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폰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 '스마트폰 소외족'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스마트폰과의 만남은 편리함과의 만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외출하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날씨가 흐려 비가 올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컴퓨터를 켜기 위해 도로 집으로 갈 필요 없이 바로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우산을 갖고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에 스마트폰이 편리하겠다. 나는 이와 같은 편리함을 취하고 싶을 뿐, 스마트폰을 컴퓨터 대용으로 쓰길 바라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메시지 주고받는 것, 지하철 노선 보는 것, 음악 듣는 것, 사진 찍는 것, 메모하는 것 등을 하겠지만 알라디너의 글을 읽는다든지 신문을 읽는다든지 할 때처럼 긴 글을 읽을 때엔 컴퓨터의 큰 화면으로 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폰으로 인해 눈의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을 많이 보면 눈물이 말라 노안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30대 젊은 층의 노안 인구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폰의 노예가 되지 않음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폰과 노는 시간’보다 ‘책과 노는 시간’이 훨씬 많을 것.
2. 미묘한 심리 (1) : ‘내가 바보 같은 행동을 했어.’라고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바보 같은 행동을 했어.’라고 말하면 그건 기분이 상한다. ‘그 일에 자존심이 상했어.’라고 내가 스스로 말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그 일에 자존심이 상했겠다.’라고 말하면 그건 자존심이 상한다. 왜 그럴까? 나는 이런 인간의 심리가 재밌다. 이런 심리를 볼 수 있는 소설이 좋다. 그래서 소설을 즐겨 읽는다.
3. 미묘한 심리 (2) : 결혼하기 전, 지금의 남편이 나를 일방적으로 따라다녔다. 남편이 나를 짝사랑을 한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둘이 연애를 하게 되었고 결혼 얘기가 오가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갈등하고 있었다. 이 남자와 결혼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어머니 될 분이 나를 신붓감으로 반대한다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나를 반대한다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결혼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가질 수 없을 때 더 갖고 싶은 것과 같은 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이름 없는 것에서 하늘과 땅이 생겼다.
이름 붙여진 것은 각자 그 성질에 따라 만물을 길러내는 어머니이다.
실로 욕망을 영원히 벗어난 자만이 비밀스러운 본질을 볼 수 있다.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결과만을 본다.
노자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59쪽.
욕망은 비밀스러운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결과만을 보게 만든다는 것에 공감한다. 나의 경우 시어머니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결혼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서, 다른 건 따질 것 없이 오로지 결혼해야 한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남편과 결혼한 걸 후회한다는 것은 아님. ㅋ 내 친구가 말했듯이, 딱 나 같은 사람과 결혼했다고 본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반대가 완강하진 않았다. 워낙 선량한 분이다. (지방에 사는) 우리 시어머니가 나를 반대한 이유를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서울 여자’라서 싫고 ‘잡지사 기자’라서 싫었단다. 드센 여자인 줄 알고... 나, 하나도 드세지 않은데...)
티브이 드라마에서도 흔희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 아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신붓감을 데리고 왔을 때, 그 신붓감이 맘에 들지 않는 어머니는 오로지 두 사람을 떼어 놓을 궁리만 한다. 떼어 놓고 싶은 욕망으로 ‘떼어 놓음’의 결과만을 볼 뿐, 자신의 아들이 그 일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아들이 행복하길 가장 바라는 어머니가 결과적으론 아들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만다.
기억해 두기로 한다.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결과만을 본다.’
4. 사랑과 겸손의 관계 : 한 번쯤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한 번쯤 실연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어긋나는 게 인생이다, 가 되겠다. 그러니 실연당했다고 해서 창피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고 보니 그렇게 생각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결혼하게 되는 것이겠지. 그래서 다행인 것이다. 만약 이성을 만나게 될 때 서로 좋아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면 도대체 누구랑 결혼해야 된단 말인가. 서로 좋아하는 일이 드물게 일어나는 건 절묘한, 신의 한 수.
여러분은 아시는가?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상대를 잃게 될까 봐 조심하게 된다는 것을.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상대를 잃게 될까 봐 화를 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다시 말해, 사랑을 하게 되면 저절로 겸손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데 평상시에 겸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요즘 ‘겸손’에 대해 관심이 많다. 생활에서도 글을 쓸 때도 겸손하고 싶어서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겸손함이란 우리의 재능과 미덕을 숨기거나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나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 속에 부족한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고, 신께서 우리가 가진 것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셨으며, 그분께서 주신 모든 재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거기에 대해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 데 있다.
라코르데르
- 올더스 헉슬리 저, <영원의 철학>, 279쪽.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아는 것, 이게 중요하겠다.
이런 속담이 생각난다.
아랍 속담 :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처하는 자는 화병으로 죽을 위험이 있다.”
- 미셸 투르니에 저, <외면일기>, 34쪽.
5. 반해 버린 책 : 그저께 책을 읽다가 보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아, 잠을 자야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책을 덮었다. 바로<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이란 책이다. 연암 박지원의 글을 감상할 수 있고 그의 글 쓰는 방법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2908/1/cover150/8971995564_1.jpg)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만을 전부라 여기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갈등과 대립이 생겼을 때, 각자가 자기 입장만이 옳다고 우기면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연암의 우언寓言을 들어 보자.
까마귀는 뭇 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다른 새 희지 않다 의심하네.
흑과 백이 각자 자기가 옳다 하면
하늘도 응당 그 판결 싫어하리.
「발승암기문」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53쪽.
까마귀는 뭇 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다른 새가 희지 않다고 의심한다는 구절, 짧지만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 글로 보인다. 연암의 글이다.
역시 연암이 쓴 다음의 글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다. 어느 글의 첫머리라고 한다.
자무子務와 자혜子惠가 나가 놀다가 소경이 비단옷을 입은 것을 보았다. 자혜가 “후유” 하고 한숨지으며 말했다. “쯧쯧! 자기에게 있으면서도 보지를 못하는구나.” 자무가 말했다.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사람과 비교하면 누가 나을까?“ 마침내 함께 청허聽虛선생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하지만 선생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는 모르겠네, 나는 몰라.“
「낭환집 서문」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112쪽.
이 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특히 연암은 대체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논쟁을 걸면서 글을 시작한다. 이는 곧 연암의 글은 정보나 지식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고, 논쟁을 촉발하거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독자의 반성을 유도하거나 독자에게 흥미를 주려는 데 목적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처음에 과감하고 분명한 논지를 제기하라는 것이 연암이 말하는 서두의 글쓰기 요령이다.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113~114쪽.
이 책을 보느라 밤잠을 적게 잤는데 내가 왜 이렇게 책에 집중하며 살까, 생각해 보니 책을 친구 삼아 살게 된 게 습관이 되어서인 것 같다. 책과 친구가 되면 외롭지 않아 좋다. 나의 이런 생각을 일깨워 주는 글을 만났다. 형암 이덕무의 글이다.
친구가 없다고 탄식할 것 없이 책과 함께 노닐면 된다. 책이 없으면 구름과 놀이 내 친구고, 구름과 놀이 없으면 하늘을 나는 갈매기에 내 마음을 의탁하면 된다. 나는 갈매기가 없으면 남쪽 마을의 홰나무를 바라보며 친구 삼아도 되고 잎 사이의 귀뚜라미도 구경하며 즐길 수 있다. 무릇 내가 사랑해도 그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은 모두 나의 좋은 친구다.
「선귤당농소」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72쪽.
아, 이 글도 좋다. 시기하는 친구나 의심하는 친구는 ‘친구 명단’에서 빼야 하는 거구나.
다음의 글 역시 형암 이덕무의 글이다.
개구리 소리는 마치 멍청한 원님 앞에 사나운 백성들이 몰려와 소송을 제기하는 것 같고, 매미 소리는 공부를 엄격하게 시키는 서당에서 시험 일이 닥쳐 글을 소리 내어 외는 것 같으며, 닭 울음소리는 올곧은 한 선비가 자기 임무로 여기고 바른말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번번이 잠자코 응하지 않으면, 발끈해서 낯빛을 붉히고 손을 치켜들고 노려보는데, 눈썹은 개 자 모양으로 찡그리고 손가락은 마른 마디 같아, 굳세고 삐죽삐죽한 모습이 문득 대나무 모양이었다.
「죽오기」竹塢記
- 박수밀 저,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74~75쪽.
개구리 소리, 매미 소리, 닭 울음소리에 대한 표현이 재밌다. 탁월하다.
탁월한 글이 담긴 책을 탁월한 선택으로 구입했더니 밤잠을 덜 자게 만들어 그 다음날 몸 컨디션을 나쁘게 만들었네. 행복한 불평을 해 본다.
6. 깊게 파기 : 한 쪽으로 깊게 파기의 글이 좋기 때문에 자전적 소설이 호평을 받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작가들이 자전적 소설로 유명한 문학상을 타는 걸 많이 봤다. 자전적 소설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경험해서 잘 아는 것’을 쓴 소설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
‘남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써라. 상상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자주 ‘내가 무엇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언젠가 하나 잡히겠지...
7. 여름이 아직 가지 않았다는 증거 : 9월이 오려고 한다. 9월이 늦게 왔으면 좋겠다. 9월이 오면 금방 가을이 될 것 같아서다. 며칠 전, 세 시 넘어 은행 일을 볼 게 있어서 집을 나섰다. 은행 일을 보고 나서 바로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아파트 단지 부근을 돌며 산책을 했다.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해 질 무렵의 날씨를 좋아하는데 그날은 흐려서 낮인데도 마치 해 질 무렵처럼 느껴졌던 것. 걸으니 더웠다. 길을 지나다 어느 편의점 유리창에 아이스커피가 천 원부터, 라고 씌어 있는 걸 보았다. 갑자기 아메리카노 아이스커피가 마시고 싶어 편의점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아이스커피’가 커피액에 얼음을 넣은 종이컵까지 포함하여 천 원밖에 하지 않는 건 의외였다. 그동안 비싼 줄 알고 안 사 먹었잖아. 나, 이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네. 길에서 마시자니 교양 없어 보이는 나이인 것 같아 집에 와서 마시니 구수하고 달콤한 아이스커피의 맛에 행복하다. 천 원이 주는 행복에 취한 시간이었다. 여름이 아직 가지 않았다는 증거다. 아이스커피가 맛있다는 것은.
8. 위로가 되는 말 : 남에게 추천할 만큼 좋게 읽은 책이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책 내용을 잊게 된다. 그래서 누가 그 책의 내용을 말하라면 말 못하겠다.
그래서 내가 요즘 생각한 것은 '책은 읽어서 뭐하나?‘이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면서 인용했던 글은 잊지 않게 된다. 인용한 글 대부분이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기억하기 위해서 이것도 옮겨 놓는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마거릿 대처)
어느 책에서 읽은 것이다. 이렇게 인용하고 나면 이 말도 내 머릿속에 저장되겠지. 살면서 실패를 피할 수 없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좋은 말이다.
기억해 두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쓴다.
‘실패는 단지 더 현명하게 시작할 기회일 뿐이다.’
내가 요즘 실패한 일이 하나 있는데 앞으로 더 현명하게 시작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믿어야지. 믿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