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의 시간 창비시선 494
김해자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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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뭘까? 너희들? 혹은 바늘? 이런 세속적인 생각에 잡혀있다가 드디어 표제작에서 '니'의 의미를 발견한다.

1
연해주에 사는 우데게족은
사람 동물 귀신 구분하지 않고 모두 '니'라 부른다는군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안에 깃든 모든 영혼을 니로 섬긴대요
(후략)

우데게족은 원래 연해주 원주민이다. 퉁구스계이며 흑수말갈의 후손이다. 이들은 발해를 영광스럽게 기억한다. 발해가 부족연합국가였기에 그들의 역사이기도 하며 우리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러시아로 편입되고 러시아의 지배가 시작되자 그들은 더더 먼 곳으로 이주를 한다.
어로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연어가죽 옷을 입기도 한다.
우데게이라고도 불리우는 이들은 바다를 건너 숲으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인디언의 집과 비슷한 '춤'이라는 것을 짓고 산다. 그 안에는 세벤(가신)을 둔다. 그들에게 집은 일상의 공간이자 신의 깃들어 사는 성소인셈이다.
신과 함께 사는 그들은 두려움이 없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들, 호흡하거나 호흡하지 않는 것들에까지 깃들어있는 '니'. 경외함을 품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몫이다.
딱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디선가 우데게이 족의 한 풍습을 들었다. 필요한만큼만 가지고 가서 사용하는것. 그것을 어겼을 시에는 부족에서 추방당하는 것까지 감수해야한다고..
죽은자의 세상 부니를 연 사람들. 산 사람으로 죽은 사람까지 들여다보는 사람들 .

우데게의 '니'와 '너희'라는 '니'가 함께 뛰어다니는 시는 잠깐 생각을 다잡게 한다.
시 하나를 앞에두고 오래 전 읽었던 신화와 소설과 기타등등 떠오르는 것들이 난삽하게 뒤섞이고 있다.
우데게이를 이렇게 볼 것이라고는, 시 속에서 우데게이를 숨겨 둔 신탁처럼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했었으니까..

494번째 창비 시선.
494는 대칭수다 2와 13과 19.의 곱으로 구성된..대부분의 수가 그렇지만 약수의 합이 494의 두배보다 작은 부족수다.
우데게의 샤머니즘에 젖어든 탓인지 아무 하잘것 없는 것에도 자꾸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부족수인데 어쩌라고..

자연과 사람과 오염과 파괴와 미래와 연대 기억과 현실을 시 속에서 감각한다. 김해자의 시가 늘 그렇듯 찌르르 짜르르 혹은 훅 내려앉음 같은 느낌으로 감각된다. 무어라 설명하거나 어떤 것이라 말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김해자의 시집마다 나는 '영험한 당골네의 비나리 같다'고 했다.
이번도 다르지 않다.
더 영험해졌다. 더 깊어졌고 더 넓어진 눈으로 더 멀리 본다.
더 큰 신이 왔나보다..

하..시 하나를 옮겨 적어볼라다 관둔다.
공수는 부정타지 않게 직접 받는게 맞으니까..

간만에 진득하게 시를 담았다. 잘 두었다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맛일게 분명한 김해자의 시집 '니들의 시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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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동 선언 - 우리는 글 쓰는 노동자다
작가노조 준비위원회 지음 / 오월의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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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책의 날이라 불리던 날 sns에 잠깐의 소란이 있었다. 피드를 넘기며 보다가 이게 사실이라고?를 몇번쯤 소리내어 말했던 것 같다.
예판이 되는 책이었고(그러니까 아직 실물은 없는) 그 중 500권인가를 작가가 팔아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선인세와 인세의 이야기가 나왔고, 출판사의 입장과 작가의 입장이 서로 부딪히며 조각조각 이야기들이 날아다녔다.
불공정한 계약이며 자비출판에 가까운 상황인데 중간에 끼인 출판사?의 이익이 우선되었음이 읽혔다.
알고리즘의 힘인지 글쓰는 사람들, 책 내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그래서 직업이 뭡니까? 라고 물으면 시인이요. 소설가요. 르포작가요..이렇게 대답할 수 있나? 베셀작가가 아닌 다음엔 작가라는 이름은 보통 서브네임일 확률이 높다. 책을 내고 북토크며 작가와의 만남 이런행사에 일하느라 갈 수 없는 '글쓴이'도 적지 않음을 안다.
개인의 희생과 노력과 안간힘의 결과로 나오는 책 한 권이 가격으로 평가되는것이 현실이다. 작가는 노동자인가? 아닌가? 그 모호함이 가져오는 불이익. 그런것과 마주 설 작가를 위한 책이다.
아, 그 sns를 달군 작가는 새 계약을 했다는 후문이다.
집단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방대하고 세세한 조언이 있었던 이유일지도..
펜이 일군 결실을 가로채는건 자본주의 사회에선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작가에 대한 지위의 확보와 동등한 위치에서의 계약이 필요하다.
프리랜서로 분류되는 작가는 어떤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있나.
또는 개별 개체가 아닌 연대의 모습은 가능한가.
작가의 창작은 어째서 노동이나 말하지 않는가.
그런 작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한 탐구이자 지향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노동은 정당한 댓가를 받을 권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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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는 목소리
한정선 지음 / 불란서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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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는 목소리 -한정선 산문집

양극성 장애와 불안장애, 수면장애와 메니에르등등을 앓고 있는 저자. 사실 이런 복합적인 증상들이 발현하게 되면 삶은 피폐해지고 희망이나 의지는 절망, 좌절과 치환되기 시작한다. 절망과 좌절의 양적 팽창이 희망과 의지를 넘어서는 건 일도 아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죽음과 코를 맞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죽을 각오로 살면 되지. 라고 누군가는 말하고 '선택'이라는 말도 종종 들려오지만 선택의 순간이나 선택의 기준은 없이 무의식, 무의지적으로 극단적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산 자들의 온갖 소리는 사실 무의미한 일이다.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것. 그 시작은 매우 어렵다. 마치 얇고 얇은 잠자리 비늘 같은 터널을 단 하나의 손상도 없이 지나가야 하는 일을 앞에 둔 사람처럼 머뭇대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적어도 잠자리날개같은 터널을 지나보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훌륭하고 대단하다.

고통 속에서 겸허해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감각이 있는 상태다. 매우 좋은 상태. 고통조차 감각되지 않는 우울의 상태에서는 겸허해지거나 자극이 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당위는 꿈쩍도 않는 등을 자꾸만 밀어댄다.
사람의 소리, 그 소리들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할 때 감각은 깨어나기 시작한다. 들리고, 보고, 만지고, 쓰다듬고..
책을 읽는 내내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에게도 중요하겠지만 스스로에게 다정해지고 싶다는..
자신에게 엄격한 삶은 고단하고 서럽다. 한계치까지 자신을 몰아붙여야 뭔가 증명이 되는 삶은 피로하다.
나를 돌보는 일.
그것은 생존의 문제다. 수많은 우울과 양극장애 호소글(?)들을 봤지만..이 저자가 찐이다. 아직은..

[흔들림 없는 삶이 가능한가 하는 것은 여전히 내겐 주요한 질문거리이다. 가만히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듯 지난 세월을 상기하면, 평생을 흔들리고 흔들리면서 살아온 시간만 떠올라서 묵직하고 깊은 중심을 갖는다는 게 애초에 내게는 불허된 것 같았다. (...) 산은 못돼도 바위 비슷한 것은 되고 싶었는데, 큰 나무는 못돼도 갈대처럼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작은 돌멩이고 강아지풀이었다. (..) 자신을 감당하기도 힘들어하면서 어떻게 타인을 감당해 내겠는가.(247쪽)]

다정해지자. 다정하다는 말이 몹시 좋아진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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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조승리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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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을 점점 잃어가다 이제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된 작가 조승리의 세상을 읽는 법. 작가가 감각하는 세상은 직관의 결과보다 풍성하고 입체적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긴다. 그 순간을 기록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기록을 넘어서는 건 '감각'의 힘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을 온전히 온 몸 구석구석에 새겨두면 내 감각 하나가 사라진대도 그 감각은 고스란히 남을거니까.
작가의 일상과 여행을 담은 글이다. 전작(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이 워낙 화제였어서 사실 조금 김이 빠지긴 했다. 뭐랄까..김동식 작가에 대한 초반 화제성이 너무나 대단했던 것처럼. 누구든 그럴거다. 반감기의 기간이 얼마나 긴가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도 작가의 '보이지 않아 보이는' 것은 다채롭고 따끈하다. 우리나라에서 장애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거절 당하는 일'이라고 인터뷰했던 내용도 생각났다
매립되는 동물들을 보았던 기억은 너무나 선명했고 구체적이었다.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읽어대던 책들, 그 마음도 짚어진다. 최근 읽었던 베토벤을 읽다에서도 결핍과 그 결핍 건너의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어쩌면 작가는 어머니의 호쾌함과 당당함, 부지런한 책임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도 같다.
어쩌면 작가는 이 더러운 세상 굳이 봐서 눈 고생시키지 말고 보이는 것 뒤의 의미와 삶의 근거를 감각하라는 축복을 받은것일지도..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절박하다. 마사지숍에서 마사지를 하는,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당연시여겨지는 일을 하며 글을 쓰고 세상을 읽는다.
나는 못한다...마음 한 켠이 무너질 때 멍하게 읽기 좋다. 읽다보면 시선이 돌아오고 감각이 깨어난다. 좋다.

[ 학살은 붉은 생채기처럼 부르튼 흔적을 남기고 종결됐다. 산 자의 긴 그림자가 도망치듯 일제히 빠져나갔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방금 만들어진 거대한 무덤으로 천천히 향했다. 단단하게 다져진 흙더미 위로 중장비의 바퀴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밭에서는 석유냄새가 강하게 났다. 그 냄새 사이로 숨어 있었던 듯 돼지 분뇨 냄새가 산발적으로 새어 나왔다. 가을 바람이 잠자리 떼처럼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나는 생목숨이 묻힌 둔덕으로 걸어 올라가 바닥에 손을 대보았다. 차가울 거라 생각했는데 손바닥 밑에서 미열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흙바닥에 한쪽 귀를 댔다. 땅속에서는 죽어가는 비명 대신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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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사람들 - 문래동 야간 택시 운행 일지
이송우 지음 / 빨간소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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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사람들-문래동 야간 택시 운행일지, 이송우

인혁당 재건위 사건 수형수인 아버지와 옥바라지와 삼남매 육아를 해낸 어머니의 슬하에서 그가 보고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다.
계엄령이 떨어지기 이전부터 이 정부는 탐욕스러운 금광업자처럼 온 나라를 부수고 흔들어 금주머니를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국토가 도륙이 나는건 알 바가 아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 역시 알 바 아니었다. 그리고 기어이. 그 밤 더 나올 것이 없을 때까지 다 빨아먹으려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어찌되었건 이 정부는 생존의 터와 도구를 몰수하는데 도가 텄다. 작가 역시 경기 악화로 법인택시 운전을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정도의 일상을 살고 있었고 조금 더 지나서는 투잡이니 쓰리잡이니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쟁기 하나로는 해결 될 생존이 더 이상 없다는 반증일거다. 부지깽이도 낫도 호미도 부엌의 주걱까지 손에 들고 나서도 겨우 살아지는 생존의 현실이다.
그의 택시에서 만나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속에 비추어지는 작가의 삶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온 몸으로 가르친 것이 무엇인지 사람의 얼굴에서 제일 앞에 나와있는 티를 낸다고 코끝이 먼저 반응한다.

문득 남민전의 전사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선생이 떠올랐다. [선생은 자주 '몸 자리'에 관해 말하고는 했다. " 내 삶이란 내 몸 자리의 궤적이다" 이렇게도 말했다. " 사람은 모든 삶의 궤적은 처지에 의해 수동적으로 '놓이는' 몸 자리와 의지에 의해 스스로 '놓는' 몸 자리의 연속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한겨레 21. 2024.4]
고 했다.

작가는 수동적으로 '놓이는' 몸 자리에 자신의 의지와 역사와 시대의 과제를 고민하는 '놓는' 몸 자리로 만들어가는 변환을 끊임없이 이어간다.
고된 운전으로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을 때 " 내 몸이 아픈 직업은 나와 맞는 좋은 일이 아닙니다"-208쪽 라고 누군가 조언을 했고 몸의 신호와 함께 운전을 그만두게 되었다.
문득, 몸이 아프지 않은 일이 있었던가? 생각해보았다. 모든 노동은 노동자의 삶과 몸을 갉아 이윤을 내는 것 아닌가?라고..잔뜩 뾰루퉁해진 시선을 던져본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막에 던져진 고립무원의 노동자, 소수자, 농민, 여성, 장애인,.이 더는 아니다..그 벽을 허무는 경험을 우리는 한겨울 내내 겪었다.

택시 운전을 하며 작가가 느낀 세상으로의 확장. 개인의 시선과 개인사가 아닌 저마다 조금씩은 교집합이 생기는 부분을 모아가다 보면, 너의 세상이 나의 세상이자 우리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이 올 것도 같다.

어머나 세상에~라고 할 만큼 문학적이고 감정적인 부분도 있고, 어쩜 좋아, 싶은 이야기도 있다. 말 그대로 택시 운전사들만의 특권일 수 있는 정보와 사연의 최종도착지같은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사실, 택시비가 만만치 않아서 택시를 탄 지 좀 오래된 것 같다. 택시는 공공 고해성사의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도 되는..
허기가 몹시 심한 날, 갓 지은 밥에 올려 먹는 고들빼기 같은 글이다. 입맛이 도는 쌉사름한 맛. 달고 짜고 맵고..그렇지만 끝까지 제 일을 다 하는 쓴 맛의 고군분투. 그 진심이 허기를 잠재우듯...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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