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분도 나처럼 그런 경험이 있나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경험. 아니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보다 남들이 더 잘난 것 같고, 나보다 남들이 더 행복한 것 같고, 나보다 남들이 더 운이 좋은 것 같은 느낌. 그런 남들의 뒤꽁무니에 붙어 따라가며 살고 있다는 느낌이 한 번씩 드는 것.

 

 

누군가는 말하겠지. 그럴 땐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라고.

 

 

그런데 나, 싫은데 어쩌나. 아래 말고 위를 보고 싶은데.

 

 

 

 

 

 

 

2. 얼마 전, 병문안을 갔다. 사촌 여동생이 유방암에 걸려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간 것이다. 고모의 딸로 두 남매를 둔 사십 대 동생이다. 나에게는 고모가 되는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서 내가 평소에 대견하다고 여기고 있는 동생이다. 초기에 암을 발견해서 다행이라지만 치료 부작용으로 식욕이 없어 밥을 먹기 힘들고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한단다. 그런 동생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걱정하면서 갔다. 동생의 집에 도착하니 환자는 없고 고모와 애들만 있다. 은행에 볼 일이 있어 잠깐 외출했다고 한다. 나는 ‘환자가 은행에 가도 되는 건가?’ 하고 놀랐는데, 이웃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한단다. 잠시 뒤 모자를 쓴 동생이 들어오는데 미소 짓는 환한 얼굴이다.

 

 

“언니 왔어?”

 

 

환한 얼굴로 던진 이 한마디에 나의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환자로서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면 병을 이겨내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3. 사촌 동생의 집에서 돌아오며 생각한 게 ‘감사하자.’였다. 사촌 동생처럼 암과 투병하느라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TV에서 통풍이란 병의 고통에 대해서 소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이름 그대로 바람만 스쳐도 아픈 병이라고 한다. 얼마나 아프면 그런 표현을 할까.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다.

 

 

나, 병에 걸리지 않음에 매우 감사하게 되네. 겸허해지네.

 

 

 

 

 

 

 

4. 또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책광인 것. 

 

 

집에 책이 많다. 책 관리에 있어서 내 나름대로 원칙이 있는데, 새로 구입한 책은 다 읽어야만 책장에 꽂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사 놓고 읽지 못한 책이 책상 위에도 책상 밑에도 가득하다. 책을 읽는 속도가 책을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생긴 일이다. 예를 들면 사고 싶은 책은 한 달에 다섯 권이 넘는데 읽은 책은 한 달에 고작 두세 권이다. 도대체 사고 싶은 신간은 왜 그렇게 많은 건가. 매달 한 번쯤은 ‘쌓여 있는 책을 두고 신간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로 갈등한다.

 

 

어쩌면 나는 독서광이 아니라 책광이 아닐까 생각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다. 어떤 때는 책이 참 잘 생겼다고 감탄하기도 한다. 내게 가장 즐거운 쇼핑은 책 쇼핑이다. 만약 내가 책 쇼핑만큼이나 옷 쇼핑을 좋아했다면 멋쟁이가 되어 있으리라. 멋쟁이는 못 되었지만 옷보다 책을 좋아하는 것에 만족한다. 책이 주는 행복이 달콤하기 때문이다.

 

 

내가 책광이라는 것에 감사한다. 

 

 

 

 

 

 

 

5. 또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글쟁이인 것.

 

 

글을 써야지, 하면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말이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쓰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확히 그 시간을 지켜 글을 써야 한다는 점과, 그 시간이 닥치면 어떤 변명도 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87쪽)” <작가 수업>의 저자 ‘도러시아 브랜디’의 말이다. 어느 시간에 글을 쓰기로 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시간에 글을 쓰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변경하여 다른 시간에도 글을 써 보라고 한다. 단, 한번 시간을 정했으면 무조건 그 시간에 글을 쓰라는 것. 한마디로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는 게 습관이듯이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겠다.

 

 

하루 중 언제 글을 쓰는 게 좋을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매일 일어나는 시간에서 30분만 일찍 일어난다면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30분 동안 글을 쓰는 게 가능할 것이다. 또는 아침을 먹고 나서 글을 쓰는 것도 좋겠다. 나의 경우엔 이 시간이라면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다. 내가 아침에 해야 할 일(예를 들면 식구들의 아침 식사 준비 등)을 끝내 놓고 아침을 먹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게 습관이 되면 30분에서 점점 시간을 늘리면 된다. 

 

 

그런데 우리 알라디너처럼 매달 글을 꾸준히 올리는 사람들은 이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겠다. 이미 글을 쓰는 습관을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그거다. 내가 습관처럼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내가 글쟁이가 되어 버렸다는 것. 글쓰기로 행복하다는 것.

 

 

내가 글쟁이이라는 것에 감사한다.

 

 

※ 글쟁이는 국어사전에 따르면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내게 부적절한 말일 수 있고(내겐 직업이 아니니까), 남에겐 실례가 되는 말일 수 있으나(낮잡아 이르는 말이니까) 나는 ‘글쟁이’라는 말이 좋아 애용한다. 

 

 

 

 

 

 

 

6.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나보다 남들이 더 잘난 것 같고, 나보다 남들이 더 행복한 것 같고, 나보다 남들이 더 운이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도 불평불만을 품지 않기로 했다. 감사하기로 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후기>................................

 

 

- 생각해 보니 내가 글쟁이가 되도록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것은 ‘알라딘’이다. ‘알라딘’이 없었더라면 이 서재에 올린 284편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마이리뷰 23편, 마이페이퍼 261편을 썼다.) 그래서 난 ‘알라딘’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또 생각해 보니 내가 글쟁이가 되도록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존재가 또 있다. 바로 방문자들이다. 방문자들이 없었다면 이 서재에 올린 284편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읽어 주지 않는데 글을 꾸준히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래서 난 방문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 내가 감사할 것에 대해 노트에 써 본다면 백 가지 이상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분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도 감사할 일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불평불만을 없애는 시간이 되실 듯...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태우스 2014-09-29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쟁이인 것에 감사드리죠 글이 아니었다면 방송에 나오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저 역시 알라딘이 제 글쓰기 아카데미였어요. 그래서 제가 알라딘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있는 거구요. 글쓰기는 여전히 제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만,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글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부담이 되고 있긴 합니다 글쓰기의 즐거움도 조금은 줄어들었구요. 뭐든지 의무로 하면 덜 즐거운 듯해요 글구 유방암은 정말 무서운 병이죠. ㅠㅠ 쾌유를 빌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4-09-29 08: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동생 꼭 쾌유할 거예요.
의무로 쓰는 글, 덜 행복하겠는데요. 아무래도 자유로운 글쓰기가 최고죠.
알라딘에 대해 님도 저랑 동지군요. 반갑습니다.
비가 옵니다. 비 오는 날의 좋은 분위기를 만끽하며 보내시길...

단발머리 2014-09-2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오는 꿀꿀한 아침에 페크님 글을 읽고 힘을 얻습니다. 투병중에도 씩씩하신 여동생분 꼭 털고 일어나실 거예요.

페크님, 질문이 있어요.

저같은 경우는 책을 읽은 후에라야 글을 쓰게 되거든요. 제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은 후에 감상이나 감동에 의지해서 글을 쓰게 되는데요. 읽은 책의 양이 적을 때, 글을 쓰기로 정한 시간이 되었다면, 어떻게 글쓰기를 이어가면 좋을까요? 쓰고는 싶지만, 무얼 쓸지 모르는 경우에요. 아~~ 쓸게 없다, 이러면 안 될 것 같구요. 글쟁이님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는 알라디너입니다.^^

페크pek0501 2014-09-29 10:48   좋아요 0 | URL

하하~~ 제가 그런 질문에 답변할 자격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님은 이미 잘 쓰고 계시는 걸요.
하지만... 주제넘게 답변을 하자면...

1.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창밖의 풍경을 묘사해도 좋겠고요. 그것을 본 자신의 기분, 정서 등을 표현해도 좋을 것 같고요.
어제 또는 며칠 전에 있었던 일 하나를 잡고 쓰기 - 제가 병문안 간 일을 쓴 것처럼요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나열해 쓰기, 고민에 대해 쓰기
내 인생에서 불평불만인 것, 또는 바라는 것, 미래 계획을 쓰기
뉴스의 사건 사고를 접하고 느낀 점 쓰기
드라마 또는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말을 옮겨 적고 느낌을 쓰기, 또는 변형해 쓰기
인상 깊었던 책 구절 쓰고 느낌을 쓰기 또는 변형해 쓰기
계절에 대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에 대해 쓰기
속상한 일에 대해 쓰기, 기뻤던 일에 대해 쓰기

이렇게 쓰다 보면 문장력도 키우게 되고 이 중에서 좋은 글감 하나 건질 수 있을 듯해요.
이상으로 주제넘은 답변을 마칩니다.

2. 이런 뻔한 답변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거고요.
실은 저도 뭘 써야 하는지 몰라서 헤매고 있는 1인입니다.

3. 참고로 제가 2014-07-02에 올린 글을 봐 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조언의 글입니다.

4. 저의 경우엔 이웃 서재에 댓글을 쓰다가 글감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끄집에낸다는 점에서 댓글 쓰기가 좋은 방법 같아요.
한 가지의 주제로 길게 쓰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요...

5. 다시 말씀 드리는 거지만 저도 뭘 써야 하는지 몰라서 헤매고 있는 1인입니다.
과거에도 헤맸고 현재에도 헤매고 미래에도 헤맬 것 같은 1인입니다.
쓸 게 없어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페크pek0501 2014-09-29 10:50   좋아요 0 | URL
제가 2014-07-02에 올린 글입니다. 미셸 투르니에의 조언입니다

나는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눈과 귀는 매일 매일 알아 깨우친 갖가지 형태의 비정형의 잡동사니 속에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어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진작가가 하나의 사진이 될 수 있는 장면을 포착하여 사각의 틀 속에 분리시켜 넣게 되듯이 말입니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125쪽.

단발머리 2014-10-06 08:38   좋아요 0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꼼꼼히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글을 읽고 문득 깨달은 게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글을 쓸 때 `리뷰`로 한정지어서 생각하다 보니, 경험이나 느낌을 제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왜냐하면 글을 쓴 후에 알라딘서재에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너무 개인적인 것들은 올리기가 어려웠거든요. 사실, 제 개인적인 일상을 누가 궁금해하겠습니까??? ㅋㅎㅎ

그런데, 페크님 말씀을 읽어보면서 깨달은 건, 모든 글을 알라딘서재에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네요. (이런 무슨.....)

물론, 저는 많이 속상할 때도 글을 쓰기는 하지만, 그런 글쓰기도 글쓰기라는 건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계절에 대해, 속상한 일에 대해, 기뻤던 일에 대해, 감사한것, 내 인생에서 불평불만인 것에 대해서도 글을 쓸 수 있겠더라구요. 그렇게 쓰면 일정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글쓰기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도 편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세요~~~~~~~~~~~ ㅎㅎ

페크pek0501 2014-10-07 20:2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몸둘 바를 모르죠. 하하~~
제 경험에서 하나 가져오면 이렇습니다.
행복에 대해서, 불행에 대해서, 건강에 대해서, 우정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등등, 각각 쓰는 파일이 있고 그것을 모아 놓은 폴더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글을 쓸 때 관련된 게 있으면 그 파일에서 몇 문장을 가져온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정에 대해서` 몇 줄 쓰는 게 저축인 것이고 결국 글 잘 쓰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흐흐 기대만... 합니다. ^^

stella.K 2014-09-29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참 좋습니다.
어제 예전에 제가 주일학교 교사로 있을 때 알았던 제자 녀석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초기라고 해서 다행이긴 한데 녀석이 얼마나 심난할까 싶더군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10년 전에도 초기 암으로 수술을 받았었다는군요.
아파 본 사람이 더 담대해지나 봅니다.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라
걱정하는 내가 더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전 뭐 했나 싶더군요. 10년 전이나 그 10년 후나 나의 건강에
얼만큼 감사했는지...

문득 일상이 지루하긴 한데 또 그것이 주는 안온함은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요.
놀랄 일이나 걱정할 일이 없다는 거니까.
일상을 떠나 보면 알아요. 하지만 또 자칫 퇴보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것이기도 하죠. 아, 정말 인간이란...ㅠ

페크pek0501 2014-10-01 12:13   좋아요 0 | URL
발전이야 퇴보냐, 만족이냐 불만족이냐... 만족하면 행복한 대신 발전이 없고, 불만족이면 행복하지 않는 대신 발전이 있을 수 있고... 어렵습니다.
정답이 없는 것, 그것은 인생입니다.

잠시 활동을 쉬시는 줄 알았어요. 자주 봅시다. 댓글을 반갑게 접수합니다. ^^

세실 2014-09-2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참 솔직하신 페크님^^ 위를 보고 사세요~~~~ ㅎㅎ 그래야 발전도 있을듯요^^
2. 전 가끔 10년전에 암으로 돌아가신 제 멘토 선배님이 생각납니다. 참 의욕적으로 일 하셔서 존경하던 유일한 선배님이었는데......지금도 눈물이 글썽글썽. ㅜㅜ
3. 저도 독서광이 아닌 책광입니다. 책을 사놓고는 못 찾아서 또 사고.....도서관책은 류별로 분류하면서 집에 있는 책은 아무렇게나 꽂아두었거든요.
4. 요즘 글쟁이에 한계를 느껴요. 과연 나는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재주가 있는걸까요? ㅜ

페크pek0501 2014-10-01 12:17   좋아요 0 | URL
1. 위를 보고 살까요?
2. 아는 누군가가 떠날 때마다 우린 힘들겠지요?
3. 그래서 제가 알라딘 한 군데에서만 책을 삽니다. 제가 또 산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기능이 있잖아요. 저도 책광...
4. 한계를 자주 느끼는 접니다. 만약 글쓰기에 자신이 있다면 직업을 아예 글쓰기로 택하는 건데... 그건 아닌 것 같아 아직도 직업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세실 님, 가을입니다. 어젯밤 두꺼운 이불을 꺼내 덮었네요. 좋은 가을 보내요 우리... ^^

노이에자이트 2014-09-2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을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같은 연배에 비해 고학력이고, 글도 잘 쓰고, 명절날 시댁식구와 잘 지내고...

페크pek0501 2014-10-01 12:18   좋아요 0 | URL
하하하~~~ 웃겨요. 님의 유머는 아니겠지만 유머로 읽게 됩니다.
자기 삶에 감사하려 들면 백 가지가 넘을 것 같고, 또 불평을 하려 들면 그 역시 백 가지가 넘을 것 같아요.
이왕이면 감사하는 쪽으로 삶을 봐야겠지요?
행복한 가을이 되시길...
 

 


 

최근에 일을 하나 추가했더니 바쁘다. 글을 써서 올릴 마음의 여유도 없고 이웃 서재의 글을 읽을 마음의 여유도 없이 지냈다. 이렇게 바쁜 건 싫지만 일을 끝내고 나면 속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건 바쁨의 장점이다. 어쩌면 그 맛에 바쁨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바쁜 일을 끝내고 나서 느끼는 휴식의 달콤함이 나는 좋다. 무지 좋다. 마치 어떤 날 샤워하긴 귀찮지만 샤워를 끝내고 나서 느껴지는 상쾌함이 좋은 것처럼.

 

 

바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글씨가 빼곡히 찬 노트에서 어쩌다 만난 빈 페이지처럼 별다른 일이 없는 빈 시간이다. 물론 빈 시간이 늘 이어진다면 이런 시간이 좋을 리 없다. 바쁜 자만이 빈 시간의 매력을 아는 법이다.

 

 

모처럼 만난 빈 시간에 이 글을 쓴다.

 

 

 


1.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나니 밀란 쿤데라는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무가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만약 당신이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밀란 쿤데라와 같은 편에 설 수 있으리라.

 

 

<무의미의 축제>는 이야기가 쭉 이어지지 않고 툭 툭 끊어지는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게 읽혀진다. 이야기가 주는 흥미는 없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건 이 소설의 강점이다.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으로 다음의 글을 뽑는다.

 

 

....................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96쪽.
....................

 

 

명절 스트레스로 추석 뒤에 이혼 상담이 부쩍 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명절에 촉발된 부부간 불화는 실제 파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명절이 있는 달의 이혼신청 건수는 전달에 비해 평균 11.5% 높았다”(경향신문, 2014. 09. 18.)고 한다.

 

 

명절에 촉발된 부부간 불화, 이것은 명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면 명절에 대해 진지하지 않게 생각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우리가 어떤 불행한 상황에 직면한다고 해도 그 상황에 대해 진지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게 도움이 될 경우에 진지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병도 알고 보면 진지한 태도 때문에 생긴다. ‘명절 스트레스’라는 것도 알고 보면 명절을 진지한 태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긴다.

 

 

나의 경우, 한가롭게 생활하는 중에 명절이 다가올 때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고, 바쁘게 생활하는 중에 명절이 다가올 때 스트레스를 적게 느낀다. 바쁠 땐 그만큼 명절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그것에 마음이 좌지우지하는 정도도 약할 수밖에. 

 

 

커피로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책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면 맛을 제대로 느껴 보지도 못한 채 커피를 다 마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책에 마음을 빼앗겨서 커피를 음미할 마음이 남지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쁜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명절을 음미할 마음이 남지 않아서 명절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명절을 싫어하듯이 사실 나도 명절이 싫다. 예전엔 남편이 운전하는 차로 대구를 갔다 왔는데 차가 밀려서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에 도착하곤 했다. 아이들이 커서 이젠 KTX 열차를 타고 다닌다. 좌석표를 구하는 건 하늘에 별따기이고 입석표도 간신히 구해 타는데, 열차 안에서 두 시간 가까이 서 있어야 하는 명절이 즐거울 리 없다. 어디 그뿐이랴. 시집에 도착하자마자 일을 시작해서 집에 갈 때까지 일을 한다. 2박 3일 동안 이렇게 보내야 하는 명절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며느리가 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시집 식구들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내 몸이 고단하다고 해서 누굴 탓하겠는가. (며느리인 내가 일을 해야지 누가 한단 말인가? 81세이신 시어머니만 일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 시집에 가서 며느리 역할을 해야 하는 시누이가 일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부엌일에 서툰 남편이 일을 해야 하는가?) 어쨌든 시집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시어머니다. 시누이들도 자기 시집의 일을 끝내고 친정에 오면 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럼 남편은? 남편은 생계를 책임지느라 돈벌이로 매일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이런 남편을 명절까지 부려먹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며느리로서 명절 음식을 만드느라 고생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음식을 결국 내가 싸가지고 온다. 싸온 음식으로 며칠 동안 반찬 걱정 없이 산다. 그러니 내 남편과 내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시집에서 만들었을 뿐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우리 집에서 음식 만들며 보낼 시간을 시집에서 보낸 것뿐이니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불만이 있다면 이 나라의 명절 문화에 불만이 있겠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명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명절이 다가올 즈음 바쁘게 살며 딴 생각에 몰두하기. 그래서 명절을 보낼 때 마치 소나기 한 차례 맞듯 가볍게 지나치기. 이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이다.

 

 

내가 놓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으로 다음의 글을 뽑는다.

 

 

....................
“(…) 네 성(性)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133쪽.
....................

 

 

중요한 것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네.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내 얼굴의 생김새가 어떠한지, 내가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 태어나는지, 어떤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는지 등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네. 이런 중요한 것들이 아닌 사소한 것들에 주목해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들이네.

 

 

다음의 글도 주목해 볼 만하다.

 

 

....................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런데 자신이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밥벌이를 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82쪽.
....................

 

 

우리는 자신이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자신에게 어떤 직업이 적합한지 알 수 없다. 뭐든 직접 해 봐야 아는 것인데 세상에 있는 그 많은 일들을, 그 많은 직업들을 어떻게 경험해 볼 수 있겠는가.

 

 

다음의 글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잘 표현한 대목으로 뽑는다.

 

 

....................
역사 속 서로 다른 지점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사람들은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한다고 라몽이 자기 이론을 피력했을 때, 알랭은 즉각 자기 여자 친구를 떠올렸는데, 정말 사랑하는 연인들이라 해도 서로 태어난 날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들의 대화란 서로의 독백이 대부분 이해되지 못한 채 그저 뒤얽힌 것일 뿐임을 여자 친구 덕분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81쪽.
....................

 

 

서로의 독백이 대부분 이해되지 못한 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네.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였다고.

 

 

....................
“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인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33쪽.
....................

 

 

 

 

 


 

 

 

 

 

 

 

 

 

 

 

 

 

 

 

 

 

 

2.
오래전 마르셀 프루스트 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한 권의 책으로 읽었다. 물론 완역본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살펴보니 민음사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전 4권으로 나와 있고, 국일미디어에선 전 11권으로 나와 있다. 프루스트를 알기 위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도 좋겠지만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흥미를 느끼면 그때 프루스트의 저작을 읽어도 될 테니까.
 

 

 

  

  

 

 

 

 

 

 

 

 

 

 

 

 

 

 

3.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은 프루스트의 작품과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전해 주는 책이다. 프루스트의 글을 분석적으로 해설해 놓은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1)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 2) 나를 위해서 읽는 방법 3) 시간 여유를 가지는 방법 4)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방법 5)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등의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라서 이런 제목들에 끌려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 두 작가의 렌즈를 통해서 ‘인간’을 보게 된다. 프루스트의 렌즈를 통해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렌즈를 통해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재밌어서다. 재미가 없다면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엔 재밌는 게 많이 있는데 왜 하필 책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 책은 ‘유익함을 얻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미만 있고 ‘유익함을 얻는 즐거움’이 없다면 그 재미에 언젠가는 싫증나고 시시해져서 책 읽기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책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유익함이 있는데 그중 지혜를 얻는 것을 으뜸으로 치겠다.

 

 

지혜를 얻는 방법에 대해 말한 글이 있다.

 

 

....................

프루스트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생님을 통해서 고통 없이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 그는 고통스러운 쪽의 지혜가 훨씬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93쪽. 

....................

 

 

나는 이것을 변형해 이렇게 써 본다. ‘사람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책을 통해서 고통 없이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 물론 고통스럽게 얻는 지혜가 훨씬 더 우월하다.’ 책을 통해 간접 경험으로 얻는 지혜보다 삶을 통해 직접 경험으로 얻는 지혜가 더 낫다는 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도 역시 아픔을 직접 경험함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말이다.

 

 

....................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여자, 그리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여자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천재적인 남자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심오하고 더 필수적인 감정의 전 영역을 우리로부터 끌어낸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95쪽. 

....................

 

 

이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천재가 할 수 없는 일을 연인은 할 수 있다는 것. 호의적인 천재에게서 얻는 지혜보다 호의적이지 않은 연인에게서 얻는 지혜가 더 깊다는 것. 호의적이지 않은 연인은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게 아니라 고통을 주게 되는데, 그 고통이 성숙하게 해 준다는 것.

 

 

다음의 글은 우정에 대한 프루스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

 

 

....................
프루스트는 “우정을 비웃는 사람들은……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어쩌면 그런 우정을 비웃는 사람들이야말로 보다 현실적인 기대를 가지고 그 유대에 접근하기 때문이리라.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183쪽. 
....................

 

 

다음의 글은 사랑에 대한 프루스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

 

 

....................
Q :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A : 간통이다. 물론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위협 말이다. 프루스트가 보기에, 질투의 개입은 습관에 의해 망가지는 상황에서 관계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치명적인 동거의 단계를 이미 밟은 누군가를 위한 조언은 다음과 같다.

 

한 여자와 살게 되면, 당신은 애초에 그녀를 사랑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든지 바라보기를 금세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분리된 원소가 질투에 의해서 재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235~236쪽.
....................

 

 

이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상대가 권태 없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면 질투를 이용하라.’가 되겠다. 무엇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상황이 되면 그 무엇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이니까.  

 

 

 

 

 


 

 

 

 

 

 

 

 

 

 

 

 

 

 

 

 

 

 

4.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읽으면 프루스트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음을 확인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도 밀란 쿤데라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 본다. 내가 이들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들의 저작을 즐겨 읽는 이유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왜 필요할까?

 

 

‘행복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로 출범한 세종시. 그런데 신문에서 세종시 공무원들의 정신 건강에 비상이 걸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도 힘든데 변변한 편의점을 찾기도 어려울 만큼 문화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 살다 보니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생겼고 더러 자살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알고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방송되었던 김수현 극본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새엄마와 어린 의붓딸과의 관계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충돌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는 자신이 친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 왜 새엄마를 불쾌하게 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 새엄마 역시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심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 둘 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다 보니 상대가 미울 수밖에 없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살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이 있다면 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대답하리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다.’라는 깨달음을 많이 얻을수록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타인을 이해하게 되면 최소한 오해 또는 오판으로 생기는 문제가 적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어떤 정책을 세울 때도 ‘인간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같다. 세상이란 바로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이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장식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앙드레 모루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인간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페크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4-09-2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의미의 축제>를 읽어보고 싶어요.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들이네요. 저는 민음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중인데 이게 천천히 두 권씩 나오다 보니 앞에 줄거리를 항상 거의 다 잊어먹을 때쯤 다음 권을 읽게 되는 것이 큰 애로네요. 차라리 전권이 다 나왔을 때 제대로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마지막 페크님의 이야기, 기억해 두어야 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4-09-22 21:25   좋아요 0 | URL
멋집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그 긴 글의 여행을 시작하셨군요.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고 나면 큰 일을 하나 한 것처럼 뿌듯하지요.
저도 마음속에서 읽으려고 정해 놓은 책이 있는데 전 3권짜리예요. 그 이상은 자신이 없고 3권까지만 읽을 수 있어요.

세상에서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눈다면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있는 사람`과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님 덕분에 무플을 면했어요. 구세주되시겠습니다. 하하~~

노이에자이트 2014-09-2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누이도 시댁에 가서 며느리 노릇을 해야 하니 내가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페크님은 살아있는 부처님이군요.

페크pek0501 2014-09-23 20:17   좋아요 0 | URL
제가 부처라고요? 헐... 입니다. 하하~~

노이에자이트 2014-09-24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은 노처녀 시누이는 없나봐요.모두 시댁에 가서 일하는 시누이만 있으니...

페크pek0501 2014-09-26 11:45   좋아요 0 | URL
예, 그래요. 시누이는 누나만 두 분인데 다 결혼하셨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시누이들은 손아래 올케를 예뻐하고 손위 올케는 잘 봐 주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남동생의 아내는 예뻐하고 오빠의 아내는 잘 봐 주지 않는다는 뜻.
우리 누나(형님)들은 저와 동서를 무지 예뻐하는 것 같아요. 그게 느껴져요.
내 동생과 잘 살아줘서 고맙다, 하는 표정이거든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9-26 17:13   좋아요 0 | URL
페크 님은 시누이를 비롯하여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좋군요.안 그런 사람들도 많은데...

페크pek0501 2014-09-28 23:04   좋아요 0 | URL
ㅋㅋ 시댁 식구들이 워낙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세실 2014-09-24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의미의 축제 사놓기만 했는데 당장 읽어야겠어요^^
저도 단순하게 덜 진지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덜 받는 편이죠.

페크pek0501 2014-09-26 11:47   좋아요 0 | URL
ㅋㅋ 저도 사 놓고 읽지 않은 책이 책상 밑에 가득해요. 읽어야 책장에 꽂을 텐데...
그래도 사고 싶은 신간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독서광이 아니라 책광이라고 할 만해요. 독서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것 같거든요.

세실 님은 지혜롭게 자기 관리를 잘해 나갈 스타일 같아요.
님 같은 사람 보면 부럽죠...
 

 

1.
추석을 보내기 위해 2박 3일의 일정으로 시집에 갔다 왔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듯이, 시집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내 마음이 다르다. 들어갈 땐 ‘명절 음식을 만들기 위해 고단하겠구나.’ 하는 마음이고, 나올 땐 ‘시집 식구들과 헤어지기가 섭섭하구나.’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번엔 미리, 2박 3일 뒤에 헤어질 때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로 했다. 시집에 들어갈 때 ‘시집 식구들과 헤어질 땐 섭섭하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마음가짐에 따라서 기분이 얼마나 다른지...

 

 

 

 

 

 

2.
2박 3일은 시집에서, 어제 하루는 친정에서 보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딸 노릇하랴, 며느리 노릇하랴 바빴다. 명절이 일 년에 두 번밖에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두 번이니까 할 만한 거지. 어제로 추석 연휴가 끝났다. 힘든 숙제 하나 끝낸 기분이랄까.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 행복하다. 행복해 죽겠다.

 

 

 

 

 

 

3.
어울리지 않게 내가 맏며느리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딱 철없는 막내며느리가 어울리는데... 내가 맏며느리라고 하면 친구들이 웃는다. 그 웃음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아랫동서가 시집온 그해, 부엌일에 서툴러 내게 가장 많이 한 말은 이렇다.

 

“형님, 저는 뭐 할까요?”

 

만약 동서가 미웠다면 “안 가르쳐 줘.”라고 내가 답했겠지만 심성이 고운 예쁜 동서라서 친절히 답해 줬다.

 

“자넨 나물이나 다듬고 있어.”

 

그런데 말이다. “형님, 저는 뭐 할까요?”라는 대사를 내가 읊어야 하는 건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랫동서 자리가 나는 부럽다.

 

나는 맏며느리보단 막내며느리가 좋고, 대장보단 졸병이 좋고, 회장보단 비서가 좋은 사람이다. 재력가 회장은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 휴식 시간에도 머리가 복잡하지만, 유능한 비서는 회장이 시킨 일만 하면 되니까 머리가 복잡할 리 없다. 재력가 회장은 회사가 망하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기도 하지만, 유능한 비서는 회사가 망하면 다른 데 취직해 버리면 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의 책임을 져야 하는 윗자리보다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아랫자리가 좋다. 부담 없는 자리, 안전한 자리가 좋다. 그게 내게 맞는다. 옛날 왕의 가족으로 예를 들면 나는 왕이 되기보단 왕의 형이나 동생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다. 뭐하러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야 하는 왕의 자리를 탐내나, 하는 생각이다. 왕의 형이나 동생으로 살면서 술이나 마시고 시나 읊으며 사는 게 좋지, 하는 생각이다. 권력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것을 가지기 위해 흘려야 하는 피땀이 싫다.

 

 

 

 

 

 

4.
추석 전날, 남자 셋이 당구를 친다. 한 남자가 먼저 집에 가야겠다고 말한다.


남자 1 : 미안한데 나 먼저 가 봐야겠다. 마누라는 집에서 일만 하는데 늦게 들어가면 화내지 싶다. 그리고 자형들이 와 있대.


남자 2 : 니는 마누라도 있노? (남자 2는 이혼했음.)


남자 3 : 니는 자형도 있노? (남자 3의 누나는 이혼했음.)


남자 2 : 먼저 갈 거면 마누라도 있고 자형도 있는 행복한 놈이 돈 내고 가라.


남자 1 : 하하~~ 알았다.

 

여기서 ‘남자 1’이 내 남편이다. 남편이 집에 들어와 들려준 이 얘기에 우리 시집 식구들 모두 웃었다. (근데 이거 웃어도 되는 일인가?)

 

 

 

 

 

 

5.
이번 늦여름은 유난히 길다.
낮엔 덥고 아침저녁으론 선선한 늦여름. 
낮의 더움이 저녁엔 물러나는 이 계절이 나는 좋다.
곧 ‘기다리고 섰는 가을’이 ‘아직 남아 있는 여름’을 완전히 밀어내리라.
‘아직 남아 있는 여름’이 꼼짝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는 늦여름과 작별해야 한다.
아마 작별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어느새 우린 가을 속에 있겠다.
곧 그런 날이 오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14-09-1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자녀의 가족끼리도 유대감을 갖기 바랍니다. 이런 바람은 자신의 아들은 누구의 사위가 됨을, 자신의 딸은 누구의 며느리가 됨을 이성적으로 알지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죠. '시누이 가족이 곧 도착하니, 만나고 가라는 ...'

페크pek0501 2014-09-10 16:44   좋아요 0 | URL
하하~~ 딸이 온다며 며느리를 잡아 둔다... 그 며느리도 친정에선 딸인데 말이죠.
사위가 집안일을 하면 흐뭇하고 아들이 집안일을 하면 속상한 어머니들의 심리도 재밌지 않습니까?

hnine 2014-09-1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전날 음식 만드느라 앉지도 못하고 있는데 남편이 와서 묻더라고요. "나는 뭘 하면 되나?"
남편 얼굴 쳐다보지도 않고 목소리 깔고 대답했지요. "찾아서 해" ㅋㅋ
숙제를 마친 기분이라는 말, 딱 그 기분이예요. 전 힘들고 길 막힌다고 친정에도 안갔어요. 다음주 일요일에 간답니다. 이해해주시는 친정 부모님이 고맙지요.
저도 막내며느리가 되고 싶었던 맏며느리랍니다 ^^

페크pek0501 2014-09-11 11:22   좋아요 0 | URL
아, 남편 님이 참 좋은 남편이시네요.
숙제를 마친 기분... 님도 공감하시는군요. 속이 다 시원해지더라고요.ㅋㅋ
아마 우리 시어머니도 그러실 거예요. 며느리들보다 더 힘든 사람이 시어머니들일 것 같아요. 며느리가 오기 전까지 장을 다 봐 놓고 웬만한 것은 다 손질해 놓으시니까 명절 때마다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정말 어깨가 가벼운 막내며느리이고 싶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4-09-1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남과 맏며느리는 아무래도 권리보단 책임이 더 무겁죠.사장이나 왕은 책임보다 권리가 더 많고요.그래서 맏며느리 하겠다고 경쟁이 치열하진 않지만 사장이나 왕은 서로 하려고 박터지게 싸우지 않습니까.

페크pek0501 2014-09-11 11:25   좋아요 0 | URL
하하~~ 재밌게 쓰셨습니다. 맞는 말씀 같네요.
맏며느리들은 어깨가 무겁답니다. 그래서 맏며느리가 아닌 사람을 부러워하죠.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으로 일하고 왔습니다.^^
저는 맏며느리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세실 2014-09-1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남이 싫어 둘째랑 결혼했는데 시댁 옆집에 사는 덕분에 장남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신랑이 집에 고장난거 고쳐드리기, 벌초할때 진두지휘하기. 저는 일주일에 한번 찾아 뵙기, 명절에 수시로 들락거리기....
다행히 아직은 두분 건강하셔서 제가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긴 합니다.
시골 도서관장은.....좋은걸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4-09-12 15:05   좋아요 0 | URL
으음~ 세실 님은 착한 며느님일 듯...
저랑 반대네요. 님은 둘째면서 맏며느리처럼 사시고
저는 맏며느리인데 둘째처럼 살고... 동서와 나는 서울에 살기 때문에 지방에 사시는 어머님을 자주 찾아 뵙지 못해요. 어머님과 가까이 사는 두 누나들이 어머님을 보살피고 있는 형편이죠.
병원에 갈 일이 있을 때도 누나들이 수고를 한답니다. 그래서 미안하죠.

도서관장님 자리는 제가 보기에도 좋아 보여요. 오너는 아니니까 망할 염려가 없고 권위와 명예는 님의 손에 쥐고 있는 것 같고... ㅋㅋ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제가 회장직보단 비서직을 좋아하지만 비서보단 회장과 친하게 지내길 좋아한답니다. 큭큭 ...

오늘 꼭 참석하라는 세미나가 있어서 아침부터 서둘러 갔다 왔는데 어찌나 멀던지 올 땐 화가 났어요.
그런데 집에 와 씻고 나니 상쾌해지네요. 세실 님을 보니 더욱... ^^

마태우스 2014-09-1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랫사람으로 사는 게 좋아요 윗사람의 자질이 제겐 없더라고요. 시댁식구와 헤어지는 게 서운할 수도 있구나, 싶습니다. 전 남자라서 그런 걸 완전히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댁은 힘든 거 아닌가요. 음식 안하고 같이 있기만 해도 피곤한... 제가 너무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걸까요. 암튼 힘 내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화이팅.

페크pek0501 2014-09-17 10:32   좋아요 0 | URL
으음~~ 언제부턴가 제가 친구들을 만나면 쫄병이 되어 있더라고요.
뭐든 하자는 대로 하고요, 좀처럼 의견을 잘 내지 않아요. 분명히 예전엔 안 그랬는데 말이죠.
저는 시댁 식구들을 좋아하는 편에 속해요. 며느리들을 잘 배려해 주는 시댁인데, 그것에 비해 며느리 역할을 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아, 님은 여자 세계를 많이 아시는 것 같아염...
저도 파이팅!!!!!!!!!!
 

 

 

1. 폰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 '스마트폰 소외족'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스마트폰과의 만남은 편리함과의 만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외출하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날씨가 흐려 비가 올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컴퓨터를 켜기 위해 도로 집으로 갈 필요 없이 바로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우산을 갖고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에 스마트폰이 편리하겠다. 나는 이와 같은 편리함을 취하고 싶을 뿐, 스마트폰을 컴퓨터 대용으로 쓰길 바라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메시지 주고받는 것, 지하철 노선 보는 것, 음악 듣는 것, 사진 찍는 것, 메모하는 것 등을 하겠지만 알라디너의 글을 읽는다든지 신문을 읽는다든지 할 때처럼 긴 글을 읽을 때엔 컴퓨터의 큰 화면으로 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폰으로 인해 눈의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을 많이 보면 눈물이 말라 노안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30대 젊은 층의 노안 인구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폰의 노예가 되지 않음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폰과 노는 시간’보다 ‘책과 노는 시간’이 훨씬 많을 것.

 

 

 

 

 

 

 

2. 미묘한 심리 (1) : ‘내가 바보 같은 행동을 했어.’라고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바보 같은 행동을 했어.’라고 말하면 그건 기분이 상한다. ‘그 일에 자존심이 상했어.’라고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그 일에 자존심이 상했겠다.’라고 말하면 그건 자존심이 상한다. 왜 그럴까? 나는 이런 인간의 심리가 재밌다. 이런 심리를 볼 수 있는 소설이 좋다. 그래서 소설을 즐겨 읽는다.

 

 

 

 

 

 

 

3. 미묘한 심리 (2) : 결혼하기 전, 지금의 남편이 나를 일방적으로 따라다녔다. 남편이 나를 짝사랑을 한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둘이 연애를 하게 되었고 결혼 얘기가 오가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갈등하고 있었다. 이 남자와 결혼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어머니 될 분이 나를 신붓감으로 반대한다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나를 반대한다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결혼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가질 수 없을 때 더 갖고 싶은 것과 같은 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이름 없는 것에서 하늘과 땅이 생겼다.
이름 붙여진 것은 각자 그 성질에 따라 만물을 길러내는 어머니이다.
실로 욕망을 영원히 벗어난 자만이 비밀스러운 본질을 볼 수 있다.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결과만을 본다.  
노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59쪽. 

 

 

욕망은 비밀스러운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결과만을 보게 만든다는 것에 공감한다. 나의 경우 시어머니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결혼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서, 다른 건 따질 것 없이 오로지 결혼해야 한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남편과 결혼한 걸 후회한다는 것은 아님. ㅋ 내 친구가 말했듯이, 딱 나 같은 사람과 결혼했다고 본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반대가 완강하진 않았다. 워낙 선량한 분이다. (지방에 사는) 우리 시어머니가 나를 반대한 이유를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서울 여자’라서 싫고 ‘잡지사 기자’라서 싫었단다. 드센 여자인 줄 알고... 나, 하나도 드세지 않은데...)

 

 

티브이 드라마에서도 흔희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 아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신붓감을 데리고 왔을 때, 그 신붓감이 맘에 들지 않는 어머니는 오로지 두 사람을 떼어 놓을 궁리만 한다. 떼어 놓고 싶은 욕망으로 ‘떼어 놓음’의 결과만을 볼 뿐, 자신의 아들이 그 일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아들이 행복하길 가장 바라는 어머니가 결과적으론 아들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만다.

 

 

기억해 두기로 한다.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결과만을 본다.’

 

 

 

 

 

 

 

 

 

 

 

 

 

 

 

 

 

 

 

 

  

 

4. 사랑과 겸손의 관계 : 한 번쯤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한 번쯤 실연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어긋나는 게 인생이다, 가 되겠다. 그러니 실연당했다고 해서 창피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고 보니 그렇게 생각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결혼하게 되는 것이겠지. 그래서 다행인 것이다. 만약 이성을 만나게 될 때 서로 좋아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면 도대체 누구랑 결혼해야 된단 말인가. 서로 좋아하는 일이 드물게 일어나는 건 절묘한, 신의 한 수.

 

 

여러분은 아시는가?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상대를 잃게 될까 봐 조심하게 된다는 것을.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상대를 잃게 될까 봐 화를 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다시 말해, 사랑을 하게 되면 저절로 겸손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데 평상시에 겸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요즘 ‘겸손’에 대해 관심이 많다. 생활에서도 글을 쓸 때도 겸손하고 싶어서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겸손함이란 우리의 재능과 미덕을 숨기거나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나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 속에 부족한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고, 신께서 우리가 가진 것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셨으며, 그분께서 주신 모든 재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거기에 대해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데 있다.
라코르데르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79쪽.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아는 것, 이게 중요하겠다.

 

 

이런 속담이 생각난다.

 

 

아랍 속담 :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처하는 자는 화병으로 죽을 위험이 있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34쪽.

 

 

 

 

 

 

 

 

 

 

 

 

 

 

 

 

 

 

 

 

 

 

 

5. 반해 버린 책 : 그저께 책을 읽다가 보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아, 잠을 자야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책을 덮었다. 바로<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이란 책이다.  연암 박지원의 글을 감상할 수 있고 그의 글 쓰는 방법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만을 전부라 여기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갈등과 대립이 생겼을 때, 각자가 자기 입장만이 옳다고 우기면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연암의 우언寓言을 들어 보자.

 

까마귀는 뭇 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다른 새 희지 않다 의심하네.
흑과 백이 각자 자기가 옳다 하면
하늘도 응당 그 판결 싫어하리.
「발승암기문」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53쪽.

 

 

까마귀는 뭇 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다른 새가 희지 않다고 의심한다는 구절, 짧지만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 글로 보인다. 연암의 글이다.

 

 

역시 연암이 쓴 다음의 글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다. 어느 글의 첫머리라고 한다.

 

 

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나가 놀다가 소경이 비단옷을 입은 것을 보았다. 자혜가 “후유” 하고 한숨지으며 말했다. “쯧쯧! 자기에게 있으면서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자무가 말했다.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사람과 비교하면 누가 나을까?“ 마침내 함께 청허聽虛선생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하지만 선생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는 모르겠네, 나는 몰라.“  
「낭환집 서문」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112쪽.

 

 

이 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특히 연암은 대체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논쟁을 걸면서 글을 시작한다. 이는 곧 연암의 글은 정보나 지식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고, 논쟁을 촉발하거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독자의 반성을 유도하거나 독자에게 흥미를 주려는 데 목적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처음에 과감하고 분명한 논지를 제기하라는 것이 연암이 말하는 서두의 글쓰기 요령이다.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113~114쪽. 


 
이 책을 보느라 밤잠을 적게 잤는데 내가 왜 이렇게 책에 집중하며 살까, 생각해 보니 책을 친구 삼아 살게 된 게 습관이 되어서인 것 같다. 책과 친구가 되면 외롭지 않아 좋다. 나의 이런 생각을 일깨워 주는 글을 만났다. 형암 이덕무의 글이다.

 

 

친구가 없다고 탄식할 것 없이 책과 함께 노닐면 된다. 책이 없으면 구름과 놀이 내 친구고, 구름과 놀이 없으면 하늘을 나는 갈매기에 내 마음을 의탁하면 된다. 나는 갈매기가 없으면 남쪽 마을의 홰나무를 바라보며 친구 삼아도 되고 잎 사이의 귀뚜라미도 구경하며 즐길 수 있다. 무릇 내가 사랑해도 그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은 모두 나의 좋은 친구다.  
「선귤당농소」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72쪽.

 

 

아, 이 글도 좋다. 시기하는 친구나 의심하는 친구는 ‘친구 명단’에서 빼야 하는 거구나.

 

 

다음의 글 역시 형암 이덕무의 글이다.

 

 

개구리 소리는 마치 멍청한 원님 앞에 사나운 백성들이 몰려와 소송을 제기하는 것 같고, 매미 소리는 공부를 엄격하게 시키는 서당에서 시험 일이 닥쳐 글을 소리 내어 외는 것 같으며, 닭 울음소리는 올곧은 한 선비가 자기 임무로 여기고 바른말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번번이 잠자코 응하지 않으면, 발끈해서 낯빛을 붉히고 손을 치켜들고 노려보는데, 눈썹은 개 자 모양으로 찡그리고 손가락은 마른 마디 같아, 굳세고 삐죽삐죽한 모습이 문득 대나무 모양이었다.  
「죽오기」竹塢記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74~75쪽.

 

 

개구리 소리, 매미 소리, 닭 울음소리에 대한 표현이 재밌다. 탁월하다. 

 

 

탁월한 글이 담긴 책을 탁월한 선택으로 구입했더니 밤잠을 덜 자게 만들어 그 다음날 몸 컨디션을 나쁘게 만들었네. 행복한 불평을 해 본다.

 

 

 

 

 

 

 

6. 깊게 파기 : 한 쪽으로 깊게 파기의 글이 좋기 때문에 자전적 소설이 호평을 받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작가들이 자전적 소설로 유명한 문학상을 타는 걸 많이 봤다. 자전적 소설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경험해서 잘 아는 것’을 쓴 소설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남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써라. 상상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자주 ‘내가 무엇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언젠가 하나 잡히겠지...

 

 

 

 

 

 

 

7. 여름이 아직 가지 않았다는 증거 : 9월이 오려고 한다. 9월이 늦게 왔으면 좋겠다. 9월이 오면 금방 가을이 될 것 같아서다. 며칠 전, 세 시 넘어 은행 일을 볼 게 있어서 집을 나섰다. 은행 일을 보고 나서 바로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파트 단지 부근을 돌며 산책을 했다.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해 질 무렵의 날씨를 좋아하는데 그날은 흐려서 낮인데도 마치 해 질 무렵처럼 느껴졌던 것. 걸으니 더웠다. 길을 지나다 어느 편의점 유리창에 아이스커피가 천 원부터, 라고 씌어 있는 걸 보았다. 갑자기 아메리카노 아이스커피가 마시고 싶어 편의점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아이스커피’가 커피액에 얼음을 넣은 종이컵까지 포함하여 천 원밖에 하지 않는 건 의외였다. 그동안 비싼 줄 알고 안 사 먹었잖아. 나, 이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네. 길에서 마시자니 교양 없어 보이는 나이인 것 같아 집에 와서 마시니 구수하고 달콤한 아이스커피의 맛에 행복하다. 천 원이 주는 행복에 취한 시간이었다. 여름이 아직 가지 않았다는 증거다. 아이스커피가 맛있다는 것은. 

 

 

 

 

 


 

8. 위로가 되는 말 : 남에게 추천할 만큼 좋게 읽은 책이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책 내용을 잊게 된다. 그래서 누가 그 책의 내용을 말하라면 말 못하겠다.

 

 

그래서 내가 요즘 생각한 것은 '책은 읽어서 뭐하나?‘이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면서 인용했던 글은 잊지 않게 된다. 인용한 글 대부분이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기억하기 위해서 이것도 옮겨 놓는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마거릿 대처)

 

 

어느 책에서 읽은 것이다. 이렇게 인용하고 나면 이 말도 내 머릿속에 저장되겠지. 살면서 실패를 피할 수 없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좋은 말이다.

 

 

기억해 두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쓴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내가 요즘 실패한 일이 하나 있는데 앞으로 더 현명하게 시작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믿어야지. 믿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4-08-3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결과만 본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를 수첩에 적고,
미묘한 심리(1),(2)에 완전 공감하며,
동네 한바퀴를 돌면 벼가 익어가는 냄새가 진동하여 드디어 가을이구나 하고, 이미 여름과 작별한 제가, 아직 여름을 보내지 않은 님께 짧은 엽서 한장 띄우는 마음으로 댓글 남깁니다.

참 좋아요. 페크님의 글을 읽는 시간이요.

페크pek0501 2014-08-31 12:22   좋아요 0 | URL
늘 제 글을 응원해 주시는 메리포핀스님께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선사합니다.
잘 받으세요... ㅋ

"이미 여름과 작별한 제가, 아직 여름을 보내지 않은 님께 짧은 엽서 한장 띄우는 마음으로 댓글 남깁니다. "- 이 댓글, 참 좋군요... 저도 수첩에 적어야 할 것 같은데요...

stella.K 2014-08-3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은 결혼을 하셨군요.ㅋ
여름의 끝을 부여잡는 요맘 때가 좀 애틋하긴 하죠.
어제 비가 와서 오늘은 선선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여름이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페크pek0501 2014-08-31 12:24   좋아요 0 | URL
반가운 님아...
가장 좋은 결혼은 아니고... 평범해염...ㅋ

이 여름이 가는 건 아쉽지만 그래서 늦여름이 길어지는 건 좋지만
만약 다시 초여름으로 돌아가서 석 달이나 더워야 한다면 그건 싫으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늦여름.
제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초여름. 하하~~

노이에자이트 2014-08-3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인간의 속물근성을 아주 신랄하고 냉정하게 파헤치는 소설을 연속으로 읽어보자고 결심하고, 모파상 모옴 헉슬리 이 세명의 단편 몇 편을 연속으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페크 님은 헉슬리 단편들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군요.

페크pek0501 2014-09-01 13:40   좋아요 0 | URL
흐흐~~ 헉슬리의 단편은 읽어 보지 못했어요. 단편을 썼다는 것도 몰랐네요.
논술에서 많이 출제되는 작품이 '멋진 신세계'라서 헉슬리를 알게 되었죠. 논술에선 조지오웰의 '1984년'과 '동물농장'만큼이나 유명한 작품이죠.
모파상의 단편집은 읽었고 제가 어느 페이퍼에서 인용도 했어요.
모옴은 장편만 여러 작품 읽었어요.

헉슬리의 단편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네요. ^^

단발머리 2014-09-0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남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써라. 상상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자주 ‘내가 무엇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언젠가 하나 잡히겠지...

이 문장을 그래도 옮겨서 제 방에 가져가고 싶어요. ....
페크님 좋아하시는 늦여름 빨리 지나가는 소리가 막 들려요.
오늘 아침에는 비도 많이 왔구요.
좋아하시는 날씨, 많이 만끽하시기 바래요~~

페크pek0501 2014-09-03 13:18   좋아요 0 | URL
어머낫!
댓글에서 제 글을 복사 붙이기를 하시면 어떡합니까?
그럼 제 기분이 무지 좋잖아요.

제 글, 님의 방으로 가져 가셔도 됩니다. 하하~~

맞아요. 늦여름도 가려하는지 오늘 아침엔 추워서 긴 팔 옷을 입고 싶더라고요.
지금도 이 멋진 늦여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마태우스 2014-09-16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편의점 아이스커피가 맛있다는 걸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맛없을 줄 알고 안먹었다는.
2) 반대라는 말에 욱하셨군요! 전 "시어머니가 반대해서 어이가 없었다 해달라고 졸라도 할까말까인데"라는 글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전입니다.
3) 저도 스맛폰 사고나서 님같은 결심을 했지요. 비교적 잘 지켰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아무래도 책보는 시간이 줄긴 했어요. 카메라로만 쓰려고 하는데 그게 늘 잘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페크pek0501 2014-09-17 10:26   좋아요 0 | URL
1) 저도 처음 마셔 봤어요. ㅋ
2) 아, 반전... 신붓감으로 나를 반대하더니, 그게 저에겐 반전이었죠.
3) 책 책 책, 우리 폰보다 책을 더 사랑하자고요... ^^
 

 

이제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페크가 되었다.

 

나, 참, 느려 터진다 터져.

 

컴퓨터는 친구들 중에서 일찍 사용한 편인데 스마트폰은 느렸다.

 

 

 

1.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헌 핸드폰에서 새 스마트폰으로 바꿀 때 난 미동도 하지 않았다. 2011년쯤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거의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4년째 버티며 헌 핸드폰을 고집하며 살았다. 여기서 압력이란? 나 때문에 불편하다며 웬만하면 스마트폰으로 바꾸라는 친구들의 (공격적인?) 말을 말함이다.

 

 

스마트폰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이제야 스마트폰을 샀다.

 

 

스마트폰에 대한 거부감이란?


 
1) 무작정 유행을 쫓아가는 게 싫었고 : 줏대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싫었다.
2) 비용 면에서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싫었고 : 우리 애들의 스마트폰 사용료를 보면 내 핸드폰 사용료의 두 배 가량이 된다. 차라리 그 돈으로 책을 몇 권 더 사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3) 내가 기계치라서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싫었고 : 컴퓨터를 배울 때처럼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배우는 게 어려울 줄 알았다.
4) 안구건조증이 더 심해질 것 같아서 싫었고 : 그 작은 화면을 보느라 눈이 얼마나 혹사하겠는가 싶었다.
5)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아 싫었다 :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독서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 확실하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 때까지 컴퓨터를 사용할 텐데 컴퓨터를 늦게 배울 걸 그랬다고 후회했으므로, 마찬가지로 죽을 때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할 텐데 스마트폰을 늦게 배울 걸 그랬다고 후회할 것 같아서 사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스마트폰을 사지 않은 게 이런 거부감 때문만은 아니다. 제일 중요한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이것.

 

 

‘스마트폰에 관심이 없고 그걸 사기도, 사용 방법을 익히는 것도 귀찮았다는 것.’ 

 

 

그 귀찮음을 깨고 이번에 사 버렸다. 여러 이유 때문에 샀는데 그중 첫 번째가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리고 두 번째가 핸드폰을 꺼낼 적마다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19세기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아서 창피함. 또 컴맹인 걸로 오해받을 것 같아 창피함.)

 

 

배우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쉽잖아. 시시하잖아. 컴퓨터 사용 방법과 비슷해서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한 시간 만에 다 배웠다.(나한테 필요한 것만을 배웠음을 말함.) 나, 기계치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아직 두뇌가 살아 있네, 살아 있어. ㅋㅋ

 

 

내 스마트폰이 개통되니까 내가 샀다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친구들과 사촌이 카톡 입성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뭐야 이거... 비밀이 없잖아... 내가 익숙해진 다음에 연락하려 했는데...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움이여...

 

 

 

 

 

 

2.
스마트폰을 사용하니까 우선 좋은 점은 사람들과 만날 날짜를 정할 때 편하다는 점이다.

 

 

나처럼 학교에 나가는 강사들과의 모임이 있다. 몇 명이서 만나는데 각자 수업 시간표가 달라서 만나려면 날짜 정하기가 쉽지 않다. 카톡 채팅방에선 그게 쉬워졌다.

 

 

“쌤들, 언제 만날까요? 수업이 있는 요일을 말씀해 주세요.”

“전 월수금에 수업 있어요.”

“전 월수목토에 수업 있어요.”

“그러면 화요일에 만날까요?”

 

 

이런 식이다. 그러니 스마트폰이 없는 나 때문에 그들이 그동안 불편했겠다.

 

 

사진을 찍고 나서 (스마트폰이 없는) 내겐 따로 보내야 한다며 투덜대는 친구도 있었다. 내게 첨부파일로 사진을 보내려면 번거롭기도 하고 돈이 들어서다. 아효~ 미안해라...

 

 

다 좋은데 불편한 건 폰을 잡고 문자를 쓰는 게 한 손 하나로 가능했는데 이젠 폰이 커져서 한 손으로만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다. 

 

 

 

 

 

 

3.
(알라디너들 중 아직도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으신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제가 제일 꼴찌일까요? 그 꼴찌의 자리도 영광스러울 것 같은데 말이죠...) 하하~~

 

 

이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예전에 올렸던 글이 생각나서 퍼 옮긴다.

 

 

에리히 프롬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 결정의 대부분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암시되는 어떤 것이다. 결정을 내린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을 수는 있어도, 실제로 인간의 결정 행위는 인간이 두려운 고립감이나 생명, 자유, 안락함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위협에 내몰렸을 때 타인의 기대에 보조를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장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소비의 사회기능과 조직 구조가 개인적 레벨을 훨씬 넘어서는 무의식적인 사회적 강제가 되어 개인에게 강요된다.”(장 보드리야르 저, <소비의 사회>에서.)

 

 

나 역시 타인의 기대에 보조를 맞춘 것이고 무의식적인 사회적 강제에 굴복한 것이다. 내가 스마트폰을 산 것은.

 

 

그 시대에 이미, 미래에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을 예견한 에리히 프롬장 보드리야르가 놀라울 따름이다. 두 분을 존경합니다요!

 

 

이왕 샀으니 즐겁게 폰을 사용하며 살겠다. 그러나 폰의 노예가 되진 않겠다. 불끈!

 

 

폰을 늦게 구입해서 좋은 점은 저렴하다는 점. 스마트폰의 가격도, 월 사용료도 예전에 비해 많이 싸졌다. 그리고 좋은 점을 하나 더 말하라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폰을 사용하는 시간에 나는 책을 읽었다는 것.

 

 

....................


내가 읽은 에리히 프롬의 책 세 권.

 

<자유로부터의 도피>
<프로이트와 정신분석>
<사랑의 기술>

 

이 중에서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으로 하나만 꼽으라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꼽겠다. 인상 깊게 읽은 흥미로운 책이다.

 

 

 

 

 

 

 

 

 

 

 

 

 

 

 

 

 

....................

 

 

 

 

 

 

4.
아직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로 말하면 기계치는 아니다. 우리 친구들 중 컴퓨터를 제일 먼저 배웠고 노트북을 제일 먼저 샀으며 여성 운전자가 별로 없던 시대에 차를 몰고 다녔던 친구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가 헌 핸드폰을 꺼낼 때면 멋있던데, 내가 꺼내면 왜 쪽팔리는지(요런 낱말을 사용함을 이해해 주세요. 가장 적합한 낱말인지라...) 모르겠다. 이 친구는 앞으로도 스마트폰을 사지 않고 버틸 것 같다. 지난번에 물어 보니 그의 생각이 확고했다. “스마트폰이 별로 필요하지도 않고 폰 사러 다니는 것도 귀찮아 안 바꿀거야.” 이랬다.

 

 

이 친구도 귀찮아서 스마트폰을 사지 않고 있다는데, 이 귀찮은 일을 나는 이달 8월에 해냈다. 사용 방법을 익히는 것도 귀찮았는데 이 귀찮은 일을 나는 이달 8월에 해냈다. 스마트폰 사용한 지 열흘이 지났고 지금은 도사처럼 사용한다. 그래서 내가 자랑스럽다. (자랑스러워해도 되려나요?) 저는 별게 다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일을 해낸 페크에게, 카톡 입성을 드디어 해낸 페크에게

 
축하해 주시길...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4-08-2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아직 3G입니다. 무리짓기에 능력도 없으나 의지도 없어 ... 타인 및 소통에 무관심한 마립간입니다. 거부감 이유 1) ~5) 모두 공감하지만, 2만원 정도의 통신비로는 스마트폰이 감당이 안 됩니다.

페크pek0501 2014-08-20 17:20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제가 님에게 진 겁니까? 제가 꼴찌일 줄 알았는데...
친구들이 저보고 강적이라고 하는데 님은 더 강적이신 건가요?
부디 그 고집? 꺾지 마시길...
제가 몇 달 써 보고 님에게 사는 게 좋은지 어떤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말씀대로 하실지 안 하실지는 님의 자유입니다만...
그저 의견을 드리겠습니당~~


잘잘라 2014-08-20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년째 스마트폰(아이폰4)을 쓰지만 카톡은 언제나 비활성상태인 1인이기에, 축하드리기보다는 「이왕 샀으니 즐겁게 폰을 사용하며 살겠다. 그러나 폰의 노예가 되진 않겠다. 불끈!」에 완전 공감 한 표 찍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14-08-20 23:02   좋아요 0 | URL
아니 메리포핀스 님! 의외인 걸요.
저처럼 모임이 많지 않은 사람도 채팅 그룹이 네 개여서 카톡 소리가 자주 나는데 말입니다.
으음~~ 그러나 폰의 노예가 되지 않으신 건 잘하신 일인 것 같습니다.
저도 노예가 되지 않겠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처럼 지하철에서 폰을 보고 있지
않겠습니다. 불끈!!! 그럼 뭐하느냐? 사색에 잠겨 있겠습니다. ㅋㅋ

날씨가 좋아서 하루하루 가는 게 아쉬울 지경이에요.
저는 9월이 오는 게 싫어요. 그런데 하루가 성큼성큼 날아가고 있어요.
금방 추워질 것만 같아 이 시간을 잡고 있습니다요... ^^

세실 2014-08-2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울로 코엘류는 친구와 대화중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을 좀비라고 했는데 제가 바로 좀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중독......자!
현명하신 페크님은 절제를 잘 하실듯요^^

스마트폰의 장점은 알라딘 글을 어디서나 읽을수 있고, 사진이 잘 찍히며, 미드도 볼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아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4-08-22 16:14   좋아요 0 | URL
세실 님은 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실 듯요. 장점을 잘 활용하실 듯요.
바쁘시니까 짬짬이 폰 사용을 하시면 오히려 시간 절약도 되실 것 같아요.
매일 출퇴근하는 님 앞에서 바쁘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건데 바빠 죽겠어요.
파마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고 있네요.
글도 급히 써서 올리고 있어요. 준비된 글쓰기는 언제나 되려나요?
다음에 올리는 글도 급히 써서 올리게 될 것 같은 예감...ㅋ

또 나가 봐야 한답니다. 님의 축하에 감사드립니다. 반가웠어요. 또 봐요^^

다크아이즈 2014-08-2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맛폰의 세계로 오심을 축하드립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 덕에 더 빠지고 더 사랑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페크님 글 읽자니 타자의 욕망이 곧 나의 욕망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의 단면이겠지요.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덥지 않다는 그 이유만으로 무조건 반기겠습니다.
새 글이 올라올 때 됐는데, ㅋ

페크pek0501 2014-08-23 13:21   좋아요 0 | URL
님의 출현을 보니 반갑습니다. 님의 글 두 편을 읽고 왔습니다.
여전히 글 좋으시고...

폰... 저는 폰의 편리한 점은 인정하겠지만 빠지진 않을 것 같아요.
알라디너의 글을 폰으로 보면 눈알이 아플 것 같다는... 이런 건 컴의 큰 화면으로 느긋하게 보고 싶어요.
저는 폰과 노는 시간보다 책과 노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고 싶어요...
그래야 님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8-2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모두 스마트폰 이야기로군요.저는 주체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자유로부터의 도피....저는 지인들에게 경제사와 계급론 공부할 때의 좋은 참고서로 추천합니다.서양 경제사에서는 종교개혁을 아주 중요시하죠.경제라는 물적 토대와 종교라는 정신적 영역이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가 하는 사회과학의 핵심을 연구할 때 가장 좋은 케이스 스터디니까요.

페크pek0501 2014-08-27 19:55   좋아요 0 | URL
저도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참 흥미롭게 읽었어요. 추천할 책으로 손색 없는 듯해요. 그런데 몇 개의 문장만 뇌리에 있을 뿐 (읽은 지 오래 돼서) 그 한 권의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었던 건지 말하라면 못해요. ㅋㅋ

그래서 제가 요즘 생각한 것, 다음과 같습니다.

'책은 읽어서 뭐하나? '

2014-09-16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7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14-09-17 11:39   좋아요 0 | URL
네 전화 번호가 두개예요 뜨기전에도두개를 갖고 있었으니 지금은 세개쯤 쓰는게 맞는데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