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2) 글을 왜 쓰는가, 자랑 때문인가 재미 때문인가
사람들은 왜 글을 쓸까. 사람마다 글 쓰는 이유가 각각 다를 것이다. 그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두 가지만을 뽑아 쓰고자 한다.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인가, 재미있어서인가.
첫째,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쓰는 목적 중의 하나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책을 통해서든 블로그를 통해서든 글 쓰는 사람은 남에게 읽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여기엔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이 끼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지적 능력 또는 글쓰기 능력을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란 작품에서 이렇게 썼다.
“의젓한 인간이 진심으로 만족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화제란 도대체 무엇일까?
답 -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다.” -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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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을 자랑할 수 있어서다. 이것은 글을 쓸 때도 나타난다. 그래서 정확한 자서전이란 없다고 한다.
“하이네가 단언한 바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반드시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므로 정확한 자서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따른다면, 예컨대 루소만 하더라도 자기 참회록 속에서 줄곧 자신을 헐뜯고 있는데, 그것은 허영심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봐야 한다. 나는 하이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때로 자기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엄청난 범죄를 날조하여 스스로 범인을 자처하고 나설 수도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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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인호는 최근 한 일간지(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왜 (사뮈엘) 베케트니 이런 작가들이 인터뷰를 안 하는지 알겠어. 인터뷰라는 건 자기 미화야. 100% 자기 미화. 난 옛날부터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동시에 싫었어. 나온 기사를 보면, 진짜 내 얘기가 아니야. 남에게 보여지는 내 얘기였어.”
여기서 ‘자기 미화’란 결국 ‘자기 자랑’인 셈이다. 신문 인터뷰뿐만 아니라 TV 출연에서도 ‘자기 자랑’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야기를 나누는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은 자신의 생활을 소개하며 자신의 집, 부부금실, 음식솜씨 등을 자랑스럽게 공개한다. 한결같이 집은 멋지게 꾸며져 있고, 부부금실은 좋으며, 음식솜씨는 최고임을 보여준다. 결국 ‘자기 자랑’이다. 의사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가 TV에 출연해 하는 일은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줌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의 강점을 알리는 일 다름 아니다. 그래서 어느 의사는 유명인사가 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 수가 증가한다고 한다. 그가 정치가라면 그가 출마할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가 작가라면 그가 쓴 책의 판매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점이 있더라도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은 결코 TV 출연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자랑하고 싶은 욕구는 작가들이나 TV에 출연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주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주부들이 모이는 친구 모임엔 남편 자랑과 자식 자랑의 얘기가 늘 단골 화젯거리가 된다. 이것과 관련한 글이 있다.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에 수록된 글이다.
평균적인 유부녀는 다른 유부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사는 듯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그들의 남편보다 부유하고 자기 자녀들이 그들의 자녀들보다 성공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고자 애를 쓴다. 부유한 유부녀라면 집안 관리와 인테리어에 있어 이웃들보다 나은 취향을 과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 <런던통신 1931-1935>, 90~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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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나 TV 출연을 하는 사람들이나 보통 주부들이나 모두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어떤 점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모두가 갖고 있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가까운 것이지, 글 쓰는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글 쓰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매슬로우(A. Maslow)의 계층적 욕구론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자신의 욕구충족을 증가시키거나 아니면 욕구충족의 감퇴를 회피하려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충족되지 않은 욕구에 주의를 기울이고 바로 그들 욕구의 충족을 추구하기 위해 동기를 갖는다. 그리하여 인간의 욕구는 가장 낮은 단계의 생리적 욕구를 비롯해, 안전의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 등 상향적 계층화된 욕구구조를 갖고 있다(황상재 저, <조직 커뮤니케이션 이해>를 참고). 이 이론에서 주목할 것은 ‘존경의 욕구’다. 이것은 남들로부터 존경 받거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다. 이 욕구로 인해 인간은 자기 자랑을 늘어놓길 좋아한다.
둘째, 글쓰기 자체의 재미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남에게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게 글 쓰는 이유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남으로부터 인정받거나 자신을 자랑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악기 연주와 비교할 수 있다. 누구나 피아노나 기타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결국 그 악기에 대한 흥미를 가진 자만이 악기를 다룰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도 결국은 글 쓰는 재미를 아는 자만이 글을 쓸 것이다. 따라서 글을 쓰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글쓰기가 재미있게 느껴져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만 글을 쓴다면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가진 사람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일기의 독자는 남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도 일기를 쓰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글쓰기 자체가 좋아서 쓰는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가 볼까 봐 꼭꼭 숨겨 둔다. 매일 쓰는 건 아니지만 한 달에 몇 번은 꼭 써 온 게 벌써 삼십 년 가까이 되었다. 어떤 인상적인 사건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꼼꼼히 정리해 쓰게 되는데, 훗날 그 일기를 읽었을 때 무슨 뜻의 글인지 내가 알기 위함이다. 이럴 때 글쓰기는 나만의 비밀스런 세계 속에서 작은 행복을 갖게 한다.
글쓰기엔 분명히 문장과 문단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다. 적합한 낱말의 선택, 그것들의 조합, 직유나 은유로 문장을 묘사, 그것들의 배치, 문단 구성 등을 하는 행위는 마치 퍼즐놀이를 하는 것처럼 흥미롭다. 볼펜으로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컴퓨터로 글을 쓸 때 자판을 두드리는 즐거움도 있다. 자판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재밌는 놀이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작가들이 글을 쓰는 큰 동기를 네 가지로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로 ‘미학적 열정’으로 인한 즐거움을 들었다.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 <나는 왜 쓰는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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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글쓰기에는 감미로운 즐거움이 있다. 쓰지 않을 수 없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왜 연애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연인들은 ‘만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서’라고 말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도 ‘쓰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서’ 글을 쓴다고 할 수 있다. 글 쓰는 사람들에겐 세상에서 글쓰기만큼 유혹적인 일이 없을 것이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그들은 글쓰기의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나도 지금 이 순간, 그 행복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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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작가들이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제시하였다.
1) 순전한 이기심 :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무시했던 어른들에 보복하고 싶은 욕망. 이게 작가의 동기, 그것도 강한 동기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2)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3) 역사적 충동 : 사물/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 두려는 욕망.
4) 정치적 목적 :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 나는 왜 쓰는가, <동물농장>, 민음사, 137~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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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나는 조지 오웰이 쓴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를 민음사에서 나온 <동물농장>이란 책에서 읽었다. 이 책에는 <동물농장>이란 소설 외에 ‘자유와 행복’과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가 실려 있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만을 모아 놓은 것으로는 한겨레출판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이 있다. 29편의 에세이를 볼 수 있다.
조지 오웰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글은 모두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