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후기>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를 쓰고 나서 - 를 고치다




체력의 소모가 많은 바쁜 생활에 비해 내가 가진 체력이 약해서 많은 일들을 미루고 산다. 그래서 요즘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지 못했다.


 

어쩌다 시간이 생기면, 난 좀 쉬어야 돼, 안 그러면 감기몸살을 앓을 것 같아, 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두통이 생기고 목이 아파 온다.


 

오늘은 중학생 딸아이 덕분에 급히 글을 써서 올리게 되었다. 친구와 다퉜던 아이를 통해 본 세상도 녹록치 않았다. 공부 스트레스 이외에 벌써 ‘인간관계 스트레스’에도 시달리는 것 같아서 학교생활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가 친구와 다투면서 큰 소리를 내며 이기려는 대신 사과하며 지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다. 아이 말이, 자기 생각엔 자기도 친구도 똑같이 잘못을 했는데 자신이 양보하기로 하고 먼저 사과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친구도 사과를 하더란다. 여기서 잘못이란, 서로 상대방이 오해를 하게끔 말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추가한 글 : (난 딸아이가 친구에게 먼저 사과할 정도로 양보할 줄 아는 아이인 줄 몰랐다. 그건 뜻밖이었고 놀라웠다. 그래서 자식에 대해서도, 인간에 대한 예측은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사람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선택하는 삶의 방향이 다르다. 예를 하나 들면, 이성으로부터 실연을 당할 경우, 그것을 재기의 기회로 삼아 전보다 더 열심히 살 수도 있고, 표가 나지 않게 묵묵히 견디며 살 수도 있고, 자살을 택해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인간이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모를 존재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미래에 대한 추측이 들어맞지 않는 존재다.  


  

추가한 글 : (이런 인간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작가다.)


 

내가 작가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인간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소설가란 자기만이 아는 인간의 비밀을 작품을 통해 보여 주는 사람이다. 


 

추가한 글 : ('이방인'이란 작품에도 인간의 비밀이 담겨 있다.) 

 

우리 안에는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와 닮은 데가 분명히 있다. 남이 보면 엉뚱하고 우스꽝스럽고 또 남을 이해시키기가 곤란한 어떤 면을 가지고 있다. 자신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한 세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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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0-11-16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게 있다. 좋은 글은 문단과 문단 사이에 구멍이 나 있지 않으며, 나쁜 글은 문단과 문단 사이에 구멍이 나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오늘 다시 읽어보니 문단과 문단 사이에 구멍이 똟려 있었다, 그것도 여러개. 오늘 쓴, 문단 사이 사이에 추가한 글이 바로 그 구멍을 메우는 글이 되는 것이다. 이런 허점은 이상하게도 글을 쓰고 나서 한참 뒤에 보이는데, 그래서 작가들은 글을 쓰고 나서 그 글을 서랍 속에 몇 달간 재워 둔다고 한다. 나중에 보면 객관적 시각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옹달샘 2010-11-1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퇴고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군요. 그래서 저도 한참 묵힌 뒤에 다시 꺼내 읽어보곤 하는데 의외의 수확을 거둘 때가 있어서 퇴고의 힘을 실감하곤 해요. 새로 올리신 글을 읽으니 신선한 창작의욕이 생깁니다.

페크pek0501 2010-11-17 12:58   좋아요 0 | URL
급하게 써서 이런 실수가 생겼어요. 그래서 퇴고가 중요해요.
앞문단과 뒷문단의 연결이 자연스러워야 읽는 사람이 읽기 쉬운 글이 돼요.
좋은 글이란 결국 읽는 사람의 이해가 빠른 글이죠.
 


<싱거운 후기>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를 쓰고 나서



체력의 소모가 많은 바쁜 생활에 비해 내가 가진 체력이 약해서 많은 일들을 미루고 산다. 그래서 요즘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지 못했다.



어쩌다 시간이 생기면, 난 좀 쉬어야 돼, 안 그러면 감기몸살을 앓을 것 같아, 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두통이 생기고 목이 아파 온다.


오늘은 중학생 딸아이 덕분에 급히 글을 써서 올리게 되었다. 친구와 다퉜던 아이를 통해 본 세상도 녹록치 않았다. 공부 스트레스 이외에 벌써 ‘인간관계 스트레스’에도 시달리는 것 같아서 학교생활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가 친구와 다투면서 큰 소리를 내며 이기려는 대신 사과하며 지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다. 아이 말이, 자기 생각엔 자기도 친구도 똑같이 잘못을 했는데 자신이 양보하기로 하고 먼저 사과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친구도 사과를 하더란다. 여기서 잘못이란, 서로 상대방이 오해를 하게끔 말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사람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선택하는 삶의 방향이 다르다. 예를 하나 들면, 이성으로부터 실연을 당할 경우, 그것을 재기의 기회로 삼아 전보다 더 열심히 살 수도 있고, 표가 나지 않게 묵묵히 견디며 살 수도 있고, 자살을 택해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인간이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모를 존재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미래에 대한 추측이 들어맞지 않는 존재다.


내가 작가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인간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소설가란 자기만이 아는 인간의 비밀을 작품을 통해 보여 주는 사람이다.


우리 안에는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와 닮은 데가 분명히 있다. 남이 보면 엉뚱하고 우스꽝스럽고 또 남을 이해시키기가 곤란한 어떤 면을 가지고 있다. 자신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한 세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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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1-15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 원글도 읽었어요.
이 후기는 전혀 '싱거운 후기'가 아니고 '진지한 후기'예요!^^

페크pek0501 2010-11-16 00:21   좋아요 0 | URL
그럼, '진지한 후기'라고 제목을 바꿀까요?ㅋ
그런데 저 라는 사람이 원래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서요.ㅋ
이런 즐거움을 주시다니 반갑고 감사함...
 


<생활칼럼>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


며칠 전, 중학교 2학년인 딸이 전화통화로 친구와 다투는 것 같았다. 여러 번 전화가 오기도 하고 전화를 걸기도 하면서 밤 열한 시가 넘도록 통화가 계속되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자야 할 시간이니 그만 자라고 했을 텐데, 울먹이며 말하는 아이를 보니 자기 나름대로 심각한 것 같아 편히 잠들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놔 두기로 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야”, “네가 오해한 거야”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건 내가 오해한 것 같아”, “미안해”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밤 열두 시가 되어서야 서로 화해가 되었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 들어 보았더니,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잘못된 의사소통의 문제였다. 어른도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해 오해가 생겨 서로 섭섭한 일이 많은데, 어른에 비해 미성숙한 중학생들에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기분을 알 수 없으며, 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의 기분을 알 수 없다. 그것을 알려면 잠자리가 되어 보아야 하고, 개미가 되어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타인의 마음을 알려면 타인과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 봐야 하므로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일지 모른다. 고부간의 갈등이 생기고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는 것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순조롭게 되지 않아서일 경우가 많다.


어느 지인의 장례식장에서였다. 고인의 부모가 문상객들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사십대에 암으로 죽은 지인이기에 안타까움이 더 컸고, 그래서 큰 슬픔에 잠겨 있을 그 부모님을 어떻게 뵈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갔던 곳이라 그 부모님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었다. 나의 상상으론 자식의 죽음 앞에 부모가 기절을 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삶의 의욕을 잃은 침울한 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했다. 나는 그 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방인’이라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지내던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알리는 전보를 받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식당에서 태연히 점심을 먹는다. 또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랍인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나서 살인의 동기에 대하여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라고 말한다. 찌는 듯한 더위와 뜨거운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았다는 것이다.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느껴서 말한 것이다. 이런 뫼르소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


마침내 뫼르소에겐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검사는 이렇게 말한다.




“배심원 여러분, 어머니가 사망한 바로 그 다음날에 이 사람은 해수욕을 하고, 부정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희극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린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알베르 카뮈 저, 이방인, p126, 책세상>




검사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사망한 바로 그 다음날에는 해수욕을 해서는 안 되고, (이성과) 부정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며, 희극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뒤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며 도덕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나눠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는 우리가 모든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근거해서 생긴 것 같다. 그러나 우린 모든 인간을, 모든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살아온 삶의 역사가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르며 생활방식이 다르다. 이렇게 나와 아주 다른 타인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전제로, 한 가지 잣대로 누군가에 대해 정상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또는 도덕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해 우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땐 ‘사람은 각기 다르다’라는 생각으로 이해하길 포기해야 하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겐 남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인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디즈레일리가 말했듯이 ‘경험은 생각의 산물이고 생각은 행동의 산물’이라고 볼 때, 타인의 경험을 똑같이 공유할 수 없기에 이런 말도 가능하다. ‘나처럼 살아보지 않고서는 누구든 나를 비난할 수 없다.’


남들이 보기에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뫼르소. 그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겐 어딘가 뫼르소와 닮은 데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를 비난하는 대신 ‘뫼르소’ 같은 사람인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어떨까.  

  

.....................................................................................

 

 

<알베르 카뮈 저,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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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10) 무엇을 안다고 할 때


빗나간 예측 1


지난 추석에 연휴가 길어서 고속도로가 예전에 비해 크게 막히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연휴가 길었는데도 추석 전날과 당일에만 차가 많이 몰리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여성에게 명절은 가사 노동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귀성을 늦추고 귀경은 서두르고 싶어 하는 며느리의 선택의 결과라는 분석(chosun.com)이 나왔습니다. 시집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려는 아내들의 선택에 남편들이 수용해 준 결과라고 합니다.


빗나간 예측 2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옷을 기부하는 것은 좋은 일일까요? chosun.com이 소개한 책에 의하면 꼭 좋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상인들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헌옷 수거함에 버려지거나 재활용센터에 모인 옷들을 헐값에 사들여 사람들에게 판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값이 싼 이 옷들 때문에 아프리카 섬유산업은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합니다. 한 예로 18개의 섬유공장이 있던 잠비아에는 지금은 공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며 일자리를 잃은 재단사들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이 <모두가 행복한 지구촌을 위한 가치 사전>이란 책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원숭이를 닮았다


우리 개인의 인생에 대해서는 분석해 주는 누군가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어리석은 줄 모릅니다.


원숭이 치는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명목이나 실질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성을 내다가 기뻐했다(장자, 현암사, 91쪽).


양쪽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한쪽만을 보는 시각을 가진 우리 인간은 원숭이들을 닮았습니다.


무엇을 안다고 할 때,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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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모두가 행복한 지구촌을 위한 가치 사전>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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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글> 서울입니다 2 

누군가가 말하기를, 이 더운 여름엔 그냥 살아 있는 것만 해도 큰일을 하는 것이랍니다. 날씨가 덥다고 글도 읽지 않고 일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위로가 되는 말이지요.   

살아만 있어도 큰 일을 한 것이라는 이 계절에 저는 서울로 이사를 했답니다. 이사한 지 9일째. 더워서 더 힘들게 느껴졌는데, 요즘 좀 시원해졌네요. 

살림정리는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이삿짐 나르는 사람이 해 놓고 간 그대로랍니다. 둘째아이의 교복과 구두와 체육복을 사러 다니고, 전학을 시키고, 수학과 영어를 가르칠 개인지도 과외선생을 구하고, 큰애의 핸드폰을 새로 구입해 주고, 제 것도 고장이 나서 새 핸드폰을 구입하고, 전화와 인터넷을 설치하고, 집의 손 볼 곳과 고칠 것을 해결하고, 밑반찬을 만들어 친정에 갖다 드리고, 매일 친정어머니와 걷는 운동을 함께 하고, 게다가 서울친구가 방문하는 날이면 하루가 그냥 날아가고... 등등, 바빴어요.  

오늘부터 옷정리와 그릇정리와 책정리를 하나씩 해나가려고 합니다. 신발장과 현관과 욕실 청소까지 다 하려면 한달은 걸릴 듯해요. 휴우...

논문은 언제 쓰나요? 

블로그에 올릴 글은 언제 쓰나요? 

이렇게 바쁘다 보니 유유자적의 행복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쁨이 행복한 이유는 바쁜 일 뒤에 찾아오는 한가로운 휴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루에 해야 할 일을 끝내 놓고 샤워를 하고 난 뒤의 그 한가로움을 즐깁니다. 그 한가로움의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바쁜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행복은 늘 한가한 사람은 갖지 못할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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