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40세 전후로 보이는 두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고 있다. 나보다 젊은 작가들은 무엇에 대해 글을 쓰는지 알고 싶었다. 


*













정지우,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신문에 실리기 좋을 에세이들이 담겨 있다.


식궁합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 이 책에는 ‘예민함 궁합’이란 제목으로 쓴 글이 있다. 


연애나 결혼에서 흔히 이러저런 궁합들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궁합 중의 궁합은 ‘예민함의 궁합’이 아닐까 싶다.(87쪽)


누군가는 냄새나 청결에, 누군가는 말투나 표정에, 누군가는 단어나 색깔에 민감하다.(88쪽)


그렇게 어릴 적부터 어디에 얼마나 예민한가는 그 사람 자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이 예민함의 궁합이 대단히 중요해지는 것 같다. (...) 말투에 너무 예민해서 상대방의 퉁명스러운 말투 하나에도 크게 상처받는 사람은, 말투 자체가 별달리 문제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과 살면 늘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는 냄새에 극도로 예민하여 항상 가글을 하는데 한 사람은 좀처럼 그런 데 둔감하다면, 살아가면서 서로에 대한 나쁜 기억들이 무척 많이 쌓이게 될 것이다.(88~89쪽)


예민함의 부분들이 거의 일치하는 사이는 사실 그렇게까지 서로를 미워할 이유가 없고 크게 불편할 이유도 없다.(89쪽)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결혼하기에 앞서 상대편의 무엇을 참기 어려운가에 대해 서로 관심을 갖고 판단하여 결혼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자신이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한 예로 수다스러운 사람이 싫을 수도 있고 말 없는 사람이 싫을 수도 있다. 


나는 독재적인 사람이나 오만한 사람을 싫어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나마 좋게 해석하여 참을 수 있다. 상대방이 기분 상할까 봐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러나 독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오만한 태도로 타인을 대하는 사람은 상대하기가 어렵다.  



 

**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소설가가 쓴 산문집이다.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한 신문에 연재했던 짧은 원고들을 매만진 칼럼들이라고 한다.  


당신은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더라도, 판단을 마지막 순간까지 유보하는 사람.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만 가지고 손쉽게 누군가에게 선이나 악으로 꼬리표를 붙이려 하는 순간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97쪽)


소설가로서 나는 언제나 서사의 매끄럽지 않은 부분, 커다란 구멍으로 남아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마음을 주는 사람이다. 소설에서도, 그리고 인생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은 그런 지점들이 아닐까? 우리는 삶과 세계를 하나의 매끄럽고 완결된 서사로 재구성하려 애써 노력하지만, 사실은 끝끝내 하나가 될 수 없는 단편적인 서사들을 성글게 엮으며 살아갈 뿐이니까. 그리고 바로 거기, 언어로 설명할 수 없고 때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서사와 서사 사이의 결락 지점. 그런 지점이야말로 문학적인 것의 자리일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98쪽)


한참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어서 옮겨 봤다. 





봄은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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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5-04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예민한 게 다르기도 하죠 정말 그게 잘 맞아야 좋을 듯하겠습니다 다르다 해도 서로가 무엇에 예민한지 안다면 좀 나을 듯한데, 그런 데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자신은 아무렇지 않으니, 뭘 그런 것 가지고 할 때가 많을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5-05-05 21:09   좋아요 0 | URL
엄밀히 따지고 보면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듯합니다. 누구나 어떤 면에선 예민한 거죠. 또 예민하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예민하지도 않고요. 아마 모든 면에서 예민했다가는 과부하로 살 수 없을 겁니다.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래? 하는 사람하고는 잘 지내기 어렵겠죠.^^

서니데이 2025-05-04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 사이는 참 어려운 것들이 많아요. 잘 맞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은 것 같거든요. 처음엔 잘 맞던 사람도 시간 지나면서 달라지는 것들이 생기고요. 예민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서로 다르고 만약 반대라면 조금 힘들거예요. 그래도 잘 배려하는 분이 계시고, 또 잘 안될 때가 있긴 한 것 같고요.
주말이 거의 다 지나갔어요. 페크님,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5-05 21:16   좋아요 1 | URL
결혼하고 나면 육아 문제, 교육 문제로 많이 다툰다고 합니다. 자녀에게 사교육을 많이 시키고 싶은 아내와 그렇지 않은 남편과의 마찰 같은... 이런 것도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인 거죠. 연애할 때 충분히 상대편에 대해 알아야 하고 문젯거리가 될 만한 것은 서로 얘기를 나눠 타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듯합니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이어서 절에 갔다왔답니다. 어머니때부터 다니던 절이 멀리 있어서 자주 갈 수 없으니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는 간답니다. 푸른 5월처럼 우리 마음도 푸르기를 바랍니다.^^

잉크냄새 2025-05-05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민함의 궁합이라는 표현이 참 적절하기는 한데, 쉬워 보이면서도 쉽지 않은 문제로 보입니다.

페크pek0501 2025-05-08 17:01   좋아요 0 | URL
정말 쉽지 않겠죠?
지금 생각난 것인데, 주장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면 양보와 타협이라는 덕목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5-05-07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민함의 궁합 공감가네요^^

페크pek0501 2025-05-08 17:02   좋아요 1 | URL
저도 공감이 갔어요. 곱씹어 볼 만한 글입니다.

모나리자 2025-05-17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젊은 세대 작가가 쓴 글을 읽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글을 쓰는지 알 수 있겠네요.
부지런히 살아야 책도 많이 읽을 수 있는데 한동안 게으르게 살고 있는 제가 반성하게 됩니다.
6월부터는 좀 더 활동하기로 다짐해 봅니다.ㅎ^^

페크pek0501 2025-05-17 14:34   좋아요 0 | URL
저보다 젊은 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아요. 정보가 빠르고 이 시대에 더 익숙한 글을 써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지요. 저 역시 사 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 많아 ‘아 저 책도 빨리 읽어야 하는데‘ 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게다가 할일은 어찌나 많은지..ㅋㅋ
그래도 틈틈이 좋은 계절이라는 것을 느끼며 사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25-05-21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민함 궁합이란 부분에 정말 공감해요.
저는 말 속에 숨은 뜻, 맥락 따위에 예민한 편입니다.
엊그제도 누군가와 그런 대화를 나눴어요.
상대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라고 했지만,
그의 말 속에 가난에 대한 혐오가 숨어 있다고 느껴 저는 무척 불쾌했습니다.
제가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지적을 하고 말았는데,
그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왜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오히려 화를 내더라구요.
화가 났지만 참고 차근차근 말하고 있던 저도 그 지점에서는 그냥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어요.

페크pek0501 2025-05-23 12:29   좋아요 0 | URL
오히려 화를 내면 안 되는 건데 말이죠. ˝아, 그렇게 들으셨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하는 정도로 말했으면 좋을 텐데요. 저도 가끔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어요. 말 속에 뼈가 있네, 하는 느낌이요. 저건 나 들으란 소리 같은데 하는 느낌. 지적해서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내 기분만 상하죠. 한 사람의 생각을 고치려면 그 사람의 뇌 구조 전체를 바꿔야 하는 일일 거예요. 삶의 역사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그 대신 그런 사람은 안 만나게 되더군요. 지적질하기 싫거든요. 편한 사람만 만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만나게 되어요. 유유상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