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12) 글을 왜 쓰는가, 자랑 때문인가 재미 때문인가


사람들은 왜 글을 쓸까. 사람마다 글 쓰는 이유가 각각 다를 것이다. 그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두 가지만을 뽑아 쓰고자 한다.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인가, 재미있어서인가.


첫째,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쓰는 목적 중의 하나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책을 통해서든 블로그를 통해서든 글 쓰는 사람은 남에게 읽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여기엔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이 끼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지적 능력 또는 글쓰기 능력을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란 작품에서 이렇게 썼다.




“의젓한 인간이 진심으로 만족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화제란 도대체 무엇일까?

답 -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다.” -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을 자랑할 수 있어서다. 이것은 글을 쓸 때도 나타난다. 그래서 정확한 자서전이란 없다고 한다.



“하이네가 단언한 바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반드시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므로 정확한 자서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따른다면, 예컨대 루소만 하더라도 자기 참회록 속에서 줄곧 자신을 헐뜯고 있는데, 그것은 허영심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봐야 한다. 나는 하이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때로 자기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엄청난 범죄를 날조하여 스스로 범인을 자처하고 나설 수도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작가 최인호는 최근 한 일간지(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왜 (사뮈엘) 베케트니 이런 작가들이 인터뷰를 안 하는지 알겠어. 인터뷰라는 건 자기 미화야. 100% 자기 미화. 난 옛날부터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동시에 싫었어. 나온 기사를 보면, 진짜 내 얘기가 아니야. 남에게 보여지는 내 얘기였어.”


여기서 ‘자기 미화’란 결국 ‘자기 자랑’인 셈이다. 신문 인터뷰뿐만 아니라 TV 출연에서도 ‘자기 자랑’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야기를 나누는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은 자신의 생활을 소개하며 자신의 집, 부부금실, 음식솜씨 등을 자랑스럽게 공개한다. 한결같이 집은 멋지게 꾸며져 있고, 부부금실은 좋으며, 음식솜씨는 최고임을 보여준다. 결국 ‘자기 자랑’이다. 의사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가 TV에 출연해 하는 일은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줌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의 강점을 알리는 일 다름 아니다. 그래서 어느 의사는 유명인사가 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 수가 증가한다고 한다. 그가 정치가라면 그가 출마할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는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가 작가라면 그가 쓴 책의 판매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점이 있더라도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은 결코 TV 출연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자랑하고 싶은 욕구는 작가들이나 TV에 출연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주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주부들이 모이는 친구 모임엔 남편 자랑과 자식 자랑의 얘기가 늘 단골 화젯거리가 된다. 이것과 관련한 글이 있다.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에 수록된 글이다.




평균적인 유부녀는 다른 유부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사는 듯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그들의 남편보다 부유하고 자기 자녀들이 그들의 자녀들보다 성공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고자 애를 쓴다. 부유한 유부녀라면 집안 관리와 인테리어에 있어 이웃들보다 나은 취향을 과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 <런던통신 1931-1935>, 90~91쪽.


 

결론적으로 말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나 TV 출연을 하는 사람들이나 보통 주부들이나 모두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어떤 점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모두가 갖고 있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가까운 것이지, 글 쓰는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글 쓰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매슬로우(A. Maslow)의 계층적 욕구론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자신의 욕구충족을 증가시키거나 아니면 욕구충족의 감퇴를 회피하려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충족되지 않은 욕구에 주의를 기울이고 바로 그들 욕구의 충족을 추구하기 위해 동기를 갖는다. 그리하여 인간의 욕구는 가장 낮은 단계의 생리적 욕구를 비롯해, 안전의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 등 상향적 계층화된 욕구구조를 갖고 있다(황상재 저, <조직 커뮤니케이션 이해>를 참고). 이 이론에서 주목할 것은 ‘존경의 욕구’다. 이것은 남들로부터 존경 받거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다. 이 욕구로 인해 인간은 자기 자랑을 늘어놓길 좋아한다.

 

 

둘째, 글쓰기 자체의 재미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남에게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게 글 쓰는 이유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남으로부터 인정받거나 자신을 자랑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악기 연주와 비교할 수 있다. 누구나 피아노나 기타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결국 그 악기에 대한 흥미를 가진 자만이 악기를 다룰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도 결국은 글 쓰는 재미를 아는 자만이 글을 쓸 것이다. 따라서 글을 쓰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글쓰기가 재미있게 느껴져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만 글을 쓴다면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가진 사람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일기의 독자는 남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도 일기를 쓰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글쓰기 자체가 좋아서 쓰는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가 볼까 봐 꼭꼭 숨겨 둔다. 매일 쓰는 건 아니지만 한 달에 몇 번은 꼭 써 온 게 벌써 삼십 년 가까이 되었다. 어떤 인상적인 사건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꼼꼼히 정리해 쓰게 되는데, 훗날 그 일기를 읽었을 때 무슨 뜻의 글인지 내가 알기 위함이다. 이럴 때 글쓰기는 나만의 비밀스런 세계 속에서 작은 행복을 갖게 한다. 

글쓰기엔 분명히 문장과 문단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다. 적합한 낱말의 선택, 그것들의 조합, 직유나 은유로 문장을 묘사, 그것들의 배치, 문단 구성 등을 하는 행위는 마치 퍼즐놀이를 하는 것처럼 흥미롭다. 볼펜으로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컴퓨터로 글을 쓸 때 자판을 두드리는 즐거움도 있다. 자판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재밌는 놀이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작가들이 글을 쓰는 큰 동기를 네 가지로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로 ‘미학적 열정’으로 인한 즐거움을 들었다.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 <나는 왜 쓰는가>에서.


확실히 글쓰기에는 감미로운 즐거움이 있다. 쓰지 않을 수 없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왜 연애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연인들은 ‘만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서’라고 말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도 ‘쓰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서’ 글을 쓴다고 할 수 있다. 글 쓰는 사람들에겐 세상에서 글쓰기만큼 유혹적인 일이 없을 것이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그들은 글쓰기의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나도 지금 이 순간, 그 행복 속에 있다. 

  

..............................................................

<참고사항>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작가들이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제시하였다.

1) 순전한 이기심 :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무시했던 어른들에 보복하고 싶은 욕망. 이게 작가의 동기, 그것도 강한 동기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2)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3) 역사적 충동 : 사물/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 두려는 욕망.

4) 정치적 목적 :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 나는 왜 쓰는가, <동물농장>, 민음사, 137~138쪽.      

 

.......................................................................................
 

<후기>

나는 조지 오웰이 쓴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를 민음사에서 나온 <동물농장>이란 책에서 읽었다. 이 책에는 <동물농장>이란 소설 외에 ‘자유와 행복’과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가 실려 있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만을 모아 놓은 것으로는 한겨레출판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이 있다. 29편의 에세이를 볼 수 있다.


조지 오웰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글은 모두 읽고 싶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1-05-1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쓰는 이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위에 적은 두 가지 이유도 빠지지 않겠지요.^^

여전히 바쁘신지요?

페크pek0501 2011-05-19 18:4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하나도 바쁘지 않아요. 바쁜 일이 끝났거든요. 그저 책 보며 운동하며 지내요. 10년간 했던 돈벌이를 손에서 놨더니 이 '게으른 자유'가 좋습니다. 행복해요.
앞으로는 글을 많이 쓰려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종종 들러 주시면 자극제로 알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순오기님처럼 덩달아...

페크pek0501 2011-05-19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른 자유'에 취해 살다

식구들이 다 나간 텅 빈 집에서 혼자 책 보다가 늦잠 자는 버릇을 못 고쳐요. 아침잠은 왜 그리 달콤한지...
제가 마약처럼 못 끊는 것 - 책과 아침잠과 커피와 운동, 이것들은 중독수준이랍니다. 아침엔 잠 자느라 저녁엔 운동하느라 하루가 짧아요.

컴추루 2011-05-3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난 2번인 것 같은데..그리고 운명에게 떠밀려서 오다보니 뭔가를 쓰고 있고..쓰지 않을려고 고개 돌리면 그 놈의 쓰고 싶은 욕망이 나를 또 가만히 놔두지 않아서 또 쓰고 있고ㅎ 은경씨 큰 목소리 듣지 않았더니 귀가 좀 심심합니다~

페크pek0501 2011-05-31 00:33   좋아요 0 | URL
닉네임이 바뀐 듯. 반가워라ㅋ. 나도 2번입니다.
글쟁이 친구들이 여럿 있는데, 글쓰기를 중단한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어요.
오랜만에 연락되어서 물어보면 글쓰기는 늘 현재진행형이죠. 일종의 중독인가 봐요. 한 번 발을 담그면 뺄 수 없는... 아마 나도 이 짓을 계속할 것 같아요.

오늘 친구가 놀러와서 하루종일 수다 떨었어요. 컴추루님과도 언젠간 수다 떠는 날 있겠죠~~.
 


<책 속을 산책하다가 ~ > ‘진실’과 ‘진실처럼 보이는 것’을 구별하라


1.

사람의 모습엔 ‘진실’인 것과 진실은 아니지만 ‘진실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P부인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울 거리 거리, 골목 골목을 헤매었다. 불쌍한 거지들을 찾아다니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하면 불쌍한 사람들에게도 탄일날에 기쁨을 알릴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P부인은 단 하루저녁만이라도 불쌍한 이들을 위해 따스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자기 집을 열어 놓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난로에 불을 많이 피우고, 뜨끈한 국과 밥을 장만하고, 포근포근한 융으로 만든 속옷 한 벌씩을 주려고 준비해 놓고는, 거리에 나와 불쌍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문둥이를 만날 때엔 아무리 불쌍하긴 해도 우리 집으로 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불쌍한 사람 중에도 비교적 몸이 깨끗한 사람을 붙들고 크리스마스에 자기 집에 오라고 친절히 말해 주었다.


크리스마스날 저녁, P부인의 집엔 절름발이, 곰배팔이, 소경, 늙은 것, 어린 것 할 것 없이 모두 모였다. P부인은 밤이 깊도록 손님 대접에 최선을 다했다. 거지들은 속옷 한 벌씩을 얻어 입고 맛있는 음식이 잘 차려진, 눈이 부신 식탁에 둘러앉아 후한 대접을 받았다. P부인은 나중에는 사진사를 불러다가 쾅하고 사진까지 찍고 손님들을 보냈다.


P부인은 자기 방으로 올라오는 길로 침대에 엎드려 감사하였다. 이렇게 기쁘고 의의 있게 크리스마스를 지내보기는 처음이라고 스스로 감격해 눈물까지 흘렸다. 그리고 사진을 많이 만들어 여러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낼 것을 기뻐하며, 천사 같이 평화스럽게 잠들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천사 같은 P부인의 가슴속엔 뜻하지 않은 분노의 불길이 폭발하였다.


그것은 다른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기 몸둥이처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새 자동차 안에서 엊저녁에 왔던 거지 중에도 제일 보기 흉한 늙은 것 하나가 얼어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이태준의 <천사의 분노>라는 단편소설이다. 불쌍한 이들을 돕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던 P부인은 급기야 자신이 아끼던 자동차가 시체로 인해 더럽혀진 것을 보고 가식적이었던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거지들을 집으로 초대해 후한 대접을 했던 P부인의 모습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처럼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2.

월나라 왕인 ‘수’에게는 아들 4형제가 있었다. 그리고 ‘예’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 ‘예’는 왕자 넷을 다 죽이고 자신이 왕의 뒤를 잇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 중 세 명의 왕자를 무고(誣告)하여 죽였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옳지 않게 여기고, 크게 왕을 헐뜯었다. 왕의 동생인 ‘예’는 또 나머지 한 왕자를 무고하여 죽이고자 하였다. 이에 그 왕자는 반드시 자기도 죽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나라 사람들이 ‘예’를 추방하고자 하는 것을 이용하여 왕궁을 에워쌌다. 이에 월왕은 크게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예(자신의 동생)의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은 이런 곤란한 일을 당하는구나.”

하였다.


<여씨춘추>에 있는 이야기다. 왕은 어려움을 당하고는 무엇이 잘못인지를 알지 못한 것이다. 왕은 애초에 ‘예’가 세 명의 왕자를 무고하여 죽인 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나머지 한 명의 왕자마저 죽이지 않은 게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월왕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때가 있지 않을까.


이처럼 인간에겐 당면한 문제의 본질을 꿰뚫을 만한 능력이 부족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진실’과 ‘진실처럼 보이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 듯하다. 어쩌면 세상에는 진실’은 숨어 있고 ‘진실처럼 보이는 것’만 가득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고 오류를 범하는 것인지도...


 

3.

건강과 장수에 이르는 비결을 80년 동안 조사한 연구가 있다. 터먼 박사는 1910년 전후에 태어난 소년소녀 1,500명을 선발해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가족관계, 학교교육, 여가활동, 성격 등에 관한 온갖 종류의 귀중한 정보들을 수집해 조사했다. 이 연구는 터먼 박사가 1956년에 세상을 떠난 뒤, 그의 후배 연구자들에게 이어져 계속 진행되었다. 놀랍게도 이 연구의 결과는 건강과 장수에 대한 의외의 진실을 밝혀내면서,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상식과 통념을 뒤집어 버렸다.

이 연구의 성과를 담은 책이 하워드 S. 프리드먼, 레슬리 R. 마틴 저, <나는 몇 살까지 살까?>이다.



활달한 아이들은 어른이 된 후 좀 더 위험한 취미를 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전반적으로 건강문제에 대해 태평했고 건강을 챙기는 일도 등한시했다. ‘항상 웃고, 활기차게 살면 장수한다’는 통념도 틀렸다는 말이다. - <나는 몇 살까지 살까?>, 85쪽.





건강문제에 대해 태평하여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들과 건강문제에 대해 걱정이 많아 스트레스가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더 장수할까. 이 연구는 적당한 ‘걱정’이 건강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걱정하는 만큼 건강을 위해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놀랍게도 신경증이 건강을 지켜준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성실한 사람이 더 오래 사는 이유는 건강한 습관과 건강한 두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더 건강한 환경과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었다. 즉 성실한 사람은 더 행복한 결혼생활, 더 좋은 친구관계, 더 건강한 근무환경을 만들 줄 알았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인생경로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행복하게 산) 그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살았던 까닭은, 건강하고 부유하며 현명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장수에 이르는 길에 얻은 부산물이었다.- <나는 몇 살까지 살까?>, 99쪽.


그들 특유의 사회적 관계, 직업, 취미, 습관의 유형이 건강으로 가는 정말 훌륭한 길을 닦아 놓았던 것이다. - <나는 몇 살까지 살까?>, 99쪽.




결과적으로 사려 깊은 계획과 통제력, 성취감, 인내심, 근면함 등이 장수에 도움이 됐고 직업적 성공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건강에 대한 오류 두 가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면서 결론을 내린다. 첫 번째 오류는 가족력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특정 질병의 성향이 집안 대대로 유전되기도 하고, 분명히 유전적 원인으로 생기는 병들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가족력으로 심장마비에 걸릴지, 혹은 장수할지에 대해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본인의 인생경로가 더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두 번째 오류는 건강에 관한 ‘조언 목록’이 건강 증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서 ‘조언 목록’이란 의사로부터 받는, ‘적당히 먹기, 금연, 살빼기, 충분한 수면, 운동’ 등의 목록을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 연구에 참여한, 장수한 사람들은 그런 목록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런 목록이 장수에 이르는 보편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이 연구는 결론을 내린다.


한 연구의 기록인 이 책은 건강한 사람은 행복하지만, 행복한 사람이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면서진실’과 ‘진실처럼 보이는 것’을 정확히 짚어 준다.

 

 

<이 책들을 읽고 나서...>

 

누구나 책을 읽을 땐 자신이 읽고 싶은 대로 읽는다. 다시 말해 저자의 의도대로 읽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같은 책이라도 독자들마다 각각 다르게 읽을 수 있다.

이 책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 이태준의 단편 <천사의 분노>는 불쌍한 거지들을 돕고 싶어하는 P부인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여씨춘추>에 있는 이야기는 자신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까닭을 알지 못한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나는 몇 살까지 살까?>는 하나의 연구결과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건강상식 중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아 준다.

하지만 내가 얻은 것은? : 이상의 세 권의 책 내용은 그렇게 각각 다르지만 이 책들에서 모두 나는 ‘진실’과 ‘진실처럼 보이는 것’을 구분하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그것은 중요한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를 나의 삶에 대입하면? : 내게도 ‘진실’은 아닌데 ‘진실처럼 보이는 것’을 진실로 착각하고 지나온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상(11) 높은 사람들의 횡포


1. 높은 사람들의 횡포


요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언행들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얼마 전에 서울대 음대 교수의 제자 폭행사건이 있었고, 고려대 의대 교수는 조교에게 폭언과 협박을 했다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다음엔 민주당 소속 시의원이 주민센터의 동장에게 폭언한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동장은 “큰 충격을 받아 이틀 동안 병원에 다녔다. 사람들 있는 데서 그렇게 모욕을 주다니 생각만 하면 손이 덜덜 떨린다”며 눈물을 흘렸다(국민일보, 2011. 4. 7.)고 한다.


혹시 그들은 사람을 둘로 나누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자신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어서 무시해도 좋을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권력자는 남을 무시해도 되는 자리인가. 이런 사건들을 알고 나니 사람을 이렇게 둘로 나누어야 할 것 같다. 상처를 주는 사람과 상처를 받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과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사람.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중요한 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정말 잘못인지를 깨닫는 일이다. 깨달을 때 반성할 수 있다. 그런데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만약 잘못을 하고서도 잘못을 깨닫지 못한 채 산다면 자신으로 인해 불행한 사람들도 생기지만 자신 또한 불행해진다. 좋은 인간관계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안에서만 기쁨을 기대할 수 있다(생텍쥐페리)’라는 말이 있다. 모든 불행의 원천 또한 ‘인간관계’에서 생긴다. 모든 감정의 그 기저에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깔려 있다. 인간이 완전히 홀로 산다면 사랑도 미움도 상처도 분노도 없을 터이니 불행도 없을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에겐가 상처를 준 적이 없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낮은 자리의 사람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그릇된 인식은 남에게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마저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남의 인격에 대한 무시는 반드시 부메랑 효과를 낸다(서양속담)’라는 말이 있다.



2. 이 글과 관련한 책들

  

<좋은 지도자에 대하여>


노자는, 좋은 지도자는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것이라고 했다.


 

지도자가 되어도 지배하려 하지 마십시오.

이를 일컬어 그윽한 덕이라 합니다. - 노자, <도덕경> 56쪽.


백성 위에 있고자 하면

말에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고,

백성 앞에 서고자 하면

스스로 몸을 뒤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위에 있어도 백성이 그 무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앞에 있어도 백성이 그를 해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즐거이 받들고 싫어하지 않습니다.

겨루지 않기에 세상이 그와 더불어 겨루지 못합니다. - 노자, <도덕경> 279쪽.





 노자는, 지도자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 - 노자, <도덕경> 83쪽.





이에 따르면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라고 한다. 아마도 그런 지도자는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지도자일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한 사람을 겨냥한 악의적 댓글이 그 당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작은 고통으로도 목숨을 끊을 수 있다. 아니 작은 고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제삼자의 관점에서 봤기 때문이고 당사자에겐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일로 여겨지는 일도 자신의 일이 되고 보면 큰 일이 될 수 있다. 또 사람에 따라 고통의 느낌엔 차이가 있어서, 어떤 사람에겐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되기도 한다.


만약 작가가 소설에서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폭언을 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을 그렸다면, 그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런 세상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 고통에 독자가 공감하며 함께 슬퍼할 수 있을 때 바람직한 세상이 되기 위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얼마나 슬퍼할 수 있을까. 남의 고통은 그저 남의 고통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게 아닐까.


수전 손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확장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처음에는 독자로서, 나중에는 작가로서 문학이라는 기획에 제가 몰두하게 된 것은 문학이 다른 자아, 다른 영역, 다른 꿈, 다른 언어, 다른 관심사에 대한 공감의 확장이기 때문입니다. - 수전 손택, <문학은 자유다> 202쪽.

 






 

작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일입니다. 공감과 새로운 관심의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과 다르게 더 나아지려는 열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변화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하는 일입니다. - 수전 손택, <문학은 자유다> 210쪽.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영역이 아닌 타인의 삶의 영역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어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을 품고 좋은 변화를 꾀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그 고통은 그저 타인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과 연결된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세희가 쓴 소설에 이런 글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

 




삶의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그 전쟁에서 날마다 이기는 사람들은 가진 게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둘로 나눠져 승자가 되거나 패자가 된다. 작가는 난장이로 상징되는 못 가진 자가 패자가 되어 고통을 받고 사는 세상이 과연 옳은 세상인지를 묻고 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그 부당함을 깨닫게 한다. 
 

 자본가와 노동자, 가진 자들의 ‘죄’와 못 가진 자들의 ‘고통’이 대립하는 이 소설은 사랑이 없는 욕망을 비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

 



 그는 폭력에 대해 일침을 가하듯 이렇게 썼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

 


작가는 타인의 고통을 방관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물며 타인에게 직접 고통을 주는 폭력이나 폭언은 어떠한가.




 

소개한 책
  

노자, <도덕경>
수전 손택, <문학은 자유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맘대로글> 봄날의 갖가지 상념들


1. 비의 낭만을 잃은 날

어제 비가 내렸다. 경기도교육청은 각 초등학교가 학교장 재량으로 휴업하도록 했다. 비가 인체에 해로운지를 떠나 학부모들의 자녀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젠 비가 갖고 있는 낭만의 이미지가 사라질 시점에 와 있다. ‘방사능 비’가 내릴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앞으론 비가 내릴 때마다 좋아하기보다 건강 걱정을 하게 될 것이다. 비를 낭만적으로 맞을 수 있는 시대는 이렇게 해서 끝나는 것인가.


2. 우리는 하나

생선도 야채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원전사고는 일본에서 일어났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오고 있다. 역시 지구는 하나였고, 우리는 하나였다. 그러므로 타인의 삶이 곧 나의 삶의 일부가 된다. 이런 글이 떠오른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약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대륙이나 모래톱이 그만큼 작아지듯,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 존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3. 인간의 한계

일본의 원전사고는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인간은 세상의 여러 문제를 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먼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고 다음으로 문제를 파악하는 것으로써 한계에 이르는 존재로 태어났다. - 괴테어록 32쪽.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할 수 있다.



나는 인간이었다. 그것은 투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괴테어록, 32쪽.






오로지 인간만이 불가능한 것을 이룩할 수 있다. 인간은 구별하고 선택하고 판단한다. 인간은 순간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 괴테어록, 33쪽.




4. 커피의 맛에 집중하기

3일 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잠을 푹 자고 싶어서다. 심각한 불면증 정도는 아니지만, 몇 시간에 한 번씩 자꾸 깨어 아침에 일어나면 푹 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게 문제다. 20프로 수면 부족의 느낌.


커피중독자인 내가 커피의 유혹을 이겨내고 3일이나 마시지 않았으니 오늘은 내게 상을 주기로 하고 커피를 마시기로 하였다. 원래 내 습관은 아침을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실 때면 신문을 펼쳐 드는 것인데, 신문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다 보니 커피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커피보다도 신문의 내용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의 맛에 집중하기 위해 그 습관을 바꿨다. 신문을 볼 때는 신문만 보기로, 커피를 마실 땐 커피만 마시기로 했다.


우리 집은 방마다 벽의 한 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찻길 부근에 있는 고층 아파트라서 창가에서 활기찬 도시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창밖엔 자동차가 분주하게 오가고 사람들이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난 이 풍경이 아주 맘에 든다. 요즘 숲 속에 있는 아파트가 인기라고 하지만 그런 아파트가 운치는 있겠지만 특히 밤에 느껴지는 적막한 숲보단 불빛이 화려한 야경을 볼 수 있는 이런 풍경이 난 좋다. 고독한 풍경이 아니라서 좋다.


그리하여 새로 만든 습관은 커피를 마실 때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창가에 앉는 것이다. 창밖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면 커피의 맛에 집중할 수가 있다. 그래서 최대한으로 커피의 맛을 음미하며 마실 수 있다. 오늘 창가에서 며칠 만에 마시는 커피의 맛은 아주 달콤하여 그 좋은 느낌이 온몸에 퍼지는 듯했다. 신문을 보면서 커피를 마셨을 때 커피의 맛을 50% 느낄 수 있다면, 이렇게 마시는 것은 100%의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생의 기쁨은 크지만, 지각이 있는 생의 기쁨은 더욱 크다. - 괴테어록, 39쪽.




이것을 흉내 내어 쓰면, 커피는 맛있지만 음미하는 커피는 더욱 맛있다.



작은 일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을 보거든 그가 이미 큰 일을 이룩한 것으로 생각하라. - 괴테어록, 187쪽.




이것을 흉내 내어 쓰면, 커피를 마시는 작은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을 보거든 그가 이미 큰 일을 이룩한 것으로 생각하라.


작은 것에 감사를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리.


5. 처신의 어려움

어느 친척의 장례식장에서 밝은 웃음을 띤 얼굴을 한 적이 있다. 사촌 언니와 오빠, 동생 등 여럿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명랑하게 말하며 즐겁게 웃었던 것. 식사하는 자리에서였다. 삥 둘러앉은 낯익은 얼굴들을 보니 즐거운 모임이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에 빠진 모양이다. 난 그때 그곳이 장례식장임을 잠시 잊었다.


물론 장례식장에 들어서며 영정을 보면서는 울음을 참지 못해 눈이 빨개지도록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자 그 울음이 웃음으로 변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장례식장이란 장소에 맞지 않게 웃고 있던 내 모습이 생각나자 몹시 부끄러웠고 죄의식마저 느꼈다. 그런 나를 누군가가 관찰이라도 했다면 나를 얼마나 한심한 사람으로 봤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상황에 맞게 처신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나’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줄 아는 것의 중요함을 깨달은 날이다.



6. 신정아 자서전

최근에 출판된 신정아의 자서전 ‘4001’이 많이 팔려 화제다. 그녀는 학력 위조 사건이 발생한 2007년 5월 이후 써 온 일기․메모 등에서 일부를 추려 책으로 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녀는 어느 정치인을 실명으로 거론하면서 “...슬쩍슬쩍 나의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렸다”며 그는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고 썼다고 한다.


이 글을 그(어느 정치인)의 가족이 보면 어떤 기분이 들 것인가에 대해서 그녀는 한 번쯤 생각해 봤을까. 한 남자의 가정이 파탄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글이면서 동시에 한 정치인의 생명력을 끊어 놓을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까. 아무리 거짓 없는 사실이라고 해도 그녀의 인격을 의심하게 만드는 글이다. 그래서 그 사실 여부를 떠나 그 책은 사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녀의 책 내용이 공개되기 전까지 난 그녀의 책 출판 소식을 알았을 때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책 출판을 재기의 기회로 삼아, 쓰러진 몸을 일으켜 다시 일어나길 바랐다. 상처 받은 영혼에 대해서 비난을 삼가고 싶은 연민이 일었다. 그런데 신문을 통해서 그녀가 쓴 책에 그런 내용의 글이 실렸다는 것을 알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빠져 있다는 것은 의외다. 왜냐하면 한 번 아파본 사람은 그런 아픔을 누군가에게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7. 카이스트 또 자살

카이스트 학생이 어제 또 자살을 했다. 올해 들어서 학생 4명이 잇따라 자살한 것이다.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현재의 즐거움 없이 미래를 위해서만 산다면 그건 불행하고도 슬픈 일이다.  




미래를 위해 자신을 준비하며 현재를 즐겨라. - 괴테어록, 68쪽.




8. 황사

오늘은 전국적으로 황사가 나타난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봄은 곱게 오지 않았다. 흙먼지 일으키는 봄바람과 꽃샘추위와 황사를 동반하며 봄은 왔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완연한 봄인가 싶으면 바로 여름이 되고 만다.


예전엔 ‘봄’하면 떠오르는 것은 따스한 햇살이었는데, 이젠 ‘봄’하면 황사가 떠오르게 되었다. 시간에 따라 계절의 이미지도 변한다. 또 무엇이 변할까.


지금 이 시간에도 무엇인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을 것이다.


9. 괴테어록

괴테를 알고 싶어서 괴테어록을 읽었다. 가장 인상 깊은 글은 이것.



재물을 잃는다는 것 - 이것은 얼마간을 잃는다는 것이다.

명예를 잃는다는 것 - 이것은 많은 것을 잃는다는 것이다.

용기를 잃는다는 것 - 이것은 모두를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 - 괴테어록, 55쪽.




그러므로 무엇이 되고 싶고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일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활칼럼> 좋은 사람의 기준


며칠 전, 몸의 한 쪽에서 통증이 느껴져 병원에 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탔다. 처음 타는 것이라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몰라 요금을 묻는 나에게 운전기사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그러고는 버스요금을 말해 주었다.


그 활기찬 목소리는 친절함이 담겨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난 그때 내게 병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근심스런 생각으로 병원에 가는 길이어서 마음이 회색빛이었다. 그런데 운전기사의 그 인사말에 마음이 훨씬 밝아짐을 느꼈다. 그 한 마디에 기분이 확 바뀐 나 자신에게 우선 놀랐고, 그 한 마디의 위력에도 놀랐다. 그 작은 친절이 우울하던 타인의 기분을 환하게 변화시키는 게 경이로웠다. 친절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생길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가져야 할 미덕은 ‘배려’가 아닐까 한다.


만약 그때 버스기사가 요금을 묻는 나에게 버스요금도 모르냐고 하면서 짜증 섞인 말로 불친절하게 대했다면 어땠을까. 근심하던 내 마음은 더 어두워져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 운전기사가 참 고마웠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어렸을 적, 집으로 가는 길에 헤매다가,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은 적이 있는데, 내게 매우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해 주는 어떤 사람을 보고 혹시 나를 도와주기 위해 하늘에서 잠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친절한 사람을 만날 때면 그 어린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다.


누구에겐가 천사의 역할을 해 본다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닐까. 때로는 사랑을 받는 일보다 사랑을 하는 일이 더 즐겁듯이, 선물을 받기보다 선물을 주는 것이 더 즐겁듯이, 천사를 만나는 일보다 직접 천사가 되어 보는 일이 더 즐거운 일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또는 자기 기분에 빠져 남에게 친절을 베풀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인간은 선악이 공존하는 존재다.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하는 사람일지라도 마음 한 구석엔 이기심이 있으며, 아무리 악행을 많이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마음 한 구석엔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잔인하게 강도질을 한 남자가 그의 애인에게만큼은 착한 남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하나도 이상할 건 없다. 남을 괴롭히며 사는 사람도 그의 어머니 앞에선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알고 보면 착하다, 라는 말이 있으리라.


그래서 좋은 사람의 기준을 생각할 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나누기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과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나누는 게 맞을 것 같다. 알고 보면 다 착한 사람들인데, 타인을 얼마나 배려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들은 남의 눈을 찌푸리게 만든다.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들, 식당에서 자기네 애들이 떠들어도 주의를 주지 않는 사람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오히려 먼 타인보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산다는 게 더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상대의 기분은 아랑곳없이 상처 받을 말을 쉽게 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쩌면 우리가 늘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며 산다면 우리의 삶의 불행이 반으로 줄지도 모른다. 사람들로 인해 겪는 불행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재밌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 보고에 따르면, 가난할수록 다른 사람의 느낌을 더 잘 알아본다고 한다. 더 자주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남을 배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부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남들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 감정을 배려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조선일보, 윤희영의 News English에서 인용함).” 이에 따르면 부자로만 산 사람들에 비해 가난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남을 배려할 확률이 높다.

 

다음의 명언들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임을 알게 한다.





“다른 사람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 이런 관심을 가지면 사람은 스스로 완성되어 가는 법이다(J. 신들러).”


“관대하고 친절한 마음이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이다(R. 번스).”





다음의 명언들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임을 알게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해관계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어진 마음으로 대한다. 왜나하면 어진 마음 자체가 자신에게 따스한 체온이 되기 때문이다(파스칼).”


“남을 때린 자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법이다. 남에게 친절하고 관대한 것이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다(플라톤).”


“가장 큰 쾌락은 남을 즐겁게 해 주는 일이다(라 브뤼예르).”





.........................................................

<후기>


이 글에 명언을 많이 넣었다. 명언을 많이 알고 있으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명언 읽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세계 위인들의 명언이 수록된 책들을 가까이 두고 자주 들춰 본다. 아무 데나 펴서 마음이 끌리는 낱말에 대해 살펴보는 게 재밌다. 가령 행복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성공에 대해서, 질투에 대해서, 어떤 말들의 명언들이 있는지 읽어보는 것은 흥미롭다.


내가 가장 많이 읽었던 것은 <주제별로 엮은 좋은말 사전>이란 오래된 책인데, 자주 펼쳐 보았더니 제본된 부분이 뜯어졌다. 그래서 사용하기 불편하여 새 책을 산 것이 <세계의 명언 1>과 <세계의 명언 2>라는 책이다. 꽤 두꺼운 만큼 아주 많은 명언 ․ 격언 ․ 속담들을 만날 수 있으며, 낱말이 가나다순으로 배열되어 있어 보기 편하다.


 




 

 

 

 

 

 

명언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두꺼운 책을 가지면 마음이 든든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옹달샘 2011-05-1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좋은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좋은 사람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정도일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1-05-15 21:33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어왔군요. 매우 반가움.
늘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한다는 것, 누구에게나 쉽지 않지요.
그런데 옹달샘님은 제가 보기에 좋은 사람 같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