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름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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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국내 번역은 시리즈의 7번째 작품인 스노우맨부터 시작한다. 역대 최고의 흥행작인데다 헐리우드 영화 판권 계약까지 마쳤으니 국내에 첫 선을 보이기엔 안성맞춤인 작품이었다. 다만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시리즈를 역순으로 읽게 된(그렇게 번역, 출간되니까) 부작용, 그러니까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를 잔뜩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나 같은 사람들만 씩씩거리게 됐을 뿐이다. 어쨌든 처음 접한 스노우맨의 해리 홀레는 이미 지쳐버린 중년의 알코올 중독자였고 갖은 악습과 고집불통이 몸에 밴 꼰대였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악당의 피를 뒤집어써야만 했던 영웅의 초라한 뒷모습처럼, 그의 내면에 담긴 괴로움과 쓸쓸함이 충분히 이해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부족하고 모난 부분조차 인간적으로 느껴졌기에 애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지켜보게 됐다. 그러나 이런 안타까움도 잠시. 스노우맨 바로 다음권인 레오파드 부터는 이해라는 범주를 넘어서 짜증을 불러 일으키기 시작했다.


내가 모든 매체를 통틀어 가장 싫어하는 요소는 주요 등장인물의 의미 없는 죽음이다. 이야기란 수많은 인생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한 장치는 의미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이 향하는 곳이 비중이 높고 주인공과 가까운 관계라면 더더욱. 그것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담고 있는 인생에 대한 존중이니까. 그런데 이 시리즈는 그런 거 없다. 존중,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아니면 콧구멍에서 킁하고 뱉어내는 콧물인가요?


해리 홀레 시리즈에서 비중이 높고 주인공과 가까운 관계라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망자는 다음과 같다.

엘렌 옐텔 / 잭 할보르센 / 비아르네 묄레르 / 베아테 뢴


이 중 그나마 의미 있는 죽음이라고 납득할 수 있는 건 엘렌 정도(오슬로3부작 내내 해리의 모터베이션이 된다), 나머지는 왜 죽었는지 의미를 모르겠는,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한 인물들이다. 뭐, 작가에겐 의미 있는 죽음이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상 갈등을 유발할 새로운 인물을 넣거나(할보르센&뮐레르) 필요 없는 인물을 퇴장시켜야 했는데(베아테 뢴) 가장 쉽고 편하면서도 자극적인 방법이 기존 인물의 사망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 등장인물들에게도 각자의 인생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인생들은 해리 홀레 시리즈 속에서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 채 의미 없이 말초신경 한번 자극하고 끝내버릴만한 하찮은 것 따윈 아니었다. 특히 폴리스에서 사망한 베아테 뢴의 경우엔 더더욱.


베이테는 과학수사과 소속으로 두뇌 일부의 특수한 상태 때문에 한번 본 얼굴은 절대 잊지 않는 능력을 지녔다. 이 능력은 해리 홀레가 수사를 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다. 하지만 소설이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 능력은 빛을 바라고 베아테도 얼굴 인식 능력보단 과학수사과가 갖고 있는 자원으로 해리를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 맡게 된다. 첩보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컴퓨터 얼굴인식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걸 이제는 웬만한 일반인조차 다 아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해리 홀레 시리즈도 최첨단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베아테의 능력보단 컴퓨터에 능숙한 등장인물이 더 필요했을 거다. 하지만 그 인물들의 등장을 위해 꼭 구시대의 인물을 사망으로 퇴장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것도 산 채로 토막 나 죽었다는 설정은 더더욱 필요 없었다. 


시리즈의 시작부터 폴리스에 이르기까지 베아테의 인생은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는다. 시리즈 초반 해리의 동료 할보르센과 연인 관계로 발전했지만, 할보르센은 사건 해결 도중 사망했고, 그녀는 졸지에 유복자를 임신한 미망인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베아테는 의연하게 슬픔을 견뎌내며 꿋꿋하게 아이를 낳아 어머니와 함께 양육하는데, 이는 그녀의 아버지가 경찰로 순직한 후 역시 꿋꿋하게 자신을 길러낸 어머니의 모습을 보아온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베아테의 인생을 어떻게 그렇게 극단적인 것으로 몰아갈 수 있단 말인가. 사회정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사망한 아버지와 연인을 앞서 보내고 평생 꿋꿋하게 노력해온 그녀의 인생을 말이다. 아무런 존중도 없이, 의미도 없이. 그저 뻔한 사냥감 하나로 전락시킨다는 건 베아테와 같은 수많은 인생들을 모독하는 일 아닌가. 남편과 하나뿐인 자식이 범죄에 희생당한 베아테 어머니 인생은? 본인이 태어나기 전에 범죄자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와 학교 들어갈 무렵 그보다 훨씬 잔혹하게 살해당한 어머니, 그리고 역시 범죄자에게 살해당한 경찰 출신 외할아버지를 둔 베아테 아들의 인생은? 에필로그에서 베아테의 사진 올려놓고 추억하는 장면 하나 나왔다고 해서 이 모든 인생들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졌다고 여기는 것은 기만이다.


베아테의 인생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면, 베아테를 죽이지 말고 경찰을 퇴직시켰거나 다른 나라나 다른 도시에 일자리를 잡고 떠나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했어야 했다. 라켈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어쩔 수 없이 꼭 죽여야 했다면 베아테가 죽는 순간까지 경찰다운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나오거나, 평소 똑똑한 그녀의 캐릭터에 맞게 다잉 메세지를 남겨 수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했어야 했다. 아니면 최소한 엘렌의 경우처럼 베아테의 죽음이 해리에게 강력한 모터베이션이 되어야 했다. 그게 시리즈 3편부터 10편까지 등장한 인물과 그 인생에 대한 예의였다. 하지만 그런 장면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배려, 그런 존중 같은 건 이 소설에 없다. 베아테가 죽었어? 엉엉. 부둥부둥. 슬픔 극뽁! 범인 잡자! 끗. 내가 대체 왜 이 소설을 읽고 있는 걸까 처음으로 회의감이 들었다.


설마 아닐 거야, 폴리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도, 그렇게 뒤통수를 맞아놓고도 이게 끝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다음 편인 목마름에 폴리스의 메인 빌런이 이어서 등장한다니까 숨겨진 뭔가가 있을 거라고, 베아테의 죽음이 이렇게 개죽음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읽어온 요 네스뵈라는 작가가 그렇게 가볍게 한 인생을 끝내지 않았을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내 스스로를 향한 희망고문일 뿐, 그런 내용 같은 건 단 1도 없었다. 베아테에 대한 언급은 딱 한번 나오는데 사람 얼굴 기억 잘하는 동료 하나가 있었죠, 가 끝이다. 심지어 해리는 그 말을 할 때도 아무렇지 않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는 걸 말할 때처럼. 바다 건너 와이키키 해변에 사는 와이키키씨가 어젯밤에 지렁이 보고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대요. 끗. 이쯤 되니 서브 빌런 중 하나인 트룰스 베르트센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시리즈를 이어갈수록 재수가 없어지는 미카엘 벨만의 몰락이 마지막 장까지도 확실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대체 이 서브 빌런을 언제까지 써먹으려고 또 이렇게 마무리 짓는 건지. 그렇게 섹스씬을 쓰고 싶으면 미카엘 벨만을 방패막이로 쓰지 말고 아예 본격적으로 19금 소설을 쓰면 되지 않나? 아마 99 퍼센트의 확률로 공중 화장실에서 키가 크고 수박만 한 가슴을 한 트렌스젠더와 섹스를 하다 절정에 달하면 목을 조르며 헐떡이는 내용이겠지만. 아마 10년 전의 나한테 넌 나중에 스칸디나비아에 살고 있는 한 작가의 섹스 판타지를 알게 될 거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그런 건 무라카미 하루키 하나면 된다고! 그리고 이제 슬슬 요 네스뵈의 장광설도 동네 할배의 꼰대질처럼 느껴져 책을 읽을 때마다 지치는 기분이다. 솔직히 그 장광설들(뱀파이어의 기원이 어떻고 저떻고 - 매 소설마다 등장하는 배경 지식에 대한 설명들인데 레오파드부터 길어진다 싶더니 이젠 아주 몇 페이지씩 잡아먹는다) 통으로 빼도 이야기 전개에 전혀 상관없다. 작가 본인이 지식 자랑을 못할 뿐이지. 


올레그가 경찰을 지망하고 해리가 그런 올레그를 응원한다는 이야기엔선 내 눈을 의심했다. 엄청난 반어법인 건가, 아니면 올레그도 곧 사망하는 얘기가 나오는 건가, 혼자 알쏭달쏭해 했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글자 그대로, 문장 그대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술꾼이든 뽕쟁이든, 중독 증상을 극복하고 평범한 직업을 얻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오히려 그런 약점들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런데 살인을 한 사람이 경찰을 지망해서 사회 수호에 이바지하고 싶어 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소설에서든 현실에서든. 올레그가 죽인 대상이 쓰레기 같은 뽕쟁이에 살날이 머지않은 인간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심지어 그 살해 대상이 절친한 친구에다 살해한 이유가 그 인간의 참을 수 없는 막장 행각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마약을 독차지하기 위해서였다면 더더욱 경찰을 지망해선 안됐다. 올레그가 성인이 된 모습으로 등장한다면 어머니인 라켈을 따라 변호사가 되지 않을까 어렴풋이 예상하곤 했었는데, 그의 심지는 참으로 깊고도 깊었다. 어린 시절 희망했던 경찰의 꿈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다니. 이래서 마약을 하면 안 되는 거다. 양심이 사라져버린다고. 이런 애를 마약 하면 그럴 수 있다고 두둔하는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도 양심 없긴 도찐개찐이다. 설마 나만 꽉 막힌 유교 인간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혹시 노르웨이의 도덕관념은 이게 다 용인되는 걸까. 그렇다면 내 안의 도덕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해야 할 것 같은데.


제발 다음 편에선 의미 없는 죽음이 없길. 그리고 여자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것도 줄어들길 바라본다. 하지만 요원한 일이겠지. 해리 홀레 시리즈란 그런 것이니까. 그런 것이라 해리 홀레 시리즈라고 하는 거니까. 해리 홀레 시리즈와의 작별을 준비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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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황태자와 남쪽의 물고기
이마 이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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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 이치코의 이야기는 사람을 홀린다. 책 두께만 빼면 부족할 것 없는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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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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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종교적 색채가 강한 제목 때문에 읽을까 말까 망설였다.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사랑 이야기라는 추천사에 혹해 리처드 매드슨의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읽었다가 잔뜩 골탕 먹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 소설은 종교적 색채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만큼 그 부분에 대해선 담백했다. 책 제목은 19세기에 나온 바이런의 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서 따왔지만. 역자의 말에 의하면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눈치챘을 법한 재치였을 거라고 하는데, 이런 에피소드를 주워들을 때마다 해당 문화권에 대한 배경지식의 부족이 아쉽다. 우리나라 책을 읽는 외국인들도 이런 감정을 느끼곤 할까.

 

소설은 영국 최남단에 사는 해럴드가 20여 년 전 친구였던 퀴니의 편지를 받고 그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영국 최북단까지 1000킬로미터를 걸어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해럴드가 걷는 이유는 암 말기인 퀴니에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지만, 걷기는 점점 퀴니 뿐만 아니라 해럴드 자신을 위한 믿음이자 구원이 되어간다. 소설은 해럴드와 해럴드의 아내 모린의 챕터가 번갈아 나오며 진행된다. 해럴드의 자아성찰이 씨줄이라면 해럴드와 모린의 화해와 사랑에 대한 재확인은 날줄을 이룬다. 어떤 이야기든 둘의 시선이 합쳐져야 온전한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책장을 빨리 넘겨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읽어내느라 가끔은 애가 타기도 했다.    

 

해럴드가 꾸준히 걷는 만큼 책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계속 바뀌고 스쳐 지나가는 등장인물과 그들이 품은 사연들 또한 다양하다. 그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마르티나와 은발의 노신사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임을 알기에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는 관계라니. 아이러니하면서도 묘한 낭만이 있는 해럴드와 그들의 인연이 아련하게 가슴에 남았다.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은 사람은 단연코 리치였다. 현실에서도 어디에나 존재하는,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고 마치 자기가 차린 밥상인 양 너스레를 떠는 사람. 그가 해럴드 대신 모든 일을 해낸 것처럼 거들먹거릴 때는 나도 모린만큼이나 분노했다. 윌프는 하는 짓이 밉상이긴 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 리치만큼 싫지는 않았다. 해럴드가 윌프를 끝까지 토닥인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갔고. 사실 내가 가장 속상하고 허무함을 느낀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개였다. 해럴드의 걷기가 그의 인생에 축약본이었다면 그가 과거에 닿지 못한 개와의 인연을 이제라도 이어가길 바랐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 못했고, 인생이 참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자칫 복잡할 수도 있는 이 모든 요소들은 결국 해럴드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이야기는 상당히 정적인 편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읽는 속도가 더뎠으나 한번 속도가 붙고 나자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쉬울 정도로 푹 빠져 읽게 됐다. 특히 해럴드 내면과 풍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소설의 탄탄한 구성에 깊이감을 더하고 읽는 재미를 훨씬 배가 시켰다. 영국 문학 특유의 목가적인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오랜만에 밀도 있는 소설다운 소설을 읽었다는 만족감이 이야기가 주는 감동과 여운만큼이나 진하게 느껴져 뿌듯했다. 앞으로 작가 레이철 조이스의 작품들을 만나볼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문득 배우 윤여정 씨가 TV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60세가 되도 인생은 모른다. 처음 살아보는 거니까.
나도 67살은 처음이다. 내가 알았으면 이렇게 안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다.
그냥 사는 것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씩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 나이 들면서 붙잡지 않는 것.

 

윤여정 씨와 해럴드처럼 60여 즈음에 이르게 되면, 나도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좋은 책을 만나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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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넘브라의 24시 서점
로빈 슬로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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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작가가 트위터 회사의 매니저로 근무하다 영감을 얻어 집필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책 속에서 SNS와 구글을 비롯한 최첨단 기기들에 대한 찬사가 끊이질 않는다. 재밌는 점은 이 소설의 배경이 시카고에 있는 오래된 서점이라는 거다. 당연히 오래된 서점과 최첨단 기기,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갈등과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책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작가는 젊은 세대와 최첨단 기기 쪽에 손을 들어주지만 내 생각은 작가의 생각과 다르다. 이북이나 최첨단 기기들이 시대의 흐름이란 것엔 동의하지만 최첨단 기기가 옳고 아날로그 방식의 책이 언젠가는 이북에 통폐합되리란 생각엔 동의하진 않는다. 

 

전자책은 전기가 없으면 볼 수 없고, 삭제키 하나만으로도 간단히 소실되지만 종이책은 전기가 없어도 볼 수 있고 삭제키 하나로도 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물이나 불로 인해 못 쓰게 될 수도 있고 세월에 의해 소실될 위험이 있다. 그에 비해 돌에 새긴 고대 문서는 오랜 세월을 뚫고 현존하고 있다. 그러니 가장 영구한 것이 이북이나 최첨단 기기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궁극적으로 최첨단 기기들을 통해 영구하게 보존할 수 있는 것은 SNS에 올린 부끄러운 글에 대한 기억뿐이지 않을까.

 

소설은 페넘브라 24시 서점에 취직하게 된 전직 웹디자이너 클레이가 우연히 서점의 비밀을 눈치채고 파헤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집어넣어 자신이 읽고 싶은 소설로 만든 게 이 책이라고 하는데 그래선지 이 책에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주인공 클레이를 비롯해 서점 주인 페넘브라와 그들의 개성 넘치고 매력적인 친구들도 그렇고, 사람들이 자주 찾지 않는 오래되고 신비한 고서점이라는 배경 장소와 부러지지 않은 책등이라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비밀단체가 등장한다는 것도 그렇다. 작가의 유머러스한 문장들도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요소가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진 않는다. 맛있는 것과 맛있는 것을 합쳐서 요리한다고 해서 반드시 맛있는 게 완성되는 건 아니듯 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에 걸렸던 게 세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해리포터와 다빈치코드에서 영향을 받은 티가 너무 많이 난다는 것. 두 번째는 작가의 유머러스한 문장을 위해 이야기가 삼천포로 자주 빠진다는 것. 세 번째는 작가의 자료조사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즉, 한마디로 말해 소설로서의 독창성과 완성도가 많이 털어진다. 역자 후기에 쓰여있는 대로 이 책을 가볍고 재밌게만 즐기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말이다.

 

아주 재밌을 수도 있었지만 요소들이 합을 이루지 못해 아주 재밌는 소설은 되지 못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 읽는 동안 많이 아쉬웠다. 주인공들 연령만 10대 후반으로 낮췄어도 좀 더 그럴듯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는데, 그랬다면 해리포터 느낌이 너무 많이 난다고 욕을 먹었을 것 같긴 하다. 분명 가능성 있는 작가니 다음 작품에서 좀 더 정제된 작품으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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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1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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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에 대한 책 이야기를 좋아해서 인문학부터 수필, 소설에 이르기까지 책에 대한 책 이야기라면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실존하는 책들을 가지고 책에 대한 책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다. 수필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독서 이야기에 치중하다 보니 취향이 나와 맞지 않은 경우 읽는 재미가 덜할 수밖에 없고 인문학 역시 비슷한 경향을 지니지만, 소설은 등장인물 별로 다양한 책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아 책에 대한 스펙트럼도 넓힐 수 있고 새로운 정보도 습득하게 되는 등 여러모로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아한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소설은 고서를 취급하는 비블리아 고서당을 배경으로 세월이 쌓인 다양한 책과 책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책들 중 내가 읽어본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고작해야 나쓰메 소세키와 다자이 오사무, 두 작가의 이름과 대표 작품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들이 이 책을 읽는 장벽으로 작용하진 않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 속의 주인공 고우라 다이스케가 책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모든 책에 대한 정보가 그의 시선에 맞춰 꼼꼼하고 담백하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막힘없이 수월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고우라와 함께 소설을 지탱하는 주인공은 비블리아 고서당의 주인장인 시노카와 시오리코다. 고우라의 고용주이기도 한 그녀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책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고서에 정통한 고서점 주인답게 어느 책이던 손에 들어오는 즉시 책의 이력을 파악해내고 특유의 통찰력까지 발휘해 책에 얽힌 사연을 단번에 유추해낸다. 책을 읽는 동안 그녀의 모습에서 셜록 홈즈가 연상되곤 했는데 고우라 역시 왓슨처럼 시오리코의 손과 발이 되어 열심히 움직이니 이런 인상은 책의 끝 부분으로 갈수록 강해졌다. 물론 둘은 우정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홈즈 왓슨 콤비와 달리 서로에 대한 이성적 호기심이 기반이 된 남녀 콤비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이 묘한 콤비 외에도 솔직하고 당찬 시노카와의 여동생 아야카라던가 감초처럼 등장하는 고서전문 판매자 시다까지, 확실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감초처럼 등장하여 이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책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책을 읽기 전 라이트 노벨이라는 특성상 스토리가 빈약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반은 예상대로였고 반은 아니었다. 스토리 라인은 전체적으로 기승전결이 있고 긴장감도 놓치지 않아 흥미진진했다. 짜임새와 구성도 꼼꼼하고 탄탄했으며 여러 책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그에 얽힌 이야기는 작가가 정말 책을 좋아하고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라이트 노벨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감성이 중간중간 튀었던 것은 예상대로였다. 특히 결말을 위해 스토리 군데군데를 부자연스럽게 틀어버린 것이 눈에 거슬렀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반 아이가 준 생일선물을 거절한 게 나쁜 놈으로 찍힐만한 일인지 모르겠다. 개인 정보를 생판 남에게 알려준 건 욕먹을만한 짓이긴 한데 선물은 받기 싫으면 안 받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한일 정서상의 차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나에겐 너무 억지처럼 느껴졌다. 

 

오래간만에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보이는 소설을 읽을 수 있어 즐거웠다. 작가의 필력과 스토리가 시리즈 뒷 권으로 갈수록 좋아진다니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도 기대된다. 남은 시리즈들도 찬찬히 읽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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