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 수필집」

이 책에서 뽑아 옮겼다. 



4. 복수


어떤 사람들은 복수를 결행하기에 앞서 상대방에게 보복을 당하는 까닭을 알리고 싶어 한다. 이것은 비교적 대범한 자세다. 보복을 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뉘우치게 하는 데 복수의 기쁨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24쪽)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복수하려는 사람이 상대편에게 내가 꼭 복수하고 말거야.” 또는 밤길 조심해.”라는 말로 겁을 주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베이컨의 말대로 상대편이 뉘우치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시청자들이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작가가 그렇게 썼을까? 


나는 복수하려는 사람은 복수의 계획을 상대편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때문에 작가가 그렇게 썼다고 본다. 그 엄청난 복수의 계획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벅찬 것이다. 또 상대편이 자신이 복수할 거라는 것을 알고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어떤 불행이 닥치리라는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안에 떨게 만드니까.


복수를 궁리하는 사람은 곧 나아서 쾌유될 수도 있었을 상처를 늘 아프게 간직하는 셈이다.(24쪽)


해칠 방법을 모색하며 마음이 편할 리 없다. 



5. 역경


번성한다고 두려움과 번거로움이 없는 것이 아니요, 역경 속이라고 위안과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재봉일이나 수예에서 슬프고 장중한 바탕에 경쾌한 무늬를 넣는 것이, 밝은 바탕에 어둡고 침울한 무늬를 넣는 것보다 훨씬 즐겁다. 그러니 이와 같은 눈의 즐거움에 미루어 마음의 즐거움을 판단해보라. 향이나 양념은 피우거나 빻을 때 가장 향기로운 법이다. 미덕도 이러한 값진 향기와 같다. 번성은 악덕을 가장 잘 드러내지만, 역경은 미덕을 가장 잘 드러낸다.(27쪽)



7. 부모와 자식


자녀에게 용돈을 인색하게 주는 것은 해로운 실책이다. 그로 인하여 자녀들이 비열해지고 수단을 부리게 되고 좋지 않은 친구와 사귀게 된다. 그리고 풍족해지면 쉽게 방탕해진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에 대한 권위는 유지하면서도 돈줄까지 틀어쥐지 않을 때에야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람들은 (부모나 학교 선생이나 하인이나 모두들) 어린 자식들 간에 경쟁심을 일으키고 부채질하는 어리석은 버릇이 있다. 대개의 경우 이것은 그들이 어른이 된 후에 불화의 씨가 되어 가정에 풍파를 일으킨다.(34쪽)



8. 결혼과 독신 생활 


아내는 젊은이에게는 연인이고, 중년에게는 반려자이며, 늙은이에게는 간호사다.(38쪽)



10. 사랑


부부의 사랑은 인간을 만든다. 친구 간의 사랑은 인간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방탕한 사랑은 인간을 부패하게 하고 타락하게 한다.(48쪽) 



23. 자기 자신을 위한 지혜


제 자신만을 위한 지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타락한 행위다. 그것은 집이 무너지기 조금 전에 틀림없이 빠져나가는 쥐의 지혜다. 그것은 자신을 위하여 땅을 파서 살 곳을 마련해준 오소리를 쫓아내는 여우의 지혜다. 그러나 특별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키케로가 폼페이를 가리켜 말한 것처럼 “비길 데 없이 자기 편애에 빠진 사람”은 대체로 불행하다는 점이다. 평생을 두고 제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결국은 그들 자신이 운명의 변덕에 제물이 되고 만다. 운명의 날개를 제 몸을 아끼는 잔꾀로 묶어두었다고 잘못 생각했을 뿐이다.(108~109쪽)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행복하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25-05-25 1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에게 알리는 이유는 여러가지로 복합적일 것 같아요. 베이컨의 말대로 상대가 뉘우치기 바라는 마음도 있겠고 복수를 정당화하기 위한 스스로의 합리화일 수도 있고 내가 아니고 너가 문제라는 책임 전가일 수도 있겠고...인간군상만큼 많을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5-26 10:08   좋아요 0 | URL
복수를 알리는 이유가 말씀하신대로 복합적이겠죠.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딱 한 가지 때문이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네가 먼저 시작했고 나는 그것에 복수를 할 따름이라는 명분을 알리려는 이유도 있겠어요.복수를 위해 상대편의 애인을 뺏는 경우도 있더군요.
잉크냄새 님이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 주셔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5-05-25 1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요즘 날씨가 더워진다고 생각했는데, 장미가 피었네요. 5월이니 이제 그럴 때도 된 것 같은데, 참 예쁘네요. 집 가까운 아파트 담장에 장미가 예쁘게 핀 곳이 있어요. 시간 될 때 가봐야겠어요.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 말 중에 ˝밤길 조심해˝라는 말이 위협하는 말인 것 같긴 한데,
갑자기, 밤길은 원래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 뭘까요.^^;

잘 읽었습니다. 저녁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5-26 10:11   좋아요 1 | URL
그저께인가 찍은 사진입니다. 장미가 시들기 전에 잘 찍어 둔 것 같아요. 걷기 운동을 하다가 찍었어요.
밤길은 원래 조심해야 하는 것 맞습니다. ˝차 조심해.˝라고 말해도 무서울 것 같습니다.ㅋㅋ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입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희선 2025-05-26 0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복수하고 싶은 사람은 상대한테 알리고 싶어하는군요 저라면 아무 말 안 하고 할 듯합니다 그런 거 알리면 못할 수도 있으니... 이런 생각이 더 안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거 하고 싶은 사람이 없으면 괜찮겠지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5-26 10:13   좋아요 1 | URL
아무 말 안 하고 복수하면 완전 범죄?가 될 수도 있는데 겁을 주고 싶고 내가 가만히 있을 바보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기도 할 것 같아요.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고 하니 복수하기보단 마음을 추스르는 게 좋을 듯요. 가장 좋은 복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하게 산다, 는 모습으로 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yamoo 2025-05-29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이컨 수필집과 몽테뉴 수필집을 다 읽었는데,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근데 인용하신 걸 보니 그런 내용이 있었던 거 같기는 합니다..ㅎㅎ

에세이집은 한 권을 제외하고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요. 단 하나의 예외가 쇼펜하우어의 에세이집이죠. 너무 강렬한 주장이라 안 잊혀져요..ㅎㅎ

페크pek0501 2025-05-31 12:53   좋아요 0 | URL
1561생인 베이컨의 수필은 비유법의 구사 능력이 뛰어나 읽는 재미가 있어요. 그걸 배우기 위해 읽어요. 시대에 뒤떨어진 문장이 보이긴 합니다만, 가령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믿지 않아 잘못 쓴 부분이 있어요. 그럼에도 인터넷이 없던 시대의 글이라 생각하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어요. 책 뒤쪽에 꼼꼼하게 미주가 정리돼 있어 역시 좋은 출판사는 다르구나 싶어요.
저도 쇼펜하우어의 책은 세 권쯤 읽은 것 같아요. 재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