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일을 하나 추가했더니 바쁘다. 글을 써서 올릴 마음의 여유도 없고 이웃 서재의 글을 읽을 마음의 여유도 없이 지냈다. 이렇게 바쁜 건 싫지만 일을 끝내고 나면 속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건 바쁨의 장점이다. 어쩌면 그 맛에 바쁨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바쁜 일을 끝내고 나서 느끼는 휴식의 달콤함이 나는 좋다. 무지 좋다. 마치 어떤 날 샤워하긴 귀찮지만 샤워를 끝내고 나서 느껴지는 상쾌함이 좋은 것처럼.

 

 

바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글씨가 빼곡히 찬 노트에서 어쩌다 만난 빈 페이지처럼 별다른 일이 없는 빈 시간이다. 물론 빈 시간이 늘 이어진다면 이런 시간이 좋을 리 없다. 바쁜 자만이 빈 시간의 매력을 아는 법이다.

 

 

모처럼 만난 빈 시간에 이 글을 쓴다.

 

 

 


1.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나니 밀란 쿤데라는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무가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만약 당신이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밀란 쿤데라와 같은 편에 설 수 있으리라.

 

 

<무의미의 축제>는 이야기가 쭉 이어지지 않고 툭 툭 끊어지는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게 읽혀진다. 이야기가 주는 흥미는 없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건 이 소설의 강점이다.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으로 다음의 글을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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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96쪽.
....................

 

 

명절 스트레스로 추석 뒤에 이혼 상담이 부쩍 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명절에 촉발된 부부간 불화는 실제 파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명절이 있는 달의 이혼신청 건수는 전달에 비해 평균 11.5% 높았다”(경향신문, 2014. 09. 18.)고 한다.

 

 

명절에 촉발된 부부간 불화, 이것은 명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면 명절에 대해 진지하지 않게 생각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우리가 어떤 불행한 상황에 직면한다고 해도 그 상황에 대해 진지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게 도움이 될 경우에 진지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병도 알고 보면 진지한 태도 때문에 생긴다. ‘명절 스트레스’라는 것도 알고 보면 명절을 진지한 태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긴다.

 

 

나의 경우, 한가롭게 생활하는 중에 명절이 다가올 때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고, 바쁘게 생활하는 중에 명절이 다가올 때 스트레스를 적게 느낀다. 바쁠 땐 그만큼 명절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그것에 마음이 좌지우지하는 정도도 약할 수밖에. 

 

 

커피로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책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면 맛을 제대로 느껴 보지도 못한 채 커피를 다 마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책에 마음을 빼앗겨서 커피를 음미할 마음이 남지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쁜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명절을 음미할 마음이 남지 않아서 명절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명절을 싫어하듯이 사실 나도 명절이 싫다. 예전엔 남편이 운전하는 차로 대구를 갔다 왔는데 차가 밀려서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에 도착하곤 했다. 아이들이 커서 이젠 KTX 열차를 타고 다닌다. 좌석표를 구하는 건 하늘에 별따기이고 입석표도 간신히 구해 타는데, 열차 안에서 두 시간 가까이 서 있어야 하는 명절이 즐거울 리 없다. 어디 그뿐이랴. 시집에 도착하자마자 일을 시작해서 집에 갈 때까지 일을 한다. 2박 3일 동안 이렇게 보내야 하는 명절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며느리가 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시집 식구들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내 몸이 고단하다고 해서 누굴 탓하겠는가. (며느리인 내가 일을 해야지 누가 한단 말인가? 81세이신 시어머니만 일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 시집에 가서 며느리 역할을 해야 하는 시누이가 일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부엌일에 서툰 남편이 일을 해야 하는가?) 어쨌든 시집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시어머니다. 시누이들도 자기 시집의 일을 끝내고 친정에 오면 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럼 남편은? 남편은 생계를 책임지느라 돈벌이로 매일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이런 남편을 명절까지 부려먹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며느리로서 명절 음식을 만드느라 고생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음식을 결국 내가 싸가지고 온다. 싸온 음식으로 며칠 동안 반찬 걱정 없이 산다. 그러니 내 남편과 내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시집에서 만들었을 뿐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우리 집에서 음식 만들며 보낼 시간을 시집에서 보낸 것뿐이니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불만이 있다면 이 나라의 명절 문화에 불만이 있겠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명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명절이 다가올 즈음 바쁘게 살며 딴 생각에 몰두하기. 그래서 명절을 보낼 때 마치 소나기 한 차례 맞듯 가볍게 지나치기. 이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이다.

 

 

내가 놓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으로 다음의 글을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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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성(性)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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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네.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내 얼굴의 생김새가 어떠한지, 내가 어떤 시대 어떤 나라에 태어나는지, 어떤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는지 등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네. 이런 중요한 것들이 아닌 사소한 것들에 주목해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들이네.

 

 

다음의 글도 주목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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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런데 자신이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밥벌이를 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82쪽.
....................

 

 

우리는 자신이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자신에게 어떤 직업이 적합한지 알 수 없다. 뭐든 직접 해 봐야 아는 것인데 세상에 있는 그 많은 일들을, 그 많은 직업들을 어떻게 경험해 볼 수 있겠는가.

 

 

다음의 글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잘 표현한 대목으로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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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서로 다른 지점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사람들은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한다고 라몽이 자기 이론을 피력했을 때, 알랭은 즉각 자기 여자 친구를 떠올렸는데, 정말 사랑하는 연인들이라 해도 서로 태어난 날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들의 대화란 서로의 독백이 대부분 이해되지 못한 채 그저 뒤얽힌 것일 뿐임을 여자 친구 덕분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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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독백이 대부분 이해되지 못한 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네.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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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인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
- 밀란 쿤데라 저, <무의미의 축제>,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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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래전 마르셀 프루스트 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한 권의 책으로 읽었다. 물론 완역본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살펴보니 민음사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전 4권으로 나와 있고, 국일미디어에선 전 11권으로 나와 있다. 프루스트를 알기 위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도 좋겠지만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흥미를 느끼면 그때 프루스트의 저작을 읽어도 될 테니까.
 

 

 

  

  

 

 

 

 

 

 

 

 

 

 

 

 

 

 

3.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은 프루스트의 작품과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전해 주는 책이다. 프루스트의 글을 분석적으로 해설해 놓은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1)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 2) 나를 위해서 읽는 방법 3) 시간 여유를 가지는 방법 4)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방법 5)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등의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라서 이런 제목들에 끌려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 두 작가의 렌즈를 통해서 ‘인간’을 보게 된다. 프루스트의 렌즈를 통해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렌즈를 통해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재밌어서다. 재미가 없다면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엔 재밌는 게 많이 있는데 왜 하필 책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 책은 ‘유익함을 얻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미만 있고 ‘유익함을 얻는 즐거움’이 없다면 그 재미에 언젠가는 싫증나고 시시해져서 책 읽기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책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유익함이 있는데 그중 지혜를 얻는 것을 으뜸으로 치겠다.

 

 

지혜를 얻는 방법에 대해 말한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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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생님을 통해서 고통 없이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 그는 고통스러운 쪽의 지혜가 훨씬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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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을 변형해 이렇게 써 본다. ‘사람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책을 통해서 고통 없이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 물론 고통스럽게 얻는 지혜가 훨씬 더 우월하다.’ 책을 통해 간접 경험으로 얻는 지혜보다 삶을 통해 직접 경험으로 얻는 지혜가 더 낫다는 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도 역시 아픔을 직접 경험함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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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필요로 하는 여자, 그리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여자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천재적인 남자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심오하고 더 필수적인 감정의 전 영역을 우리로부터 끌어낸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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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천재가 할 수 없는 일을 연인은 할 수 있다는 것. 호의적인 천재에게서 얻는 지혜보다 호의적이지 않은 연인에게서 얻는 지혜가 더 깊다는 것. 호의적이지 않은 연인은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게 아니라 고통을 주게 되는데, 그 고통이 성숙하게 해 준다는 것.

 

 

다음의 글은 우정에 대한 프루스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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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는 “우정을 비웃는 사람들은……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어쩌면 그런 우정을 비웃는 사람들이야말로 보다 현실적인 기대를 가지고 그 유대에 접근하기 때문이리라.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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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글은 사랑에 대한 프루스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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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A : 간통이다. 물론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위협 말이다. 프루스트가 보기에, 질투의 개입은 습관에 의해 망가지는 상황에서 관계를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치명적인 동거의 단계를 이미 밟은 누군가를 위한 조언은 다음과 같다.

 

한 여자와 살게 되면, 당신은 애초에 그녀를 사랑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든지 바라보기를 금세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분리된 원소가 질투에 의해서 재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 알랭 드 보통 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235~236쪽.
....................

 

 

이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상대가 권태 없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면 질투를 이용하라.’가 되겠다. 무엇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상황이 되면 그 무엇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이니까.  

 

 

 

 

 


 

 

 

 

 

 

 

 

 

 

 

 

 

 

 

 

 

 

4.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읽으면 프루스트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음을 확인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도 밀란 쿤데라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 본다. 내가 이들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들의 저작을 즐겨 읽는 이유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왜 필요할까?

 

 

‘행복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로 출범한 세종시. 그런데 신문에서 세종시 공무원들의 정신 건강에 비상이 걸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도 힘든데 변변한 편의점을 찾기도 어려울 만큼 문화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 살다 보니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생겼고 더러 자살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알고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방송되었던 김수현 극본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새엄마와 어린 의붓딸과의 관계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충돌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는 자신이 친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 왜 새엄마를 불쾌하게 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 새엄마 역시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심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 둘 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다 보니 상대가 미울 수밖에 없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살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이 있다면 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대답하리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다.’라는 깨달음을 많이 얻을수록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타인을 이해하게 되면 최소한 오해 또는 오판으로 생기는 문제가 적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어떤 정책을 세울 때도 ‘인간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같다. 세상이란 바로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이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장식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앙드레 모루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인간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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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9-2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의미의 축제>를 읽어보고 싶어요.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들이네요. 저는 민음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중인데 이게 천천히 두 권씩 나오다 보니 앞에 줄거리를 항상 거의 다 잊어먹을 때쯤 다음 권을 읽게 되는 것이 큰 애로네요. 차라리 전권이 다 나왔을 때 제대로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마지막 페크님의 이야기, 기억해 두어야 겠습니다.

페크pek0501 2014-09-22 21:25   좋아요 0 | URL
멋집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그 긴 글의 여행을 시작하셨군요.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고 나면 큰 일을 하나 한 것처럼 뿌듯하지요.
저도 마음속에서 읽으려고 정해 놓은 책이 있는데 전 3권짜리예요. 그 이상은 자신이 없고 3권까지만 읽을 수 있어요.

세상에서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눈다면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있는 사람`과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님 덕분에 무플을 면했어요. 구세주되시겠습니다. 하하~~

노이에자이트 2014-09-2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누이도 시댁에 가서 며느리 노릇을 해야 하니 내가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페크님은 살아있는 부처님이군요.

페크pek0501 2014-09-23 20:17   좋아요 0 | URL
제가 부처라고요? 헐... 입니다. 하하~~

노이에자이트 2014-09-24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은 노처녀 시누이는 없나봐요.모두 시댁에 가서 일하는 시누이만 있으니...

페크pek0501 2014-09-26 11:45   좋아요 0 | URL
예, 그래요. 시누이는 누나만 두 분인데 다 결혼하셨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시누이들은 손아래 올케를 예뻐하고 손위 올케는 잘 봐 주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남동생의 아내는 예뻐하고 오빠의 아내는 잘 봐 주지 않는다는 뜻.
우리 누나(형님)들은 저와 동서를 무지 예뻐하는 것 같아요. 그게 느껴져요.
내 동생과 잘 살아줘서 고맙다, 하는 표정이거든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4-09-26 17:13   좋아요 0 | URL
페크 님은 시누이를 비롯하여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좋군요.안 그런 사람들도 많은데...

페크pek0501 2014-09-28 23:04   좋아요 0 | URL
ㅋㅋ 시댁 식구들이 워낙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세실 2014-09-24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의미의 축제 사놓기만 했는데 당장 읽어야겠어요^^
저도 단순하게 덜 진지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덜 받는 편이죠.

페크pek0501 2014-09-26 11:47   좋아요 0 | URL
ㅋㅋ 저도 사 놓고 읽지 않은 책이 책상 밑에 가득해요. 읽어야 책장에 꽂을 텐데...
그래도 사고 싶은 신간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독서광이 아니라 책광이라고 할 만해요. 독서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것 같거든요.

세실 님은 지혜롭게 자기 관리를 잘해 나갈 스타일 같아요.
님 같은 사람 보면 부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