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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영광(?)스럽게도 9기에 이어 10기 인문평가단 활동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웃분이 소설을 쓰려면 소설을 읽을 것이 아니라 인문을 읽어야 한다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동감아닌 통감을 했다. 한달에 두권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들 동안 소설만으로는 할수 없었던 영역의 고민들을 할수 있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당연히 소설을 읽어야 소설을 쓸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소설을 시작하지 못했다. 소설을 쓰려면 소설 읽는 것을 중단해야만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내가 소설을 써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지만 사실 내가 소설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오래전에 멈춘 상태였다.

   어느날 아침 나는 이제 소설을 쓰고 싶다에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무지막지한 믿음 하나로 나는 소설을 쓰기로 했다. 역시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확인해가면서. 그래서인지 이번 평가단 활동은 처음 인문활동보다는 조금은 여유를 가질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한다.(어쨋든 시작은 했으니까 ㅋ)  짜집기식의 정치서적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내 중심을 잡아줄 책들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바이다. 이상한 논리다. 소설을 쓰고 싶어 소설을 안읽는다는. 그러기 위해 인문을 택하였다는.




1. 맹신자들 ( 에릭 호퍼 지음|이민아 옮김, 궁리 ).........................사회과학>사회사상


   세상은 한 번도 우리에게 신념을 요구한 적 없지만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맹신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아주 오래전에 선배따라 다단계회사의 설명회에 불려 다닌 적이 있다. 그때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어디를 보아도 멀쩡하고 똑똑해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같은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창궐한 집단 속에서 가치는 종교에 다름 없었다. 성공을 위해 그 자리에 모였다기 보다는 같은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한 듯했다. 이 책이 궁금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광신 현상의 심리적 요인’과 ‘대중운동의 본질’을 추적했다는 것이다. 맹신이라는 단어에 필요이상의 과다, 긍정 너머의 부정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대중운동의 역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동기와 심리, 내면을 통해 대중운동의 올바른 역할수행을 주장하고 있다.


“ 특히 군대, 증오, 설득과 강압, 지식인, 소수자 등을 논하는 호퍼의 혜안은 아주 빛난다. 호퍼는 마지막 장에서 대중운동의 발단과 성숙기까지를 살피며, 대중운동이 제대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세 유형의 사람이 발전 단계에 따라 각각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운동의 토대를 닦는 것은 지식인, 대중운동을 실현하는 것은 광신자, 대중운동을 굳건히 다지는 것은 실천적인 행동가라야 한다고. 나치즘이 재앙으로 끝난 것은 히틀러라는 광신적 지도자가 성숙기까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좋은 지도자, 나쁜 지도자를 예로 들며 궁극에 유익한 대중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이한건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는 저자 에릭 호퍼(Hoffer·1902~1983)가 '맹신자들'(원제:The True Believer)을 집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1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금광 및 부두 노동자, 웨이터등을 전전하며 노동자 시절에 이 책을 발표했다. 이론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목격한 나치즘과 파시즘, 스탈린의 전체주의의 폐해를 목격한 후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좋았던 시절의 기억으로 피가 끓는 신빈곤층"이 맹신자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고 말한다. 영국의 청교도혁명,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무너진 중산층 출신 빈민들이 그랬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 적절한 충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산층이 제대로 무너지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일련의 사회현상은 마치 쓰나미처럼 신념에 호소한다. 이것이 집단의식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나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불평불만은 문제가 시정될 수 있을 것 같을 때 가장 신랄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시정을 바래서가 아닌 불평을 위한 불만에 너무나 익숙하다. 마치 불평만이 우리를 연대하는 것 같은 착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언론에서의 평도 좋은 평인데 그건 아마도 진보든 보수든 대중운동에 대한 필요성 이전에 그것을 행하려는 우리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에 대한 공감때문인 듯하다.



2.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강신주, 동녘 )...................................인문학>교양인문


   솔직히 요즘 시 읽는 일이 내겐 즐겁지 않다. 언제부턴지 시는 인문보다 어려워졌고 시를 통해 철학을 발견하고 싶지 않은 나는 시를 외면해온지 꽤 오래되었다. 그러니 이 책도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고 작년에 출간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처럼 선택하기 맘 편한 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차라리 괴로움이라 고백하는 편이 내겐 더 정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그때 다루지 못했던 시인중 문정희, 고정희, 김행숙 등 여성 시인들과 백석, 신동엽, 이성복, 김정환, 허연 등을 다룬다고 한다. 전편을 읽지 못하고 속편을 읽는 부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좋아한다 대답하는 시인이 문정희님인데 이 책에서 저자는 여성성의 문화를 문정희님으로 대변하고 있다. 어떤 책에 끌리는 이유는 이처럼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이 가을을 기꺼이 시 읽는 괴로움으로 채워놓고 싶은 이유가 알고 보면 사소한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진실. 또 하나 대중철학자로 불리는 강신주 저자가 항상 학문이 아닌 우리 삶에 오랫동안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믿음 또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읽지 않고도 기꺼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진다. 진실의 사실화, 이것이 추천 이유다

“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노래하거나 논증합니다. 그들의 시와 철학에는 유사성은 있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김수영의 시와 신동엽의 시, 그리고 바흐친의 철학과 바르트의 철학이 유사하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시인과 철학자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의 궁극적 유사성은 바로 그들이 자기만의 제스처와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와 철학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도 그들처럼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3. 의식혁명(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 백영미 옮김, 판미동......................과학>정신과학



   이 책은 아주 흥미롭다. 영적담론을 과학으로 펼쳐내 보인 책이다. 정신과학에 대한 서적은 최초의지만큼이나 이해도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진실 대 거짓>, <내 안의 참 나를 만나다>를 비롯한 의식지도의 다양한 개념의 출발점이 된 책이고 ‘의식 연구의 과학화’라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을 완성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의 의식 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지표인 ‘의식 지도’는 ‘신체운동학kinesiology’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몸이 유해한 자극에 노출되면 근육이 약해지는 현상을 발견하고 ‘근육테스트법’을 통해 우리 몸의 다양한 반응을 관찰했다. 의식지도는 20년에 걸쳐, 모든 연령대와 성격 유형을 망라하는 각계각층의 피험자 수천 명에 대한 수백만 건의 테스트를 근거로 한 개념인 것이다.

“호킨스 박사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이성, 자발성, 사랑, 기쁨, 평화로 대표되는 힘을 따르느냐 무감정, 두려움, 욕망, 분노, 슬픔으로 표현되는 위력을 따르느냐에 따라 사회, 문화, 정치 분야에서 우리가 얻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이 둘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위력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의 삶은 폭력, 전쟁, 죽음으로 대표되는 부정적 에너지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했다. 즉, 힘과 위력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숨어 있는 결정자인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위력과 힘을 구분함으로써 ‘본인의 이익에 영합하고자 하는 정치인과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며, 우리의 의식 수준을 끌어내리는 예술 작품과 보기만 해도 의식 수준의 도약을 이룰 수 있는 예술 작품을 구분하는 일’ 역시 가능하다고 말한다. 긍정과 부정을 가르는 기준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인 듯하다. 살아가는데 있어 철학은 과학을 보완하고 과학은 철학을 증명하는 일의 반복이 결국 생의 의미를 진화하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4. 선택의 과학 (리드 몬터규 지음 | 박중서 옮김, 사이언스북스)...............인문학>뇌과학


   이 책을 덮고 나면 인간이란 별스런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과 우리 뇌는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 것 같았다. 저자의 연구결과를 훑어보니 결국 인간은 ‘다음 단계’라는 목표를 위해 죽음도 단식도 테러도 가능하다는 생존기계에 불과하다 말한다. ‘다음 단계’라는 생각이 일종의 보상신호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이 보상신호가 우리 신경계의 내적구조를 지배하는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인간의 선택이라는 것이 결국 다음 단계라는 보상신호에 의해 반복되는 학습이며 이것을 다양하게 재배치하는 과정이 곧 선택하는 패턴이 되며 그 선택의 종류에 따라 얼마든지 자살이나 분신같은 극단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어떤 사람이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하는 질문은 생의 시간과 비례하는 것 같아도 나이들수록 사실 그 어떤 선택에도 놀라지 않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는 이것이 더 궁금해진 독자였다. 막연히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게 하는 뇌구조가 그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 것이 아닐까 수준에서 나는 생각을 멈추곤 했는데 이 생각하는 과정을 뇌과학으로 체계화한 것에 대한 인문서적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 책의 원제는 '왜 이 책을 고르지?(Why choose this book?)'이다. "당신의 인생이란 이 책을 고른 것과 같은 선택의 순간 수십억 가지가 합쳐진 것에 불과하다"는 도발적 선언이다. 선택의 과학적 과정,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그 보편적 원리를 찾는 최신 신경과학 실험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


   이 과정을 이해하면 무엇을 선택하는 방식이 곧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될 것 같다. 살다보면 의외로 똑똑한 여자들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남자를 택하곤 하는데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그녀들의 선택은 단지 과학적인 작용이었고 고로 그녀들의 인생은 상당히 과학적인 삶이었다는 사실을.




5. 자아폭발(스티브 테일러 지음 | 우태영 옮김, 다른세상)...............역사>고고학/인류학


   언론의 소개를 보았을 때 이 책은 역사적이면서 철학적이면서 또한 심리학적인 책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책은 방대한 사유와 그 깊이에 비해 자칫 막연하고 허탈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책 덮고 난후 저자와 같은 의문만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안보고 가진 의문보다는 다 읽고 난 후의 의문이 낫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추천하고픈 이유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지난 6천년 동안 인류가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아 왔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우리 바깥이 아닌 우리 내부로 쟁점화하였다. 인류의 역사를 ‘자아폭발’이전과 이후로 구분하고 자아폭발 이후가 곧 타락이라 규정한다. 그러므로 인류는 진보가 아닌 퇴보의 진화를 거듭해왔다는 것이다. 저자가 근거로 제시하는 병리적 현상은 가부장제, 남녀불평등, 인종차별, 물질주의 같은 우리가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모든 진화의 산물들이다. 나는 사실 인간의 죄의식을 유발하는 인문서적들을 선호하지 않지만 내가 궁금한 건 문제의식을 통찰하는 관점이다. 알고 있는 역사과 알려진 사건이지만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다.


“ 테일러는 수십 년간 축적된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자아폭발” 이전, 즉 선사시대의 인류는 우리보다 훨씬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했으며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고대 인류의 삶은 “자아폭발” 이후 폭력과 억압으로 점철된 삶으로 바뀌었지만, 그들의 흔적은 아프리카 원주민과 아메리카 인디언, 오스트리아 애버리진을 비롯한 원주민 집단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원주민 집단은 결코 “미개한” 존재가 아니다.“ 

“ 아메리카와 남태평양의 원주민은 이미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라는 무계급사회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사회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프랑스대혁명, 미국 헌법 기초에 깔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은 폭력을 줄이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그것은 썩 기분좋은 결말은 아닐 것이나 분명 인정하기 어려운 일만은 아닐 터이다. 타락이 진화의 다른 말인 것을 우리는 알고서도 침묵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덧붙임)

현재 10월 신간들을 추천하라는 안내 페이퍼는 올라오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대부분 신규로 선정된 평가단 분들이 벌써 추천 페이퍼를 작성하고 계시는 듯하다)
9월 말에 10기 평가단 발표가 있었고 바로 10월 달부터 활동을 시작해야 하는데 연휴를 맞아 일정이 늦추어 지고 있는 듯하다.
이번달 평가단 마지막 도서들도 선정공지만 뜬채로 아직 배달되지 않은 상태이다.  
일정이 꼬이는 것 같아 짜증은 나지만 늘 그렇듯 운영측은 턱없이 바쁠 것이므로 속좁은 내가 이해하기로 한다.

어짜피 작성해야 할 페이퍼였고 안내페이퍼 공지없이도 이렇게 추천은 가능하다.
하지만 월례조회때 선생님없이 우리반 줄선 것 같은 기분은 든다.  

그리고, 2만원 넘어가는 서적들은 (눈물을 머금고 양심상? )제외했다.(정가는 2만원 넘어도 알라딘에서의 가격으로 결정)
사실 인문서적은 소설, 에세이보다 조금 비싼 편이다.
지난 평가단 활동때 <인지자본주의>같이 두껍고 비싼책을 받은 것은 행운이었다.
그런데 책이 비쌀 경우 더 전문적인 내용일 경우가 많아 그 책이 지지를 많이 받아도 선택될 확률이 적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비싼 책은 평가의 목적이 아니라 소장의 목적으로 추천을 한다는 소리도 들려와 스스로 좋은 책이라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클릭을 망설이게 되더라는 것. 

내 스스로는 될만한 책 위주로 추천을 하지 말고 서점도 가보고 직접 확인을 해보고
한계를 인정한 상황내에서 최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해 책을 선택하려 노력은 한다.
그런데 선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출판사의 수락여부와 평가수용의 의지임을 인식하다보니
나 좋다고 책을 선뜻 추천하기는 힘들다 말하고 싶다.(그렇담 과연 이렇게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이 큰 의미일까? 하는 딜레마에 당연히 봉착하게 된다) 

잔머리 굴리는 사람을 가장 혐오하지만 위의 페이퍼는 할수 없이 그러한 잔머리의 결과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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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10-03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발송을 수, 목에 걸쳐 한다더니...
그렇지 않아도 물건 살 일이 있어 그것과 이것을 어떻게하면 한날 한시에
한꺼번에 받을 수 있을까? 잔머리 좀 굴려봤는데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어요.ㅠ

저는 그냥 추천해 달라고 공지 올라오면 그때 올릴 생각입니다.
암튼 참 부지런하심다.^^

한사람 2011-10-03 22:01   좋아요 0 | URL

숙제는 빨리하고 놀아야죠 ㅋ
연휴에 평가단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벌써 연휴는 끝났네요 ㅠ
날씨가 많이 추워졌더라구요
오늘 나갔다가 제대로 떨었습니다..

비로그인 2011-10-03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례조회 때 선생님 없이 줄 선 기분'이라는 표현이 재밌어요 ㅎㅎ
저는 대충 끌리는 책들을 마구잡이로 추천했는데, 조금 뒤통수가 구리네요.
저도 다음 기회가 되면 인문 서적에 도전해보렵니다!

한사람 2011-10-03 22:56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저도 소설때는 대충 본능적으로 끌리는 책으로 다섯개를 채웠어요 ㅋ
장르쪽 걸릴때가 가장 난감했는데 것도 읽고나서 리뷰쓰면서 새로운 시각은 생기더군요
평가단 하면서 무엇보다 같이 추천을 하게 되는 평가단분들을 신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내가 택하지 않는 책이지만 다른 분들의 이유도 소중한 것이라는 배려가 없으면
나중에 택하지 않은 책이 왔을때 불만이 생기게 되더라구요

저는 평가단 하면서 어렵고 지루하거나 내 관심분야가 아닌 책들이었지만
그런 책들 때문에 리뷰쓰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거든요

뭐, 소설은 편차가 심하지 않은 편이라 선호도의 문제일수 있지만
인문은 맨땅에 헤딩한 저를 생각하면 쉽게 도전할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ㅠ
그런데 인문에 도전하신다고 했으니 그렇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씀? 하하

그렇담 도전 강력히 추천합니다 !!

맥거핀 2011-10-0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번에도 서평단을 하시는군요. 책 선정에 대한 얘기를 하셨는데, 저도 예전에 8기때 서평단을 했었는데(인문 분야) 하면서 늘상 책을 추천할 때 고민하게 되더군요. 어쩌면 그냥 아무 고민 없이 지금 현재 내가 가장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하면 될텐데도, 아무래도 어떤 정치적(?) 고려들을 알게모르게 하고 있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알라딘 측에서 공식적으로 뭔가 확실히 세워놓은 원칙이 없기 때문에 조금은 이런저런 말들도 나오는 것 같구요.

추천해주신 책들 중에서는 <의식혁명>이나 <선택의 과학>과 같은 책이 흥미를 끄는군요. 특히 어떤 영적인 부분에 과학적인 측정을 도입했다는 것이 어떤 식으로 가능할 것이며,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흥미롭구요. 저는 오늘 홍대에서 하는 와우북 페스티벌에 가서 당장 읽지도 못할 몇 권의 책을 건져 왔어요. 날씨는 좋고, 읽을 책은 쌓여가고 큰일입니다. 서평단이라도 하면 억지로라도 읽게 될려나요..?^^;

한사람 2011-10-04 00:34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인문 선배셨군요 ㅋ
정치적 고려를 안할수 없죠. 기왕이면 내실있는 책을 읽고 싶은건 마찬가지니까요.
또 함부로 추천하기도 어렵구요.

저도 <의식혁명>은 관심이 많이 가는데요. 정신과 육체가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와요^^
오늘 날씨가 쌀쌀하던데 홍대는 활기찼겠어요. 책을 그만 사자하면서도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수 없듯
책만 보이면 또 이것저것 사게 되는거 같아요. 책을 읽기 위해선 책을 그만 사야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ㅋ
저는 평가단을 하게되면 억지로라도 리뷰를 쓰게되니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읽은 책들을 다 리뷰쓸수는 없고 자발적인 리뷰가 힘들죠. 소설리뷰는 그만하고 싶기도 하구요 ㅋ


가연 2011-10-04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오랜만에 들어왔네요ㅎㅎ 10기에도 뵐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좋네요ㅎ 개인적으로는 자아폭발이라는 책이 괜찮게 보이네요. 왠지 연작의 일부분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사람 2011-10-05 09:58   좋아요 0 | URL

10기도 같이 하는 관계군요 ㅋㅋ, 잘됬네요
리뷰쓰기전에 꼭 가연님글 컨닝해요, 하하
쓰 다음에도 확인하구요
9기때 보다 기대가 되네요
<자아폭발>이 역사분야로 분류되어 있어서 그래서 택했어요
도움이 될거 같아서리..

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0-1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 완료했습니다! 언제나 정성스런 페이퍼 :)
첫 미션 수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사람 2011-10-12 09:19   좋아요 0 | URL

히, 고생은요~(고생은 취합하고 선정하시는 쪽이 더 하겠죠 ㅋ)
언제나 안 읽어본 책에 대한 페이퍼를 쓸 땐 민망한걸요.
대충 보니 이번 인문평가단의 성향을 알수 있겠던데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1. 미학적 퍼포먼스

 

   이 책은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이라는 부제가 붙은 교양철학 서적이다. 제목이 된 ‘아이콘’은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의 아이콘(시각화된 명령어)을 뜻하는데, 저자는 복잡한 명령없이 아이콘을 클릭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처럼 자신이 말하는 ‘개념어’를 알고 있으면 전문적 철학지식이 없어도 깊은 사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여, 이 책에선 ‘파타피직스(pataphysics)’, ‘앵프라맹스(inframince)’같은 개념이 38가지가 등장하고 이 개념을 적용한 문화, 시사, 정치, 인물분석이 저자특유의 시선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분명 하나의 개념에 한 권(이상)의 책이 필요할 내용들이지만 저자는 이것들을 모두 모아 한 권에 요약집처럼 묶었으니 철학이나 인문학에 마음이 급한 독자들은 충분히 혹할만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개념정리나 하자 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고  무엇보다 매뉴얼이라는 부제에 소장용의 욕심을 부렸다. 그러나.

  나는 아주 오래전 시험공부를 안해놓고 급한 마음에 참고서 요점정리만을 읽었던 그 시절이 생각나 그냥 내 선택에 헛헛한 미소만 띄우고 말았다. (요점정리는 모든 걸 공부한 사람한테나 필요한 정리가 아니던가 ㅠ)

   한마디로 이 책은 주기적으로 생산된 기사를 잘 묶어 절차에 따라 잘 엮어진 모음집이었고 그걸 ‘진중권’이라는 네임 밸류와 인문학이라는 포장으로 그럴싸하게 상품화한 책이었다. 현재 이 책은 국내도서> 인문학> 철학일반 > 교양철학 혹은 국내도서 > 인문학> 동양철학>한국철학> 한국현대철학의 분류속에 어엿하게 자리하며 현재 인문학 주간 2, 3위를 달리고 있다. 나 같은 독자는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스스럼 없이 판매부수에 기여한 참으로 어리석은 독자였을 것이다. 이건, 출판기획이 아니라 전형적인 기획출판이다.

   나는 미학자이자 문화, 시사평론가인 진중권을 새삼 비판할 마음은 없다. 그럴 주제도 안되고 그런다고 내게 돌아오는 것도 없다. 일부 평론가들은 5천년이 넘는 한국의 문화를 서양의 이론 잣대로 분석하고자 하는 일 자체가 서구문화 사대주의라는 시각도 있다. 진중권의 비평을 '서양의 권위에 기대어 주체적인 사유나 고민도 없이 너무 쉽게 학자로 행세해 보려는 일종의 사기짓'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젝과 라캉, 벤야민만 들먹이면 모두 문화비평이냐는 것이다. (글쎄, 그럼 누구를 들먹여야 하는 것인지) 요즘 유행하는 심리학 책에 보니 작가와 작품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글을 쓰는 것이 굉장히 지적으로 보이는 지름길 서평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일반독자들은 잘 알려진 평론가나 유명 정치인, 성공한 소설가를 대놓고 지적하거나 그들의 작품을 짜깁기나 쓰레기라고 하는 사람을 늘상 기다리며 그들의 논리에 일단 접고 들어가 박수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 적절한 논리를 구축하고 자신만의 지식을 첨가하여 순수한 독자로서 아무런 목적(?)도 없이 돈 한푼, 책 한권 안 받고 그런 글을 올렸다면 열에 아홉은 그 사람을 배운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렇게 비난하는 걸 보니 믿는 구석이 있겠군 ㅋ, 그만큼 배웠겠지 ㅠ) 그 글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안한다  손을 들고 싶었지만 이곳 서재만 해도 ‘감동이다’하는 서평보다는 ‘문제있다’ 지적하는 서평이 일단 추천이나 댓글도 많은 걸로 보아서 어느정도 인정해야 하는 연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런 서평을 쓰겠다는 뜻은 아니다 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러니까 진중권의 비평시각이나 저자의 성향같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책을 덮고 났는데 38가지 개념 중 크게 기억나는 것이 없어 내 스스로 허탈감을 감당하지 못했다하는 건 제쳐두고 싶다.  몇가지 용어들은 수첩에 적어보고 입으로도 소리내 보았지만 이게 이렇게 간단히 말해야할 개념들인가, 하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아니 과연 저자가 이러한 개념들을 가르쳐 주고 이 개념을 기준으로 비평을 학습하라는 뜻으로 이 기사를 썼을까) 내가 알고 있는 만큼만 이해될 것이라는 무지의 전제를 배려하더라도 이건, 쫌.(이 책에 데리다가 두어번 등장하는데 내가 데리다를 모르면 도통 뭔말인지는 접수할 수 없다. 이 책은 데리다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에서 시작하는 식이 아니라 그건 데리다의 무엇이고 저건 벤야민의 무엇인데 내가 보기엔 이것이다, 식이다) 언젠가부터 트렌드가 된 신문 및 잡지 연재 기사, 칼럼이 인문학, 사회과학 서적으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출판되는 서적들에 관한 논의만 하고 싶다. 물론 소설도 카페나 계간지, 온라인 서재에 연재된 후 출판이 되고 있고 반응도 괜찮은 줄로 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소설은 처음부터 장편으로 기획된 창작물이고 어느 정도 수정이 가해지긴 하지만 집필하고 나서 시류에 맞춰 작가의 네임 밸류를 이용해 다른 장르로 왜곡, 포장, 출하하진 않는다.

   또 신문칼럼, 잡지기사, 특집토론등이 책으로 출간되는 것 자체의 출판기획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시대마다 정치성, 화제성, 의미성, 윤리성에 대한 판단은 출판기획의 몫이고 또 대중에 호소하며 유익한 책들도 있어왔다. 그런데 가끔은 원래 연재되었던 시사적 수준 이상의 과장적 수사를 적용하여 이렇듯 철학이나 인문, 문학서적으로 탄생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된 글은 철저하게 시의성을 담보로 한다. 까놓고 말해 철학 개념 정리하려고 그때 그 기사를 쓴 것은 아니라는 말씀. 예를 들어 지난 여름에 임재범이 콘서트에서 나치복장으로 카리스마를 강조해 공연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진중권은 그때 나치군복은 미학적으로 후진 퍼포먼스였다는 평가를 바로 ‘나치 코스프레의 구린 미감’이라는 제목으로 <진중권의 아이콘> 칼럼에 기재한 적이 있다.(2011.7.15) -물론 임재범 논란은 이 책에서 빠졌다. 빠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건 이런식의 주장을 연속하는 기사가 철학의 하위에 속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당시 그는 임재범의 공연미학과 공연윤리 수준을 언급하기 위해 아방가르드의 파토스와 벤야민을 인용하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얘기를 윤리적으로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하던 90년대 베네통의 얄팍한, 그러나 탁월한 사진 프로젝트처럼’ 위선적이라는 평가를 내렸고 차라리 도발이 되길 원했다면 후에 변명같은 건 안했다면 좋았겠다고 부연했다. (임재범은 예전과 달리 요즘은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한데 거기다 대고 미학적 기준을 천명할 것 까지는 없지 않았을지) 뭐 논리적으로 틀린 말도 아니고 ‘미학적’이라는 잣대로 본다면 적어도 미학전공자인 그를 반박할 여지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그도 지적했듯이 그러한 퍼포먼스가 논란을 일으킬 것을 미리 알고서 애초부터 윤리적인 알라바이를 만들어 놓았던 임재범처럼, 그 역시 한창 인기 절정이었던 임재범의 단독콘서트 시즌에 바로 뜸들이지 않고 직설적인 평가를 내린 것, 어짜피 뜨거운 감자를 손대보고 뜨겁다 말하는 것 자체가 촌스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저자의 한계만 같아서 ㅠ) 


<진중권의 아이콘- '나치 코스프레의 구린 미감'(2011.7.15) / 씨네 21 기사 中에서> 

http://www.cine21.com/do/article/columnList?menu=M551





#2. 지적인 퍼포먼스



   진중권의 아이콘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상대적 관점을 바라보는 너그러움, 정도가 될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유독 '시차적 관점'에 대한 사유를 빈번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논란이 되는 평가를 많이 해왔기 때문인지 내가 보기에 그 논리야 말로 저자자신을 지적으로 방어하는 습관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시차적 관점이 '팽팽한 긴장속에서 유지하는 새로운 사유의 습관'이라 말한다.  쉽게 말해 당신도 당신 기준 있듯이 나도 내 기준 있는데 서로 기준이 틀리다고 비난하기 보다는 각자 인정한 채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팽팽하지만 늘 새롭게.

   
 
말로 상대주의를 선언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문제는 현실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데 있다. 어떤 가치가 진정으로 중요한지 말해줄 객관적 기준없이 우리는 살기 위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선택을 대체 어떻게 정당화할수 있을까? 또 그 선택이 선택되지 않은 다른 입장들에 부당한 것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78p
 
   

 
   이 책이 내게 고민을 던진건 철학적 개념들에 대한 요약과 상관없이 바로 저자가 고민하는 상대주의적 관점의 합목적성과 그 과정의 실현이다. 어느 한쪽을 위한 상대적 관점이 아니라 그냥 상대주의 자체를 목적하는 습관, 세간에 알려진 비평가들은 애석하게도 그렇게 보인다. 나는 그가 여러 문화, 정치 현상과 대중 예술계인사들을 평하는 잣대처럼 마찬가지로 그를 평하는 다른 잣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도 모르진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내가 이해한 그의 방식은 이런 것이다. 나는 지난 시절 여성잡지에서 열페이지 걸러 심심하면 등장하던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특정한 관계가 없다’는 한 줄의 변명과 같은 수준으로 그가 ‘이 책에서 표명한 나의 주관적 견해나 주장들은 고스란히 잊어도 좋다’는 안전장치를 인식했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임재범과 타블로, 허경영, 그리고 요즘엔 양악으로 성형수술을 한 여배우들까지 그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철학개념들로 스스로 내린 평가는 ‘씨네 21’이라는 잡지속의 훌륭한 칼럼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교양철학’이거나 ‘한국현대철학’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소견을 전해 드린다. (진중권의 아이콘 연재당시의 칼럼제목은 이 책의 소제목들과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종업계의 오래된 커넥션에 의해 트렌디한 '교양철학'을 기획했고 그것을 '한국현대철학'의 하위분류에 삽입되길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잘 모아서 크리넥스 뽑듯 철학적 개념을 톡톡 추려내고 그것을 기획된 순서에 의해 소제목으로 네이밍하느라 수고한 책이다. 후편집의 승리요, 기획포장의 진화이다.

   가뜩이나 어렵다는 출판계에 찬물을 끼얹는 독자가 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이런 식의 기획출판은 출판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히 지양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가수’도 처음엔 장기침체된 음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기획되었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자신들의 음원사업 확장의 장기 프로젝트였었고 그 결과 새로운 음반 시장을 알게 모르게 죽이는 결과도 나타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새로운 소설이나 시집, 정통 인문학 서적보다는 이러한 책이 잘 선택될 시장이라는 것을 알고서 저지르는 만행이 더 얄밉고 괘씸하다. 이건 내 생각인데 온라인 서점에서도 이런 책은 장르를 따로 분류해 국내도서 > 연재 > 신문(잡지) > 칼럼(에세이) 식으로 위치시키는 게 맞다고 본다.

   그는 이 책의 목적에 대해 말하기를 "이 책이 이른바 '인식의 효소'(fermanta cognitionis), 말하자면 독자들의 머릿 속에 들어가 그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숙성시키는 효모가 되었으면 한다‘고 하였다. 미학적으로 멋지고 촌스럽게 써먹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을 보면서 요즘 출간된 책들 중에서 마찬가지로 잡지와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을 잘 묶어서 더 잘 엮어낸 책들을 찾아 보았다. 그렇다고 다음 책들을 읽어보지 않고서 무조건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소장용의 목적도 의미가 있고 또 연재로 볼 때와 한권의 책으로 넘길 땐 그 진중함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바이다.(나 역시 인문서적 추천할때 선택한 책도 있다) 그러나 김여진의 글과 김영희 PD의 인터뷰를 온라인 기사로 보는 것과 책으로 읽는 것의 차이는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니 그쪽가서 클릭 한번으로 기사를 읽어보고 책의 구입은 그 판단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듯하다. (나같은 시행착오를 방지하려면)

  


 이 책도 '한겨계 훅hook'에 연재된 특집 기사를 엮은 에세이집이다. 그래도 이 책은 사회과학>여성문화, 외에도 에세이>명사에세이로 분류하긴 했다. 하지만 진짜 에세이집으로 출간된 책들에 좀 미안한 책은 아닐까. 아래 주소에 방문해서 김여진 글만 읽어봤다. 물론 다른 분들도 있다.

(http://hook.hani.co.kr/archives/category/%ec%97%b0%ec%9e%ac%ec%b9%bc%eb%9f%bc/%eb%b0%b0%ec%9a%b4-%eb%85%80%ec%9e%90)

 

 

 

 

 이 책 역시 한겨례에 연재한 ‘한홍구 서해성의 직설’을 묶어서 엮은 책이다. 장르는 사회과학> 비평/칼럼에 위치해 있다. 뒤늦게 인터뷰를 찾아서 읽어보니 온라인에서 더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책으로 출간되니 확실히 개념서적으로 보이는 건 맞다.

(http://www.hani.co.kr/arti/SERIES/248/)



마침, 오늘 이번 달 평가단 도서로 선정이 되어 이 책은 자세히 읽고 리뷰를 남길수 있게 되었다.
(안그래도 내가 추천한 책이라 또 실망스럽다면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았는데 ㅠ 얄궂은 운명이구나 ㅋ)

 

 

 

   지적인 저자, 더 지적인 출판사, 더더 지적인 서평자들은 많다. 우린 더더더 지적인 독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쓰고나니 괜히 좋은 기획으로 탄생한 책들을 싸잡아 깎아내린 듯한 기분이 들지만, 진중권의 <아이콘>은 아이쿠였다. 헐.  아침에 트윗에서 출판계에도 '나는 꼼수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인문 MD의 글을 보았는데 대단히 공감하는 바이다. 독자들은 사실 그 속내까지 판단해가며 책을 고르기가 쉽지않다. 마케팅과 화려한 광고, 그리고 기존 네임밸류를 믿고 책을 샀다가 읽은 후라야 후회할 수 있다. 그렇게해서라도 출판이 활성화되고 책 읽는 인구가 많아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시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글쎄, 그러한 기획출판이야 말로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구린 퍼포먼스'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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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2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아이콘] 읽고 있는데, 무지 재밌네요. 짧은 한 편 한 편이 어쩜 이렇게 깔끔하게 잘 써놨는지 모르겠어요. 지적인 독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책이 제게 오지 않았나 싶네요 ㅎㅎ

한사람 2011-09-27 19:11   좋아요 0 | URL

하하, 수다쟁이님. 저 여기 있었어요 ㅋ
저도 재미는 좀 본거 같습니다 ㅠ 쬐금 속은 느낌은 들지만요~
글들이 영화잡지에 연재된 문화비평이라 철학개념서적으로 포장한건 .. 뭐 저같이 기대한 독자만 아니라면
요약집으로 꽂아둘만하구요. 그런데 저는 왜 그 개념들이 잘 기억이 안날까요 흑..

비로그인 2011-09-27 19:42   좋아요 0 | URL
ㅎㅎ 아무래도 개념을 소개해주는 책이라서 많이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겠네요. 며칠 전에는 [철학 vs 철학]을 읽는 사람을 만났는데, 진짜 대단하게 보이던걸요. 칠백쪽이 넘는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요? 하아, 소설만 읽는 소설쟁이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 '')~ 우선 이 책부터 다 읽고 나서 또 도전해봐야지요!

맥거핀 2011-09-2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네21'을 상당히 자주 보는 독자로써 한마디 하면, 진중권 씨의 그 꼭지는 거의 시사칼럼에 가까웠거든요. 말씀하신 임재범 경우만이 아니라, 당시 회자되던 문제 중 진중권 씨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 - 예를 들어 민노당의 북한에 대한 입장, 진보 진영의 통합 문제 등등 - 에 대해서 철학이라는 옷을 입힌 다음에 돌려 까는(?) 글들이 거의 대다수였는데, 이것을 괜히 기초철학 입문서 같이 포장한 거 같네요. (시사와 철학의 연결이다 보니, 그래서 뭔가 상당히 논리정연한 듯이 보이는 글들도 있었지만, 또 어떤 글은 약간 뭔가 조금 이상해보이는 글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씨네21' 사이트에서 개념의 오용이니 어쩌니 하면서 댓글 논쟁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고...물론 그런 개념 오용에 대한 논쟁은 진중권 씨만이 아닌, 다른 분들의 글에서도 흔한 논쟁이긴 합니다만..)

진중권 씨 글들을 나름 재미있게 본 저같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나름 나쁘지 않은 책입니다. 이 글들을 모아서 차분히 보고 싶다는 생각들을 했었거든요.^^; (한사람님 글을 보니, 예전에 진중권의 '이매진'도 그렇고, 차라리 그냥 글을 잡지에 게재한 순서대로 묶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한사람 2011-09-28 14:55   좋아요 0 | URL

히히, 철학 옷 입혀서 돌려깐다 ㅋㅋㅋㅋㅋ, 이 죽이는 적절성^^
이게이게 온라인 서점에선 목차가 중요하잖아요. 한눈에 구성된 목차가 씨네 21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죠.
제가 원 기사와 비교를 해보니 더 그래요. 차례도 잡지기고 순과는 상관없고(그러니 산발적으로 사건이 나오는데 뜬금없어 보이죠 ㅠ) 칼럼중에 개념용어다 싶으면 쏙 뽑아서 그걸 목차로 들이대요. 그러니 전체 구성만 보면 그럴싸해보이고 음...괜찮군 싶은거죠. 그걸 언제 다 공부하겠어요.

개념공부가 아니라 그냥 진중권 비평 관심있게 보는 독자들은 맥거핀님처럼 의미있을수도 있구요.
하지만, 다 좋은데 진짜 철학개념서적인척 홍보안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출판해도 될텐데 꼭 장르이탈(을 통한 격상? ㅋ)을 원하는 자체가 열등감의 산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ㅠ
 

 

#1. 가을 곁, 증거


  가을은,

  방황하기 썩 좋은 계절은 아니다. 성인으로 이십년 살아 오면서 내 스스로 방황하고 있다 느낀 건 늘 여름이었다. 어떤 조짐이 보이는 건 약 오월 무렵 부터이고 한여름이 되면 뜨거워진 태양만큼이나 방황하는 깊이도 커지곤 했다.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하는 건 추석이 지나 찬바람이라는 가을이 피부로 체감될 때, 두어장 남은 달력을 넘겨보며 한해의 이익과 손실을 따져보게 되는 시기. 바로 시월이 오기 전, 이 무렵 부터인 것이다.


  같은 무렵,

  여자들은 필히 자신들의 노화 정도를 체감하게 되는데 주로 탈모, 피부처짐, 소화불량, 불면증등을 호소하게 된다. 이때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감기와 몸살에 시달리고 몸이 좀 나아진 후 여행이라도 가볼라치면 반드시 겨울이 눈앞에 닥쳐와 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준비없이 시간에 이끌려 관성대로 두어 개의 모임에 참석하고 나면 한해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 나이들면서 점점 느끼는 것이지만 한 계절을 무사히 그러고도 알차게 통과한다는 건 결코 쉽거나 작은 일이 아니다. 더불어 앞으로 계절이 중년에 축복이 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을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인간은, 여자는 지나간 계절을 회상한다. 가을은 증상으로 여자의 노화를 유발한다.


  자주,

  발견되는 증상으로 흘러간 가요를 찾아 자꾸 듣게 된다는 것, 가사를 확인하고 새삼 몇 구절에 맞장구를 친다는 것. (나는 오늘 무도를 접고 불후의 명곡을 보았다.) 지금 그 사람은 어디에서 무얼 할까, 나 없이도 잘 살아갈까... 이런 류의 가사는 유독 전기고문처럼 가을의 일상을 내버려두지 못한다. 나의 첫사랑은 얼마 전 스마트폰의 프로필 사진을 변경했다. 사람들은 어떨 때 프로필 사진을 변경할까. 내 경운 하나의 사진에 꽂히면 그 사이트가 폐쇄될 때까지 프로필 사진 같은 건 잘 안 건드리는 쪽인데. 또 내가 아는 남자들은 사진같은 걸 자주 변경하고 꾸미는 세심함 같은 게 없는 사람이 많은지라 그가 멀쩡한 자신의 얼굴에서 그냥 바닷가 같은 사진으로 바꾸어 놓은 게 나는 자꾸 걸리는 것이다. 아무래도 정면 사진은 보다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하는 증거일 것이고 자연환경은 자신보다 메타포적이니까. 예를들면 떠나고 싶다거나, 자유가 그립다거나, 나는 사라졌다거나 뭐 이런. 그래 어쩜 그도 방황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야무진 추측을 해보곤 폰을 던져버렸지만.



#2. 서점 옆, 영화관


   한 달에 한번은 직접 걸음으로 서점엘 가는 것 같다. 서점에 가보면 온라인에서와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는 걸 실감한다. 확실히, 사람들은 가을에 책을 안 읽는다. 텅텅빈 서점에서 나는 방황할 수 없겠다는 실망감이 들었다. 정신은 여름보다 더 뚜렷하고 그래서 어디론가 도망가거나 떠나고 싶거나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나질 않는다. <도가니>의 개봉에 맞춰 현재 소설베스트는 도가니였고, 약 삼년 째 2,3위는 <엄마를 부탁해>이다. 지겹고 신물이 난다. 언제까지 공지영과 신경숙만이 소설을 지배하는 서점이 되어야 하는 걸까. 유재석과 강호동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이승철과 이문세도. 김건모와 신승훈도. 이들의 공통점은 한 시절이 십년은 간다는 것인데 그럼 앞으로 몇년은 더 공지영, 신경숙이어야 하지 않나. 제길.

 

 
<컨테이젼 -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  맷 데이먼, 기네스 팰트로, 캐이트 윈슬럿, 주드 로, 마리옹 꼬띠아르>


   울 동네는 운좋게도 서점과 영화관이 같은 건물에 있다. 아이와 함께 <도가니>를 볼 수 없어 <컨테이젼>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우린, 충격을 머금고 영화관을 나왔다. 장르와 소재가 전혀 다른 영화였지만 지난번 <혹성탈출>의 마지막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제 미국은 누구를 대놓고 비판하고 자기들을 치켜세우기 보다는 다같이 구별없이 인간임을 반성하자는 것이구나. 그러니까 세상이 이렇게 된건 자기들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이구나, 싶었다. 늘 그렇듯 그들은 영리하다. 이데올로기나 경제, 테러, 환경 등 모든 문제를 따져보기 전에 그 모든 것은 우리 다같은 인간들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근본주의,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영화는 과도하지 않으면서 진중한 메시지를 남겼다. 스티븐 잡스와도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맷 데이먼, 주드 로, 케이트 윈슬럿, 기네스 팰트로같은 흥행배우들을 데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색다른 영화를 연출했다. 시간상 오래 견딘건(?) 맷 데이먼 이었지만 그의 연기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외려 평이해 보였달까. 나는 이들 주연배우들을 보면서 새삼 내가 살아온 그간의 세월을 느꼈다. 약 십년 전 맷 데이먼, 주드 로, 기네스 팰트로는 <리플리, 2000>라는 영화에서 이미 삼각관계로 출연한 바 있다. 그땐 그들도 한창 팽팽했었는데 어느덧 나처럼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있더라는 것. 그들 중 그런대로 가장 원형을 보존(?)하고 있던 배우는 주드 로였고 솔직히 캐이트 윈슬럿은 이토록 연기파로 성장할지는 몰랐었다.  

 


<리플리 - 안소니 밍겔라 감독, 2000 / 맷 데이먼, 기네스 팰트로, 주드 로>


   <컨테이전, Contagion, 2011>은 말 그대로 전염을 뜻하는 의학 스릴러 영화이다. 신종 플루처럼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은 죽어나간다. 내용상 소재가 전개되는 모습은 재난장르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재난형 블록버스터나 SF적 서사를 표방하진 않았다. 비슷한 류의 바이러스 의학 영화의 경우 대개 미국식 영웅주의를 결말로 내비치거나 가족의 의미, 사랑의 복원등 인간성 및 가치중심주의로 회기하는 패턴인 것에 비해 상당히 바이러스를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한 영화이다. 교육적으로 본다면 구성주의적이고 서사적으로 본다면 열린 결말에 가깝다. 한마디로 문제해결이 아닌 의제 제시형 컨텐츠에 해당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가 아닌,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이런 영화를 가지고 대개 평하는 자들은 감독의 주제의식이 높다, 이렇게 말하던가.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 이튿날, 그러니까 최초 감염자가 전염된 다음 날인 D-2 번째 날부터 영화가 시작되고 라스트에 D-1, 그 첫째 날이 역으로 공개된다. 기네스 팰트로가 왜 어디서 어떠한 경로로 감염이 되었는지 마지막에 제시되는데 이 마지막 장면이 미치도록 뇌리에 남는다. 러닝타임으로 보았을때 기네스 팰트로는 그리 많이 등장하지도 않는데 생각나는 건 온통 그 여자가 나오는 장면이 거의 지배적이다. (이런걸 밝히는 걸 스포일러라고 하던데 영화로 확인하시기 바란다. 기네스 팰트로 때문에 나는 구역질이 나올 뻔 했고 죽어도 부검은 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ㅠ)

   내가 이 영화에서 느낀 게 있다면 그건 치명적 바이러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위기상황에서의 인간이 행하게 되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이다. 감독이 마음에 들었던 건 등장하는 인물마다 교묘하게 해당직업, 놓인 위치에 따라 극한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자기중심 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관객에게 그 정당성을 질문했기 때문이다. 눈에 띄던 인물은 유명 블로거로서 음모론 같은 걸 제기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주드 로였다. 그는 바이러스로 숨진 최초 피해자를 취재한 사람이었고 백신이 개발되기까지 소위 말하는 민간요법으로 효과를 보았다고 블로그에 게시하여 떼돈을 벌게 된다. 정부와 보건당국, 제약회사간의 이권을 둘러싼 꼼수를 고발하고 자신이 사회정의를 위해 취재를 하고 있다는 식의 인터뷰를 자행한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는 병이 걸리지도 않은 자신의 몸에 개나리즙이라는 요법으로 효과를 보았다고 국민 대 사기를 친 인물이었고 나중에 이미 번 떼돈으로 보석금을 내고 당당히 석방이 된다. 처음엔 그도 정의감 불타는 저널리즘 정신으로 개인취재를 하던 블로거였지만 유명 인기 블로거가 되고 보니 자신의 말 한마디가 법전처럼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선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현상과 인터넷을 통해 사회학적 바이러스가 유포되는 것을 동격화 한다. 정의감이라는 것도 결국 나르시시즘이라는 바이러스에 얼마든지 빠져들 수 있는 면역력 약한 인간의 심리에 불과했던 것일까. 이 작품에선 신기하게도 이렇게 사회나 국가를 위해 정의롭기 보다는 오로지 개인 자신만을 위해 정의롭던 사람들만 살아남는다. 누구보다 그 위선을 경쟁력 삼아 바이러스 가득한 이 사회를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특별히 선하지도 남달리 악하지도 않은 필요에 따라 자기위선과 자기기만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죽기직전까지 알량하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은 참 사소하고 애처롭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을 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슬펐다. 이야기는 실종되고 문제의식만 남았다. 가을도 그렇지않나. 계절은 사라지고 언제나 고독만 남는것.



#3. 방황 후, 시작


   고로, 나는 방황한다.

   적어도 아직은 방황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지금 방황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사실 괴롭거나 우울하지는 않다. 나는 언젠간 이 시기를 작별할 것이고 다시 세상과 조우하는 날을 맞이 할 것이다. 아마 내가 방황을 끝낼 시점엔 이렇게 팔자좋게 글이나 쓰고 있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많이 알지 못하는 친구 하나는 아침방송 보며 커피마시는 호사를 누리는 주부들이 제일로 부럽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런 주부들이 되기 싫어 사실 아침에 TV를 켜지는 않는 주부였다. 스마트폰에 내 소개가 ‘가장 얇은 단위의 인연의 끈’이라고 되어 있다는데 학습지 선생님은 나더러 혹시 책을 많이 읽으시냐고, 시집이나 아니면 특이한 책을 많이 읽으시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이 상당히 모욕적이었지만(선생님은 나 기분나쁘라고 한 질문이 아니지만 ㅠ, 나는 보기와 달리 책을 많이 읽으시는 군요 식의 평가가 미치도록 안듣고 싶었던 이중인격의 소유자이므로) 아,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묻기만 했다. 자존심이 센 것이랑 자존감이 높은 건 다른 문제인데 말이다. 괜한 일로, 사소한 한마디로 하루를 고민하기 싫어 나는 그 질문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내 방황의 핵심에 그 '보기와 달리'는 어엿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다. 나는 어딜 가서 혹은 누군가가 책 많이 읽냐는 말이 왜 이리 싫은 걸까. 나는 정말이지, 책 좀 읽고 글 좀 쓴다는 말이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생애 지독한 욕처럼 들린다. 내가 그들 한테 책 사달라고 한 적 없으며 내 글 읽어 달라 한 적 없는데. 풋, 이런 막되먹은 식의 자기방어 논리를 갖다 붙이고 싶어진다. 모든 건 현재, 내가 방황하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싶다.

   서점에서 어떤 책을 펼쳤는데 거기 내 폐부를 정통으로 찌르는 말이 적혀 있었다. 심리학 책이었는데 사람들은 칭찬하는 사람보다 비판하는 사람을 더 지적이고 똑똑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하필 예로 서평을 들었는데 어떤 책이 좋다고 하는 사람보다는 그 책과 작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에게 호감은 덜 느끼지만 그 작자가 훨씬 더 유능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느낀다는 연구결과. 하하하. 그러니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호감도는 낮더라도 능력있게 보이고 싶으면 누군가를, 무슨 책을, 이 사회를 실컷 비난하라는 말씀. 그 챕터를 읽고 나는 그 책을 사고 싶지 않아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서가를 한참 방황했다.



   그러곤 그냥 본능적으로 방황스런 책을 집어 들었다. 내가 가장 못 견디는 것은 결국 사고 싶었던 옷을 그 옷을 입는 것과는 별개로 사고 만다는 것과 같은 이치로 나는 어떠한 책을 본능에 못 이겨 사고 만다는 것이다.  알라딘의 할인, 적립금같은 걸 포기하고 나는 그냥 제 값을 내고 말 때가 한달에 한번은 꼭 무슨 생리하듯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소설이 매우 싫어졌다. 대중소설에선 스토리에 대한 갈증을 못 느끼고 본격문학에선 난해함의 이성에 도무지 감성이 동하질 않는다. 시집에선 관념을 해체시키는 방식들이 지겹고 젊은 작가들의 말장난도 역겹다.(이것을 언어의 유희라고 할 너그러운 가슴이 아니시다, 지금은) 그렇다고 나이든 작가의 선 굵은 서사가 뭐 애국할 일 있다고 예전처럼 와 닿지도 않는다. 트렌디한 신문이나 잡지 연재 모음집은 읽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빤한 정치서적들은 그들의 정의로운 위선이 내 선량한 존경심을 방해한다. 그래서 아무런 의도없이 내가 알지 못하는, 내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나만 조용히 알고 싶은 책들을 찾게 된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보물찾기라도 하듯 나는 서점에서 아무도 찾으라 한적 없는 책들을 찾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 사실, 진중권의 <아이콘>을 읽으며 약간 실망을 했다. 이 분은 참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하는 범상치 않은 재주를 가지셨구나. 나는 그냥 무거운 것들은 무거운게 좋다.)

   그래, 나는 사실 조금은 더 방황하고 싶다. 가을에 자꾸 무언가를 계획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어제 이승철이 오래 간만에 뼈있는 한마디를 하더라. 언제든지 대중의 껌이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사실 지난 시절, 오랜 세월동안 자타공인 달콤 쌉싸름한 껌이 되어온 그가 그렇게 씹어 대온 대중들에게 던지는 공개적인 대답이기도 했다. 그의 젊은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고 마약, 이혼같은 음악인으로서 진부한 개인사로 잊어먹을라 하면 구설수에 오르곤 했었지. 그의 노래에도 '방황'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내가 대학생 때였던가. ‘파란 넥타이, 줄무늬 팬티, 그것만이 전부는 아냐’ 뭐 대충 이런 가사가 생각난다. ‘어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하던 구절도. 사랑을 찾아 떠난 것도 방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십 년전에 사랑을 찾아 헤매는 방황을 노래하는 가수였다.

  그런데 살아보니 사랑을 찾아 헤메는 건 방황은 아닌 것 같다.

  방황은,

  방황은, 자기 자신을 찾을 때라야, 대체 어디있는 건지 자신을 찾아 떠날 때라야 방황답다는 결론이다. 나는 내 실체, 내 본질, 내 진실 이런 것들과 매일을 싸우고 견디느라 이 방황의 시간이 바쁜 사람에 속한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이제 내 방황의 내용이 아니고 그것의 종결 시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쩌면 내가 멈추고 싶은 것은 방황이 아니고 방황의 인식, 마무리, 그로 인한 또다른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더 방황하고 싶다. 나는 정신을 좀 똑바로 차린 채로 방황을 이어나가고 싶은데 이 책은 ‘정신차린 방황’을 선호하는 나의 의지와 잘 맞아 떨어진다. 나는 이제 불확실한 삶이 가장 두렵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 꽤 영악한 방황기술자가 된 것은 아닐까.


   
 
방황의 기술이 안전지대를 박차고 나와 경계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죽음과의 만남도 반드시 그에 포함될 것이다. 죽음은 납득할수 없는 우리 인생의 경계다. 죽음은 삶을 경솔하게 낭비하지 말라고 외치는, 삶을 존중하라고 호소하는 비밀이다. 그 비밀로 혼란에 빠져보자. 바로 지금. 모든 순간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을, 모든 순간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기회라는 것을 명심하자. ‘늙는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건 굳이 늙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지금부터 시작하자.    -215p
 
   


   방황을 정신차리고 똑바로 제대로 기술적으로 시도하라는 건 사실 방황을 하지 말라는 뜻과도 통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그건 방황이 아닐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웃기기 위한 방법으로 사람을 울리거나 공부하지 말라고 하면서 공부하게 하는 류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방황을 그만두려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방황을 더 깊게 하고 싶어서라 반박하고 싶다. 올 가을엔 더. 제대로. 그건 어쩌면 방황을 끝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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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9-25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처음에 포스터만 보고는 이 영화 주연배우들 모으느라고 돈 좀 썼겠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한사람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영화가 급 땡기네요. 소더버그 감독이라면, 오션스 시리즈나 트래픽 같은데서, 여러 배우 떼거리로 나오는 이야기를 솜씨좋게 비벼내던 능력이 있으니, 일단 기본은 할 거 같은데 말이죠.^^ 형이상학적인 바이러스가 등장하는 영화라..도대체 어떤 식의 영화일지 짐작이 잘 안갑니다. (그리고, 혹시 방황이 끝나시더라도, 글은 계속 써주시면 참 감사할 것 같다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ㅋ)

한사람 2011-09-25 12:28   좋아요 0 | URL

예, 전 무심코 보았는데 나중에 기억해보니 '더 자켓'이라는 영화가 기억나더라구요.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감독으로 기억해요. 오션스 일레븐도 기억나고. 맥거핀님 말씀 처럼 떼거지 영화로서 어느 누구에게 촛점을 맞춘 연출보다는 모두 모아서 사회적 문제를 던지는 성향이 많은 것 같네요. 형이상학적 바이러스는 그냥 제 생각이고요. 주드 로가 계속 혼자서 취재를 하고 다니는데 감독은 정부의 거짓말이나 블로거의 거짓말이나 층위만 다를뿐 우리는 보도된 진실만을 비판할수 있다, 뭐 그런 메시지를 던진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그 적당한 위선과 거짓이야 말로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나가는 항체라고 말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ㅠ

전반적으로 저는 추천할 만했습니다~ 제가 워낙 영화보고는 아니다, 그런 말 안해요 ㅋㅋ
예전엔 책보다 영화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책으로 턴하면서 영화보면서 자꾸 문학적 분석을 하려는 제 자신이 싫습니다. 그냥 즐기지를 못하는게 아쉬워요. 그래서인지 저는 시각적 효과 화려한 영화보다는 이런 질문형 영화가 좋아요^^

글이야 뭐~ 하하, 그런 말 들으면 제가 감사하고 뭉클하고 해야 하는데
그런 소리 들을 자격있나, 뭐 그런 또 시답지 않은 자기검열로 들어가네요..병입니다 ㅠ

노이에자이트 2011-09-2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나니 한사람 님이 가까이 있다면 왁스의 '여정'을 불러드리고 싶군요.이 노래 아시죠?

한사람 2011-09-25 23:30   좋아요 0 | URL

잘 기억이 안나서 찾아서 들어보았어요..
가을과, 여자와 잘 어울리더군요.
안그래도 어제 오늘 거의 지나간 노래들과 시간을 보내네요 ㅋ

고마와요. 근데 왁스는 요즘 보기 힘들죠. 나가수 같은데 안나오나 ㅠ

노이에자이트 2011-09-25 23:45   좋아요 0 | URL
왁스 노래 괜찮은 게 많죠.10대 부터 40대까지 팬도 다양하고...'여정'은 제 애창곡이죠.

2011-09-25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5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봄만 되면 한국을 떠나던 이모가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꽃이 피는 게 그렇게 싫더랍니다. 만물이 소생하는데 자신만 그대로인 것 같다구요. 이모는 봄만 되면 엄마에게 통장을 맡기고 만약 내가 비행기 타고 가다 사고가 나서 죽게 되면 이 통장은 언니가 다 가져라, 하며 훌훌 떠나곤 했습니다. 별소릴 다한다, 니 죽고 나면 내도 살 수 있을 거 같나, 저는 옆에서 어렴풋이 그렇게 들었습니다. 엄마는 유난히도 형제들 중 그 이모에게 각별했습니다. 이모는 남편따라 미국에서 삼십여년 외롭게 사셨어요. 이모부는 한국에 돌아와 승승장구했습니다. 아주 높은 고위직까지 승진하며 신문에도 자주 나더군요. 이모는 엄마에게 많이 의지했던거 같아요. 이모는 돈이 많았습니다. 내 어머닌 그렇지 않았구요.

   언젠가 이모는 자기가 어렸을 때 엄마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이야기해 주셨어요. 엄마는 그 시절 양재학원의 원장이었는데 학생들이 수강비라고 돈을 서랍에 놔두고 가면 자신에게 마음껏 쓰라고 하셨대요. 기쁜 마음에 서랍을 열어보면 지폐가 수두룩했고 엄마는 얼마를 빼내가도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나요. 아예, 돈이 얼마나 있는지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대요. 이모는 그 돈을 가져가면서 훗날 자신이 돈을 벌면 언니에게 꼭 갚을거라고 다짐했대요. 그렇게 수차례 빼내간 돈을 갚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하셨죠.

   이모는 마음이 많이 아픈 분이었는데 소위말하는 정신과 병동에서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던 분이었어요. 일종의 피해망상증, 우울증이 깊어 주변 누구와도 대화를 이어가기 힘든 분이었습니다. 이모는 명절이면 자신의 집에 배달되어온 고가의 선물을 모조리 엄마에게 가져다 주셨어요. 어떤 상자는 명함이 떼어지지 않은 채로 우리집으로 배달된 것도 있었죠. 항상 가락동 시장 단골집에서 최상품의 과일만 사다가 직접 가져다 주셨어요. 형부와 저 말고 언니 꼭 먹으라구요. 엄마는 그걸 아꼈다가 저와 손자 주신다며 챙겨주셨지만요.

  아이는 그 이모를 '과일할머니'라 불렀어요. 정말로 맛난 과일만 사다 주셨으니까요.
  오늘아침, 아이가 뜬금없이 과일할머니 보고 싶다, 하는 것이었어요. 추석이 낼모레이고 마트에 가면 과일들이 많으니까 아마 과일 생각이 났나봐요. 그런데 아이는 말했어요.

  " 엄마, 나는 태어나서 과일할머니가 사준 과일만큼 맛있는 걸 먹어본 적이 없는 거 같아. 요즘 과일은 왜 맛이 없어? "

  그러게요. 과일이 정말 맛이 없어졌습니다. 우리 땐 한여름 은쟁반에 큼지막하게 잘라먹던 수박도 참 맛있었고 복숭아도 향이 그득했고 배도 참 달콤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비싸기만 하고 그때만큼 맛나고 싱싱한 과일을 만나기 참 힘들죠. 우리가 입맛 수준이 높아진 건지 과일이 맛이 없어진 건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과일을 건네던 서로의 정이 사라져서 그런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이모를 생각하면 맛난 과일에 이모의 사랑까지 곁들여 입으로 들어간 것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아이가 사라지자 눈물이 나네요.

   엄마는 이모와 같은 날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운전자였던 이모를 따라서 차에서 내리지 않은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모를 많이도 원망했어요. 사고를 낸 운전자보다 운전을 한 이모를 더 미워했습니다. 엄마는 의심없이 저를 버리고 이모를 따라간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좀 알 것도 같습니다. 만약 이모 혼자서 가는 길이었다면 얼마나 외로왔을까 하구요.  하루에 사십명 넘어 자살을 하고 칠백명 넘게 사망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런 기사를 보면 내 차례는 언제일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죽는게 무섭다기 보다는 죽을때 혼자 있을까봐 두려워요. 엄마는 참 멋진 분이셨죠. 저는 그런 언니가 없지만요. 오늘은 그런 언니를 가진 이모가 참 보고 싶습니다. 추석이 되면 맛난 과일과 선물 꾸러미를 가득 가져다 주시던 과일할머니, 그 모습 그대로요. 웃기죠? 과일이 보고 싶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부모님이 없는 추석이 벌써 다섯 번째네요.
   그땐 몰랐는데 명절이라는 것이 결국 부모님과 한 가족임을 나는 그 속에서 안온한 존재임을 재차 확인하는 인증식 같은 거 라는 생각입니다. 차례상 차리는게 귀찮고 찾아 뵙고 돌아오는 것이 고단하고 친척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시간들이지만 돌아보니 나는 그 속에서 그들속에서 어제도 추억하고 내일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올해는 산소에 가지 못할 듯 하네요. 너무 먼 곳이라 일년에 한번 가기가 힘듭니다. 실은 지금 제 꼴이 형편없어서 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좀 쓸쓸합니다. 추석이 외로운 분들은 그 외로움을 벗삼아 추석을 견디지요. 어느 통계조사에 보니 며느리들이 보기 싫은 사람은 시부모가 아니고 시누이 부부와 형님과 동서네라고 해요. 시부모야 어짜피 감당해야 할 몫으로 여기지만 옵션으로(?) 붙어오는 시누이네와 형님, 동서네는 경쟁구도속에서 삶 자체가 비교화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남자들은 밥상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언제나 우아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데 여자들은 부엌에서 꼭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요. 그러면서 웃고 떠들다가도 집에 돌아갈 때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죠, 하하. 갑자기 효녀 시누이와 엄청 바쁜 동서도 생각이 나네요.

   사는게 참 여러 과일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떨 땐 겉은 빨갛지만 속은 하얀 사과같기도 하고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수박같기도 하고 조그만 알알이 모여 한 송이 기쁨이 생기는 포도 같기도 하고.

   아주 예쁘고 토실토실한 복숭아를 가져와 접시에 단정하게 껍질을 벗기고 한입 크기로 잘라 입에 넣어주시던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앞치마에 사과를 쓱쓱 닦아서 윤이나는 껍질채로 한입 베어 물고는 아 맛있다며 먹어보라던 이모를 생각해요. 홍시를 좋아라 하시던 할머니도 생각납니다. 단감을 좋아하던 아버지, 그렇게 대추만 골라먹던 사촌동생도 기억나요.

   예, 저는 딸기를 좋아했는데 항상 명절땐 딸기철이 아니어서 별로 과일에 관심이 없었죠. 아주 어렸을때 그땐 제철이 아니면 과일을 먹지 못할 때, 한 겨울이었는데 리어카에서 딸기를 파는 겁니다. 엄마에게 떼를 쓰며 사달라고 울면서 버텼더니 오백원인가 주고 사주셨어요. 집에가서 먹어보고 다 뱉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옆에 있던 바나나를 사달라할 걸 그러면서요.

   얼굴도 이름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모르지만
   저를 알고 제 글을 알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이 물컹한 과일같은 마음을 전합니다. 혹시나 서재일로 저때문에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면 그 분들에게도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글을 쓸 때는 억하심정이 있어 그러는게 아니지만 읽다보면 꼭 내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바람같은 면도날이 스치우죠. 하지만 제가 그랬듯 일시적인 서운함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지 이곳은 얼굴보고 털어버릴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그대로 굳어버리는 것이 안따까울 뿐이죠. 예전에 돈 좀 있을 땐 겉치례로 과일이고 굴비고 김이고 멸치고 한과같은 선물도 많이 보내드렸는데 지금은 그저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알게 모르게 마음으로 힘이 되던 분들이 생각나서요. 그래도 마음 하나라는 거 그게 이렇게 울컥하고 소중한 건지 몰랐습니다.

   추석 연휴 예쁘게들 지내시라구요. 혹시 저처럼 부모님 안계시거나 누구 그리운 사람이 간절한 분들에게 용기와 위로도 전합니다. 달보고 소원 비실 거 같으면 소원 생각하다가 갑자기 옛날 생각나서 훌쩍거리지 않기로 해요. 달려가 손수건이라도 드리지 못하니 그저 남몰래 숨어서 구경하기로 합시다.  

  이번 달은 아주 커다랗고 깊은 호수였으면 좋겠어요. 보고 싶은 얼굴들이 거울처럼 비추어 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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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9-1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이모저모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래 아이리시스님과의 댓글 읽었고, 아마 심정적으로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허탈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결론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저와 친한 다른 알라디너에 대한 걱정 때문입니다.
또한 알라딘 서재에는 다른 의견도 존재하기 때문이고 평지풍파없이 조용한 것을 선호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지쳤지만, 친한 분들 중 이번 일로 굉장히 힘들어하시면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그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서재 폐쇄를 먼저 고려한 점이 너무 큰 파장을 불러왔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저 역시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다른 문제 해결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로 인해 한사람님과의 대화 즐거웠습니다. 제 과일같은 마음도 전합니다.

즐거운 추석 되시기 바랍니다. 종종 뵐게요.

한사람 2011-09-10 00:40   좋아요 0 | URL

어휴..제가 좀 오늘 잔일이 많았는데(하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바쁘네요 ㅋ) 답이 늦었죠.
벌써 하루가 흘렀네요. 모든 건 지나간다고 시간이 약입니다. 모두들 법적이고 냉철하고 온라인에서 공개글 쓸때 어느 정도 비난이나 혹은 예상치 못한 앞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거..왜 모르겠어요. 커뮤니티 일이년 한분들도 아니고. 블로그 한두번 접어봤나요 ㅋ. 이번 일같은 경우 대개 운영측보다는 이용자쪽의 관리문제로 귀결될거 뻔하죠.

예, 저는 원칙이나 관례, 그런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을때 사소하더라도 피해본 사람이 있다면 다같이 위로해주고 이해해주고 한번쯤 피해본 당사자(설령 그 피해가 웃겨보여도) 입장에서 토닥여주는 분위기가 아쉬워요. 남들에겐 먼지같은 상처도 내게는 우주 같은거 잖아요. 저도 그리 살갑게 선뜻 위로하는 편은 못되지만 ..가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특히 필요 이상으로 이성적인 분들 자주 보는거 같습니다. 9시 뉴스 피해자 명단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지만.. 그게 아니더라구요. 저는 쿨하지 못해서 그런지..마고님이 받아본 댓글 같은거 억울하고 분해서 그냥 아무말 안하고 자폭했을 겁니다. ㅋ

그리고 이곳에선 말 한마디가 거의 모든 표시니까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 맞고, 다 이해합니다..

그치만 마음은 쓸쓸합니다..

마녀고양이님도 추석때 가족들과 많은 정 나누어요^^

2011-09-10 14: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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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1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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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0 0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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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1-09-0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추석 ,되어요. 히히.
 

한사람 2011-09-10 00:46   좋아요 0 | URL

앗, 준님!
중요한 순간에 짠~ 정말 고마워요^^ 하하. (따라해 본거여요 ㅋ)

라주미힌 2011-09-0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 잘 보네세요 ㅎ.
뭉클하네요 .

한사람 2011-09-10 00:47   좋아요 0 | URL

어멋, 라주미힌님.
오년전에 뵈었으면 제가 좀 발랄했을텐데요 ㅠ
맘 편한 추석 되시길요, 고맙습니다!

조선인 2011-09-0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난주 미리 어머니 납골당 다녀왔어요. 벌써 7년인데, 아직도 눈물이 쏟아져요...
한가위 잘 보내시길...

한사람 2011-09-10 00:49   좋아요 0 | URL

저는 엄마가 2007년에 떠났어요. 그래도 다녀오셨네요. 아직도라뇨..
세월이 가면 더하는거 같은걸요..
사무친다는게..그런 그리움이라는게 어떤 건지 말로 다 못하는 보고픔이 어떤건지
차마, 입으로도 못 꺼내요 ㅠ

조선인님도 건강하고 가족들과 훈훈한 명절 보내세요!, 고마워요~

2011-09-09 15: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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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0 0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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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0 0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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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0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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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0 17: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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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15: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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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0 0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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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9-0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잘 보내요.^^

한사람 2011-09-10 01:14   좋아요 0 | URL

예, 스텔라님도요. 100일 프로젝트 끝나고 좀 여유로와 지셨나요?
제 기억으론 이 맘때가 생일이셔야 하는거 같은데..

또 맘 뿐이네요.. 명절과 생일 모두 훈훈하고 또 풍성한 연휴 되길 바랍니다^^

oren 2011-09-0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짜안~ 하네요.

추석때 마다 '부모님' 모두 살아 계셨던 그 시간들이 얼마만큼 소중했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에 얼마만큼 안타까운 시간들이었는지 그 누군가는 알테고, 또 그 누군가는 아직도 잘 모를 테지요. 저도 올해 추석부터는 '아버님'을 뵐 수가 없답니다. 물론 성묘를 가면 고향의 산자락에 고요히 잠들어 계신 아버님을 뵐 순 있겠지만 말입니다.

올해 추석엔, 둥근 보름달을 올려다 보며 '어느 사이에' 우리 곁을 훌쩍 떠나가신 소중했던 많은 분들을 다시금 떠올려 보고, 그 분들께 마음 속 깊이 감사하는 시간들을 가져보고 싶네요. 눈물 흘리지 않고 말입니다.


한사람 2011-09-10 01:19   좋아요 0 | URL

예..저는 조금 알고 있는 그 누군가에 속하네요..
아버님이 올해 돌아가셨으면 올 추석때 너무나 많이 그리우실 듯 합니다.
저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첫 추석때 친척들이 우르르 집에 왔을때 저도 모르게 그 속에 아버지가 없다는 현실감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구요. 사람들 앞에서요.. 명절땐 더 집에서 아버지 존재에 대한 상실감이 큰 거 같아요. TV를 봐도 어르신만 나오면 눈물이 나던걸요 ㅠ

아버님 편안히..그곳에서 영면하셨으면 합니다. 또 oren님도 그 슬픔을 더 굳건한 에너지로 빚게할
따스한 시간들 가지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1-09-09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0 0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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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0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애잔한 추억과 더불어 뭉클하고 울컥하네요.
중년이 되면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자각도 해야 되나 봐요.
부모님은 안 계셔도 정다운 얼굴들 만나는 즐거운 명절 지내시기를...

한사람 2011-09-10 01:4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제가 자주 못가지만
언제나 반가워요 ㅋ

추석도 어느덧 인생의 추억으로 말할 나이가 되었네요..
저는 지난 여름 끝내 친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원피스는 아직 걸려있어요.
연락을 안하고 다시 떠난 거 같습니다.

순오기님도 명절 연휴에 바쁘실텐데,
건강하고 또 맘편하고, 풍성한 시간 되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1-09-0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휴 때 비 온다던데 안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비가 와도 보름달이 또렷하게 뜨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요.
아무래도 비구름 때문에 올해 추석에는 달을 못 볼거 같아요.. -_-;;
그래도 연휴이니만큼 즐겁게 보내야겠죠 ㅎㅎ 한사람님도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

한사람 2011-09-10 01:4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비 소식을 들었는데..
일년에 달 보는 날이 얼마나 된다고 꼭 그날 비가 와야 하는지 하늘에 묻고 싶네요 ㅠ

아마 비구름 사이로 슬며시 흐릿하게나마 간절히 보고픈 사람들에게만 보여주지 싶은데요
시루스님은 어떤 소원을 빌지 궁금하네요

명절때 맛난 음식 먹고 책도 짬짬이 읽고 또 뒹굴기도 하고(무도 팬이라 했죠?)
영화도 보고, 그렇게 맘 편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래요^^

(여자친구 없어요? ㅋ)

2011-09-10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1 07: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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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流男兒 2011-09-10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지막이 알게된 요즘의 일에, 그냥 궁금하여 돌다돌다 왔습니다.
평소같으면 조용히 읽고 갈텐데, 오늘은 그래도 추석이니까 인사는 하고 가고싶네요.

추석 잘 보내세요 ^^

한사람 2011-09-11 07:2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저 이 닉네임이 어디서 한번 본것 같아...
제 기억을 더듬어 보았더니
<분노하라> 댓글의 주인공 이셨어요 ㅋㅋ

인사해주셔서, 아는 척 해주셔서 제가 고마워요
남자들도 명절이 마냥 편한것만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이번엔 어떤 갈등이 생길까..
나중에 뭔소리를 들을까.. 후유증이 꼭 다음 명절인 설때까지 ㅋㅋ 가기 때문에
그저 이쪽 저쪽 아무 일 없기를, 달보고 빈다고 하던걸요ㅠ.ㅠ

이번 추석엔 부모님하고 눈 한번 맞추어 보는 어색한(?) 사랑교환 한번 해보세요.

건강 가득 하시길요^^

2011-09-11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4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추천의 의미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저는 이 곳에 당분간 적을 둘 생각이기에 평소 생각하던 문제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오늘 제가 이야기 나누고픈 주제는 ‘추천’입니다. 바로 이곳 알라딘에서 추천을 받는다는 의미와 추천을 한다는 의미에 대해 주제넘지만 의견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어제 ‘알라딘의 정체성 탐구하기’라는 페이퍼에 알라딘에서의 추천이 가지는 의미를 적었습니다.

   
 
당신 글에 감동했다는 ‘공감’도 되고 당신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도 되고 이 글을 다른 사람도 읽었으면 좋겠다는 진정한 ‘추천’의 의미도 되지만 알라딘에서의 추천은 다른 곳에 비해 ‘동의’라는 의사표현일 경우가 많다는 것. 추천이라는 기표가 동의라는 기의를 가진다는 것은 여론형성에 있어 중요한 잣대입니다. 저는 그래서 알라딘이 치밀하고 정치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페이퍼를 쓴 직후 ‘추천’이라는 기표가 마치 (서재 내에서 일어나는)찬반토론의 의견을 수렴, 반영하고 급기야 여론의 역할을 수행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2, 추천의 문제

   지금부터,

   마녀고양이님과 하이드님에게 먼저 죄송하다는 공개사과를 드리고 이 글을 적어보려 합니다. 두 분은 제가 알라딘 운영과 관련한 개인적 의견을 제시하는 페이퍼에 두 분의 닉네임이 거론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실 수 있으나 이 건은 A와 B분이라고 언급하는 것이 더 웃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두 분께서 페이퍼를 올린 것에 어떠한 오류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알라딘의 운영상 보완점을 제시하려는 것이니까요.(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여기서 마녀고양이님의 페이퍼에 추천한 숫자(위)와 하이드님의 페이퍼에 추천한 숫자(아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마녀고양이님의 글엔 덧글이 많은데 그보다 많은 추천수를 기록한 하이드님의 글엔 덧글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마녀고양이님의 글엔 위로의 덧글이 많을 수 있는 시점이었고 하이드님의 글엔 별도로 굳이 덧글로 의사를 부연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혹시 하이드님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에 덧글은 부러 남기기 걸끄러운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추천으로 동감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 되겠지요. 대놓고, 글을 공개하는 입장에서 관리는 알라디너의 몫이다, 하기는 껄끄럽지만 그래도 의사표시는 하고 싶은 것이니까요. 즉, 추천이 숨은 댓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물론, 52도 많고 78도 많습니다. 제 생각엔 52에도 포함되고 78에도 포함되는 분도 있을 거라는 예감입니다. 저만 해도 두분의 말씀엔 모두 공감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또 둘다 맞아도 굳이 추천을 안 누르신 분도 계시겠죠. 이 숫자가 바뀌어질 수도 있구요.  하지만 숫자상으로 어제 시점의 결론은 하이드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더 많구나, 가 결론이 되었어요. 오로지 숫자만으로요.

   저는 추천이라는 '숫자'가 은연중에 대립되는 의견을 가진 알라디너에게 (어느쪽이든)일방적인 폭력이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추천하시는 분들은 누가 이겨라, 당신이 틀렸다, 해서 추천을 하고 안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추천 대상에 놓인 당사자는 추천의 주체와 동일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요.

   
 
알라딘이 옳더라도 피해라 느끼는 당사자가 있으니 문제제기 한번쯤 할 수 있는 사안이었고 그런 점에서 알라딘 답변은 아쉬워요. 서재레터가 얼마되지 않았다면 어찌보면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는 문제를 마고님이 제시한 걸 수도 있잖아요. 사안은 좀 다르지만 글을 배포할 때 본인동의 직접 받는 곳도 꽤 있어요. 법적으로 거리낌 있어 그런 게 아니라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그런 거겠죠. '예의'와 '배려'가 사라진 글쓰기 공간에 소통이 있을 리 없어요. 그래도 위 하이드님(언급해도 되나요)은 본인을 걸고 확실히 본인생각을 밝혔지만 거기 익명으로 추천만 누른 분들은 너무 아쉬워요.(저는 하이드님 의견이 틀렸다거나 추천 누르신 분들 비하하는 거 아닙니다. 익명에 기대 입장의 당당함을 내세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 아이리시스님
 
   

   마녀고양이님의 서재에 오늘 아이리시스님이 남겨주신 덧글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흠칫했습니다. 익명으로 추천만 누른 분들이 아쉽다는 말씀, 뼈아프지만 저라고 다를 바 없는 그 익명에 기대어 내 입장을 표명하는 행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더군요. 앞으로도 누가 어떤 문제를 제기했고 또 그에 반대하는 분이 글을 올리면 상황은 이와 비슷해 질 거라는 조심스런 예견이 가능하다 싶습니다. 추천의 수가 (알라딘과 상관없이)마치 의제의 결론을 내버린 듯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저는 이러한 추천제도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유독 알라딘에서는 이 추천의 의미가 서재내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알라딘은 제가 아는 다른 서점보다 무엇이든 찬반의견의 제시가 활발한 곳이고 또 언제나 이처럼 의견대립도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추천의 방향

  온라인 서점에는 포스트 하단에 추천을 할 수 있는 항목이 있습니다. 모두 방식이 틀리더라구요. 



 1. 인터파크 & 리브로 - 추천을 어디서 하나요?






 인터파크(위)와 리브로(아래)
는 자신의 포스트엔 추천이 표시되지 않습니다. 책 이미지를 누르면 책정보와 관련 리뷰가 종합적으로 뜨는 창이 나옵니다. 추천의 표시와 행위를 그 페이지에서 할수 있더라구요.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추천이 거의 없기는 하더군요.  
 

2. 반디앤루니스 - 공감하셨나요?



 

 반디앤루니스는 추천이 아니라 '공감'이더라구요.  익명이고 공감이 세개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3. 교보문고 - 추천의 숫자가 대박이네요 !

 

 

  

  교보문고는 포스트 맨 아래 하단 중앙에 추천을 삽입해 놓았는데 둘러보면 세개 이상 받기가 어렵더군요.  추천으로 나타나는 숫자가 부담스럽게 크더군요. 

 

4. 예스24 - 무엇을 추천하는 것이죠?

 

 

  예스는 특이하게 추천 앞에 '이 리뷰를' 이라는 문구가 추가되어 있어요. 리뷰가 아니고 일반 페이퍼의 경우 '이 포스트를'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스는 블로그 메인화면에서도 리뷰와 포스트를 구분, 분류해서 많이 읽은 순서대로 노출을 시킵니다. 포스트보다 리뷰를 우선시하고 있어요. 추천수보다는 조횟수를 우선시하여 노출시키구요. 물론 이주의 최다 추천은 따로 리뷰 메인 화면에 노출시켜주더군요.   

  

5. 그 밖에 - 공감과 미투는 내가 했다.


 

 

 

 

  미투데이가 공감이라는 뜻으로 '미투'라는 항목이 있어요. 이건 공감하고는 약간 다른 뉘앙스인데 나도 그랬다, 나도 너와 같아, 하는 그 말 한마디에 부연설명 없는 공감의 표시이죠.  

 

 

  왜 다르냐면요. 블로그에서의 공감과 비교해보면 될 듯해요. 블로그에서의 공감은 알라딘에서의 추천과 다른 것이 일단 공감하는 닉네임을 알수가 있어요. 즉, 이웃간에 서로 방문은 했는데 덧글을 남기기 바쁘다던가 인사는 하고 싶은데 할말은 없다거나 할 때 성의 표시로 공감을 누를수 있다는 것이죠. 포스트에 대한 공감과 상관없이요. 그리고 익명의 의사표시가 아니라는 겁니다.  미투나 블로그 공감이나 모두 익명이 아닌 친구, 이웃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내 에서 추천을 의미하는 기표들을 비교해보았어요.  

   알라딘처럼 추천이 활성화 된 곳이 드물고 하더라도 추천의 의미가 그보다 추천을 받지 못한 회원에게 (공개적인)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추천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진 것일까, 생각할수도 있지만 저는 다른 생각을 해보았어요. 추천이 좀더 세분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구요. 만약 의견을 제시하는 페이퍼엔 '동의, 중립, 반대' 이런 의사표시도 가능하겠지만 저는 그 이전에 추천을 꼭 익명으로 해야 할지를 묻고 싶습니다. 추천의 의미가 어짜피 긍정의 의미인데 익명일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서요. 제가 확인해보니 알라딘은 로그인 안해도 추천이 가능하더라구요.

   제가 예전부터 분석은 꽤 하는데 결론을 도출못하는 기획형이라..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또 혹시나 제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면 지적해주셔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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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07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한사람님 :)

저는 알라딘에 둥지를 튼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 글 보니까 또 다시 알라딘 시스템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네요. 저는 '추천'이 지니고 있는 공개적인 영향은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첫째는 추천 수가 많은 글이 메인 화면에 노출되듯이, 더 많은 사람에게 글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알라디너 분들이 직접 좋은 글을 선발하는 것. 추천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해당 글이 가지는 공개성 여부가 크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 점은 자연스러운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추천을 한답니다. 무슨 그럴 듯한 원칙은 아니구요. 그저 마음에 드는 글이다 싶으면 다른 사람도 읽으면 좋겠다 싶고, 내가 마음에 들었어요, 라고 표현하고 싶어서 추천을 눌러요. 그런데 추천 수와 댓글 수가 맞지 않으면 (익명의 추천자가 있으면) 내 의도가 잘 전해지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들더라구요. 한사람님 말씀처럼, 추천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비밀 투표의 원칙이 적용 되는 공간은 아니니까요.

저는 그저 다른 분들 글이 좋아서 여기저기 추천 누르고 다니는 사람인데, 여기에도 알고 보면 다양한 의미가 있을수 있겠네요. 그래도 '추천'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저 글이 좋아서, 라는 한 문장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이 '추천' 아닐까 싶어요.

소중한 글, 잘 읽고 갑니다 ㅎㅎ

한사람 2011-09-08 08:4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소중한 글이라 해주셔서 기쁩니다^^
(이렇게 덧글도 없는데 그나마 정성스레 남겨주셔서 더욱 감사하구요 ㅋ)

예, 제 경우도 이런 좋은 글은 여러사람이 읽어야 해, 하는 심정으로 추천을 누르곤 했어요
(대부분의 이웃분들이 그렇게 하시겠죠)

저는 오늘 추천과 관련된 익명성에 대해 알라딘이 운영하는 방침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결론은,
알라딘측은 익명의 추천, 익명성의 즐겨찾기를 더 존중하는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확인해보니 로그인 하지 않아도 IP주소만 다르면 여러번 추천을 할 수 있고
회원이 아니어도 지나가다 추천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타 서점과 비교해 개방성을 더 지향한다고 봅니다.
벌써 포스트 하단에 (댓글보다)'추천'메뉴가 가장 먼저 나와있는 것도 타 서점과는 다른 케이스이죠..

그래서..제가 내린 결론은
이곳 알라디너들은 그러한 익명성을 더 선호, 존중하는구나.. 익명성을 버릴 의향이 없구나 입니다..
제가 어제 확인한 바로는 그러한 추천에 의해 '화제의 서재 글'과 '알라디너의 선택'에 노출되는 것이 알라딘 서재의 원칙이라고 들었어요. 이는 곧 화제가 되는 기준은 추천에 있다는 뜻이지요. 익명으로 하는 것이니 바꾸어 말하면 추천하는 사람은 꼭 알라디너가 아니어도 된다는 뜻이구요.

누가 추천하는지 알게되면 아무래도 추천이 줄어들테니까요..
말씀하신 비밀투표의 기능은 실행할수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추천하는 것에 책임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추천의 의미가 선의로만 수행되었을때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선의가 의심없이 진정성을 발휘하려면 추천하는 과정이 투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 짧은 소견으론 투명성과 익명성은 상반되는 개념이라는 생각이어요

암튼, 의견 남겨주셔서 고마워요^^



교고쿠도 2011-09-08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제외한, 리뷰에 대한 추천만 보면 타 인터넷 서점 y**24에서의 추천은...물론 마음에 드는 리뷰에 추천을 날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블로거들 사이의 친목으로 추천을 날리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웃 블로거가 많거나 블로그 활동을 활발히 하는 사람의 리뷰가 추천이 높은 경향이 있어요...그러므로, 진짜 엄청나게 잘 쓰는 것이 아닌 이상, 친목활동을 하지 않는 리뷰어의 글은 금방 쉽게 묻혀 버립니다.

그런데 알라딘은 그보다도 뭐랄까, 리뷰 자체의 퀄리티(?)에 대한 추천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아서 그 점은 이쪽이 더 나아 보입니다. ^^뭐랄까, 리뷰가 주가 되어야지 친목행위(?)가 주가 되는 것은 주객전도 같아서요.
(두 공간의 비교는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익명성에 대한 문제는 으음...물론 익명으로 욕을 한다던지 이런건 확실히 문제가 있겠지만, 추천 같은건 굳이 누가 했는지 알지 못해도 상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당신 글 잘 읽었어!'라는 뜻으로 하는 추천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물론, 제게 있어서는 y**24와 알라딘서재 모두 본진이 아니기 때문에(본진은 네이버 블로그에 있고, 방문수도 많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블로그입니다) 인터넷 서점의 추천수 같은 것에 그다지 제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한사람 2011-09-08 08:41   좋아요 0 | URL

우선, 교고쿠도님의 생각 많이도 고마워요^^, 그리고 공감해요

저는 요즘 딜레마에 빠져있어요..그런거죠,
왜 어떤 사람의 어떤 매력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했는데 바로 그점 때문에 나중에 염증을 느끼게 되는 경우 ㅋ

저도 사실은 옆동네의 친목위주의 블로그 분위기가 저와 맞지가 않아서 이곳에 둥지를 튼 경우라 할수 있어요. 리뷰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친한 이웃이면 무조건 추천을 날려주고 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웃에게 추천으로 인사하는 것들이 리뷰의 질적 저하를 가져 온다고 보았습니다. 간혹가다 이웃없고 교류 없어도 정말 글이 좋아서 추천도 조횟수도 많은 분들이 있었지만 그런 분들은 친목위주의 조직에서 대개 왕따가 될 확률이 많아요.(제 경우도 비슷했던거 같구요 ㅋ) 교류를 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조직에 성의없는 사람으로 되어버리니까요. 운영측도 파워블로거의 요건 중 하나를 바로 친목, 이웃간 교류행위로 설정했고 본인이 추천하고 또 추천받는 것을 점수화하여 파워지수에 반영하므로 사실상 책 많이 읽고 글 잘쓰는 것보다는 책 좋아하고 이웃많은 사람이 살아가기 좋은 환경을 마련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웃추가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수 있는 것과 방문흔적이 남는다는 환경과 맥을 같이 합니다. 나를 이웃추가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상대에게 방문하게 되고 또 내가 추천했다는 것을 암시할수 있으니까요.(물론, 추천은 익명으로 표시되지만 바보아닌 이상 알게 됩니다, 역으로 누가 안했을지도 예상하게 되구요 ㅋ)

그런데 이곳은 나를 즐겨찾는 서재로 등록한 분들이 공개, 비공개를 선택할수 있고 방문흔적도 남지않고 당연히 추천도 알수 없으니 어찌보면 추천이 더 공정하고 진정성을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저는 사실 그부분이 제일 맘에 들어 남들 신경안쓰고 글을 올리게 되었으니까요. 예, 확실히 저는 그 익명성에 수긍하고 그것이 저와 맞다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하하, 그런데. 그 익명성이라는 것이 그 익명성때문에 약간의 무책임을 허용하는 경우를 목격했고 ㅋ
익명주체의 의도와 별도로 추천대상에 피해가 되는 상황이 야기 될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죠.
가장 모순이라 여겼던건 (신간의 경우)추천이라는 기준으로 '화제의 글', '알라디너의 선택'에 노출된다는 원칙을 보았을때 결국 그 익명성에 기대어 화제도 선택도 결정된다는 측면이 어떤 알라딘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염려하는 여성편향, 이념편향, 정치편향의 분위기가 정말 알라딘이 원하는 것일까,(아니 알라디너가 원하는 것일까) 저는 그 부분에 의문을 가진 것이고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지요.

예를들어 검색어가 일등이 되니까 비로소 검색을 해보는 것인지, 많이한 검색이 일등이 되는지, 검색을 원하는 사실이 혹은 검색을 할 만한 사실이 일등이 되는지는 검색주체외에 반드시 검색운영측의 몫이 있다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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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그 중심에 익명성이라는 개방성이 결국 핵심이라 보았습니다.
익명성으로 돌려버리면 운영측은 많은 부분 책임에서 자유롭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알라딘의 운영 불만에 관한 페이퍼가 가장 화제의 글이 될 확률이 많고 노출횟수도 빈번하지만 사실상 해결은 별로 없어 보이지 않나요? 관심만 끌 뿐이지 변화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그러나 관람주체는 이 곳이 꽤 진보적이다 생각할수 있고 열려있다 생각할수 있어요. 저도 그랬구요)

여기까지가 제 생각이구요.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작정했으면서도..제 스스로 이곳이 나에게 어떤 곳인지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던 시점이라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하이드 2011-09-08 11:16   좋아요 0 | URL
교고쿠도님의 댓글 추천! 그러니깐, 공감의 추천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2011-09-08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8 10: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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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1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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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1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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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1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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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1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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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1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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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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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물선 2011-09-0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도 등장했다~~!ㅋㅋ
영광스럽구만^^

한사람 2011-09-08 16:56   좋아요 0 | URL

헐...허락없이 가져왔어 ㅋㅋ
용서행 !!!!

보물선 2011-09-08 17:39   좋아요 0 | URL
용서해줄께^^ㅎㅎ

아이리시스 2011-09-0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너무 일목요연 해요. 어느 블로그가 좋은가 하고 막 봤어요.ㅋㅋㅋ 저야말로 저 댓글 쓸 때 뭐 그렇게 추천에 큰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마고님이 추천수를 보면 본인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위축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생각해 봐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뭣 모르는 사람들이 의견을 일목요연히(행여 그 주장이 엇갈리고 두서없다 하더라도 본인 주장을 펼치는 것이 제일 좋겠죠. 그래야 대화를 하고 풀거나 싸우거나 하죠!) 쓰기 힘들 때, 타인의 눈으로 멀찌감치에서 끼어들 수 있는 제일 좋고 편리한 방법이라고 봤어요. 엄청 이기적이라고 생각됐어요. 저야말로 하이드님에게도 마고님에게도 추천을 눌렀을지 몰라요.(계속 언급 진심 죄송) 제가 제일 나쁜 사람 -_-; 의견만 놓고 보면 둘 다 옳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대처방법이 변할 수 있는 사안이죠.

추천수는 많을 때 본인 기분 좋은 건 맞지만 그게 꼭 좋은 리뷰라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어요. 베스트셀러는 뭐 다 좋은 책인가요? 하지만 그걸 보면서 마고님이 자신의 의견보다 하이드님 의견에 사람들이 더 많이 동의하는 구나, 그러니 내가 그냥 떠나야겠다 하실까봐 두려웠던 거죠. 제가 보기에 이건 우리끼리 논쟁할 일도 아니고 버럭할 일도 아니고 누가 옳고 그른 것도 아니었거든요.

추천의 익명성을 없애면 더 편리하고 좋아지긴 할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에 불만 같은 건 없어요. 여기는 방명록에 비밀글 기능이나 쪽지 기능은 없던데요. 그치만 뭐, 저는 적응하는 사람이고 큰 불만 없이 또는 문제제기 없이 계속 잘 살겁니다. 절이 싫어지면 중이 떠나는 거고 뭐 그런 거니까요.

한사람님 리뷰 얼마나 오래 전부터 제가 몰래 읽어왔는지 아시면 놀랄걸요?ㅋㅋㅋ

한사람 2011-09-08 21:43   좋아요 0 | URL

흑. 아이리시스님..
오늘 쫌 제가 생각을 정리하느라 아직도 컴퓨터 앞에 있어요. 거의 정리하고 돌아서려던 참이었어요

아까 마고님 서재에 서재지기님의 답변을 보았습니다. 허탈하더라구요 ㅠ
이건으로 알라딘의 정체성을 탐구한다면서 진보성과 익명성의 문제제기를 화두로 꺼낸 제가 좀 작아지는 느낌이었어요.. 어느 오랜 전통을 가진 집안에 갑자기 젠체하는 며느리가 시집와서, 이것이 문제네요 하는 꼴이 아니었나 되돌아 보았어요.

가장 크게 받아들인건 아마도 마고님이 서재를 문닫는다고 하는 소식이었던 거 같아요..그 시점부터
피해의식이 커졌던거 같아요. 물밀듯이 후회가 밀려오는 시점에 딱 아이리시스님이 위로같은 글을 남겨주시네요. 저는 일단 손 댄 사안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든 제 스스로 결론을 내지 못하면 다음 사안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집요하고도 좋지 않은 성격이 있어서.. 이 건을 '후회' 그리고 약간의 '오만'이렇게 결론내리며
술이나 한잔 하려고 했어요.

어떠한 논쟁에 휘말릴때는 반대쪽 때문이 아니고..아마도 거기에 쏟은 자신의 에너지 때문에 상처를 받는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을 채워주는 글)고마워요^^

어딜봐도 추천이 먼저 맨 앞에 나와 있는 블로그는 없어요. 이곳은 어쩌면 댓글보다 추천이 더 활성화 된 곳이고 추천이 댓글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저는 좀 나중에 알았거든요..
저도 몰래 추천하고 오면서 이런게 추천이야, 이러기도 했구요 ㅋ
편하고 의식안하고 좋더라구요

그런데 그게 나 한 사람이 아니고 모아지고 쌓여지면 어느새 권력이 될수 있구나, 심지어는 폭력도 될수 있구나,,저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분명 알라딘은 익명을 택한 이유가 있을 거여요.
더 많은 장점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방명록은 비밀로 남길수 있더라구요)
저 역시도 그게 좋아서 왔으니..초심으로 돌아가 좋은점만 기억하고 또 선의로 추천을 행하는 알라디너가 될수 밖에요.

하지만 제가 쓴 페이퍼로 인해 추천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이틀동안 이웃만 열명 늘었어요..
그걸로도 감사한 마음이어요

그런데..좀 쓸쓸한 건 왜 일까요 ㅠ
(참, 제 리뷰를 언제부터 읽어오셨단 말씀입니까.. 그 길고 지루하고..또 작위적인 글들을요 ㅠ)

2011-09-09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9 0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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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08: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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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0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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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9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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