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지난 여름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침대에 깔아 놓은 전기장판을 켜고 그 따스함에 앉아 책을 읽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고. 그 옆엔 한 잔의 커피가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내뿜으며 커피 향을 풍길 것이고, 또 그 옆엔 과일 담은 접시가 있을 것이다. 그날이 왔다. 내가 기다리던 겨울이다.
드디어 전기장판의 따스함이 좋아지는 계절 속에 있다. 커피를 갖다 놓고 과일을 갖다 놓고 침대에 앉아 넷북으로 이 글을 쓴다. 역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에 좋은 계절은 여름보단 겨울이다.
1. 최효찬
바쁘게 살다 보면 책 볼 시간이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많다. 특히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직장인들이라면 더욱, 독서를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서 매일 책을 읽는다면 그 합한 시간은 결코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매일 30분씩 1년 동안 꾸준히 독서한다면 총 182.5시간의 독서를 하는 것이 되고, 2년 동안 꾸준히 독서한다면 총 365시간의 독서를 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하루 30분의 독서를 권하는 책이 있다.
최효찬 저, <잠자기 전 30분 독서>는 “직장인을 위한 독서안내서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독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잠자기 전 30분'을 권한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일 뿐 아니라 내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독서를 좋은 습관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 아시아 최고 갑부인 홍콩 청쿵그룹의 리카싱 회장도 무려 70년 동안 잠자기 전 30분 독서를 실천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저자인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방법까지 제시한다. 하루 30분, 1주일에 6권씩 한 달간 읽을 책 24권을 뽑아 제공한다. 1장에서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등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기경영' 관련 책을 소개한다. 2장에서는 가족경영, 3장에서는 조직경영과 관련된 책을 모았다. 4장에서는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는 인간경영 관련 책을 알려준다. 리딩 포인트를 제시해 따분하고 어려운 책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한국경제, 2011. 10. 27.)
잠자기 전 30분의 독서도 좋겠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 내가 한동안 해 본 것으로,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하는 독서도 괜찮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를 하고 바로 책을 펴고 30분간 책을 읽고 나서 그 다음에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매일 30분씩 일찍 잔다면 수면시간은 줄어들지 않는다. 요즘은 다른 방법으로 독서를 한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비교적 한가롭게 지낼 만큼 시간이 많은데, 그런 날에 책에 집중해서 왕창 읽는 것이다.
이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1장 자기경영 …… 내면 들여다보기
1day 인생은 ‘산’이 아니라 ‘사막’이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2day 인생의 성공은 마시멜로 먹기에 달려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
3day 한 번뿐인 삶, 진짜 삶을 추구하라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존 그리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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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day 말재주가 없다고 낙담하지 마라 -『논어』, 공자
이처럼 하루하루 읽어야 할 책들을 제시하고, 이것들을 읽는 효과적인 독서방법도 알려 준다.
저자는 소설을 읽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소설은 때로 현실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더 교훈적인 지침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소설을 읽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리샴의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최효찬 저, <잠자기 전 30분 독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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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엔 그냥 소설이 좋아서 읽으며, ‘교훈적인 지침들’을 얻는 것은 그냥 덤으로 얻어지는 보너스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김무곤
나는 종이책을 좋아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에서 느껴지는 빳빳한 종이의 질감을 사랑한다. 요즘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나처럼 여전히 종이책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무곤 저, <종이책 읽기를 권함>은 종이책을 예찬하는 책이다. 저자는 책 읽는 것보다 즐거운 일을 찾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독서광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책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아지와 산보하는 일, 가족과 바닷가에 가서 연을 날리는 일, 이런 일이 있으면 책 읽기를 그만두고 그 일을 하자. 우리는 책 읽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다.
- 김무곤 저, <종이책 읽기를 권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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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을 읽기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인생을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 이것은 마치 밥을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와 같이 인생이냐, 책이냐, 무엇이 먼저인가를 따져 보는 저자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확실히 독서광이 맞을 것이다. 이런 건 독서광만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니까.
3. 쇼펜하우어
내가 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20대 초반 때였다. 작가 이외수, 이문열, 이청준, 오정희, 양귀자 등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 그들이 신작을 발표하면 꼭 사 봤다. 어느 신문 인터뷰에선가 이외수 작가가 자신의 고정 팬이 30만 명이어서 신작을 내면 기본적으로 30만 부는 팔린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30만 명 안에 내가 포함될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책에 완전히 빠져 열광하기 시작한 건 30대 초반 때이다. 외국문학에 빠졌고, 사회과학에 빠졌다. 어떤 날은 새벽 4시까지 읽기도 했고, 하루에 한 권을 읽은 적도 있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고 느꼈다. 책에 감탄하고 감동하면서 책을 숭배했다. 내게 책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어 보였다.
요즘도 여전히 책을 좋아해서 책을 끼고 산다. 하지만 그때처럼 많이 읽지는 못한다. 그때보단 체력이 많이 약해지기도 했고 시간이 많이 나지도 않는다. 그래도 주위 친구들에 비하면 여전히 책을 많이 보는 편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 책을 읽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더 똑똑해지지 않는 것 같아서다. 오히려 나보다 책을 읽지 않는 친구가 더 똑똑하고 더 지혜로운 것 같아, 그 친구에게 조언을 구할 때가 많아서다. 그동안 읽은 책에서 내가 얻은 지식과 정보와 지혜는 다 어디에 가고, 어리석다고 할 만치 바보짓을 계속하며 살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겸손의 미덕을 잊었고, 때로는 타인에게 상처를 줬다. 현명함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현명하지 못해 속상한 적도 많았다.
그래서 독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어떤 논제에 대하여 스스로 사색하기 전에 남의 것을 읽는다는 것은 위험하다. 독서한다는 것은 남이 자기를 대신하여 생각하는 것으로서 우리는 단순히 남의 정신적 과정을 반복하는 데 불과하다. ……그런 이유로 하루의 대부분을 독서로 소비하는 사람은 ……서서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쇼펜하우어)
- 윌 듀랜트 저, <철학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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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독서를 하면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어 점점 어리석어질 수 있는 걸까. 사색이 없는 독서가 무용지물이라면, 그렇다면 나의 독서는 어떠한가.
그런데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게 있다. 아무리 독서가 무용지물이라고 할지라도 아마 난 독서를 계속할 것이라는 것. 새 책의 빳빳한 종이의 질감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 그렇고, 책의 생김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 그렇고, 책이 쌓여 있는 풍경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 그렇다. 지금껏 책을 대체할 만한 다른 매력적인 걸 보지 못했다.
4. 임어당
임어당에 의하면, 이성을 보고 첫눈에 반한 사람이 그 상대의 키도, 얼굴도, 머리칼 색도, 목소리도 다 좋게만 보이는 것처럼, 독서의 경우도 그렇게 반할 만한 작가를 발견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다. 문체도, 취미도, 견해도 모두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나면 그 책에서 자기 혼에 알맞은 자양물을 골고루 흡수하게 된다는 것. 수년이 지난 뒤 그 작가에게 싫증이 나면 또다시 새 연인이 될 책을 찾으면 된다. 그러므로 ‘만인의 필독서’라는 것은 없고 다만 개인적으로 각각 좋아하는 책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자기 마음에 드는 작자의 발견은 자기의 지적 발전을 꾀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때에는 혼의 친화(親和)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금의 작가 가운데서 그 혼이 자기 혼과 가까운 사람을 발견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참으로 가치로운 것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임어당 저, <생활의 발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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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임어당의 말에 내가 동의하는 이유는, 독서를 좋아하게 되는 시점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발견하는 시점이란 것을 내 경험을 통해서 알기 때문이다. 독서를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5. 알퐁스 도데
독서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준 게 나에겐 소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가 알퐁스 도데가 쓴 단편소설 <별>이다. 이 작품이 좋아서 여러 번 읽었다.
알퐁스 도데 저, <별>은 프로방스 지방에 사는 어느 목동의 이야기이다. 목동인 ‘나’는 주인집 딸 스떼파네트 아가씨에 대해 그리워하다가, 어느 날 그녀와 얘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 맑고 순수한 사랑을 보여 주는 다음의 글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글이다.
“뭐라구요! 별들도 결혼을 하나요?”
“그럼요.”
그리고 별들의 결혼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했을 때, 나는 무엇인가 신선하고 보드라운 것이 어깨 위에 가볍게 얹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게 살포시 기댄 것은, 잠이 들어 묵직해진 아가씨의 머리였으며, 리본과 레이스, 그리고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함께 부드럽게 스쳤습니다.
아가씨는 날이 밝아 하늘의 별들이 희미하게 사라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그렇게 있었습니다. 마음속이 약간 두근거렸지만, 아름다운 생각만을 보내준 청명한 밤의 신성한 보호를 받으며 나는 잠들어 있는 아가씨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별들이 양떼처럼 말없이 조용한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별들 가운데서 가장 곱고 가장 빛나는 별이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 위에서 잠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 알퐁스 도데 저, <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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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는 작가를 발견하고도 독서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이런 발견! 이것이 독서가 좋아지는 출발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 경험에 의하면, 독서를 좋아하려면 여러 책을 읽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내야 한다. 나의 경우엔 소설이 좋아져서 독서가 좋아졌지만, 요즘은 에세이와 심리학 서적을 즐겨 본다. 한 분야의 책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의 책도 좋아지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