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페크가 되었다.
나, 참, 느려 터진다 터져.
컴퓨터는 친구들 중에서 일찍 사용한 편인데 스마트폰은 느렸다.
1.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헌 핸드폰에서 새 스마트폰으로 바꿀 때 난 미동도 하지 않았다. 2011년쯤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거의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4년째 버티며 헌 핸드폰을 고집하며 살았다. 여기서 압력이란? 나 때문에 불편하다며 웬만하면 스마트폰으로 바꾸라는 친구들의 (공격적인?) 말을 말함이다.
스마트폰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이제야 스마트폰을 샀다.
스마트폰에 대한 거부감이란?
1) 무작정 유행을 쫓아가는 게 싫었고 : 줏대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싫었다.
2) 비용 면에서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싫었고 : 우리 애들의 스마트폰 사용료를 보면 내 핸드폰 사용료의 두 배 가량이 된다. 차라리 그 돈으로 책을 몇 권 더 사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3) 내가 기계치라서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싫었고 : 컴퓨터를 배울 때처럼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배우는 게 어려울 줄 알았다.
4) 안구건조증이 더 심해질 것 같아서 싫었고 : 그 작은 화면을 보느라 눈이 얼마나 혹사하겠는가 싶었다.
5)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아 싫었다 :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독서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 확실하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 때까지 컴퓨터를 사용할 텐데 컴퓨터를 늦게 배울 걸 그랬다고 후회했으므로, 마찬가지로 죽을 때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할 텐데 스마트폰을 늦게 배울 걸 그랬다고 후회할 것 같아서 사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스마트폰을 사지 않은 게 이런 거부감 때문만은 아니다. 제일 중요한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이것.
‘스마트폰에 관심이 없고 그걸 사기도, 사용 방법을 익히는 것도 귀찮았다는 것.’
그 귀찮음을 깨고 이번에 사 버렸다. 여러 이유 때문에 샀는데 그중 첫 번째가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리고 두 번째가 핸드폰을 꺼낼 적마다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19세기의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아서 창피함. 또 컴맹인 걸로 오해받을 것 같아 창피함.)
배우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쉽잖아. 시시하잖아. 컴퓨터 사용 방법과 비슷해서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한 시간 만에 다 배웠다.(나한테 필요한 것만을 배웠음을 말함.) 나, 기계치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아직 두뇌가 살아 있네, 살아 있어. ㅋㅋ
내 스마트폰이 개통되니까 내가 샀다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친구들과 사촌이 카톡 입성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뭐야 이거... 비밀이 없잖아... 내가 익숙해진 다음에 연락하려 했는데...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움이여...
2.
스마트폰을 사용하니까 우선 좋은 점은 사람들과 만날 날짜를 정할 때 편하다는 점이다.
나처럼 학교에 나가는 강사들과의 모임이 있다. 몇 명이서 만나는데 각자 수업 시간표가 달라서 만나려면 날짜 정하기가 쉽지 않다. 카톡 채팅방에선 그게 쉬워졌다.
“쌤들, 언제 만날까요? 수업이 있는 요일을 말씀해 주세요.”
“전 월수금에 수업 있어요.”
“전 월수목토에 수업 있어요.”
“그러면 화요일에 만날까요?”
이런 식이다. 그러니 스마트폰이 없는 나 때문에 그들이 그동안 불편했겠다.
사진을 찍고 나서 (스마트폰이 없는) 내겐 따로 보내야 한다며 투덜대는 친구도 있었다. 내게 첨부파일로 사진을 보내려면 번거롭기도 하고 돈이 들어서다. 아효~ 미안해라...
다 좋은데 불편한 건 폰을 잡고 문자를 쓰는 게 한 손 하나로 가능했는데 이젠 폰이 커져서 한 손으로만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다.
3.
(알라디너들 중 아직도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으신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제가 제일 꼴찌일까요? 그 꼴찌의 자리도 영광스러울 것 같은데 말이죠...) 하하~~
이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예전에 올렸던 글이 생각나서 퍼 옮긴다.
에리히 프롬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 결정의 대부분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암시되는 어떤 것이다. 결정을 내린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믿을 수는 있어도, 실제로 인간의 결정 행위는 인간이 두려운 고립감이나 생명, 자유, 안락함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위협에 내몰렸을 때 타인의 기대에 보조를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에리히 프롬 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장 보드리야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소비의 사회기능과 조직 구조가 개인적 레벨을 훨씬 넘어서는 무의식적인 사회적 강제가 되어 개인에게 강요된다.”(장 보드리야르 저, <소비의 사회>에서.)
나 역시 타인의 기대에 보조를 맞춘 것이고 무의식적인 사회적 강제에 굴복한 것이다. 내가 스마트폰을 산 것은.
그 시대에 이미, 미래에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을 예견한 에리히 프롬과 장 보드리야르가 놀라울 따름이다. 두 분을 존경합니다요!
이왕 샀으니 즐겁게 폰을 사용하며 살겠다. 그러나 폰의 노예가 되진 않겠다. 불끈!
폰을 늦게 구입해서 좋은 점은 저렴하다는 점. 스마트폰의 가격도, 월 사용료도 예전에 비해 많이 싸졌다. 그리고 좋은 점을 하나 더 말하라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폰을 사용하는 시간에 나는 책을 읽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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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에리히 프롬의 책 세 권.
<자유로부터의 도피>
<프로이트와 정신분석>
<사랑의 기술>
이 중에서 여러 번 읽고 싶은 책으로 하나만 꼽으라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꼽겠다. 인상 깊게 읽은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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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직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로 말하면 기계치는 아니다. 우리 친구들 중 컴퓨터를 제일 먼저 배웠고 노트북을 제일 먼저 샀으며 여성 운전자가 별로 없던 시대에 차를 몰고 다녔던 친구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가 헌 핸드폰을 꺼낼 때면 멋있던데, 내가 꺼내면 왜 쪽팔리는지(요런 낱말을 사용함을 이해해 주세요. 가장 적합한 낱말인지라...) 모르겠다. 이 친구는 앞으로도 스마트폰을 사지 않고 버틸 것 같다. 지난번에 물어 보니 그의 생각이 확고했다. “스마트폰이 별로 필요하지도 않고 폰 사러 다니는 것도 귀찮아 안 바꿀거야.” 이랬다.
이 친구도 귀찮아서 스마트폰을 사지 않고 있다는데, 이 귀찮은 일을 나는 이달 8월에 해냈다. 사용 방법을 익히는 것도 귀찮았는데 이 귀찮은 일을 나는 이달 8월에 해냈다. 스마트폰 사용한 지 열흘이 지났고 지금은 도사처럼 사용한다. 그래서 내가 자랑스럽다. (자랑스러워해도 되려나요?) 저는 별게 다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일을 해낸 페크에게, 카톡 입성을 드디어 해낸 페크에게
축하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