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언어 마술사 같은 내 동행자는 대단한 재능으로 단단하게 지어진 하나의 건축물을 내게 보여주는 듯했다. 그 건축물은 그 자체로 규정되어 솟아오르는 듯이 보였고, 어떤 내적 필연성으로 존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내가 그 안에서 찾고 싶었던 것이 그 건축물 안에는 결여되어 있기에 아쉬웠고, 그저 단지 하나의 단순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그럴듯한 완결과 완성을 지닌 예술 작품이 흔히 사람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듯이 말이다. 어쨌든 나는 유창하게 떠드는 그 남자의 말을 기꺼이 경청했다. 그는 나로 하여금 자신에게 몰두하도록 했고, 그 덕분에 나는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가 내 정신과 주의력을 요구했더라도 나는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그림자를 판 사나이」, 101쪽.

 




언젠가 악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신에게도 지옥이 있으니,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 그것이다.”

또 최근에 나는 악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신은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 때문에 신은 죽었다.”

그러므로 동정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곳으로부터 인간들에게 짙은 먹구름이 몰려온다! 참으로 나는 뇌우의 징조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음의 말도 명심하라. 모든 위대한 사랑은 모든 동정을 넘어 선다. 위대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조차도 창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55쪽.





완독회 

이병률


(상략)


찬 소주를 앞에 놓고 대개의 우리가 반복하는 일이란

소매를 접고 접어도 별반 뒤집어지지 않는 질문 같은 

것일지도


시 한 편씩을 돌아가며 읽는 낭독회를 마쳤지만 그래봤자

매번 그것으로 어제의 기분을 누르며 살려는 것


모두가 밤을 헤엄치는 기분에 빠져 있다

나만 혼자 바람 속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그곳으로부터 모두를 꺼내야겠다는 마음을 조금 섞고

싶어서겠다  

- 이병률,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61쪽.





시기와 질투에 관한 명언 :

거지는 거지를, 시인은 시인을 시기한다.(헤시오도스)

동정보다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낫다.(헤로도토스)

바보들을 우리는 시기가 아니라 경멸한다. 시기는 일종의 칭찬이기 때문이다.(J. 게이)

번영을 누리는 친구를 질투심 없이 칭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아에스킬로스)

사람은 칭찬을 가장 많이 받을 때 미움도 가장 많이 받는다.(J. 드라이든)

사람의 마음에 시기심만큼 강하게 뿌리 내린 감정은 없다.(R. B. 셰리든)

시기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이다.(예프투셴코)

시기하는 자는 자기 화살로 자기를 죽인다.(익명)

질투는 휴일이 없다.(베이컨)

질투 속에는 사랑보다 이기심이 더 많다.(라로슈푸코)


이 중 ‘질투 속에는 사랑보다 이기심이 더 많다’는 말이 와 닿는다. 상대편을 사랑해도 자존심을 챙기는 게 보통 사람이 아니던가. 보통 사람은 자존심이 더럽혀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할 만큼 이기적이다. 우리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이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 작가가 소설에서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폭언을 해서 고통받는 모습을 그렸다면, 그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런 세상이 되어서야 하겠는가, 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 고통에 독자가 공감하며 함께 슬퍼할 수 있을 때 바람직한 세상이 되기 위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그 고통은 그저 타인의 것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연결되어 타인에 대한 배려로 이어질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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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5-17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간만에 언니와 제가 같이 읽은 책이 나왔네요. <그림자를 판 사나이>!
읽은지 꽤 되죠. 서재 활동 초기 때였던 것 같은데.
살짝 지루했던 것 같기도한데 나름 괜찮았던 책으로.
원래 독일문학이 좀 그렇잖아요. 요즘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어요.
어디 좋은데 다녀오셨나봐요. 어제 소나기치곤 장맛비처럼 내리고 약간 후텁지근한 것으로 보아
이제 초여름으로 넘어가려나 보다 싶어요. 덥기 전에 잘 다녀오셨네요.^^

페크pek0501 2025-05-17 20:36   좋아요 0 | URL
하하~~ 오늘로 그림자를 판 사나이, 를 완독했어요. 저는 재밌게 읽었어요. 아이디어가 기발하잖아요. 그림자를 풀밭에서 살짝 거둬들여 둘둘 말아 접어 가지고 간다는 것.
그림자를 주는 대신 금화 주머니를 받게 되어 부자가 되었으나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라고 사람들한테 무시 받는 존재가 됩니다. 과연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ㅋㅋ여러 가지를 유추해 보라는 게 작가의 의도처럼 느껴집니다.^^

yamoo 2025-05-17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 끝내줍니다. 그리고 싶은 풍경이네요. ㅎㅎ
저도 그림자를 판 사나이 재밌게 읽었더랬죠. 가장 필요없은 게 인간의 가치를 드러낸다는 교훈적인 내용이라 일종의 동화책 같았죠.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5-05-17 20: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사실은 사진을 올리고 싶어서 이런저런 글을 끌어다 썼어요. 지금 올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신록이 한창 예쁠 때라서요. 한번 그려 보십시오. 푸른 5월의 풍경을!!!
저는 그림자를~ 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다 가지고 있어야 차별 받지 않는다, 쪽으로 읽었어요. 이민자, 성소수자 쪽으로도 생각해 봤네요.^^

잉크냄새 2025-05-17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가 연두연두 초록초록 합니다.
계절을 걷다 보면 연두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이맘때즘의 계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페크pek0501 2025-05-18 15:50   좋아요 0 | URL
연두 초록이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간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건가요?
잉크냄새 님의 표현이 참 좋으십니다!!

서니데이 2025-05-18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지난번 서재 사진의 분홍색 꽃도 좋았지만, 연초록 풍경 사진도 참 좋네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다른 사람은 모두 가지고 있는데 자신만 없다고 생각하면 결핍이나 소외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없어도 사는데 지장없지만, 없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다음에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사진 잘 봤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5-18 15:55   좋아요 1 | URL
날씨가 참 좋네요. 집에 있기 아까울 정도로요. 그러나 집에 있는 게 저는 더 좋아요.
연초록도 예쁘지만 빗물이 고여 있는 게 맘에 들어 서재의 전체 배경으로 올려 봤어요. 의자 밑에 빗물이 있지요.
다수의 모양새나 성향을 따르지 않으면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은 정당한가, 하는 문제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흥미를 끄는 소설입니다.
푸른 5월이 길게 길게 ~~~ 머물다 가면 좋겠습니다^^


2025-05-20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21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5-05-21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 참 잘 찍으시네요.
초록으로 가득찬 화면이 너무 좋네요.

시기와 질투.
저도 한때 질투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어차피 질투한다고 그것이 내 것이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투 자체를 안 하게 되는 듯 합니다.
질투를 해서 내가 뭔가 달라진다면 그건 약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질투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저는 달리기 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구요.
저렇게 잘 달릴 수 있는 젊은 신체에 질투가 나지만,
저는 절대 젊은 몸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아무 소용없는 감정입니다.
그냥 이 늙어가는 몸을 받아들이고,
이 몸으로도 어떻게든 달리기와 다른 좋아하는 운동들을 잘 하도록
익숙해지는 길 밖에 없겠지요.

페크pek0501 2025-05-23 12:14   좋아요 0 | URL
사진은 스마트폰 덕분입니다. 사진 찍고 나서 색상을 밝게 입히고 불필요한 부분을 자르는 등 편집을 합니다. 사진 잘 찍는 방법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잘 모를 땐 대각선 구도를 활용하라고 하더군요. 맨 아래의 두 사진이 대각선 구도죠. 완전한 대각선보다 살짝 비껴가는 듯해야 더 좋은 것 같아 그렇게 찍는 편입니다. 사람만 없으면 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데 사람이 끼인 사진이 많아 잘라내곤 합니다. 초상권 침해, 운운할까 봐서요.ㅋㅋ
저도 나이 이길 장사 없다, 는 말이 와 닿더라고요. 젊은이들이 당연히 부럽죠. 더 늙지 않기만을 바랄 뿐인데 이것도 불가능한 바람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