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 7일 밤 11시 즈음...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첫 아이라.. 진통이 어떤건지 구분 못할까봐 걱정을 했었는데, 그 순간이 다가오자 이것이 진통임을 절로 알 수 있었다.
병원에 전화했더니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면 병원으로 오라 한다.
가방은 이미 챙겨놓았었다.
옆지기가 모는 낡은 빨강색 티코를 타고가며, 차가 유난히 흔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병원 산모대기실에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다. 나외에 다른 산모 한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다행이다. 조용해서~
10분에 한번씩 진통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궁문은 2Cm 밖에 열리지 않았다.
간호사들 말로는 아직 낳으려면 멀었으니 편안히 있으라고 한다.
같이 따라왔던 옆지기는 병원 복도에서 기다리고, 난 혼자 산모대기실 침대에 누워 진통을 견뎌야 했다.
아니, 혼자가 아니지... 나보다 먼저 들어온 산모의 신음소리를 들어가며 기다려야 했다..
산모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어째 다들 밤에 진통을 하는거지?
나보다 먼저 들어 온 산모가 가장 먼저 아이를 낳았다.
그 분의 옆지기는 외국인이었는데, 해산실로 들어가면서 남편을 애타게 찾자.. 의사가 같이 들어가도록 허용을 해주었다. 부러워라.. (당시에는 해산때 남편이 참가하는 예가 거의 없었다..)
진통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다른 산모들의 신음소리도 점점 커졌다.
옆 산모중 하나가 의사를 붙잡고 호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왕절개 해달라고...
사실, 나도 너무 아파 그 유혹에 빠져있던 차에 솔깃했다.
그 의사의 매몰찬 거절이 아니었다면 나도 제왕절개 해달라고 졸랐을지도.....
벌써 아침이다.. 밤을 꼬박 세웠는데, 계속 아프기만 하다..
병원 원장이 출근하자, 산모 대기실은 좀 더 활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노련한 의사는 뭐가 달라도 다른 듯.. 안심시켜주고 다독여주는 말에 난 화아악~ 마음이 놓였다.
양수가 터지지 않는다고, 뭔가로 찔러 양수를 터뜨렸다.
따뜻한 물이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너무나 이상했다.
진통간격이란 말 자체가 무색해질 정도가 되자, 해산실로 옮겨졌다.
이미 거의 제정신이 아니라, 침대를 밀고가고 들어올려 다른 침대로 옮기고 하는 과정이 저 멀리 딴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같았다.
아플때 힘을 주라하는데.. 타이밍 맞추기 너무 힘들었다.
간호사들은 배를 눌러대고, 의사는 조금만 더..를 계속 외치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줄 알았다.. 왜 이렇게 안나오는거야...ㅠ.ㅠ
효주가 태어나는 순간의 느낌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무언가가 쑤욱~ 빠지며 허전하게 만들던 그 감각을...
아이를 잠깐 보여줬지만, 끝났다는 안도감으로 가득찬 마음에, 아이 얼굴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1994년 9월 8일, 아침 9시 45분, 2.65Kg... 그렇게 효주는 태어났다.
그 다음부터는 자다깨다의 반복이었다.
학교 체육시간에 들으면서 겁내왔던, 실로 꿰매고 하는 과정이 하나도 안 아팠다.
소독을 하고 다시 옮기고 하는 내내 나는 잤다.
그 날 다섯명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여자아이는 효주밖에 없었다.. 흠-.-;;;
퇴원을 하면서 아이를 내 품에 안자,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아아~ 내가 아이를 낳았구나......!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 ^^
효주가 앞으로도 항상 건강하고 착한 아이로 자라나기를.....
오늘이 효주의 생일입니다.. 효주 생일 많이 축하해 주실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