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툽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팩 초프라는 <완전한 삶>에서 제 정신으로 믿기 힘든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태어나기 이미 몇 백년 전에, 어떤 이가 나디라고 하는 뭉치에 자신의 삶을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그 점성학 학교에 가서 내 나디를 뒤져보면 수도승은 이렇게 말하겠지.

 

당신은 기록되지 않았다.’ (너는 디팩 초프라가 아니잖아!)

 

마크툽Maktub’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라는 뜻이다. ‘신의 섭리를 은유한다? ‘신의 섭리 따위 내 알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이는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예전에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을 읽고 현실에 적용했다가 개 작살 난 적이 있다. 주제 파악을 못 한 게 재앙의 원인이었을까.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었다. (, 그 당시 코엘료만 읽지 않았더라면경계심을 일깨우는 문구는 남겨두고 자기만족에 빠져들게 하는 히로뽕 경구는 과감히 버리자.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결국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가져라. 세상이 너희 주변에서 움직이도록 내버려두고, 스스로에게 놀라움을 느끼는 기쁨을 누려라.

 

물건에는 고유한 에너지가 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고인 물이 되어버리고, 그때부터 집은 곰팡이와 모기가 살기 좋은 곳이 된다. 물건들의 에너지가 자유롭게 발산되도록 해야 한다. 오래된 물건들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새로움이 차지할 공간이 없어진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박탈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행복은 빼앗을 수 없다. 그리고 그 행복이 그를 구원한다.

 

내가 언젠가 죽을 거라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상대적이다. 꿈을 좇을 때 비참하고 불행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의 기쁨이다.

 

실수할까 봐 두려워하면 평범함이라는 성 안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그 성문을 부숴버릴 때 비로소 자유를 향한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모든 길은 한곳으로 통한다. 그러나 너만의 길을 선택해라. 그 길을 끝까지 가라. 모든 길을 두루 편력하려 하지 마라.

 

다음은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쓴 글이다.


나는 끊임없이 다시 태어난다. 아침마다 삶을 다시 산다. 그런 식으로 하루를 시작한 지 80년이다. 그것은 타성에 사로잡힌 기계적인 행동이 아니라, 내 행복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 피아노 앞에 앉는다. 전주곡 두 곡과 바흐의 푸가 한 곡을 연주한다. 그 음악들이 내 집을 축복으로 가득 채운다. 그것은 삶의 신비 그리고 인간의 일부를 이루는 기적과 접촉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80년 동안 이 습관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가 연주하는 음악은 결코 똑같지 않다. 음악은 항상 새롭고 환상적이고 믿을 수 없을만큼 굉장한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준다


(나라면 음악의 자리에 책을 놓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은 위대하지 않다 - 개정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유대교와 나치즘의 공통점이 뭘까? 자신들의 에 대한 우월성. 자신들만이 선택받았다는 착각이다. 이러한 허구를 믿는 능력이 불화와 폭력의 근원이 되었다. 이런 정신 나간 믿음 때문에 나치는 유대인을 학살했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했고, 학살하고, 학살 할 것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사람들에게 환상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종교를 폐지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 마르크스.

 

균형 잡힌 독서를 위해 이 책과 김용규의 <>을 같이 읽었다. 무신론과 유신론은 논리 차원에서 도무지 게임이 안 된다. 800페이지가 넘는 <>에서 주장하는 것은 결국 신앙이다. 신에 이르는 길은 이성이 아니라 믿음이다. 그렇다면 그 오랜 세월동안 신학자들은 뭐한답시고 신을 학문화했을까. 신학이란 온갖 논리적 오류와 억측이 난무하는 댄스장이거늘.


종교가 필요악이라고 생각했고, 종교를 없앨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없앴으면 좋겠다. 책은 유쾌하면서도 불쾌하다. 유쾌함은 히친스의 문체 때문이요, 불쾌함은 책에 담긴 내용 때문이다. 끝까지 읽기 괴로울 정도다. 히친스는 종교가 저질러온 온갖 만행들을 적나라하게 까 발긴다. 기독교, 카톨릭, 그리스 정교, 유대교, 불교, 온갖 사이비 종교들까지. 우리가 익히 알던 성인(聖人)(칼뱅, 테레사 수녀, 달라이 라마 등)과 위대한 작가들(T.S.엘리엇, 조지 엘리엇 등)의 민낯을 보는 일도 괴로운 일이다. ‘내가 이런 자들을 존경해왔단 말인가얼굴이 화끈화끈 거린다.

 

그렇게 높은 악의 고지로 인간을 밀어가는 것은 종교이다.


-루크레티우스, <만물의 본질에 대하여>

 

종교는 생명을 죽인다. 고로 악이다. 이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아 도무지 어떤 예를 들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세르비아(그리스 정교)와 크로아티아(로마가톨릭)의 전쟁이 종교 때문이라는 걸 몰랐다. 르완다에서 벌어진 유혈 사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투족(가톨릭)은 투치족(개신교)들을 대량 학살했다. 무려 백 만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이에 대해 교황은 사과하지 않았다.

 

또한 인류에게 재난이 닥칠 때마다 목사들은 이브에게 재난을 초래한 뱀 마냥 끊임없이 사악한 혓바닥을 놀리기 바쁘다. 911 사건이 벌어진 몇 시간 후 팻 로버트슨 목사와 제리 폴웰 목사는 동성애와 낙태를 묵인한 세속적인 사회에 신이 심판을 내린 것이라 주장했다. 세월호 학살에 대해 한국 목사들은 뭐라고 했을까.

 

나라를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그래도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여러분 아시지만 한국은요. 이번에 정몽준씨 아들이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을 향해) '미개하다'고 했잖아요. 사실 잘못된 말이긴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거든요."

 

- 서초동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

 

"가난한 집 애들이 설악산이나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가면 될 일이지, 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 이런 사달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백정이다


- 한국 기독교 협회 부회장 조광작 목사

 

(인용을 하기 위해 검색해봤더니 너무 많아서 엄두가 안 난다. 목사들 망언으로 책 한 권을 쓸 정도다. 이쯤에서 그치자.)

 

또한 종교는 언제나 전쟁을 지지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교회는 복음을 전할 기회라고 말했다. 일본의 불교는 대자대비 정신을 발휘하여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을 지지했다. 일본의 침략은 많은 사람이 살 수 있게 한 명을 죽이는 자비의 무력이었다.

 

가톨릭은 파시즘, 나치즘 등에 협력했다. 특히나 바티칸은 전쟁이후 나치 전범들을 도피시키는 데 총력을 다했다. 교회가 빼돌린 전범들은 독재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사실 전체주의는 종교의 변형일 뿐이다. 히친스는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히친스에 따르면 북한은 <1984>의 소설속의 나라의 현실화된 모습이었다. 히친스는 미국 극우파에 거액을 기부하는 통일교의 문선명을 연상한다. 히친스는 두 개의 한국에서 모두 아버지가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만약 한 노인네가 사내아기의 고추를 빨다가 들킨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온갖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유대교 분파인 하시디즘 그룹은 이런 모헬, ‘할례 집도자가 있다. 2005년에 모헬을 수행하다 두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미개한 종교라고? 단지 하시디즘만 그럴까? 뱅골에서 소아마비 백신 무료 접종으로 아이들의 상황이 개선되고 있었다. 이슬람교도들은 백신 접종이 음모라고 말했고, 소아마비가 이미 박멸된 나라까지 소아마비가 다시 되살아났다.

 

크리스천 사이언스신도들은 자녀가 수혈이 필요한데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환상에 빠져 수혈을 허락하지 않았다. 인도의 힌두교 신자들은 어린 여자아이를 결혼시킨다. 시집 식구들은 지참금이 적을 때 어린 신부를 산 채로 태워 죽인다. 바티칸과 천주교 교구들은 엄청난 규모의 어린이 강간 및 고문 사건의 책임을 인정했다. 교회는 오랫동안 콘돔 사용을 반대해 왔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부주교인 라파엘 라노 시푸엔테스는 신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콘돔 사용에 반대한다. 남자와 여자의 성적인 관계는 반드시 자연스러워야 한다. 개가 다른 개와 성관계를 맺으면서 콘돔을 사용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종교란 이런 것이다.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고, 관용을 모르며, 인종차별주의, 부족주의, 편협성과 손을 잡고, 무지라는 옷을 입고, 자유로운 탐색을 적대시하고, 여성을 경멸하고, 아이들에게는 강압적인, 조직화된 종교는 양심에 커다란 짐을 지고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죄목에 추가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종교가 세상의 파멸을 고대한다는 것. ”

 

히친스에 따르면 인간에게 필요한 건 종교가 아니라 새로운 계몽이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상상 속의 것이든 진짜이든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진리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능력이 점점 커지고, 계속해서 더 완벽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기게 된다. 소유는 사람을 수동적이고, 게으르고, 오만하게 만든다.

 

만약 하느님이 오른손에는 모든 진리를, 왼손에는 비록 끊임없이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꾸준히 부지런하게 진리를 추구하려는 열정을 감춰 쥐고서 내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겸손하게 왼손을 택할 것이다.

 

고트홀트 레싱, <안티 괴제>

 

의심하라.” 이것이 히친스의 제안이다.

 

사이비 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 전체주의, 파시즘, 나치즘, IS 등은 세 단계 구조로 작동한다. 첫째, 나는 믿는다. 둘째, 나는 믿으므로 나는 선택받았다. 고로, 나는 우월하다. 셋째, 믿지 않는 너, 열등한 너는 죽여도 좋다. 죽어야 한다.

 

종교의 가르침은 사랑과 자비다. 역사들 돌이켜보면 사랑과 자비는 온데간데없고 폭력과 배척, 살육만이 

강물처럼 흘러넘쳤다.

 

애초에 믿지 않게 하면, 혹은 선택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면 폭력과 살인을 그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믿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얀테의 법칙>을 하루에 한 번씩 암송하도록 하는 건 어떨까?

 

1.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지 말라

2.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지 말라

3.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지 말라

4. 네가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믿지 말라

5.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고 믿지 말라

6. 네가 다른 사람보다 위대하다고 믿지 말라

7. 네가 무엇을 잘한다고 믿지 말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9. 누가 혹시라도 너에게 관심을 갖는다고 믿지 말라

 

믿는 자들은 책상 앞에 <얀테의 법칙>을 붙여 놓고, 종교에 적대적인 책들을 읽어 보자. 이 책을 읽고도 믿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영혼의 치유가 필요하다. 정신병원에 가야한다.

 

무언가를 믿고 싶어 한 세월을 반성한다.

 

나는 믿지 않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4-26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6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6-04-2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는 걸 아는 걸로 착각하는 게 가장 위험한 거죠. 그 모든 학살이 종교가 근거없는 믿음의 이름으로 행했다는 걸 늘 염두에둬야겠어요. 시이소오님글은 아 뭔가 통쾌하고 중독성이 있어요 ^^

시이소오 2016-04-26 17:35   좋아요 0 | URL
중독성이 있다뉘 ㅋ
`영혼의 히로뽕`은 아닐런지요? ^^;
 
왓칭 2 Watching 2 - 시야를 넓힐수록 마법처럼 이루어진다 왓칭 시리즈
김상운 지음 / 정신세계사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관에서 책을 노려보며 고민했다. ‘이걸 읽어 말어? 분명 시크릿 풍에 사이비 과학을 버무렸을텐데.’ <왓칭>이 베스트셀러였다니! 나는 나만 읽은 줄 알았다. <왓칭 투>? 대개 그렇듯 투는 본편만 못하기 마련 아닌가. 별 기대를 안 했는데 허걱,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 안 읽었으면 어쩔뻔.

 

책에 나오는 내용을 전부 제 정신으로 믿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긴 하다.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하시길. 예를 들자면 나는 양자역학으로 거시계를 설명하는 저자의 방식을 받아들이진 않는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 중엔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지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산재해 있다.

 

장담컨대 어디서도 듣도 보던 이야기들을 수십 건 만날 것이다. 고가 후미타케는 책을 쓸 때 알려진 내용 70%에 독자들이 모를 만한 내용 30% 배분이 적당하다고 했다. 이 책은 내가 몰랐던 내용만 90% 이상이다.

 

나는 모른다. 내가 나를 불가지론자라고 말하는 것은 칸트의 물자체처럼 알 수 없다의 의미라기보다는 나는 모른다의 뜻이다. 칸트보단 소크라테스에 가깝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실제로 있나? 외계인이 있나? 나는 모른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지. 종교의 부도덕과 비리에 염증을 느끼다 보면 뭔가 다른 것을 찾기 마련이다.

 

한 때 깨달음을 얻겠답시고 온갖 영성을 찾아다녔고, 영성 관련 책들도 잡다하게 읽었다.

오쇼, 마하리쉬, 구르지예프, 호오포노포노, 람타, 리얼리티 트랜서핑, 톨레, 디팩 초프라, 신나이, 기타등등 기타등등. 언급하자면 끝이 없겠다. 결론은.....

 

에이, 더러워서, 윤회해, 윤회해! 안 깨달아! 못 깨달아!”

 

아무리봐도 깨달음이란 감히 나 따위가 도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사토리는 있을 수 있겠지. 한 순간의 일시적인 깨달음 말이다. 내가 생각한 깨달음이란 매 순간 깨달음이다. 이건 우리 같은 일반인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낙타 수 억 마리가 바늘 귀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10억분의 1의 확률이랄까.

 

김상운은 책 프롤로그에 하늘에 뜬 비취색 띠를 보고, 황금 고리를 보았다고 주장한다.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아마 경험담일 것이다. 영성단체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이상한 거 보는 사람 정말 많았다. 분홍색, 연두색, 보라색 등등 해파리처럼 생긴 것들이 둥둥 떠다니는 걸 본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 말을 믿는다. 과학자들 입장에선 일종의 착시, 환영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무언가를 봤다는 건 분명하다. 심지어 나도 보았다. 하늘에서 춤추듯 떨어지는 빛 알갱이들. 나는 한때 촛불 명상시 5초면 트랜스 상태로 들어갔다. (지금은 해봤더니 안 된다. 영혼에 때가 끼었기 때문일까.)

 

문제는 무언가를 봤는지 안 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보면 무엇하나?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게 보인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무언가가 보이고 들릴 때부터 오만과 자만에 빠진다. 히브리스와 수페르비아. 선택받았다는 착각. 기독교의 가장 비열한 용어 중 하나는 선민의식이다. 교만한 사람은 착할 순 없지만 자만한 사람은 착할 수 있다.

 

김상운은 눈에 보이는 나눈에 보이지 않는 나가 있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나가 육신에 갇혀 있다면(셀프1) ‘눈에 보이지 않는 나는 무한한 공간으로 퍼져 나가면서 능력도 무한히 커진다고 주장한다.(셀프2)

9.11 테러 당일, 네 대 여객기의 좌석 점유율은 31%였다고 한다. 평소 좌석 점유율은 70~80%. 심리학자 콕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형 사고가 난 열차 28대의 승객은 같은 시각 다른 열차보다 승객들이 훨씬 적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사고를 예감하는 걸까?

사고로 죽은 사람들과 사고를 피해간 사람들은 무슨 차이가 있길래? (그건 김상운도 모르는지 언급이 없다.)

 

1980년대의 벤자민 리벳의 실험은 여러 뇌과학 책에서 접해 낯설지 않다. 리벳의 실험을 통해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기 0.5 전에 두뇌에 이미 신호가 들어온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어찌나 놀랐던지? 인간은 정말로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는 걸까. 컴퓨터 시뮬레이션일까.

그런데, 최근 헤인즈 박사에 따르면 이제는 최대 10초 전에 두뇌에 신호가 들어왔다. 더 놀라운 건 아이첼레 박사의 실험에 따르면 이제는 30초 전에 실수를 감지하는 신호가 간다는 사실이다.

 

왜 이리 빨라진 거지? (역시 거기에 대해서 저자는 묵묵부답이다.)

아무튼 김상운의 주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셀프2가 우리에게 신호를 보낸다고 주장한다.

 

공간을 이용해 창의력을 높이는 방법

 

실험에 따르면 불과 5분 동안 우주 사진을 봐도 창의력이 높아진다. 김정운의 <에디톨로지>에도 소개된 내용으로 천장이 높은 방에서도 창의력은 높아진다. (호텔 로비에 가서 리뷰를 쓸까?) 또한 앉아서 생각하는 것보다 러닝머신 위를 걸으면서 생각할 때 창의성이 높아졌다. 자유롭게 걸을수록, 몸을 더 움직일수록 창의성은 높아졌다.

 

창문이 없는 방보다 창문이 있는 방에서 창의력이 높아진다. (이런 실험결과를 몰랐을텐데도 고시원 주인들은 창 있는 방에 프리미엄을 붙이다뉘! 놀라운 직관력, 창의력 캡숑!!)

 

또한 커피숍이나 도심을 걷는 것보다 녹지가 있는 공원을 걸었던 사람들이 창의력이 높았다.

(산책합시다)

 

천장이 높고, 녹지 공간이 있을수록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사무실에 직원 수가 많을수록 병가율은 높아졌다.

또한 협상을 할 때 멀리 떨어지면 떨어져 있을수록 협상 성공률이 높았다.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에서도 소개된 사례기도 한데 외국에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의 창의성이 높았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눈이 번쩍 뜨일 사례. 카프카의 단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었을 때 패턴 인식 능력이 높아졌다.

 

살아남으려면 시야를 넓혀야 한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조사에 따르면 연간 소득 31,000달러 이하에서는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상에서는 이웃들과의 소득 격차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특히나 가장 친한 친구와의 소득격차를 가장 괴로워했다. 타워 팰리스 사는 친구가 있다. 잘 안 만난다. 멀리 떨어져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시간적 시야를 넓히면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한다. ‘시간적 시야란 지금 뭘 할지를 결정할 때 시간적으로 얼마나 길게 내다보느냐 하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시간적으로 수십 년 뒤의 일을 내다보고 현재의 일을 결정했다.

 

심리학자 셀리그먼과 더크워스의 실험에 따르면 아이들의 미래 성적을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은 IQ가 아니었다. 자제력이었다. 다른 실험에 의하면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한 그룹보다 최종 목적을 생각한 그룹이 자제력이 높았다.

 

아직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읽진 못했다. 단지 러셀 로버츠의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만 읽었다. 그 책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애덤 스미스가 말한 공정한 관찰자개념이었다. 스미스에 따르면 우리는 공정한 관찰자가 있기에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의 시각으로 볼 경우가 아니라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각으로 볼수록 더 현명해지고 훨씬 더 협조적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로빈슨의 실험에 따르면 어린 나의 눈으로 질문에 답할 경우에도 창의력은 높아졌다.

 

시야를 동물로 까지 넓히면 어떻게 될까?

건축가 믹 피어스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 이스트게이트 센터를 지었다. 이 건물은 세계 최초로 에어컨 없이 내부 온도를 24도로 일정하게 유지한다. 믹 피어스는 흰 개미로부터 배웠다.

 

네덜란드의 호프는 일명 얼음인간이다. 그는 북극 얼음을 깨고 수영을 한다. 보통 사람은 불과 몇 분 만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데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호프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적 수행법인 툼모(내면의 불)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명상을 통해 미주신경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킨다.

 

신의 요한이란 사람은 메스나 칼로 눈을 긁어 불치병을 치유한다고 하고, 바틀릿 박사라는 사람은 손을 대는 환자마다 즉각 황홀경에 빠져 몸이 뒤로 넘어가 병이 완치된다고 하는데 여기서부터는 믿거나 말거나.

 

바릭과 펠프스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시간적 거리를 넓힐수록 기억력이 좋아진다. 한꺼번에 몰아서 공부하는 것보다 잘게 쪼개 조금씩 공부하는 것이 오래 기억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안다는 착각이라고 부른다. 또한 자이가르닉 효과로 설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은 사람들이 완성된 작업보다 미완성 작업에 대해 더 잘 기억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사람들은 작업이 일단 마무리되면, 더 이상 그 작업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을 중단한 채로 내버려둘 경우, 그 일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위 실험결과를 따르자면 독서를 할 때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책을 읽는 방식보다는 책 열권을 번갈아 가며 읽을수록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이다. (다섯 권 정도 씩을 번갈아 가며 읽었는데 열 권까지 늘려야겠다)

 

곰곰생각하는 발님께서 일일일식하신다는 걸 듣고 깜짝 놀랐는데, 아예 안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독일인 베르너씨는 지난 14년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아왔다고. 하루에 커피 네 잔, 과일 주스 두 잔만 마신다. 현재 음식을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5,000명 정도 있다고 한다.

 

황병만씨는 속이 텅텅 빈 사람이다. , 직장, 비장, 부신은 아예 없고, 소장, 대장, 췌장, 십이지장은 절반이 잘려 나갔다. 직장암이었다. 의사들은 생존율 1%라고 했다. 그른 생존에 초점을 맞춰 살아났고, 지금은 10킬로미터 마라톤도 할 정도라고 한다.

 

프랑스의 한 40대 중반 남자는 두 아이를 키우고 공무원으로 일해 왔다. 어느날 그의 뇌를 촬영해 보니 뇌가 텅 비어있었다. 영국 셰필드대로버 교수에 따르면 뇌세포의 불과 5%만 갖고 살아가는 뇌수종 환자 아홉 명을 조사해보니 네 명의 아이큐는 100정도 였고, 두 명은 126을 넘었다고 한다. (126이면 나보다 똑똑하다. 혹시 나도 뇌가 비어있는 거 아닐까)

 

정말 신기한 사람들도 많다. 월트셔라는 사람은 자신이 본걸 카메라처럼 기억한다. 다니엘 타멧은 원주율 외우기 세계기록을 세웠다. 22,514개까지. 피크라는 사람은 한 번 읽은 책은 모조리 기억한다. 부드로라는 시각장애 여성은 시계를 본 적도 시간에 대해 배운 적도 없는데 시간을 정확하게 안다. 셰럴이라는 남성은 10살 때 머리 왼쪽을 야구공으로 맞은 이후로 수십 년간의 날씨를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기억한다.

 

셸드레이크 교수는 두뇌는 무한한 공간에 저장된 정보를 송수신하는 도구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정보는 그럼 어디에 있는 건가? 텅 빈 공간에 있다. 런던대 바타차리아 심리학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수수께끼를 쉽게 푸는 사람들은 답이 떠오르기 8초 전 뇌파가 알파파로 바뀐다. 연이은 실험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8초전에 생각이 멈춰버리고, 생각이 멈춰버리면 반드시 답을 얻었다고 한다.

40년간 뇌파를 연구한 페미 박사는 멍 때릴 때 발생하는 알파파를 얻기 바라고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죄다 실패했다. 너무나 지친 그는 포기하고 뇌파 측정 장치를 벗으려는 순간, 뇌파 측정장치에 알파파가 나타났다고 한다. 즉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 생각은 텅 비어버린다.

 

가장 간단한 명상법은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다. 실험에 따르면 공간을 상상하면 곧바로 알파파가 발생한다고 한다. 왓칭이란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텅빈 공간이 곧 마음이다.

 

그래, 가끔 멍 때리자.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나를 알면 신을 알게 된다. 내 마음을 수정처럼 맑게 닦아 시야가 무한해지면 무한한 신과 하나가 된다. ‘원래의 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이다. 모든 것은 영적 성장을 위해 설계된 수업이다. 지구는 거대한 학습장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 자체만으로 시야는 무한히 넓어진다. 모든 걸 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lummii 2016-04-0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을 노려보며 안 읽기로 했었는데 ㅎㅎ제가 몰랐던 얘기들이 많을 것 같아 한번 읽고싶어지네요 책을세권정도 돌려가며 읽어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던데 열권은 저에게는 무리인듯요 ^^ㅋ저는 무신론자라 삶이 좀 힘들때가 많아요 차라리 신을믿고 윤회를 믿으면 마음이 좀 편안해질텐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인생 넘 짧아요 ㅎㅎ

시이소오 2016-04-07 13:18   좋아요 1 | URL
우주, 자연을 믿으세요 ㅋ ^^

2016-04-07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4-07 13:19   좋아요 0 | URL
와우,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 ^^

cyrus 2016-04-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신세계사 책을 전적으로 믿지 않아서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요. 어떤 책은 과학성과 거리가 멀어서요. 그래도 멍 때리기의 중요성은 공감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랫동안 있으면 저절로 잠이 오니까요. 적당한 수면도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ㅎㅎㅎ

시이소오 2016-04-07 16:16   좋아요 0 | URL
은근 재밌는 사례가 많아요. 숲이 근사하기보단 나무 하나하나가 멋들어졌다고 할까요?
멍 때리기 ㅋ 저도 요즘 되도록 멍때릴려구요 ^^

cyrus 2016-04-07 16:52   좋아요 0 | URL
처음에 남긴 댓글 내용에 ‘마노아’가 나와 있어서 시이소오님이 알라디너 이름을 언급한 이유가 궁금했어요. 다시 봤는데 오타였군요.. ^^;;

시이소오 2016-04-07 16:5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죄송합니다 ^^;

달빛별빛 2016-04-08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읽으면서 뭔가 찝찝했던 부분 명쾌하게 얘기해주셔서 사이다느끼고 가요!!!

시이소오 2016-04-08 09:45   좋아요 0 | URL
그렇게 느끼셨다니 감사하네요 ^^

물고기자리 2016-04-08 1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 님의 시선으로 경험하는 이 책의 내용은 마음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 같습니다ㅎ

시이소오 2016-04-08 11:46   좋아요 1 | URL
감동적인 사례들도 많아서 눈물 찔끔이었어요 ^^

물고기자리 2016-04-08 11:53   좋아요 1 | URL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저랑 비슷하신 부분도 있으신 것 같고요ㅎ

첨부하신 리뷰도 꼼꼼히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4-08 12:31   좋아요 0 | URL
제가 울컥했던 사례들은 내용이 길어서 못 올렸어요. 책의 감성 파트들이 안 실린 셈인데 직접 읽으시면 좋아하실것 같네요 ^^
 
데칼로그 - 김용규의 십계명 강의
김용규 지음 / 포이에마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용규는 <백만장자의 질문>이란 책으로 재벌에 부역하고 혹세무민하였으므로 별점을 깍는다. 

 

20대 때 니체를 읽고 나 역시 니체를 따라 안티 크리스트를 선언했다.

그런 내가 십계명에 관한 책을 읽을 줄이야!

 

강석경의 <저 절로 가는 사람>을 읽고선 당장 삭발하고 출가하고 싶었다.

반면 이 책을 읽고선 당장 교회로 달려가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기도드리고 싶었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었다. 찬송하고 싶었다.

, 주여~ 전능하신 하나님!!’

 

나는 모태신앙이었다. 어릴 때부터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건 평일에 학교 가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교회가면 좋았다. 먹을 것도 주고, 예쁜 교회 여동생도 있고, 교회 누나도 있고, 계란 먹는 부활절도 좋았고, 크리스마스 때면 부모님 허락 하에 밤을 샐 수 있는 새벽송도 좋았고, 성가대 활동도 좋아했다. (, 가스펠 송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럼에도 나는 무신론자가 되고 말았다. 내가 기독교에 의구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성경 탓이었다. 머리가 커지면서 도무지 성경을 제정신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신이라는 자가 허구헌날 전쟁 일으켜 사람 죽이기 바쁘다. 잔인하긴 이루 말할 수 없다. 툭하면 시기하고 질투한다. 찬양하라고? 인간도 개나 고양이를 키우며 나를 찬양해! 찬송해!’라고 하지 않는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피조물의 찬양 따위가 무엇 때문에 필요할까? 오로지 허영심 때문이다. 욥을 보아라. 열심히 믿으면 뭐하나? 신은 사탄의 한 마디에 혹해서 죽어라고 괴롭힌다. 사랑은 개뿔. 살인하고, 잔인하고, 질투하고, 귀가 얇고, 의심하고, 시험하고.

 

이 신과 가장 흡사한 인간 성격 유형을 뭐라 하는가?

팜므파탈이다. 신은 남자인가? 그렇다면 옴므파탈’.

한국말로 하자면 양아치, 조폭, 깡패, 불한당이다.

 

초기 라틴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정말 믿고 싶다.......죽도록 믿고 싶은데.....

 

빌려온 책들엔 낙서를 할 수 없어 조그마한 포스트 잇을 붙여놓는다. , 겨우 일계명 읽는데 거의 매 페이지마다 포스트 잇을 붙였다. 포기했다. 매 페이지마다 붙이면 도대체 왜 붙인단 말인가. 필사 포기다. 일주일은 걸릴 것 같다.

 

단 한 번도 십계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토록 많은 학자들이 십계명을 연구했다니! 김용규는 크쥐스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연작 드라마 <데칼로그>에서 책의 영감을 얻었다. 그는 드라마 <데칼로그>를 매개로 십계명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을 시도한다.

그렇다면 십계명을 한 번 불러볼까.

 

1

 

1: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출애굽기 20:3)

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3 ~6)

 

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출애굽기 20: 7)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으니라 (출애굽기 20: 8~11)

 

2

 

5: 네 부모를 공경하라.....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갈리라 (출애굽기 20: 12)

6: 살인하지 말라 (출애굽기 20: 13)

7: 간음하지 말라(출애굽기 20: 14)

8: 도둑질하지 말라 (출애굽기 20: 15)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출애굽기 20:16)

10: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애굽기 20:17)

 

1판이 신과 인간의 관계라면 2판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다. 이 열 계의 계명이 추후 율법학자들에 의해 613개까지 확대되었다. ‘안식일에 아이를 안아도 되지만 돌을 든 아이를 안으면 안 된다는 둥 십계명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기는커녕 족쇄이자 사슬이었다. 김용규는 크뤼제만의 사회학적 해석을 토대로 존재론적 해석을 시도한다.

 

예흐예 아세르 예흐예신은 자신의 이름을 모세에게 말했다.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로 해석된다. 저자는 이러한 있음. 존재에 주목한다. 야훼는 그는 있다라는 뜻이다.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하게끔 한다. 1계명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의 뜻은 신 안에서만 인간이 자유롭다는 뜻이다.

 

2계의 뜻은 신이 아닌 것을 마치 신처럼섬기지 말라는 뜻이다. , 쾌락, 권력, 이성 등은 우상의 예다. 저자는 종교해악론자들과 종교말살론자들을 비판한다. <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 <종교의 종말>의 샘 해리스, <주문을 깨다>의 대니얼 데닛,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크리스토퍼 히친스, <우주에는 신이 없다>의 데이비드 밀스 등등.

 

저자 입장에서 이들은 여전히 이성을 우상처럼 섬기는 자들이다. 저자는 종교에 의한 만행이 사실임을 부인하진 않는다. 그러나, 20세기에 벌어진 제노사이드가 모두 종교 때문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다른 이유로 나는 종교말살론에 반대한다. 종교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사유재산 폐지만큼이나 순진한 발상이다.

 

신에게는 이름이 없다. 당연하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한정된다는 뜻이다. 신은 무한자요. 무규정자다. 이름이 있다면 그는 신이 아니다.

 

3계는 아무런 목적없이 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합당하게 신의 이름을 사용하라는 뜻이다.

 

4계명 역시 인간에게 자유라기보단 족쇄로 작용했다.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등 온갖 율법을 고안해냈다. 안식이란 무엇인가? ‘무엇 이 아니라 있음에 거주하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무엇 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엄마의 있음에만 관심을 갖는다. 부모 역시 아이가 똑똑해서, 잘 생겨서 사랑하는 게 아니다. 자식의 있음에 감사하고 있음을 사랑할 뿐이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했다. 타인은 우리를 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무엇 으로만 바라본다.

 

죄란 무엇인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수페르비아. , 인간 스스로를 신처럼 높이려는 마음이 죄다. 그것은 신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다. 신에게서 돌아섬은 존재 상실이다. 리쾨르에 의하면 그것은 혼의 상실이다. 그것은 또한 도저히 안식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죽은 혼콘큐피스켄치아곧 한없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안식이란 무엇 을 향한 한없는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존재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며, 존재 자체의 자유이며 신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자만을 극복하고 복종하라는 가르침이다. 자만 때문에 타락했으므로 인간에겐 겸손만이 유일한 길이다. 니체는 기독교 정신을 낙타에 비유했다. 그는 기독교를 삶을 부정하는 긍정이라 비판했다. 저자는 복종이 자유인의 미덕이며 복종하는 자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나처럼 불가지론자(현재)의 입장에선 니체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크뤼제만에 따르면 살인하지 말라에 쓰인 히브리어 동사 ‘rsh’는 의도되지 않은 살인마저 포함한다. 그러나, 저자는 존재론적인 살인을 하지말라로 해석한다. 존재론적 살인이란 영혼의 살인이다. ’소외당하는 것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소외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프롬에 따르면 사랑이다. 따라서 살인하지 말라서로 사랑하라라는 뜻으로 확대된다.

 

저자는 간음하지 말라의 계명을 네 이웃을 사랑하라의 뜻이라 주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을 두 종류로 나눈다. 피조물에 대한 하향적 사랑인 쿠피디타스cupiditas와 신을 향한 상승적 사랑인 카리타스caritas. 쿠피디타스가 무엇-에 대한 사랑이라면 카리타스는 있음에 대한 사랑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수관으로 흘러가는 물을 정원으로 끌어가시오라고 했다는데 과연 그렇게만 하면 쿠피디타스를 카리타스로 바꿀 수가 있을까.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인간을 소유 가능한 존재물로 취급하여 무엇-을 이용하려는 탐욕을 버리라는 뜻이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제 9계명은 네 이웃의 명예, 권리, 소유, 그리고 행복에 해를 끼치는 말을 하지 말라, 사랑 안에서 서로 도우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말하라

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말하라의 뜻은 인식의 진리가 아닌 존재의 진리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마지막 10계를 영화 <데칼로그>처럼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라‘, 둘로 나눈다. 10계는 한 마디로 자족하라의 가르침이다. ’너는 네게 있는 것에 자족하고, 네게 없는 것을 탐하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는 능력은 가졌으나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은 가지지 않았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구원을 실존의 3단계설로 설명하였다. 심미적 단계, 윤리적 단계, 종교적 단계. 종교적 단계의 예가 욥이다. 무한한 자기체념은 신앙 앞에 전제되는 최후의 단계다. 그에 따르면 구원의 문제는 신앙의 문제이지 이성의 문제가 아니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고난이 없는 인간은 종교적 단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프로이트와 프롬은 돈을 지옥의 똥으로 보았다. 프롬은 탐욕이 지닌 네크로필리아적 성격에 대해 말한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증오하고 죽은 것을 사랑하는 일종의 병적 상태, 그것이 네크로필리아다. 반면에 생명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정열적 사랑이 바이오필리아다.

 

현대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사회는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을 부채인간으로 만들었다. 부채가 이익을 창출하는 금융자본주의에선 아무도 빚 없이 살 수 없다. 오늘날의 문학, 철학, 종교는 인간의 탐욕을 정당화하고 미화시킨다.

 

그렇다면 어떻게 탐욕에서 벗어날 것인가. 죄 때문에 탐욕의 노예가 되었기에, 죄 사함만이 탐욕에서 해방되는 길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합하여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 이른바 레카피툴라티오(총괄적 갱신), 흔히 말하는 거듭남에 의해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프로이트로 말하자면 타나토스와 에로스.

 

기독교 사상에서 구원을 이루는 두 개의 주된 메커니즘이 있다. 칭의와 성화다. 칭의는 죄인을 의인 되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죄 사함이라고도 부른다. 성화는 악인이 선인이 된다는 뜻이다.

 

세례를 받고도 악한 행동을 계속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구원 받을 수 없다. 세례가 아니라 성화가 구원의 징표다. 세례만 받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바울로부터 나왔다. 바울의 간사함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악의 구덩이 속으로 빠졌던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는 결국 성화되어라의 뜻이다. 성화되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저자는 십계명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는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다른 신이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각종 우상이다. 십계명를 단 하나의 문장으로 말한다면 너는 너 자신으로 존재하라가 아닐까. 물론 이건 불가지론자의 관점이다.

 

키에슬롭스키는 <데칼로그>를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탐욕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부채인간이다. 우리는 무엇 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에 처해야 한다. 있음에 처하는 것. 그것이 곧 자유다.

 

십계명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왜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사악할까. 신도를 강간하는 목사의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왜 여전히 기독교인들은 자유가 아닌 물질에 구속된 삶을 추구할까. 끊임없이 교회는 지어지지만 기독교인들의 탐욕은 누그러들지 않는다. 성화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내가 기독교에 느끼는 감정은 샤를 페기가 칸트의 도덕률에 대해 말한 것과 흡사하다.

그것은 순결한 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에는 손이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3-31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3-31 14:31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저는 저말을 `있음`에 처하라로 해석해요. 그러면 견딜만 해져요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