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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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생신이라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했다. 늦게 오신 아버지가 대뜸 이렇게 말하신다.

 

백남기 씨가 죽었더라.”

 

......심장에서 돌 하나가 떨어지는 느낌.

(백남기 씨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경찰과 검찰은 시신 부검을 하겠다고 지랄발광이라지. 박정희는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판결 후 18시간 만에 아무 죄 없는 국민 8명을 사형시켰다. 그리고 유가족에게 시신을 돌려주지 않았다. 사형당한 시민의 몸 전체가 온통 고문의 증거였기 때문에. 이제 도살자의 딸내미는 오히려 부검을 하게 시신을 내놓으란다. 사람 죽여 놓고 시체 내 놓으라? 그 아버지에 그 딸년이다. 저런 버러지를 대통령이라고

 

정윤회에 이어, 최순실, 미르재단, k스포츠로 연일 뒤숭숭이다. 전두환의 일해재단처럼 박근혜의 비자금 조성자금 때문이라지. 800?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최고의 노후대책? 이제 참을 만큼 참지 않았나? 도를 넘었다. 물은 99.99999.....도에 끓지 않는다. 100도에 끓는다.

 

대한민국에 416이 있다면 일본엔 311이 있다. 아타루에 따르면 <이 치열한 무력을>아날렉타방식으로 쓰여졌다. 처음부터 읽을 필요 없이, 기분 내키는 장을 선택해 읽어도 되는 책. 여러 주제들을 다루지만 가장 눈에 띈 글들은 ‘3,11’이후를 고민한 글들이었다. 2011년 후쿠시마 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세계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최근 울산 지진에 이어 경주에서 진도 5.8 이상의 강진이 발생했다. 정말로 경악스러운 사실은 정부는 활성단층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알면서도 원전을 그곳에 지었다는 거다.

 

활성단층 위에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됐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국민안전처 박장관은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너 그러다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다!) 박 장관은 또 현재 활성단층이 450개 이상인데 25개밖에 조사가 안 된 상태라며 최악의 경우 활성단층 위에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추혜선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울산 단층은 진도 8.3에 이를 수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원전은 진도 7.0 정도까지를 견디도록 설계됐다. 지진학 이기호 박사에 따르면 이번 경주에서 발생한 5.8 규모의 지진이 전조현상일 경우 역사적으로 향후 2.6년 후 진도 8 이상의 대규모 지진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락방님이 소개한 책 <한국 탈핵>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는 한국이다. ? 원전 마피아 때문이다. “불량품, 중고품, 검증서 위조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부품 등이 납품되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원전을 더 짓겠단다. ? 원전 마피아들로부터 노후 대비 목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죽 한 그릇 더 먹겠다고 국민 생명을 담보로 잡아? 이게 국가원수인가, 국민의 원수.

 

 

후쿠시마 사태 이후 대다수 국가가 원전을 포기하는 추세다. 올 여름, 중동 지역은 53도까지 올라갔고 우리 역시 그 어느 해보다 더운 여름을 보냈다. 해마다 지구 기상은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하다.

 

세슘 137 반감기는 약 30. 플루토늄 239의 반감기는? 24천 년이다. 열화 우라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라늄 238?

 

45억 년이다.

 

 

 

아도르노는 그럼에도 아우슈비치 이후의 문화는 모두 Müll이다라고 썼습니다. “그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포함해서 Müll이다. Müll은 먼지, 쓰레기, 폐기물 등을 뜻합니다.

 

Müll에 아톰을 붙여 Atommüll이라고 하면 핵폐기물이 됩니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이후, 우리의 문화는 모두 핵폐기물일까요? 이에 대한 비판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아도르노 식으로 말하면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화는 핵폐기물이 됐나요? 답은 하나입니다.

 

두고 봐이것이 유일한 답입니다.

 

사사키 아타루, <이 치열한 무력을>

 

지금이야말로 목숨을 건 도약이 없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뻔해 보인다. 전 세계의 모든 핵 발전소는 반드시 폐기되어야만 한다.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 따르면, 이미 핵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는 여러 방식들이 존재한다. 특히나 태양열.

 

치욕honte은 굴욕humiliation과 다릅니다. 치욕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치욕입니다. 자신에 기인한 그 무엇이 치욕입니다. 굴욕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항상 그 누구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굴욕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자기를, 자기 세계를 변혁하고자 하는 동기가 되는 것은 항상 치욕입니다. 굴욕은 그 무엇도 바꾸지 않습니다. 그것이 낳은 것은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 뿐입니다.

 

이 치욕의 이름 아래 이 재해는 우리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과 이 재해를 불러온, 거기에 가담한 사람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책임은 추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무능과 무책임을 허용해온 우리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우리 손으로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 속하는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이름으로, 치욕의 이름으로 책임을 지게 해야 합니다. 도망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 사사키 아타루, <이 치열한 무력을>

 

이명박, 박근혜와 자칭 보수라 주장하는 독재협력 세력들이 저지른 죄악이 너무도 크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백남기 씨 영면의 소식을 듣고 무력감에 빠졌다. 시신 부검을 요구하는 박근혜 정권의 행태는 인면수심이요 인간의 치욕이다. 이런 사태는 나의 책임이기도 할 것이나 직접적인 살해에 가담한 것들을 도망치게 놔둘 수는 없다.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무력하지만 그래도.

이 치열한 무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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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6-09-27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금 사사키 아타루의 책을 들춰보게 하는 페이퍼네요....

시이소오 2016-09-27 08:38   좋아요 1 | URL
사드에, 원전에, 백남기씨 죽음에, 기타등등
무력감이 밀려드네요.

비연님 말씀처럼 힘을 내야 겠어요.


단발머리 2016-09-27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전에 대한 이야기는 읽게 될수록 두렵고 무섭습니다.
세계의 전문가들이 그런다고 하더라구요.
이제.... 한국 차례다.

그런데 지진까지 있다보니.... 공포가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

시이소오 2016-09-27 09:19   좋아요 0 | URL
원전 짓겠다는 것들 때려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원전 마피아와 결탁한 정권은 당연히 내쫓아야 하고......

대체 에너지를 생산해야 하고, 세계적인 환경운동 집단과 연대해야할테고......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래야겠네요.ㅠㅠ

yureka01 2016-09-27 0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마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의 공통점은 어느 것이 바른지, 혹은 옳은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죠...이 시대 사람들의 지성은 형편없는 이유가 뭘까 싶습니다.그나마 알라딘 유저분들의 사유가 그래서 더 돋보입니다^..

시이소오 2016-09-27 09:39   좋아요 3 | URL
유레카님을 비롯해서 알라딘 유저분중에 원전개발에 찬성하는 분이 계실까요?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될텐데요. 독재협력세력에 표를 주는 사람들을 도대체 어찌해야할런지요. 답답하네요.ㅠㅠ
 
사랑 예찬 프런티어21 14
알랭 바디우 지음, 조재룡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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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매설리의 <인생의 모든 의미>를 읽으며, 20세기 100여명의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숙고해보았다. 숱한 사상가들 중 전혀 예상치 못하게 테리 이글턴, 샤르댕, 윌 듀란트의 대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세 사상가의 공통점은 한 마디로 사랑이다. 허걱, 이토록 식상할 수가. 수 백명의 대답 중 난 어쩌다 사랑에 꽂힌 것일까.

 

삶의 의미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따라오는 문구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삶의 의미의 최소한의 조건이다. ( 따라서, 타인에게 폐만 끼치는 정치가들은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들의 삶은 버러지보다 더 가치가 없다.)

 

그런데 사랑이란 단어를 쓰면 굳이 저런 문구가 필요가 없다. 그동안 읽었던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 플라톤의 <국가>를 비롯한 플라톤에 관한 책들, 이서희의 <유혹의 학교>등도 결국 사랑에 수렴한다. ‘그래, 사랑 박사가 되야겠다!’하고 작정하고 읽은 책이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이다.

 

바디우 역시 랭보의 <지옥에서 한철>을 이 책의 제사로 삼았다. 사랑의 재발명을 언급한다. 왜 한병철 바디우는 사랑의 재발명을 말하는가?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프랑스 인터넷 만남 사이트 미틱의 광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 위협받고 있다. 언제부턴가 썸 탄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썸 탄다는 건, 간만 보는 거다. ? 사랑에 빠지면 아프니까. 다치니까. 상대방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 현대의 사랑은 애초에 나르시시즘에 불과할 뿐이다. 타인의 몸뚱아리는 단지 매개체일뿐 현대의 사랑은 결국 자기 사랑에 그친다.

 

루소는 자기애를 아무르 프로프르amour propre’아무르 드 수아amour de soi’로 구분했다. ‘아무르 드 수아가 자연스럽고도 유용한 자애심인 반면 아무르 프로프르는 기본적으로 타자를 종속시키는 시선이다. 그것은 지위에 대한 욕구이며 문명사회의 모든 악의 근원이다. 현대의 사랑은 아무르 프로프르. 라캉은 말했다. “성관계는 없다. 오로지 자기 사랑만 있는데 어떻게 성관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바디우는 낭만적인 사랑을 회복하자는 걸까? 바디우에게 사랑은 언제나 둘이 등장하는 무대. 그런데 낭만적인 사랑은 결국 하나로 소모되고 소진된다. 거기선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종교적인 사랑은? 종교는 초월성이라는 십자가에 사랑을 못 박는다. 결국 종교가 말하는 사랑 역시 사랑이 아니다.

 

나 역시 낭만적인 사랑이나 종교적인 사랑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일찍이 플라톤 소크라테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으로 시작되지 않은 것은 결코 철학에 이르지 못 할 것이라고.

 

페소아는 말했다. “사랑은 하나의 사유라고.

바디우에게도 사랑은 진리의 구축이다. 어떤 진리? 두 사람의 차이의 진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신비로운 공명에 이를 수 있다.

 

바디우는 정치와 사랑의 직접적 결합을 부정하지만, 정치적 이념의 기치 아래 실천과 참여로 점철된 삶과 사랑 특유의 강렬함 사이에는 신비로운 공명같은 것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마치 그 소리와 힘에서는 완전히 상이한 두 악기가 위대한 음악가에 의해 하나의 곡 속에 합쳐져서 신비로운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것같다.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세계, 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욕망에서 나오는 정치적 행위는 어떤 심층적 차원에서 에로스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에로스는 정치적 저항의 에너지원이다. ”

 

-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중에서

 

사랑을 시작으로 우리는 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욕망까지 뻗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글턴, 샤르댕, 듀란트, 바디우가 말하는 사랑의 공통점이다.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 칸트에겐 영구평화론이요, 샤르댕에겐 오메가 포인트’,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이 나 지그문트 바우만이 주장하는 세계공화국이다.

 

차이 속에서 하나 된 세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종착점이다.

그러므로,

 

사랑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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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14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절 연휴도 쉬지 않으시는 시이소오님!
좋은 명절 보내세요~^^

시이소오 2016-09-14 11:03   좋아요 1 | URL
저도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연휴 들어갑니다. syo 님도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

물고기자리 2016-09-14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가 되는 것도, 초월적인 것도 아닌 사랑의 재발명.

`차이에도 불구한 신비로운 공명`

마치 시이소오 님과,
다른 길을 통해 같은 정상에서 만난 것 같은 기쁨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ㅎ

시이소오 2016-09-14 13:29   좋아요 0 | URL
물고기자리님, 정상에서 만나죠. ^^

커다란 달덩이만큼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들뢰즈 철학 입문 아모르파티 총서 1
김재인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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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에 들뢰즈 책을 꽤나 읽었다. 이해가 안 갔다. 특히나 <천의 고원>. ....번역 탓일까? 원문으로 읽었다. 이해가 안 갔다. 원문과 번역본을 번갈아 가며 읽었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같이 바칼로레아 원문 스터디 한 학우들과 <천의 고원> 원전 강독 스터디를 했다. ....., 스터디가 깨졌다. 들뢰즈가 스터디를 깨뜨릴 줄이야. (왜 들뢰즈에 대한 2차 서적을 읽을 생각을 못 했던 걸까? 예전에도 말했지만 모르면 몰랐지 그건 치사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어찌나 우매했던지.) 그 이후로 들뢰즈를 미워하게 됐다.

 

그나마 들뢰즈에게 배운 건 리좀의 개념이었고, ‘리조마티크한영화를 만들겠답시고 설치기도 했다. 리조마티크한 영화를 누가 보겠는가? 결국 뻘짓을 한 셈이다. 이 책을 읽고 어찌나 놀랍고 당혹스럽고 화가 나던지.

 

아니, 고작 이 말을 하려고 했던거야?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얘기한 거야?’

 

들뢰즈는 관념론, 정신분석,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나는 들뢰즈가 자본주의를 비판했다는 점을 놓쳤다. 아마도 당시에는 자본주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자본주의비판과 관련해 영토, 탈영토, 도주선의 개념들을 죄다 오해했다.

 

“‘영토는 기본적으로 동물 세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이 말을 안식처라는 다른 개념으로도 이야기합니다. 영어로는 앳 홈at home’이지요. 정말로 집에 있다는 뜻이라기보다 내 몸뚱이 하나 편안하게 누일 만한 곳에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영토로부터 빠져 나가는 것을 탈영토화라고, 영토로부터 도망치는 경로를 탈영토화의 선이라고 합니다. ‘도주선과 동의어입니다. “

 

한마디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도망가는 것이 도주다. 도주하다 다시 안주하는 것. 이것이 재영토화다. 다른 말로 상대적 탈영토화. 이에 반해, 끊임없이 자본주의로부터 도망치는 것, 이것이 절대적 탈영토화다.

 

8개월 째 백수 상태다. 언젠부턴가 친구들을 만나면 착취당하기 싫어서라는 변명을 한다. 그런데 농담반 진담반이다. 몇 달전에 들어온 일거리를 이 이유 때문에 거절했다. 정말로 착취당하기도 싫고 착취하고 싶지도 않다. 들뢰즈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절대적 탈영토화를 실천하고 있었던 셈. 그런데 이제 도무지 버틸 수가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는 아직까지 도주선을 만들지는 못한 채 버티기만 한 거다.

 

그렇다면 어떤 도주선을 만들어야 할까? 들뢰즈는 여기에 답하지는 않는다. 이런 도주선을 만든 이의 대표적인 예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쓴 와타나베 이타루가 아닐까그는 부패한 경제에 맞서 부패한(발효시킨) 빵을 만들어 판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돈 외에는 이윤을 남기지도 않는다.

 

 

이 책은 꽤나 친절한 들뢰즈 입문서가 될 듯 싶은데, 저자의 유체이탈적인 태도가 치명적인 결함이다. 나는 김재인을 신뢰할 수가 없다.

 

저자는 책에서 그동안 한국의 여러 철학자들이 들뢰즈를 잘못 소개해 왔다고 지적하면서, 번역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들뢰즈를 오해하게끔 만든 번역어들’, 죄다 김재인 본인이 <천개의 고원> 번역했을 때 썼던 역어들이다. (아니, devenir되기로 번역한 사람이 누군데!!) 즉 한국의 들뢰즈 해석에서 가장 큰 오해를 자초한 장본인이 저자 자신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다른 철학자들 욕만 한다.  왜 한국의 학자라는 것들은 솔직하지 못할까. ‘예전에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하면 끝나는 거 아닌가? 들뢰즈 철학이 어려워서 오역한 건 이해할 수도 있다. 불과 서른 세 살에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가. 문제는 불성실하기 때문에 오역한 문장도 수두룩하다는 거다.

 

나는 <천 개의 고원>을 읽으면서 가장 짜증났던 번역어가 ‘affect’였다. 스피노자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기도 한데, 왜 한국 번역가들 죄다 변용태라고 번역하는 걸까. 도대체 변용태가 무슨 뜻인데? ‘정동이란 역어가 그나마 낫긴 하지만 역시나 무슨 뜻인지 오리무중이다. 김재인은 이 책에서 정감이란 역어를 제안한다. 그리고 변용태란 역어도 잘못된 역어는 아니란다. 반성은커녕 오히려 <어느 번역자의 회상>이란 변명의 글까지 실었다

 

시간이 모자랐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억지로 해야 하는 것도 너무 많았다

 

그럼 하지 말아야지.

 

사람들은 나를 몰라봤다

 

이건 거의 정신병 수준의 자뻑 ?

 

고귀한 자는 남을 깍아 내리는 대신 자신을 높인다.’

 

이런......나는 고귀하지 않다구. 그리고 깍아 내리는 게 아니라구!!

 

김재인은 지난 십년간 들뢰즈를 통해 배운 게 고작 정당한 비판으로부터 도주선 만들기인가? 끊임없는 재영토화? 오바이트 생성?

 

하지만 관념론적이거나 신학적이거나 인간주의적으로 되면 좌파로서는 자기모순을 범하는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들뢰즈에게 관심있는 독자라면 들여다 볼 만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들뢰즈를 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반성 없는 착상은 착각이다.

환각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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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2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세히 보니 프랑스어 원서네요^^ 시이소오님 대단 하세요^^

시이소오 2016-08-21 13:45   좋아요 1 | URL
아, 저거 소싯적 때 읽었던 거에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동 ~~~~~~~ 야, 진짜 시이소오 님 열정을 가지고 독서하시는군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천 개의 고원 읽다가 뚜껑 열려서 안 읽었는데... 원서까지 접할 생각을 하시다니..
전 그냥 화풀이로 번역만 냅다 욕했는데.. 제 한계도 모르고 말이죠..


시이소오 2016-08-21 13:46   좋아요 0 | URL
저거 어릴때요. ㅋㅋ

samadhi(眞我) 2016-08-2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아 열정이 묻어납니다. 키야~ 히야~!

시이소오 2016-08-21 13:47   좋아요 0 | URL
어릴 때 왜 저리 무식하게 읽어댔는지요. ㅋㅋ

samadhi(眞我) 2016-08-21 13:49   좋아요 0 | URL
그 소년(?), 청년(?) 참 야무지고 장하네요.

시이소오 2016-08-21 14:09   좋아요 0 | URL
ㅋ 무식해서 저런거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천 개의 고원은 번역에 문제가 많다고 여러 지식인들이 지적한 사항입니다. 나 같은 놈이야 모르니깐 그렇지만 들뢰즈 공부하신 많은 분들이 그 지적을 한 것을 보면....지금도 천 개의 고원을 가지고 있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새물결, 시발.. 이건 대놓고 너무 비싸요. 책들이 전부다.....

시이소오 2016-08-21 13:47   좋아요 0 | URL
번역 개차반에 일조한 사람이 다른 철학자들만 욕해요.

정말 똥 묻은 개가 겨묻은 개 욕한다고.

저도 제가 갖고 있는 책 환불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3:54   좋아요 0 | URL
사실 번역에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을 먹는 장르라고 한다고 하네요. 번역료 형편없잖아요. 의무감으로 번역을 하곤 하는데 그에 비해 경제적 이득은 거의 없고, 잘못하면 욕은 엄청 먹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하여튼 누가 나에게 번역하라고 하면 안 할 것 같습니다.

시이소오 2016-08-21 15:55   좋아요 0 | URL
곰발님 말씀도 일리있죠. 번역가들도 너무 착취당한다죠. 그런데 이 저자는 너무 뻔뻔스러워요.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 게 있는데 저도 김재인의 < 천 개의 고원 > 을 통해서 ˝ - 되기 ˝ 개념을 익혔습니다. 이게 잘못된 개념이라면 뭐가 정확한 건가요 ?

시이소오 2016-08-21 14:12   좋아요 1 | URL
생성이란 역어가 더 정확하다네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구요. 아니, 자기가 그렇게 번역해놓고 아닌척 오리발이네요. 어이가 없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4:22   좋아요 0 | URL
생성이요 ??????????????????!!!!!!!!!

아니 < - 되기 > 개념과 < 생성 > 은 전혀 다른 거 아닙니까. 저는 < 되기 > 개념은 흉내, 모방, 변신 개념으로 이해했거든요. 뭐뭐 되기이니... 그런데 이게 생성이 더 정확하다면 이건 진짜 어이가 없는 거죠... 화딱지 나네ㅛ.

시이소오 2016-08-21 14:31   좋아요 0 | URL
그러니카 모방개념이 아니죠. a가 b가 도ㅣ는게아니라 a와 b가 만나 전혀 새로운 게 생성되는거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4:35   좋아요 0 | URL
맙소사, 충격이다. 결국 그는 정반대 개념어를 만든 거네요.. 그동안 졸라 들뢰지 철학 얘기할 때마다 으스대며 인용하고는 했는데.. 시바.. 다 틀렸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 지금 책장에서 < 천 개의 고원 >> 꺼내서 확인하는데... 좀 다르군요.


여기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 되기(=생성)는 결코 관계 상호간의 대응이 아니다.



되기= 생성이라고 짧은 언급을 한 후에는 계속 되기로 서설하고 있습니다. 즉 되기는 본론인 반면 생성은 각주처럼 쓴 경우죠..대부분은 왜 가로 치거나 각주 취급하면 그냥 넘기잖아요. 그 이후로는 계속 되기로 끝까지 밀어부치니 우린 계속 되기라는 말에 익숙한 것이고...

하여튼 제가 오독한 거 같네요. 오래전에 깜도 안 되는 데 읽어서 과부하가 걸린 상태이므로 이참에 이 책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8-21 15:26   좋아요 0 | URL
확실한건 되기라는 번역은 분명 오해소지가 있어요.

저도 차분히 다시 들뢰즈를 읽어볼까 합니다 ㅋ

물고기자리 2016-08-21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 님의 독서에 박수 쳐드리고 싶습니다. (과거도, 현재도요 ㅎ)

희망도 체념도 없는 극한의 장소에서 치열하게 읽고 사유하시는 것 같아요!

전 더위와 습기 때문인지 아가미로 호흡하고 있습니다^^ 생각 따윈 어떻게 하는 건지 ㅋ

다만 마음으로, 시이소오 님을 (도주선 만들기?!) 응원하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8-21 15:30   좋아요 0 | URL
물고기자리님, 이 도주선이 제게 핵심임을 간파하셨군요. 이거 못 찾으면 또 착취하고 착취당해야 하는 비루한 삶으로 밀려나겠죠. 와타나베 이타루가 존경스럽고 한편으론 부럽네요 ^^

물고기자리 2016-08-21 15:34   좋아요 0 | URL
꼭 해내실 겁니다!!

시이소오 2016-08-21 15:37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위로가 되네요 ^^

단예 2016-08-2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종의 기원도 그렇고.. 이 책도 소장중인데... 매우 불안합니다. 다행스러운건 들뢰즈 1도 모르는 들못알이라는점..

시이소오 2016-08-21 15:34   좋아요 0 | URL
굉장히 쉽게 쓰여져서 이해하실거에요. 자신의 과오를 인정안하고 시치미떼는 저자의 태도가 맘에 안들지만요 ㅎ

소나무 2016-08-2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과를 마음 먹은게 푸코와 들뢰즈 덕분이지요. 지금은 기사를 쓰는 일을 업으로 하고있지만 시이소오님 글을 보면서 천개의 고원 노마디즘, 리좀의 바다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허우적 대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곳에 지쳐 나왔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드네요.

시이소오 2016-08-21 15:35   좋아요 0 | URL
기사를 쓰시다니 멋지십니당 ^^

저도 저기서 얼마나 헤맸던지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웃긴 게 되기(=생성)이라고 하지 말고 생성(=되기)라고 해야 맞는 게 아닙니까. 명백한 오류죠..

시이소오 2016-08-21 15:46   좋아요 0 | URL
아우 헷갈려요 ㅋㅋ

yamoo 2016-08-2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합니다! 김재인의 번역은 도저히 못 읽겠더라구요. 황수영의 <창조적 진화> 읽다 뚜껑열려 영문판 구해서 읽었는데..김재인 10년전 번역은 황수영보다 못한거 같더라구요~ 시이소님의 열정적 독서에 박수를 보냅니다

시이소오 2016-08-21 19:55   좋아요 0 | URL
ㅋ 감사합니다. 저는 창조적진화는 그냥 번역본으로 봤는데 야무님도 대단하시네요 ^^

나타샤 2016-08-2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난서 중의 난서를 원서로~~!!! 대단하셔요^^

시이소오 2016-08-21 19:55   좋아요 1 | URL
아, 난서이기에 원문으로 읽는 장점도 있거든요 ^^

깊이에의강요 2016-08-21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저의 편협한 독서를 반성하게 만드시는...

시이소오 2016-08-21 19:56   좋아요 0 | URL
ㅋ 저 역시 편협해용 ^^

수이 2016-08-21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프랑스어 아베쎄데 떼고 시이소오님처럼 원서 읽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가능할지;;;;

시이소오 2016-08-21 22:09   좋아요 0 | URL
야나님, 가능합니다.
응원할게요 ^^

nomadology 2016-08-2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읽어보고 싶으나 실패하는 책입니다. 근데 시이소오님의 이 한마디가 불을 켜주네요. ˝고작 이 얘길 하려고?˝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8-21 23:04   좋아요 0 | URL
ㅋ 개념이 어렵지 철학자들의 사유야 기존 철학에서 벗어날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불을 지피시길 ^^

cyrus 2016-08-22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말로 옮기는 것도 어렵다는 들뢰즈를 원서로 도전하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

시이소오 2016-08-22 15:32   좋아요 0 | URL
원서로 도전만했습니다. 이해는 못 했구요 ㅋ

오거서 2016-08-2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를 읽어내려면 행간과 여백에 줄을 긋고 나만의 기호를 달면서 안간힘을 쓸 수 밖에 없지요. 시이소오 님이 소싯 적에 부단히 노력하였음을 알겠고요, 페이소스를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시이소오 2016-08-25 13:03   좋아요 0 | URL
페이소스는 의외네요. 들뢰즈에 대한 애증때문일까요? ㅎㅎ

오거서 2016-08-25 13:14   좋아요 0 | URL
의외라고 하시면 제가 잘못 봤겠죠… ^^;;

시이소오 2016-08-25 13:31   좋아요 0 | URL
페이소스가 있으면 좋겠어요 ㅋ

2016-08-27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8-28 04:46   좋아요 0 | URL
저도 고미숙 쌤글이 떠오르네요. 니키노님, 반갑고 위로 감사합니다 ^^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 전 세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기억의 위대한 힘
조슈아 포어 지음, 류현 옮김 / 갤리온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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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님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으니, 시를 암송하는 수업도 하신단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이후, 시 암송에 도전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숫자를 암기하는 방법은 나오지만 시를 암송하는 방법은 없네. 메모리 그랜드 마스터인 에드 쿡은 밀턴의 <실락원>을 통째로 외운다. 저자인 조슈아 포어가 포토그래픽 메모리' 때문에 가능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에드 쿡이 말했다.

 

포토그래픽 메모리는 신빙성 없는 미신입니다. 그런 게 있을리 없죠. 사실 제 기억력은 보통 수준입니다.”

 

전 세계 기억력 그랜드 마스터는 포토그래픽 메모리같은 건 없다고 말하는데, 이지성은 왜 자신은 포토그래픽 메모리가 있다고 우기는 걸까. (책을 팔만큼 팔았으면 제발 사기 좀 그만치고 다녀라.)

 

쿡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기억력 마스터들은 누구나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기자인 조슈아 포어는 자신을 실험삼아 일년 동안 기억력 훈련에 돌입, 일년 후 전미 기억력 챔피언쉽에 참가한다. 결과는

우승이었다. 심지어 조슈아 포어는 스피드 카드에서 신기록을 세운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읽어보니, 책에는 시를 암송하는 방법이 있었다. 내 기억에는 없었던 것. (이런 걸 뇌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나 기억에 도움이 될까 싶어 독후감을 남기기도 하지만 뒤돌아서면 잊어 버린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

 

기억의 궁전.

 

전 세계 기억력 마스터들은 전부 다 기억의 궁전을 활용한다. 다른 말로 장소법

 

 

기억의 궁전 만들기

 

나에게 친숙한 공간 선택하기. ; 어린 시절을 보낸 집

 

2. 기억해야 할 단어의 이미지 만들기 :

 

이미지는 기억할 대상과 같거나 비슷하면 좋다. , 재미있고, 외설스럽고, 색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모호하지 않고 동적이면 더 좋다. 뇌는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기 때문에 기이한 이미지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다. 거기에 다양한 감각 정보를 결합하면 금상첨화.

 

3. 기억의 궁전에 저장하기

 

공간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구석구석에 이미지를 심어 둔다. 이때 각 장소는 너무 밝아도 너무 흐릿해서도 안 된다. 또 그림자가 이미지를 흐려서도 번쩍거리게 해서도 안 된다. 이미지 사의의 간격은 서른 걸음 정도가 좋다.

 

4. 심어놓은 이미지 찾기

 

아침에 궁전을 만들었다면 저녁에 궁전을 거닐어 보고 다음날 오후에 또 1주일 뒤에 거닐어보라. 그림을 그리듯 선명하게 각인될 것이다. 머릿속에 공간이 새겨지면 저장된 내용을 떠올리고 싶을 때는 언제든 기억의 궁전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시 암송하는 법

 

1. 키케로의 방법

 

키케로는 연설문을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은 원고를 통째로 암기하기 보다는 사물 기억으로 요점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연설가에 대하여>에서, 연설을 앞둔 연설가는 주요 화제별로 이미지를 그리고 그것을 기억의 궁전에 심어 두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2. 운율이 기억을 돕는다

 

뇌는 반복적이고, 리듬이 있고, 운율이 있고, 무엇보다 쉽게 시각화 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잘 기억한다.

 

음유시인들의 기억술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인 것은 노래다. 어떤 것을 노래로 만들어 계속 흥얼거리고 다니면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3. 이미지


<헤렌니우스에게 바치는 수사학>의 저자는 시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은 행을 두세 번 되풀이해 읽고 나서 관련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지할 수 없는 것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접속사, 관사를 이미지화 할 수는 없다. 기억력 마스터인 군터는 그래서 쉽게 시각화할 수 없는 단어 200개를 골라 자기만의 이미지 사전을 만들었다.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는 단어를 이미지화하는 군터의 방법은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발음이 비슷한 단어나 동음이의어로 대체해 시각화 하는 것이다.

 

4. 감정

 

시 암송에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던 군터가 15세의 코린나 드라슐에게 패배했다. 그녀의 암송 방법은 감정이었다.

 

코린나 드라슐은 시를 작은 덩어리로 나누고 각 덩어리에 일련의 감정을 부여한다. 단어와 이미지를 연결하기 보다는 단어에 감정을 불어넣는 것이다.

 

저는 글쓴이가 어떤 감정 상태이며 무엇을 의도하는지 느끼고, 그가 행복한지 슬픈지 상상합니다.”

 

메이저 시스템

 

숫자를 기억하는 방법이다. 1648년경 독일의 예술사가이자 고고학자인 요한 빙켈만이 개발한 것으로 숫자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간단한 코드다. 음성은 다시 단어로 전환되고, 단어는 이미지로 전환돼 기억의 궁전에 저장된다. 작동방식은 다음과 같다.

 

 

0 1     2 3  4 5  6    7     8     9

S T,D N M R L SH, K,G F,V P,B

 

PAO 기법

 

원주율 10만 자리나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선수 개개인의 평균 타율같이 긴 숫자를 암기할 때 지력 선수들은 기억 마니아, 루빅큐브의 달인, 수학 천재 등을 위한 온라인 포럼인 월드와이드 브레인 클럽에서 사람- 행동-대상(Person action object) 또는 간단히 머리글자만 따서 PAO로 알려진 기법을 쓴다.

 

PAO 시스템은 00에서 99까지 모든 두 자리 숫자를 어떤 사람이 어떤 대상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 이미지로 나타낸다. ....이 시스템은 00에서 999,999까지 숫자마다 고유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서 좋다.

 

에드는 밀레니엄 PAO’법을 개발, 0에서 99,9999,999까지 숫자별로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다고 당장에 기억력이 향상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 소개된 여러 방법들을 훈련하면 분명 기억력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역시나 뭐든지 훈련과 연습 말고는 답이 없다.

 

한계란 없다. 정상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넘어서려고 노력해야 한다.”

 

- 이소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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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11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한 권을 다 읽고, 서평을 작성하기 전에 시이소오님처럼 인상 깊거나 서평 글감으로 쓸 만한 문장들을 발췌합니다. 그리고 발췌한 문장을 한글 프로그램에 입력해서 따로 저장해둡니다. 발췌 문장 정리한 파일을 참고하면서 서평을 작성할 때 편리해요. 이 과정도 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편이라 가끔 귀찮아질 때가 있지만, 발췌 문장을 정리해두는 것이 좋더라고요. 문장 정리 안 하고, 서평 작성하면 읽었던 내용에 대한 기억을 더듬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요. ^^


시이소오 2016-08-11 17:19   좋아요 1 | URL
저는 모든 책을 다 발췌하진 않습니다만, 독후감이 안써질경우 발췌하다보면 어거지로 쓰긴 하더라구요. ^^
 
아름다움의 구원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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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은 항상 자신이 쓴 과거의 작품들을 사뿐히 즈려밟고 나아간다. 한병철의 신작을 읽을 때마다 그가 쓴 과거의 저작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한병철이야말로 실을 잣고 새로운 연결의 길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루스트는 삶 자체가 하나의 관계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삶이 사건들 사이에 끊임없이 새로운 연결 끈을 잣고” “조직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이 끈을 두 배로 늘여 우리 과거의 아주 사소한 지점과 모든 다른 지점들 사이에 기억의 풍성한 망을 형성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연결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라고 믿는다.

 

p 108.

 

한병철이 전작인 <에로스의 종말>에서 에로스를, 사랑을 재발명하려했다면 <아름다움의 구원>에선 미를, 아름다움을 재발명하려 한다.

 

현대의 아름다움에 공통된 속성이 있다면 무엇일까? 한병철에 따르면, 매끄러움이다. 제프쿤스의 조형물들, 아이폰, 브라질리언 왁싱. 매끄러운 것은 우리를 상처 입히지 않는다. 즉각적인 만족을 준다. 좋아요의 예술이다. 오늘날에는 심지어 추한 것도 매끄럽다. 현대의 포르노그래피들. 데이터는 포르노그래피적이다. 내면성도 없고, 뒷면도 없고, 애매함도 없다.

 

매끄러운 것은 저항하지 않는다. ‘부정성따윈 없다.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비동일성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는 은폐된 것이고 우리를 상처입히는 것이며 재앙과도 같다. 미는 투명하지 않다. 투명한 미란 형용모순이다. 아름다운 대상은 덮개에 싸여 있을 때에라야 아름답다. 벌거벗겨진 대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글 역시 마찬가지다. ‘은유로 지어놓은 아름다운 옷은 글을 에로틱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것은 우리를 상처입힌다. 현대의 긍정사회는 상처의 부정성을 회피한다. 심지어 사랑조차. 오로지 좋아요가 지배하는 사회. <말테의 수기>에서 릴케는 본다는 것을 상처로 묘사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의미에서 본다는 것은 언제나 다르게 보는 것을, 다시 말해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처를 피하고자 한다면 다르게 볼 수도 없다. 본다는 것은 상처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동일한 것이 반복될 뿐이다. 감수성이란 상처 입을 수 있음을 뜻한다. 상처란 보기의 진리계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상처가 없으면 진리도, 나아가 지각조차도 없다. 동일자의 지옥 안에는 진리가 없다.

 

p 54.

 

고통없이, 상처없이 문학도 예술도 없다. 고통과 상처가 없다면 동일한 것만이 반복될 뿐이다.

 

바르트는 일찍이 사진 이론에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에 대해 말했다. (punctum을 이 책처럼 풍크툼이라 표기하는 게 원음에 더 어울리겠지만, 단어가 내포한 의미를 고려해보자면 푼크툼이 더 적절해 보인다. 푼크툼은 나를 찌르는 것이기에.

 

스투디움은 학습이라 불린다. ‘to love’가 아니라 ‘to like’로 표현되는 것. 스투디움은 쾌감도 아니고 고통도 아니다. 단지 피상적인 관심일 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이웃들끼리의 관계맺음이랄까.

 

스투디움과 달리, 푼크툼은 나를 찌르고 나를 상처 입히고 나를 전율시키는 것이다. 푼크툼은 투명하지 않다. 그렇다고 푼크툼은 쇼크처럼 요란한 것도 아니다. 푼크툼은 고요히 나를 찌르는 것이다. 푼크툼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눈을 감고 나서야, 기억 속에서 사후에 드러난다.

 

한병철은 칸트를 인용하며 재앙(Desaster)과 별이 아닌 것 Unstern(des- astrum), 비성을 연결한다. (‘비성非星’, 참 짜증나는 역어로다) 칸트는 모든 것을 주체의 내면속에 가둔다. 심지어 창공 위의 반짝이는 별까지도. (한병철은 칸트를 까고 주로 헤겔에 기댄다. 나는 반대. 나는 안티헤겔자.)

 

한병철은 칸트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대립되는 형상으로 모리스 블랑쇼의 텅 빈 하늘을 제시한다. 블랑쇼는 어린 시절, 하늘을 바라보다 어떤 돌연한 깨달음을 얻는다. “하늘의 갑작스럽고 절대적인 공허가 엄청난 매혹과 기쁨으로 아이를 급습하여, 한순간 아이는 눈물로 가득 찼다.” (왠지 이 심정이 이해가 간다.)

 

, 칸트의 별이 빛나는 하늘을 통해 우리는 주체로 회귀한다. 반면 블랑쇼의 텅빈 하늘은 우리를 주체로부터 떨어뜨린다. ‘별이 아닌 것이다. 재앙. 재앙의 미학은 만족의 미학이 아닌 사건의 미학이다. ‘아름다움은 별들의 질서를 교란하는 재앙이다

 

<두이노의 비가>에서 릴케는 이렇게 노래했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가까스로 견뎌낼 수 있는 끔찍한 시작일 뿐” (‘아름다움은 우리가 가까스로 견뎌낼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일뿐이란 번역이 더 어울리겠다)

 

아도르노 역시 끔찍한 것의 부정성이 미에 본질적이라고 보았다. 미는 또한 부서지기 쉽고 깨지기 쉬운 것이다. 좀비는 아름답지 않다. 오늘날 건강과 매끄러움을 추구하는 우리는 좀비로 변한다.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살기에는 너무 죽어 있고, 죽기에는 너무 살아 있다.”

 

칸트는 도덕적 미 혹은 미의 도덕을 미의 이상으로 보았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미는 도덕과 개성을 표현할 때만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현대에 미는 섹시함에 밀려나고 있다. 개성없는 인간이 현대의 이상적인 소비자다. “사람이 개성이 없을수록, 매끄럽고 뱀장어처럼 미끄러울수록 더 많은 친구를 갖게 된다. 페이스북은 개성없음의 시장이다.”

 

헤겔에게는 미는 진리이자 자유다. 미는 자기목적적인 것이다. 미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미는 따라서 소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미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미는 우리를 관조적인 머무르기로 초대한다.

 

이상적인 정치는 미의 정치. 미의 정치는 또한 자유의 정치다. 시스템의 하수인인 된 정치가는 자유인이 아니라 단지 노예다.

 

영어에서의 페어fair정의롭다는 뜻과 함께 아름답다의 뜻도 지닌다. 정의는 아름다운 것이다. 미 앞에서 주체는 뒤로 물러선다. 타자를 위해 공간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미다. 정면이 아니라 측면의 위치에 서는 것. 반면 소비자는 타자를 위해 옆으로 물러나거나 후퇴하지 않는다. 섹시함 역시 측면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 앞에서 우리의 의지는 후퇴한다. 미는 우리를 시간 안에 머무르게 한다. 시간 안에 머무름은 우리를 타자로 향하게 한다. ‘예술의 과제는 타자를 구원하는 데 있다. 미의 구원은 타자의 구원이다니체에 따르면 최초의 예술은 축제의 예술이었다. 노동은 시간의 질을 고양시켜 주지 않는다.

 

플라톤에게 미는 경험이라기보다는 재인식이다. 기억으로서의 미의 경험은 소비되지 않는다. ‘미는 이야기한다. 미는 진리와 마찬가지로 내러티브가 있는 사건이다.’ 미는 관계의 사건이다.

 

에로스는 일찍이 아름다움 속에서의 산출이라 불리웠다. 미는 사유를 추동한다. 에로스 없는 사유는 단순한 노동일뿐이다. 미는 존재의 시적 이름이다. 미는 존재자에게 새로운 진리를 산출하게 한다.

 

미 자체는 영원히 존재하는” (aei on) 것이다. 포스트모던이 휩쓰는 세계에서 한병철은 미의 이상을 구원하려한다. 미는 구속력이 있는 것이고 기준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에로스는 구속력이 있는 것을 향한 추구다.’ 바디우는 이 추구를 충실함이라 불렀다.

 

신이 죽으면서 절대주의는 종말을 고하고 상대주의의 세계가 열렸다.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소비지상주의가 판을 치며 예술은 더 이상 미의 추구가 아닌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팔리는 것이 예술인 시대다. 내가 보기에 한병철은 고전주의자에 가깝다. 나 역시.

 

고전주의자 입장에서 현대 예술은 죄다 쓰레기다. 제프 쿤스의 쓰레기는 오늘날 가장 비싼 값에 팔린다지. 부자들은 왜 이런 쓰레기를 비싼 가격에 주고 사는 걸까? 쓰레기기 때문이다. 값진 것에 정당한 값을 치른다면 부는 과시될 수 없다. 쓰레기를 사야만 부는 과시될 수 있다. 제프 쿤스는 조형물을 직접 만들지도 않는다. 조수들 시켜 만든다는데, 조영남도 억울할만하다. 애초에 조영남 같은 쓰레기의 쓰레기를 돈 주고 사는 사람들이 쓰레기일 뿐. 

 

미는 은폐이고 상처이고 고통이고 진리이자 자유, 정의이며 선이고 기억, 또한 타자를 구원하는 것이다.

 

에로스를, 미를 구원하려 한 한병철의 사유는 이제 어디로 나아갈까? 미 자체가 영원히 존재하는, 아에이온이라면 그 기준을 다시 세우려 하진 않을까. 혹은 타자를 구원하는 미? 한병철은 데이터의 무더기에 대비하여 내러티브’, ‘사건을 강조했다. 앞으로 타자를 구원하는 내러티브를 사유하려 할까. 어찌되었건, 그가 풀어놓는 실이 어디로 나아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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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20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톤도 다음과 같이 말했죠. 공포는 아름다움의 첫 번째 현존이다.

시이소오 2016-07-20 13:50   좋아요 0 | URL
릴케가 살짝 비튼거네요 ㅋ

마립간 2016-07-20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시오소오 님.
시이소오 님의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인용 글을 찾다가 읽지도 않은 책 ≪아름다움의 구원≫ 구절을 제 감상문에 인용하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7-20 16:35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반갑습니다 ^^
제가 쓴것두아닌데 얼마든지요. 어느 대목을 인용하실지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