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간다. 걷는다.

 

 

낯선 봄바람에 옷자락이 살랑거리고

마음도 살랑거리는 봄날의 오후.

 

 

뭔가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이

공중의 풍선처럼 두둥실 떠다니는 봄날의 오후.

 

 

그 허전함엔 달콤함이 녹아 있어 설렌다.

 

 

이제 달콤한 허전함을

끈이 잘린 풍선으로 날려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는다. 찰칵.

 

 

그것은 내가 익숙하지 않은 시간으로부터

익숙한 시간으로 돌아옴을 알리는 소리이다.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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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24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한시경 2014-03-2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설레이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그러네요~친구에게 작은 꽃화분을 선물받아서 창가에 두고 보니~참 앙증 맞고 귀엽네요~ ^^

페크pek0501 2014-03-25 14:06   좋아요 0 | URL
착한시경 님, 반갑습니다.

설레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이것을 저는 달콤한 허전함이라고 표현한 거죠.
봄이 그래요.
아, 또 봄이 왔구나... 그랬어요.
작은 꽃화분이 귀엽고 예쁘죠. 저도 몇 개 가지고 있답니다.^^
 

 

 

1. 3월이 되었다. 새 달이 시작되어 기분이 좋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흐르는 시간에 대해 저항감을 느꼈다. 나이 드는 게 싫은 거지. 아니 겁나는 거지. 그 이유는 늙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요 정도의 그릇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다.) 잘 생각해 보면 사실 늙어도 괜찮다. 늙어서 좋은 점도 있으니까. (가장 좋은 점은 애들이 클수록 내 시간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마음의 편안함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늙을 수 있다면 할머니가 된들 어떠하랴. 젊기를 바라지 않는다. 늙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랄 뿐이다.

 

 

 

 

 

 

2.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생각했다. ‘벌써 아침이라니, 더 자고 싶은데.’라고. 분명히 밤엔 이런 생각을 하겠지. ‘벌써 밤이라니, 자기 싫은데.’라고.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 본다.

 

 

....................

오늘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생각했다. ‘드디어 하루를 활짝 열어 주는 아침이구나.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되네.’라고. 분명히 밤엔 이런 생각을 하겠지. ‘드디어 하루를 닫는 밤이구나. 잠을 자는 휴식은 언제나 달콤하지.’라고.

....................

 

 

좋은 쪽으로 반복해서 생각하면 실지로 그런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거짓말을 반복해서 하는 사람이 나중엔 거짓말인 줄 모르고 실지로 참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속아 넘어간다는 말이다.

 

 

이런 걸 알면서도 나는 내일 아침에도 ‘벌써 아침이라니, 더 자고 싶은데.’라는 생각으로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마는 법이니까.

 

 

 

 

 

 

3. 이처럼 인간은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마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좋은 글이 많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해 버린다면 이 책을 읽은 효과가 없는 거라고. 그러니 따로국밥처럼 내 마음 따로, 이 책의 내용 따로 분리해서 읽지 말아야겠다고. 이 책의 내용을 흡수하여 머릿속에 확실하게 입력해 놔야겠다고.

 

 

이런 생각으로 다음의 문장에 밑줄을 쳤다.

 

 

자존감을 가질 것.

 

 

강한 자존감은 당신이 전쟁에서 포로가 됐을 때 비굴해지지 않도록 해 줄 것이고, 세상에 맞서 싸울 때 당신의 행동이 옳다는 확신을 가져다 줄 것이다. _버트런드 러셀

 

자존감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1등이 아니어도, 빼어난 외모를 갖추지 못했어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할 수 있다면 건강한 자존감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34~35쪽.

 

 

건강을 위해 지나치게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 것.

 

 

너무 착하게 굴려고 하거나, 너무 정직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느라 진을 빼지도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심신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다. _도미니크 로로, 『지극히 적게』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79쪽.

 

 

고통은 통찰력을 심어 준다는 것.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통은 치유될 수 있다. 고통은 통찰력을 심어 주고, 생의 아름다움을 회복시키며 , 우리를 재생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딱지가 벗겨져야 새살이 돋는다. _마크 마토우세크, 『상처와 마주하라』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209쪽. 

 

 

작가에게 필요하다는 통찰력. 그런데 고통이 통찰력을 준다는 것. 온실 속의 화초보다는 비바람을 견딘 잡초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 글을 더 잘 쓰겠군.

 

 

 

고통은 통찰력을 준다니까 큰 고통을 겪게 되면 저축을 한 셈 치자.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견디어 보자. 또 ‘이런 큰 고통을 겪고 나면 앞으로 고통을 겪는 일이 생기더라도 두 번째는 쉬울 거야.’ 하는 생각으로 견디어 보자. 이런 게 저축인 것이다.

 

 

 

 

 

 

4. 최근에 미세먼지가 있는 날이 일주일 이상 계속되었다. 그래서 운동하러 밖에 나가지 못했다. 되도록 시장이나 슈퍼에 가는 것을 삼갔다. 햇볕을 쬐지 못했다. 실내 환기를 하지 못했다. 창문을 열고 청소하지 못했다. 이불을 털지 못했다. 음식 냄새가 날 때에도 창문을 열지 못했다. 마른 빨래들을 개킬 때에도 창문을 열지 못했다. 더러운 공기 때문에 사는 게 참 불편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미세먼지로 인해 내 삶에서 맑은 날에 누릴 수 있는 기쁨이 하나 추가되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좋은 일일까.

 

 

인간에게는 고통과 병이 필요하다는 톨스토이의 말.

 

 

“인간에게는 고통과 병이 필요하다. 고통과 실패가 없다면 기쁨, 행복, 성공을 무엇과 비교하겠는가”라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삶을 더 진지하게 바라보고 가치 있게 사는 도구로 상처를 이용하라.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49쪽.

 

 

톨스토이의 말을 날씨에 적용하면 이렇게 되겠다.

 

 

‘인간에게는 더러운 공기가 있는 날이 필요하다. 더러운 공기가 없다면 맑은 공기를 무엇과 비교하겠는가. 더러운 공기가 있기에 맑은 날에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쁨을 누리지 못해도 좋으니 미세먼지가 없으면 좋겠다. 공기가 언제나 맑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기쁨을 느끼는 날’이 있기를 바라기보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날’이 없기를 바란다. 나는 행복에 대해서도 행복이 있기를 바라기보다 불행이 없기를 바라는 쪽이다.

 

 

맑은 공기를 내뿜는 공장 같은 것이 만들어지는 날은 오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스마트 폰과 같은 기기의 발명 대신 건강에 이로운 발명을 기다린다.

 

 

 

 

 

 

5. 신간을 다 구입해 볼 순 없지만 어떤 책이 출간되었는지, 어떤 책이 읽을 만한 책인지, 어떤 책이 좋은 평가를 받는 책인지 정도는 알고 지낸다.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책 정보를 얻는다.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좋은 평가를 받아서가 아니고 깨달음이 담겨 있어서도 아니고 재미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구입했다. 그리고 읽고 나서 만족했다. 

 

 

 

 

 

 

 

 

 

 

 

 

 

 

 

 

 

 

 

 

 

6. 지나간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는 그 시간이 행복한 줄 몰랐다. 지나간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는 그 시간이 아름다운 줄 몰랐다. 왜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여겨지는 것일까.

 

 

서머싯 몸은 그것을 이미 간파해서 이런 글을 썼다.

 

 

마침내 그는 하이델베르크를 떠났다. 석 달 동안 그는 오직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떠났다. 그곳의 생활이 행복했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215쪽.

 

 

그곳의 생활이 행복했었다는 사실을 알려면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

 

 

 

 

 

 

7. 알라딘의 서재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게 어느덧 5년이 넘었다. 언제부터인가 서재에 글을 올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밖에 나가 엠피쓰리로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 운동을 시작한 것은 9년이 되어 간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미세먼지가 있는 날엔 텔레비전을 보면서 실내의 자전거로 운동을 한다. 운동도 습관이 되어 버렸다. 이 두 가지에 습관의 노예가 된 것이다. 이런 노예라면 되어도 좋지 않은가.

 

 

사제는 흡연을 혐오스러운 습관이라 생각해서, 사람이 습관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틈만 나면 말했다. 자신은 오후에 차 마시는 일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먹은 모양이다.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230~231쪽.

 

 

조금 전에 잠을 자러 침대에 누웠었다. 그런데 아침을 먹을 때만 해도 졸려서 잠이 오겠구나, 했는데 막상 잠을 자려니까 잠이 오지 않는 거다. 왜 잠이 오지 않는 거지?, 하고 생각하다가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다. 아침을 먹고 나서 바로 커피를 마신 거였다. 커피를 마시고 잠을 청하다니. 쯔쯔... 아, 나도 아침을 먹고 나면 바로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구나. 생각 없이 그냥.

 

 

그러고 보니 나도 습관의 노예라고 할 만한 게 꽤 있네.

 

 

(그런데 습관의 노예, 라는 말을 서머싯 몸(1874년 출생)이 자기 작품에 이미 써 놨잖아. 어마! 그렇게 오래된 말이었나. 역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구나.)

 

 

 

 

 

 

 

 

 

 

 

 

 

 

 

 

 

 

 

 

 

8. 나는 어릴 땐 수줍음이 많아서 '제발 나에게 관심 좀 갖지 말아 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고모가 놀러 와서 나를 빤히 쳐다보며 예뻐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손님이 집에 오는 날이면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명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수줍음이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수줍음이 남아 있어서인지 지금도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즐기지 못한다. 그래서 옷을 살 때도 튀지 않는 옷을 고른다. 이런 내가 블로그에 공개적인 글을 쓰다니 아이러니다. 나의 성향에 반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러니는 내 삶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곳곳에서 일어난다.

 

 

 

 

 

 

9. 남의 서재에 들어가 글을 읽다 보면 어느 한 쪽으로 깊게 들어가서 쓴 글이 있다. 그런 글은 자신이 경험하기 전엔 쓸 수 없는 글처럼 여겨지는데 그런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 식의 글이 되기 쉽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뭘 먹어서 그렇게 글을 잘 쓰나?’가 아니라 ‘뭘 읽어서 그렇게 글을 잘 쓰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재능과 노력이 빚어낸 결과겠지만. 

 

 

 

 

 

 

10. 얼마 전, 한 권의 책에 대해 페이퍼로 쓴 어떤 알라디너의 글을 보고 감탄해서 초면?인데도 댓글을 남겼다. 책 한 권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이었는데, 내가 “추천을 백 번쯤 누르고 싶은 글이지만 한 번만 누르고 갑니다. ^^”라는 댓글을 남겼던 것. 책의 저자를 비판하면서도 겸손의 미덕이 느껴지는 그의 글이 아주 맘에 들어 세 번 읽었다.

 

 

글을 쓰기 전에 어떤 마음의 자세로 글을 쓸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그 마음의 자세가 고스란히 글에 담기기 때문이다.

 

 

가끔 글의 그 정직함 때문에 글 쓰는 게 두려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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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1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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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7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4-03-06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알라딘에 글 쓴지가 벌써 5년이 되셨나요?
저하고는 인연이 얼마 안 되신 것 같은데...ㅋ
9번에 관해서는 항상 그렇게 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유독 정말 공감을 많이하며 읽게되는 책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정말 마음의 옷을 벗고 정직해지고 싶어지죠. 언니의 말씀에 동감이어요.
또 그만큼 그런 책을 골라낼 줄 아는 감식안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그래서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읽을 수 있는 책만 읽는..ㅠ
저 마지막 글월에 동감하는데 그래서 글 쓰기는 제의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요.;;

페크pek0501 2014-03-07 12:09   좋아요 0 | URL
저, 이제 신참 아니에요. ㅋㅋ
한 쪽으로 깊게 파기의 글이 좋기 때문에 아마도 작가들이 자전적 소설에 호평을 받는 경향이 있을 거예요. 그런 작품으로 문학상을 타는 걸 많이 봤어요.
그러니까 이런 결론도 가능하죠.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남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써라... 상상력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독서의 편식이 어떤 면에서 좋다고 봐요. 전문성을 갖출 수 있으니까. 어떤 한 분야에서만큼은 내가 많이 읽었다고 할 만한 게 있다면 강점이 될 수 있단 뜻이에요.

10번에서 글의 정직함... 어떤 글은 아름다움이나 착함을 추구하고 있지만
글쓴이의 오만함이 담겨 있더라고요. 물론 자신은 모를 거예요.
그래서 글쓰기가 두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나의 어떤 면을 독자는 알게 되는 그 정직함 때문에
글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가 될 것 같아요. ㅋ

세실 2014-03-07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기 운동을 한지 9년.....좋은 습관 가지셨네요.
노는 날 늦은 오전에 운동 나가면 참 좋던데...저녁엔 혼자 운동하기에는 좀 무서워요.
저는 중3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난뒤...그때부터 좋을거 같아요. 자유시간이 많아질테니....
어제 퇴근하는데 몸이 참 무겁더라구요. 졸립기도 하고.... 하루 1시간 40분의 운전이 막 피곤해지는 목욜이었습니다. 그럴땐, 전업주부가 참 부러워요. 자고 싶을때 잘 수 있고, 쉬고 싶을때 쉴 수 있는.....퇴직해야 그 시간이 가능하겠지요. 아...비루하여라~~
올해가 가기전에 님이랑 꼭 커피를 마셔야겠어요^^

페크pek0501 2014-03-07 12:13   좋아요 0 | URL
걷는 운동은 제가 소화 불량에 잘 걸려서 의사와 상담하니까 몸을 많이 흔들어 주라고 해서 시작된 거예요. 필요에 의해 시작한 게 습관이 된 거죠.

제가 학생들을 십 몇 년을 가르치면서 전업주부들이 부러웠다는 거죠.
얼마나 팔자가 좋으면 자신이 돈을 벌지도 않고 돈을 쓰기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건가,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그랬다는 거죠.

저는 매일 출퇴근도 아니고 그것도 오후 수업만 맡아 할 생각이기 때문에(앞으로 쭈욱~) 전업주부가 누릴 수 있는 아침잠의 자유 같은 것이 있어요.
어느 학교에서 토요일 오전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사양할 거예요. 일찍 나가는 게 왜 그리 싫은지 모르겠어요.

저도 올해에 님과 꼭 커피 마시고 싶어염. ^^
 

 

 

1. 독서는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책을 읽으면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것엔 동의한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다고 해서 지혜롭게 사는 건 아니다. 그 이유는 책에서 얻은 지혜가 꼭 실천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 이런 글이 있다.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 - 석가모니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50쪽.

 

 

 

 

이 글을 당신이 읽었다고 해서 어떤 사람으로 인해 분노가 일어났을 때 ‘아,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라는 글을 떠올리고 내가 참는 게 좋아, 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통쾌한 복수를 해서 이 분노를 풀 수 있을까, 하고 연구하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책에서 지혜를 얻는 것과 그 지혜가 삶에까지 이어지는 것은 별개 문제이다. 결론은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 이런 글도 있다.

 

 

 

 

이런 열등감의 표출은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인터넷 악성 댓글이다.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자신감이 없고 열등감이 심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을 통해 분노와 열등감을 마치 ‘배설’하듯 쏟아낸다. 특히 유명한 사람이나 성공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우월해진 것 같은 쾌감을 주기 때문에 한 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들은 자기가 간절히 꿈꾸는 삶을 별 노력 없이 얻은 것 같은 연예인들을 비난하고, 악성 루머를 퍼뜨려 모욕감을 줌으로써 열등감을 줄이려고 한다.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96쪽.

 

 

 

 

이 글을 평소에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이 읽었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무엇을 아는 것과 그 무엇으로 인해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별개 문제이다. 결론은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내 생각이 틀렸다면 독서광들은 전부 지혜롭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독서광이란 어떤 사람인가. 남들보다 자신이 책을 많이 읽었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히려 독서광들은 자기들만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있다. 그 렌즈란 바로 ‘오만함’이다. 오만함의 렌즈를 끼고 살게 되면 자신의 생각이 가장 옳다는 착각을 하고 그 착각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또 우월감에 빠져 타인을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2. 독서는 삶에 도움이 된다 : 책을 읽으면 삶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본다.

 

 

친정에서 만든 만두를 아랫동서에게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고맙다거나 잘 먹겠다는 전화가 올 법한데 전화가 없었다. 이상했다. 섭섭해지려 했다. 그 다음날에서야 고맙게 잘 먹었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그 전화를 기다렸는데 동서에겐 그 전화를 하는 게 급하지 않은 듯했다. 훗날 동서를 만나게 되었을 때 알았다. 동서는 그때의 일로 내게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이와 관련하여 내가 읽은 소설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필립은 노선생인 무슈 뒤끄로에게 수업을 받고 있다. 필립은 노선생이 아픈 것 같아 수업을 쉬게 해 주면서 다음 주의 수업료를 선불로 지불한다. 그런데 노선생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다는 대목이다.

 

 

 

 

필립은 가벼운 실망감을 느꼈다. 아량을 베풀었으니 상대방은 무언가 감사의 표현으로 그를 감격시키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노선생이 선물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뜻밖이었다. 필립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은혜를 입는 사람보다 그것을 베푸는 사람 쪽이 은혜에 대한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몰랐다. 무슈 뒤끄로가 다시 나타난 것은 대엿새 뒤였다. 전보다 더 비틀거리고 더 허약해졌지만 위중한 상태는 넘긴 것 같았다. (…) 그런데 막 나가려고 하면서, 문간에서 문을 붙든 채 멈춰 섰다. 입을 여는 것 자체가 힘이 드는 것처럼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자네 돈이 아니었으면 난 굶어 죽었을 걸세. 가진 게 그것뿐이었으니까.”

 

노선생은 굽신거리듯 정중한 절을 한 다음 돌아갔다. 필립은 목이 메임을 느꼈다.

 

- 서머싯 몸 저, <인간의 굴레에서 1>, 169쪽.

 

 

 

 

이 글을 읽고 내 경험을 떠올려 보면서 인간에게 그런 면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즉 은혜를 입는 사람보다 그것을 베푸는 사람 쪽이 은혜에 대한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것. 선물을 받는 쪽보다 그것을 주는 쪽이 선물에 대한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것.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면 받는 쪽이 그 고마움을 깊이 느끼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것. 소설 속의 노선생처럼. (내가 막연히 느끼고 있었던 인간의 특성을 작가는 이미 통찰했고 그래서 소설에 넣었으리라. )

 

 

그러므로 인간의 이런 특성을 생각하여 앞으로는 내가 뭔가를 베풀었을 경우에 상대가 고마움의 표시를 소홀히 한다고 해서 섭섭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이 소설 덕분이다. 결론은 독서가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3. 독서의 다른 효과 : 나의 경우엔 독서에서 얻은 지혜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독서는 여전히 유익하다. 왜냐하면 독서의 다른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감'이다. 그리고 이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정리하자면, 나는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는 동안 그것에 몰입함으로써 현대인이라면 가질 수 있는 걱정이나 불안 같은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심리적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는 내게 중요하다.

 

 

 

그러니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당신이 책을 읽어서 돈이 생기나 쌀이 생기나?"라고 말한다면 나는 인간에 대해서 모르는 바보이다.

 

 

그러니 만약 누군가가 내게,

 

 

"당신은 글 재능이 없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글쓰기를 그만두는 게 현명할 것이오."라고 말한다면 그는 인간에 대해서 모르는 바보이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또는 다른 취미를 갖든, 취미는 지루한 일상을 잘 견디게 해 주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취미 생활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튼튼해지고 자신의 삶이 튼튼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블로거들에게 늘 응원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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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2-2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독서와 삶의 관계가, 학창 시절 성적과 이후의 직업에서의 수입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 성적은 졸업 이후 직업을 결정 짓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직업에서의 성패는 성적(학업지능)이외에 여러 가지 실용 지능이 관여합니다. 상관 관계는 있지만 함수 관계는 아니고, 이 상관관계도 어느 치에 도달하면 상관 관계가 약해진다고 생각합니다. S곡선 모양이죠.

풍성한 삶에 독서는 필요하지만, 독서 이외에 직접적인 삶 (대인관계, 여행, 예술 활동의 참여 등)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지나친 독서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하죠.

개인적으로 실용지능보다 학습지능, 직접 경험보다 간접 경험에 최적화되어 있는 자신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 '감정의 배설'이란 표현을 써 알라디너의 공분을 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페크pek0501 2014-02-26 10:34   좋아요 0 | URL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 우선 반갑습니다.
아, 그런데 이 좋은 말씀을 님의 페이퍼에 담지 않고 댓글에 남기는 것이
안타깝군요. 이에 대해 한 번 써 보시길 권유하고 싶어요. 결례를 무릅쓰고...

여러 번 느꼈습니다만 님의 댓글은 훌륭합니다. ^^
첫 댓글에 감사... 좋은 하루 되시길...

마립간 2014-02-26 14:06   좋아요 0 | URL
pek0501님의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 제 글은 댓글 길이 이상 길어지만, 횡설수설이 되면서 좋은 내용까지 망치는 스타일이라서...

제게는 글을 잘 쓰는 것이 학습 지능보다 실용 지능에 해당합니다.

페크pek0501 2014-02-26 22:33   좋아요 0 | URL
그건 겸손이시고요...
마립간 님은 깊은 사유의 세계에 들어선 적이 많으신 것 같아요. ^^

stella.K 2014-02-2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체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 뭐 좀 찾아 볼게 있어서 20년 전 일기를 봤는데 그때 제가 이렇게 써 놨더라구요,
책을 안 읽으니 머리가 단단하지 않고 흐물흐물 거리는 것 같다구요.
또 아는 사람의 친구는 좋은 구절이 있으면 메모하고 외웠다가
적절할 때 써 먹는대요.
작가 조성기 역시 그렇게 메모한 걸 가지고 글을 쓸 거라고 그랬고.
전 이 담에 혼자 살게 되면 그동안 못 읽은 책이나 실컷 읽고 싶어요.
지금은 여러 가지 틀에 맞춰 살다보니 걸리는 게 너무 많아요.ㅠ

페크pek0501 2014-02-26 22:37   좋아요 0 | URL
으음, 저는 사회적 성공이 학교 성적순이 아니듯이, 독서를 많이 했다고 해서 지혜롭게 사는 건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오만함과 편협한 사고를 가지는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학자들의 세계가 그렇죠. 책을 많이 접하는 사람일수록 열린 의식을 가질 것 같은데 오히려 안 그런 경우가 많아요. 권위적이죠. 자신의 생각이 제일 옳은 줄 알아요. 작가들도 그래요.

책을 보지 않는 친구들이 오히려 가정을 더 잘 꾸리고 현명할 때가 많아요. 잘 관찰해 보니 그렇더라고요. 결론은 독서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가 되겠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으니 앞으로 더 생각해 보고 정리가 잘 되면 글을 새로 올리겠습니다.

아무개 2014-02-2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는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를 모두 필요로 한다.
낙관론자가 비행기를 발명하면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발명한다."

<버나드 쇼>

제가 자타공인 비관의 달인이랄까요. 어릴적부터 부정적이다 비관적이다라는
이야기를 주변인들에게 많이 들었고. 그때문인지 아니면 정말인지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저는 매우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제 스스로가 원망스럽고 바꾸고 싶고 밉고 뭐 그랬습니다만,
책에서 읽게되는 저런 한마디에
"비관적인게 꼭 '나쁜것'만은 아니다."
라고 나름 생각의 전환 같은것을 하게 되는걸 보면
제겐 독서가 도움이 되긴 합니다.



페크pek0501 2014-02-26 22:38   좋아요 0 | URL
아무개 님,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군요. 비관주의자이시군요.

여러 님들의 다양한 의견을 보니 저로선 공부가 됩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실 2014-02-26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서가 도움이 된다에 한표!
책을 읽음으로서 다양성과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서 저를 충분히 홍보할 수 있으며 업무적으로 기획력에도 도움이 되었답니다. 업무적으로 두려울게 없던걸요.ㅎ

페크pek0501 2014-02-26 22:39   좋아요 0 | URL
으음... 세실 님에겐 그랬을 것 같아요. 도움이 되셨을 거예요.
저도 책을 많이 읽어서 글쓰기 강사가 된 셈이니 직업엔 도움이 됐다고 볼 수 있을 듯...
하지만 독서가 지혜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엔 자신이 없는데요...
더 생각해 볼게요. ^^

잘잘라 2014-02-26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는 남에게 던지기 위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것과 같다.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 문장을 읽은 후 몇 분 동안 제 머릿속이예요.

>>> 바보야? 뜨거운 석탄을 왜 맨손으로 집어? 남에게 던지기 위해 석탄을 집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두꺼운 장갑을 끼던지 집게로 잡으면 되지!
>>> 그래.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 그 뜻이라고. 화를 내는 건 그 정도로 바보짓이라고.
>>> 오오, 그래? 그렇군.
>>> ......
>>> 하지만, 하지만 말야.
>>> 하지만, 뭐?
>>> 그 석탄이 말이지, 누가 나에게 던진 거라면? 날아온 석탄을, 반사 신경 작용으로 야구공 받듯이 순식간에 탁, 받아 든 것이라면? 그러면 이미 내 손은 화상을 입었잖아. 그럼 그걸 던진 사람한테 가서 따져야 할 것 아니냐고. 치료비를 받아내든 갚아주든 해야할 것 아니냐고. 그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으면 그게 바보지.
>>> 글쎄.
>>> 글쎄라니!
>>> 어쨌든, 따지는 것 보다 먼저 할 일이 있어. 불 붙은 석탄을 처리하는 일, 데인 손을 치료하는 일. 할 일을 먼저 하면서 가만히 생각하다보면 석탄을 던진 사람이 누군지, 왜 던졌는지, 혹시 내가 먼저 던진 석탄은 아니었는지, 생각이 날 수도 있으니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시는 페크님의 글, 오늘도 감사합니다.

마립간 2014-02-26 17:27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의 댓글이 재미가 있어 주석을 달면 ;

불 붙은 석탄을 서로 던지고 데이는 것은 '화'가 싸움으로 번지고 상처를 입는 것이고 이후에 싸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대개 동반하죠.

탁닛한 '화'를 보면 화의 긍정적 면 또는 긍정적 면으로 승화를 이야기하는데, 손에 쥔 불붙은 석탄의 뜨거움을 조절해서 주머니 난로처럼 사용한다고 할까요.

페크pek0501 2014-02-26 22:40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 님의 뛰어난 상상력은 오늘도 빛을 발하는군요.
그래서 님의 페이퍼가 저는 재밌습니다.
님의 긴 댓글을 잘 음미해 보겠습니다. ^^


페크pek0501 2014-02-26 22:41   좋아요 0 | URL
마립간 님의 추가 설명도 좋군요.

착한시경 2014-02-26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글에 감사드려요~ 제 경우에는 책을 읽는다고 지혜가 생기는건 아닌거 같아요~여전히 정신없고 좌충우돌하고 늘 후회의 연속이죠..그래도 책때문에 행복할때도 많으니,,, 행복한 삶의 조건인건 맞는거 같아요^^

페크pek0501 2014-02-27 14:17   좋아요 0 | URL
착한시경 님, 빙고...
저도 삶에서 어리석음을 반복하기 때문에 후회가 많고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책을 거의 매일 읽다시피하고 있지만 예전에 비해 더 똑똑해지지는 않더라는 거죠.
오히려 책을 읽지 않고 사는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는 거죠.
독서와 지혜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지, 이것 논문으로 쓴 게 없을까요?

hnine 2014-02-27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진우 시인의 <독서>라는 시, 혹시 아시는지요.
무릇 모든 독서란 독사 한 마리씩 길들이는 일이라고 시인은 말하지요.
그 시가 떠올랐습니다. 독과 약은 근본적으로 한가지라는 것도요.

페크pek0501 2014-02-27 14:19   좋아요 0 | URL
그 시, 몰라서 검색해 찾아서 읽었어요. 좋군요.
독과 약은 한 가지... 그렇죠.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되고 독도 잘 쓰면 약이 되고...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죠.
좋은 말씀에 감사... ^^

2014-02-27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7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필요한 거리는 얼마나 될까. 어느 정도의 거리여야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개인 영역을 네 가지로 구분했다. 부모 자식 간이나 연인, 부부 사이처럼 신체 접촉이 허용되는 친밀한 관계에서는 45센티미터 미만의 밀접한 거리, 친구나 직장 동료처럼 가까운 지인의 경우에는 45~120센티미터에 해당하는 개인적 거리, 인터뷰나 공식적인 만남 같은 상황에서는 120~370센티미터에 해당하는 사회적 거리, 무대 위의 공연자와 관객 사이에는 370센티미터를 초과하는 공적인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00~101쪽)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여기서 말하는 거리를 ‘마음의 거리’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 두기’가 가장 필요하고 또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친밀한 관계라고 한다. 즉 부모 자식 간이나 연인, 부부 사이가 되겠다.

 

 

“특히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누군가와 빈틈이 없을 정도로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102쪽)고 한다. “존 그레이는『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남자들의 이런 특성을 ‘고무줄’이라고 표현했다. 남자들은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자율성을 되찾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곁에 있는 연인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고무줄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달아나려고 하고, 고무줄의 탄성이 한계에 다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102쪽)

 

 

이런 남자의 특성을 모르는 여자는 오해하면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레이의 연구에 따르면 사랑하는 남녀가 겪는 많은 문제들은 바로 이런 특성과 관련이 있었다. 여자는 느닷없이 거리를 두고 도망치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한다.”(102쪽) “실제로 애정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많은 여성들은 남자친구나 남편이 거리를 두려 할 때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상대방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답답한 마음을 대화로 풀어 보려고 할수록 남자는 더 멀리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다.”(103쪽)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실망과 좌절은 한 사람은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고, 한 사람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랑하지만 구속하지 않는 거리란 몇 미터일까.”(105쪽)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나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이나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의 ‘조절’이겠다. 서로 조절을 잘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면 싸움이 나고 관계가 나빠질 수 있으므로.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자율성을 되찾고 싶은 욕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만 해도 가족으로부터 떨어져서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온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의 감정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하겠다. 이런 점에서 나는 풍선을 사이에 둔 사람과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관계를 이해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봤다.

 

 

부부 사이에서나 연인 사이에서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나 두 사람 사이에 풍선 하나 끼여 있는 모습으로 서로 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두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으면 풍선은 터지고 만다. 두 사람이 아주 떨어져 있으면 풍선은 날아가고 만다. 풍선이 터지거나 날아가지 않게 하려면 두 사람은 알맞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마음의 거리를 말한다.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마음의 거리일 것이다. 마음의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2.

사람과 사람 사이에선 마음의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다가 또 무엇을 잘 조절해야 할까 생각해 봤다.

 

 

작년 내 체중이 5.5킬로가 빠졌다.(현재 3킬로만 회복되었다.) 체중이 빠지고 나니 기운이 없는 것 같았다. 빈혈 증세가 생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싫은 건 내가 거울을 봐도 예쁘지 않다는 것이다. 살이 찌기 위해 밥을 열심히 먹기로 하고 식사의 양을 늘렸다. 그랬더니 소화 불량에 걸리는 부작용이 생겼다. 많이 먹되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먹어야 했다. 식사량 ‘조절’이 중요하다.

 

 

정신의 무거운 짐을 들고 있어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짐에는 걱정과 불안이 가득차 있을 터였다. 걱정과 불안을 없애야 했다. 그것들을 없애서 정신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글쓰기’다.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인 셈이다. 그런데 글을 쓰면 정신엔 좋은 반면, 몸엔 부작용이 생겼다. 정신은 즐거워지되 몸은 고단해서 감기몸살이 났던 것. 글을 쓰되 감기몸살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글을 써야 했다.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다.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쓸 시간이 모자란다. 글을 많이 쓰면 책을 읽을 시간이 모자란다. ‘7 대 3’으로 할까, ‘6 대 4’로 할까 생각하다가 ‘5 대 5’로 하기로 했다. 책을 두 시간 읽었다면 글을 두 시간 쓰기로 한 것이다. 시간 ‘조절’이 중요하다.

 

 

샤워를 할 때조차 물이 뜨거워서도 안 되고 차가워서도 안 된다. 적당한 온도의 따뜻한 물이어야 한다. 물 ‘조절’이 중요하다.

 

 

요즘 같은 겨울엔 실내의 온도 조절만 중요한 게 아니다. 지나치게 건조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습하지 않은 습도를 유지해야 건강에 좋기 때문에 습도 ‘조절’이 중요하다.

 

 

내가 ‘조절’을 중요시하는 순간, ‘조절’은 예전과 다르게 새로운 가치의 색채를 띤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잘 조절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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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2-1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이 거리 조절이 필요하지만, 그 거리라는 것이 (대개 4 범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 분류내에서도) 각각이라는 것.

부부를 포함한 가족과 같은 사이에서는 대화를 통해 거리로 인한 스트레스를 공평하게 분담할 수 있지만, 직장 상사와 같은 갑을의 관게에서는 을이 갑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것. 자율성이 없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포함해서 인간 관계의 거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을이 홀로 부담해야 하고.

직장 상사의 위치에 사회를 대입해도 같은 논리가 가능해, 사회에 대해 을에 위치에 있을 경우, 그마나 대화가 있는 사람보다 더 어려울 수 있지요.

내가 지금을 포함한 평생 잘 조절해야 할 것은 감정을 포함한 mentality - 죽을 때가 안 될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14-02-19 20:21   좋아요 0 | URL
갑과 을의 관계라... 사회와의 관계라...
님의 댓글은 훌륭하네요. 그 생각은 못했어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2014-02-19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9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4-02-19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나이들수록 중용의 가치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살이 그렇게나 많이 빠지셔서 어쩐답니까?
저에겐 복음일텐데, 저는 그렇게 살이 안 빠져요.
저는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햇빛을 보며 운동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그렇게 안 되요.ㅠㅠ

페크pek0501 2014-02-19 20:27   좋아요 0 | URL
작년에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 전후로 살이 금방 빠지더라고요.
그런데 회복은 더디네요.
복음이라고요? ㅋㅋ
적당하게 보기 좋은 몸매를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마르거나 찌거나죠.

햇빛 보며 걷는 것, 요즘 많이 합니다.
미세먼지가 있는 날은 빼고요. ^^

비로그인 2014-02-1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살이 빠져요. 어떤 계기로 급속도로 빠지진 않고 매일 100g씩? 꾸준히요, 살 빼려고 운동하는 것도 먹는 걸 줄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빠지네요. 거울을 봐도 생기가 없고 눈 밑은 자글자글해지는 게..(페크님의 '조절'에 관한 훌륭한 페이퍼에 하소연만 늘어놓고 있네요^^;;)

저는 '알라딘 접속시간'을 잘 조절해야 할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14-02-21 08:16   좋아요 0 | URL
견디셔 님.
누군가에겐 살이 빠지는 게 좋고 누군가에겐 살이 찌는 게 좋은데 다 자기 맘대로 안 된다는 게, 세상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몸에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저도 컴퓨터 켜기를 주2회로 해야 겠다고 계획을 세운 적이 있어요.
실천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그래요. ㅋㅋ

잘잘라 2014-02-19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욕 조절이요. 자전거 타고 다닌다고 산 자전거, 등산 다닌다고 산 등산복, 민요 배운다고 산 장구(장인이 만드신 거라 비싸게 주고 산.. ㅎㅎ), 서예 배운다고 산 서예도구.... 이 모두가 요즘 새로 배우기 시작한 분식점 창업 요리에 밀려나 있는 모습을 보자니 더 이상의 의욕은 안되겠다 싶어요.

페크pek0501 2014-02-21 08:17   좋아요 0 | URL
분식점 창업 요리, 그거 멋지네요.
님은 우울할, 그리고 심심할 틈이 없을 것 같으니 행복하신 분입니다.

세실 2014-02-20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마지막 한줄, 매력적이예요. 글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는 카리스마 있어요~
전 식욕 조절이 필요합니다. 밥 먹고 간식이 왜 땡기며, 저녁에 소식하고는 한밤중에 가래떡이 왠말입니까!!!!! 최대의 적입니다. ㅎ

페크pek0501 2014-02-21 08:18   좋아요 0 | URL
저도 맛있게 먹는 것, 몇 가지 있어요. 그것도 행복이지요.

마지막 한 줄... 그 한 줄이 이 시시한 페이퍼를 조금 살려 놓았다고 평가하는 바입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4-02-2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생활에서도 친근하게 군다면서 어느 선을 넘어가면 무례함이 되기 쉽죠.적당한 예의를 지켜야 하는데...거리조절에 실패하면 인간관계가 어긋나니까요.

페크pek0501 2014-02-23 09: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
그러고 보면 모든 것에 조절이 중요하네요. ^^

다크아이즈 2014-02-23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거리든, 시공간적 거리든 꼭 필요한 거 맞지요?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너무 엎어지면> 깨지게 되어 있어요. 적당한 선, 적정한 거리가 유지되지 않으면 피로가 누적되고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지지요. 이런 페이퍼 보면서 또 다지고 다지는 거지요.스스로를^^*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4-02-24 13:10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 거리들이 필요한 거죠. 인간은 누구나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고딩 딸만 해도 (고 어린 것이) 그렇더라고요.
적당한 거리,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가 좀 힘들어서 그렇죠.

서울은 미세먼지 사흘째예요. 목요일에 비가 오면서 끝난다니깐 운동도 못하고 집에 갇혀 지내야 되네요. 그동안 공기 맑은 날도 큰 혜택이었음을 깨달아요.
좋은 하루 되시길요... ^^
 

 

 

1.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은 금물 : 내 경험에 따르면, 중대한 일이라고 여겨졌던 어떤 일이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중대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되는 문제가 생겼을 때 '먼 훗날 돌아보면 별것 아닌 일이 될 거야.' 하고 나를 안심시키는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에 의해 사랑을 거부당하고 무시당한 경험은 우리의 자존감에 깊은 충격과 상처를 입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열등감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가까운 사람과 관계가 깨졌다는 사실, 버림받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온갖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 늪에 빠져서 가라앉을지, 아니면 나뭇가지를 잡고 빠져나올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138쪽)

 

우리는 그저 몇 번 사랑에 실패했을 뿐이다.(139쪽)

 

 

- 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에서.

 

 

 

우리는 그저 몇 번 사랑에 실패했을 뿐이다.(139쪽) 인생이 끝난 게 아니고.

 

 

그러므로 사랑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중요한 건 생각이니까.

 

 

 

 

 

 

 

 

 

 

 

 

 

 

 

 

 

 

 

 

 

2. 고민을 가볍게 만드는 방법 : 누구나 고민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진다. 고민이란 게 알고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도 크게 생각하여 집중하는 일이므로. 

 

 

고민이 있을 때 고민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시는지?

 

 

고민 말고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

고민을 쪼개서 세부적으로 분석하는 것.

고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면 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하는 것.

 

 

이 네 가지 중에서 내가 말하려는 답이 있다.

 

 

바로 이것. ‘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하는 것.’

 

 

이 답과 똑같은 명언을 책에서 보고 잠깐 동안 내 눈이 멎은 적이 있다. 딱 맞는 말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게 고민이 있어 누군가에게 털어 놓은 적이 있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고민은 아니었지만 해결하지 않는 한, 내 머릿속에서 떠날 것 같지 않던 성가신 고민이었다. 마음이 찜찜했다. 상대가 내 고민을 해결해 주길 바랐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고민에 공감해 주기만 해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내 고민을 듣고 난 뒤 상대가 해 준 답변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내 고민에 공감해 줬을 뿐 아니라 조언해 줌으로써 고민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많이 고마웠다. 고민을 털어 놓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고민의 무게와 부피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이다. 하지만 찜찜했던 내 마음이 사라져 버렸으니 마치 고민이 해결된 것처럼 느꼈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믿는 사람에게 고민을 얘기함으로써 고민을 없앨 수 있다는 건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책에서 이런 명언을 보고 내 눈이 멎었던 거였다. 

 

 

“고민을 가볍게 하는 가장 훌륭한 치료법은 믿는 사람에게 자기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르즈 헐파다)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중요한 건 생각이니까.

 

 

 

 

 

 

 

3. 그냥 ‘생각’일 뿐 : 가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남들이 알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걸 상상할 때가 있다. 또 남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세상에 공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걸 상상할 수도 있겠다. 이런 것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면 재밌는 내용이 될 것 같다.

 

 

만약 얼굴에 그 사람의 생각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상대방을 시시하게 보는 얼굴이나 상대방을 경멸하는 얼굴이 되는 일이 있을 땐 어떻게 될까. 아마 우리는 편히 살 수가 없을 게다. 그러므로 누구도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책임을 질 일도 없으므로.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육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해. 긍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하찮은 생각, 심오한 생각. 그걸 이렇다저렇다 판단해선 안 되지. 생각은 흘러가는 구름 같은 거야. 우린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생각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어떤 생각 때문에 괴로울 땐 그냥 ‘생각’일 뿐이라고 마음먹고 흘러버리는 거야.”

 

 

- 프란세스크 미랄례스, 카레 산토스 저, <일요일의 카페>에서.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아무것도 아니니까.

 

 

 

 

 

 

 

 

 

 

 

 

 

 

 

 

 

 

 

 

 

4. 누구나 할 말이 있다 : 어떤 잘잘못을 따지는 상황에서 침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가 할 말이 없어서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는 참고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는 법이니까.

 

 

딸들이 다툴 때가 있다. 이럴 때 내가 중재자로 나서는데 한쪽의 얘기만 들으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어서 각자의 얘기를 들어 보기로 한다. 그런데 매번 어느 쪽이 옳은지, 어느 쪽이 그른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는 걸 절감한다.

 

 

예를 하나 들면 이렇다.

 

 

큰애가 티브이를 보고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애가 티브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린다. 큰애가, 내가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왜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느냐고 화를 낸다. 그러면 작은애는, 이제까지 언니가 맘대로 티브이를 봤으니까 이젠 내가 봐야겠다고 응수한다. 언니는, 내가 (티브이를) 보고 있었으니 리모컨의 사용 권한은 내게 있다고 따진다.

 

 

티브이를 보고 있는 입장인 큰애는 리모컨의 사용 권한이 아직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티브이를 보지 않던 작은애는 여태껏 언니가 티브이를 봤으니 이제부터는 자기가 봐야 공평하므로 리모컨의 사용 권한이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은가.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없지 않은가. 이럴 땐 서로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게 내 결론이다. 중요한 건 생각이니까.

 

 

 

 

 

 

 

5. 역지사지의 자세 : 이처럼 세상일에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성어,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겠다.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에서도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에서.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이 세상 사람이 다 유리한 입장(처지)에 놓여 있는 게 아니라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는 사람도 있으니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란 뜻이겠다. 중요한 건 생각이니까.

 

 

 

 

 

 

 

 

 

 

 

 

 

 

 

 

 

 

 

 

 

 

 

 

6. 생각만으로도 나쁜 일과 좋은 일 :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에게 공포감을 주는 협박 편지 한 통의 생각만으로도 지옥에 빠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이처럼 인간이란 ‘생각의 노예’가 아니던가.

 

 

이런 예를 들어 보겠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런 일에도 공포를 느낄 것 같다.)

 

 

“당신이 현관문 앞에 있는 신문을 매일 아침에 집어 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어느 날은 그 신문 속에 똥이 묻어 있을 것이다.”

 

 

이런 글의 편지를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면 나는 신문을 집어 들 때마다 스트레스를 크게 받으며 긴장할 것이다. 신문 속에 똥이 있다면, 침대에서 신문을 펼쳐 보는 습관이 있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그 똥이 이불에 묻게 되잖아. 이 생각보다 더 괴로운 것은 나를 노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만으로도 나는 불행에 빠져 버릴 수 있다. 물론 이건 나쁜 일이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어린 왕자는 이튿날 다시 왔다. 그러자 여우가 말했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오면 더 좋을 거야.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벌써 안절부절못하고 걱정이 될 거야.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나는 몇 시에 마음을 곱게 치장해야 할지 알 수가 없잖아…… 예절이 필요한 거란다.”

 

 

- 생텍쥐페리 저, <어린 왕자>에서.

 

 

 

오후 4시에 누군가가 온다는 생각만으로도 3시부터 행복해질 수 있듯이, 직장인들은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금요일 저녁부터 행복해질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것은 ‘생각’이 선사하는 행복이겠지.

 

 

도 생각만으로도 불행해지는 일이 있고,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일이 있다. (언젠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불행해진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겪었던 힘들었던 일들을 또 겪어야 하다니 하면서 말이다. 언젠가는 큰애가 취직이 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학비가 들지 않고 오히려 돈을 벌어 오다니 하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생각은 그냥 생각일 뿐이지만 참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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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4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5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4-02-1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이 있을때면 차근차근 생각합니다. 고민을 쪼개보는거죠. 그리고 제가 유리한 쪽으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믿을만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답니다~~~

현재에 충실하기도 참 중요한듯요^^

페크pek0501 2014-02-15 14:26   좋아요 0 | URL
세실 님, 저와 비슷하시네요.
제 얘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가 상담 역할을 합니다.
시 쓰는 친구라서 감성과 감각이 발달되어 있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친구랍니다.
저의 모자란 점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지만 저의 어떤 점을 높게 평가해 주는 친구라서 좋습니다.

아마 세실 님도 저보다 젊지만 가까이 산다면 저에게 좋은 조언을 해 주실 분 같아요. 사회생활로 다져진 탁월한 마음 다스리기, 가 님에겐 있을 듯해요. ㅋ

다크아이즈 2014-02-15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특권이요, 그 생각이 들키지 않는다는 건 행운이요,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될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페르소나 없는 삶이라면 당혹스럽고 낭패스럽잖아요. 덕분에 오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

페크pek0501 2014-02-15 14:28   좋아요 0 | URL
페르소나... 이 뜻을 몰라서 검색해 봤어요.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한 뜻을 모르는 낱말이 어찌나 많은지요.

님의 글에서 많이 배우고 있답니다.
우리 파이팅!!!!!!!!!!!!!!!!!!!!!!!!!!

노이에자이트 2014-02-16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내 편을 안 들어주고 그래? 하고 성질부리는 인간에겐 역지사지니 뭐니 아무리 권해봐도 소용없습니다.자기 잘못은 생각도 않고 내 편만 들어달라는데...참...

페크pek0501 2014-02-18 13:3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웃겨요. 그래서 인간이 귀엽잖아요.
그런 사람에겐 역지사지가 안 통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