 철저하게 자신이 진화시킨 일상의 테두리 안에서 시작도 결심도 맴도는 것이 아닐까. 아이는 지난 여름을 떠올리며 엄마는 방학이 되면 더욱 자신에 대해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 볼멘 소리를 하곤 했다. 모든 엄마들이 아이의 방학, 학습의 공백, 체험의 부담, 대화의 기회, 이런 의무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자신만의 여름을 이룩하긴 불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내 고민을 잊지 않으면서도 아이의 공백도 채워주어야 할 것인가.

   아이가 컸다. 눈에 띄게 팔 다리가 길어지고 심지어 발사이즈는 나와 같아졌다. 심부름도 곧잘 하고 읽는 책의 수준도 높아졌다. 조만간 사춘기 계절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는 질문도 단순 궁금증을 지나 답하는데 시간을 요하는 질문을 툭툭 던진다. 왜 저렇게 살아야 해?, 저 사람은 양심이 있을까?, 왜 친구인데도 서로를 공격해? 연예인이 공인이야? 군대를 다녀오면 왜 아저씨가 돼? 나 스파이 명월 안볼거야. 어른들은 가식적이야. 철학자가 과학자보다 똑똑해?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저런 질문을 절대 엄마에게 하지 않았다. 사실확인이 아닌 가치판단에 대한 문제는 거의 대부분 혼자 생각하거나 친구와 나누었던 것 같다. 내 친구들의 경우도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누구보다도 내 어머니의 가치판단체계를 가장 많이 답습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예를 들어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아깝게 여기며 그 공백을 견디지 못하는 쪽이라 (남들도 그런 줄 알고) 늘 약속시간보다 먼저 가서 서성이는 편인데 그건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숙제 같은 것도 대부분 마감날짜에 임박해 제출하기 보다 훨씬 이전에 해놓고 남은 시간 룰루거리는 쪽이었는데 그 역시 어머니의 습관과 일치했다. 모든 문제를 일단 다 접수해 놓고 최종적으로 종합해 결론을 제시하는 성향도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제작자 보다는 플래너에 가까운 성격이 만들기 좋아하는 아버지가 아닌 계획에 통달했던 어머니를 닮아 버렸던 것 같다. 아니 길러졌던 것 같다. 특이했던 건 어머닌 손재주가 뛰어나 그리기, 만들기도 잘하셨는데 어머닌 잠재적인 내 소질을 확인만 하시고 키워주진 않으셨다. 예술가나 제작자의 삶보다는 그 위에서 사람들을 부리는 쪽이 되라고 늘 말씀하셨다. 아마도 본인이 살림을 잘하고 일도 잘하다 보니 늘 일을 도맡아 하게 되는 인생을 살았던 것이 싫으셨던 듯하다. 지금에와서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한 사람은 단연 어머니이다. 딸에게 있어 엄마는 하나의 철학이자 과학이자 종교가 아닐까. 나는 이 사실을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그것도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 딸도 나와 같지 않을까. 내 딸에게 나도 혹시 철학은 아닐까. 엄마라는 철학이 딸이라는 학생에게 인생의 토양을 심어주는 건 당연하겠으나 그럼 나는, 나라는 엄마는 과연 질기고 튼튼한 토질을 제공하고 있기는 한 걸까.


#2. 엄마하고 철학



이 책은 창비계간지 구독을 연장하면서(특별히 내가 문학에 뜻을 두어서가 아니라 친절히 연장하라고 설득의 전화가 와서 할 수 없이) 별도 신청으로 받은 책인데 나같은 학부모를 위해 썩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덮고 나서 막연한 자신감까지 생겨났다. 저자는 어려운 철학을 쉽게 풀어 청소년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철학 멘토를 자처하신다고 들었다. 하여 처음엔 이 책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읽겠다고 펼쳤으나 명쾌하고 자신감있는 통찰력은 놀랍게도 방학 끄트머리에 들어선 심경 복잡한 엄마를 확실히 위로해주었다고 할까. 나도 철학하는 엄마가 될 수 있겠다, 철학으로서 엄마가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이 의미있었던 건 누구든 살면서 어떤 의미라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걸 다시금 알려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자기만의 철학’은 어떤 유명한 철학자의 책을 읽고 그 깨우침을 통해 그 논리의 잣대로 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책을 통달했다고 해서 자기철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철학공부를 많이 하면 그 사유의 힘으로 자기만의 철학을 할 확률이 높아지기는 한다. 하지만 중요한건 철학을 공부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자기 생각이라는 것이다. 생각의 힘을 믿고 꾸준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신의 생각을 갖추는 것이 자기만의 철학으로 가는 길이라 말한다.


“어려운 책을 통해 습득하는 철학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서 자기에게 맞는 철학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20 p


   저자는 어려워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철학을 하는 것은 겉멋을 유지하려는 나쁜 습관이라 꼬집는다. 영화, 소설보다 몇 배 어려운 평론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과시하려는 철학과 같다고 말한다. 남의 문제를 자신의 고민인양 떠안고 기만하는 철학이라 말한다. 남의 흉내를 내기 위해, 남들에게 자기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어떤 자리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은 자기만의 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철학과 과학과 종교를 비교한 다음 철학을 기하학의 단계에 비유해 ‘전문철학’, ‘경험적 철학’, ‘잠재적 철학’으로 나눈다. 이는 곧 철학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 경험에 의해 자기 분야에 철학을 이룩한 사람, 그냥 인생을 살다보니 깨우침을 얻는 사람으로 비유할수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부류는 ‘경험적 철학’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철학은 아니지만 자기 분야에서 치열한 경험과 자신만의 통찰력으로 사유를 전개하는 인물로서 자기분야에 대한 대중적 설득력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여행과 독학을 통해 세계적 건축가가 된 안도 다다오와 김성근 프로 야구 감독을 예로 들었다. 이들의 공통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치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치열함이었다. 그리고 추상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 대한 일가견을 체계화, 일반화 하였다는 성과에 있었다. 예를 들어 동대문 시장의 상인도 한 평생 장사 경험을 통해 자영업과 성공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더 나아가 자본주의에서 상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상업이란 어떤 의미인가와 같은 보편적 주제에 체계적으로 일반화하지 않았다면 경험적 철학자로 칭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퍼뜩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다. 그는 철학을 전공으로 했지만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신제품을 발표할 때 나는 인문학적 배경을 소프트웨어 기술개발의 근거로 삼는다 말하곤 한다. 얼마 전 삼성은 소프트 웨어 기술 개발자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뽑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대기업 삼성의 인재채용 행보는 한국의 취업준비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는 곧 대학교육, 나아가 입시교육, 출판시장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철학을 전공하지 않고 문학을 전공했더라면? 이 책을 덮은 내 대답은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아마 애플의 사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 내 답이다. 스티브 잡스가 철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수많은 전공 중에 한 과목이 철학이었다는 객관적 이력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바이다. 철학은 세계를 통째로 이해하는 공부이고 과학과 같이 논리를 그 과정으로 하며 극대화된 추상의 결과물을 지향하게 한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경험적 철학자’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말하는 자신만의 철학은 무엇보다 자신만의 문제, 자기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전쟁이나 평화, 복지와 민주주주의, 기후 온난화와 환경파괴같은 거창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금 당면한 자신의 사소한 고민을 깊게 생각하고 자기 삶의 문제를 주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칸트도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문제를 탐구한 것이 아니라 당대에 직면한 자신의 고민에서 출발하였다고.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 하더라도 21세기의 고민거리를 미리 예측하여 해결방안을 내 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만의 철학>은 짧지만 많은 고민을 해결해주는 스마트한 책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정당한 것이며 나는 결국 이 고민을 해결할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이 책은 <자기만의 철학>을 덮고 본능적으로 집어든 책이다. <자기만의 철학>은 철학이 일상에서 왜 필요한지, 혼자 사유하는 힘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우리같은 학부모에게 가물가물하던 개념을 잘 정리해주는 책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이제 어쩌란 말인가. 이 책을 아이에게 그대로 읽어보라 권한다면 엄마, 나도 이제 나만의 철학을 할래, 이렇게 답할 수 있을까. 통계상 내가 먼저 읽고 아이에게 권한 책은 스스로 집어 드는 시기를 더 길어지게 할뿐이다. 지금 아이는 한창 김병만의 에세이에 꽂혀있다. 김병만의 책은 내가 권한 바가 일절 없는데도 기웃기웃하더니 어느새 다 읽었다 한다.

내친 김에 지난 봄에 받아 놓고 잊어먹고 있던 책을 펼쳤다. 이 책은 방법론에 대한 책이다. 그냥 집에서 대화하면서 아이 생각도 알 수 있고 내 생각도 말할 수 있는 부담주지 않는 미덕을 가졌다. 나는 이 책을 넘겨가며 아이와 행복에 관한 수다를 떨었다. 거실에서 TV도 켜놓은 채로. 지나가다 툭하고 질문을 던져보았는데 재미있었던지 또 없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는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물으면 자기 생각을 자신있게 대답할 친구가 몇이나 될까.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질문을 ‘행복이 말이야. 만약 행복이 색깔이라면 말야. 네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색깔이야?’ 이렇게 질문하면 대답이 바로 나온다. 아이는 바로 하늘색이라 답했고 이유를 물었더니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라 답했다. 노을색도 좋다고 했는데 노을을 바라볼 때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이에게 행복은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 평안이 찾아오는 순간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행복을 꽃이라고 한다면 아이는 행복이 해바라기라 답했고 행복이 냄새라고 한다면 행복은 엄마냄새라 답했다. 이것은 ‘중국식 초상화 놀이’라고 하는 철학수업의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답은 없고 언제든 답이 변할 수도 있는 이런 놀이는 아이들이 학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가 생각하는 행복과 내가 여기는 행복을 서로 번갈아가며 답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중국식 초상화 놀이 같은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책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창의적일 것 같아도 의외로 주관식형 질문에 창의적인 답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조기교육이라고 서너살 때부터 한글 학습지를 배우고 유치원에서 한글, 영어, 한자까지 선행학습을 해오고 학교 입학하면 바로 학원과 연계해 사교육의 대상자로 전락한다. 아이들은 우리때와 달리 너무 공부해 왔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없어졌다. 있다 하더라도 말할 시간이 없으며 말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가르쳐준 답만을 기억해 낼 뿐이다. 방학이면 도식화된 캠프와 목적성의 체험학습, 부족한 과목의 보충수업에 매달리고 휴식이라곤 무한도전과 1박 2일을 시청하는 시간외엔 뭐가 그리 바쁜지 앉아서 진지하게 대화할 시간이 없기 마련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아이와 마주앉아 진지하게 철학하자고 새삼스레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 어색해 아무 말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한다하여도 지루하고 피곤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머릿속에 체계적인 나름의 프로그램이 없으면 질문도 대화도 답도 흐지부지 될 것이 분명하다. 요즘 개념연예인이라는 신종어가 있듯이 우리도 개념엄마가 되보는 건 어떨까. 명색이 그래도 늘 책을 끼고 살아가는데 개념없는 닶을 해주긴 싫지 않은가.



   시간을 정리하면서 다음 계절을 맞는 습관, 이는 아무래도 가을을 준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다가올 계절을 준비한다는 건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잘 생각해보면 이야말로 시간에 좇기는 형국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만. 올해, 한여름은 없어도 날씨는 후덥지근한 여름날이 계속된다고 하는데 이는 가을에 정신차리겠다는 이들에게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다. 이별이 길면 후유증이 크기 마련이니까.

   어제 서점에 갔더니 휴가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이 차분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 소양을 위해서 책을 두어 권 골라 왔다. 서점가서 직접 골랐으니(정가대로 샀으니 ㅋ) 만족도는 더 높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지금 내 팔자가 그리 암울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이들 방학에 치여 밥과 빨래, 청소 해대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나같은 엄마들이 다가오는 찬바람을 설레도록 기다렸으면 좋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 여름엔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모두가 우리에게 늘어나는 주름살이 아닌 더 넓어지는 마음살로 자라주길 바란다.
내 아픔과 상처는  언제나 상대의 고통을 헤아릴수 있는 드넓은 마음의 토양이 될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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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1-08-2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에 책을 좀 구입했지요ㅎㅎ 저는 가난한 학생이라서.. 최대한 할인을 많이 써서ㅎㅎㅎ 책이 옆에 있으니 기분이 정말 흐뭇한 것이 아주 그냥 좋네유
저보다 훨씬 이런 말을 많이 들으셨을테고 상투적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자녀에게 책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좋다고 그러던데ㅎㅎ 저 유년시절에는 동화를 많이 좋아했었답니다, 그러고보니

한사람 2011-08-24 21:39   좋아요 0 | URL

저는 아이에게 책 읽으라고 등 떠밀지는 않아요. 다행인지 아이가 책을 싫어하는 쪽이 아니라..
요즘은 외려 제가 읽는 책을 기웃거리고 옆에서 슬쩍 읽었다가 나중에 제가 꽂아놓으면 가져가더라구요 ㅋㅋ

어제 서점가니 소설보다는 인문쪽에 사람들이 많았어요. 새로운 책도 많았구요. 담달 추천 책 두어권 확인도 했답니다. 몇권 사오기도 하고.. 가연님도 가난한 학생이지만 책은 부자시죠? ㅋ

마녀고양이 2011-08-25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좋군요,
요즘 조급해하고 무엇인지 모르고 불만족스러운 제게 위안이 되는 글이기도 하구요.

제게 알라딘 서재란 소통의 의미일 뿐, 글쓰기에 뜻이 없어서 그런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 하겠더라구요.
다시 생각해보고 꼼꼼히 글을 써보면 좋을텐데 그보다 앞선 일들이 있는거죠. 그런 의미에서
한사람님의 글이 좋습니다. 글을 쓰시는구나 하는 느낌이 드니까요. 그러니까 잘 표현하기 힘든데,
글이라는 것을 중심에 두고 쓰시는구나 랄까.......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

가을이 오려하네요.

한사람 2011-08-25 14:51   좋아요 0 | URL

아침에 일어났더니 모든 공기와 빛이 가을색이었어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오면 확실히 대기가 긴장을 한 탓인지
사물이 더 명료해보이고 빛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실은 아직도 알라딘 서재가 내게 무엇인지, 이곳에 쓰는 글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다만 예전과 달라진게 있다면 마녀 고양이님 같은 다른 분 서재도
가끔은 기웃거리고 다른 분들 글을 읽고 반갑기도,,또 울컥하기도 한다는 것.

저는 소통을 원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실은 조용히 소통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위안을 받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며칠동안 매미가 그렇게 울어대드니..오늘부터 끊어졌습니다. 그게 좀 서운하네요 ㅠ

초록비 2011-08-2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프로필에 있는 그림은 어디 작품인가요?
그림이 인상 갚어서 실례 무릎쓰고 여쭙니다. ^^

한사람 2011-08-29 18:31   좋아요 0 | URL

아, 그림은 피카소 작품이구요
피카소는 여성편력이 심했고 또 그 여인들을 작품으로 많이 남겨놓았는데
그들중에서 최초로 피카소에게 헤어지자고 한 여인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내용보다는 그냥 풍기는 분위기가 제가 좋아하는 톤이라서요^^

보물선 2011-08-3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오늘 우리 꼬마한테 상처 받았어.
아침에 안아달라고 그랬나본데(못알아챔) 무시하고 빨랑 준비해라 잔소리좀 했더니
"에잉, 엄마는 엄마도 아니야!"
요러는거야.

나쁜년.
지는 별생각없이 말했을테지만, 나는 열받아서 학교 안데려다주고 휙 회사 가버리려 했다니깐.
2학기 책 다 가져가는 날이라 꾹참고 데려다줬네~

엄마랑 철학하는건 고사하고
엄마 인정 받기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ㅎㅎㅎ

한사람 2011-08-30 13:18   좋아요 0 | URL

자기말을 건너뛰고 대답안해주면 씹었다고 생각하더라구 ㅠ
그런게 아니라고 해도 조목조목 따져드는 나이가 시작된 것이지..

일하는 엄마들에겐 아이들이 더욱 보상심리가 많은데
특히 엄마와 같이 있을땐 자기나이보다 어리게 굴어서
아직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걸 강조하려는 경향이 많은 것 같음
이것이 엄마와 딸 사이에 모종의 거래같은게 형성되기 쉽기 때문에
직장맘은 이 거래 종류와 수위를 잘 유지하는 것이 결국 아이를 독립시키는 관건이 되는 요인이라 생각함 ㅋ

보물선 2011-08-30 15:20   좋아요 0 | URL
완전 분석적인 한사람님!ㅋ
서로 누가 고수인지 밀당을 하고 있다는^^
밀리지 말아야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